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6. 03:00ㆍ詩
잡문 -그림 속의 시
Ducky Lim 2013.08.09 23:19
그림 속의 시 마이클 설리반 저, 백승길 편역 전 세계를 통해서 상이한 예술의 형태들은 공통 요소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들 자체가 그러한 공통 요소들의 집합 장소이다. 예를 들면, 영국 사람들은 그림이 음악의 요소인 '리듬'을 가지고 있고, 음악 작품이 '색채'를 가지고 있으며, 시가 '멜로디'를 가지고 있고, 이러저러한 장면을 '묘사'해서 '회화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예술이 동일한 정신에 의하여 자극을 받아 동일한 목표, 즉 영원한 진리를 파악하여 그것을 인간의 마음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바탕과 목표뿐만이 아니라 수단까지도 동일한 경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중국의 회화와 문학이다. 당나라 때의 왕유가 새로운 양식의 풍경화를 시작해서 우리가 말하는 남화풍을 정립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중국의 회화와 문학이 결합되었다고 본다. 서양 사람들이 이 남화, 또는 문인화를 이해하려면 그들은 꿈속에 잠긴 시인의 기분을 파악하고 '읽고', '느껴야'한다. 옛날부터 중국 예술과 문학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 왔다. 중국의 원시 문자는 일종의 소박한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기록 문자가 예술로부터 동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기록 문자는 점점 대표적인 부호가 되어, 원시적이고, 보아서 알 수 있는 그림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서예의 부호가 점점 더 가다듬어져서 마침내 훌륭한 서예 작품이 예술 작품과 동등하게 평가되고, 그림 못지않게 '회화적'으로 풍부한 표현력을 갖게 되었다. 문자의 배열, 균형, 리듬, 디자인 등이 중국 서예의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 반면에 중국 화가들은 형태와 색채의 아름다움을 그들의 유일한 목적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그 그림 밑에 깔려 있는 생각과 '문학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특히 강조한다. 중국 산수화가 보통 사람의 눈에는 자연 풍경의 반복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스타일로 그린 산봉우리들과 폭포에 권태를 느낀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의 눈에는 이러한 풍경들이 거의 무한정한 내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마치 다음과 같은 셰익스피어의 14행시의 한 구절이 읽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서로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듯이 그대는 나에게서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간 뒤에 그런 날의 황혼을 보리라. 문학과 회화가 융합하는 경향이 처음에는 원시 시대의 상형 문자에 뚜렷이 나타났다가 당대에 문인 산수화의 설정으로 특히 두드러지게 되었고, 이석이 송대에 와서 최고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 송나라의 휘종 황제는 그림을 장려하기 위하여 특히 고심한 끝에 그림 그리기를 문학적인 의의와 같게 하였으니, 관리가 승진하는 자격의 한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유명한 시에서 몇 구절을 골라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했다. 그래서 예술적인 그림 보다는 오히려 사상의 신비함이 내포된 그림이 최고의 상을 받게 되었다. 예를 들면 그는 과거 시험 때 다음과 같은 시를 그림 제목으로 제출했다. '산중에 깊숙이 묻혀 있는 절' -당선된 작품은 놀라운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림은 산으로 꽉 차 있었고, 그 가운데 중이 개울로 물을 길러 오고 있을 뿐 건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예술가는 계곡 어딘가에, 또는 나무숲 속 어딘가에 절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그렇지 않으면 물을 길러 내려오는 중이 어떻게 그 그림 속에 있단 말인가? 또 다른 시험장에서 휘종은 이런 화제를 출제했다. '꽃을 밟고 돌아오니 말발굽에 꽃향기가 그윽해라.' 그러나 당선된 작품에는 꽃이 만발한 초원이 보이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은 분명하지 않은 것, 넌지시 암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이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나비 두 마리가 말발굽을 맴돌고 있었다. 말은 분명히 꽃을 밟고 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꽃향기를 사랑하는 나비들이 말발굽을 맴돌 리가 있겠는가? 또 한 가지 예가 있는데, 이것은 특히 흥미롭다. 출제된 시는 '일만 개의 초록색 가운데 붉은 한 점'이었다. 