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8. 18:50ㆍ詩
[자료모음] 이규보 - 영정중월(詠井中月) 강연이 하고 싶다
2016.03.2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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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이 달빛을 탐하여 山僧貪月光
병 속에 물과 함께 길어 담았네 甁汲一壺中
절에 다다르면 바야흐로 깨달으리라 到寺方應覺
병 기울이면 달빛 또한 텅 비는 것을 甁傾月亦空
이규보(李奎報, 1168~1241)
13세기 최씨무인정권기에 관료로 활동하고 한문학의 지평을 넓힌 문학가이다. 그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가 남긴 많은 시와 글 중에서 마음에 드는 한 가지 시를 가져왔다.
위에 그림처럼 고요하고 적막한 밤에 한 승려가 물에 떠있는 달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승려는 그 달빛을 가지고 싶었고 병 속에 물을 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것이다. 병 속에 넣었다고 생각한 달빛은 실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요즘 SNS에는 많은 시들이 공유된다. 대중에게 쉽게 읽히고 쉽게 소비되는 많은 시들. 많은 온라인 시인들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읽자마자 이해되는 시가 아닌 2차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새로 출시된 핸드폰, 이번 시즌 신상, 좋아하는 사람, 누군가가 이룩해 놓은 가치같은 것들 말이다. 달빛을 탐해서 달빛을 가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달이 되어 달빛을 가지거나 병에 담길 정도의 작은 물이 아닌 큰 호수 정도의 물이되어 달빛을 가지거나 거울을 가져와서 달빛을 가질수도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놀랍도록 다양하다. 어떤 능력 자체를 가지게 되거나 그릇이 커지거나 또는 창의력을 발휘할 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달빛을 가지기 위한 노력.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뒤늦게 깨닫지말고 미리 깨닫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출처] [자료모음] 이규보 - 영정중월(詠井中月)|작성자 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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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들 모음( 이규보 ~ 김삿갓) 한문학
折花行 꽃을 꺾어 --이규보(李奎報)
牡丹含露眞珠顆 (목단함로진주과)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美人折得窓前過 (미인절득창전과)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다가
含笑問檀郞 (함소문단랑)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물었다네
花强妾貌强 (화강첩모강)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檀郞故相戱 (단랑고상희) 낭군이 짐짓 장난기 섞어서
强道花枝好 (강도화지호)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美人妬花勝 (미인투화승)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踏破花枝道 (답파화지도)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花若勝於妾 (회약승어첩)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다니
今宵花同宿 (금소화동숙) 오늘밤은 꽃과 함께 주무셔요."
夜聽擣衣聲(야청도의성)
霜天月照夜河明 客子思歸別有情
厭坐長霄愁欲死 忽聞隣女擣衣聲
聲來斷續因風至 夜久星低無暫止
自從別國不相聞 今在他鄕聽相似
不知綵杵重將輕 不悉靑砧平不平
遙憐體弱多香汙 預識更深勞玉腕
爲當欲救客衣單 爲復先愁閨閣寒
雖忘容儀難可問 不知遙意怨無端
寄異土分無新識 想同心兮長嘆息
此時獨自閨中聞 此夜誰知明眸縮
憶憶兮 心已懸 重聞兮 不可穿
卽將因夢尋聲去 只爲愁多不得眼
[ 전문풀이 ]
서리 하늘 달 밝은데 은하수 빛나 이국땅 머무는 나그네 귀향 생각 깊도다.
긴긴 밤 홀로 앉아 시름 이기지 못하는데 홀연 들리나니 이웃 아낙 다듬이 소리.
바람결 따라서 끊일 듯 이어지며 별들이 기울도록 잠시도 멎지 않네.
고국을 떠난 후로 저 소리 못 듣더니 먼 이역땅에서 그 소리 다시 듣네.
그대 든 방망이는 무거운가 가벼운가 푸른 다듬이돌 고르가 거칠은가.
약한 체질 온통 구슬 땀에 젖으리. 옥 같은 두 팔도 힘이 부쳐 지쳤으리.
홑옷으로 떠난 나그네 구하자 함인가. 규방에 외로이 있는 시름 잊자 함인가.
그대 모습 그려 보나 물어 볼 도리 없고 부질 없는 먼 원망만 끝없이 깊어 가네.
먼 이국땅 낯선 고장에서 그대 생각 하노라 긴 탄식만 하네.
이런 때 들려오는 규방의 다듬이 소리 그 누가 알랴, 시름 깊은 저 설움을.
그리운 생각에 마음 높이 달렸건만 듣고 또 들어도 뚫어 알 길이 없네.
꿈 속에라도 저 소리 찾아보려 하지만 나그네 수심 많아 잠도 이루지 못한다네.
• 작자 양태사(발해 제3대 문왕 때의 귀덕장군으로 무인(武人)이면서도 시를 잘 지었다.)
• 연대 발해국 문왕 23년(759)
• 성격 서정시
• 구성 24행의 칠언 고시
• 주제 향수. 타국에서 가을 달밤에 고국을 그리워함
• 의의 발해의 시인이 남긴 작품 중에서 가장 장편이고 정감이 특히 풍부한 작품이다. 발해 시대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당시의 시대 상황(외교 활동의 빈번함)을 짐작하게 한다.
• 출전 <경국집>
시어․시구 분석
•․霜天-서리 내리는 가을 밤의 하늘
•夜河-은하수․
•思歸-고국으로 돌아갈 생각
•․別有情-남다른 느낌이 들다
•厭坐長霄-긴 밤을 앉아 있기가 싫증나다
•․愁欲死-시름이 사라지다
•擣衣聲-다듬이 소리
•聲來斷續-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들려오다
•因風至-바람을 따라 이르다
•夜久星低-밤이 오래 되어 별이 낮다
•無暫止-잠시도 멈추지 않다
•自從-~(으)로부터
•別國-나라를 떠나다
•聽相似-서로 비슷한 소리가 들리다
?상천월조야하명 객자사귀별유정 ; 서리가 내리는 가을 밤 하늘에 달빛이 교교히 비치고 은하수는 밝은데, 서정적 자아는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남다른 객수에 젖어 있다. ‘서리가 내리는 가을 밤’은 이 작품의 시적 배경일 뿐 아니라, 서정적 자아의 심적 상황과 조화를 이루어 상념에 젖어 있는 서정적 자아의 내면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염좌장소수욕사 홀문인녀도의성 ; 긴 밤을 홀로 앉았었기 때문에 지루해져서 시름마저 사라지려는데, 홀연히 이웃 여인의 다듬이 소리가 들려 온다. 이 부분에 등장하는 ‘다듬이 소리’는 이 시 전체의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한 주요 소재로 시상의 급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즉 서정적 자아의 시름이 다해 가는 찰나에 다듬이 소리를 등장시킴으로써 이국에서의 객창감(客窓感)이 고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성래단속인풍지 야구성저무잠지 ; 다듬이 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바람결을 따라 들려 오고, 밤이 깊어 별이 낮아지도록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 서정적 자아는 다듬이질을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들고 있다.
?자종별국불상문 금재타향청상사 ; 고국을 떠난 다음에는 들어 보지 못했던 다듬이 소리를 타국 땅 일본에서 들으며 그 소리가 고국의 다듬이 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듬이 소리는 고국에서만 들어 볼 수 있는 것이기에 서정적 자아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더욱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해설 및 감상
발해 문왕 때 귀덕장군인 양태사가 지은 한시로 모두 24행의 칠언배율이다. 759년(문왕 23년)에 일본에 부사(副使)로 갔다가 송별연에서 이 시를 읊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편찬한 한시집 <경국집>에 전한다. (기록이 부실해서 뒷부분은 표기가 혼란스럽다.)
어느 가을 밤에 고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홀연 이웃에서 여인네가 다듬이질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으로 서두를 삼았다. 다듬이질하는 소리에 실려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고 하면서, 그 여인은 누구이며 왜 밤늦도록 다듬이질 하는가 궁금하게 여기다가, 연약한 몸으로 향그러운 땀을 흘리며 일하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다듬이질은 일본에는 없는 풍속이다. 그 여인은 반드시 발해 사람은 아니라도 동족 이주민일 터이므로, 다듬이질하는 소리를 듣고 친근감을 느끼고 고국을 생각하였다. 발해 시인이 남긴 시중에서 가장 장편이고 정감이 풍부한 작품이다.
정지상의 「송인(送人)」
• 지은이 : 정지상
• 형식 : 7언 절구의 한시
• 성격 : 애절하고 우수적임
• 운자 : 다, 가, 파.
• 구성 : 시상의 전개상 '기 - 승 - 전 - 결'으로 해야 자연스러울 것다. 그러나 칠언절구는 1,2,4구에 압운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운자를 맞추기 위해 전구와 결구를 서로 바꿔 배열했음을 알 수 있다.
• 주제 : 임을 보내는 정한
시어 구절 풀이
• 우헐 : 비가 그침. 비가 내리다 잠깐 그침
• 초색다 : 풀빛이 많다. 비가 갠 뒤 싱싱한 푸르름을 지칭함
• 동비가 : 슬픈 노래가 복받쳐 나옴
• 하시진 : 어느 때에 다 마르겠는가?
• 년년 : 해마다
• 첨록파 : 물결에 더해지다. 곧, 이별의 슬픔이 끝이 없음
?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 서럽도록 아름다운 이 시의 기구이다. 비극적 정서를 자아냈던 비도 그치고 강 언덕 긴둑에 한결 짙어진 풀빛은 백 년이 가도 다함이 없음을 나타낸 한의 길이의 상징이다.
?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승구의 비가는 이 시의 주제이기도 하고, 효과음이기도 하다. ‘동’은 강나루에 은은히 울려 퍼지는 뱃노래의 구슬픈 가락이 심금에 와 부딪히는 울림이요, 떨림이요, 흔들림인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설움의 북받침이고, 흐느낌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별의 정을 돋우는 슬픈 노래에 강나루는 싱그런 풀빛까지도 서러운 이별의 무대이다.
?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 전구와 결구이다. 이 두 구의 핵심은 인간사와는 아랑곳 없이 유유히 흘러가기만 하는 푸른 강물에 대한 애꿎은 원망이며, 이별의 눈물이 보태져서 수량이 증가해 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하는 탄식이다. 여기에서 ‘첨록파’의 ‘록파’는 수심을 시사하는 한편, 초록의 반영인 봄의 강물의 색감으로서, 벽파나 창파보다 한결 정감적이다. ‘첨'’ 덧붙이는 첨가의 뜻이다. (과장법이 사용됨)
해설과 감상
정지상의 「송인(送人)」은 우리 나라 한시 중 송별시(送別詩)의 최고작이다. 님이 떠나지 못하도록 계속 와야 할 비도 개고 말았다. 항구의 긴 둑엔 비에 씻긴 풀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으니 이별의 애달픔이 더 고조된다. 전구(轉句)에서 시상은 전환되어 대동강물이 이별의 눈물로 마를 날이 없다고 했다. 자기의 사연을 일반화하면서 동시에 대동강의 사정을 그려 일방적인 자기 슬픔의 토로에서 벗어났다.
이 작품은 대동강에서 친한 벗과의 이별을 하는데 대한 슬픔을 노래한 작품으로 김만중의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고려 정사간의 '남포' 절구는 곧 해동의 위성삼첩이다. 끝구의 '별루년년첨작파(別淚年年添作派)'를 '첨록파'라 하기도 하는데, 익재는 마땅히 '녹파(綠波)'를 좇을 것이라 했고, 사가는 '작(作)'자가 낫다고 했다.
생각건대 심휴문의 '별부'에 이르기를 '春草碧色 春水綠波 送君南浦 像如之何''라 했으니, 정사간의 시가 바로 심휴문의 말을 썼으므로 '녹파'로 바꿀 수가 없다고 말했으며, 허균은 그의 '성수시화'에서 정지상의 '서경시(西京詩)'는 아직도 절창이다. 누선(樓船)의 제영(題詠)들을 조사(詔使)가 올 때마다 철거하고 이 시만을 남겨둔다고 말했으며, 이인로는 그의 '파한집'에서 '서도는 고구려의 서울이었다. 산을 끼고 강을 둘러 기상이 수이하여 예로부터 기인(奇人)이 많이 났다. 예왕 때에 정성을 가진 이름모를 준재가 있었는데, 소년 때에 '송인'을 지었다. …… 그말이 표일(飄逸 : 빼어나게 훌륭함)하고 속세를 벗어난 것이 다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다.
이 시는 고래(古來)로 한시(漢詩)의 명품(名品) 가운데의 명품으로 꼽힌다. 특히 한시를 짓는 소객(騷客) 가운 데 이 시를 평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시는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이 시는 대동강의 부벽루(浮碧樓) 정자에 걸려 있는데, 이 부벽루에는 고려, 조선 시대의 숱한 시인들이 부벽루에 올라 대동강의 아름다움을 읊었다고 한다.
