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교격(矯激)한 행동이나 각박(刻迫)한 정사(政事)는 ...

2016. 3. 31. 22:30다산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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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교격(矯激)한 행동이나 각박(刻迫)한 정사(政事)는
인정(人情)에 맞지 않으므로 군자가 내치는 바이니 취할 것이 못 된다. 목민심서 / 일표이서

2015.02.0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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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계종(楊繼宗)이 돼지머리 때문에 마누라를 내쫓고 - 아래 제가조(齊家條)에 보인다. - 허자(許鎡)가 나무막대기를 밟아 굴리도록 하여 아들의 발을 따뜻하게 한 것은 - 부임(赴任) 치장조(治裝條)에 보인다. - 각박한 정치가 아닌가. 공기(孔覬)가 비단을 불 속에 던지고, 이견공(李汧公)이 서각(犀角)ㆍ상아(象牙)를 물속에 던진 것은 - 해관(解官) 귀장조(歸裝條)에 보인다. - 교격한 행동이 아닌가. 이런 일들은 다 군자가 하지 않는 것이다.


정선(鄭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대부들이 덕을 손상하는 것은 이름을 내려는 마음이 너무 급한 데서 오는 일이 많다.”

고제(高齊) 고적간(庫狄干)의 아들 사문(士文)은 성품이 청고(淸苦)하여 공료(公料) - 국가 봉급 - 도 받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관주(官廚)의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칼을 씌워 옥에 여러 날 가두고 곤장 2백 대를 때린 후 걸려서 서울로 돌려보냈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적발하여, 베 한 자나 쌀 한 말 받은 장죄(贓罪)도 관대하게 보아 주는 일이 없이 탄핵해서 영남(嶺南)으로 귀양 보낸 자가 1천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가 풍토병으로 죽으니, 그의 가족들이 울부짖었다. 고적사문(庫狄士文)이 그들을 잡아다 매를 때리니 때리는 매가 그 앞에 가득하였으나 울부짖는 소리는 더욱 심해갈 뿐이었다. 임금이 이를 듣고,

“사문의 포악함이 맹수(猛獸)보다 더하다.”

하였다. 그로 인해 죄를 받아 파면되었다.


정선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전에 어른들의 말을 들으니, ‘상관(上官)이 탐욕스러우면 백성들은 오히려 살 길이 있으나, 청렴하고 각박하면 바로 살 길이 끊어진다.’라고 하였다. 고금을 통해서 청리(淸吏)의 자손이 흔히 떨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각박함 때문이다.”

 

[주B-001]청심(淸心) : 맑은 마음가짐. 여기서는 수령이 청렴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주C-001]교격(矯激) : 정직을 가장하는 행동.
[주D-001]양계종(楊繼宗) : 명(明)나라 헌종(憲宗)ㆍ효종(孝宗) 때 사람으로 자는 승방(承芳),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가홍지부(嘉興知府)ㆍ첨도어사(僉都御史)ㆍ운남순무(雲南巡撫)를 지냈다. 《明史 卷159 楊繼宗列傳》
[주D-002]허자(許鎡) : 명(明)나라 세종(世宗) 때 사람으로 자는 국기(國器)이고, 강서순안사(江西巡按使)를 지냈다. 강직하기로 이름이 났다. 가선령(嘉善令)으로 있을 때 겨울철에 그 아들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여 밖에 나가서 숯을 구해 오기를 청하자 그는 창고에서 나무막대기 하나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밟아 굴리도록 하라. 발이 저절로 따뜻해질 것이다.” 하였다.
[주D-003]공기(孔覬) : 남조(南朝) 송 효무제(宋孝武帝)ㆍ명제(明帝) 때 사람으로 자는 사원(思遠)이다. 의흥(義興)ㆍ남해(南海)의 태수(太守), 강하내사(江夏內史), 태자첨사(太子詹事) 등을 지냈는데,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그는 아우 도존(道存)과 종제(從弟) 휘(徽)가 살림을 영위하여 비단ㆍ종이ㆍ자리 등 10여 척을 싣고 오군(吳郡)으로 돌아오자, “너희들이 장사꾼이 되려느냐.” 하고 그 물건들을 강가에 내려놓고 사람을 시켜 다 태워버리게 한 일이 있다. 《宋書 卷84 孔覬列傳》
[주D-004]이견공(李汧公) : 미상이다.
[주D-005]고제(高齊) : 고환(高歡)이 세운 북제(北齊)를 말한다.
[주D-006]고적간(庫狄干) :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 때 사람으로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북위(北魏)에서 정주 자사(定州刺史)ㆍ태사(太師)를 지내고,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 때 장무군왕(章武郡王)에 봉해졌다. 《北齊書 卷15 庫狄干列傳》 《北史 卷54 庫狄干列傳》
[주D-007]사문(士文) : 고적사문(庫狄士文)은 수(隋)나라 고조(高祖) 때 사람으로 북제(北齊)에서 영군장군(領軍將軍)을 지내고, 북주 무제(北周武帝) 때 수주 자사(隨州刺史)를 지냈다. 수(隋)에 와서 패주 자사(貝州刺史)가 되었는데, 관련 기사는 이때의 일이다. 원문에는 고적간(庫狄干)의 아들로 기재되었는데, 《북제서(北齊書)》에는 고적간의 아들로, 《북사(北史)》와 《수서(隋書)》에는 모두 고적간의 손자로 나온다. 내용도 정약용이 간추린 것이다. 《北齊書 卷15 庫狄干列傳 子士文》 《北史 卷54 庫狄干列傳 孫士文》 《隋書 卷74 酷吏列傳 庫狄士文》
[주D-008]맹수(猛獸) : 원문의 ‘獨獸’는 《북제서》ㆍ《북사》ㆍ《수서》에 모두 ‘猛獸’로 나오므로 맹수로 고쳐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