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8. 19:24ㆍ詩
[스크랩] 봄의 시 모음 자유글게시판
봄 ㅡ 곽재구 .김기림. 김기택. 김광섭. 김용택 .반칠환. 서정주. 손동연 오탁번 이성부 유안진.윤동주. 정지용. 천양희.한하운.홉킨스.황인숙. 봄날 ㅡ 김종길. 김기택. 김용택. 송수권. 송찬호. 신경림. 심재휘.이동순.이수지.
봄 - 곽재구 다시 그리움이 일어 봄바람이 새 꽃가지를 흔들 것이다 흙바람이 일어 가슴의 큰 슬픔도 꽃잎처럼 바람에 묻힐 것이다 진달래 꽃편지 무더기 써갈긴 산언덕 너머 잊혀진 누군가의 돌무덤가에도 이슬 맺힌 들메꽃 한 송이 피어날 것이다 웃통을 드러낸 아낙들이 강물에 머리를 감고 5월이면 머리에 꽂을 한 송이의 창포꽃을 생각할 것이다 강물 새에 섧게 드러난 징검다리를 밟고 언젠가 돌아온다던 임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보리꽃이 만발하고 마실 가는 가시내들의 젖가슴이 부풀어 이 땅위에 그리움의 단내가 물결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곁을 떠나가주렴 절망이여 징검다리 선들선들 밟고 오는 봄바람 속에 오늘은 잊혀진 봄 슬픔 되살아난다 바지게 가득 떨어진 꽃잎 지고 쉬엄쉬엄 돌무덤을 넘는 봄
봄 - 김기림 4월은 게으른 표범처럼 인제사 잠이 깼다 눈이 부시다 가려웁다 소름친다 등을 살린다 주춤거린다 성큼 겨울을 뛰어 넘는다 1946년 발표
봄 - 김기택 바람 속에 아직도 차가운 발톱이 남아있는 3월 양지쪽에 누워있던 고양이가 네 발을 모두 땅에 대고 햇볕에 살짝 녹은 몸을 쭉 늘여 기지개를 한다 힘껏 앞으로 뻗은 앞다리 앞다리를 팽팽하게 잡아 당기는 뒷다리 그 사이에서 활처럼 땅을 향해 가늘게 휘어지는 허리 고양이 부드러운 등을 핥으며 순해지는 바람 새순 돋는 가지를 활짝 벌리고 바람에 가파르게 휘어지는 우두둑 우두둑 늘어나는 나무들
봄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 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인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랑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해를 따라 몇 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봄 - 반칠환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봄 - 서정주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색 비 무처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늘이여 피가 잘 도라...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좀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
봄 - 손동연 개나리 노오란 덧니가 반짝인다
햇볕도 앞가슴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무용시간이 끝났는지 신발 주머니를 든 채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유치원 뜰이다
봄 - 오탁번 소쩍새는 밤 이슥토록 울고 조롱조롱 금낭화 붉은 꽃잎이 짙다
너비바위 틈에 피어난 개미딸기 오종종 오종종 노란 꽃잎이 여리다
하늘 높이 뜬 솔개 눈씨에 참새도 오목눈이도 찔레넝쿨 사이로 숨는다
하느님이 수염에 묻은 황사를 턴다 붕어들이 알 낳느라 몸을 떨며 피 흘린다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 유안진 저 쉬임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흘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 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 났음이랴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운 보랏빛, 돌각담을 기어오르는 봄 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 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랭이야, 어쩔 셈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런 움집에서 따순 손길이 기다려지니
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첫눈 맞아, 숨바꼭질 노니는 산골짜기에는 뻐꾹뻐꾹 사랑노래 자지러지고
잠든 가지마다 깨어나며 빠져드는 어리어리 어지럼증, 산 아래 돌부처도 덩달아 어깨춤 추는, 시방 세상은 첫사랑 앓는 분홍빛 봄
봄 -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도르 시내 차가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봄 -정지용 외ㅅ가마귀 울며 나른 알로 허울한 돌기둥 넷이 스고 이끼 흔적 푸르른데 황혼이 붉게 물든다
거북 등 솟아오른 다리 길기도 한 다리 바람이 수면에 옴기니 휘이 비껴 쓸리다 <동방평론> 1호 1932년 4월호
봄 - 천양희 그 자리가 비었어도 밖엔 봄이 충분하였다 나 혼자 있어도 밖엔 봄이 충분하였다 충분한 봄으로 그 시간을 채웠다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 작가.2003년
라일락
봄 -홉킨스 봄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이름 없는 풀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파릇파릇 아름답게 자라고 티티새의 알은 낮은 하늘 갈아 티티새 자신은 메아리치는 숲을 노래로 울리며 귓전은 때려 그 소리를 들으며 벼락을 맞은 듯하고 윤기 도는 배나무 잎사귀와 꽃잎은 하늘을 닦아 내어 푸르름이 다가오는 풍요로움 뛰노는 어린 양들은 깡충 거리나니 이 생기 넘치는 활력과 기쁨은 무엇이던가 에덴 동산에서 비롯된 대지의 감미로운 흐름이니 그것을 차지하여라, 소유하거라, 그것이 죄 때문에 싫어지고 흐려지고 더러워지기 전에, 주 그리스도여 소년 소녀가 지닌 바 티 없는 마음과 5월의 날을 동정녀의 아들이여 당신이 선택하시고 그 무엇보다도 값어치 있는 것을 가지게 하라
Gerard Hopkins(1844-1889) 영국의 성직자이며 시인
봄 - 황인숙 온종일 비는 쟁여논 말씀을 풀고 나무들의 귀는 물이 오른다 나무들은 전신이 귀가 되어 채 발음되지 않은 자음의 잔뿌리도 놓치지 않는다 발가락 사이에서 졸졸거리며 작은 개울은 이파리 끝에서 떨어질 이응을 기다리고 각질들은 세례수를 부풀어 기쁘게 흘러 넘친다 그리고 나무로부터 한 발 물러나 고막이 터질 듯한 고요함 속에서 작은 거품들이 눈을 트는 것을 본다
첫 뻐꾸기 젖은 몸을 털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고흐 ㅡ 복숭아꽃
봄날 - 김종길 골목의 흰 목련 꽃송이 수틀 위에서처럼 눈을 뜨고
한나절 젖빛 운애 속에 몸풀고 돌아누운 북한사
번데기처럼 나온 애벌레인가 나도 꿈틀거린다 눈을 뜬다
봄날 - 김기택 할머니들이 아파트 앞에 모여 햇볕을 쪼이고 있다 굵은 주름 가는 주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햇볕을 채워넣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뼈와 관절들 다 녹도록 온 몸을 노곤노곤하게 지지고 있다 마른버짐 사이로 아지랑이 피어오를 것 같고 잘만 하면 한순간 뽀오얀 젖살도 오를 것 같다 할머니들은 마음을 저수지마냥 넓게 벌려 한 철 폭우처럼 쏟아지는 빛을 양껏 받는다 미처 몸에 스며들지 못한 빛이 흘러 넘쳐 할머니들 모두 눈부시다 아침부터 끈질기게 추근대던 봄볕에 못이겨 나무마다 푸른 망울들이 터지고 할머니들은 사방으로 바삐 눈을 흘긴다 할머니 주름살들이 일제히 웃는다 오오 얼마 만에 환해져 보는가 일생에 이렇게 환한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눈 앞에는 햇빛이 종일 반짝거리며 떠다니고 환한 빛에 한나절 한눈을 팔다가 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 할머니들은 가끔 눈을 비빈다
봄날 - 김 용택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 잡고 매화꽃 보러 간 줄 알아라
봄날 - 송수권 앵두꽃이 피었다 일러라 살구꽃이 피었다 일러라 또 복사꽃이 피었다 일러라 할머니 마루 끝에 나앉아 무연히 앞산을 보신다 등이 간지러운지 자꾸만 등을 긁어신다 올해는 철이 일들었나 보다라고 말하는 사이 그 앞산에도 진달래꽃 분홍 불이 붙었다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죽한 뱃고동이 운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울고 야야, 쭈꾸미 배가 들었구나 , 할머니 쩝쩝 입맛을 다신다 빙초산 맛이 입에 들척지근하고 새콤한 것이 달기가 햇뻐꾸기 소리 같다