따라서 부벽루에는 많은 사람들의 시가 적혀 있다. 명(明)나라의 사신이 올 적에는 반드시 평양을 들렸고, 평양을 들리면 반드시 찾는 명소가 바로 이 부벽루이다.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접빈사들은 미리 먼저 부벽루의 모든 시들을 치우고 오직 정지상의 이 '送人'이라는 시구만 걸어 놓는다. 중국의 사신들이 '送人'을 보면 모두 신품(神品)이라고 극찬한다고 하였으니 이 '送人'의 시가 어떻게 빼어난 것인지 조금만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기구(起句: 제 1구로 시상詩想을 일으키는 역할)와 승구(承句: 제 2구로 起句를 이어 받아 시를 전개)를 살펴보자. 지금은 바야흐로 봄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모든 만물이 봄비가 온 뒤로 생기 발랄함을 얻었다.
특히 긴 둑에 풀들은 파릇파릇 돋아 봄날의 정취를 돋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님의 손을 붙잡으며 희망과 부푼 꿈을 않고 인생을 설계하며 상춘(賞春)을 하고 있다. 바로 곁에 사랑하는 님과 봄날의 정취(情趣)를 만끽하면서 보내니 이 세상의 무엇을 더욱 바라리요. 그러나 나는 지금 어떠한가. 남포에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 보내는 나의 처지는 무엇과 비교하리요. 차라리 비라도 주룩주룩 내린다면 나의 심사를 달래주렴만. 비가 그친 뒤의 맑은 하늘과 이 비를 머금고 싹을 틔운 풀잎들은 모두 나의 이별을 조롱하는 듯하다. 아 세상과 불일치를 무엇으로 감당하리요.
이 시의 묘미(妙味)는 바로 전구(轉句: 제 3구로 시상을 변환시키는 역할)에 있다고 하겠다. 난데없이 갑자기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마르리'라는 구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아니 지금 사랑하는 님과 헤어지는 판국에 대동강 물이야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인가. 더욱이 대동강 물이 왜 마른다고 하는가. 강물이 마른다니 이 무슨 표현인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가 막히게 한다. 이런 어리둥절함은 결구(結句: 제 4구로 시상을 맺는 구)에 가서 해결된다.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가 이 곳에서 해마다 연인(戀人)들이 모여 석별(惜別)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고 이 눈물이 바로 대동강 물에 보태어져 마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참으로 전구의 기발(奇拔)함이 이 곳의 재치에 이르면 모든 이가 수긍을 하며 동시에 무릎을 치며 감탄(感歎)을 금(禁)치 못한다. 이런 재치와 표현의 기발함은 정지상의 한시가 몇 편 전해지지 않지만 다른 사람 수백 편의 시를 감당할 만하다고 하겠다.
한자를 살펴 보면 많은 글자들이 유음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긴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모음으로 끝나고, 받침 글자도 'ㄹ, ㅇ, ㄴ, ㅁ' 등의 부드러운 자음을 끝난다. 이러한 유음의 사용은 봄날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잘 나타내 주고 이는 나의 불행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할수록 나와 세상의 거리감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참고 : 정지상
고려시대의 문신 ·시인으로 본관 서경(西京). 호 남호(南湖). 초명 지원(之元). 서경 출생. 1114년(예종 9) 문과에 급제, 1127년(인종 5) 좌정언(左正言)으로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되게 하고, 1129년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시정(時政)에 관한 소를 올렸다. 음양비술(陰陽秘術)을 믿어 묘청(妙淸)·백수한(白壽翰) 등과 삼성(三聖)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과 금(金)나라를 정벌하고 고려의 왕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하였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서 《산재기(山齋記)》를 지었으며, 뒤에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1135년(인종 13) 묘청의 난 때 이에 관련된 혐의로 김안(金安)·백수한과 함께 김부식(金富軾)에게 참살되었다. 시(詩)에 뛰어나 고려 12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역학(易學)·불전(佛典)·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 ·글씨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다.
春去花猶在 춘거화유재
天晴谷自陰 천청곡자음
杜鵑啼白晝 두견제백주
始覺卜居深 시각복거심
봄은 갔으나 꽃은 오히려 피어 있고 날이 개었는데 골짜기는 그늘지도다
두견새가 대낮에 울음을 우니 비로소 사는 곳이 산 속 깊음을 알겠도다
핵심 정리
• 작가 : 이인로
• 형식 : 오언절구
• 표현 : 사실적
• 시간적 배경 : 늦봄 한낮
• 대구법 : 기와 승구
• 주제 : 깊은 산 속의 풍경. 자연에 은거하고 싶은 마음
• 의의 : 고려인의 자연 친애와 은둔 사상을 몃볼 수 있음
• 출전 : 파한집
시어 구절 풀이
• 산거 : 산 속에 있는 집
• 제백화 : 두견은 본래 밤에만 우는데, 계곡이 깊어 두견이 밤인줄 알고 운다는 뜻
• 복거 : 살 만한 곳을 점침. 또는 살 만한 곳을 가려 정함
• 비로소 사는 곳이 산 속 깊음을 알겠도다 : 시적 화자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말이고, 시적 화자의 여유가 담겨 있는 부분이다.
浮碧樓
昨過永明寺 (작과영명사)
暫登浮碧樓 (잠등부벽루)
城空月一片 (성공월일편)
石老雲千秋 (석로천운추)
麟馬去不返 (인마거불반)
天孫何處遊 (천송하처유)
長嘯倚風磴 (장소의풍등)
山靑江自流 (산청강자류)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성은 텅 빈 채로 달 한 조각 떠 있고 오래된 조천석 위에 천 년의 구름 흐르네.
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데 천손은 지금 어느 곳에 노니는가?
돌다리에 기대어 휘파람 부노라니 산은 오늘도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네.
핵심 정리
• 지은이 : 이색(李穡)
• 갈래 : 오언 율시(五言律詩)
• 연대 : 고려 말
• 구성 : 4단 구성
• 어조 : 지난 날의 찬란한 역사를 회고하며 그와 대비되는 현재의 모습에서 인생 무상에 젖어 있다.
• 성격 : 회고적
• 제재 : 옛 성터에서의 풍경과 감상
• 주제 : 지난 역사의 회고와 고려의 국운(國運) 회복과 인생 무상
• 출전 : 목은집
시어 구절 풀이
• 영명사 : 평양 금수산에 있는 절 이름. 고구려 광개토왕이 지은 아홉 절 중의 하나라고 전해짐
• 부벽루 : 평양 모란봉 아래 절벽, 대동강 변에 위치한 누각으로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 조천석 : 기린굴 남쪽의 큰 바위 이름
? 오래된 조천석 위에 천년의 구름은 흐르고 있네 :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
? 기린마 : 고구려 동명성왕이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지는 상상의 말
? 천손 : 동명왕
? 오늘도 산은 푸르고 강은 저절로 흐르네: 변함없는 자연의 모습을 노래함으로써 간접적으로는 인간 역사의 유한함과 자신의 쓸쓸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해설과 감상
이 작품은 고려 말의 문신이었던 작가가 고구려의 유적지인 평양성을 지나다가 지은 오언 율시(五言律詩)다. 그 옛날 찬연했던 고구려의 모습은 이제 찾을 수 없고, 다만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퇴색한 자취만이 남아 있는 데서 그의 시상은 출발한다. 이러한 인간 역사의 유한함이 자연의 영원함과 대비되면서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하늘에 걸린 한 조각의 달과 천년 두고 흐르는 구름이 그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그러면 그가 이 시를 지은 동기는 이러한 회고적 정서에 그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막연하게 옛 왕조의 자취를 읊기보다 위대한 건국 영웅이었던 동명왕의 일을 노래한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 당시 고려는 원(元)나라의 오랜 침략을 겪고 난 뒤여서 국가적으로 극히 쇠약한 형편이었는데, 시인은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고구려의 웅혼한 역사를 일으킨 동명왕의 위업을 다시금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로 소급해 올라가는 한편, 과거의 역사를 통해 다시금 현재를 비추어 보는 양면적 시각을 내포한다고 하겠다.
讀書有感(독서 유감)
讀書當日志經綸 독서당일지경륜
歲暮還甘顔氏貧 세모환감안씨빈
富貴有爭難下手 부귀유쟁난하수
林泉無禁可安身 임천무금가안신
採算釣水堪充腹 채산조수감충복
詠月吟風足暢神 영월음풍족창신
學到不疑知快闊 학도불의지쾌활
免敎虛作百年人 면교허작백년인
독서하던 당년에 경륜에 뜻을 두었더니 만년에 안빈낙도 오히려 달갑구나
부귀엔 시샘 많아 손대기 어려웠고 임천엔 금함 없어 심신이 편안하였네
채산조수하여 배를 채우고 음풍영월로 마음을 풀었네
학문이란 의혹 없어야 상쾌하나니 평생의 허랑함을 면케 할 수 있네
핵심 정리
• 지은이 : 서경덕
• 형식 : 칠언율시
• 연대 : 중종 때
• 주제 : 독서와 안빈낙도의 생활을 노래.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책을 읽는 선비의 심회
• 출전 : 화담집
시어 및 구절 풀이
• 독서당일 : 독서를 시작하던 당년
• 지경륜 : 경륜에 뜻을 두다.
*경륜(經綸) : ①일정한 포부를 가지고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함. 또는 그 계획이나 포부. ②천하를 다스림.
• 세모환감 : 만년에 오히려 달갑다
• 만년 : 나이가 들어 늙은 때
*안씨빈(顔氏貧): 공자의 제자 顔回의 安貧樂道한 삶을 이름
• 부귀유쟁 : 부귀에는 다툼이 있음
• 임천무금 : 임천에는 금함이 없다. '임천'은 숲과 샘이란 뜻으로 은사가 사는 자연을 이름
• 가안신 : 가히 심신이 편안함
• 감충복 : 배를 채움
• 족창신 : 정신을 흡족하게 펼치다
• 학도불의 : 학문에 이르러 의혹이 없음
• 면교허작 : 허망함을 면하게 함
• 허랑 : 언행이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함
• 백년인 : 오랜 세월
해설과 감상
지은이의 인생관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한때는 경륜에 뜻을 두기도 했으나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생활이 빈곤하니, 그러한 처지를 깨닫고, 함연에서는 부귀공명에는 시기와 다툼이 많으므로 부귀를 버리고 자연에 묻혀서 살아간다. 경연에서는 임천에서 자족하며 즐기는 생활을 그리며, 미연에서는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학문하는 바른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도학자로서의 높은 인격과 명리를 멀리하는 작자의 심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독서를 시작하던 당년에는 경륜에 뜻을 두었다가, 마침내는 학문의 깊은 이치를 터득하면서 세상사의 온갖 부귀를 버리고 임천에 묻혀 독서와 함께 안빈낙도하는 작자의 생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자연은 모든 것이 풍부하되, 그 어느 것 하나 이를 즐기려는데 금함이 없다. 이러한 자연을 찾아 산나물을 뜯고 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생활, 그것을 멋으로 알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태도에서 우리는 선인들의 풍족한 정신 세계와 탈속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無語別[閨怨]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
羞人無語別 수인무어별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
泣向梨花月 읍향리화월
열 다섯 아리따운 아가씨 남 보기 부끄러워 말못하고 헤어지네
돌아와 대문을 굳게 닫아걸고 배꽃에 비친 달보고 혼자 눈물짓네
핵심정리
• 형식 : 오언절구
• 제재 : 이별
• 주제 : 이별의 한(또는 안타까움)
• 경향 : 낭만주의적
• 작가 : 林悌 (白湖)
시어 시구 풀이
• 월계녀(越溪女) : 아름다운 미인.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손꼽히는 서시(西施)는 중국 월(越)나라 약야계(若耶溪) 출신이다. 또한 미인을 지칭하는 성어로 월녀오희(越女吳姬)가 있다. 월나라와 오나라는 대대로 미녀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 수인(羞人) : 남을 부끄러워함.
• 무어별(無語別 ) : 말 없이 이별하다.
• 중문(重門) : 겹문, 덧문.
• 이화월(梨花月) : 배꽃처럼 하얀 달, 배꽃위에 걸린 달, 하얀 배꽃을 비추는 달.
• 읍(泣) :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없이 우는 것을 읍(泣)이라 함.
해설과 감상
1. 이 작품에서 보듯 작가는 여성적인 섬세한 감각으로 이별을 당한 여인의 슬픔을 효과적으로 포착해 내고 있다. 사랑하는 임과 헤어지면서도 남이 부끄러워 이별의 말 한 마디 못하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 작품에서 배꽃처럼 흰 달(梨花月)은 이 작품의 배경의 구실을 하면서 동시에 임의 모습을 더욱 생각나게 하는, 그래서 작중 화자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하는 작품 내적 기능을 하는 소재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유분망한 낭만주의적 경향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권위와 법도가 중시되던 봉건주의적 시대의 남녀 사랑이란 절실한 마음 속에만 간직될 수밖에 없는 것을 표현한 작품이다. 임제는 송순(宋純)·정철(鄭澈)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風靡)했던 풍류 남아요, 재사(才士)였다. 그는 '수성지(愁城誌)'라는 뛰어난 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시조의 작가로도 탁월한 재주를 보였고, 한시의 창작에서도 독특한 경지를 개척했다.
