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8. 11:24ㆍ美學 이야기
書畵촌정필담
<추사의 부작란과 세한도는 書인가. 畵인가, 書畵인가?>
중국 회화의 뿌리는 암각화이다. 암각화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이 문자의 역할을 함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고 읽기를 해야 한다. 그림과 문자는 태생적으로 같은 뿌리이다. 암각화에서 보듯이 중국 회화는 선긋기에서 시작하였다. 필선으로 형성되는 한문자와는 형제지간이다. 한나라 때의 무덤 그림이나 백화(마왕퇴 벽화)도 기본 구성은 선이다. 점차 채색을 함으로 문자와 분리되어서 오늘의 중국 회화로 발전하였다. 고개지가 그린 낙신부도는 중국의 회화가 시와 결합한 초기의 작품이다. 고개지는 화가인 동시에 시인이었다. 고개지는 시적 언어를 좀 더 감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조형예술(회화)의 특징을 이용하였다. 색채의 도입으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시의 표현을 더 돋보이도록 하였다. 이것은 시와 그림을 조합하는 양식이 중국 예술에서 아주 일찍부터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요녕성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송나라 때의 모본인 낙신부도에는 글씨도 쓰여있다. 고개지의 그림으로 전하는 여사잠도는 글을 설명하듯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당나라 때 노홍이 그린 초당십지(草堂十志)는 書와 畵가 잘 결합된 문인화풍의 그림이라고 말한다. 노홍의 초당십지는 중국 회화사에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림과 발제시의 작가는 동일인이다. 이 전의 작품은 그림과 시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이 작품에는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노홍의 초당십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그렸다.(私家山水) 그려져 있는 그림은 자신의 생활을 담았다. 자신의 초당에서 바라보이는 정경을 그렸다. 그림에 적혀 있는 시도 자신의 감정을 읊은 자신의 시이다. 그림은 단색 수묵화이다. 한 작가가 시, 서, 화를 같이 적용한 작품을 만드는 일이 흔하였다. 시가 그림의 내용을 표현할뿐더러 그림 또한 시의 내용을 표현하였다. 노홍의 그림을 분석해보면 작가가 그림도 그릴 줄 알고, 시도 지을 줄 안다. 그리고 글씨도 직접 썼다. 이 작품에는 시, 서, 화가 모두 한 사람의 작품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작품을 남기려면 작가는 문학적 소양도 높아야 하고, 붓으로 글씨도 쓸 줄 알아야 한다. 미술사에서는 이런 작품을 남긴 예술가로 왕유를 먼저 꼽는다.(왕유를 문인화의 시조로 말한다.) 그러나 왕유는 진품으로 인정받는 작품이 없다. 그렇더라도 이런 사실들은 붓을 다룰 줄 아는 선비(사대부)는 시도 쓰고,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릴 줄 아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한다. 詩는 작가 자신의 정서를 담아낸다. 현대 서예인의 약점은 남의 글을 적으므로 자신의 정서를 의탁할 수는 있어도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다. 書의 내용을 그림과 혼합하여 표현할 수는 없을까? 畵를 통해 자신의 정서를 담아낸다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송나라 때는 문인화풍의 작품에는 한 화면에 글씨와 그림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글과 그림은 서로 보완 관계를 이룬다. 작가가 작품에 자신의 의도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감상자와 작품 간의 소통을 위한 방법이기도 하였다. 이때의 미술작품은 書畵라고 할 수 있다. 시와 그림이 한 화면에 표현하여 서정적 분위기를 더 높여주는 것은 중국 회화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다. 현대의 미학이론으로 따진다면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소통을 좀 더 원활하게 하려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림과 書를 한 화면에 표현한 것은 실용적인 방법으로도 많이 애용하였다. 고궁박물관 소장의 직공도는 양나라 때의 그림을 송 때 모사하였다. 외국의 사신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씨를 써서 설명하였다. 이후로 한 화면에 그림과 글씨를 같이 표현한 작품은 아주 많다. 문인화가들은 스스로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렸으므로 작품으로 예술 작품으로 남겼다. 송나라 때의 미불은 송 4대 서예가 중의 한 명이다. 미술사에서도 문인화풍의 그림으로 아들과 함께 이미(二米)라는 이름을 남겼다. 詩의 내용으로 그림으로 표현한 시의도(詩意圖)도 많다. 추사의 세한도는 서예 작품일까? 회화일까?
노홍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문학작품을 만들어서 자신의 書로 표현해야 진정한 자기 작품이 된다. 다른 사람의 글을 베껴 쓰고 서예 작품이라고 할 때는 공예에 더 가깝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석계의 산수화
중국 회화사를 펼쳐보면 그림에 글씨를 쓴 작품이 훨씬 더 많다. 서와 화는 서로를 보완하고 있다. 소식은 花中有詩요 詩中有畵룰 자신의 화론으로 삼을 정도이다. 한문 서예의 경우에는 현대의 우리는 읽을 수가 없으므로 마음 속에 그림을 그리면서 정서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서예 작가가 書의 내용과 합당한 그림을 그려서 시의 의미를 표현해내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주학년의 동파 입국도 (인물화와 서예를 결합환 양식이다. 우리나라의 유희강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인이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한국적인 정서를 표출해내기 위해서는 한국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다. 한국 민화는 어떨가? 민화는 공예적인 요소가 강하므로 손재주로 익히기는 쉽다.
젊은이를 감상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림을 만화적인 캐릭터로 그려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쨌거나 글과 그림을 조합하여 만드는 작품은 중국 회화사에서 흔한 일이다.
설강 김영자는 그림 대신에 압화(말린 꽃)를 직접 화면에 붙여서 書와 결합하였다.
설강 김영자는 그림과 서각과 서예를 결합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중국에서 書와 畵를 한 화면에 담아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명칭도 서화(書畵)라고 부르는 것에 아무도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이왕이면 자신의 쓴 詩를 자신의 書로 화면에 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오늘의 우리나라 사람이 漢詩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반드시 그림이 아니더라도 작가가 손쉽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압화(꽃을 말린 것)를 화면에 붙이는 실험적인 작품을 본 일이 있다. 書와 書刻을 결합한 작품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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