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한국 古미술 … 섬세美의 극치

2016. 3. 15. 21:27美學 이야기



      

[문화] 게재 일자 : 2015년 07월 07일(火)
빛나는 한국 古미술 … 섬세美의 극치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 포함 140점… 고려나전 8점·강산무진도 등 눈길


▲  나전국당초문원형합(螺鈿菊唐草文圓形盒) 세부, 14~15세기, 도쿄국립박물관. 나전칠기 기법에 의해 당초(식물의 덩굴이나 줄기를 도안화한 장식)무늬를 따라 삼중의 국화 겹꽃무늬를 규칙적으로 배치, 장식성을 극대화했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리움 ‘세밀가귀’展

   ‘세밀가귀(細密可貴)’ 즉 세밀함이 뛰어나니 가히 귀하다 할 수 있다. 고려 인종 때 중국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은자신이 기록한 여행보고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1123년)에서 고려 나전을 그처럼 ‘세밀가귀하다’고 평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을 찾아가면 서긍이 왜 그처럼 감탄사를 연발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한국미술사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모아 ‘세밀함’과 ‘정교함’ 등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조명하는 ‘세밀가귀 細密可貴 : 한국미술의 품격’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금속공예, 나전, 회화, 불교미술 등 여러 분야 국보 21점, 보물 26점을 포함한 140여 점으로 구성됐다.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287호)를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간송미술관, 호림박물관, 동국대박물관 등 국내 19개 기관의 주요 대표작이 전시된다. 해외에선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보스턴미술관, 영국박물관,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 도쿄(東京)국립박물관 등 21개 소장처에서 대여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특히 전 세계에 17점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아 희귀한 고려 나전 8점을 위한 특별공간이 마련돼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 나전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나전의 세밀함을 살펴볼 수 있다고 리움은 설명했다. 전시작 중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독일 함부르크미술공예박물관), 칠보산도병(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동경계회도(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은 국내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전시한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이승혜 연구원은 “그동안 한국미술이 여백의 미, 소박함 등의 특징으로만 편향되게 설명돼 온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전시는 기원전 5세기부터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우리 미술작품에 나타난 세밀함이나 정교함 그리고 그 같은 제작 기법 뒤에 숨어있는 장인들의 미의식 등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장르가 아닌 제작 기법을 중심으로 나뉜다. ‘文 문양 : 정교함의 극치, 화려함의 정수’ 부분에선 입사, 투각, 상감, 감장 등 우리 공예의 다채로우면서도 정교한 장식 기법이 사용된 공예품들이 선보인다. 금관(국보 138호), 금동 수정감장 촛대(국보 174호), 나전 단화금수문 거울(국보 140호), 나전국당초문원형합(도쿄국립박물관) 등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形 형태 : 손으로 빚어낸 섬세한 아름다움’에선 금속공예품과 불보살상 등을 통해 장인의 손끝으로 빚어낸 정묘한 형태의 세밀함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의 정교한 손재주를 보여주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비롯해 금동 보살 좌상(일본 사가현 중요문화재), 금동 관음보살 좌상(국립중앙박물관) 등이 대표적이다. 또 ‘描 묘사 : 붓으로 이룬 세밀함’ 부분에서는 붓을 통해 표현한 섬세함의 아름다운 모습을 고려불화, 조선시대 철화·청화백자 등을 통해 보여준다. 청화백자 매죽문 호(국보 219호), 원각경 변상도(미국 보스턴미술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두루마리 형태로 그려진 조선시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이상화된 자연의 모습을 그린 ‘관념산수화’로

이번 전시작 가운데 8개 작품은 대여 일정으로 인해 전시 기간이 각각 다르다. 리움은 소장 학자의 최신 연구 성과를 들을 수 있는 학술세미나와 전시 강연을 개최하며 전통 공예기법인 상감, 은입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02-2014-6901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  문화일보 기사 ......


은은한 먹향에 취하다

허건 탄생 100주년 `그래도 남농이다` 展
아라아트센터 산수화·병풍 등 40여점 전시

  • 이향휘 기자
  • 입력 : 2015.04.21 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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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江山無盡圖 (104×323cm)
"요즘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고서화에 대한 전화 문의가 상당합니다. 미술시장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아요."

서울 인사동에서 30여 년간 고서화를 취급해 온 박정준 세종화랑 대표. 그는 "요즘 컬렉터들이 돈이 될 만한 고서화를 상당히 많이 문의해 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추상회화 단색화 열풍이 고서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때마침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세종화랑이 기획한 수묵화가 남농 허건(1908~1987)의 개인전이 열린다. 남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라는 부제가, '그래도 남농이다'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정확히 연도를 따지면 탄생 100주년은 아니지만 100주년 기회를 놓친 만큼 이번에 대대적으로 남농의 수묵 세계를 재조명한다는 취지다.