2. 자유 분망한 낭만주의적 경향이 잘 드러난 오언절구다. 서로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헤어지고 돌아와서는 빗장 잠그고 하얀 배꽃 사이 달을 보고 혼자 눈물 지으며 남몰래 애태우는 열다섯 처녀의 안타까운 연정이 한폭의 그림인 양 잘도 묘사 되었다. 특히 결구에서 하얀 배꽃의 애상적인 분의기와 그 사이로 애련히 걸려있는 달의 안배는 주인공의 심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아주 뛰어난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打麥行(타맥행)
新芻濁酒如潼白(신추탁주여동백)
大碗麥飯高一尺(대완맥반고일척)
飯罷取枷登場立(반파취가등장립)
雙肩漆澤飜日赤(쌍견칠택번일적)
呼邪作聲擧趾齊(호사작성거지제)
須臾麥穗都狼藉(수유맥수도랑자)
雜歌互答聲轉高(잡가호답성전고)
但見屋角紛飛麥(단견옥각분비맥)
觀其氣色樂莫樂(관기기색낙막락)
了不以心爲刑役(요불이심위형역)
樂園樂郊不遠有(낙원낙교불원유)
何苦去作風塵客(하고거작풍진객)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옹헤야 소리 내며 발 맞추어 두드리니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티끌뿐이로다.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요.
핵심 정리
• 지은이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경기도 광주 출생.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호는 다산(茶山). 또는 여유당(與猶堂). 정조 13년에 남인(南人)의 불리한 처지를 극복하고 대과에 급제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기도 한 실학자이다. 저서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아주 많다.
• 갈래 : 행(한시의 일종), 서정시, 리얼리즘 시
• 연대 : 1801년
•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선경후정의 시상 전개
• 성격 : 사실적, 반성적
• 배경 사상 : 실사구시의 실학사상
• 주제 : 농민들의 보리타작의 모습을 보고, 그 노동에서 얻는 즐거움을 보고 자신의 삶을 반성 혹은 노동에서 얻는 즐거움
시어 및 구절 풀이
• 타맥행 : 보리 타작의 노래. '행'은 한시의 한 체
• 신추탁주 : 새로 담은 막걸리를 거르다.
• 여동백 : 젖빛처럼 희다.
• 대완 : 큰 그릇
• 취가 : 도리깨를 들다.
• 칠택 : 검은 윤기
• 번일적 : 햇빛을 받아 번쩍거림
• 호야 : 감탄사. '옹헤야' 하는 소리. 여기서 '邪'는 어조사 '야'로 읽음. 간사할 사가 아님.
• 거지제 : 擧는 들다, 趾는 발, 齊는 가지런함, 곧 타작을 위해 발을 나란히 맞추어 드는 모양을 말함.
• 수유 : 잠시 만에
• 맥수 : 보리 낟알
• 도낭자 : 다 어지럽게 흩어짐
• 호답 : 서로 답한다. 즉 민요를 선창, 후창하는 것
• 성전고 : 소리가 옮겨 높다.
• 옥각 : 지붕의 모서리
• 분비맥 : 어지럽게 날리는 보리
• 낙막락 : 어떤 즐거움보다 더 즐겁다.
• 이심위형역 : 마음이 육체의 부리는 바가 된다는 뜻으로, 정신이 물질의 지배를 받음을 말한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이미 스스로 마음이 몸의 노예 되었으나 어찌 근심하여 슬퍼하고만 있으리오"라는 말이 있음
• 낙원낙교 : 낙원을 반복한 것
• 풍진객 : 속세의 나그네
? 새로 거른 ~ 햇볕 받아 번쩍이네: 좋은 술과 기름진 음식은 아닐지라도 노동의 건강성과 좋은 조화를 이루는 막걸리와 보리밥이 요기로서는 부족함이 없음과 햇빛에 그을은 두 어깨로 대변되는 농민의 노동하는 건강한 삶에 화자가 감탄하고 있다. 화자는 직접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으로 시적 대상이 노동하려는 모습을 관찰하고 이에 감동을 받고 있다.
? 응해야 소리내며 ~ 보리티끌 뿐이로다: 노동요를 부르면서 흥겹게 도리깨질을 하는 농민이 보리낟알이 온 마당에 날릴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 그 노동의 강도는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더욱 강해진다. 노랫가락 소리도 높아지고 동시에 마당뿐만 아니라 온 집안에 보리 낟알이 날리고 있다. 화자는 건강한 농민의 노동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 그 기색 ~ 되지 않았네: 농민의 즐거운 노동 행위에서 건강하고 생동하는 삶을 발견하고 그로 말미암아 육신과 정신이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인식까지 드는 것이다. 화자는 시적 대상인 농민의 건강한 노동 행위를 관찰한 끝에 삶의 본질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매인 바 조금도 없어라->마음(정신)이 육체의 힘듦에 매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쁨을 주다. 육신과 마음의 조화로운 통일.]
? 낙원이 먼 곳에 ~ 헤매고 있으리요.: 대상의 행위에서 깨달은 삶의 본질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화자의 내면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즉 화자가 벼슬길에 나서 정치적으로 억압을 받고 힘든 삶을 살아온 과정이 모두 부질없는 행위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화자는 대상을 보기 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진리를 깨달았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해설과 감상
다산(茶山)의 한시 작품은 실학 사상을 배경으로 사회 제도의 모순, 관리나 토호들의 횡포, 백성들의 고뇌, 농어촌의 가난 등이 그 주제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대부분이 현실적인 면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시어(詩語)도 평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리 타작'도 가난을 딛고 건실하게 일하는 농민의 건설적인 모습을 보이는 바, 악부(樂府)시체에서 전화한 한시의 한 체인 '행(行)'을 그 형식으로 하고 있고, '타맥행'은 다산 문학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이다. 이것은 농민의 생활에서 취재한 것이요, 여기에서 농민은 일하는 농민이다.
다산 정약용 자신이 생산과 그 노고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농민과 한 마음이 되어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사실적으로 노래한 농부가인 것이다. 또한 '막걸리, 보리밥, 도리깨, 보리알' 등 평민적인 시어들은 한결 친밀감을 주면서 보리 타작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그리고 씩씩하게 두드리는 도리깨 소리로써 가난을 딛고 일어서려는 꿋꿋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건강하고 생동하는 농민들의 삶에서, 시인은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있으며, 당시 새롭고 가치있는 삶을 평민들의 현실 세계에서 찾고자 하는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의 경향을 엿 볼 수 있다.
탐진 촌요(耽津村謠)
棉布新治雪樣鮮(면포신치설양선)
黃頭來博吏房錢(황두래박이방전)
漏田督稅如星火(누전독세여성화)
三月中旬道發船(삼월중순도발선)
새로 짜낸 무명이 눈결같이 고왔는데 이방 줄 돈이라고 황두가 뺏어가네
누전 세금 독촉이 성화같이 급하구나 삼월 중순 세곡선(稅穀船)이 서울로 떠난다고
핵심 정리
• 지은이 : 정약용
• 갈래 : 칠언절구(七言絶句)
• 압운 : 鮮 錢 船
• 성격 : 고발적. 비판적
• 표현 : 직유법. 도치법
• 주제 : 관리들의 횡포 고발
• 출전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시어 시구 풀이
棉(면) : 목화 樣(양) : 모양. 형상. 무늬 鮮(선) : 곱다. 깨끗하다 博(박) : 넓다. 취하다.
漏(루) : 새다 督(독) : 살피다. 단속하다
• 布(면포) : 무명
• 新治(신치) : 새로 짜내다
• 雪樣鮮(설양선) : 눈처럼 희고 곱다
• 黃頭(황두) : 중국 한(漢)나라 때 선박을 관리하던 벼슬 이름. 여기서는 지방 관리를 이르는 듯함
• 博(박) : ‘搏(박) - 뺏다. 취하다’와 같은 의미
• 漏田(누전) : 토지 대장에서 누락된 전토
• 督稅(독세) : 세금을 독촉하다
• 星火(성화) : 몹시 급한 일의 비유
• 道發船(도발선) : 도에서 조정으로 세미(稅米) 실은 배를 보냄
? 새로 짜낸 - 고왔는데 : 새로 짠 무명을 자랑스러워하고 만족해 하는 모습이 선연하게 살아 있다.
? 이방 줄 - 뺏어가네. : 지방의 말단 관리조차 그 횡포가 심하였음을 보여 준다.
? 누전 세금 - 급하구나. : 장부에 누락되어 세금 매길 것을 근거가 없는 토지를 재결(災結)로 거짓 보고하여 세금을 앗아가는 지방관의 횡포를 보여 주고 있다.
해설 및 감상
15수로 되어 있는데 작품 중 제 7수이다.
탐진(耽津)은 지금의 전남 강진으로서 다산(茶山) 정약용의 유배지이다. 그 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시절에 농촌의 모습과 농민 생활의 고초를 그린 ‘탐진 촌요’는 ‘탐진 농가(耽津農家)’, ‘탐진 어가(耽津漁歌)’와 더불어 3부작(三部作)을 이루고 있다. ‘탐진 촌요’는 모두 15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 실린 것은 그 중 한 수이다.
이 작품은 관리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눈물겨운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피땀 흘려 짜낸 무명을 황두들이 뺏어가고, 성화 같은 세금 독촉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삶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다산(茶山)의 한시(漢詩) 가운데는 관리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고달픈 삶을 노래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다산은 이런 작품을 통해 당시의 피폐한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을 촉구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가혹한 정치를 이르는 말)’라는 구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絶命詩(절명시) 三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도 하구나.
핵심 정리
• 지은이 : 황현(黃玹)
• 형식 : 칠언절구 (七言絶句)의 우국시
• 제재 : 국권의 피탈(被奪)
• 성격 : 저항적, 우국적, 고백적
• 압운 : 嚬(빈), 淪(륜), 人(인)
• 구성 :
1행 - 국권 피탈의 비극성을 자연물에 감정 이입하여 표현
2행 - 망국의 비애 노래
3행 - 자신의 소임을 생각
4행 -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
• 표현 : 활유법, 대유법
• 주제 : 국난에 대처하는 지식인의 고뇌 또는 일제의 국토 강점에 대한 저항 의지, 국권을 강탈당하는 위기에 처한 지식인의 고뇌
• 출전 : 매천집
시어 구절 풀이
• 鳥獸(조수) : 새와 짐승. 금수(禽獸)
• 哀鳴(애명) : 슬피 욺
• 海岳(해악) : 바다와 산. 해악(海嶽)
• 槿花(근화) : 무궁화. 여기서 '槿花世界(근화세계)'란 우리 나라를 일컬음
• 沈淪(침륜) : 침몰. 몰락
• 掩卷(엄권) : 책을 덮음
• 懷千古(회천고) : 지난 날을 생각함
• 難作(난작) : 하기 어려움
• 識字人(식자인) : 글 아는 사람
? 새와 짐승들도 ~ 찡그리니 : 국권 피탈의 치욕을 자연물과 새, 짐승을 통해 구체화한 표현이다. 번역 과정에서 '새와 짐승들'을 '새짐승'으로 하는 경우도 있음
?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 무궁화는 우리 나라를 뜻하는 대유적 표현이므로 곧 나라가 망해 버렸다는 뜻
? 가을 등불 아래 ~ 생각하니 : '등불'과 '책'에서 이 시와 화자가 지식인임을 알 수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책을 덮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다. 어려운 역사적 현실 속에서의 작자의 고민이 드러난다.
해설과 감상
황현은 소년 시절부터 과거를 통하여 발신할 것을 꾀하였으나, 막상 과거에 급제했을 때는나라의 정사가 이미 기울어져 있었으므로 범연히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후 국권 피탈의 비보가 전해지자, 절명시 네 수를 남기고 조용히 죽음을 택했다. 여기에 실린 것은 그 중 세 번째 작품으로 험난한 역사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처신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으며, 이 시의 정서적 기반을 이루고 있는 사상은 선비적 지조라고 볼 수 있다. 현실적 역사를 이끌어 가는 힘을 갖지 못한 지식인의 불가피한 저항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으며, 황현선생의 죽음은 당시 일본과 세계에 한국인의 기개를 알리는 뜻있는 의미가 되었지만, 자결을 통한 소극적인 저항은 그 분의 순수한 의도하고는 다르게 많은 아쉬움을 담고 있다.
참고 : 절명시 나머지 수
절명시 一
난리를 겪다 보니 백두년(白頭年)이 되었구나.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가물거리는 촛불이 창천(蒼天)에 비치도다.
제 1수에서 작자는 이미 을사년부터 순명을 결심해왔음을 말한다., 창천을 비출 촛불에다 자신의 외가닥 양심을 비유하고 있다. “난리통에 어느새 머리만 허예졌누/그 몇번 목숨을 버리렸건만 그러질 못했던 터/하지만 오늘은 정녕 어쩔 수가 없으니/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만이 아득한 하늘을 비추는구나(亂離滾到白頭年 幾合捐生却末然 今日眞成無可奈 輝輝風燭照蒼天).”
절명시 二
요망한 기운이 가려서 제성(帝星)이 옮겨지니
구궐(久闕)은 침침하여 주루(晝漏)가 더디구나.
이제부터 조칙을 받을 길이 없으니
구슬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조칙에 얽히는구나.
