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일상생활에는 절도가 있고, ...

2016. 3. 15. 22:00다산의 향기



       [35]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일상생활에는 절도가 있고, 관대(冠帶)는 단정히 하며, 백성들에게 임할 때에는 장중(莊重)하게 하는 것이 옛사람의 도(道)이다. 목민심서 / 일표이서

2015.02.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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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촛불을 밝히고 세수하며,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띠를 띠고 묵묵히 꿇어앉아서 신기(神氣)를 함양(涵養)한다. 얼마쯤 있다가 생각을 정리하여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놓고 먼저 선후의 차례를 결정한다. 제일 먼저 무슨 문서를 처리하며, 다음에는 무슨 명령을 내릴 것인가를 다 마음속에 분명히 정해야 한다. 그리고서 제일 먼저 할 일에 대하여 그 선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며, 다음 할 일에 대하여 선처할 법을 생각하되, 힘써 사욕(私慾)을 끊어 버리고 한결같이 천리(天理)를 따르도록 한다.
먼동이 트면 촛불을 끄고 그대로 꿇어앉아 있다가, 날이 밝아 시노(侍奴)가 시간이 되었다고 아뢰면 - 부임(赴任) 상관조(上官條)에 보인다. - 창을 열고 이속(吏屬)들의 참알(參謁)을 받는다.
흑포립(黑布笠)이란 본디 길에서 볕을 가리는 물건이므로 평상시 착용하는 것이 아니고, 더우기 공복(公服)도 아니니, 백성을 다스리는 이는 항상 오사모(烏紗帽)청창의(靑敞衣)를 착용해야 한다. 요즈음 경관(京官)으로서 입직(入直)하는 이는 다 그렇게 하는데, 외관(外官)만이 어찌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대좌기(大坐起) 같은 경우에는 단령포(團領袍)정대(鞓帶), 흑화(黑靴)를 착용하고 의자에 앉아서 참알을 받아야 한다.
군사(軍事)로 대좌기가 있을 경우에는 융복(戎服) - 호수립(虎鬚笠)사철릭(紗帖裏)차림 - 을 갖추고 칼을 차야 한다.
간혹 소탈함을 즐기고 구속됨을 싫어하는 자를 보면 종건(騣巾)만 쓰고 협수의(夾袖衣)를 걸치며, 더러는 망건(網巾)도 쓰지 않고 버선도 신지 않은 채 아전과 백성들에게 임하는데, 이는 크게 옳지 못한 일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에,

“빈틈없는 위의(威儀)를 갖춘 이는 덕이 엄정함을 이름이네.”

하였고 또,

“위의를 공경하고 삼감이여! 백성들의 본보기이네.”

하였으니, 이는 옛사람의 도이다. 위의가 없으면 백성들이 본받을 바가 없으니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저녁때 관아(官衙)를 물러 나오는 일은 가을과 겨울에는 조금 늦게 하고 봄과 여름에는 조금 이르게 해야 한다.- 부임(赴任) 상관조(上官條)에 보인다. -
호태초(胡太初)가 말하였다.

“하루의 일은 새벽에 달렸으니, 오늘 무슨 일은 결재하고 무슨 공문은 통보하며, 무슨 부세(賦稅)ㆍ물종(物種)은 처결해야 하고, 갇혀있는 아무개는 석방해야 하는 등의 일을 때때로 살펴서 신속히 행해야 한다.”

여공저(呂公著)는 고을살이할 적에 대체로 오고(五鼓)가 되면 일어나서 촛불을 밝히고 공문서를 살피며, 여명(黎明)이 되면 관아에 나아가 백성들의 송사를 처결하고, 물러나 편좌(便坐)하여 한가롭게 있을 때에도 마치 재계(齋戒)하듯 하였으며, 손이나 요속(僚屬)들이 때에 구애됨이 없이 찾아왔다. 그러므로 군에는 밀린 일이 없고 아랫사람의 사정이 위로 통하였다. 무릇 여섯 군을 다스렸는데 항상 이같이 하였다.


