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청렴한 관리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

2016. 3. 26. 17:46다산의 향기



       [54]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청렴한 관리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가 지나는 곳은 산림(山林)과 천석(泉石)도 모두 맑은 빛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목민심서 / 일표이서

2015.02.0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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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지(吳隱之)가 광주 자사(廣州刺史)가 되었는데, 산해군(山海郡)에서 20리 떨어진 곳에 탐천(貪泉)이라는 샘이 있었다. 이 샘물을 마시는 자는 반드시 탐욕해진다고 하였는데 오은지는 바로 가서 떠마시고, 청렴한 조행(操行)을 더욱 닦았으므로 돌아올 때에는 남은 재물이 없었다. 후에 상서(尙書)가 되었다가 태복(太僕)으로 옮겼으나 죽봉(竹篷)으로 병풍을 만들고, 가족들이 끼니를 걸러도 태연하였다.
당나라 이백(李白)이 우성(虞城) 현령이 되었다. 관사에 오래된 우물이 있는데 맑으나 물맛이 썼다. 이백은 부임하여 이 우물 맛을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나는 쓰고도 맑은 사람이니 내 뜻과 부합하는구나.”

하고, 드디어 길어다 먹으며 고치지 않았는데, 쓴 우물물이 변하여 단 샘물이 되었다고 한다.
방준(方峻)이 거처하는 동북쪽에 우물 하나를 팠는데, 다 파서 우물이 완성되자 공복(公服)을 입고 향을 피우면서 빌기를

“원하건대, 자손이 벼슬살이하게 되면 이 우물물처럼 청백하게 해 주소서.”

하였다.


원위(元魏)방표(房豹)가 낙릉군(樂陵郡)의 수령이 되었는데, 좋은 샘물이 없고 바다에 접하였으므로 물맛이 짰다. 방표가 우물 하나를 파게 하여 드디어 단 샘물을 얻었다. 그가 돌아가자 단맛이 도로 짜졌다.
송나라 우원(虞愿)진안 태수(晉安太守)가 되었다. 바닷가에 월왕석(越王石)이 있는데 항상 구름과 안개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서로 전해오는 말에,

“청렴한 태수라야 이를 볼 수 있다.”

하므로 곧 가서 보니 구름과 안개가 씻은 듯이 걷히고 맑고도 깨끗하여 조금도 가리는 것이 없었다.


양성재(楊誠齋)가 여릉 태수(廬陵太守)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주었다.

태수(太守)의 빙벽(氷檗) 같은 맑음은 도저하여 / 今侯氷檗淸到底
한 톨의 여릉 쌀도 먹지 않누나 / 一粒不嚼廬陵米
차를 오직 맑은 샘물에 달이니 / 一芽只瀹淸泉水
옥황상제(玉皇上帝)는 그대가 양리(良吏)임을 알리라 / 玉皇知渠是良吏




