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면 순종하지 않는 백성이 없다. ...

2016. 3. 17. 02:20다산의 향기



      

[38]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면 순종하지 않는 백성이 없다. 그러므로 공자(孔子)는 “윗사람이 되어 너그럽지 아니하고 예를 차리되 공경하지 않으면 그에게 무엇을 보랴.” 하였고, 또 “너그러우면 뭇사람을 얻는다.” 하였다. 목민심서 / 일표이서

2015.02.04. 16:55

           http://sambolove.blog.me/220262751235

번역하기 전용뷰어 보기

 



사람들이 흔히,

“벼슬살이하는 데는 위맹(威猛)을 숭상함만 같지 못하다.”

하는데 이는 속된 말이다. 먼저 ‘맹(猛)’ 한 글자를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 곧 그 심중에 간직한 것이 이미 스스로 좋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일할 수 있겠는가. 죄가 있으면 죄를 주는 것이니, 내가 형(刑)을 쓰는 것은 그 죄에 합당하게 할 뿐인데 어찌 꼭 위맹을 숭상할 것인가.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네 위의(威儀)를 공경히 하여 화평하고 착하지〔柔嘉〕 않음이 없게 하라.”

하였으니, 유가(柔嘉) 두 자의 기상이 가장 좋은 것이다. 내가 전에 조정에 있을 때에 매양 공경 대신들을 보면 그들의 말과 얼굴빛이 대체로 화평하고 착한 듯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옛사람들만은 못하더라도 화평하고 착한 자는 반드시 전정이 원대하고 인심을 얻되, 불평하고 사나운 자는 대부분 중도에서 넘어졌다. 나는 이 때문에 화평하고 착한 것이 좋은 기상임을 안다. 《시경》 〈대아(大雅) 증민(丞民)〉에,

“화평하고 착함이 본보기가 되는지라 좋은 태도와 좋은 얼굴빛이다.”

하였는데 중산보(仲山甫)의 덕이다. 그러나 《시경》 〈대아 증민〉에,

“중산보는 부드러워도 삼키지 않고 강하여도 뱉지 않아, 불쌍한 홀아비와 과부도 업신여기지 않고 강포(强暴)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도다.”

하였으니, 중산보가 어찌 유약한 자이겠는가. 오직 평일의 말씨나 기색이 화평하고 착하며 온화하고 공손하고서야 강하여도 뱉지 않고 강포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이 이치는 매우 분명한 것이다.
양귀산(楊龜山)이,

“지금 사람들은 오직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정사를 너그럽게 하면 사람을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권병(權柄)이 손에 있다 하여 자기 성기(性氣)대로 할 처지가 아닌 줄은 모르고 있다. 일찍이 백성들이 관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았는가? 관리들이 흔히 백성을 침학하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하였다.
장영(張詠)이 익주(益州)의 지사(知事)로 재임하여 백성들이 자기를 신임하는 줄을 알고 엄격하던 것을 너그러움으로 바꾸었으나, 한번 명령이 내려지면 백성들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장영이 이전(李畋)에게 묻기를,

“백성들이 나를 신임하는가?”

하니, 이전이,

시랑(侍郞)의 위엄과 은혜가 백성들에게 미치니 백성들이 모두 신복합니다.”

하였다. 장영이,

“전에 초임 때는 그렇게 되지 않더니 이제 재임하고 보니 다소 나아졌다. 오직 이 하나의 신(信)을 5년 만에야 성취한 셈이다.”

하였다.
범 충선공(范忠宣公)이 제주 지주(齊州知州)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공(公)을 격려하기를,

“공은 정사를 본래 너그러움으로 하지만, 제주 백성들은 흉악하고 사나워서 노략질하고 겁탈하기를 좋아하니 마땅히 엄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하니, 공은,

“너그러움은 내 성품에서 나오는 것인데, 만일 억지로 사납게 다스리면 오래 갈 수 없을 것이요, 사나움으로 흉한 백성들을 다스리되 오래 지속하지 못하면 백성들의 놀림을 스스로 받는 길이 될 것이다.”

하였다.



[주B-001]칙궁(飭躬) : 자기의 몸가짐을 단속하는 일이다.
[주C-001]윗사람이 …… 보랴 : 이 말은 《논어(論語)》 〈팔일(八佾)〉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C-002]너그러우면 뭇사람을 얻는다 : 이 말은 《논어(論語)》 〈양화(陽貨)〉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D-001]중산보(仲山甫)의 덕이다 : 중산보는 주 선왕(周宣王) 때의 경사(卿士)로 선왕을 보좌하여 중흥의 정치를 이룩하였다. 《시경(詩經)》에는 “仲山甫之德 柔嘉維則 令儀令色”으로 되어 있는데, 정약용은 “柔嘉維則 令儀令色”만 《시경》의 인용으로 하고 “仲山甫之德” 5자는 ‘也’ 1자를 더 보태고 순서를 바꾸어 자기 말로 서술하였다.
[주D-002]장영(張詠) : 송(宋)나라 태종(太宗)ㆍ진종(眞宗) 때 사람으로 자는 복지(復之), 호는 괴애(乖崖),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익주(益州)ㆍ항주(杭州) 등의 지주(知州), 형부(刑部)ㆍ이부(吏部) 등의 시랑(侍郞), 공부(工部)ㆍ예부(禮部)의 상서(尙書) 등을 지냈는데, 청렴 강직하였다. 저서에는 《괴애집(乖崖集)》 이 있다. 《宋史 卷293 張詠列傳》
[주D-003]이전(李畋) : 송(宋)나라 진종(眞宗) 때 사람이다. 학행(學行)으로 향리에서 일컬어졌다. 촉(蜀) 지방의 선비들은 벼슬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주(知州) 장영(張詠)의 권유로 과거에 나아갔다. 벼슬은 영주지주(榮州知州)에 이르렀다. 호는 곡자(谷子)이고, 저서에는 《가요잡문(歌謠雜文)》ㆍ《장영어록(張詠語錄)》 등이 있다.
[주D-004]시랑(侍郞) : 관명으로 중앙의 6부(部)의 장관인 상서(尙書) 다음의 벼슬. 여기서는 장영(張詠)이 시랑(侍郞)으로 있다가 지주(知州)로 나왔으므로 이른 것이다.
[주D-005]범 충선공(范忠宣公) : 송(宋)나라 인종(仁宗)ㆍ신종(神宗)ㆍ철종(哲宗)ㆍ고종(高宗) 때 사람으로 이름은 순인(純仁), 자는 요부(堯夫), 시호가 충선(忠宣)이다. 벼슬은 제주(齊州) 등의 지주(知州)를 거쳐 이부 상서(吏部尙書)ㆍ관문전 태학사(觀文殿太學士)를 지냈다. 저서에 문집(文集) 및 주의(奏議)가 있다. 《宋史 卷314 范純仁列傳》 《宋元學案 卷3 高平學案 范純仁》





http://sambolove.blog.me/22026275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