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가 이인문(李寅文) / 이상적인 세계를 형상화
강산무진도 (江山無盡圖)-1
강산무진도 (江山無盡圖)-2
강산무진도 (江山無盡圖)-3
강산무진도 (江山無盡圖)-4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이인문의 대표작으로 8.6m나 되는 장권(長卷)으로 조선 후기 최대의 거작이라 하겠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과 그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인간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잘 어우러지게 묘사하고 있다. 구도의 전개나 기법의 다양함은 감상자들의 시선을 끝없이 즐겁게 한다.
기암절벽의 묘사에서는 김홍도의 영향이, 그리고 산의 표현에서는 정선의 화풍이 다소 였보이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이인문 자신의 독창적인 구성과 필법을 드러내고 있다. 명암이 엇갈리고 몸이 뒤틀린 소나무의 표현에서 그만의 특색을 느낄 수 있다.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98*5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하경산수도>는 그의 산수화 중 드물게 보는 대담한 대부벽준법(大斧劈준法)으로 화면을 압도하듯 호탕한 솜씨를 보여주는 남종화풍의 가작(佳作)이다.
이 하경산수도는 장생을 누렸던 이인문이 72세 때의 작품으로 그가 살아온 생애를 대변하듯 계곡사이의 홀로선 노송은 마치 불의와 타협치 않은 기개를 보이며 우측의 높게 솟은 바위는 육중한 기교로써 계속 뻗어나는 조선을 염원한 듯하며, 정자의 평화롭게 담소를 나누는 두 인물의 등장과 한가로이 동자를 앞세워 정자로 찾아드는 노인의 모습 또한 편안함을 보이고, 또한 간결한 표현으로 계곡 사이의 물이 힘차고 끊임없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며 고송유수관도인의 산수화중 드물게 보이는 대담한 기법으로써 화면을 압도하는 듯한 호탕한 솜씨를 보여주는 가작(佳作)이다. 암봉 너머로 원산이 담채로 그려졌고, 그 앞은 한 그루의 나목(裸木)이 가로막으면서 공간의 깊이를 더해준다
산수도첩 (山水圖帖), 종이. 수묵담채 各 27.6×31.9cm
산수도첩 (山水圖帖)
이 작품은 그림 11폭, 글씨 6폭으로 구성된 산수화첩에 들어 있는 것으로, 경물의 구성과 인물 표현, 수지법(樹枝法) 등이 전형적인 남종화풍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준법(皴法)은 진한 먹으로 그은 부벽준(斧劈皴)을 쓰기도 하고, 갈필의 피마준(披麻皴)을 쓰기도 하는 등 작품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세부 묘사에도 소홀함이 없고, 완숙한 필치와 적절한 담채를 사용하여, 화면 전체에 이인문 특유의 맑고 담백한 아취가 감돌고 있다.
준법(皴法)이란
동양화에서 산애(山崖)·암석의 굴곡 등의 주름을 그리는 화법. 산이나 흙더미 등의 입체감·양감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동양적 음영법(陰影法)이다. 중국에서는 진(秦)·한(漢)시대의 산악도(山岳圖)에서 그 원시적 형태를 볼 수 있으나 거의가 비사실적·관념적이다. 그 후 산수화의 발전과 함께 각종 준법이 나타나 형식화되어 특정한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피마준(披麻皴)은 삼[麻]의 껍질을 벗긴 것 같은 주름이라는 뜻으로 동원(董源)이 시작하였으며, 주로 남종화(南宗畵)에서 사용된 선적(線的)인 주름이다. 이에 비하여 부벽준(斧劈皴)은 도끼로 쪼갠 면과 같은 주름으로 면적(面的)인 성격이 강하며, 북종화(北宗畵)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준 皴 : 주름 준]
수옥정도, 견본담채, 77.3x45.2cm,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단발령 망금강도(斷髮嶺望金剛圖)
단발령 망금강도(斷髮嶺望金剛圖)
〈단발령 망금강도〉는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단발령은 금강산 남쪽에서 금강산을 여행할 때 가장 먼저, 가장 넓게 금강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고개이다. 머리를 자른다는 뜻의 단발령이라는 이름도 '이곳에 오르는 자마다 대자연에 압도되어 머리를 깎고 중이 되고자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는 그림은 여러 폭 전하지만, 이인문의 이 그림만큼 감동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드물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마치 구름 위에 둥실 떠 있는 듯, 혹은 보석함을 열어 놓은 듯 안개 속에 아물거린다. 단발령은 진한 먹으로 세밀하게 그려졌다.
