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댕의 정물화 , 실내화

2016. 3. 12. 01:21美學 이야기



       샤르댕의 정물화 -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Chardin, Jean-Baptiste-Simeon]1699 ~1779 - 1| ‥‥‥‥미술관이야기

피카소 | 조회 186 |추천 0 | 2010.01.23. 18:23


 

 




 




 





 




 




 




 




 




 




 




 




 




 




 


 

친밀하고 사실적인 표현과 조용한 분위기, 밝은 채색을 특징으로 하는 정물화와 실내풍경화로 유명하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물들을 주제로 정물화(예를 들면 〈찬장 Le Buffet〉, 1728)를 그렸으며, 풍속화의 주제로 평범한 일상사를 선택했다(예를 들면 〈편지를 봉하고 있는 부인 Dame cachetant une lettre〉, 1733). 그는 또한 몇 점의 뛰어난 초상화도 그렸는데, 특히 말년의 파스텔화는 매우 훌륭하다. 1728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샤르댕은 파리에서 태어나 실제로 그가 태어난 지구인 생제르멩데프레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미술가인 피에르 자크 카즈와 노엘 니콜라 쿠아펠 밑에서 잠시 일했지만, 그가 받은 미술 교육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724년 그는 독립 화가로서 '생 뤽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러나 1728년 궁정화가인 니콜라 드 라르질리에르(1656~1746)의 도움으로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그 아카데미에 〈가오리 La Raie〉와 〈찬장〉을 출품했는데, 이 두 작품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샤르댕은 아직 기반을 잡지는 못했지만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731년 마르게리트 생타르와 혼인했다. 2년 뒤 최초의 인물화인〈편지를 봉하고 있는 부인〉을 발표했으며, 그때부터 샤르댕은 정물화나 〈식사 전의 기도 Le Bénédicité〉와 같은 가정생활을 다룬 실내화와 〈젊은 화가 Le Jeune dessinateur〉·〈팽이를 들고 있는 아이 L'Enfant au toton〉(루브르 박물관)와 같이 일이나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 남녀를 다룬 반인물화를 번갈아 그렸다. 그는 같은 주제를 자주 되풀이해서 그렸으며, 같은 유형의 작품들을 여러 점 남겼다. 1735년 그의 아내가 죽은 뒤 작성된 재산목록은 그들이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무렵에는 이미 샤르댕이 화가로서 유명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40년 그는 루이 15세를 알현하고 그에게 〈일하는 어머니 La Mère laborieuse〉·〈식사 전의 기도〉를 바쳤는데, 이 두 작품은 현재 모두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4년 뒤 그는 마르게리트 푸제와 재혼했으며 그로부터 30년 뒤에 그녀를 모델로 하여 지금 루브르 박물관의 소묘 전시관에 걸려 있는 파스텔화를 그려 그녀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이무렵에 샤르댕의 명성은 절정에 이르러 있었는데, 루이 15세는 현재 뉴욕의 프릭 컬렉션에 들어 있는 그림일 것으로 생각되는 〈새오르간 LaSerinette〉을 받고 1,500리브르를 지불했다. 샤르댕은 아카데미의 전통적인 경로를 따라 계속 꾸준히 승진했다. 아카데미의 동료들은 살롱전(아카데미의 공식 전람회)에서 그림을 전시하는 일을 처음에는(1755) 비공식으로, 뒤에는(1761) 공식으로 그에게 맡겼는데, 살롱전은 1737년 이래로 2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려 왔으며 샤르댕도 성실하게 참가해왔다. 그가 백과전서파의 한 사람이자 철학자인 드니 디드로와 만난 것은 바로 공직에 있을 때였는데, 디드로는 그가 그토록 감탄한 '위대한 마술사' 샤르댕에게 기꺼이 최대의 찬사를 보내는 미술 비평을 쓰기도 했다.
 
