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7. 18:00ㆍ美學 이야기
왕실의 특별한 의미를 담은 화려하고 세련된 은각 곡선미 | ||||||||||||||||||||||||||||||||||||||||||
김대환의 文響 - 22 은제도금 참외모양 병 (銀製鍍金蓮花折枝文瓜形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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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병으로 고려인들이 추구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참외모양병을 알 수 있게 됐다. 은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몸체의 변형이 없이 장인이 생각한 최적의 참외병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丙申年 새해를 맞이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중요한 해외 還收 문화재 한 점을 최초로 공개한다(사진①).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은제도금 참외모양 병(銀製鍍金蓮花折枝文瓜形甁)’이다. 몸통은 참외모양이고 입구는 참외에 달려있는 꽃모양이며 銀甁아래 부분의 굽 받침은 주름치마처럼 접혀있다. 이런 형태의 甁은 고려시대 전 시기에 걸쳐 靑磁로 많이 만들어졌으며 ‘靑磁瓜形甁’이라 불린다. 현존하는 유물도 국내외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瓜形甁’이 銀으로 만들어진 사례는 처음이며 질적 수준도 국가지정문화재급이다.
얇은 銀板을 단조해 만든 병으로 몸통과 목, 굽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며 각기 별도로 제작해 문양을 조각한 후에 접합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몸통에서 목과 굽으로 이어지는 경계에는 볼록한 단을 만들었으며 목의 중앙부분에는 두 줄의 陰刻線을 둘렀다. 일정한 간격으로 곧게 주름이 접힌 굽은 바닥면으로 내려오면서 넓어지며 이 은병의 안정감을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려시대 왕실용 金銀器를 제작하던 掌冶署의 숙련된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생각되며 왕실의 儀禮用이거나 생활용구로 사용됐을 것이다. 다만 이 은병의 크기로 보아 생활용구에 더 근접하게 보인다. 만약 의례용이라면 좀 더 크게 만들었을 것이다. 고려시대 제작된 金銀器는 고가의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매우 한정된 수량과 한정된 크기로 제작될 수밖에 없었고 현존하는 유물도 극히 드물다(사진④~⑤).
고려시대 靑磁로 제작된 참외모양병(靑磁瓜形甁)은 인종 장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靑磁瓜形甁(국보 제92호)’를 비롯해 국내외의 여러 기관에 소장돼 있다(사진⑥). 그러나 같은 종류의 靑磁瓜形甁이지만 형태는 조금씩 달라서 이 瓜形甁의 기준작을 정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병의 목이 신체에 비해 두껍거나 얇고 몸통이 크기에 비해 길거나 짧기 때문이고 굽의 높이도 유물마다 각기 다르기 때문이었다. 또한 도자기의 특성상 燔造 후에는 30%정도 몸체가 수축이 돼서 변형이 생기기 때문에 처음 생각했던 대로 병이 만들
어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연구자마다 보는 시각차이 때문에 고려인들이 추구하던 참외모양병(瓜形甁)의 진정한 모습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었다.
김대환 문화재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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