운림산방 3대인 남농은 조선 후기 남종화 대가인 소치 허련(1809~1893)의 손자. 그는 할아버지가 말년에 고향 진도에 지은 화실 '운림각(雲林閣)'을 1982년 '운림산방'으로 복원 기증했다. 현재 국가지정 명승 제80호로 지정됐으며 200년간 5대에 걸쳐 9명의 화가를 배출한 산실이다. 현재 운림산방 명예회장인 허문 선생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남농이 맥을 잇고 있는 남종화란 먹으로만 그리고 가볍게 색을 칠하는 것을 말한다. 먹을 위주로 그린 수묵 담채화풍이다. 화려한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먹의 순수한 농담과 운필의 생동감을 강조한다. 특히 굵고 대범한 필치로 그려낸 남농의 소나무 그림은 굳은 기상과 시원한 여백미를 보여 준다. 화업 초기엔 정교한 세묘(細描)가 특징이고, 중·후기엔 수묵의 오묘함을 담백하고 청아하게 표현하려 애썼다. 맑고 섬세한 담채의 운치, 종횡의 필치가 지닌 속도감, 자신감 넘치면서도 개성 있는 화면 구성의 연출력으로 인해 그는 한국 수묵 화단의 대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엔 3m가 훌쩍 넘는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와 '고림유심(古林幽深)', 남해 고향 섬들의 운치를 담은 '남해다도일우(南海多島一隅)' 등 대작이 주로 걸린다. 남농은 한겨울 냉방작업 중 얻은 동상으로 1945년 한쪽다리를 절단하는 시련도 겪었다. 그는 "그때 내게 그림에 쏟는 열정과 희망이 없었다면 분명 자살했을 것"이라고 참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전시는 29일부터 5월 11일까지. (02)722-2211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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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진경산수, 조선 고유 畵風 아니다”

한정희 교수 ‘…회화 교류사’서 주장

문화일보 | 최영창기자 | 입력 2012.05.24. 14:11


   "실경산수화는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지만 동아시아에서 성행했던 시기는 중국에서는 17세기부터, 한국과 일본에서는 18세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실경산수화는 진경산수라 불리며, 중국과는 다른 한국과 일본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국수주의의 팽배와 더불어 그 의미가 부각되기도 했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회화 교류사에 천착해온 한정희(예술학) 홍익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동아시아 회화 교류사'(사회평론)를 통해, 17·18세기 동아시아에서 실경산수화가 성행한 배경으로 몇가지 공통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양 과학문명의 자극에 의해 구체화된 중국 명·청대 실학사조의 유행과 여행의 붐 및 이에 따른 기행문학의 성행, 산수판화집의 유포와 전래와 같은 사회·문화적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이 같은 주장은 조선후기 실제 경치를 묘사한 그림을 '우리 땅에 대한 관심'이나 '민족 자주성'에서 비롯된 진경산수라는 한국 특유의 미술형식으로 정의해온 통념이나 일부 한국미술사학계의 시도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 캔자스대에서 명말 저명한 서예가인 동기창의 회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 교수는 동아시아 실경산수 유행의 배경으로 무엇보다 중국 산수화보(산수판화집)의 유입에 주목한다. 17·18세기 중국(명나라)에서는 황산(黃山)을, 한국(조선)에서는 금강산을, 일본(에도바쿠후·江戶幕府)에서는 후지(富士)산을 소재로 한 그림이 많았는데, 이들 동아시아 실경산수는 서양처럼 경치를 직접 보고 '실물과 유사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실경산수화는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등 중국 화보의 화풍을 보고 그 스타일을 익혀, 기억 속 여행지의 느낌을 재구성하는 것이었으며 바로 이 재구성의 과정에서 한·중·일 회화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틀어지게 됐다. 가령 17세기 제작된 명말청초 화가 홍인(弘仁)이 중국 황산의 시신봉(始信峯)을 묘사한 판화(왼쪽 사진)와 조선후기인 18세기 정수영(鄭遂榮)의 수묵담채화 '한임강명승도(漢臨江名勝圖·한강과 임진강 주변의 명승을 그린 두루마리 그림) 중 신륵사'(오른쪽)를 비교해 보자.


   정수영의 그림에는 지명이 적혀 있어 조선의 산천을 그린 것이 분명하지만, 바위산의 모습이 한 세기 전 중국 황산의 그림과 매우 닮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교수는 이처럼 17세기 중국에서 황산을 많이 그린 황산파가 한국과 일본에 영향을 미쳤음을 언급하는 한편, 사회적 토양의 차이로 갈라지는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2000년대 중후반에 발표한 논문들을 수록한 책에서 저자는 고대 고분벽화와 초상화, 산수화 등 동아시아 3국의 회화사를 고립이 아닌 교류의 역사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정리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소재 등의 측면에서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중국과 달리, 사신도(四神圖·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동서남북을 지키는 신을 그린 그림)를 선호하고 비중이 왜 높았는지에 대한 설명 등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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