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선물로 보내온 물건은 비록 작은 것이라 ...

2016. 3. 23. 00:53다산의 향기



      [53]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선물로 보내온 물건은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은정(恩情)이 맺어졌으니 이미 사정(私情)이 행해진 것이다. 목민심서 / 일표이서

2015.02.0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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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鬲)의 수령 원의(袁毅)가 조신(朝臣)에게 뇌물을 바쳐 명예를 사려고 하였다. 일찍이 산도(山濤)에게 실 1백 근을 보냈는데 산도는 남다르게 하지 않고자 하여 받아서 들보 위에 얹어 놓았다. 얼마 후에 원의의 일이 탄로되자, 산도는 들보 위에서 그 실을 가져다가 아전에게 내어 주었다. 이미 몇 해가 되어 실이 먼지가 끼고 검고 누렇게 되었는데 봉인(封印)은 처음 그대로였다.


   양속(羊續)이 여강 태수(廬江太守)로 있을 적에 부승(府丞)이 물고기를 선물하자, 받아서 먹지 않고 그것을 걸어 놓았다. 뒤에 다시 또 보내오므로 양속이 전에 받은 물고기를 내어보이니 부승이 부끄럽게 여기고 그만두었다.


   웅 태간공(熊泰簡公)은 평생토록 청절(淸節)을 지켜 티끌만한 것도 받지 않았다. 그가 운남(雲南)의 순무(巡撫)로 있을 때, 만(蠻)을 평정하고 잔치하는 날에 금화채단(金花綵緞)을 받으므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의아스럽게 여겼다. 그 이듬해에 그가 서울로 돌아갈 때 유사(有司)를 불러 금화채단을 창고에 간수하게 하니, 사람들은 비로소 공이 자기 청백(淸白)으로 남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한 뜻을 알았다. 그렇지 않고 당일에 그가 받지 않았다면 그 속료(屬僚)들이 어느 누가 감히 받았겠는가. 이는 장괴애(張乖崖)가 시녀(侍女)를 받아들인 일과 퍽 비슷한 데가 있다.


   조극명(曹克明)호광행성(湖廣行省)에 있을 적에 한 주부(主簿)가 진사(辰砂) 1함(函)을 보내왔다. 미처 열어 보지도 않고 궤 속에 그대로 넣어 두었다가 얼마 후에 열어 보니 곧 사금(砂金) 3냥이 그 안에 섞여 있었다. 공이 탄식하기를,

“그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했단 말인가.”

하였으나, 이때 그 주부는 이미 죽고 없었으므로 그 아들을 불러 돌려 주었다.


   섭종행(葉宗行)이 전당(錢塘)의 수령으로 있을 적에 안찰사(按察使) 주신(周新)은 풍채가 근엄 중후하였는데 그를 더욱 중하게 여겼다. 하루는 섭종행이 외출한 틈에 몰래 그의 집에 가서 방 안을 둘러보니 아무 물건도 없고 오직 입택(笠澤)의 은어(銀魚) 말린 것 한 꾸러미가 있을 뿐이었다. 주신이 탄식하고 마른 은어를 조금 가지고 왔다. 그 이튿날 그를 불러 식사를 대접하며 은어를 먹게 하면서,

“이것은 그대 집 물건이오.”

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섭종행을 전당일엽청(錢塘一葉淸)이라 불렀다.


   북제(北齊) 소경(蘇瓊)이 남청하태수(南淸河太守)가 되었는데, 성품이 청렴하고 근신하여 오이나 과실 같은 것도 받지 않았다. 고을 사람 조영(趙潁)이 새로 나온 오이ㅣ 2개를 바치니, 소경은 이를 들보 위에 얹어 놓고는 끝내 먹지 않았다.


   가욱(賈郁)이 선유현(仙游縣)으로 옮기니 고을 사람이 과실을 보내주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송나라 사도(査道)가 한번은 관내를 순찰할 때 길가에 먹음직한 대추가 있었다. 수행원이 그 대추를 따서 사도에게 바쳤더니, 그는 그 값을 계산하여 돈을 나무 위에 걸어 놓고 떠났다.