금강산은 정선의 〈금강전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암산과 토산이 대조를 이루고 있고, 토산은 부드러운 미점으로 처리되었다. 고개 위에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는 이는 아마도 이 그림을 그린 이인문이리라. 신선한 구도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수로한거도(樹老閑居圖), 액자 종이에 담채. 가로 33.0㎝. 세로 26.5㎝
수로한거도(樹老閑居圖)
이 산수도는 수려한 경관을 전면구도로 하여 근경에는 수림속에 한가한 기와집에서 노인들이 오수와 독서를 즐기는 모습을 그렸고 원경은 산과 폭포등을 표현하였다. 좌측 상단에 '有春'이라는 낙관이 있다.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종이에 수묵 담채, 24.3*33.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이 그림에는 다섯 그루 노송(老松)이 적당한 간격으로 얽혀 배치되었고 그 아래에 편편한 땅 위에는 세 선비가 편한 자세로 한담하고 있다. 그 왼쪽에는 바위에 부딪치며 흘러내리는 폭넓은 냇물이 시원하게 퍼져 나가며 양편 암벽 사이로 탑과 건물은 안개 속에 희미하게 그려져 거리감을 잘 나타낸다.
필치의 대부분이 감각적 갈필(渴筆)로 세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게 솔잎의 배경과 바위 군데군데에 투명한 연 푸른색이 더해졌다.
도봉원장(道奉苑莊), 화첩 종이에 담채, 26.5*33cm, 한국 개인 소장
도봉원장(道奉苑莊)
이 작품은 원산의 표현으로 보아 만장봉(萬丈峯)과 삼각산이 비껴 보이는 도봉산 계곡 어디에 있는 원장(苑莊) 아니면 서원(書院)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왼쪽 산등성이에 있는 성문은 이런 현장감을 강조하는 일종의 에피소드 처리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 역시 이인문의 티 없이 맑은 설채(設彩)가 돋보이는 명품으로 원장의 한가로운 정경과 초가 마을 앞 소 모는 농부의 모습이 그 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왼쪽 시냇가로 구부러진 선묘(線描)들은 냇가의 버들을 표현한 것인데, 이런 묘사법은 이인문이 원경(遠景)을 그릴 때 즐겨 사용했던 것이다.
이인문(李寅文, 1745∼1824 이후)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로서,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문욱(文郁), 호는 고송류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또는 유춘(有春)이다.
도화서 화원으로서 첨절제사(僉節制使)라는 벼슬을 지냈다. 김홍도(金弘道)와 동갑으로 함께 도화서에 있으면서 친하게 지냈고, 당시 문인 화가였던 강세황, 신위 등과도 가까이 지냈다. 산수, 영모(翎毛), 포도, 도석인물화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당시 크게 유행하였던 진경산수나 풍속화보다는 전통적인 소재를 즐겨 그렸다.
특히 소나무를 많이 그려 이 방면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길이가 8m 56cm에 달하는 거작으로 그의 회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 외에도〈단발령 망금강도(斷髮嶺望金剛圖)〉<강촌청우도(江村晴雨圖)>를 비롯한 많은 산수화가 전한다. 독창적인 면에서는 김홍도만 못하다는 평도 받고 있으나 기량이나 격조면에서는 그와 쌍벽을 이루었던 화가로 조선 후기의 회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