제 2수는 나라의 종언(終焉)을 고하는 양국조서(讓國詔書)이건만 옥음(玉音 : 임금의 음성)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하며 슬퍼하였다.
절명시 四
일찍이 나라를 지탱할 조그마한 공도 없었으니
(내 일찍이 나라 위해 서까래 하나 놓은 공도 없었으니)
단지 인(仁)을 이룰 뿐이요, 충(忠)은 아닌 것이로다.
(내 죽음은 겨우 인을 이룰 뿐 충을 이루진 못했어라)
겨우 능히 윤곡(尹穀 )을 따르는 데 그칠 뿐이요
(이제 겨우 윤곡처럼 죽음에 거칠 뿐)
당시의 진동(陳東)을 밟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구나.
(그때의 진동처럼 나라 위하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윤곡 : 중국 송나라 진사로, 몽골 침입 때 가족이 모두 죽음
※진동 : 중국 송나라 선비로,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상소를 하고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억울하게 죽음
제 4수는 자신이 죽는 것은 충(忠)을 다하고자 함이 아니라 인(仁)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러나 적을 탄핵하다가 참형 당한 진동(陳東)을 본받지 못하고 겨우 몽고병의 침입 때에 자분(自焚)하고 만 윤곡(尹穀)의 뒤나 따를 뿐이라고 통탄하였다. 절명시〉는 우국(憂國)의식이 짙은 높은 수준의 시이다.
取捨人情不足誅 (취사인정부족주) : 취하고 버리는 사람의 인정은..
- 曺植 (조식) -
取捨人情不足誅 : 취하고 버리는 사람의 인정은 족히 나무랄 것도 못되지만(취사인정부족주)
寧知雲亦獻深諛 : 구름마저 그처럼 아첨할 줄 어찌 알았으랴?(녕지운역헌심유)
先乘霽日爭南下 : 먼저는 개인 날 앞다투어 남쪽으로 내려가더니 (선승제일쟁남하)
却向陰時競北趨 : 흐린 날은 다투어 재빨리 북쪽으로 내달려가네(각향음시경북추)
晨興卽事 (신흥즉사) : 새벽 흥을 즐기며
- 李穡(이색) -
湯沸風爐鵲噪簷 : 풍로에서는 물이 끓고 까치는 처마에서 우는데(탕비풍로작조첨)
老妻盥櫛試梅鹽 : 늙은 아내는 세수하고 음식의 간을 맞추네(문노비구현표)
日高三丈紬衾煖 : 해가 높이 오르도록 명주 이불이 따뜻하니(일고삼장주금난)
一片乾坤屬黑甛 : 한조각 하늘과 땅을 낮잠에 맡기네(일편건곤속흑첨)
혹한(酷寒)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北岳高戍削 南山松黑色 북악고술삭 남산송흑생
隼過林木肅 鶴鳴昊天碧 준과림목숙 학명호천벽
북악산 창처럼 깎아지르고 남산의 소나무 검은 빛일세.
솔개 지나자 숲 움츠리고 학 울자 저 하늘이 푸르러지네.
북악산이 오늘 따라 창처럼 날카롭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남산을 보니
남산의 소나무 숲은 아예 파랗다 못해 검게 질렸다.
그 위로 솔개가 한바퀴 선회하자,
숲은 겁먹은 병아리처럼 잔뜩 움츠린다.
학 한 마리 맑은 소리로 울자,
파랗던 하늘에 쨍하니 금이 간다.
제목을 보니, 엄청 추운 날씨였던 모양이다.
춥다는 말 한 마디 안 쓰고 표현해낸 그 솜씨가 놀랍다. - 정민
小艶詩 (소염시) : 규방에서 애만 태우는 여인의 마음...
- (白雲景閑) -
一段風光畵不成 : 고운 맵시 그리려도 그리지 못하리니(일단풍광화불성)
洞房深處說愁情 : 깊은 규방 앉아서 애 타는 심정 (통방심처설수정)
頻呼小玉元無事 : 자꾸 소옥을 부르나, 일 있음이 아니라(빈호소옥원무사)
只要檀郞認得聲 : 오직 님께 제 소리를 알리려는 짓(지요단랑인득성)
*백운경한((白雲景閑)1299~1375)
고려 말기 스님. 스님의 초기 행적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1351년 원나라에 가서 石屋淸珙을 찾아 법을 묻고, 귀국하여 1353년 端坐思念 끝에 도를 깨치다.
1357년(공민왕 6년) 왕이 입성하라는 부름이 있었으나 이를 사양하다. 1360년 해주 신광사에서
종풍을 드날리다가 이듬해 신광사를 떠나 김포의 망산에 은거하면서 指空讚(지공찬)을 지었다.
1375년 사람들을 모아놓고 최후를 말한 후 임종게를 남기고 취암사에서 입적에 들다.
저서로는 <백운록>2권이 있다.
望月
- 宋翼弼 (송익필) -
未圓常恨就圓遲 : 둥글기 전에는 더디게 둥글어짐을 한탄하더니
圓後如何易就虧 : 둥근 후에는 어찌 그리 쉽게 이지러지느뇨
三十夜中圓一夜 : 서른 밤 중에 둥근달은 단 하루
世間萬事摠如斯 : 백년의 모든 인생도 모두 이와 같지 않은가 ...
1534(중종 29)~1599(선조 32).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龜峯). 아버지는 천문학관 사련(祀連)이다.
할머니가 안돈후(安敦厚)와 비첩(婢妾)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庶女)였으므로
그의 신분도 서얼(庶孼)이었다. 아버지 사련이 안돈후의 손자 처겸(處謙)을 역모자로
고변(告變)하여 안씨 일가를 멸문시켰다. 이 공으로 사련은 당상관에 오르고 부유해졌다.
그러나 죄상이 밝혀져 1566년(명종 21)에 안씨 일가에 직첩이 환급되었다.
따라서 송익필은 서얼인데다 아버지 사련의 죄로 인해 과거를 볼 수 없었고,
이후 출세의 길이 막히고 말았다. 과거를 단념하고 경기도 고양(高陽) 귀봉산 밑에서
학문을 닦으며 후진을 가르쳤다. 이이·성혼과 교유했으며, 무이시단(武夷詩壇)을 주도하여
당대 8문장의 한 사람으로 문명을 날렸다.
탁월한 지략과 학문으로 세인들이 '서인(西人)의 모주(謀主)'라 일컬었다.
1584년(선조 17) 이이가 죽자 동인(東人)의 질시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동서의 공방이 심해지는 가운데 동인의 사주를 받은 안씨 일가에서 그의 신분을 들어
환천(還賤)시켜 줄 것을 제소했다.
1586년(선조 19) 마침내 그의 형제를 비롯해 일족 70여 인이 환천되었다.
이후 그는 김장생·정철·이산해의 집을 전전하며 숨어 지냈다.
이름을 바꾼 그는 황해도에서 복술가(卜術家)로 변신하고 부유한 토호들을 꾀어
호남에 있는 정여립을 찾게 만들었다. 그런 뒤 정여립이 모반을 꾀한다고 고변을 하여
1589년(선조 22)의 기축옥사(己丑獄事)를 일으키는 배후조종자 역할을 했다.
은인인 이산해가 궁중과 결탁해 세력을 굳히려 하자 시로써 풍자한 것 때문에
이산해의 미움을 사서 극지에 유배를 당하게 되었다.
1592년(선조 25) 유배중 임진왜란을 당해 명문산(明文山)으로 피했다가
면천(沔川)에서 김진려의 집에 기식하다 1599년(선조 32) 66세로 객사했다.
그후 제자들이 신원소(伸寃疏)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751년(영조 27)에야 신원되어 통덕랑사헌부지평(通德郞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학문적으로는 사변적인 이론보다 실천 윤리인 예(禮)를 통해 이(理)에 접근할 것을 중시했다.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은 그의 제자이다.
문학적으로는 시·문에 다 능해 시는 성당시(盛唐詩)를 바탕으로 청절(淸絶)했으며,
문은 고문(古文)을 주장하여 논리가 정연한 실용적인 문체를 사용했다.
〈제율곡문 祭栗谷文〉은 조선시대 23대 문장의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이며,
〈은아전 銀娥傳〉은 당대로서는 보기 드문 전기체(傳記體)의 글이다.
저서로 문집 〈구봉집〉이 있다.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 이민홍 편역, 옛 노래 속의 浪漫戀人낭만연인, 국일미디어, 2005. 38-39쪽에서
折花行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牡丹含露眞珠顆
새색시 꺾어 들고 창가를 지나네 美人折得窓前過
웃음 띤 얼굴로 신랑에게 묻기를 含笑問檀郞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花强妾貌强
짓궂은 신랑 장난치기를 檀郞故相戱
꽃이 더 예쁘구려 强道花枝好
꽃이 더 예쁘단 말에 삐진 새색시 美人妬花勝
꽃가지를 밟아 짓이겨 버리네 踏破花枝道
꽃이 저보다 더 좋으시다면 花若勝於妾
오늘밤 꽃과 함께 주무시구려 今宵花與宿
折절 꺾다 牧丹모란 모란 含함 머금다 露로 이슬顆과 낟알 過과 지나가다 檀郞단랑 신랑
妾첩 첩, 여기서는 신부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故고 짐짓, 일부러 强강(여섯째 줄) 억지로妬투 질투하다
勝승(일곱째 줄) 낫다踏破답파 밟아 짓이기다枝지 가지 若약 만약於어 ~보다 宵소 밤與여 더불어, ~와 함께
宿숙 자다
“자기! 나 예뻐?” “여보! 나 어때요?”
옷을 들어 몸에 대보거나 모자를 골라 쓰고서, 혹은 팔짱을 끼고 거닐다
리어카의 예쁜 액세서리를 들어 흔들어 보이며 흔희들 하는 말이다.
“이야! 정말 예쁜데.... 그 옷 정말 멋있네!” 좋으면서도 일부러 농을 하는 애인. 애인이 농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왜 이리 맘은 토라지는지.....
이 시에는 그런 정겨운 연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언제인가의 어렴풋한추억을 되새기게 해 주듯이.
연애의 즐거움이란 먼 곳에 있지 않다. 생활의 행복이란 결코 파랑새처럼
저 산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애인과 나누는 말 한 마디, 지금 남편과 아내가 마주보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그 흔한 풍경을 포착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법. 여기서 시인의 안목을 발견하게 된다.
이규보가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규보는 해동의 위대한 나라, 고려의 대 재상이었다. 그의 명성은 이미 그 당시에 국경을 넘어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재상 이규보는 위풍당당하고 근엄한 사람이었지만 이렇듯 섬세하고 아름다운 시를 짓기도 했다.
山民 산속에 사는 사람
김창협 金昌協 1651(효종 2) ~ 1708년(숙종 34)
下馬問人居 말에서 내려 주인 계시오 하였더니,
婦女出門看 부녀가 문을 열고 내다본다.
坐客茅屋下 손님을 띠집 안에 모셔 앉히고
爲客具飯餐 음식상을 차려 내온다.
丈夫亦何在 남편은 어디 가셨습니까?
扶犁朝上山 따비를 메고 아침에 산에 갔는데
山田苦難耕 산밭이 참으로 갈기 어려워
日晩猶未還 저물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四顧絶無隣 사방을 돌아봐도 이웃이 없고
鷄犬依層巒 닭과 개만 언덕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中林多猛虎 숲속엔 맹수들이 많아
采藿不盈盤 나물도 그릇 가득 캐지 못한단다.
哀此獨何好 딱하구나. 무엇이 좋아서
崎구山谷間 이 험한 산골에 살고 있을까.
樂哉彼平土 좋지요. 저 평지에 가서 산다면야.
欲往畏縣官 가고파도 탐관오리 무서워 못간다오.
깊은 산 속에 오두막이 하나 있었겠지요. 해도 저물고 해서 하룻밤 묵어갈 요량으로
나그네가 주인을 부릅니다. 아낙과 그집 어린 딸아이가 문을 열고 내다봅니다.
손님을 모셔 앉히고 음식상을 차려내옵니다. 나그네가 묻습니다.
바깥어른은 어디 가셨습니까? 대답합니다. 따비를 메고 밭을 일구러 나갔는데
밭이 거칠어 일구기가 참 어렵답니다. 날이 저물었는데도 아직 안 오시는군요.
나그네는 사방을 한 번 둘러봅니다. 이웃 없는 외딴집에 기르는 닭과 개들만 집 근처 언덕에 돌아다닙니다.
숲속에 맹수들이 많아서 나물도 제대로 못캔다고 합니다.
나그네가 물어봅니다.
이런 곳이 뭐가 좋아서 여기 들어와 삽니까?
대답합니다.
아, 논밭 많은 평야지대에 살면 좋은 줄이야 누가 모릅니까. 탐관오리들 때문에 못가는 것이지요.
백성들 피를 빨아먹는 잔학무도한 탐관오리들. 그놈들에게 시달리느니 차라리 여기 숨어사는 게 마음 편하답니다.