한 수험생은 소나무 숲 속에 황새 한 마리를 그렸는데 그 머리에 있는 홍일점이 초록색 바탕 위의 유일한 붉은 빛 점이었다. 또 한 수험생은 유명한 유송년이었는데, 그는 출렁이는 초록색 파도 위에 떨어지는 붉은 태양을 그렸다. 그러나 당선작은 수양버들이 축 늘어진 발코니에 기대고 서 있는 수심에 가득찬 소녀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홍이 중국말로는 그 불그레한 볼과 입술 때문에 여자를 상징한다. 중국 사람들은 이러한 정신적 창의를 대단히 높이 평가한다. 중국 사람들은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는 말을 가지고 있다. 시를 '주인'이라 부르고 그림을 '손님'이라 부른다. 시가 그림을 초대해서 그의 기술과 아름다움을 보이라고 한다. 시적인 사상을 잘 표현해야만 비로소 그림은 회고의 찬사를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첫째 가설에 당도한다. 즉 중국 화가는 문학도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로 중국의 화가는 시인일 때가 많다. 우리는 중국의 철학이 중국의 국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과 또 중국 철학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세상 일로 돌리는 회화는 '세상을 초월해서 자연의 원리를 향락'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시도 쌍 등이 자매와 같이 회화를 따라 동일한 철학에 당도한다. 인물화, 특히 정치적인 초상화가 산수화를 제쳐놓고 유행했을 때에 그 당시의 시 또한 정치적인 의미 이상의 암시를 가진 인생을 노래했다. 그러나 점차로 당과 송대에 산수화가 명예로운 위치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시도 또한 그 주제를 자연 풍경에 택하여 소박한 묘사 이상의 개인적인 또는 일반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지는 해나 축 늘어진 우리들의 묘사와 인상적인 한 폭의 그림이 분명히 그러하듯이 시인 자신의 정체를 자연의 우주적인 정신 속에 상실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소동파는 이러한 생각을 그의 짧은 시, 철학적이며 암시가 많아 정확하게 옮기기 어려운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산마루마다 봉우리마다 멀리서 가까이서, 위에서 아래서 각각 형태가 다르니 노산의 참 모습을 헤아릴 수가 없구나. 우리가 언제나 그 산 속에 둘러싸였으니. 어떤 화가가 노산에서 소동파처럼 자연의 삶을 살았더라면 그도 그의 붓과 먹을 가지고 이와 거의 흡사한 내용을 전하는 그림을 그려냈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시를 가리켜 색채와 형태 대신 문자를 사용하는 자연 풍경의 그림이라고 말한다. 이 두 예술이 그 기교는 서로 다르지만 화가가 그의 붓을 먹물에 담그기 전에, 그리고 시인이 글을 쓰기 전에는 시인과 화가의 사상이 서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서양의 어떤 나라에서 통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리와 미는 예술의 자극제이고 또한 목표이다. 그러나 중국의 예술가들과 시인들은 진리와 미의 대단히 상이한 표현에 의하여 영감을 받아 그것을 상이한 견지에서 구체화한다. 그들은 우리들처럼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자신들을 예속시키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우상 파괴주의자로 자처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시인들과 화가들은 동일한 감정뿐만 아니라 동일한 통찰력을 가지고 자연을 관찰한 것 같다. 원근 화법은 화가 본연의 도구이지만, 그것이 시인의 서재에서 수행하는 역할에도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화가는 우주의 모든 부분을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이 다룰 수 있다. 예를 들면,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가져 온다든가 큰 것을 작게 만든다든가 높고 낮은 것을 반대로 만든다든가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이것을 원근 화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시인들은 이것을 잘 반죽된 밀가루 덩어리 속에 있는 이스트와 같은 일종의 마술이라고 생각한다. 화가의 통찰력 있는 눈이 없다면 우리는 많은 시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사용, 즉 비유나 암시나 소리의 매력에 대한 시인의 통찰력이 없다면 우리는 법이 시적이 비합리성으로 둔갑된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시의 한 구절이 이것을 잘 설명해 준다. 이 들판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은 난장이 같고 새는 하늘 끝에 닿아 있는 것 같다. 이 시인은 분명히 무성한 풀밭에 무심히 누워서 저 멀리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다보고 또 바로 자기 머리 위에 날아가는 새를 보았을 것이다. 