다산 사유의 깊이,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2016. 2. 17. 12:47다산의 향기



       다산 사유의 깊이,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자료 / 보정산방

2011.03.2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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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산의 주자학 비판은 '정당화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강 교수와 나의 다산 독해의 차이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주희나 다산은 “가족적 공동체를 뒷받침하는 인의예지의 가치덕목을 닦으려고 하는 사람”이기에 둘 다 유학자이며, 그 둘간의 차이는 단지 그런 가치덕목들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방식”, “합리화 또는 정당화의 논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주희에게서 풍기는 불교의 냄새와 정약용에서 풍기는 천주실의의 냄새에 취해, 그들이 진정한 유학자라는 것을 간과하고 그들의 정당화논리에만 매몰”되었다고 비판한다. 그 냄새와 달리 주희는 불교처럼 그렇게 내재주의적인 것이 아니고, 다산은 천주교처럼 그렇게 외재주의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 둘이 인의예지의 가치덕목을 존중한다는 표면적 사실의 확인보다는 그들이 각기 무슨 근거에서, 즉 어떤 인간관과 세계관 위에서 그런 가치를 정당화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철학적으로 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강 교수처럼 유학을 규정할 경우, 주희와 다산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한국인 나아가 가족적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전세계인이 다 유학자가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주희와 다산을 같은 유학 내지 주자학의 범위로 묶는 것이 정말 다산과 바르게 대화한 것일까? 다산은 끊임없이 자신의 관점을 先儒(주자학)와 대비시키면서 자신이 공맹정신을 바로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성리학의 핵심개념인 태극과 一理, 본연지성과 사덕의 내재성을 부정하면서 이 모두를 불교에 물들어 근본유학의 정신을 잃어버린 것으로 평가한다. 나는 적어도 이러한 다산의 주자학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그가 무슨 근거에서 그런 비판을 하는지를 이해하고 해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강 교수는 그 둘의 차이가 별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산이 주희를 오해하고 그렇게 비판했다는 말인가? 이 말을 들으면 다산이 더 억울해하지 않겠는가?     

 


   2. 성리학의 결정적 두뇌처만 건드린 다산

 

▲퇴계의 성학십도 중 제7인설도 ©

 

   강 교수는 주희가 그다지 내재주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만물일체를 仁으로 설하는 것은 모호하고 혼란스러워 절실한 공부가 없도록 하며, 그 폐단이 사물을 나라고 여기는 데에 이를 수 있다(인설)라는 주희의 말을 인용한다. 仁을 만물일체로 설명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주희의 이 구절은 퇴계의 다음 말과 정확히 대립된다. “聖學은 仁을 구함에 있으니, 이 뜻을 깊이 체득해야 천지만물과 일체가 됨을 알 수 있다. 진실로 이러해야 인의 공부가 절실해지고 맛이 있어, 아득하게 나와 무관하게 여길 염려도 없고, 또 사물을 나라고 여기는 병통이 없이 마음의 덕이 온전해진다”(성학십도).


   이 두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이 두 입장을 ‘理一分殊’라는 성리학의 근본명제에 기반하되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차이라고 본다. ‘리일’은 천리 내지 태극 통째의 내면화로서 내적 본성의 평등과 보편과 하나를 의미하며, ‘분수’는 형기에 따른 리의 분화로서 외적 현실적 차이와 분별과 다양을 의미한다. ‘주리’적 입장의 퇴계는 ‘리일’을 더 강조하고, ‘주기’적 입장의 주희나 율곡은 ‘분수’를 더 강조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퇴계는 만물일체나 평등한 하나의 마음 등 내면성에 더 치중하는 내재주의적 心學의 경향을 보인다면(이 점에서 더 불교적이라면), 주희는 오히려 분수지리에 입각한 사회적 역할과 책임 등 구체적 실천을 중시하는 외향적 경향을 띤다(이로써 주자학은 처음부터 虛學의 불교와 구분되는 實學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같음과 다름, 一統과 萬殊, 樂과 禮, 仁과 義 중 어디에서 출발하며 어디에 더 치중해야 하는가의 수행 내지 실천상의 차이이지, 형이상학적 인간관이나 세계관에 있어서의 차이는 아니다. 어느 경우이든 성리학의 근본명제는 리일과 본연지성이며, 이는 분명 불교의 만유불성사상과 상통한다. 