   당(唐)의 배요경(裵耀卿)이 정사에 부지런하였다. 관아 앞에 큰 오동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새벽이 되면 새떼가 날아들어 모이므로 이로써 관아에 나아가는 시간을 정하여 보효조(報曉鳥)라 불렀다. 그때 사람들이 이를 아름답게 여겼다.
한지(韓祉)가 감사로 있을 적에는, 동트기 전에 세수하고 관(冠) 쓰고 도포 입고 나아가 앉되, 앉는 자리 곁에는 베개나 안석(案席)을 두지 않으며, 몸을 바로 세우고 꿇어앉아 손을 꽂고 종일토록 몸을 틀거나 흔드는 일이 없었으며, 창가 난간에 기대는 적이 없었다. 그와 함께 3년이나 지낸 자도 그가 피곤해서 하품하거나 기지개 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언제나 뒤뜰을 거닐되, 그 꺾어 도는 곳이 곡척(曲尺)처럼 그어놓은 듯하여 시종 한결같았다.
송 태조(宋太祖)가 어느 현령(縣令)에게 말하였다.

“부디 비단이불 속에서 퇴청하지 말라.”

문 노공(文潞公)이 유차현(楡次縣)에 있을 때, 관아의 북〔鼓〕에 글을 지어 쓰기를,

이제 행여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자 있으면 / 如今幸有黃紬被
머리 끌어내어 퇴청북 소리 듣게 하리라 / 拏出頭來聽放衙

하였다 - 소식(蘇軾)의 시에 “그대가 이불 끌어 안고 편히 누워서 퇴청함을 보노라.〔看君擁黃紬 高臥放晩衙〕” 하였다. -
범 문정공(范文正公)이,

“내가 매양 잠자리에 들면 곧 하루 봉양받은 비용과 행한 일을 헤아려서 과연 서로 맞먹으면 잠이 깊이 들지만, 그렇지 않으면 밤새도록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에 기어코 맞먹을 일을 하고야 만다.”

하였다.


《시경(詩經)》 〈위풍(魏風) 벌단(伐檀)〉에,

“저 군자(君子)여, 일하지 않고 먹는 일이 없도다.”

하였으니,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조변(趙抃)이 성도(成都)를 맡아 다스릴 때, 밤에는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향을 피우며 낮에 한 일을 하늘에 고하였으며, 고할 수 없는 일은 감히 하지 않았다.
이는 군자가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공부의 진정한 길이다.