화가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크기를 축소할 줄 알고 또 만약에 어떤 물체가 바로 눈 위에 있다면 그 밖에 있는 공간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새가 과학적인 세계 밖으로 날아가 공간의 극한 속에 존재한다는 상상적인 개념을 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또 하나의 시를 예로 들어 보자. 산 벼랑은 내 발코니만큼 높지 않고 강은 내 창문만큼 작구나. 산 벼랑과 강은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은 자기 서재에 앉아 멀리 떨어져 있는 산 벼랑과 강을 바라보았다. 마치 화가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치를 자기 그림의 크기 속에 끌어들이듯이. 화가는 높이와 마찬가지로 거리를 속이나. 그는 높은 것을 낮게, 낮은 것을 높게 만든다. 시는 화가가 그렇게 하는 과정을 상쾌한 꿈과 같이 달콤하게 환상적인 언어로 둔갑시킨다. 예를 들면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은 이렇게 읊었다. 끝없는 황야 같은 하늘은 나무 키보다 낮게 내려앉고 맑은 강물에 비추인 달은 나를 찾아 다가온다. 멀리서 보면 하늘은 나무 아래로 휘어져 내린다. 사실은 하늘이 언제나 나무들보다는 수만 리 위에 떨어져 있지만, 달빛이 고요한 물 위에 반사되어 있을 때 달이 자기와 같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사람이 있겠는가? 이제 그 반대의 과정을 살펴본다. 이백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어 보자. 황하의 물은 하늘로부터 흘러내리고 나는 거센 양자강이 하늘로 흘러들어 감을 본다. 이백은, 황하 하류에서 자신을 상상한다. 저 멀리 보이는 강 상류는 험준한 바위에 부딪쳐 거품을 끓이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 같아 보였을 것이고, 저 멀리서 양자강은 하늘 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단 순한 사실을 이처럼 경이적인 환상으로 만드는 데는 시인의 위대한 비전이 필요하다. 소동파는 다음과 같은 시의 한 구절에서 페인트의 힘을 초월하는 상상적인 한계로까지 화가의 비전을 추켜올린다. 연꽃 잎들이 하늘 꼭대기에 닿으면 녹아서 무한한 푸른 초원을 이룬다. 예술가가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시계 안에 있는 것뿐이다. 사람을 무한의 시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말의 암시적인 탄력성이다. 분명히 시인과 화가의 자연 관찰은 논리적인 경험의 진리와는 다른 뜻에서 다 같이 진실되다. 그리고 그 차이는 거리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관찰이라는 단일 평면상에 표현하려는 그들의 욕망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영국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다음과 같은 시와 같다. 바빌론까지 거리가 얼마나 멀지? 60 마일 하고도 10 마일이지 촛불을 들고 그곳에 갈 수 있을까? 암, 갔다올 수도 있지! 그러나 화가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법칙을 시인은 하나의 환상으로 둔갑시킬 때가 종종 있다. 여기에 우리가 주의하여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중국 예술가들은 대단히 넓은 풍경을 그리기 좋아한다. 그래서 보는 사람의 눈에 가까운 내부의 장면이나 근경을 그린 그림을 거의 볼 수 없다. 통상적인 설명에 따르면 '힘'이 중국 사람들이 존경하는 자질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의 위대한 힘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망망한 대해와 준엄한 산맥들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마치 다 자란 어린이가 조물주에게 장난을 걸듯이 우주의 내용을 만져 보는 자신의 지배력 있는 손의 감촉을 느끼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암시를 고개지의 '운대산 화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가는 유대산 서쪽에 휘황찬란한 구름을 그려 놓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구름이 운대산 동쪽의 맑은 하늘에서 솟아올랐다고 믿게 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예술가는 자연과 동등한 힘을 행사하는 사람을 대표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인들도 또한 소박한 경관으로부터 인간적인 의미를 추출하는 것이 그들의 수단 안에 있기는 하지만 넓게 퍼진 경치와 멀리 뻗친 경치를 그리기 좋아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시의 주제가 절간 마당에 있는 연못이라면 우리는 그 연못으로 통하는 긴 산길을 틀림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는 시인이 자기가 친구와 작별한 작은 움막집을 설명한다면 시인은 틀림없이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한 면을 암시했을 것이다. 화가와 마찬가지로 시인도 높이와 거리에 바탕을 둔 이러한 상상적이고 환상적인 말을 할 수 있다. 시인이며 화가인 왕유는 범위의 조작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구절은 순간적인 통찰력을 글로 잡은 것이다. 