샤르댕의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사람인 판화가 샤를 니콜라 코슈앵은, 뒤에 샤르댕이 회원으로 있었던 '루앙 아카데미'에 그를 찬양하는 글을 보낸 엘레 드 쿠론에게 샤르댕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낸 편지에서, 샤르댕의 천재성과 18세기의 유럽 회화에서 샤르댕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예증하는 일화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어느날 어떤 미술가가 색을 순화하여 완전하게 만들기 위하여 자신이 어떤 방법을 쓰는지 장황하게 떠벌리고 있었죠, 샤르댕 씨는 그토록 무익한 잡담에 참지 못하고 그 미술가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그런데, 누가 당신에게 색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했소?' 깜짝 놀란 그 미술가는 물었죠. '그러면 무엇으로 그린단 말입니까?' 그러자 샤르댕은 '물론 색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림이란 느낌으로 그리는 것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당대의 많은 화가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가볍고 피상적인 화려함보다는 17세기의 프랑스 대가인 루이 르 냉의 꾸밈 없는 장면을 생동감 넘치게 하는 조용한 명상의 느낌을 더 자아낸다. 그가 정성들여 그린 정물화는 식욕을 돋우는 것보다는 사물 자체 및 빛의 처리에 더 관심을 모은다. 풍속화에서 그는 예전의 화가들처럼 농민들을 모델로 하지 않고 파리의 소시민을 그렸다. 그들을 묘사한 그의 화풍은 훨씬 부드러우며, 그의 모델들은 르 냉이 그린 엄격한 농민들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샤르댕의 그림에 나오는 가정주부들은 수수하지만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사는 집에서도 그와 똑같은 청결함을 볼 수 있다. 가정생활을 다룬 이 소규모의 그림들이 갖고 있는 매력은 화면 곳곳에 스며 있는 일종의 친밀감과 다정한 느낌인데, 이러한 느낌과 구성은 얀 베르메르의 작품에서도 주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샤르댕은 초기와 중기에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말기에는 사생활과 활동이 모두 순탄하지 않았다. 그의 외아들 피에르 장은 1754년에 아카데미의 그랑프리(로마에 가서 미술을 공부할 수 있는 상)를 받았지만 1767년에 베네치아에서 자살했다. 게다가 아들이 자살할 무렵에는 대중의 기호도 바뀌었다. 아카데미의 새 회장이 되어 모든 실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장 바티스트 마리 피에르는 역사화를 다시 가장 고귀한 회화 장르로 만들기를 열망하여 샤르댕의 연금을 줄이고 아카데미에서 샤르댕이 맡고 있던 직무를 하나씩 회수함으로써 이 노장에게 굴욕을 주었다. 더욱이 샤르댕의 시력은 점점 나빠졌다. 그는 파스텔화를 시험삼아 그려보았다.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수단이 되었으며 눈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현재 대부분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그 파스텔화들은 20세기에 들어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샤르댕 자신의 시대에는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사실 그는 남은 생애를 사람들에게 거의 잊혀진 채로 살았으며 그의 작품은 냉대를 받았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에드몽 드 공쿠르와 쥘 드 공쿠르 형제 등의 몇몇 프랑스 비평가들과 수집가들(예를 들면 수집한 샤르댕의 작품들을 훗날 아미앵의 피카르디 박물관에 기증한 라발라르 형제)이 그를 다시 높이 평가했다. 특히 1869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된 라카즈 컬렉션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샤르댕은 18세기의 가장 뛰어난 정물화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과 컬렉션들은 대부분 그의 그림들을 탐내고 있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은 18세기 프랑스 미술의 세련미와 매력, 우아함을 두루 갖춘 양식을 개발한 미술가였지만 기법과 주제에서는 당대의 화가들과 달랐었는데, 그의 기법은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에 영향을 받지 않은 독학 예술가의 그것이었으며 그의 주제는 주로 정물과 가정생활을 다룬 것이었다. 그는 일상 세계를 발견하여 지칠 줄 모르고 무척 단순하게 그것을 묘사했지만, 그 단순함에는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이 숨어 있었다. 겉보기에 그는 요란한 허식이나 일화, 불필요한 기술적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범한 현실에 생기를 불어넣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샤르댕은 진실한 표현을 통해 절제와 고요함을 특징으로 하는 건강하고 꾸밈 없는 시적 감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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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의 실내화 -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Chardin, Jean-Baptiste-Simeon]1699 ~1779 - 2|

 ‥‥‥‥미술관이야기 

                 

피카소 | 조회 72 |추천 0 | 2010.01.26. 17:37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1699~1779>은 가구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공부하지 않았다. 그는 에로틱한 누드화, 정원의 밀회, 귀족들의 침실 등 유혹적인 장면을 표현한 그림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던 18세기 프랑스 화단에 이단자였지만 그렇다고 프랑스 화단에서 소외되지도 않았다.