[주B-001]청심(淸心) : 맑은 마음가짐. 여기서는 수령이 청렴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주D-001]원의(袁毅) : 진(晉)의 진군(陳郡) 사람이다. 《진서(晉書)》 〈산도열전(山濤列傳)〉에 보인다.
[주D-002]산도(山濤) : 진(晉)나라 문제(文帝)ㆍ무제(武帝) 때 사람으로 자는 거원(巨源), 시호는 강(康)이다. 벼슬은 이부 상서(吏部尙書)ㆍ우복야(右僕射)ㆍ사도(司徒) 등을 역임하였다. 완적(阮籍) 등과 함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이의 고사는 《진서(晉書)》에 보인다. 《晉書 卷43 山濤列傳》
[주D-003]양속(羊續) : 후한(後漢) 환제(桓帝)ㆍ영제(靈帝) 때 사람으로 자는 흥조(興祖)이다. 벼슬은 여강(廬江)ㆍ남양(南陽)의 태수(太守)를 지냈고 뒤에 태상(太常)에 올랐다. 《後漢書 卷31 羊續列傳》
[주D-004]웅 태간공(熊泰簡公) : 미상이다.
[주D-005]장괴애(張乖崖) : 송(宋)의 장영(張詠)이다. 송(宋)나라 태종(太宗)ㆍ진종(眞宗) 때 사람으로 자는 복지(復之), 호는 괴애(乖崖),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익주(益州)ㆍ항주(杭州) 등의 지주(知州), 형부(刑部)ㆍ이부(吏部) 등의 시랑(侍郞), 공부(工部)ㆍ예부(禮部)의 상서(尙書) 등을 지냈는데, 청렴 강직하였다. 저서에는 《괴애집(乖崖集)》이 있다. 《宋史 卷293 張詠列傳》
[주D-006]조극명(曹克明) : 송(宋)나라 진종(眞宗) 때 무장(武將)이다. 자는 요경(堯卿)이다. 벼슬은 진주 지주(辰州知州)ㆍ의융십주안무사(宜融十州按撫使)ㆍ정주 지주(鼎州知州)를 지냈는데, 만이(蠻夷) 평정에 공이 많았다. 《宋史 卷272 曹光實列傳 曹克明》
[주D-007]호광행성(湖廣行省) : 호광(湖廣)은 중국 호남(湖南)ㆍ호북(湖北)의 옛 지명이다. 송(宋)나라 때에는 형호남북로(荊湖南北路)를 두었다. 행성(行省)은 행대(行臺)로 각 지방에 둔 관서명인데, 군현을 통할하고 번진(藩鎭)을 진수(鎭守)하며 순무(巡撫)의 임무를 띠었다. 송나라 때에는 행성이 없었는데, 조극명(曹克明)이 의융십주도순검사(宜融十州都巡檢使) 겸 안무사(按撫使)를 지냈으므로 행성이라 한 듯하다.
[주D-008]섭종행(葉宗行) : 명(明)나라 성조(成祖) 때 사람으로 이름은 종인(宗人), 자가 종행(宗行)이다. 전당지현(錢塘知縣)을 지냈는데, 청렴하고 치적이 있었다. 《明史 卷281 循吏列傳 葉宗人》
[주D-009]주신(周新) : 명(明)나라 성조(成祖) 때 사람으로 초명은 지신(志新)이고 자는 일신(日新)이었는데, 성조(成祖)가 신(新)으로 불러서 이름을 신(新)이라 하고 자를 지신(志新)이라 하였다. 벼슬은 절강안찰사(浙江按察使)를 지냈는데 청렴하였다. 《明史 卷161 周新列傳》
[주D-010]입택(笠澤) : 중국 소주부(蘇州府) 서남 30리에 있는 호수. 태호(太湖)의 옛 이름.
[주D-011]북제(北齊) : 북조(北朝) 때 국명의 하나로 고양(高洋)이 세웠다.
[주D-012]소경(蘇瓊) : 북제(北齊) 사람으로 자는 진지(珍之)이다. 벼슬은 남청하태수(南淸河太守)를 거쳐 대리경(大理卿)이 되었고, 북제(北齊)가 망하자 주(周)에 벼슬하여 박릉 태수(博陵太守)가 되었다. 《北齊書 卷46 循吏列傳 蘇瓊》 《北史 卷86 循吏列傳 蘇瓊》
[주D-013]조영(趙潁) : 소경(蘇瓊)이 남청하태수(南淸河太守)로 있을 때 낙릉 태수(樂陵太守)를 지내고 나이 80이 되어 벼슬을 그만두고 그곳에 산 사람이다. 원문의 조영(趙榮)의 ‘榮’은 《북제서(北齊書)》와 《북사(北史)》에는 모두 ‘潁’이므로 이에 따라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4]가욱(賈郁) : 오대(五代) 민(閩)나라 때 사람이다. 자는 정문(正文)이다. 벼슬은 선유주부(仙遊主簿)ㆍ선유령(仙遊令)을 지냈는데, 곧기로 유명하였다. 《尙友錄 卷16》
[주D-015]사도(查道) : 송(宋)나라 태종(太宗)ㆍ진종(眞宗) 때 사람으로 자는 담연(湛然)이다. 태종 때 과주지주(果州知州), 진종 때 서경전운부사(西京轉運副使)ㆍ용도각 대제(龍圖閣待制)를 지냈다. 문집 20권이 있다. 《宋史 卷296 查道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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