김창협은 자는 중화(仲和)이고, 호는 농암(農巖), 동음거사(洞陰居士), 한벽주인(寒碧主人) 등이며, 시호는 문간(文簡), 본관은 안동(安東)입니다.
위의 시는 그의 문집 <농암집>에 실려 있습니다.
鑿氷行 얼음 뜨는 자들을 위한 노래
김창협 金昌協 1651(효종 2) ~ 1708년(숙종 34)
季冬江漢氷始壯 늦겨울 한강에 얼음이 꽁꽁 어니
千人萬人出江上 사람들 우글우글 강가로 나왔네.
丁丁斧斤亂相鑿 꽝꽝 도끼로 얼음을 찍어 내니
隱隱下侵馮夷國 울리는 소리가 용궁까지 들리겠네.
鑿出層氷似雪山 찍어낸 얼음이 산처럼 쌓이니
積陰凜凜逼人寒 싸늘한 음기가 사람을 엄습하네.
朝朝背負入凌陰 낮이면 날마다 석빙고로 져나르고
夜夜椎鑿集江心 밤이면 밤마다 얼음을 파 들어가네.
晝短夜長夜未休 해짧은 겨울에 밤늦도록 일을 하니
勞歌相應在中洲 노동요 노래소리 모래톱에 이어지네.
短衣至肝足無扉 짧은 옷 맨발은 얼음 위에 얼어 붙고
江上嚴風欲墮指 매서운 강바람에 언 손가락 떨어지네.
高堂六月盛炎蒸 고대광실 오뉴월 무더위 푹푹 찌는 날에
美人素手傳淸氷 여인의 하얀 손이 맑은 얼음을 내어오네.
鸞刀擊碎四座徧 난도로 그 얼음 깨 자리에 두루 돌리니
空裏白日流素霰 멀건 대낮에 하얀 안개가 피어나네.
滿堂歡樂不知暑 왁자지껄 이 양반들 더위를 모르고 사니
誰言鑿氷此勞苦 얼음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君不見 그대는 못보았나?
道傍暍死民 길가에 더위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多是江中鑿氷人 지난 겨울 강위에서 얼음뜨던 자들인 걸.
*간(骨+干), 비(尸+非), 갈(日+曷), 편(두인변+扁) -
조선시대에는
겨울에 강에 언 얼음을 떼어다가 석빙고에 저장을 했습니다.
얼음을 떼어내는 일은 부역으로 차출된 사람들 몫이었지요.
조정에서 날을 잡아서 부역꾼들을 동원하여 몇날 며칠을 쉬지 않고 얼음을 떼어냈습니다.
허름한 반바지 차림으로 맨발로 더위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길가에는 굶주리고 병들어서 습니다.
죽은 그 백성은 지난 겨울 맨발로 얼음 위에서 부역하던 사람이었습니다.
山居 (산거) : 산에 사노라면... - 李仁老 (이인로) -
春去花猶在 : 봄은 지났건만 꽃은 아직 남아 있고 (춘거화유재)
天晴谷自陰 : 하늘은 개었는데 골짜기는 어둑하구나 (천청곡자음)
杜鵑啼白晝 : 두견새 한낮에도 구슬피 우니 (두견제백주)
始覺卜居深 : 비로소 깨닫네, 내가 깊은 산에 사는 것을...(시각복거심)
1152(의종 6)~1220(고종 7).
고려 중기 무신집권기의 문인.
본관은 인주(仁州). 초명은 득옥(得玉). 자는 미수(眉叟), 호는 쌍명재(雙明齋).
평장사 오( )의 증손으로 문벌귀족의 가문 출신이지만,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화엄승통(華嚴僧統) 요일(寥一) 밑에서 자랐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의 난을 피해 승려가 되기도 했다.
환속하여 1180년(명종 10) 문과에 급제한 뒤 문극겸의 천거로 한림원에 보직되어
14년간 사국과 한림원에 출입했다.
당시의 이름난 선비인 오세재·임춘 등과 죽림고회를 만들고 시와 술을 즐겼는데,
중국의 죽림7현(竹林七賢)을 흠모한 문학 모임이었다.
그의 문학세계는 선명한 회화성을 통하여 탈속의 경지를 모색했으며,
문은 한유의 고문을 따랐고 시는 소식을 숭상했다.
최초의 시화집인 〈파한집 破閑集〉을 저술하여 한국문학사에 본격적인 비평문학의 길을 열었다.
이 책에는 자작시가 많이 들어 있는데, 자작시만 들어 있는 것도 13화(話)에 이르고 있다.
또한 그는 용사(用事) 위주의 시론을 전개했다. 즉 시를 지음에 있어서 용사의 정묘함을 제일로 쳤으나,
그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험벽(險辟 : 뜻이 어렵고 잘 쓰지 않는 글자로, 이런 글자가 들어 있으면
시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함)한 용사는 배격했으며,
남의 문장을 본떠서 형식을 바꾸어도 새로운 뜻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좋은 시란 표현기교가 뜻을 따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갈고 닦는 공을 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천연미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저서로 〈은대집 銀臺集〉 20권, 〈후집 後集〉 4권, 〈쌍명재집〉 3권,
〈파한집〉 3권을 저술했다고 하나, 현재 〈파한집〉만 전하며,
〈 동문선〉과 〈보한집〉에 120여 편의 시문이 남아 있다.
漉米嘆 쌀 건지는 노래
김종직(金宗直) 1431(세종13) ~ 1492(성종23)
[원문 주석] 조운선(漕運船)이 침몰하자, 즉시 흥덕현감(興德縣監), 부안현감(扶安縣監), 검모포 권관(黔毛浦權管)에게 명하여, 여덟 고을의 군사들을 독책해서 바다에 잠긴 쌀을 건지게 하여, 3천 7백여 석을 건져냈다. 닷새가 지난 뒤 건진 쌀은 썩어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漉米滄海中 깊은 바다에서 쌀을 건지니
海暗風不息 바다 어둡고 바람도 거칠다.
人持鐵龍爪 사람들은 쇠 갈쿠리를 들고
崖岸螽蝗集 바닷가에 메뚜기떼처럼 모였다.
東西望壞版 부서져 떠 있는 판자를 바라보니
其下有堆積 그 밑에 잔뜩 쌀이 쌓여 있구나.
潮頭卷連山 산 같은 바닷물이 들이닥치면
折趾仍却立 멈칫 뒤로 물러섰다가
乘退共拽出 물이 나가면 그 사이 함께 끌어내는데
一斛動十力 한 가마 건지는 데 열 사람이 달려든다.
近岸或可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건질 수 있겠으나
大洋誰蹤跡 바다 안에 잠긴 건 누가 가서 건지랴.
厥數萬八千 침몰된 숫자가 모두 일만 팔천 석인데
五分纔一獲 그중에 겨우 오분의 일만 건졌네.
淹旬不出水 열흘 동안이나 물에서 못 꺼낸 건
臭味俱穢惡 썩는 냄새가 진동하여
百步不可近 백 보 거리도 접근할 수 없으니
大豕亦將殼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으리라.
抑配彼農民 그 쌀을 강제로 농민에게 분배하니
嗚呼非令式 아, 그것은 좋은 법령이 아니다.
不如姑置之 차라리 그곳에 그대로 두어서
留與黿鼉食 물고기 밥이나 되게 함이 나을텐데.
漉(水+鹿), 종(冬+蟲-1), 拽(手+曳), 蹤(足+從), 纔(겨우 재, 讒자에 말씀언을 빼고 실사를 더한 글자), 원타(黿은 鼈자의 윗부분에 폐 자를 빼고 元자를 더한 글자)
< 한국문집총간 12집-379쪽a >
조선시대에는 남쪽지방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배에 실어 서해안을 거쳐 서울로 운반하였는데, 중간에 배가 파선하여 곡식이 바다에 잠기면, 그것을 건져서, 먹지 못할 정도로 젖어 부패한 쌀을 인근 고을 백성들에게 강제로 나누어주고 이듬해 가을 추수 때에 그 분량만큼을 새 곡식으로 거두어갔다
詠 李上舍鶴 四美亭 이상사(학)의 사미정을 읊다.
김인후(金麟厚) 1510(중종5) ~ 1560(명종15)
江雲一雨肥 강 구름이 비 한번 넉넉히 내려
南畝看春耕 남녘들 봄갈이가 볼 만하더니
日夜自生息 밤낮의 기운 받아 싹이 나와서
欣欣苗向榮 무럭무럭 곡식들 잘도 자랐네.
把鋤去稂莠 호미로 들에 나가 김을 매주니
漸見秋實成 차츰 가을 이삭이 여물어갔지.
兒童驅雀鼠 아이들 새 쥐 지켜 거둬들이니
一廛輸易榮 한 뙈기 농부 살림이 풍족하구나.
且詠蟋蟀唱 이제 실솔(蟋蟀) 노래 읊조리면서
酌醴諧性情 숨돌려 한잔 술이나 즐겨볼거나.
< 右農 ;위는 농사짓기를 읊은 것 > 랑유(禾+良, 艸+秀), 영(羸-羊+貝), 실솔(귀뚜라미)
* 실솔노래: 시경 당풍에 나오는 실솔.
가을걷이를 마치고 한창 바쁘던 농사철이 지나고 나서
추위가 닥칠 때쯤에 귀뚜라미가 대청에 올라감.
이 때가 되면 농부들은 다소 한가로워짐.
蠶月麗景遲 누에철 다가와 날 따스하니
濕桑柔始敷 언덕 뽕나무 잎이 피었네.
攀條輟其葉 가지 잡아당겨 그 잎 따다가
采采看朝哺 아침 저녁 풍성하게 먹이 주었지.
矗矗佇三眠 꿈틀꿈틀 석 잠을 기다렸더니
滿箔奇功輸 잠박 가득 고치들 기특도 해라.
新絲足自給 새 명주실은 쓰기 넉넉하고
不見充官租 나라에선 세금으로 빼앗지 않네.
萬室樂太平 집집마다 태평시대 함께 즐기어
鼓舞歌康衢 흥겨이 강구노래를 부르는구나.
< 右桑 ;위는 누에치기를 읊은 것 > 습(濕-水+좌부방), 철(手+輟-車), 포(日+甫), 촉촉(蟻-義+蜀, ..)
* 隰桑: 시경 소아 습상에서 글자를 인용해서 쓴 것임.
시경의 주석에 의하면, 습하고 낮은 지역에서뽕나무가 잘 자란다고 하였는데, 통상 우리나라 뽕밭은 언덕진 곳에 있으므로, 위와 같이 번역하였음.
* 강구노래: 강구는 사통팔달의 큰 길을 말함. 옛날에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린지 50년이 지나서 미복차림으로 여론을 살피러 나갔더니, 길거리 아이들이 태평성대를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함.
이후 이 낱말은 태평시대를 상징하는 뜻으로 사용됨.
向晩理煙艇 저물녘에 조각배 손질좀 해서
滄波垂釣絲 푸른 물결에 낚시줄 드리웠네.
寓興非爲魚 취미일 뿐, 고기 잡자는 건 아니지만
有得猶可怡 낚이면 그래도 마음 즐겁지.
呼童貫之柳 아이 불러 버들가지 꿰어 들리니
皓月山前窺 하얀 달이 산 앞으로 고개 내미네.
繁思赤壁遊 예전 적벽놀이를 상상해 보니
宛爾同襟期 지금이 옛 정취 그대로구나.
更有暮雪時 다시 저녁눈이 내릴 양이면
蓑笠君知誰 도롱삿갓을 그대는 알아 볼런지.
< 右漁 ;위는 고기잡이를 읊은 것 > 번(番+羽)
* 적벽놀이: 송나라 소식이 적벽강에서 뱃놀이한 일을 말함.
적벽강에서 뱃놀이한 일을 주제로 하여 적벽부라는 유명한 작품을 남겼음.
* 도롱삿갓 : 유종원의 강설(눈내리는 겨울강)에서 배경 이미지를 따왔음.
靑山臨碧水 푸른 산이 푸른 물을 내려다 보니
煙霧生其間 연기 안개 그 사이서 피어오르네.
腰鎌者誰子 허리에 낫을 찬 자 저게 누군가
逕路工躋攀 사잇길 익숙히 잘 오르는 걸.
長歌采薪蒸 노래가락 뽑으며 나무를 하니
幽興飛孱顔 흥겨움은 날아 산 마루 넘네.
日夕始歸來 날 저물어 비로소 집을 향하니
栖鳥相與還 새들도 둥지로 돌아가는군.
偶此入吾賞 우연히 나는 이 광경 보게 된 거라
寧知彼行艱 저들의 고생을 어찌 알리오.
< 右樵 ;위는 나무하기를 읊은 것 >
躋(足+齊) <한국문집총간 33집 河西全集 卷二>
菊 국화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선조13) ~ 1658(효종9)
繞舍循除皆種菊 집둘레와 섬돌가에 온통 국화 심었더니
開窓隨處可看花 창문 열면 곳곳마다 국화꽃 만발했네
翻嫌堆岸黃金色 꽃더미 언덕 이뤄 황금색이 넘쳐나니
却似貪錢富貴家 돈만 아는 부귀가라 남들이 욕하려나
번(飜-飛+羽)
有感 슬픔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선조13) ~ 1658(효종9)
世事不堪說 세상 일 차마 말은 못하지만
心悲安可窮 슬픔이 어찌 끝이 있으랴
春風雙涕淚 봄 바람에 두 줄기 눈물 흘리며
獨臥萬山中 홀로 깊은 산속에 누워 있다네
觀史有感 옛 역사를 보면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선조13) ~ 1658(효종9)
古史不欲觀 옛 역사는 보고 싶지가 않아
觀之每迸淚 볼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걸.