아버지 주꾸미 한 뭇을 사오셨다 어머니 고추장 된장을 버물 또 부뚜막의 왱병을 기울이신다 주꾸미 대가리를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 아버지 하신 말씀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거나
환장한 환장한 봄날이었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오도방정을 떨고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울었다
봄날 -송찬호 봄날 우리는 돼지를 몰고 냇가에 가기로 했었네 아니라네 그 돼지 발병을 했다 해서 자기의 엉덩짝살 몇 근 베어 보낸다 했네
우린 냇가에 철판을 걸고 고기를 얹어 놓았네 뜨거운 철판 위에 봄볕이 지글거렸네 정말 봄이었네 내를 건너 하얀 무명 단장의 나비가 너울거리며 찾아왔데 그날따라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더없이 향기로왔네
이제, 우리들 나이 불혹이 됐네 젊은 시절은 갔네 눈을 씻지만, 책이 어두워 보인다네 술도 탁해졌다네
이제 젊은 시절은 갔네 한때는 문자로 세상을 일으키려 한 적 있었네 아직도 마비되지 않고 있는 건 흐르는 저 냇물 뿐이네 아무려면, 이 구수한 고기 냄새에 콧병이나 고치고 갔으면 좋겠네
아직 더 올 사람이 있는가, 저 나비 십리 밖 복사꽃 마을 친구 부르러 가 아직 소식이 없네 냇물에 지는 복사꽃 사태가 그 소식이네
봄날 우린 냇가에 갔었네, 그날 왁자지껄 돼지 멱따는 소리 들리지 않았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술잔만 띄우고 돌와왔데
밀레 ㅡ 돼지 잡는 사람들
봄날 -신경림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늙은 소나무 아래서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판다
벚꽃잎이 날아와 앉고 저녁놀 비낀 냇물에서 처녀들 벌겋게 단 볼을 식히고 있다
벚꽃 무더기를 비집으며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뜨고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이 딸이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파는 삶의 마지막 고살
북한산 어귀 온 산에 풋내 가득한 봄날
처녀들 웃음소리 가득한 봄날
봄날 - 심재휘 새들이 깃털 속의 바람을 풀어내면 먼 바다에서는 배들이 풍랑에 길을 잃고는 하였다 오전 11시의 봄날이 이렇게 무사히 지나가는 것은 저 작은 새들이 바람을 품으며 날기 때문인 걸 적막한 개나리 꽃 그늘이 말해줘서 알았다 이런 때에 나는 상오의 낮달보다도 스스로 민들레인 그 꽃보다도 못하였다 나를 등지고 앉은 그 풍경에 한엇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나는 바보 같았다
봄날 이동순(1950 - ) 김천. 꽃은 피었다가 왜 이다지 속절없이 지고 마는가 봄은 불현듯이 왔다가 왜 이다지 자취없이 사라져버리는가
내 사랑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모두 이렇게 다 떠나고 끝까지 내 곁에 남아 나를 호젓이 지키고 있는 것은 다만 빈 그림자뿐이려니 그림자여 너는 무슨 인연 그리도 깊어 나를 놓지 못하는가
이 봄날엔 왜 그저 모든 것이 아쉬웁고 허전하고 쓸쓸한가 만나는 것마다 왜 마냥 서럽고 애틋한가
봄날 -이 수지 기타를 치고 싶었다 日語도 배우고 싶었다 장래희망 란에는 언제나 디자이너라고 적어넣었다 우리집 가장은 소주병과 약봉지였다 삼청교육대에서 씀바귀 같은 절망을 키우고 돌아온 아버지는 어느 날 소주병이 되어 세상 밖으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뇌종양에 걸린 엄마의 약값조차 보조하기 힘들었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빨아 널은 체육복, 하얀 체육복이 벌써 말라기네 ... 봄날이 오긴 왔네, 팔락팔락 ...자꾸 잠이 오네. 운동화는 오래 전에 닳아버렸네... 돈꾸러 갔던 엄마가 때가 훨씬 지나 돌아왔을때 전기밥솥엔 저녁밥이 그득했다 밥은 식어 있고, 전기 코드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불 꺼진 방문 앞에 한참을 목발처럼 서 있었다
피자마자 시들은 꽃무리처럼 누렇게 흔들리는 저녁밤 아무도 밥을 퍼먹지 못한 그 밤 꽃잎 같은 밥알들이 흩어지며 소리 없이 강물로 흘러 들어갔다 강바닥에 강물 위에 밥주걱처럼 꽂혀 있는 달빛 바람이 불때마다 수면 위로 무심히 퍼올려지는 밥 냄새 ...같은 봄꽃들 아무리 퍼먹어도 퍼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봄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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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시모음-(2) 좋은 詩
봄의 시 모음 ㄱ 강건너 봄이 오듯 ㅡ 송 길자 고향의 봄 ㅡ 이 원수 꽃몸살 ㅡ 장 철문 꽃 피는 봄날 ㅡ 남진우 꿈 ㅡ 김소월 꿈같이 오실 봄 ㅡ 오 광수 꿈밭에 봄마음 ㅡ 김영랑 그대 앞에 봄이 있다 ㅡ 김종해 그 봄날 저녁 ㅡ 엄원태 그저 막연한 ㅡ 신 석종 금잔디 ㅡ 김소월 기다리는 봄 ㅡ 이병주 긴 봄날 ㅡ 허영자 ㄴ 나비야 나비야 ㅡ 주병률 내 사랑은 ㅡ 송수권 내 손에 남은 봄ㅡ 강인한 내 척박한 가슴에 온 봄 ㅡ 김영승 농부들의 봄맞이 ㅡ 김 택영 늦은 봄날 ㅡ 강 인한 놓치다 봄날 ㅡ 이 은규 ㄷ 다시 오는 봄 ㅡ 도 종환 다시금 봄날에 ㅡ 김 남조 다시 봄이 왔다 ㅡ 이 성복 다시 봄날은 간다 ㅡ 유 종인 대책없는 봄 ㅡ 임 영조 더딘 슬픔 ㅡ 황 동규 따뜻한 봄날 ㅡ 김 형영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ㅡ 설죽 ㄹ 로카르노의 봄 ㅡ 헤세 ㅁ 먼 곳에서부터 ㅡ 김 수영 모란이 피기까지는 ㅡ 김 영랑 몹쓸 꿈 ㅡ 김소월 무제치늪의 봄 ㅡ 정 일근 몸살, 찔레꽃 붉게 피는ㅡ 오 정국 ㅂ 바람과 봄 ㅡ 김소월 배꽃 ㅡ 이규보 봄길 ㅡ 김 명인 . 정 호승 봄, 가지를 꺾다 ㅡ 박 성우 봄기도 ㅡ 강우식. 프로스트 봄나그네 ㅡ 이수광 봄나들이 ㅡ 정양 봄날 나의 침묵은 ㅡ 조용미 봄날 산사에 들러 ㅡ 이규보 봄날, 사랑의 기도 ㅡ 안도현 봄날에선가, 꿈속에선가 ㅡ 릴케 봄날에 글을 읽다가 ㅡ 정약용 봄날은 간다 ㅡ 권 경업. 기 형도. 이 향아,이 승훈.정일근 봄날 아침 ㅡ 로렌스 봄날 오후 ㅡ 김선우 봄날 정자에 올라 ㅡ이언적 봄노래 ㅡ 블레이크 봄눈 ㅡ 정호승 봄바람! ㅡ 김종해 봄보다 따뜻한 ㅡ 문복주 봄볕 ㅡ 문태준 봄볕에 굽다 ㅡ 고영 봄빛 ㅡ 이경진 봄빛 소견ㅡ김석규 봄살이 ㅡ 김지하 봄, 섬진강 ㅡ 박라연 봄소식 ㅡ 천상병 봄소풍 ㅡ 박성우 봄, 싫다 ㅡ 이규리 봄아, 오너라 ㅡ 이오덕 봄 아침 ㅡ 양애경. 이해인 봄에게 1ㅡ 김남조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ㅡ엄원태 봄 연못 ㅡ 프로스트 봄 오는 소리 ㅡ 정완영 봄은 ㅡ 이대흠 봄은 간다 ㅡ 김억 봄은 또 어이해 오는가 ㅡ 김보 봄은 고양이로다 ㅡ 이 장희 봄은 전쟁처럼 ㅡ 오 세영 봄은 전보도 안치고 ㅡ 김 기림 봄은 해마다 ㅡ 괴테 봄을 기다리는 마음 ㅡ 신석정 봄을 기다리며 ㅡ 이상국 . 양현근 봄을 그대에게 ㅡ 릴케 봄을 맞는 폐허에서 ㅡ 김해강 봄을 캐는 사람들 ㅡ 정 해철 봄의 메세지 ㅡ 유 자효 봄의 금기사항 ㅡ 신달자 봄의 유혹 ㅡ 신석정 봄의 줄탁 ㅡ 도종환 봄의 진동 ㅡ 고재종 봄의 환 ㅡ남진우 봄이 그냥 지나요 ㅡ 김용택 봄이 되면 ㅡ 김용택 봄이 오고 있다 ㅡ 강은교 봄이 오고 있습니다 ㅡ 정완영 봄이 오는 개울가 ㅡ 공영구 봄이 오는 길 ㅡ 박재삼 봄이 오는 길목에서 ㅡ박영희.이해인 봄이 오는 소리 ㅡ남낙현 봄이 오면 ㅡ 김동환 봄이 올때까지 ㅡ 양선희 봄처녀 ㅡ 이은상 봄편지 ㅡ 이효녕. 이해인 봄 한낮 ㅡ 박규리 봄 햇살 속으로 ㅡ 이해인 봄,희망 봉평의 시냇물을 건너며 ㅡ 장석남 불취 불귀 ㅡ 허수경 ㅅ 산에 살다 ㅡ 이 인로 산길 ㅡ 강 백년 산골마을 ㅡ 현일 산 너머 남촌에는 ㅡ 김동환 산도화 ㅡ 박목월 산방의 밤 ㅡ 왕발 새봄 3 ㅡ 김 지하 사랑, 그 봄 여름 가을 겨울 ㅡ 고 재종 수아 ㅡ 김소월 술 받으러 가는 봄 ㅡ 이화은 ㅇ 아득한 봄날 ㅡ 정 진규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ㅡ 하이네 아무도 없는 봄 ㅡ 이승훈 약속의 봄 ㅡ 성 낙일 어느 봄날 ㅡ 나희덕 어쩌자고 ㅡ 최 영미 연분홍 ㅡ 김 억 애모 ㅡ 김소월 오는 봄 ㅡ 김소월 올봄 ㅡ 김 용택 울 엄마 봄 ㅡ 정완영 이따금 봄이 찾아와 ㅡ 나희덕 이래도 안오시겠어요 ㅡ 박 남준 이른 봄 ㅡ 톨스토이. 헤세. 호프만 시탈 이른 봄 아침 ㅡ 정지용 이른 봄 저녁 무렵 ㅡ 정 희성 이번 봄 ㅡ 정진규 이 봄의 노래 ㅡ 정 희성 이 봄의 축제 ㅡ 김 종해 이제는 봄이구나 ㅡ 이해인 일용직 정씨의 봄 ㅡ이명윤 일획 ㅡ 장 석주 ㅈ 작별 ㅡ 정 지승 장터의 봄 ㅡ 김수우 적선 ㅡ 길상호 지상의 봄 ㅡ 강 인한 ㅊ 첫치마 ㅡ 김소월 청매화 봄빛 ㅡ 이 은봉 초록 기쁨- 봄 숲에서 ㅡ 정 현종 초봄 ㅡ 송 길자. 정 완영 초봄이 오다 ㅡ 하 종오 초봄의 귀밑머리 ㅡ 김 지향 추운 봄날 ㅡ 황 인숙 춘니 ㅡ 김종길 춘래불사춘 ㅡ 양 채영 춘설 ㅡ 정지용 춘신 ㅡ 유치환 춘일 ㅡ 오 탁번 ㅍ 피파의 찬가 ㅡ 브라우닝 ㅎ 하늘 펄펄 꽃사태 ㅡ 박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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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몸살 장철문