샤르뎅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작품이 인정을 받으면서 살롱과 아카데미에 중요한 인사가 된다. 샤르뎅의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도덕적인 교훈을 담고 있는 문구를 새기는 배경으로 사용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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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Jean-Baptiste-Simeon Chardin| [306] 화가와 미술작품

정암 | 조회 137 |추천 0 | 2008.05.26. 15:17


Jean-Baptiste-Simeon
Chardin

French Rococo artist

born 1699 - died 1779

 

 

 

[비누방울] Soap Bubbles

1733 - 1735
Oil on canvas
24 x 24 3/4 inches (61 x 63 cm)


 

 

[자수놓는 여자]The Embroiderer

1735 - 1736
Oil on panel
7 x 5 7/8 inches (18 x 15 cm)


 

 

[세탁하는 여인]The Laundress

c.1730 - 1740
Oil on canvas
14 7/8 x 16 7/8 inches (38 x 43 cm)


 

 

[차 마시는 숙녀]Lady Taking Tea

1735
Oil on canvas
31 3/8 x 39 3/4 inches (80 x 101 cm)


 

 

[부억에서 일하는 하녀]The Scullery Maid

1738
Oil on canvas
17 5/8 x 14 1/2 inches (45 x 37 cm)

 

 

[지사부인]The Governess

1739
Oil on canvas
18 1/2 x 14 1/2 inches (47 x 37 cm)


 

 

[근면한 어머니]The Diligent Mother

1740
Oil on canvas
19 1/4 x 15 1/4 inches (49 x 39 cm)


 

 

The Dressing Table

1741
Oil on canvas
19 1/4 x 15 1/4 inches (49 x 39 cm)


 

 

[집사의 테이블]The Butler's Table

1756
Oil on canvas
14 7/8 x 18 inches (38 x 46 cm)

 

 

[채소껍질을 벗기는 여자] Girl Peeling Vegetables

Oil on canvas
18 x 14 1/2 inches (46 x 37 cm)


 

 

[배드민턴 라켓을 든 여자]Girl with a featherball racket
 
 


 

[파이프와 술항아리]Pipes And Drinking Pitcher

1737
Oil on canvas

 

  

 

[은컵]The Silver Cup
 
 

 

 

[선생님]The Teacher

 

 

 

 

[카나리아]The Canary

1750 - 1751
Oil on canvas
19 5/8 x 16 7/8 inches (50 x 43 cm)


 

 

[도안사]The Draughtsman

1737
Oil on wood
31 7/8 x 25 1/8 inches (81 x 64 cm)


 

 

[카드넣는 집]The House of Cards

1736 - 1737
Oil on canvas
23 1/2 x 28 1/4 inches (60 x 72 cm)


 

 

[카드넣는 집]The House of Cards

1736 - 1737
Oil on wood
32 1/4 x 25 7/8 inches (82 x 66 cm)


 

 

[식전 기도]The Prayer before Meal

1744
Oil on canvas
19 5/8 x 15 1/8 inches (50 x 38.5 cm)


 

 

[정물]Still-Life
 

 

 

[바이올린을 든 젊은이]Young Man with a Violin (Charles Godefroy)

1734 - 1735
Oil on canvas
26 3/8 x 29 1/8 inches (67 x 74 cm)

 

 

[당구게임]The Game of Billiards

c.1723
Oil on canvas
21 5/8 x 32 3/8 inches (55 x 82.5 cm)

 

SYMPHONY NO. 8 "UNFINISHED" 미완성 교향곡
제1악장 Allegro moderato b단조 3/4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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