君子必困厄 군자들은 반드시 곤액을 당하고
小人多得志 소인들은 득세한 자들이 많으니.
垂成敗忽萌 성공할 즈음이면 문득 패망 싹트고
欲安危已至 안정 될듯하면 이미 위태함 따르네.
從來三代下 삼대시대 이후로는 오늘날까지
不見一日治 하루도 제대로 다스려진 적 없다오.
生民亦何罪 백성들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冥漠蒼天意 저 푸른 하늘의 뜻 알 수가 없네.
旣往尙如此 지난 일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而況當時事 하물며 오늘날의 일이겠는가.
병(책받침+幷)
有客 나그네
김시습 金時習 1435(세종17)~1493(성종24)
有客淸平寺 나그네 청평사에서
春山任意遊 봄 산 경치 즐기나니.
鳥啼孤塔靜 새 울음에 탑하나 고요하고
花落小溪流 지는 꽃잎 흐르는 개울물.
佳菜知時秀 때를 알아 나물은 자랐고
香菌過雨柔 비 지난 버섯은 더욱 향기로워.
行吟入仙洞 시 흥얼대며 신선골 들어서니
消我百年憂 씻은 듯이 사라지는 근심 걱정.
牙蚛 벌레먹은 어금니
김시습 金時習 1435(세종17)~1493(성종24)
伊昔少年日 옛적 젊은 시절에는
瞠眉決彘肩 눈 부릅뜨고 돼지다리 뜯었는데
自從牙齒齵 어금니 벌레먹은 뒤로는
已擇脆甘嚥 무르고 단 것만 가려서 먹는다네
細芋烹重爛 작은 토란도 삶은 걸 또 삶고
兒鷄煮復煎 어린 닭도 익히고 또 익히네
如斯得滋味 이렇게 해야 먹을 수가 있으니
生事可堪憐 사는 일이 참 불쌍타 하겠네
중(蟲/3+中) 벌레 한 마리 '충'자 + 가운데 '중' 자
당(目+堂), 체(돼지), 우(齒+禹 충치)
自詠 내 모습
권호문 1532(중종27)~ 1587(선조20)
偏性獨高尙 모난 성격 홀로 고상함을 지켜
卜居空谷中 텅 빈 골짜기에 집 짓고 살지.
囀林鳥求友 숲속엔 벗 찾는 새소리 맑고
落砌花辭叢 섬돌엔 나풀나풀 어여쁜 꽃잎들.
簾捲野經雨 주렴드니 들에는 지나가는 빗줄기
襟開溪滿風 옷깃 가득 안겨드는 시원한 냇바람.
淸吟無一事 일없이 청아한 한 수 시를 읊으니
句句是閑功 구절구절 참 이렇게 한가로울 수가.
* 전(口+轉), 체(石+切)
苔磯釣魚 이끼 낀 물가에서 낚시 드리우고
김 류 1571(선조4)~ 1648(인조26)
日日沿江釣 날마다 강가에서 고기 낚는데
呑釣盡小鮮 낚시 무는 놈은 모두 잔챙이.
誰知滄海水 누가 알까, 저 푸른 바닷물 속에
魚有大於船 배보다 더 큰 고기 있음을.
김류(金流+玉)는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인조반정의 주역입니다. 위의 시는 그의 문집 <북저집(北渚集), 한국문집총간79집 10p>에 나옵니다.
嘲鼠 쥐를 비웃다.
권구 (權구) 1672(현종13)∼1749(영조25)
爾本無家依我屋 너는 집도 없어 내 집에 사는데
旣依胡乃反穿爲 네가 사는 집에 구멍은 왜 뚫나.
固知爾亦無長慮 너 정말이지 생각이 짧구나
我屋顚時爾失依 내 집 무너지면 너도 살 곳 없는데.
권구는 자는 방숙(方叔), 본관은 안동(安東)입니다.
위의 시는 그의 문집인 <병곡집(屛谷集)>에 실려 있습니다.
鬪者 싸우는 두 사람
권구 (權구) 1672(현종13)∼1749(영조25)
怒臂相交千인側 성난 두 사람 천길 벼랑 위에서 싸우니
懸知飄碎在須臾 떨어지면 그 자리서 가루가 되는 거야.
可憐利害相形處 정말 불쌍쿠나. 이익 손해 따지는 것
只見絲毫不見軀 터럭 같은 이익 앞에 제 몸을 아니 보네.
忍字 참아야지 참아야지
권구 (權구) 1672(현종13)∼1749(영조25)
工夫須向一忍求 공부란 모름지기 참을 인자를 찾아야 해
忍到熟時方自好 참는 것이 익숙하면 참으로 좋은 거야.
看他衆人煩惱處 저 많은 사람들은 번뇌 속을 헤매지만
自家胸中還浩浩 내 마음은 도리어 넓고 넓은 바다 같애.
花園帶鋤 (화원대서) 꽃밭에 호미 메고
강희맹 姜希孟 1424(세종6) ~ 1483(성종14)
荷鋤入花底 (하서입화저) 호미 메고 꽃 속에 들어가
理荒乘暮回 (이황승모회) 김을 매고 저물녁에 돌아오네.
淸泉可濯足 (청천가탁족) 맑은 물이 발 씻기에 참 좋으니
石眼林中開 (석안림중개) 샘이 숲속 돌틈에서 솟아나오네.
강희맹(姜希孟, 1424년 ~ 1483년)은 조선 초기 문신이다. 뛰어난 문장으로 유명하며 화가이기도 하였다.
자는 경순, 호는 사숙재(私淑齋), 국오(菊塢), 운송거사(雲松居士)등을 사용하였고, 시호는 문량, 본관은 진주이
돈녕부 지사 강석덕(姜碩德)의 차남이며, 문종,세조와 이종간이다.(강석덕은 세종의 아랫 동서)[1]
세종 29년(1447년) 문과 친시에 을과1등위로 급제하였으며, 예종 때 남이를 죽인 공으로 익대공신이 되었다.
성종 때에는 이조판서·좌찬성 등을 지냈다.
그는 서화와 문장이 뛰어났으며, 그가 죽은 뒤 서거정에 의하여 유고가 편찬되었다.
저서로 <사숙재집> <촌담해이> 등이 있다.
원망
- 조신준(曺臣俊, 1573-?)-
金風凋碧葉 玉淚鎖紅頰
瘦削只緣君 君歸應棄妾
갈바람에 잎은 지고 붉은 뺨엔 눈물만. 님 때문에 수척한 몸 돌아와선 버리시리.
금풍(金風), 즉 가을 바람은 푸르던 잎을 금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하염없이 지는 눈물 붉은 뺨위로 흐른다. 금세 오마던 님은 가을에도 소식 한 장 없다.
마음은 님이 다 가져가고 뼈만 남았다. 허깨비처럼 넋 놓고 앉아 님만 기다린다.
님이 오셔도 뼈만 남은 내 몰골 보기 싫다며 버리고 떠나시겠지.
기다리다 애가 타서 이리 된 줄도 모르고 말이다. 세상일 참 공평치가 않다.
어느 시인은 노래하였습니다.
하르르 지는 꽃잎과 지구 사이에 서려 있는 아득한 그리움을 시는 본다고.
하여 그리움은 틀림없는 물질이라 합니다.
- 옛 님 생각
/ 민사평(閔思平)
情人相見意如存 須到黃龍佛寺門
氷雪容顔雖未覩 聲音仿佛尙能聞
정인상견의여존 수도황룡불사문 빙설용안수미관 성음방불상능문
고운 님 보고픈 생각이 나면 황룡사 문 앞으로 달아 오소서.
빙설 같은 얼굴이야 비록 못 봐도 방불(흐릿하거나 어렴풋함)한 그 목소린 여태 들려요.
살다 보면 문득 가버린 님이 생각날 때가 있겠지.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말도 못하게 그리운 날이 있겠지. 그대!
살다가 그런 날 만나게 되거든 아무 말 말고 황룡사 문 앞으로 찾아오소서.
빙설처럼 고운 그 모습이야 보이지 않겠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앞에 서면
그 님의 그 목소리가 지금도 소곤소곤 들려옵니다.
따뜻한 봄 햇살에 종다리들 하늘 꼭대기까지 조잘대며 올라가고,
우리 사랑했던 아름답던 시간들
주춧돌 위에 여태도 남아 반짝입니다.
무지개로 걸리던 빛나던 맹세는 어디로 갔을까?
사랑했던 그 사람은 어디에 숨었나?
잊었던 그 사랑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날이면, 맺지 못한 꿈이 안타까운 날이면,
나는 기둥만 남은 황룡사 일주문 앞에 와서 눈감고 그 기둥에 기대곤 합니다. 더엉, 덩 ..
민사평(閔思平) 1295(충렬왕 21)~1359(공민왕 8).
고려 후기의 문신.
시서(詩書)를 즐기고 학문에 힘을 써서 이제현·정자후(鄭子厚) 등과 함께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6편의 소악부를 남겨 한시가 민족문학으로서 적극적인 의의를 가질 수 있게 했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탄부(坦夫), 호는 급암(及庵). 찬성사 적(頔)의 아들이며,
정승 김륜(金倫)의 사위이다. 일찍이 산원·별장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예문춘추관수찬(藝文春秋館修撰)·예문응교(藝文應敎)·
성균대사성·감찰대부를 거쳐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충정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던 공으로 충정왕이 즉위한 1348년 도첨의참리(都僉儀參理)가 되었다.
그뒤 수성병의협찬공신(輸誠秉義協贊功臣)의 호가 주어졌고,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贊成事商議會議都監事)에 이르렀다.
〈동문선 東文選〉에 시 9수가 전하며, 저서로 〈급암집〉이 있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있다.
靑山兮要(청산혜요) 청산은 나를 보고 나옹선사(懶翁禪師)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는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惜兮 (료무애이무석혜)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탐(貪),진(嗔),치(痴) 삼독(三毒)을 소멸 함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법성(法性)이기에 탐욕도 성냄도 어리석음도모두 털어버리고말없는 청산을 닮고티 없는 창공 같은 마음으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계를 찾아물흐르듯이 거역함이 없는참 나의 삶을 찾으라는 나옹선사의법문이군요. 진공묘유의 참 법리를산중중생도 깨우치기가이리도 어려운데... 사바중생인 울님들이선사님의 참 법도를어이다 이루오리까... 그냥그저 유형을 해매다가무형이 마음자리에 들거들랑그자리가 견성성불 임을깨우치고 감복해야지요...^^
혜근 (慧勤) 1320~1376
고려 말의 고승. 속성 牙(아). 초명 원혜(元慧). 호 나옹(懶翁). 시호 선각(禪覺). 영해(寧海) 출생.
20세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하여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에게서 득도하고,
1348년(충목왕 4) 원나라에 가서 연경의 고려 사찰인 법원사에서 인도 승려 지공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견문을 더욱 넓히기 위해 중국 각지를 편력하며, 특히 평산처림 (平山處林)과 천암 원장에게서
달마로부터 내려오는 중국선(禪)의 영향를 받았다.
고려가 자주국가로서의 면모를 회복하고자 노력할때,나옹은 중국에서 선의기개를 떨치고 1358년(공민왕 7)귀국, 1361년 왕의 요청으로 신광사에 머물며 홍건적의 침입때 사찰을 지켰는데, 그 뒤는 광명사와 회암사에 머물렀다.
1371년 왕사가 되어 화암사에 있으면서, 1376년(우왕 2) 문수회를 열었는데 사람들이 다투어 모여들어 대혼란이 일자, 조정에서 밀양 영원사(瑩源寺)로 이주하도록 하였는데,가는 도중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졸 하다.
賞秋 (상추) : 가을의 노래 ...
- 西山大師 (서산대사) -
遠近秋光一樣奇 : 가을빛이 멀거나 가까우나 하나같이 모양이 기이하다 (원근추광일양기)
閑行長嘯夕陽時 : 석양에 휘파람 불며 한가로이 걸어가며 (한행장소석양시)
滿山紅綠皆精彩 : 온 산이 붉고 푸른 것과 모두 맑고 고운 빛깔과 (만산홍록개정채)
流水啼禽亦說詩 : 흘러가는 물과 새들의 울음소리 또한 시로다... (유수제금역설시)
1520(중종 15)~1604(선조 37). 조선 중기의 승려·승병장.
휴정 /휴정 영정, 전남 해남군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묘향산인(妙香山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린다. 휴정은 법명이다.