몸살 한 번 되게 앓은 뒤에 산길 간다 이 화창한 날을 보려고 되게 한 번 튼 것인가 볕살만큼이나 가벼운 몸이다 배꽃보다 거름 냄새 짙게 흩어진 날인데 오늘이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시소 타는 그날인가 당신만 늙어가는 것 같다고 취로 사업도 잃은 아버지는 백주에 약주 아직도 아버지와 적대하는 내게 형님은 나무라는 전화 넣고 당신이 그랬듯이 이쪽에서 당신을 품어야 할 나이인가 배꽃보다 분뇨 냄새 짙게 흩어진 날인데 갓 피어나는 것들은 갓 피어나는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것인가 몸살 지난 몸처럼이나 가벼운 봄날 바람깃 같은 몸 데리고 산길 간다 시집< 산벚나무의 저녁> 창비. 2003년
꽃피는 봄날 남진우
햇살 아래 고드름처럼 녹아내리는 눈동자
텅 빈 눈구멍 속에 지렁이 떼가 꼬물거린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았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그 봄날 저녁 엄원태(1955 - )
그날 저녁엔 바람이 심하게 쏠려 불고
나무들도 서 있기가 불편했습니다 옮겨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향나무들은 제 멋대로 가울고, 뿌리덩이를 쳐든 채 황량히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서성대는 키 큰 나무들 위로 음산히 구름들이 짓누르듯, 낮게 낮게 흐르고 컴컴한 구름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하늘은 남빛이 점차 짙어 어두워 같습니다
밤이 오면, 누구는 저 거친 들판으로 누구는 또 세상의 허술한 집들을 향하여 습기찬 바람을 온 몸에 맞으며 갑니다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려워 쓸쓸하기만 한 들풀들의 영토에도 밤은 내리고 사람들은 그 어두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 시린 어깨를 웅크려 잠들고 꿈꾸어 아픈 밤을 지나서는 정말 우연히 불확실한 새벽에 이르곤 하는 것입니다
199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그저 막연한 신석종
봄은 아리다 가끔은 그렇다
구덩이에서 꺼낸 봄 감자를 날 것으로 처음 먹을 때처럼
목이 아리다가 눈이 아려져오고 마음이 싸해진다
아리다는 건 막연한 설움이다 설명할 수 없는
금잔디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기다리는 봄 이병주
버들강아지 기지개 켜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들려오는 봄에 온다 하고 겨울에 떠난 임 아직 풀지 못한 그리움 그대로입니다
겨울 잔바람 피하려 먼 곳에 있는 노란 흰나비 빨리 오라 하는 것은 진달래 빨리 피워 임 오는 날 앞당기려 합니다
긴 봄날 허영자
어여쁨이랴 어찌 꽃뿐이랴
눈물겹기야 어찌 새 잎뿐이랴
창궐하는 발병 죄에서조차 푸른 미나리 내음 난다 긴 봄날엔 ㅡ
숨어사는 섧은 情婦 난쟁이 오랑캐꽃 외눈 뜨고 내다본다 긴 봄날엔 ㅡ
나비야 나비야 주병률(1960 ㅡ ) 경주.1992년 현대시 등단.
봄, 하루해 짧아서 강물에 떠 가는 꽃잎 하나 보지 못하네
붉거나 희거나 그 꽃잎 떠나고 빈자리 사무쳐 밤바람 흥성한 봄날 저녁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애타는 마음 죄가 여기 있었네 그 꽃잎 내 안에 있었네
내사랑은 송수권
저 산마을 산수유꽃도 지라고 해라 저 아랫뜸 강마을 매화?도 지라고 해라 살구꽃도 복사꽃도 앵두꽃도 지라고 해라 하구 쪽 배밭의 배꽃들도 다 지라고 해라 강물 따라가다 이런 꽃들 만나기로서니 하나도 서러울 리 없는 봄날 정작 이 봄은 뺨 부비고 싶은 것이 따로 있는 때문 저 양지 쪽 감나무밭 감잎 움에 햇살 들치는 것 이 봄에는 정작 믿는 것이 있기 때문 연초록 움들처럼 차오르면서 햇빛에도 부끄러우면서 지금 내 사랑도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며 크는 것 아니랴 감잎 움에 햇살 들치며 숨가쁘게 숨가쁘게 그와 같이 ? 부비는 것 소근거리는 것 내 사랑 저만큼의 기쁨은 되지 않으랴
내 손에 남은 봄 강인한
부드러운 능선의 칼금을 문 하늘 위로 제비가 왔다 생일이면 내 전생에 상제의 딸을 엿본 죄로 여기 서서
담 너머 눈부신 향기가 날아오고 영롱한 구슬소리가 종일토록 늙은 벚나무 꽃잎을 털어 목욕을 마친 그대 속살의 본홍 그대 속살의 향긋한 흰빛을 다 비춰줄 때까지 기다린다
후생의 내가 살아 바라보는 스스로의 옷이 문득 낯설고 오랜 기다림에 목이 말라 자꾸만 거울을 보는데 뒤꼭지 까만 밤이 발을 적실 듯 길게 흘러나온다
사랑이여 펼치고 펼쳐서 내 손에 남은 봄이 이제 많지 않다
내 척박한 가슴에 온 봄 김영승
우리 동네 향긋한 들길을 걸으면 두엄냄새 상큼히 코끝 찌르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학동들 등에 맨 예쁜 가방 위에 쌓인 변두리 황토 흙먼지 과수원 나무 사이사이 쥐불은 검게 타고 목장 젖소들 음매음매 되새김질 하는데 작은 교회 지붕에 숟가락처럼 걸린 십자가도 눈물겹고 이제 다시 돌아온 탕자의 무거운 발길 또 무섭다 무슨 변고가 또 있을까 나 같은 죄에 물든 미물도 다 살아가는데 새싹이 돋을 거라고 꽃이 또 필 거라고 그 무슨 못다 기다린 슬픈사람이 남아 있다고 봄비가 내리듯 술로 적셔야겠다 썩은 고목에 버섯이라도 돋게 해야겠다
늦은 봄날 강인한
간장 항아리 위에 둥근 하늘이 내려오고 매지구름 한 장 떴다가 지나가듯이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가끔은 내 생각도 하는지
늦은 봄날 저녁 머언 그대의 집 유리창에 슬며시 얹히는 놀빛 모닥불로 피었다가 스러지듯이
놓치다 봄날 이은규
저만치, 나비가 난다 생의 귓바퀴에 봄을 환기시키는 운율로
저 흰 날개에 왜 기생나비란 이름이 주어졌을까 색기없는 기생은 살아서 죽은 기생 모든 색을 날려 보낸 날개가 푸른빛으로 희다 잡힐 듯 잡힐 듯, 읽히지 않는 나비의 문장 뒤로 먼 곳의 네 전언이 거기 그렇게 일렁인다 앵초꽃이 앵초앵초 배후로 환하다 바람이 수놓은 습기에 흰 피가 흐르는 나비날개가 젖는다 젖은 날개의 수면으로 햇살처럼 비치는 네 얼굴 살아서 죽은 날들이 잠시 잊힌다
이 봄날 나비를 쫓는 일이란, 내 기다림의 일처럼 네게 닿는 순간 꿈이다 꿈보다 좋은 생시가 기억으로 남는 순간 그 생은 살아서 죽은 나날들
바람이 앵초 꽃잎에 앉아 찰랑, 허공을 깨뜨린다 기록이 없을 나비의 문장에 오래 귀 기울인다 꼭 한 뼘씩 손을 벗어나는 나비처럼 꼭 한 뼘이 모자라 닿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다
어느 날 저 나비가 허공 무덤으로 스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봄날, 기다리는 안부는 언제나 멀다
다시 봄이 왔다 이성복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둥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 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 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갈기갈기 찢기우며 아우성치며 울고불고 머리칼 쥐어뜯고 몸부림 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풀잎 아래 엎드려 숨죽이며 가슴엔 윤기나는 석회암이 깊었다 시집<남해금산> 문지. 1986년
대책없는 봄 임영조
무엇이나 오래 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엔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털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높이 뻗어서 저런!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 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 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하지만
맨 처음 발설한 것은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낙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자꾸만 수상쩍어 가보니
이런! 겁없이 멋대로 발랑까진 십대들 ....
냉이 꽃다지 제비꽃 환하더군요.