[주B-001]칙궁(飭躬) : 자기의 몸가짐을 단속하는 일이다.
[주D-001]시노(侍奴) : 군아(郡衙)에서 부리는 사내종으로 급창(及唱)이라고도 한다.
[주D-002]흑포립(黑布笠) : 검은 색깔의 베로 싸개를 한 것이다.
[주D-003]오사모(烏紗帽) : 사(紗)로 만든 흑색의 모자. 단령(團領)을 입을 때 쓴다. 사모(紗帽)라고도 한다.
[주D-004]청창의(靑敞衣) : 푸른 색깔의 창의(敞衣)로 창의는 벼슬아치가 평시에 입는 웃옷이다. 소매가 넓고 뒷솔기가 갈라졌다. 창의(氅衣)라고도 한다.
[주D-005]경관(京官) : 서울 안 각 관아의 관원 및 개성(開城)ㆍ강화(江華)ㆍ수원(水原)ㆍ광주(廣州) 등의 유수(留守)를 이르는 말이다. 개성ㆍ강화ㆍ수원ㆍ광주는 지방이지만 경관에 속한다.
[주D-006]외관(外官) : 지방의 관직이나 또는 관원. 경관(京官)과 대칭(對稱)된다.
[주D-007]대좌기(大坐起) : 좌기는 관아의 장관(長官)이 사진(仕進)하여 자기 자리인 상석(上席)에 좌정하여 부하를 대하고 사무를 집행하는 것이다. 의식 또는 큰 사건이 있을 때는 대좌기(大坐起)라 하여 위의(威儀)를 더 갖춘다.
[주D-008]단령포(團領袍) : 옷깃을 둥글게 만든 관원의 공복(公服)을 말한다. 색깔에 따라 흑단령(黑團領)ㆍ홍단령(紅團領)ㆍ백단령(白團領)이 있다. ‘덜렁’이라고도 한다.
[주D-009]정대(鞓帶) : 가죽으로 만들어 공복(公服) 위에 두르는 띠.
[주D-010]흑화(黑靴) : 관리들이 공복 차림에 신는 검은 빛깔의 갖신이다. 흑피화(黑皮靴)라고도 한다.
[주D-011]융복(戎服) : 철릭(帖裏)과 주립(朱笠)으로 된 옛 군복의 한 가지.
[주D-012]호수립(虎鬚笠) : 범의 수염을 꽂아 장식한 주립(朱笠)의 한 가지. 주립(朱笠)은 융복(戎服)을 입을 때 쓰는 붉은 칠을 한 갓.
[주D-013]사철릭(紗帖裏) : 사(紗)로 만든 철릭. 철릭은 무관의 공복의 한 가지. 직령(直領)으로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큰 소매가 달렸다. 당상관(堂上官)은 남색, 당하관은 홍색이다.
[주D-014]종건(騣巾) : 말 꼬리털로 만든 간편한 건(巾)이다.
[주D-015]협수의(夾袖衣) : 군복(軍服)의 한 가지.
[주D-016]망건(網巾) : 상투 있는 사람이 머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말총 등으로 그물처럼 만들어 머리에 두르는 건.
[주D-017]호태초(胡太初) : 송(宋)나라 이종(理宗) 때 사람이다. 저서에는 《주렴서론(晝簾緖論)》이 있다.
[주D-018]여공저(呂公著) : 송(宋)나라 인종(仁宗)ㆍ영종(英宗)ㆍ신종(神宗)ㆍ철종(哲宗) 때 사람으로 자는 회숙(晦叔),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벼슬은 채주(蔡州)ㆍ개봉(開封)ㆍ영주(潁州) 등의 지주(知州)를 거쳐 사공(司空)에 이르렀다. 사마광(司馬光)과 함께 선정(善政)을 하여 명재상으로 불린다. 《宋史 卷336 呂公著列傳》 《宋元學案 卷19 范呂諸儒學案》
[주D-019]오고(五鼓) : 오경(五更)과 같다. 오고는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무야(戊夜)ㆍ오야(五夜)라고도 한다.
[주D-020]배요경(裵耀卿)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사람으로 자는 환지(煥之),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벼슬은 제주(濟州)ㆍ선주(宣州) 등의 자사(刺史)를 지냈는데 선정이 있었고,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에 이르렀다. 《唐書 卷127 裵耀卿列傳》 《舊唐書 卷98》
[주D-021]한지(韓祉) : 1675~? 조선 문신. 자는 석보(錫甫), 호는 월악(月嶽),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벼슬은 충청도ㆍ전라도 관찰사를 지냈는데 청백(淸白)하기로 유명하였다.
[주D-022]문 노공(文潞公)이 …… 하리라 : 문 노공은 송(宋)나라 신종(神宗)ㆍ철종(哲宗) 때의 재상 문언박(文彥博)이다. 그의 봉호(封號)가 노국공(潞國公)이다. 자는 관부(寬夫),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벼슬은 사공(司空)ㆍ태사(太師)에 이르렀다. 저서에는 《노공집(潞公集)》이 있다. 《宋史 卷313 文彥博列傳》 시는 《연감유함(淵鑑類函)》 현령(縣令) 조에는 “如今幸明黃綢被 拏出頭來早放衙”로 인용되고,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에는 “黃紬被裡曉眠熟 放出頭來道放衙”로 인용되고, 《권유록(倦遊錄)》에는 “如今幸有黃紬被 努頭出來聽放衙”로 되어 있어 각기 다르다. 지금 문언박의 문집을 볼 수 없으므로 우선 《연감유함》의 것에 의하여 원문의 노(努) 자를 나(拏) 자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23]소식(蘇軾) : 송(宋)나라 신종(神宗)ㆍ철종(哲宗) 때의 문신.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ㆍ철관도인(鐵冠道人),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벼슬은 한림학사 겸 시독(翰林學士兼侍讀)을 지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시는 송대(宋代)의 제일이라 일컬어졌으며 서화(書畫)에도 뛰어났다. 저서에는 《역서전(易書傳)》ㆍ《논어설(論語說)》ㆍ《구지필기(仇池筆記)》ㆍ《동파전집(東坡全集)》 등이 있다. 《宋史 卷338 蘇軾列傳》
[주D-024]범 문정공(范文正公) : 송(宋)나라 인종(仁宗) 때의 명신. 이름은 중엄(仲淹), 자는 희문(希文), 시호가 문정(文正)이다. 벼슬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 저서에는 《단양집(丹陽集)》이 있다. 《宋史 卷314 范仲淹列傳》 《宋元學案 卷3 高平學案 范仲淹》
[주D-025]조변(趙抃) : 송(宋)나라 인종(仁宗)ㆍ신종(神宗) 때 사람으로 자는 열도(悅道), 호는 지비자(知非子)ㆍ고재거사(高齋居士), 시호는 청헌(淸獻)이다.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있을 적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탄핵하여 철면어사(鐵面御史)라 불리었다. 벼슬은 성도지부(成都知府) 등을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宋史 卷316 趙抃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