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암차 - 와비차 / 매월당 김시습의 초암 // 박정진의 한국의 차맥

2013. 7. 20. 08:26차 이야기

 

 

김시습 노불사상과 독창적인 다법서 유래… 복원·전통계승 시급
日 센리큐에 의해 와비차로 둔갑… 교묘하게 ‘정착’ 속셈 드러내

    일본 다도의 신화학을 탈신화화하면 한국 차의 신화학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와 실마리를 얻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예로부터 문화 교류는 물론이고, 사람의 이동도 역사의 시기마다 끊이지 않아 공유하는 문화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의 원류를 보면 대개 한국에서 건너간 것들이 많다. 일본은 대체로 자신의 문화 요소중국에서 직접 건너온 것이라고 주장하려고 한다. 중국은 대국이지만 한국의 자신보다 소국(혹은 식민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한국을 조상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이율배반은 정한론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일본인은 한국을 볼 때 항상 이중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차의 성인(聖人)’으로 불리는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

    일본이 한국문화를 두고 가장 비하하는 태도나 발언이 통과문화(passage culture)라는 것이다. 한국이 통과문화적인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이 그러한 삶의 태도를 부추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이 대륙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이후 반도는 문화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 중국에서 선진문화가 들어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급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오늘에도 이어져 일본을 통해서 들어오는 미국이나 유럽의 문화에 민감하다.

    한국 차의 법도를 복원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일본에 의해, 일본의 방식으로 많이 변질되었거나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한국의 것을 추출하여 다시 그 뼈대에다 한국문화의 살점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차의 신화를 다시 쓰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매월당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

   일본 차인들은 하나같이 소안차(草庵茶), 와비차(侘茶)는 자신들의 발견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발견이라는 것은 흔히 선진국이 후진국이나 토착민의 전통문화를 가지고 가서 자신들의 문화로 재창조하거나 토착화할 경우 가지는 태도이다. 발견은 상대방의 문화를 대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해당 문화를 향유하고, 주체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집단에 대한 무시와 통한다. 초암차(草庵茶)는 한국인이 오늘날도 여전히 즐기고 있는 차문화인 것이다. 초암차의 주인은 초암차와 이도다완을 대상화한 일본이 아니라, 초암차와 이도다완을 삶의 현장에서 살아간 한국인인 것이다.

   소안차를 본래 향유하고 있는 나라가 초암차의 주인인가, 아니면 수입해 간 나라가 주인인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앞으로 초암차라고 하면 으레 한국의 초암차이고, 일본의 소안차는 일본 소안차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소안차는 초암차의 2차적 변형이다. 이는 다도를 말하면 으레 일본의 다도를 말하고, 한국의 경우는 한국의 다도라고 말해야 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것이 초암차와 와비차의 구분이다. 흔히 초암차는 와비차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무라타 주고(1422∼1502)에 의해 도입된 초암차는 센리큐(1522∼1591)에 의해 100년 뒤에 와비차가 된다. 무라다 주코 당시에는 한국 초암차의 모습이 많이 보존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점차 일본적인 것으로 더욱 간소화되어서 와비차가 된 것으로 보는 편이 옳다.

    일본 와비차의 계보를 세운 야마노우에노 소지(山上宗二)의 ‘산상종이기(山上宗二記)’에 나타난 다인관의 기준에 따르면 넷으로 분류된다. 첫째 명물 다도구만을 소장하고 즐기는 부류인 다이묘(大名) 다인을 말하고, 둘째 기물에 대한 안목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도 스승의 차인, 차노유 다인을 말한다. 셋째가 명물 도구는 없으나 창의력으로 정신적 수행을 하는 차인, 와비 다인이다. 넷째는 앞의 세 가지 요건을 다 갖춘, 즉 명물 다도구와 감정능력, 정신적 수행을 하는 차의 명인(名人)을 말한다. 여기서도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양 말하지만 실은 기물을 맨 먼저 꼽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월당의 차시(茶詩)를 통해 본 초가와 초암차를 끓이는 정경.

 

    물론 와비차의 정신을 말할 때 소박하고 차분한 멋, 쓸쓸하고 불완전한 멋, 그리고 호화로운 명물 다도구만을 사용하지 않는 정신적 수행을 하는 것을 표방하기는 한다. 그러나 결국 잡기에 해당하는 이도다완을 잡기가 아닌 명기(名器) 혹은 신기(神器)로 만들어놓고 신주처럼 모시고 있는 것이 일본다도의 정신이다. 한국은 비록 이도다완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신주처럼 모시지 않는다. 막사발처럼 일용하였던 것이다. 일본인은 막사발을 대상화하고 신격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친화는 자연을 대상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인은 자연친화적으로 살아왔다. 그러한 정신이 이도다완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자연친화적으로 살지 못하면서 단지 그것을 흠모하는 것이다. 자연을 흠모하는 것이 자연친화적인 삶인가, 그것을 2차의 가공(인공)된 형태로 섬기는 것이 자연친화적인 삶인가. 여기에 일본 미학과 한국 미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다.

