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원에서 연경까지[起圓明園至燕京] / 연행기 제3권

2016. 3. 20. 20:53차 이야기

3연행기(燕行紀)연행기 제3권원명원에서 연경까지[起圓明園至燕京] ○ 경술년(1790, 정조 14) 8월24일(임신)서호수(徐浩修)1976년


      

연행기 제3권원문  원문이미지  새창띄우기
확대 원래대로 축소
 원명원에서 연경까지[起圓明園至燕京] ○ 경술년(1790, 정조 14) 8월
24일(임신)

흐림. 남관에 머물렀다.
공부 상서(工部尙書) 김간(金簡)이 죽청지(竹淸紙)를 요구하기에 300장을 보내 주고, 또 야립(野笠) 1개와 왜경(倭鏡) 1개, 백주(白紬) 2필, 백면포(白綿布) 2필, 채화석(彩花席) 10장, 설화지(雪花紙) 5묶음, 청심원 30환, 부채 30자루를 함께 보내 주었다. 김간의 조선(祖先) 김덕운(金德雲)은 우리나라 의주 사람인데, 김덕운의 손자 김상명(金常明)이 청 나라에 들어가 상서(尙書)가 되었다. 김간은 곧 김상명(金常明)의 종손으로서 전후를 통하여 우리나라 일에 노고(勞苦)를 바친 것이 매우 많다. 그래서 더욱 유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간은 비단 2필과 춘주(春紬) 2필, 흡연(歙硯) 1개, 호필 2갑, 휘묵 1갑, 조선(曹扇) 1갑, 오색견전(五色絹箋) 1권, 용정차(龍井茶) 2갑으로 보답해 왔다.



ⓒ 한국고전번역원 ┃ 남만성 (역) ┃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