[주B-001]청심(淸心) : 맑은 마음가짐. 여기서는 수령이 청렴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주D-001]오은지(吳隱之) : 진(晉)나라 효무제(孝武帝)ㆍ안제(安帝) 때 사람으로 자는 처묵(處默)이다. 벼슬은 광주 자사(廣州刺史)ㆍ탁지상서(度支尙書)ㆍ태상(太常)을 지냈다.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晉書 卷90 良吏列傳 吳隱之》
[주D-002]상서(尙書) : 벼슬 이름으로 시대에 따라 다르다. 진(晉)나라에서는 이부(吏部)ㆍ삼공(三公)ㆍ객조(客曹)ㆍ가부(駕部)ㆍ둔전(屯田)ㆍ탁지(度支) 등 6조(曹)의 장관. 진(晉)나라 때에도 조(曹)의 수는 일정하지 않았다. 《晉書 卷24 職官志 列曹尙書》
[주D-003]태복(太僕) : 중국 벼슬 이름으로 여마(輿馬)와 목축의 일을 관장하는데, 열경(列卿)에 든다. 《晉書 卷24 職官志 太僕》 《진서(晉書)》 〈오은지열전(吳隱之列傳)〉에는 태복(太僕)은 지낸 적이 없고 태상(太常)은 지낸 것으로 나온다.
[주D-004]죽봉(竹篷) : 대로 엮은 바람막이 구실을 하는 물건인 듯하다. 원문의 ‘竹蓬’을 《진서》 〈오은지열전(吳隱之列傳)〉에 의해 고쳤다.
[주D-005]이백(李白)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시인으로 자는 태백(太白), 호는 주선옹(酒仙翁)ㆍ해상조오객(海上釣鰲客)ㆍ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천하를 유람하며 시주(詩酒)로 생활하였다.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이 전한다. 《唐書 卷202 文藝列傳 李白》
[주D-006]방준(方峻) : 송(宋)나라 인종(仁宗) 때 사람으로 자는 경통(景通)이다. 《宋元學案 卷16 伊川學侶 方元寀》
[주D-007]원위(元魏) : 중국 북위(北魏)의 별칭.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북조(北朝)에 속한다. 후위(後魏)라고도 한다. 북위(北魏)의 성이 척발(拓拔)이었는데, 효문제(孝文帝) 때 중국의 문물(文物)을 받아들여 호복(胡服)ㆍ호어(胡語)를 금하고 성을 원(元)으로 고쳤기 때문에 이렇게 불려진 것이다.
[주D-008]방표(房豹) :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ㆍ무성제(武成帝)ㆍ후주(後主) 때 사람으로 자는 중간(仲幹)이다. 벼슬은 서하(西河)ㆍ박릉(博陵)ㆍ낙릉(樂陵)의 태수(太守)를 지냈는데 치적이 있었다. 북제(北齊)가 망하자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였다. 《北齊書 卷46 循吏列傳 房豹》 《北史 卷39 房法壽傳 房豹》 원문의 ‘원위(元魏)’란 방표(房豹)가 동위(東魏) 때 모용 소종(慕容紹宗)을 따라 주부(主簿) 겸 행대낭중(行臺郞中)을 지냈으므로 이른 듯하다.
[주D-009]우원(虞愿) : 남조(南朝) 송(宋)ㆍ남제(南齊) 때 사람으로 자는 사공(士恭)이다. 벼슬은 송(宋)나라 명제(明帝) 때 통직산기시랑(通直散騎侍郞)으로 있다가 진평 태수(晉平太守)로 나가 치적이 있었다. 뒤에 정위(廷尉)에 이르렀다. 저서에는 《오경논문(五經論問)》ㆍ《회계기(會稽記)》 등이 있다. 《南齊書 卷53 良政列傳 虞愿》 《南史 卷70 循吏列傳 虞愿》
[주D-010]진안 태수(晉安太守) : 《남사(南史)》ㆍ《남제서(南齊書)》에는 진평 태수(晉平太守)로 되어 있다.
[주D-011]양성재(楊誠齋) : 송(宋)나라 효종(孝宗)ㆍ광종(光宗)ㆍ영종(寧宗) 때의 문신 양만리(楊萬里)이다. 자는 정수(廷秀), 호가 성재(誠齋),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벼슬은 보문각 대제(寶文閣待制)ㆍ보모각 학사(寶謨閣學士)에 이르렀다. 저서에는 《성재역전(誠齋易傳)》ㆍ《용언(庸言)》ㆍ《천문천대해(天問天對解)》ㆍ《성재집(誠齋集)》ㆍ《성재시화(誠齋詩話)》 등이 있다. 《宋史 卷433 儒林列傳 楊萬里》 《宋元學案 卷44 趙張諸儒學案 紫嚴門人 楊萬里》
[주D-012]빙벽(氷檗) : 얼음을 마시고 황벽(黃檗)을 먹는 것으로 청고(淸苦)한 생활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