   나는 다산 또한 이점을 분명하게 통찰하였기에 성리학의 이런 저런 입장의 차이를 모두 무시하고 그 결정적 두뇌처만 건드린 것이라고 본다. 성리학의 근본명제인 리일을 비판함으로써 성리학 자체를 부정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산이 주희를 문제삼은 것은 그 외향적 측면이 아니라, 바로 내재주의였다. 다산은 주희의 말 “천지만물은 본래 나와 일체이다”에 대해 “만물이 일체라는 말은 古經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중용강의보)라고 하고, 주희의 말 “인은 천지의 생물지심으로 인간은 이런 마음을 얻어 태어난다”에 대해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천지의 생물지심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중용강의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다산이 비판하는 것은 성리학(주자학)의 여러 다양한 입장들 중의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여러 다양한 입장을 하나의 성리학이라는 이름 아래 묶을 수 있게 하는 성리학의 핵심명제인 것이다. 

 


   3. 다산은 맹자보다, 순자와 법가에 가깝다

 

   다산은 그 성리학의 핵심명제가 불교의 근본정신과 일치한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그리고 그건 정확한 통찰이었다. 그래서 항상 주희를 비판할 때, 그것이 바로 불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으로써 비판한다. 다산은 주자학이 불교로 인해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원시유학의 근본정신을 잃어버렸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논문에서 길게 논의한 것은 송대 신유학이 원시 공맹유학의 근본정신을 왜곡하거나 변질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근본정신을 보다 철저하게 심화시키고 발전시킨 것이라는 점이었다. 신유학의 핵심명제가 불교의 근본정신과 상통하는 것은 유학이 불교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가 아니라, 공맹의 근본정신과 석가의 깨달음이 하나로 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하나의 진리는 사실 인간 누구나가 마음 가장 깊이에서 이미 알고 있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것을 인간의 내적 신성과 영성에 대한 통찰, 인간의 내적 초월성에 대한 각성이라고 본다. 인간은 누구나 성심으로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공맹유학), 인간은 相의 차별성을 떠나 누구나 覺者(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불교)은 결국 같은 말이 아니겠는가?


   나는 다산 또한 이 연관성을 간파하였다고 본다. 그래서 다산이 신유학에서 불교와 상통하는 측면을 제거할 때, 공맹유학에도 함께 들어있던 바로 그 측면을 따라서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다산은 맹자에게서 인의예지는 천성적으로 부여된 내면적 덕이 아니며, 인간의 내면은 오히려 비어있고 실천을 통해 비로소 채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의 실천을 인간 관계 안에서 자기 분수를 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경험적으로 부과된 분수의 차이를 넘어서는 인간 내면의 본질적 평등성, 理一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일이 부정되고 분수만 강조될 때, 그것은 결국 名分과 禮로서 인간 삶을 구속하는 질곡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은 맹자의 정신이기 보다 오히려 순자나 법가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나는 공맹정신의 왜곡은 다산이 주장하듯 불교에 의해서 또는 주자학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산 자신에게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1000여년을 이어 유학의 도통을 확립하고자 한 주희의 진지한 노력을 묵살해버리는 것, 불교와 유학이 융합하여 새로운 신유학이 완성된 후 그것이 우리 조선의 국가건립과 통치이념 그리고 일상의 윤리이념의 역할을 하였는데, 그 장구한 사상적 흐름을 송두리째 변질된 왜곡의 역사로 몰아버린다는 것, 그 긴 기간동안 공맹의 기본정신을 제대로 살리는 형이상학이 중국에도 조선에도 출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 나는 그것을 단지 주자학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의 모든 동양인과 동양정신 그리고 동양문화와 동양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우리의 다산이 왜 이런 식이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나는 천주실의에서 발견한다.      

