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가치부전(假癡不癲)

2016. 3. 19. 00:32잡주머니



     

[고전 속 정치이야기] 가치부전(假癡不癲)
뉴스천지  |  newscj@newscj.com
2014.11.20 18:08:17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제(齊) 위왕(威王)은 9년 동안 신하들에게 정무를 맡기고 향락에 빠졌다. 다른 제후들이 제를 넘보자 망하기 일보직전에 이르렀다. 위왕은 묵대부(墨大夫)를 불렀다. 
 
“대부에게 즉묵(卽墨)을 맡기자 비난이 빗발쳤소. 사람을 보냈더니 농토는 잘 개간되었고, 먹을 것이 풍족했소. 밀린 일이 없어서 동방이 태평무사하다고 보고했소. 그대가 명성을 추종하지 않았으며,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아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오.” 

그는 묵대부에게 1만호의 봉지를 내렸다. 얼마 후 아읍(阿邑)의 대부를 불렀다.

   “그대가 아읍을 다스린 이후 매일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소. 살펴보았더니 개간된 농토가 거의 없었고, 백성들은 가난했소. 전에 조가 견읍(甄邑)을 침략했을 때는 구원하지도 않았소. 위(衛)가 설릉(薛陵)을 침공했을 때는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소. 그대가 내 주변 사람들을 구워삶아서 듣기 좋은 소리만 하게 했기 때문이라 생각하오.” 

그날로 위왕은 아대부와 그를 칭찬했던 근신들도 함께 솥에 넣고 삶아서 죽였다. 그 후 위왕은 군대를 이끌고 조와 위를 격파했다. 위혜왕은 관성(觀城)을 바치고 제와 우호조약을 체결했으며, 조군도 점령했던 장성을 반환하고 후퇴했다. 이후로 제나라 사람들은 쓸데없이 남을 비방하거나 칭찬하지 않았다. 제의 정치가 안정되자 누구도 함부로 넘보지 못했다. 


   어떤 일을 꾸밀 때는 일부러 애매모호한 행동을 취하거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함부로 경거망동하다가는 상대가 자신의 속내를 알아차려 미리 대비하게 된다. 물론 누구도 몰래 모든 준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겨울철의 천둥과 번개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전(田)씨는 강태공의 후예를 몰아내고 제를 차지했다. 이들은 황로술(黃老術)을 창시하여 법가사상의 토대를 마련했다. 도가는 ‘무위(無爲)’를, 법가는 엄격한 상벌을 강조했다. 위왕은 도가와 법가의 사상에 심취했을 것이다. 그는 9년 동안이나 일부러 정치에 관한 일이라면 듣지도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조용히 정국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심복을 통해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시했다.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겉으로는 무위를 속으로는 유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득실에 관한 판단이 서자 과감하게 실을 제거하고 득을 취했다.


   현대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국가지도자를 선발한다. 선발된 지도자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쫓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누구는 대통령의 임기가 5년밖에 되지 않아 장기적인 국정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대 로마는 국가지도자의 임기를 1년 또는 2년으로 정했었다. 지도자가 되기 전에 국가의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던 로마의 통치자들은 훌륭히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고대 로마가 지중해 연안은 물론 유럽 전역을 제패했던 것은 통치자의 임기가 길었기 때문은 아니다.  

최근에 선출된 몇 분의 대통령은 권좌에 올라서도 국정을 준비할 기간을 달라고 호소했다. 어떤 분은 아직도 기회를 달라고 떼를 쓴다. 위왕이 9년 동안이나 국정을 돌보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개혁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은 국왕의 임기가 보장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전국시대에는 중세의 절대군주처럼 군왕의 권력이 강하지 못했다. 무능한 국왕은 언제 피살되거나 권좌에서 쫓겨날지 몰랐다. 그가 9년 동안이나 국정을 방치하면서도 권좌에 있을 수가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교묘한 통치술로 개혁의 대상자들을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날카로운 촉수로 국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었으며, 묵대부와 같은 자신을 지지할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개혁이 국민을 선동하여 단시일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이다.
-->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