몰래 숨어 꼬나문 담뱃불처럼 참 발칙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없는 봄날입니다
더딘 슬픔 황동규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무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마저 놓치지 않으려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나는 봄
따뜻한 봄날 김형영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웅큼 한웅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로카르노의 봄 헤세
우듬지들이 어두운 불 속에서 나부낀다 신뢰에 찬 푸르름 속에 더 어린아이처럼 더 새롭게 모든 것이 보라는 듯 열려 있다
자주 디뎌 낡은 계단들이 환심을 사려는 듯 영리하게 산 쪽으로 기울어 있다 불타 버린 담벼락으로부터 맨 먼저 핀 꽃들이 가녀리게 나를 부른다
산 개울이 초록 고추냉이 속을 헤집는다 바위들은 물방울 떨어뜨리고 해는 핥는다 기꺼이 잊을 용의가 있는 나를 본다 낯선 곳은 쓴맛이 난다는 것을
먼 곳에서부터 김수영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서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섭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몸살, 찔레꽃 붉게 피는 오정국
그 어디서 누가 이토록 간절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어 난데없이 내 입에서 이런 노래가 흘러나올까 찔레꽃, 붉게 피는
해질녘이면 그 어딘가에서 또 다른 내가 저물고 있듯이
여태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도 풍경이 있고 책이 있고 출렁거리는 물결이 있기에
내가 강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등 뒤에서 내 몸을 일으켜주었다 그런 이야기다, 이 끝나지 않는 문장은
때때로 시가 되고 강가의 모닥불이 되고 불 곁의 목쉰 노래, 노랫가락이 되어 이 마음 이리 서성거리고
그 어디서 누가 이토록 간절하게 노래를 불러 난데없이 내 몸이 이런 몸살을 앓을까 찔레꽃, 붉게 피는 시집<멀리서 오는 것들> 세계사 2005
몹쓸 꿈 김소월
봄 새벽의 몹쓸 꿈 깨고 나면! 우짖는 까막까치, 놀라는 소리 너희들은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
봄철의 좋은 새벽, 풀 이슬 맺혔어라 볼지어다, 세월은 도무지 편안한데 두새 없는 저 까마귀, 새들게 우짖는 저 까치야 나의 흉한 꿈 보이느냐?
고요히 또 봄바람은 봄의 빈들을 지나가며 이윽고 동산에서는 꽃잎들이 흩어질 때 말 들어라, 애틋한 이 여자야, 사랑의 때문에는 모두 다 사나운 조짐인 듯, 가슴은 뒤노아라
바람과 봄 김소월
봄에 부는 바람, 바람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내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봄길 김명인
꽃이 피면 마음 간격들 한층 촘촘해져 김제 봄들 건너는데 몸 건너기가 너무 힘겹다 피기도 전에 봉오리째 져내리는 그 꽃잎 부리러 이 배는 신포 어디쯤에 닿아 헤맨다 저 亡海 다 쓸고 온 꽃샘바람 거기 부는 듯 몸 속에 곤두서는 봄 밖의 봄바람! 눈앞 해발이 양쪽 날개 펼친 구름 사이로 스미려다 골짜기 비집고 빠져나오는 염소떼와 문득 마주친다 염소도 제 한 몸 한 척 배로 따로 띄우는지 만경萬傾 저쪽이 포구라는 듯 새끼 염소 한 마리 지평도 뿌우연 황삿길 타박거리며 간다 마음은 곁가지로 펄럭거리며 덜 핀 꽃나무 둘레에서 멈칫걸자 하지만 남몰래 출렁거리는 상심은 아지랑이 너머 끝내 닿을 수 없는 항구 몇 개는 더 지워야 한다고 닻이 끊긴 배 한 척 시집< 길의 침묵> 문학과 지성사. 1999년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 가지를 꺾다 박성우
상처가 뿌리를 내린다
화단에 꺾꽂이를 한다 눈시울 적시는 아픔 이 악물고 견뎌내야 넉넉하게 세상 바라보는 수천개의 눈을 뜰 수 있다
봄이 나를 꺾꽂이 한다 그런 이유로 올봄엔 꽃을 피울 수 없다 하여도 내가 햇살을 간지러워하는 건 상처가 아물어가기 때문일까
막무가내로 꺾이는 상처, 없는 사람은 꽃눈을 가질 수 없다
상처가 꽃을 피운다
봄 나들이 정양(1942 - ) 전북 김제. 우석대 교수.
지긋지긋한 이 아파트 말고 어느 산기슭 어느 시냇가에 집 하나 짓고 예쁘게 사는 것이 아내는 소원이라 한다 말 못하는 짐승들도 기르고 오가는 새들 모이도 뿌려주면서 채소랑 곡식이랑 감 대추들 다 가꾸어 고맙고 다정하고 아까운 이들과 골고루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런 소원쯤 언젠가 못 들어주랴 싶고 사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산기슭 그런 시냇가를 틈날 때마다 눈 여기며 나는 늙는다 먼 길 나다니는 차창마다 그런 산천을 먼발치로 탐내는 것이, 부끄럽지만 어느새 버릇이 되어 있다 친해지는 건지 철이 드는 건지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햇빛 바르고 물길도 곱고 바람 맑은 곳 혼자서 점찍어보는 그런 그리운 데가 나다니다보면 참 많기도 하다 점찍어 보는 데가 너무 많은가 간이라도 빼주고 싶은 아내에게 간 빼낼 재주가 나에게는 영 없는가 간도 쓸개도 뱃속에 있기나 한가
모처럼 아내와 나선 봄나들이 나이 들수록 속절없이 산천은 곱다 꽃범벅으로 점찍어보는 그리움들이 먼발치로 자꾸 외면하면서 지나간다
봄날에선가 꿈속에선가 릴케
어느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가 나 언제였던가 너를 만난 것이 지금 이 가을날을 우리는 함께 걷고 있다 그리고 너는 내 손을 쥐고 흐느끼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 때문에 우는가? 핏빛처럼 붉은 나뭇잎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리 언제였던가 한 번은 네가 행복했기 때문이리라 어느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
봄날에 글을 읽다가 정약용(1762-1836)
아침 해 맑은 눈을 녹이고 맑은 창엔 똑똑똑 물방울 소리 독서란 본래 즐거운 것 경세에 어찌 이름을 추구하리 요임금 순임금 때는 풍속이 질박했고 이윤과 부열은 몹시 근면했지 나도 늦게 태어난 것은 아니니 먼 훗날의 희망을 품어 보노라
봄날 아침 로렌스(1885-1930) 영국
아아, 열린 방문 저쪽 저기 있는 것은 아몬드나무 불꽃 같은 꽃을 달고 있다 이제 다투는 일은 그만두자
아아, 열린 방문 저쪽 저기 있는 것은 아몬드나무 불꽃 같은 꽃을 달고 있다 이제 다투는 일은 그만두자
이제는 정말 봄! ㅡ 보라 저 참새는 자기 혼자라 생각하면서 그 얼마나 꽃을 못살게 구는가 너와 나는
얼마나 둘이서 행복해지랴, 저걸 보렴 꽃송이를 두드리며 건방진 모습을 하고 있는 저 참새 하지만 너는 생각해 본 일이 있니?
이렇듯 괴로운 것이라고. 신경쓰지 말지니 이제는 끝난 일 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처럼 행복해지고 여름처럼 우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죽었었다 죽이고 피살된 것이니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느낌과 열의를 지니고 다시 한번 출발하려 마음 먹는다
살고 잊는다는 것 그리고 또한 새로운 기분을 가진다는 것은 사치다 꽃 속의 새가 보이는가? ㅡ 저것은 흔히 취하는 일 없는 큰 소동을 벌이고 있다
저 새는 이 푸른 하늘 전부가 둥지 속에서 자기가 품고 있는 작고 푸른 하나의 알보다 훨씬 작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해진다 너와 나와 그리고 나와 또 너와
이제 다툴 일이란 하나도 없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보라 방문 밖의 세계는 얼마나 호화로운가
봄날 오후 김선우
늙은네들만 모여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 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여 ㅡ 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그,러, 바, 서, 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어 코티분을 콕콕 찍어바른다 봄날 오후 세 시 탑골 공원이 꽃잎을 찍어놓은 젖유리차엥 어름어름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 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 싶다
봄눈 정호승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봄바람 김억 하늘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하늘 꽃송이와 입맞춥니다 하늘하늘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 바람은 그대 잃은 이 내 몸의 넋들이외다
봄바람 김종해 개같이 헐떡이며 달려오는 봄 새들은 깜짝놀라 날아오르고 꽃들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속치마 바람으로 반쯤 문을 열고 내다본다 그 가운데 숨은 여자 정숙한 여자 하얀 속살을 내보이는 목련꽃 한 송이 탓할 수 없는 것은 봄뿐이 아니다 봄밤의 뜨거운 피가 천지에 가득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뜨뜻해지는 개 같은 봄날!