 

   4. 전통을 폄하하는 우리와 다산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사실 내가 논하고자 한 것은 다산이 유학자냐 천주교인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다산이 신유학을 공맹유학의 핵심을 비껴간 것으로 해석하면서 그 방식으로 동양사상사를 읽는 것이 실은 補儒論의 선교정책을 세운 예수회소속 마테오리치의 관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공맹유학과 신유학을 그런 식으로 해석할 때 우리 자신도 아직 그 영향 하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을 묻고 싶었다.


   마테오리치는 우주적 창조력과 지성을 지닌 절대자, 상제 내지 天(서양의 神에 해당)의 관념이 원시유학에는 있었지만 신유학에서는 그것이 태극이나 理로 추상화되면서 상실되었다고 주장한다. 천주교의 천주를 전도하기 위해 예수회의 마테오리치는 성리학의 핵심개념인 태극을 추상적 象으로, 理를 사물에 부착된 비자립적 속성으로 해석하였으며, 도미니크교단의 몽고바르띠는 한걸음 더 나아가 理를 아예 순수 질료로 해석해버렸다. (반면 천주교 전도라는 압박 없이 순수한 철학적 관심에서 성리학을 연구한 라이프니츠는 성리학의 태극과 理를 우주적 창조력의 정신적 실재로 해석하였다.) 교단에 속하는 그들은 성리학체계 중에서 어떤 개념의 생명력을 제거해야 전도가 성공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그렇게 성리학을 형이하학적 물리주의나 유물론으로 변질시키고 나면, 정신적 상승이나 영적 승화를 희구하는 인간은 결국 천주교로 돌아서지 않겠는가?  

 

▲성호 이익 ©

▲안정복의 천학고 ©



   나는 18세기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러한 전략에 넘어가지 않았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은 마테오리치식의 성리학 해석을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이익 “理는 썩은 나무나 죽은 재와 같지 않다. 반드시 스스로 동하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동하게 한다”(사칠신편)라고 하여 퇴계와 마찬가지로 인간 내면에 품부된 理의 능동성과 활동성을 강조하며, 안정복“태극도설은 ‘태극생양의’의 공자 말에 근거한 것이다. 주재한다는 점에서 말하면 상제이고, 무성무취의 측면에서 말하면 태극이고 理이니, 어찌 상제와 태극의 理를 둘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가?”(천학문답)라고 한다. 신후담“우리 유학의 설에 따라 논하자면 사람을 상제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일 뿐이다”(서학변)라고 하여 태극을 품부받은 개체의 심이 상제에 비견된다는 것, 유학의 내재주의적 영성과 신성을 강조하다.


   그런데 다산은 성리학을 주희나 조선유학자들이 읽는 식으로 읽지 않고 마테오리치가 해석하는 식으로 읽는다. “태극도는 감괘와 리괘의 두괘를 합한 것에 불과하다. ⋯ 이를 만물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중용강의보), “氣는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것(自有之物)이며, 理는 기에 의지하는 부속적인 속성(依附之品)이다”(중용강의보)라고 말한다. 이처럼 태극과 리를 추상적이고 이차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이와 같이 성리학의 핵심명제인 理一을 부정함으로써 성리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산이 인간의 신성과 영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을 인간의 본래적인 내면적 본성으로 보지 않고, 외적 상제에 대한 경외심이나 도덕심(양심) 정도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공맹유학 이후 절대(상제, 천, 신)에 대한 감각이 불교 때문에 수백년에 걸쳐 모든 동양인의 마음 속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외재주의적 신관이 아닌 다음에는 불가능한 소리가 아니겠는가? 그 점에서 마테오리치와 다산이 무엇이 다르며, 또 오늘날 전통사상과 전통종교의 자기폄하 속에서 마테오리치식으로 전도된 우리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묻고 싶었다.   


   나는 사실 서양 교단의 마테오리치식 전략이 다산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상당히 성공적인 것을 보며, 그 전략의 철저함에 감탄한다. 물론 나는 그 전략의 성공이 결코 그 철학의 진리성 때문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정치경제를 등에 업은 또 다른 권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의 유교나 불교에 대한 진지한 사색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서구화된 가치관에 따라 유교를 전통예법이나 윤리덕목으로, 불교를 우상숭배나 미신으로 간주하는 사회분위기에 젖어버리지 않는가?