아버지는 향관(鄕官)을 지낸 세창(世昌)이며, 어머니는 김씨(金氏)이다. 9세 때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봄에 아버지마저 죽자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의 양자로 들어가 서울로 옮겼다. 12세 때 성균관에 들어가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힌 다음 15세 때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했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지리산의 화엄동(華嚴洞)·청학동(靑鶴洞)·칠불동(七佛洞) 등을 유람하다가 숭인장로(崇仁長老)의 권유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5년 동안 〈전등록 傳燈錄〉·〈염송 拈頌〉·〈화엄경〉·〈능엄경 楞嚴經〉·〈반야경〉·〈원각경 圓覺經〉 등의 교리를 탐구하다가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머리를 깎았으며, 1540년(중종 35)에 일선(一禪)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뒤 부용영관(芙蓉靈觀)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공부에만 전념했다. 1549년(명종 4) 승과에 합격했으며,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 올랐다. 1556년 선교양종판사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를 버리고 금강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선수행과 후학지도에 전념했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났을 때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선조의 직접 신문에 의해 무죄가 입증되어 석방되었다. 이때 선조와 휴정이 주고받은 시가 그의 문집에 실려 전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부탁을 받고 전국에 격문을 보내어 의승군(義僧軍)의 궐기를 호소했다. 자신은 순안 법흥사(法興寺)에서 문도 1,500명으로 승군을 조직했으며, 평양탈환작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선조가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에 임명하자,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제자인 유정(惟政)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승군을 이끌고 나가 호위한 후 승군장의 직에서 물러나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이때 선조는 국일도 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라는 존칭과 함께 정2품 당상관의 작위를 내렸다.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앉은 채로 입적했다.
당시 불교는 조선왕조의 계속된 억불정책으로 사회경제적인 토대를 박탈당했으며, 사림의 등장으로 성리학적 질서에 의해 사회체제가 재편되고 불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면서 국가제도권에서 탈락하여 산간총림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휴정은 이러한 때에 불교교단의 존립과 국가 전체의 안위를 의식하고 이에 대처했다. 그는 선종 가운데서도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을 가장 중시했으며, 화두로는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을 강조했다. 교학에 대해서는 선 수행에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만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러한 사교입선(捨敎入禪)적 입장에서 그는 종래 선종에서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중시해온 〈능엄경〉과 〈반야경〉을 비판했다. 또 휴정은 염불을 인정했는데, 이때의 염불은 사후에 서방극락으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아미타불을 찾는 자성미타(自性彌陀)의 차원이었다. 즉 염불도 선 수행의 일종이었다. 실천으로서 그가 인정한 경전공부와 선 수행 및 염불은 조선 후기에 불교교단의 공통된 수행방법으로 체계화되었다. 유(儒)·불(佛)·도(道)의 3교는 명칭만 다를 뿐 그 가르침의 근본은 같다는 3교일치를 주장하기도 했으며, 성리학의 도통관(道統觀)에 대비되는 불교의 법통관을 새로 제시하여 임제종의 전통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는 1,000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명유정(四溟惟政)·편양언기(鞭羊彦機)·소요태능(逍遙太能)·정관일선(靜觀一禪)의 4대 제자가 조선 후기의 불교계를 주도하게 되었다. 저서로는 문집인 〈청허당집 淸虛堂集〉을 비롯하여 〈선교석 禪敎釋〉·〈선교결 禪敎訣〉·〈심법요초 心法要抄〉·〈삼가귀감 三家龜鑑〉·〈설선의 說禪儀〉·〈운수단 雲水壇〉 등이 있다.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탑이 세워졌으며, 해남 표충사(表忠祠)와 밀양 표충사 및 묘향산의 수충사(酬忠祠)에 제향되었다.
渤海懷古
圃隱 鄭夢周(포은 정몽주)
唐室勞師定海東(당실노사정해동)
太郞隨起作王宮(태랑수기작왕궁)
請君莫說關邊策(청군막설관변책)
自古伊誰保始終(자고이수보시종)
당나라 군사들이 힘들어 해동을 평정하고 대조영이 바로 따라 일어나 왕궁을 지었다.
청컨대 그대여 변방의 정책을 말하지 말라 자고로 그 누가 처음과 끝을 보장하리오.
采蓮曲(채연곡) / 연밥따는 아가씨
허 난설헌(許蘭雪軒)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맑은 가을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蓮花深處繫蘭舟(연화심처계란주) 연꽃 무성한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逢郞隔水投蓮子(봉란격수투련자) 물건너 임을 만나 연밥 따서 던지고는
或被人知半日羞(혹피인지반일수) 행여 남이 알까봐 반나절 부끄러웠네
오늘은 이맘 때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내는 연꽃을 노래한 시를 소개합니다.
이 꽃은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두는 숱한 고사를 남겼습니다.
시인들도 이 꽃을 빌어 그들의 정한을 표현하였습니다.
당나라 이백의 채련곡은 너무 유명해 아직까지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을 <연밥따는 아가씨>라고 붙인 것도 그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중국 강남에서는 아가씨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연밥을 주었다고 합니다.
요즘 발렌타인데이에 쵸크릿을 주는 것처럼요...^^
조선 시대 신분이 뚜렷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초가을 맑은 하늘이 호수에 비쳐 파아란 구슬처럼 영롱할 때 너른 연잎 사이로 꽃이 우거진 곳에 혼자서 타는 작은 쪽딱배(목란배)를 매어두고 님을 기다리는 아가씨.
그녀는 막상 호수 저쪽에 그리워하는 님이 보이지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사랑의 정표인 연밥만 따서
슬쩍 던져두고는 달아납니다.
혹시 남이 그걸 보았을까 혼자서 반나절 동안 붉은 볼로 부끄러워한다는 마지막 구에서 그 아가씨의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조선 시대 사랑을 고백한 뒤 부끄러워하는 아가씨의 수줍음과 서정적 자아의 환희를 감칠맛 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의 작자인 허 초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운의 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도 현모양처의 대표감으로는 신사임당, 사랑받는 애인의 대표감으로는 황진이가 꼽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허 초희는 신분이 뚜렷한 조선이라는 숨막히는 나라에서 여자로 태어났고, 더구나 바람둥이 김성립의
아내로서 살아야 했으며, 두 아이마져 잃어버린 한많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한이 이 시로 승화된 것은 아닐까요... 이 시는 초희의 남동생인 허균이 수집해서 간행한 《난설헌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허난설헌[許蘭雪軒]1563(명종 18) 강원 강릉~1589(선조 22). 3. 19.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엽(曄)의 딸이고, 봉( )의 여동생이며, 허균(筠: 홍길동전 저자)의 누나이다.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용모가 아름답고 천품이 뛰어났다 한다.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집안과 교분이 있던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웠다.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 신동이라고까지 했다.
15세에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했으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다.
남편은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기방을 드나들며 풍류를 즐겼고, 시어머니는 시기와 질투로 그녀를 학대했다. 게다가 어린 남매를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했다.
친정집에는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허균도 귀양가버리자 삶의 의욕을 잃고 시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가 27세로 요절했다. 시 213수가 전하며, 그중 신선시가 128수이다.
그녀의 시는 봉건적 현실을 초월한 도가사상의 신선시와 삶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으로 대별된다.
후에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시를 보여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고집으로 〈난설헌집〉이 있다.
輿 隨將 于仲文 詩 - 을지문덕(乙支文德)
神策究天文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妙算窮地理 오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도다.
戰勝功旣高 그대 전쟁에 이겨 이미 공이 높으니
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두기를 바라노라.
을지문덕이 수(隋)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조롱조로 지어 보낸 한시로, 고구려인의 당당한 기개와 웅혼한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기,승,전구에서 우중문에 대한 칭찬을 한 것같지만, 결구에서 보면 결국 조롱임을 알 수 있다.
표현 : 반어법(反語法)
성격 : 풍자시
형식 : 오언 고시(古詩), 근체시(近體詩)
주제 : 적장에 대한 조롱, 적장의 오판 유도
의의 : 현전하는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한시
출전 : '삼국사기' 권44, '열전'
夜聽도衣聲
- 양태사(楊泰師)
霜天月照夜河明 서리 하늘 달 밝은데 은하수 빛나
客子思歸別有情 이국땅 머무는 나그네 귀향 생각 깊도다.
厭坐長宵愁欲死 긴긴 밤 홀로 앉아 시름 이기지 못하는데
忽聞隣女도衣聲 홀연 들려오니 이웃 아낙 다듬이 소리.
聲來斷續因風至 바람결에 실려와 어질 듯 이어지며
夜久星低無暫止 별들이 기울도록 잠시도 멎지 않네.
自從別國不相聞 고국을 떠난 후에 저 소리 듣지 못하더니
今在他鄕聽相似 먼 이역땅에서 듣는 소리 고향의 소리 같구나.
不知綵杵重將輕 그대의 방망이는 무거운가 가벼운가
不悉靑砧平不平 푸른 다듬이돌 고른가 거칠은가.
遙憐體弱多香汗 가녀린 몸에 온통 구슬 땀흘리고 있겠지.
預識更深勞玉腕 옥 같은 두 팔도 밤늦도록 지치겠구나.
爲當欲救客衣單 홑옷으로 떠난 나그네 구하자 함이겠지만
爲復先愁閨閣寒 규방이 차지 않을까 걱정되는 구나.
雖忘容儀難可問 그대 모습 그려 보나 물어 볼 도리 없고
不知遙意怨無端 무단히 원망하지나 않을런지 알 수 없구나.
寄異土分無新識 먼 이국땅에 붙어사니 새로 사귄 친구없는
想同心兮長嘆息 그대 생각 하노라니 탄식만 나오네.
此時獨自閨中聞 이런 때 홀로 듣는 규방의 다듬이 소리
此夜誰知明眸縮 그 누가 알랴, 시름 깊은 저 설움을.
憶憶兮 心已懸 그립고 그리워서 마음에 맺힌 듯한데
重聞兮 不可穿 듣고 또 들어도 헤쳐 알 길이 없네.
卽將因夢尋聲去 꿈 속에라도 저 소리 찾아보려 하지만
只爲愁多不得眼 나그네 수심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네.
<해설>
양태사의 이 작품은 스물넉 줄로 된 칠언고시(七言古詩)인데, 의례적인 수사법을 버리고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여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이 시는 특히 청각적 심상이 주제로 승화되는 고도의 표현 기법을 구사했다.
여기에는 그 일부만 실었다.
서리 내리고 은하수도 밝은, 가을이 깊은 이국(異國)의 밤에 홀연 어디선가 다듬이 소리가 들린다. 다듬이질은 일본에는 없는 풍속으로, 이는 분명히 고국의 여인이 향수를 달래려고 내는 애련한 소리일 것이다. 그 소리는 끊어질 듯 새벽까지 이어져 여인의 모습까지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이 시에서의 다듬이 소리는 아름다운 선율의 소리로서 여인과 청자의 거리를 좁혀 주고 작자의 격렬한 시름과 탄식을 교차하게 한다. 동시에, 그만큼 조국 발해에 대한 그리움의 정도 깊어진다.
<해설>
갈래 : 칠언배율
연대 : 발해국 문왕 23년(759)
성격 : 서정시
구성 : 24행의 칠언배율시 중 일부
표현 : 직서법
주제 : 향수. 타국에서 가을 달밤에 고국을 그리워함
출전 : '경국집'
의의 - 발해의 시인이 남긴 작품 중에서 가장 장편이고
정감이 특히 풍부함
- 발해 시대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며
당시 시대 상황(외교 활동의 빈번함)의 추리 근거
작가 : 양태사
발해 제 3 대 문왕 때(737~793)의 귀덕 장군.
무인이면서도 시를 잘 지었다. 발해국의 부사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즈음에 다듬이 소리를 듣고 고국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 두 편중의 하나이다.
759년 부사(정사)를 보좌하여 수행하는 사신 자격으로 일본에 갔다가 송별연에서 일본 문인들의 시에 화창했다는 시 두 편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야청도의성'이다.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시인이 사신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시기가 가까운 어느 날 밤으로 설정되어 있다.
시인이 창 밖을 보며 고국 생각을 곁들인 시름에 잠겼다가 시름마저 되씹기 지루해졌을 때 홀연히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다듬이질은 일본에 없는 풍속이어서 시인은 그 소리를 듣자 고국 생각이 간절해지고 온갖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다듬이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바람을 따라 들려 오고, 타국에 가서 밤을 지새우는 시인에게 더욱 깊은 상념을 전해주고 있다.
題 伽倻山讀書堂
- 최치원(崔致遠)
狂奔疊石吼重巒 바위골짝 내닫는 물 겹겹 산을 뒤흔드니
人語難分咫尺間 사람 말은 지척에도 분간하기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 옳으니 그르니 그 소리 듣기 싫어
故敎流水盡籠山 내닫는 계곡 물로 산을 온통 에워쌌지.
<해설>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한 후, 토황소격문 등으로 중국에서 문명을 떨쳤던 최치원은 귀국 후
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난세를 절망하여 각지를 유랑하던 그는 가야산에 은거하여 여생을 마친다. 이 작품은 해인사에 은거할 때 지은 것으로 현실과 뜻이 맞지 않아 고뇌하는 작자의 모습이 잘 형상화되었다.
표현 : 대구법, 의인법
성격 : 서정시
형식 : 칠언절구 고시(古詩) , 근체시(近體詩)
주제 : 산붕에 은둔하고 싶은 심경.