봄바람 맞는 노인 王伯(1277-1350) 고려 문신
어젯밤 산촌에 가랑비가 부슬부슬 대숲 밖 복사꽃이 환하게 피었네 봄빛에 취했나 백발의 저노인 꽃가지 꺾어 머리에 꽂고 봄바람 맞네
봄보다 따뜻한 문복주(1952-)
삼일 내내 눈 내리고 정형이 무너진 지리산 산골
눈길 따라 토끼 눈만 내놓고 여린 짐승으로 기어가며 낄낄거리는 아내
봄볕 문 태준
오늘은 탈이 없다 하늘에서 한 움큼 춤쳐내 꽃병에 넣어두고 그 곁서 잠든 바보에게도 밥 생각없이 종일 배부르다 나를 처음으로 쓰다듬는다 오늘은 사람도 하늘이 기르는 식물이다
봄볕에 굽다 고 영 봄볕 좋은 날 네 식구가 마당에 멍석을 깔아 앉아 숯불 화덕에 석쇠를 걸쳐놓고 꽃삼겹살을 굽습니다 봄볕에 익은 아이의 볼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숯불 속에도, 꽃 삼겹살 위에도 개나리 노란 꽃잎이 기분좋게 피었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에 몸이 달아오른 동네 개들은 울대가 꺾이도록 짖어대고 우리 안 돼지들은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 갑니다 집짐승들의 사소한 소란 속에 봄볕은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내 집 마당에 평등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꽃 삼겹살 위에 봄볕이 자글거리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의 봄날은 얼마나 무료했을가요 살가운 봄볕에 구워진 자리마다 노란 개나리꽃이 꽃잎만 따먹어도 나는 배가 불렀습니다
봄빛 이경진(1968 - ) 나는 그곳에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고 갔었다 무채색에서 연두색을 도발하고 있던 햇살이 어린 것들을 바닥에 품고 겨울을 흘러온 진주 남강의 허리를 낚아채고 있었다 자기 땅에서 유배된 자들*을 쓰다듬다가 나도 그처럼 담담하게 낡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D단조가 햇빛에 변주되어 강물의 몸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그날, 그대는 어느 골목에서 마른 울음을 삼키고 있을까 생각했었다 죽은 자를 위한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 내 몸이 쪽빛 강물이고 싶던 오후
낯선 정거장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화사한 봄옷을 입고 촉석루 공원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부부와 그 위를 날아다니던 작은 새들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몇 번 버스가 그냥 지나가고 눈이 시려 왔다
봄빛소견 김석규 새로 돋은 풀잎을 물고 새들이 날아오른다 봄이 오는 길목에 무량으로 내리는 햇살 첫아이 초등학교 입학 시키고 가는 걸음으로 온다 아까부터 마을 쪽에선 아지랑이 타는 냄새 자운영 꽃밭 속으로 송아지는 달아나고 퍼담을 수 없는 바람만 종일 불고 있다
봄 섬진강 박라연 백사장에는 촛불 켜놓고 물새들에게 쌀을 바친 마음들이 새하얗다 물새가 흘린 답례의 눈물 울음웅덩이 이루는 데 함께 살면서 각자 살아온 발자국들이 덩달아 울어버린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음 함께 아파한 적 많을 것 같은 봄 섬진강 저 반짝이는 물결들 속엔 어젯밤 내 심장을 떠난 거친 눈물들 맑게 씻겨져 끼여 있다는 것 굳은살처럼 박혀 있는 잘못된 인연 씻고 또 씻다 보면 안다 그 인연 수의 입히어 모래무덤 속에 묻어줘야 한다는 것 봄 섬진강의 제망매가 들으면 안다 심장이 터지도록 켜켜이 숨이 피는 꽃을 문신하며 사는 꽃 혈통이라는 것 자목련 백목련 청매화 홍매화 다투어 가의 무릎 베고 눕는 자태 보면 안다 봄 섬진강은 상처를 반짝이게 하는 文靑이라는 것 깊은 물의 연두 바람의 풋풋한 방황 나눠 마시는 것을 보면 안다 사람의 이슬을 알아봐주는 커다란 눈동자라는것
봄소식 천상병 입춘이 지나니 훨씬 춥구나! 겨울이 아니고 봄 같으니 달력을 아래 위로 쳐다보기만 한다
새로운 입김이여 그건 대지의 작난인가! 꽃들도 이윽고 만발하리라
아슴푸레히 반짝이는 태양이여 왜 그렇게도 외로운가 북극이 온지대가 될 게 아닌가
봄소풍 박성우 봄비가 그쳤구요 햇발이 발목 젖지 않게 살금살금 벚꽃길을 거니는 아침입니다 더러는 꽃잎 베어문 햇살이 나무늘보마냥 가지에 발가락을 감고 있구요 아슬아슬하게 허벅지 드러낸 버드나무가 푸릇푸릇한 생머리를 바람에 말리고 있습니다 손거울로 힐끗힐끗 버드나무 엉덩이를 훔쳐보는 저수지 나도 합세해 집적거리는데 얄미웠을까요 얄미웠겠지요 힘껏 돌팔매질하는 그녀
손끝을 따라 봄이 튑니다
힘껏 돌팔매질 하는 그녀 신나서 폴짝거릴 때마다 입가에서 배추흰나비떼 날아오릅니다 나는 나를 잠시 버리기로 합니다
봄, 싫다 이규리 백골 단청, 하얀 절 한 채 지금 막 무너지고 있다 그걸 받아 안는 한낮 무너져도 소리가 없다 저걸 누가 고요라 했겠다 언제 왔다 갔는지 만개한 벚나무 아래 신발 한 켤레
봄마다 땅 속으로 마약을 주사하는지 이맘때, 거품 물고 사지를 틀다 몸서리 잦아드는 마흔 노총각이 있지 깜빡 까무러진 대낮이 있지 백약이 무효한 청춘 덤불처럼 걷어내고 이내 어깨를 허문 잠 누가 고요라 했겠다
더 이상 속지 말자 해놓고 속는데 꽃 탓이라 하겠나 약 탓이라 하겠나 너무 가까워서 안 보이는 것도 있지 취하게 하는 건 향이 아니라 취하고 싶은 제 뜻일 텐데
그래, 나무가 언제 꽃 피웠나!
봄아, 오너라 이오덕(1925-2003) 청송 먼 남쪽하늘 눈 덮힌 산봉우리를 넘고 따스한 입김으로 내 이마에 불어오너라
양지쪽 돌담 앞에 소꿉놀이하던 사금파리 밑에서 새파란 것들아, 돋아나거라
발가벗은 도토리들 가랑잎 속에 묻힌 산기슭
가시덤불 밑에서 달래야, 새파란 달래야, 돋아나거라
종달새야,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잊었던 노래를 들려다오
아른아른 흐르는 여울 물가에서 버들피리를 불게 해다오 쑥을 캐게 해다오
개나리꽃 물고 가는 노랑 병아리 새로 받은 교과서의 아, 그 책 냄새 같은
봄아, 오너라 봄아 , 오너라
봄아침 양애경 새벽 잠자리에서 반쯤 깨어 양쪽 어깨에 번갈아 얼굴을 묻으며 누군가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호 호 호 호이오 휘파람새가 노란색 장미 꽃잎을 수없이 감았다가 펼쳐 보여 주었다
봄아침 이해인 창틈으로 쏟아진 천상 햇살의 눈부신 색실 타래
하얀 손 위에 무지개로 흔들릴 때 눈물로 빚어 내는 영혼의 맑은 가락
바람에 헝클어진 빛의 울을 정성껏 빗질하는 당신의 손이 노을을 쓸어 내는 아침입니다
초라해도 봄이 오는 나의 안뜰에 당신을 모시면 기쁨 터뜨리는 매화 꽃망울
문신 같은 그리움을 이 가슴에 찍어 논 당신은 이상한 나라의 주인
지울 수 없는 슬픔도 당신 앞엔 축복입니다
봄에게1 김남조 아무도 안 데려오고 무엇 하나 들고 오지 않는 봄아 해마다 해마다 혼자서 빈 손으로만 다녀온 봄아 오십 년 살고나서 바라보니 맨손 맨발에 포스스한 맨머리결 정녕 그뿐인데도 참 어여쁘게 잘도 생겼구나 봄아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엄원태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삼단 햇살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붓둑에 퍼질고 앉은 아낙네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아낙네들의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들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만 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봄 연못 프로스트 이 연못들, 숲속에서도 언제나 흠 잡을데 없는 하늘을 비추고 곁에 있는 꽃처럼 추위에 떨기도 하고 곁에 있는 꽃처럼 이내 사라지기도 할게다 하지만 개울이나 강이 되어 사라지는 대신에 뿌리 타고 올라가 어두운 잎을 이루리
나무는 그 새싹 속에 숨기고 있으니 여름 숲이 되어 자연을 어둡게 하는 힘 나무여, 다시 생각해 다오, 어제 눈이 녹은 물 그 꽃 같은 물을 그 물 같은 꽃을 빨아들여 마시고 쓸어버리는 데에만 그 힘을 모두 써버릴건가
봄은 이대흠 조용한 오후다 무슨 큰일이 닥칠 것 같다 나무의 가지들 세상 곳곳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숨 쉬지 말라 그대 언 영혼을 향해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지 알 수 없다 마침내 그곳에서 탕, 탕, 탕, 탕 세상을 향해 쏘아대는 저 꽃들 피할 새도 없이 하늘과 땅에 꽃들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이다 ----> 등단 당시 오세영 시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거셌음.
봄은 또 어이해서 찾아오는가 임보 지난 온 겨울을 진눈깨비로 절인 산과 들판에 봄은 또 어쩌자고 그 작은 해빙의 가는 물소리로 찾아오는 것인가?
지난 온 겨울을 북풍에 찢긴 빈 나뭇가지 마른 풀잎 위에 봄은 또 어쩌자고 그 여린 꽃눈으로 솟아오르는가?
