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의 흙을 찾아서

2016. 3. 31. 19:28도자 이야기

백자의 흙을  찾아서

영웅 2011.01.01 16:55

      

백자의 흙을  찾아서

 

▲ 사기장의 작업광경

– 필자

   조각가가 물질을 이용하여 형상을 이미지로 표현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자라면, 사기장은 흙에서 흙이 가진 태생적인 의미를 밖으로 끌어내는 자요, 불과 흙의 화합을 통해 흙 고유의 질감과 땟깔(색깔), 그리고 형상을 찾아주는 자입니다.

하늘이 점지한 '사기장'이라는 운명을 숙명이라 여기면서 도자기 한길만 갔던 우리 나라의 옛 사기장들은 흙 본래의 성질을 바꾸어 도자기에 맞게 만드는 비법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고려청자, 분청사기들을 빚었습니다. 또한 하얀 옷과 순결을 사랑한 백의민족이었기에 조선 시대에는 가장 청아하고 맑고 고운 살결을 가진 조선백자를 빚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사기장이 말하는 백자 흙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 나라의 사기장(도공)들은 일반 점토(입자 0.002mm 이하)를 논이나 야산에서 파와서 수비(정제)해 도자기를 빚었습니다. 이 점토는 단일 성분이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성분이 섞여 있는 찰기(점력) 있는 흙을 말합니다.

▲ 백자철화운용문 항아리

그리고 이 흙, 즉 점토를 가지고 물레를 돌려 도자기의 형태를 빚었습니다. 그 다음 유약을 입혀 장작으로 구운 것이 청자, 분청사기, 옹기 등 우리 나라 대부분의 도자기입니다. 이런 도자기를 뒤집어 보면 흙 본래의 땟갈이 보입니다. 특히 굽 밑부분은 유약이나 화장토가 입혀져 있지 않아 흙 본래의 색깔이 보입니다(화장토는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도자기 표면에 색을 입히는 안료를 말합니다).

이 색깔이 검거나 회색인 것은 그것이 점토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청자나 분청사기는 점토로 빚었기에 굽바닥 가장자리를 보면 모두가 검거나 회색을 띄고 있습니다.

반면 백자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도자기를 만드는 흙인 태토가 위에서 말하는 점토가 아니기 때문에 굽 바닥의 땟갈이 하얗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자입니다. 그런데 백자 중에도 표면에 안료칠을 해 하얗게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이는 백자라는 기본 몸체에 색깔을 띤 옷에 해당하는 화장토나 땟깔 있는 유약을 발랐기 때문입니다.

▲ 아티카 콜렉션의 철화와 청화 백자


ⓒ 아티카 콜렉션

   조선 초 전라도에서 많이 빚은 분청사기 중에 '덤벙분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덤벙 분청은 다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땟깔이 하얗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백자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뒤집어 굽 바닥 가장자리를 보면 흙 색깔이 검은 회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태토가 점토이기 때문입니다. 하얗게 보이는 것은 하얀 화장토를 태토 위에 입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도자기는 점토 위에 하얀 화장토를 입힌, 분을 바른 청자라는 뜻의 '덤벙 분청'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백자는 무슨 흙으로 만들었기에 땟깔이 하얀 색일까요? 백토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고령토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토를 '카오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백자 흙은 흙이 아니라 '도석'이라는 돌을 분쇄해서 빚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어느 말이 맞을까요?

사실은 다 맞는 말입니다. 고령토는 본래 중국 고령 지방에서 많이 나는 하얀 흙(백토)입니다. 고령토의 중국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 바로 '카오링'입니다. 이 카오링이란 용어가 현대 도자기계의 공식 용어가 되었습니다.

▲ 미쓰이 그룹 소장.

덤벙분청사발

예를 들면, 경남 하동이나 산청의 높은 산에 있는 광산에 가보면 하얀 흙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백토라고 부른 이것이 바로 카오링입니다. 우리 조상들을 이것을 흙으로 보아 백토라고, '土'으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백토는 요업적으로 봤을 때 단일 성분으로 이루어진 아주 미세한 돌입니다. 이것은 현미경으로 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흙(복합 성분)은 외국으로 수출이나 수입을 할 수 없는데 우리 나라의 백토, 즉 카오링은 돌이기에 외국으로 수출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백자는 아주 미세한 돌로 빚은 것입니다.

그러면 '도석'은 무엇일까요? 도석은 도자기가 될 수 있는 성분이 모두 들어 있는 돌입니다. 이 도석을 물레방아나 연자방아를 이용해서 아주 잘게 분쇄하여 물기를 가하면 찰기 있는 백자의 태토가 됩니다. 또 잘게 분쇄된 도석에 나무재를 섞으면 바로 이것이 유약이 됩니다. 그리고 도석은 채굴된 장소에 따라 특성이 많이 차이가 납니다.

▲ 도석을 분쇄하는 물레방아

   이웃 나라 일본은 임진왜란 전까지 백자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백자의 태토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납치해 간 조선의 사기장 이삼평이 천산(泉山) 도석 광산을 발견하여 처음 일본에서도 백자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 도자기를 일본에서는 '아리타야끼'라고 부릅니다. 이삼평은 일본에서 '도자기의 신'으로 불립니다.

이후 일본은 백자 기술을 발전시켜 유럽에 엄청나게 수출합니다. 오늘날 일본의 경제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백자 만드는 기술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백자의 태토를 만드는 기술이었습니다. 



  

▲ 이삼평의 기념비

   그러면 우리 나라의 백자 흙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일본처럼 도석을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는 백토를 이용해 대부분 백자를 빚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나라에는 백토가 많기는 했지만 찰기가 없어 이 백토만으로는 백자를 빚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철분이 적고 찰기 좋은 점토를 골라 백토에 섞어야만 도자기를 성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자는 철분이 많으면 백색도가 떨어집니다. 점토는 단일 성분이 아니고 복합 성분이라 대체로 철분이 많습니다. 때문에 가급적이면 철분이 적고 규석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찰기가 있는 점토를 찾는 것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 베를린의 잘노팅힐의 궁전과 내부

우리 나라의 관요인 분원에서는 전국에 방을 내려 좋은 백토와 철분이 적은 점토를 구하려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광주, 양구, 진주, 곤양의 백자 태토가 우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분원에서 태토를 구한 장소로는 진주, 경주, 곤양, 울산, 하동, 서산, 양구 등 여러 곳이 있으며 백토를 채취할 때는 남청(정부 관리)이나 변수장인(사기장 우두머리)을 파견하여 철저함을 기했으며 실험을 거쳐 최고의 태토를 선별하였다고 승정원 일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백토 채굴 지역에서 백성들이 강제 노역의 고초를 엄청나게 겪었던 것으로 <비연사 담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조 - <백자>, 방병선,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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