자연 속에 침잠하여 세속과 멀어지고자 함
의의 : 최치원의 대표적 한시
출전 : '최문창후 전집'
秋夜雨中
- 최치원(崔致遠)
秋風惟苦吟 가을바람에 로이 읊조리나
世路少知音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네
窓外三更雨 창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불 앞에 외로운 마음 만리 밖을 내닫네
<해설>
신라 말기의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오언절구. 비오는 가을밤에 자신을 알아 줄 지기(知己)가 없는
외로움을 읊은 시이다.
100편이 넘는 그의 시 중에서 이 작품은 '제가야산(題伽倻山)',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 등과 함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당나라에 유학한 최치원의 귀국 이전 작품이라고도 하고, 또 귀국 후의 작품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의 시문집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시 경향과 내용으로 보아 귀국 후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결구(結句)의 '만리심(萬里心)'은 그대로 만리 타국에 있는 작자의 심경이기보다 마음과 일이 서로 어긋나서
이 세상과는 이미 천리 만리 떠나 있는 작자의 심회를 호소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귀국하여 벼슬이 병부시랑에까지 올랐으나, 이 때는 이미 진성여왕의 난정(亂政)으로 나라가 혼란했으므로, 몸과 마음을 의탁할 곳을 찾지 못하여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올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이 때의 그의 심경이 곧 '만리심'이기도 하다.
연대 : 신라 말기
성격 : 서정시
표현 : 대구법
형식 : 고시(古詩) , 근체시(近體詩)
주제 : 뜻을 펴지 못한 지성인의 고뇌
출전 : '동문선' 권19
[李夢龍(이몽룡)의 詩]
金樽美酒千人血 아름다운 금항아리의 맛좋은 술은 민중의 피요,
玉盤佳肴萬性膏 예쁜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의 소리도 높더라.
懶 婦 (게으른 아낙네)
김삿갓(金炳淵 1807~1863)
無病無憂洗浴稀 무병무우세욕희 병도 없고 걱정도 없는데 목욕도 자주 안하고
十年猶着嫁時衣 십년유착가시의 10년동안 그대로 시집 올 때 옷을 입고 있네.
乳連褓兒謀午睡 유련보아모오수 포대기에 젖물린 아기가 낮잠 들기를 바라다가,
手拾裙蝨愛檐暉 수습군슬애첨휘 이 잡으려고 치마 걷어들고 햇볕드는 처마로 나왔네.
動身便碎廚中器 동신편쇄주중기 부엌에서 몸만 움직였다하면 그릇을 깨고
搔首愁看壁上機 소수수간벽상기 벽에 베틀만 쳐다보면 현기증 나서 머리만 긁어대네.
忽聞隣家神賽慰 홀문린가신새위 그러다가 이웃에서 굿한다는 소문만 들으면
柴門半掩走如飛 시문반엄주여비. 사립문을 반쯤 닫고서는 나는 듯이 달려가네.
有所思(유소사)
/吳璲(오수)
玉人逢時花正開 (옥인봉시화정개) 좋은 님 만날 땐 꽃이 활짝 폈더니
玉人別後花如掃 (옥인별후화여소) 좋은 님 이별 후엔 쓴 듯이 졌구나
花開花落無了期 (화개화락무료기) 꽃이 피고 지는 것은 끝이 없건만
使我朱顔日成모 (사아주안일성모) 내 예쁜 얼굴 날마다 늙어만 가는가
顔色難從鏡裏回 (안색난종경리회) 거울 속 얼굴빛 되돌릴 수 없는데
春風還向花枝到 (춘풍환향화지도) 봄바람은 외려 꽃가지에 불어오누나
安得相逢勿寂寞 (안득상봉물적막) 어찌 하면 적막하지 않게 그대를 만나서
與子花前長醉倒 (여자화전장취도) 꽃놀이 하며 길이 취해 쓰러질 수 있을까
김삿갓( 본명:김병연 )의 금전(돈)에 대한 한시 * 돈이란 !
周 遊 天 下 皆 還 迎 천하를 돌아다니면 모두 너를 환영하고
興 國 興 家 勢 不 輕 나라도 흥하게하고 집안도 흥하게하니 너의 세력이 가볍지 않구나
去 復 還 來 來 復 去 ~ 갔다가는 다시오고 왔다가는 또 가며
生 能 捨 死 死 能 生 ~ 살자리에 죽이기도 하고 죽을자리에 살게도 하는구나
千 里 行 裝 付 一 柯 ~ 천리길 행장을 한 단장에 의지하고
餘 錢 七 葉 尙 云 多 (여전칠엽상운다) ~ 남은돈 일곱푼도 아직 많으리라 생각하고 흐뭇해 하여
裏 中 戒 爾 深 深 在 (리중계이심심재) ~ 제발 이제 너만은 주머니속에 깊이 있거라 타일럿건만
野 店 斜 陽 見 酒 何 (야점사양견주하) ~ 해지는 들길에서 또 주막을 보았으니 어찌 그냥갈겄인가
斜 陽 叩 立 兩 柴 扉 (사양고립양시비) ~ 해질 무렵에 두서너집 문을 두드렸으나
三 被 主 人 手 却 揮 (삼피주인수각휘) ~ 주인들은 모두 손을 흔들어 나를 쫓는구나
杜 宇 赤 知 風 俗 薄 (두우적지풍속박) ~ 두견새 조차 이 박정한 인심을 알아 보는지
隔 林 啼 送 不 如 歸 (격림제송부여귀) ~ 나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슬피 울어 주도다
地 上 有 仙 仙 兒 富 (지상유선 선아부) ~ 땅위에 신선이 있으되 그 신선은 부자만 알고
人 間 無 罪 罪 有 貧 (인간무죄 죄유빈) ~ 인간에는 죄가 없으되 그의죄는 가난한 탓이라
莫 道 貧 富 別 有 種 (막도빈부 별유종) ~ 부자나 빈자나 별다른 종자로 생각지들 마라
貧 者 還 富 富 還 貧 (빈자환부 부환빈) ~ 빈자도 부자가 되고 부자도 빈자될 날 있으리라
掘 去 掘 去 彼 隻 之 恒 言 이오(굴거굴거피척지항언이오) ~ 파간다 파간다 함은 저쪽의 늘 하는 말이오
捉 來 捉 來 本 守 之 例 題 인데(착 래 착 래 본 수 지 례 제 인데) ~ 잡아오라 잡아오라 함은 본군 군수의 으레하는 얘기인데
今 日 明 日 하니 乾 坤 不 老 月 長 在 이렇게 오늘 내일 하고 미루기만 하니 천지는 늙지않고
此 頃 彼 頃 하니 寂 莫 江 山 今 白 年 이라 (차 경 피 경 하니 적 막 강 산 금 백 년 이라) ~ 세월은 가기만 하니 이달 저달 하는 사이에쓸쓸한 강산은 어느덧 백년이 될 것이로다
처세의 지혜
~노사 기정진 盧沙 奇正鎭
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急地常思緩 安時不忘危
一生從此計 眞個好男兒
세상을 사는 데는 부드러움을 고귀하게 여기라 강하고 뻗센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느리라.
말을 할 때는 언제나 명백히 천천히 하고 매사에 임할 때는 어리석은 것처럼 행하라.
위급한 상황에 처해서는 당황치 말고 천천히 생각하며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웠던 옛 일들을 잊지 말지어다.
너희가 한평생 이러한 인생의 계략을 잘 실행해 나간다면 진실로 호남아라 하리라.
김삿갓(金柄淵, 1807~1863)
조선시대의 풍운아 김삿갓(본명 金柄淵, 1807~1863)이 20세때 영월군에서 실시한 과거시험에서 제출했던 논문의 全文입니다.
김삿갓은 이 시험에서, 제목에 주어진 역적 <김익순>이 바로 자기 할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이런 무지막지한 글을지어 장원급제까지 하였으나 나중에 주위로부터 "역적의 자손이 자기 할아버지를 욕하고서 장원급제하였다"는 따가운 시선때문에, 자존심 강한 김삿갓은 "도저히 하늘아래 고개를 들고 살 수가 없구나!"고 한탄하며, 그 날로부터 삿갓을 뒤집어 쓰고 한 많은 방랑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 홍경래의 난과 김익순(김삿갓의 조부)의 투항경위.
* 난의 발단 : 조선정부가 인재등용에 있어 평안도지역을 차별하는데 격분, 홍경래 등이 1811년(순조11년) 11월 평안도 용강에서 일으킨 반란.
* 경과 : 평안도민들의 해묵은 불만에 방아쇠를 당긴 이 반란은 삽시간에 평남지역을 휩쓸고, 평북의 가산, 박천, 곽산, 정주를 거쳐 서북쪽 선천(宣川)으로 진격한다.
* 김익순의 투항경위 : 김익순은 원래 함경도 함흥中軍에서 근무하다가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기 불과 3개월전 평안도 선천 방어사로 부임 받았다. 그러다가 하필이면 반란군들이 선천으로 진격해 오던 날 밤,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있다가 반란군들에게 발각되어 몸을 결박 당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그만 투항하고 만다.
* 이 사건으로 김익순은 능지처참(陵遲處斬)당하고, 그의 가족은 '멸족'형을 선고받는다. 이때 손자인 김삿갓의 나이는 겨우 5살. 나중에 과거급제 후 그의 어머니가 이 같은 사실을 전해 줄 때까지 김삿갓은 할아버지에 대한 이런 내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가산군수 정시(鄭蓍)의 분전 : 가산군수 ‘정시’는 반란군들이 평남지역을 거쳐 가산지역으로 몰려오자
그의 부친까지 나서서 반란군에 맞섰으나, 중과부적으로 결국 父子 모두 반란군들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 김삿갓의 장원급제 논문(全文).
제목 : 가산군수 정시의 장렬한 죽음과 김익순의 하늘에 닿는 죄를 논하라.(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어린 나이의 김삿갓은 제목에 등장하는 역적 김익순이 바로 자기 할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이런 무지막지한 욕설을 퍼부었으니!! 글공부 하는 자로서 어찌 뼈에 사무치는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으랴!!
(牟ㅇㅇ)
曰爾世臣金益淳 너 세록지신 김익순은 듣거라.
鄭公不過卿大夫 鄭공은 작위가 경대부에 불과했지만,
將軍桃李隴西落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서
烈士功名圖末高 열사로서 그 공명이 길이 빛나리라.
詩人到此亦慷慨 시인 또한 이 일에 분개하노니,
撫劍悲歌秋水涘 칼 어루만지며 秋水가에서 한탄하노라
宣川自古大將邑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지켜온 큰 고을로서,
比諸嘉山先守義 가산 땅에 비하면 충의를 먼저 지켜야 할 땅이로다
淸朝共作一王臣 두 사람은 다 한 임금의 신하로서
死地寧爲二心者 死地에 이르러선 어찌 두 마음을 품었단 말인가!
升平日月歲辛未 태평세월이던 신미년(1811)에,
風雨西關何變有 관서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고!
尊周孰非魯仲連 주나라에는 노중련같은 충신이 많았고,
輔漢人多諸葛亮 한나라에는 제갈량같은 이도 많았도다.
同朝舊臣鄭忠臣 우리 조정에도 鄭공같은 충신이 있어서
抵掌風塵立節死 맨손으로 병란막다 절개지키고 죽었도다
嘉陵老吏揚名旌 쓰러진 늙은 충신 鄭공의 높은 명성은,
生色秋天白日下 가을하늘에 밝은 태양같이 빛나리라.
魂歸南畝伴岳飛 그의 영혼은 남묘로 돌아가 악비와 함께 살 거고,
骨埋西山傍伯夷 뼈는 서산에묻혀 백이와 함께 하리라.
西來消息慨然多 그러나 서쪽에선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나니,
問是誰家食祿臣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던 신하였더냐?
家聲壯洞甲族金 가문도 명성높은 장동김씨 집안이요.
名字長安行列淳 이름은 장안에서도 유명한 淳자 항렬이로다.
家門如許聖恩重 가문이 이와 같고 나라은혜도 두터우니
百萬兵前義不下 백만大兵 앞이라도 義를 저버려선 안될진대,
淸川江水洗兵波 청천강물에 씻은 무기와
鐵甕山樹掛弓枝 철옹산 나무의 활은 나무에 걸어두고
吾王庭下進退膝 우리 임금의 어전에 나가 무릎꿇듯이
背向西域凶賊脆 등돌려 흉악한 서쪽 도적들에게 무릎 꿇다니,
魂飛莫向九泉去 죽은 너의 영혼은 구천에도 못갈 것이고
地下猶存先大王 선왕이 아직 계시는 지하에도 못가리라.
忘君是日又忘親 너는 임금을 버린날 조상 또한 버렸으니
一死猶輕萬死宜 한번 죽음은 가볍고 만번 죽어 마땅하리라.
春秋筆法爾知否 공자의 춘추필법을 아느냐 모르느냐?
此事流傳東國史 이 일을 東國史에 남겨 천추에 전하리라!
- 金柄淵
blog.daum.net/greatestman/6637562 기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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