지난 온 겨울을 호열자보다도 무서운 매서운 零下로 가득했던 골목 그리하여 주민들은 눈과 귀를 그들의 두터운 커튼 뒤에 숨기고 病棟처럼 죽어 있었던 빈 마을에 봄은 또 어쩌자고 그 푸른 유혹의 입김, 아지랑이로 그렇게 피어오르는가?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1900-1929)대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금성 3호. 1924년
봄은 전쟁처럼 오세영 늦바람 무섭다더니 겨우내 적멸로 돌아가리라 일제히 한 잎마저 벗고 동안거에 들었던 나뭇가지들 입춘 지나 우수 지나 웅성 꿈틀거린다 저, 저, 어누새 툭 불거진 눈방울 두릿두릿한 산수유 좀 보게 살 오른 목련 봉오리 봉긋한 털가리개 좀 보게 진달래 영산홍 아뜩한 입술부터 샐쭉, 적멸보궁이 눈앞이라도 못 참겠네 못참아 여든 살 삭정이도 무릎을 일으켜 세우다 우지끈! 큰일났네 산너머 전쟁이 온다네 울긋불긋 아롱다롱 아무도 안죽고 무덤마저 살아나는 전쟁이 온다네
봄은 해마다 ㅡ 괴테 꽃밭은 어느 새 언덕이 되어 흔들리고 그 곳에서 작은 꽃송이들이 새하얗게 나폴거린다 사프란이 활짝 피어 작열해 있고 스마라그드 꽃순도 핏빛으로 돋아난다 앵초꽃은 의기양양하게 뽐내고 있고 약삭빠른 제비꽃은 애써 숨는다 언덕에 존재하는 만물이 꿈틀거리고 피어나니 완연히, 봄은 소생하며 활동하도다 정원에는 꽃들이 화창하게 피어나니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고운 마음이로다 그 곳에는 끊임없이 나를 향한 불타는 눈길에 노래가 흘러나오고 즐거운 말이 샘솟는다 언제나 열려 있는 꽃들의 마음은 진지한 가운데 정답고 익살스런 가운데 순수하다 장미와 백합이 피는 여름이 와도 봄의 꽃들은 지지 않으리라
봄을 기다리는 마음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봄을 그대에게 릴케 갖가지의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서 걷는 사람만 언젠가 한 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
봄을 맞는 폐허에서 김해강 어제까지 나리든 봄비는 지리하던 밤과 같이 새벽바람에 고요히 깃을 걷는다
산기슭엔 아즈랑이 떠돌고 축축하게 젖은 땅우엔 샘이 돋건만 발자취 어지러운 옛 뒤안은 어이도 이리 쓸쓸하여 ...
볕 엷은 양지 쪽에 쪼그리고 앉어 깨어진 새검파리로 성을 쌓고 노는 두셋의 어린아이
무너진 성터로 새어 가는 한 떨기 바람에 한숨지고 섯는 늙은이의 흰 수염은 날린다
이 폐허에도 봄은 또다시 찾아왔건만 불어 가는 바람에 뜻을 실어 보낼 것인가 오 ㅡ 두근거리는 나의 가슴이여! 솟는 눈물이여!
그러나 나는 새벽바람에 달음질치는 동무를 보았나니 철벽을 깨트리고 새 빛을 실어 오기까지 오 ㅡ 그 걸음이 튼튼하기만 비노라 이 가슴을 바쳐 ㅡ
봄의 금기사항 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 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여 사랑은 그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 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문학사상 2003년 5월호
봄의 연못들 프로스트 숲 속에 있지만 거의 온 하늘을 깨끗이 담아주는 이 연못들은 연못가의 꽃들처럼 추워서 떨다가 그꽃들마냥 사라지리라 하지만 강이나 개울로 흐르지 않고 뿌리를 타고 올라 왕성한 잎을 피워내리라
자연을 짙게 물들이고 찬연한 여름 숲을 이를 힘을 그들의 숨겨진 봉우리에 감추고 있는 나무들 겨우 엊그제, 쌓인 눈에서 녹아내린 꽃같은 물과, 물과 같은 꽃들을 지우고 마시고 쓸어가 버릴 그 힘을 다 사용하기 전에 침착히 그 의미를 생각하여라
봄의 줄탁 도종환 모과나무 꽃순이 나무껍질을 열고 나오려고 속에서 입술을 움찔움찔 거리는 걸 바라보다 봄이 따뜻한 부리로 톡톡 쪼며 지나간다 봄의 줄탁 금이 간 봉오리마다 좁쌀알 만한 몸을 내미는 꽃ㄷㄹ 앵두나무 자두나무 산벚나무꽃들 몸을 비틀며 알에서 깨어나오는 걸 바라본다 내일은 부활절
시골 교회 낡은 자주색 지붕 위에서 세워진 십자가에 저녁 햇살이 몸을 풀고 앉아 하루 종일 자기가 일한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애지.2006년 봄호.
봄의 진동 고재종 조팝나무에 피죽새 운다 하여 그 소리 듣고자 뒷산에 갔더니만 아무리 귀 쫑긋대고 눈 씻어보아도 하늘은 정정하고 연둣빛만 차오를 뿐인데 대마침 저기 숲수평에서 꿩 꿔엉...적막을 깨는 장끼 소리에 순간 조팝꽃 새하얀 그 긴 꽃자루들이 바르르 떨리며 은잎 꽃잎 빗살 속에 마구 뿌리던 것이라니
봄의 幻 남진우 봄이 오고 있다 몸속의 얼음이 녹아 조금씩 밖으로 스며 나오고 있다 나는 먼 나라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고 혼잡한 거리를 걷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몸 속의 추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저울이 기울어진다 땅엔 구름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있어 빗방울을 내리게 하는 걸까 새 한 마리 날아가는 모습에도 나는 텅 빈다 대기 속을 떠도는 햇살의 씨앗에 얼굴을 부비며 나를 끌어당기는 천상의 자석을 떠올린다 길가의 상점 유리창마다 하나씩 나를 남겨두고 나는 걷는다 잔잔한 바람에도 몸 전체로 번겨가는 잎파랑 눈을 감고 한 세기가 저물기를 기다리지만 내 몸은 어느덧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르고 자전거를 탄 아이가 길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봄이 와서 머무는 자리 몸속의 저울이 간신히 평형을 회복한다
봄이 그냥 지나요 김용택 올 봄에도 당신 마음 여기 와있어 여기 이렇게 내 다니는 길가에 꽃들 피어나니 내 마음도 지금쯤 당신 발길 닿고 눈길 가는데 꽃 피어날 거에요 생각해보면 마음이 서로 곁에 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린 서로 꽃 보면 쓸쓸하고 달 보면 외롭고 저 산 저 새 외롭고 밤새워 뒤척여져요 마음이 가게 되면 몸이 가게 되고 마음이 안 가더래도 몸이 가게 되면 마음도 따라가는데 마음만 서로에게 가서 꽃 피어나 그대인 듯 꽃 본다지만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 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 그 꽃산 철조망을 두른 채 꽃 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이 봄이 그냥 지나고 있어요
봄이되면 김용택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박영희 그냥 가도 좋으련만 회색빛 겨울 하늘은 기어이 어머니 머리에 내려앉아 흰머리 한올 심어놓고 가고
지리한 겨울 대지보다 먼저 당신의 품으로 씨앗들 품은 채 밭은 기침 몇번으로 지난 가을을 용서해버린 아버지는 파란 하늘에 파종을 하고
삼월이라 햇살도 고와 낮에 뿌린 씨앗들 밤이면 별로 돋아나 대지는 아침을 열고 하늘은 탄식을 걷어내고
봄처녀 이은상(1903 -1982) 경남 마산 봄처녀 제 오시네 새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님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리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볼꺼나
봄 한낮 박규리 치자향 흐드러진 계단 아래 반달이랑 앉아 하염없이 마을만 내려다본다 몇 달 후면 철거될 십여호 외정마을 오늘은 홀로 사는 누구의 칠순잔친가 이장집 스피커로 들려오는 홍탁에 술 넘어가는 소리 소리는 계곡을 따라 산으로 오르지만 보지 않아도 보이고 듣지 않아도 들리는 그리운 것들은 다 산 아래 있어서 마음은 아래로만 흐른다 도대체 누구 가슴에 스며들려고 저 바람은 속절없이 산을 타고 오르느냐 마을 개 짖는 소리에 반달이는 몸을 꼬며 안달을 하는데 나는 어느 착한 사람을 떠나 흐르고 흐르다가 제비집 같은 산중턱에 홀로 맺혀 있는가 곡진한 유행가 가락에 귀 쫑긋 세운 채 반달이보다 내가 더 길게 목을 뽑아 늘인다
봄 햇살 속으로 이해인 긴 겨울이 끝나고 안으로 지쳐 있던 나 봄 햇살 속으로 깊이 깊이 걸어간다 내 마음에도 싹을 틔우고 다시 웃음을 찾으려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을 감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끝자리에는 지금껏 보았지만 비로소 처음본 푸른 하늘이 집 한채로 열려있다
봄, 희망 김영승 일곱달 째 신문대가 밀려 신문도 끊겼다 저녁이면 친구인 양 받아보던 신문도 이제 오지 않는다 며칠 있으면 수도도 전기도 끊길 것이다 며칠 있으면 이 생명도 이 몸에서 흘리던 핏줄기도 끊길 것이다 은행의 독촉장과 법원의 최고장 최후통첩장 수많은 통고장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아내가 보낸 절교장도 그 위에 놓여있다
진달래가 피었노라고 아내에게 쓰던 편지 위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가장 빛나는 것을 나는 한 장 집어 들었다
불취 불귀 허수경(1964 - ) 진주 어느 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없는 봄 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이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 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만 없다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5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조선문단 18호.