 


   5. 내면의 절대와 무한에 대한 자각이 동양정신의 핵심

 

   강 교수는 내가 내재주의(내재적 신론)외재주의(외재적 신론)라는 너무 거친 이분법을 사용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내가 논문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내면적 신과 외재적 신의 대립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결국 하나라는 것이었다. 다산이 아무리 마테오리치식으로 성리학을 읽는다 해도, 다산이 생각한 신이 천주교의 신보다는 오히려 유학적 신과 더 유사하다는 것은 곧 인간이 자기 밖의 절대자로 여기는 신은 결국 인간 자신의 내적 본질의 외화이고 투사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다산에 있어 “유학적 가치는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면으로부터 바깥으로 장소이동만 하면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나는 유학자이든 불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누구나 가슴 속에 절대와 무한에 대한 자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존재라는 것, 누구나 예수나 석가와 같은 신성과 불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실현하여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것을 나의 개인적 신념으로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동양정신의 핵심이 아니겠냐고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절대와 영성을 안에서 찾든 밖에서 찾든 그건 그렇게 큰 차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크게 그리면 영성이 그 안에 있고, 자신의 마음을 작게 그리면 영성은 그 밖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재주의는 밖의 영성을 자각하는 마음도 또한 자기 마음이라는 것을 놓쳤을 뿐이지만, 그래서 경외심과 신앙심이 더 돈독해진다면 그 길을 취할 수도 있다고 본다. 결국 외재주의는 불완전한 형태로 내재주의 속에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서학적 인간관 내지 신관의 다산 사상도 결국 인간의 영성과 신성을 주장하는 동양사상 속에 포함될 수 있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문제는 다산이 동양사상인 유학과 불교를 그런 식으로 읽지 않았다는 것, 나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내면의 신과 외재적 신을 구분하고 분리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다산이고 마테오리치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신앙하는 외적 절대가 내적 신성의 외화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내재주의를 신성과 영성이 없는 무신론 내지 유물론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마테오리치가 성리학을 그렇게 폄하했고, 다산 또한 그랬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이다. 

 

   6. 다산의 것으로 다산을 말하라

 

   다산에게는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사상가”, “독창적 사상가”, “조선 실학의 완성자”, “실학의 집대성자” 등 온갖 찬사가 다 붙어 있다. 대개는 시소놀이처럼 다산을 높이 올리면서 그 반대편의 성리학을 바닥으로 쓸어내린다. “송학의 구렁에서 연꽃처럼 피어난 다산의 사상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다운 우리 것의 우뚝한 학풍”이다. “다산 이전에 다산만한 사상가가 없었고 다산 이후에도 다산만한 학자가 쉽사리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여유당전서 국역본에 불어있는 말들이다.


   물론 나도 다산을 무조건 평가절하하거나 그저 비판만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산 당시의 사회 문화적 배경 안에서 다산이 담당한 역할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내가 문제삼고 싶었던 것은 사실 다산 자체라기 보다 다산을 읽고 평가하는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가 다산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산을 따라 한국의 유학사를 읽으면서 과연 누구의 그림자를 좇고 있는 것인지를 밝혀보고 싶었다. 정말 다산 사유에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깊이의 탐구를 단지 마테오리치의 영향을 확인하는 수준으로 그치지는 말자는 것이다. 철학적 의미에서 그것이 결코 진정한 깊이도 높이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나는 다산 속에 남아있는 마테오리치의 흔적을 비판적으로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다. 정말 다산을 한국의 유일무이한 철학자로 세우고 싶다면, 서양 사상이나 서양 근대정신에 빗대어서가 아니라, 다산 자신의 철학을 들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다산을 비판한 것은 다산을 진정 어느 지점에서 높여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찾아내고 싶어서였을 뿐이다. 그걸 찾아낼 철학적 눈을 그리워할 뿐이다. 

 

- 교수신문 2005.08.02, 한자경 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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