    초암차는 한국의 전통적 브랜드이고, 와비차는 한국의 브랜드가 아니다. 와비(侘)의 개념에는 매우 일본적인 것이 숨어 있다. 초암차가 ‘자연주의의 다법’이라면 와비차는 ‘인공적으로 자연주의를 흉내 내는 다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인이 소안차와 와비차라는 용어를 동시에 쓰는 까닭은 이중성이나 애매모호함으로 인하여 초암차를 처음부터 일본적인 것으로 정착시키려는 속셈이다. 이는 초암차가 한국에서 전래된 한국적인 것이고, 와비차는 그것과는 다른 더욱 일본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더욱이 와비차의 개념을 만든 장본인인 센리큐는 한국계라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일본 다도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전 문화공보부 장관 이원홍씨는 이렇게 말한다. “리큐의 천재는 자기 안에 내재하는 역사의 뿌리에서 뻗어난 것이다. 그에게는 이국적인 정취에 민감한 선천적인 소양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선조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여러 가지 정황이 그렇다. 그의 가계보와 라쿠야키(樂燒)에 얽힌 수수께끼 같은 인간관계, 그리고 와비의 문화적 토양을 생각하면 여지가 없다. 특히 다옥과 차실의 설계와 미장에서 드러난 한국적 풍정은 그러한 생각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필자가 2005년 일본 후쿠이(福井)현 사카이(坂井)군 미쿠니(三國) 마을에 들렀을 때, 오미나토(大溱) 신사의 35대 마쓰무라 다다시(松村忠司) 신관은 한일관계사를 말하면서 “일본 다도의 창시자인 센리큐도 한국계였을 것이다”라고 여러 차례 힘주어 말하였다.

장원 설록차 연구소 제공

    마쓰무라는 자신도 가라쿠니(한반도를 지칭하는 말)에서 온 조상의 35대손이라 말하고, “한국을 통하지 않고서는 오늘의 일본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마도 도래인들은 일본문화의 지층에 숨어 있는 한국문화의 냄새에 대해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초암이라는 개념은 한국에서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와비라는 개념은 한국에 없다. 일본이 개발한 용어이다. 일본 차인들은 더 이상 초암차와 와비차를 이중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보다 자기 문화에 적합하도록 다듬어진 와비의 개념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은 앞으로 한국의 초암차 정신을 계속해서 개발하여 초암차의 철학을 복원하고, 초암차의 전통이 한국의 선비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온 것임을 만천하에 홍보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일본의 소안차 전통과 다른, 본래의 초암차 정신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한국 차문화의 신화를 회복하는 일이거나 다시 쓰는 일이다.

    일본이 ‘다도’라는 말의 사용에 현실적 기득권을 얻은 것은 참으로 동아시아 다도사로 볼 때 고지를 선점한 것이나 다름없다. ‘도(道)’라는 단어는 어떠한 단어보다 동아시아 문명사를 일이관지하는 말이고, 서양에서 볼 때도 대표적 상징성을 갖는 말이기 때문이다. ‘도(道)’는 서양의 ‘이성(理性)’에 대항하는 동양철학의 대표적인 용어이다. ‘도’의 뜻은 여러 가지이다. 대체로 사람이 다니는 길, 기예나 방법(武道 跆拳道), 마땅한 이치나 도리(家道 人道 至道 酒道 文道 法道), 혹은 진리나 덕, 통달한 최상의 경지(樂道 得道 達道), 주의나 사상(吾道, 佛道, 玄妙之道), 천지만물의 생명을 총괄하는 진리(大道 天道) 그리고 ‘통하다’ ‘말하다’의 뜻도 있다. ‘도’라는 말은 동양에서 흔히 쓰던 말이다.

    일본에서는 ‘차노유’(茶の湯)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17세기 초에 다도(茶道)라는 말이 유행했다. ‘도’라는 말은 으레 서양문화권에서 보면 동양의 대표적인 철학이나 사상쯤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다(茶)와 도(道)를 합친 ‘다도’를 일본이 선점한 것은 바로 동양의 차생활이나 차문화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일본이 갖는다는 것과 통했다. 이 말을 다도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한국 차문화의 국제적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며, 일본 다도의 아류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일본은 말차도(抹茶道)를 다도라고 생각한다. 잎차를 우려서 먹는 것은 다도에 포함하는 것을 꺼린다.

    조선조가 억불숭유 정책을 펴면서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난 불교는 본래 비정치적인 도교와 필연적으로 통하게 된다. 차는 노불습합(老佛褶合)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세조의 왕위찬탈과 사육신의 죽음으로 세상에서 멀어져 신선의 세계를 탐닉하기 시작한 매월당 김시습은 산천을 주유하면서 ‘차의 성인(聖人)’으로 거듭나게 되는 계기를 만난다.

   ‘초암차’의 정신은 김시습의 노불(老佛)사상과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난 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호에 머물렀던 외로운 천재의 처지가 만들어낸 매우 한국적이고 독창적인 다법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김시습만큼 차를 목숨처럼 좋아했던 인물은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수많은 다시(茶詩)와 방랑자 및 수도자로 보낸 그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초암차야말로 우리의 문화와 그의 정신이 만들어낸 걸작인 것 같다. 

문화평론가 pjjdisc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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