산도화 박목월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산방山房의 밤 왕발(650-676) 당나라 거문고 안고 방문을 열어놓고 술잔을 잡고 情人을 대한다 숲 속의 못가, 달밤의 꽃 아래 또 다른 하나의 봄나라
술받으러 가는 봄 이화은 물병아리 한 마리가 딱 반 되짜리 주전자 뚜껑만한 고것이 겁 없이 봄강을 끌고 가네 꼬리 물살이 풍경화 속 원근법 같기도 하고 후라쉬 비추고 가는 외로운 밤길 같기도 한데 고 뚜껑이 잠시 물 속으로 잠수라도 해버리면 강은 덩치 큰 아이처럼 철없이 길을 쏟아버리고 마는데 반 되가 턱없이 말술이 되기도 한다는 걸 오래된 풍경화 속 원, 근, 어디쯤에 후라쉬 불빛 가까이 들이대고 보면 거기 쭈그러진 아버지 반 되짜리 주전자 꽥꽥 혼자서 울고 있다네 술 받으러 가는 아이처럼 물병아리 달그락달그락 추억 쪽으로 너무 멀리 가지 말거라 봄은 겉 늙어버린 덩치만 큰 아이 같으니
아득한 봄날 정진규 모내기 전 무논 가득 슬어놓은 개구리 알 도룡뇽 알들 동그랗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알간 유리창 그 안에 새까아만 외눈동자 하나씩 눈 뜨고 있다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한창이던 찔레꽃 하얗게 눈발 날리고 아득하다 달래 간장에 밥 비벼먹고 나온 심심한 동네 아이들 개구리 알 도롱뇽 알 쪼그려 들여다보다가 외눈박이다 도깨비 새끼다아 논두렁길 줄지어 내달리는 한낮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하이네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꽃망울들이 피어날 때에 내 가슴 속에도 사랑이 움텄네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온갖 새들이 지저귈 때에 그리운 그대에게 불타는 사랑을 고백했지
아무도 없는 봄 이승훈 밖에 나가 음메 하고 돌아오고 방에 있다 다시 나가 하늘 보고 음메 하고 돌아오네 아무도 없는 봄 대문앞에서 지나가는 닭을 보고 음메 하고 돌아오지 책 읽다 말고 가슴이 막히면 또 뛰어나가 음메 하고 돌아오는 봄 머리 아프면 번개처럼 뛰어나가 골목 보고 음메 하고 지나가는 개를 보고 음메 하면 개가 웃지 웃어라 나를 먹어라 이 뼈다귀를 먹고 진창을 먹고 귀신을 먹어라 다시 돌아와 방에 앉지만 사는게 지옥이든 천국이든 밥 먹다 말고 다시 나가 음메 하고 돌아오는 봄
어느 봄날 나희덕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 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 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 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연분홍 김억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눈을 틉니다
연분홍 송이송이 못내 반가와 나비는 너훌너훌 춤을 춥니다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나부낍니다
연분홍 송이 송이 바람에 지니 나비는 울며울며 돌아섭니다
애모 김소월 왜 아니 오시나요 영창에는 달빛, 매화꽃이 그림자는 산란히 휘젓는데 아이, 눈 꽉 감고 요대로 잠을 들자
저 멀리 들리는 것! 봄철의 밀물 소리 물나라의 영롱한 구중궁궐, 궁궐의 오요한 곳 잠 못 드는 용녀의 춤과 노래, 봄철의 밀물 소리
어두운 가슴 속의 구석구석 .... 환연한 거울 속에, 봄구름 잠긴 곳에 소슬비 나리며, 달무리 둘녀라 이대도록 왜 아니 오시나요, 왜 아니 오시나요
오는 봄 김소월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 보내라 오늘 보니 백양의 뻗은 가지에 전에 없이 흰 새가 앉아 울어라
그러나 눈이 깔린 두덩 밑에는 그늘이냐 안개냐 아지랑이냐 마을들은 곳곳이 움직임 없이 저편 하늘 아래서 평화롭건만
새들게 지껄이는 까치의 무리 바다를 바라보며 우는 까마귀 어디로서 오는지 종경소리는 젊은 아기 나가는 조곡일러라
보라 때에 길손도 머뭇거리며 지향없이 갈 발이 곳을 몰라라 사무치는 눈물은 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삶의 기쁨
저마다 외로움이 깊은 근심이 오도 가도 못하는 망상거림에 오늘은 사람마다 님을 여의고 곳을 잡지 못하는 설움일러라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소리는 때로 여읜 손끝을 울릴지라도 수풀 밑에 서러운 머리결들은 걸음걸음 괴로이 발에 감겨라
올봄 김용택 올 봄엔 때없이 바람이 불곤 하였습니다 저물녘에 잠들었던 바람이 한밤중에 깨어나 잠긴 문을 아무데나 흔들어대곤 했습니다 아무도 문 열지 않았습니다 나도 이불 속에서 생각을 생각하며 생각이 자리잡히지 않아 돌아눕곤 했습니다 잠들어 누운 대로 눈 뜨면 새벽별 하나가 금 간 벽 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습니다
울 엄마 봄 정완영 바빠진 우리 엄마 맨발 벗고 나선 엄마 지독한 두엄 냄새 떡 주물듯 주물면서 구덩이 호박씨 심고, 새 소리도 심는대요
어째서 울 엄마는 귀도 그리 밝은 걸까? 흙 냄새 간질간질, 빗소리도 간질간질 상추씨 촉 트는 소리도 간질간질 들린대요
이따금 봄이 찾아와 나희덕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말을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는다 허공에 닿자 굳어버리는 거미줄처럼 침묵의 소문만이 무성할 뿐 말의 얼음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따금 봄이 찾아와 새로 햇빛을 받는 말들이 따뜻한 물 속에 녹기 시작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 물 오른 말이 다른 말을 부르고 있다 부디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시라
이래도 안오시겠어요 박남준 아른아른 아지랭이가 먼 산들에 피어오르는 이 봄날 겨우내 묵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들녘에 가보아요 양지쪽마다 새순 곱게 피어올리는 냉이며 달래 씀바귀
이른 봄 톨스토이 이른 봄 풀은 겨우 고개를 내밀고 시냇물과 햇빛은 약하게 흐르고 숲의 초록색은 투명하다
아직 목동의 피리 소리는 아침마다 울려 퍼지지 않고 숲의 작은 고사리도 아직은 잎을 돌돌 말고 있다
이른 봄 자작나무 아래서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내리깔고 내 앞에 너는 서 있었다
내 사랑에게 보내는 응답으로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던 너 생명이여! 숲이여! 햇빛이여! 오오, 청춘이여! 꿈이여!
이른 봄 헤세 바람이 밤마다 포효한다 그 축축한 날개가 무겁게 퍼덕인다 도요새들이 공중에서 비틀거린다 이제 아무 것도 더 잠자지 못한다 이제 온 땅이 깨었다 봄이 부르고 있다
가만, 가만히 있어라 내 마음아! 피 속에서도 비좁고 무겁게 격정이 솟구쳐 너를 옛길로 해서 인도하더라도 ㅡ 젊음 쪽으로는 이제 네 길이 가지 않는다
이른 봄 호프만 시탈 봄바람이 달려 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가진 봄바람이 달려 간다
흐느껴 우는 소리 나는 곳에서 봄바람은 몸을 흔들었고 사랑에 가슴 아파 하는 아가씨의 흩어진 머리칼에서 봄바람은 흔들었다
아카시아 나무를 흔들어 아카시아꽃을 떨어뜨리고 숨결 뜨겁게 내몰아 쉬고 있는 두 연인을 싸느다랗게 했다
소리내어 웃고 있는 아가씨의 입술을 웃고 있는 아가씨의 입술을 살짝 어루만졌고 부드러운 봄날에 눈을 뜬 들판을 여기저기 찾아다닌 것이다
목동이 부는 피리 속을 빠져 나와 흐느껴 우는 소리와도 같이 새벽놀 붉게 물든 곳을 훨훨 날아 지나온 것이다
연인들이 속삭이고 있는 방을 빠져 나와 봄바람은 말없이 날았다 그리고 희미한 낚시 불빛을 허리를 굽히면서 끄고 온 것이다
봄바람이 달려 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가진 봄바람이 달려간다
벌거숭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미끌어지듯 지나가면서 봄바람의 입김은 창백한 그림자를 뒤따른다
지난 밤부터 불고 있는 이른 봄날의 오솔바람은 향긋한 냄새를 지니고 이 마을에 찾아왔다
이른 봄 아침 정지용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여 들어와 참한 은시게로 자근자근 얻어맞은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러저 수은방울처럼 동글동글 나동그라저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쥐나 한마리 훔켜 잡을 듯이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 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 새이로 빠알간 산새새끼가 물레ㅅ북 드나들듯
새새끼 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회파람이라 새새씨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 ㅡ 저쪽으로 몰린 푸로우ㅇ피일 ㅡ 페랑이꽃 빛으로 볼그레 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깎어 세운 대리석 기둥 인듯 간ㅅ뎅이 같은 해가 익을거리는 아침 하늘을 일심으로 떠바치고 섰다 봄ㅅ바람이 허리띄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 오노니 새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新民>22호.1927년 2월
