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39) 부엌의 온기
2016. 2. 17. 18:24ㆍ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39) 부엌의 온기
2016/02/15 08:45 등록 (2016/02/15 08: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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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외식문화가 생활속 깊이 잠식해오면서 부엌의 역활이 점점 미미해지고 있다.
문밖으로 나가면 온통 먹거리 천국이다. 이탈리안, 중국, 일본을 망라하는 세계각국의 요리를 파는 식당들이 곳곳에 포진해있고,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배달업소들은 짜장면과 치킨, 피자와 김밥, 찌개와 탕종류까지 모든 잡다한 분식류와 안주류까지 취급하며 전화 한통화에 집까지 배달을 해준다.
골목마다 몇개씩 들어서 있는 24시 편의점에서는 한끼 구색을 잘 갖춘 도시락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이럴바에는 힘들게 장을 봐서 음식을 하느니 나가서 사먹거나 배달을 시키는게 돈과 시간을 절약하는 방편이라는 생각도 든다. 요리가 영 젬병인 주부들은 쌍수들고 환영할 형국이다.
나 역시 비용절감과 시간의 효율을 핑계삼아 외식과 배달음식들을 애용해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부엌은 더이상 훈기를 뿜어내지 않았고 식탁은 허기를 메우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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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나는 갑자기 쓰러졌다.
어느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주변이 핑글 돌더니 땅이 꺼지듯 아득함을 느끼며 그자리에 바로 주저앉았다. 119를 불러 병원에 갔더니 이석증이라고 했다. 원인도 없고 약도 없는 이 병은 몸의 원기가 떨어지면 귓속의 칼슘재질이 녹아 반고리관을 돌아다니며 어지러움을 유발시키는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 여름내내 나는 병실에 누워 움직이지 못했다. 억지로라도 일어서면 어지러움이 몰아쳤기에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남편은 휴가를 내고 어린아기를 돌봤다. 우리 세식구는 나날이 생기를 잃어 갔다. 내가 쾌차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편이 없었지만, 나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다. 참으로 힘든 나날들이었다. 먹지 못하는게 이토록 고통스럽다니! 나는 병실의 차가운 침대에 누워 매일매일 베개가 흥건해지도록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느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주변이 핑글 돌더니 땅이 꺼지듯 아득함을 느끼며 그자리에 바로 주저앉았다. 119를 불러 병원에 갔더니 이석증이라고 했다. 원인도 없고 약도 없는 이 병은 몸의 원기가 떨어지면 귓속의 칼슘재질이 녹아 반고리관을 돌아다니며 어지러움을 유발시키는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 여름내내 나는 병실에 누워 움직이지 못했다. 억지로라도 일어서면 어지러움이 몰아쳤기에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남편은 휴가를 내고 어린아기를 돌봤다. 우리 세식구는 나날이 생기를 잃어 갔다. 내가 쾌차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편이 없었지만, 나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다. 참으로 힘든 나날들이었다. 먹지 못하는게 이토록 고통스럽다니! 나는 병실의 차가운 침대에 누워 매일매일 베개가 흥건해지도록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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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집으로 소포가 하나 배달되었다. 나의 오랜 지인이 보낸 굴비장아찌였다.
그는 나와 문학클럽에서 만난 칠십이 다 된 초로의 할머니이다. 십년이 넘게 연락이 이어져오며 세대차를 뛰어넘은 소통을 나누는 다정한 벗이었다. 내가 며칠을 아무것도 못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산지에서 굴비를 공수해서 건조기에 잘 말려 생강과 한약재와 갖은 양념을 버무려 고추장을 만들고 굴비를 찢어 버무렸다.
만들면서 내내 내 병이 낫도록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그 굴비는 남편의 손으로 병실의 간이식탁위에 올랐다. 양념이 촉촉히 베인 쫀득쫀득한 갈색의 굴비 한점.
보리차에 밥을 말아 굴비 한조각을 올리고 한입 삼켰다. 입안에 순식간에 군침이 돌면서 씹기가 바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또 다시 굴비와 밥 한술. 또 한술. 그렇게 밥을 먹고 나는 다음부터 조금씩 식사를 하게 되었고, 이윽고 몸이 나아져 퇴원하기 이르렀다.
그는 나와 문학클럽에서 만난 칠십이 다 된 초로의 할머니이다. 십년이 넘게 연락이 이어져오며 세대차를 뛰어넘은 소통을 나누는 다정한 벗이었다. 내가 며칠을 아무것도 못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산지에서 굴비를 공수해서 건조기에 잘 말려 생강과 한약재와 갖은 양념을 버무려 고추장을 만들고 굴비를 찢어 버무렸다.
만들면서 내내 내 병이 낫도록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그 굴비는 남편의 손으로 병실의 간이식탁위에 올랐다. 양념이 촉촉히 베인 쫀득쫀득한 갈색의 굴비 한점.
보리차에 밥을 말아 굴비 한조각을 올리고 한입 삼켰다. 입안에 순식간에 군침이 돌면서 씹기가 바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또 다시 굴비와 밥 한술. 또 한술. 그렇게 밥을 먹고 나는 다음부터 조금씩 식사를 하게 되었고, 이윽고 몸이 나아져 퇴원하기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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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그때의 굴비맛을 잊지 못한다. 그 분은 가끔씩 굴비장아찌를 보내주긴 했지만 그때 병실에서 먹은 굴비만큼 절실한 맛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히 희소성만큼이나 가격이 비싼 굴비의 몸값때문도 아니고, 쾌유에 대한 간절함과 정성어린 손맛이 버무려진 어떤 분위기의 상호작용이 아니었나 싶다.
최고의 양념은 사랑이다. 똑같이 세끼를 먹여도 계모의 밥을 먹은 아이는 몸이 마르고, 엄마의 밥을 먹은 아이는 포동포동 살이 찐다는 속설도 있다. 나는 그말이 거짓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사람들은 단순히 열량의 섭취보다 사랑과 정을 먹어야 육체적, 정신적으로 풍족해지기 때문이다.
최고의 양념은 사랑이다. 똑같이 세끼를 먹여도 계모의 밥을 먹은 아이는 몸이 마르고, 엄마의 밥을 먹은 아이는 포동포동 살이 찐다는 속설도 있다. 나는 그말이 거짓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사람들은 단순히 열량의 섭취보다 사랑과 정을 먹어야 육체적, 정신적으로 풍족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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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없이 쓸쓸해지는 퇴근길에 우리의 발길을 재촉하는 것은 환하게 불 밝힌 창문의 온기와 무언가 끓이고 볶으면서 분주한 부엌의 활기다. 현관문을 들어서기 바쁘게 들이치는 찌개의 구수한 내음은 어떤 화려한 꽃향기보다 더 감미로운 냄새이다.
부엌이 활발한 가정에서 불행한 사람들은 있을수 없다.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부엌이 활발한 가정에서 불행한 사람들은 있을수 없다.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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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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