이번 봄 정진규 요즈음엔 자주 절대예감 같은 게 찾아온다 이번 봄 해인사 가서 또 그걸 보았다 장경각 가파른 계단 올라 들여다보다가 나무 창살 사이로 드나드는 꽃바람결 한참을 만지다가 장경각 바닥에 떨어져 조금씩 배밀이 하는 봄 햇살 살 오른 햇살도 한참을 만나다가 아무래도 해독되지 않는 경판들 쌓인 높이만 아득하게 더듬다가 저녁 예불 시간까지 기다리면 기필코 황홀 하나 만지게 되리라는 그게 왔다 보았다! 법고였다 마음 心자로 한참을 휘몰아가던 북채가 마지막 마음 心자로 북 바닥을 드윽 긁고 지나갔다 몇 번을 그랬다 열렸다 터졌다 법을 끝낸 손, 어혈의 손에서 피가 듣고 있었다 나도 직방 돌아서 내 법고가 되어 있는 팽팽한 여자를 마음 心자 하나로 드윽 긁었다 열렸다 터졌다 경판 한 장을 새기었다 이번 봄
이 봄의 노래 정희성 무엇이 이 산에 꽃을 피우나 봄이 오면 해마다 진달래 피어 이 마음 울연히 붉어오겠네 가야지 어찌 아니 돌아가리 그리운 보리밭 푸른 하늘아 정답던 친구 어디 가고 이 봄만 남아 푸르러지나 만나면 부둥켜 울고 싶어서 4월은 꽃보다 더욱 붉어라
이제는 봄이구나 이해인 강에서는 조용히 얼음이 풀리고 나무는 조금씩 새순을 틔우고 새들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불러내고 이제는 봄이구나 친구야 바람이 정답게 꽃이름을 부르듯이 해마다 봄이면 제일 먼저 불러보는 너의 고운 이름 너를 만날 연둣빛 들판을 꿈꾸며 햇살 한 줌 떠서 그리움, 설레임, 기다림... 향기로운 기쁨의 말을 적는데 꽃샘바람 달려와서 네게 부칠 편지를 먼저 읽고 가는구나, 친구야
일용직 정씨의 봄 이명윤 벚꽃 가득한 풍경을 파일에 담는다 휴대폰을 여는 순간 (봄이다) 부르튼 입술이 봄을 한입 베어 물면 당신 잠시나마 봄이 되지 않을까 한가하게 봄 타령이라니요 어쩌면 쓴웃음 짓겠지만 언제 또 다른 일 찾아야 할지 모를 불안이 습관적으로 피고 지는 저녁 밥이 되지 못하는 봄이란 사치스런 감성으로 피고 지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길 가 벚나무의 수많은 입이 터뜨리는 환한 웃음에 저게 다 출그도장이면 저게 다 밥이면 좋겠네 당신 잠깐의 미소로 행복할 수 있다면 봄이 그저 당신의 얼굴을 스쳐가는 가벼운 은유로 머물지라도 늦은 밤 찬밥을 얹은 숟가락에 꽃잎 한 장 올려주고 싶네 (계약기간을 연장합니다) 기다리던 통보가 오지 않는 당신의 저녁 계약하지 않아도 매년 찾아오는 봄 당신이 잃어버린 봄날의 한 컷을 돌려드리고 싶네
일획 장석주 초봄에 매화 꽃눈 돋다, 어제와 다른 하늘 밑 내닫는 호랑이다, 호랑이 눈동자다, 저 꽃들! 아버지 가고 맞은 늦봄 천지에 모란꽃 붉다 벚 꽃잎 분분하게 무너진다, 저 끊긴 인연들 자다 깨다 설친 밤 개구리 떼 서책 읽는 소리 물 빠진 개펄에 혼자 서 있는 민댕기물떼새 오동은 곧고 소나무 굽었다, 무릇 금생이다 풍란이 허공에 붓을 친다, 획이 굽은 듯 곧다 하마 당신 올까, 무서리에도 꿋꿋한 까치밥 아, 살아 움직인다, 명월 아래 기러기 떼 서체 매화 국화 다 진 뒤 초겨울 앵두나무에 박새 가는 길에 꽃 없어 섭섭할까 가지마다 설화!
장터의 봄 김수우 도살장에 팔려갈 늙은 소의 코끝에 붙은 살구꽃잎 한 장 소와 ?잎이 들여다보는 길끝, 광주리 하나 걸어온다
살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 시장꾸러미에 높다랗게 얹혀 실려가는 붓꽃 몇 송이 나를 본다, 모든 꽃은 오랜 약속에 붙이는 느낌표이다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다
적선 길상호(1973 - ) 충남 논산 마음이 가난한 나는 빗방울에도 텅텅텅 속을 들키고 마는 나는
뭐라도 하나 얻어 보려고
계절이 자주 오가는 길목에 앉아 기워 만든 넝마를 뒤집어쓰고 앉아
부끄러운 손 벌리고 있던 것인데
깜빡 잠이 든 사이 아무 기척도 없이 다가와 너는 깡통 가득 동그란 꽃잎을 던져 넣고 갔더라
보지도 못한 얼굴이 자꾸 떠올라 심장이 탕탕탕 망치질하는 봄 깡통처럼 찌그러든 얼굴을 펼 수 없는 봄 <문학사상 5월호>
첫치마 김소월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지고 잎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 난 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이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초록 기쁨-봄 숲에서 정현종 해는 출렁이는 빛으로 내려오며 제 빛에 겨워 흘러넘친다 모든 초록, 모든 꽃들의 왕관이 되어 자기의 왕관인 초록과 꽃들에게 웃는다. 비유의 아바지답게 초록의 샘답게 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신전이다
해여, 푸른 하늘이여, 그 빛에, 그 공기에 취해 찰랑대는 자기의 즙에 겨운, 공중에 뜬 물인 나뭇가지들의 초록 기쁨이여
흙은 그리고 깊은 데서 큰 향기로운 눈동자를 굴리며 넌즈시 주고 받으며 싱글거린다
오 이향기 싱글거리는 흙의 향기 내 코에 댄 깔때기와도 같은 하늘의, 향기 나무들의 향기!
초봄 송길자 겨우내 헝클어진 산수유 울타리에 신행 온 햇살들이 입김들을 나누는 날 북성산 냉이 돌나물 봄을 살짝 엿본다
개나리 진달래꽃 신접 난 담장 아래 보라빛 목련 가지에 맑은 바람 걸어주고 작약순 흙을 비집고 빨간 촉수 내민다
초봄 정완영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마리 날아가며 하늘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
초봄이 오다 하종오 산수유 한 그루 캐어 집에 옮기려고 산에 가만가만 숨어들었다 나무는 뿌리를 밑으로 밑으로 내려놓았겠지 자그마한 산수유 찾아 삽날을 깊숙이 꽂았다 이제 한 삽 뜨면 산에게서 내게로 올 게다 겨울 내내 집 안은 텅 비고 날 찾아오는 이 없었어 이제 마당귀에 산수유 심어놓고 그 옆에서 꽃 피길 기다리면 이 산이라도 날 찾아오겠지 삽자루에 힘을 주어도 떠지지 않아서 뿌리 언저리 손으로 파헤쳐보았다 산수유는 뿌리를 옆으로 옆으로 벌려놓고 있었다 나는 삽날 눕혀 뿌리 밑을 돌아가며 둥그렇게 뜬 뒤 밑동 잡고 들어올렸다 한 그루 작은 산수유 실뿌리 뚜두두둑 뚜두두둑 끊기자 산에 있던 모든 산수유들 아픈지 파다닥파다닥 노란 꽃망울들 터뜨렸다
춘니春泥 김종길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 붙은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 어디선가 연식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지리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춘래불사춘 양채영(1935 - ) 문경 배반한 놈들의 이름과 낯짝 그 말소리와 웃음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창 밖에선 봄눈이 친다 오락가락 재수없는 잎눈은 얼겠지 배반은 쉽다 배반은 차갑다 꽃샘바람에 실려 내리는 눈발은 얼까 녹을까 망설이며 어지러이 어지러이 이 창 밖에 분분하다 1966<시문학>등단
춘설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호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어름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귀롭어라
옹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귀던 고기입이 오믈 거리는
꽃 피기전 철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春信 유치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춘일 오탁번 풀귀얄로 풀물 바른 듯 안개 낀 봄산 오요요 부르면 깡종깡종 뛰는 쌀강아지 산마루 안개를 홑이불 시치듯 호는 왕겨빛 햇귀
시안. 2005년 봄호
하얀 봄 오남구(계간 시향 주간) 이른 아침 티 없이 하얀 봄 속으로 내가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고 집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글을 쓰다가 책상 위에 놓고 나간 봄의 A4하얀 종이 위엔 내 작은 키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어제 밤에 늦게까지 시를 말하며 마신 커피 그 붉은 눈을 뜨고 있는 카페인이 잠을 설쳐 놓아서 몽롱한 배경이 깔려 있다 엎지른 물도 얼룩을 남기고 있다 내가 승차장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하얀 봄 교향악이 울려 퍼지자 반짝하고 파랗게 보리밭이 떠오른다
해마다 봄이 되면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햇빛이 말을 걸다 권대웅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 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피파의 찬가 로버트 브라우닝(1812 -1889) 계절은 이른 봄 시간은 아침 아침 중에도 일곱 시 저 뒷동산 구름에 이슬구슬 맺혔다 노고지리 퍼덕이고 달팽이 가시 위에 앉아 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이 세상이 평화롭도다
하늘 펄펄 꽃사태 박두진 어떻게 당신은 내게 믿음을 주셨을까 당신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셨을까 그때 내 영혼 홀로 방황하고 칠흑 벌판 끝도 없는 무인 광야 사막 소낙비 천둥 번개 우릉대고 깨지고 우박 폭풍 폭설 펑펑 퍼붓다가도 갑자기 햇덩어리 폭양 펄펄 용광으로 끓어 동남서북 어딜 가나 절망뿐인 천지 진실로 나는 광야에서 나고 자란 어린 들짐승 스스로를 저주하고 스스로를 연민 해온 외롭고도 완강한 탕자였나니 말을 하는 짐승 날 수 없는 영혼 피로 이은 향수와 날고 싶은 꿈 오늘도 내일도 어제도 모르고 목숨도 혼도 영도 그냥 그래도 넘어지며 일어서며 상처뿐인 영혼에 놀라워라 무지갤지 섬광일지 하늘 사다릴지 할렐루야 그 십자가 길 피로 사서 이기신 부활이신 당신 앞에 황홀하나니 진실로 바라는 것의 그 실상이며 영생이신 당신 믿음의 그 증거이신 사랑이신 당신 하늘 펄펄 꽃사태의 영광 우러러 탕자 하나 무릎 꿇고 울음 울어라 cafe.daum.net/puppetstory/Ut4V/660 인형극단 놀이터친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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