분명히 그는 멀리 산골짜기 시내가 지난밤의 비로 물이 물어 수목이 울창한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예술적인 비전과 시적인 개념을 이처럼 잘 결합할 수 있을까? 지난 밤 동산 위에 내린 비가 나뭇가지 위에 수백 개의 분수를 만들었구나. 중국 시인들과 화가들은 다 같이 자연의 예리하고도 생생한 인상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중국 사람들은 서양의 '인상'이라는 말 대신에 '새긴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뜻은 분명하다. 문인화 계통의 호가들은 산수화를 그릴 때 나무 하나하나 돌 하나 하나를 연구하지 않고, 붓과 먹을 사용하여, 그 풍경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다 그리거나 칠하지 않는다. 그들은 분명히 몇 달 동안, 아니 몇 해 동안 그 풍경에 친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영원히 남길 만한 그 무엇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한 순간에 항상 보아 오던 그 강물과 바위를 보고 삶의 그늘이 없는 적나라한 '진실'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에 그들은 붓을 잡고 이 '진정한 형태'를, 말하자면 '뼈대'를 그린다. 세부는 필요치 않다, '뼈대' 주위의 공간은 여백으로 남겨서 보는 사람이 자신의 살과 옷을 입히게 한다. 살과 옷은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의 시 창작에서도 동일한 절차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시는 서양 시와 비교하면 대체로 퍽 짧다. 4 행이나 8행의 생생한 시로 한 자 한 자가 전체적인 효과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효과는 상세한 묘사가 아니라 감수성이 강한 시적인 마음속에 섬광처럼 비친 찰나적인 생생한 인상이다. 중국에서는 자연을 읊은 시와 자연을 그린 그림 사이에 뚜렷한 구별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차츰 알게 된다. 자연을 묘사하는 데 시인들은 그들을 도와줄 선이나 색채가 없고, 다만 그들의 예리한 눈과 능숙한 표현이 있을 따름이다. 어떤 형태의 본질을 파악해서 그것을 간결하고 예리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에서 그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서정 시인들처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중국 시인들은 여자의 눈썹을 '수양버들 눈썹'이라 표현하는데, 그것은 눈썹이 수양버들 잎처럼 날씬하게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의 입술을 '앵도 입술'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입술의 붉고 감미로운 원숙미 때문이다. 중국 화가들도 그들 나름대로 이러한 자질들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그 표현이 현실에 비추어 보면 '진실'되지는 않다. 중국의 인물화에서 여자의 눈썹은 정말 수양버들 잎 같고, 입술은 정말 신선한 양도 같다. 시인과 화가는 사물을 동일하게 민감한 눈으로 관찰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정신적인 반사 작용을 가지고 관찰하기 때문에 그 '인상'은 비슷비슷하다. 인물화나 인간 생활을 묘사하는 시에서 중국 사람들은 실물과 근사하게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형식적인, 그리고 상상적인 본질을 추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실제 생활에서 중국 사람들은 여자를 꽃 이름으로 부른다. 매화, 난, 살구, 꽃, 향, 꽃봉오리, 국화 등. 그리고 시에서는 여자들을 진짜 꽃인양 섬세하게 비유한다. 상징을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의 습관이 인물화의 좁은 범위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제공 해준다. 중국 사람들은 꽃의 상상물인 인물의 형태를 그리기보다는 오히려 꽃을 그리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중국 시인들은 서양 시인들이 빈번하게 그러하듯이 자기 마음속에 그리는 처녀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신중한 시적인 비유로 연 애 편지를 쓴다. 그는 그 여자의 아리따운 용모를 묘사하는 데 백색 비취를 비유로 사용하고 침착한 얼굴을 표현하는 데 달을 비유로 사용하며 백조의 나는 모습이나 가을 하늘의 구름의 움직임으로 그녀의 우아한 동작을 비유한다. 물은 여자의 눈을 '상징하는데 물이 눈의 맑고 밝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눈썹은 만약에 '수양버들 잎'이 아니라면 '봄의 산' 으로 비유되는데, 그것은 아지랑이 속에 가려져서 어슴푸레하게 그 윤곽만을 나타내는 산마루를 암시한다. 형태에서와 마찬가지로 색채에서도 중국의 시인들과 화가들은 기본적인 인상만을 추출한다. 중국 예술가들은 그늘이나 옷자락의 주름이나 원근 화법을 농담 없이 단조롭게 채색한다. 만약에 수양버들의 제일 중요한 성격이 우아하게 축 늘어진 가지와 섬세하고 엷은 푸른 색깔이라면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나부끼는 리듬과 우리 눈에 들어오는 무른 색의 본질은 포착하는 것으로 중국인들은 만족한다. 그들은 나무 사지들 밑은 어둡게 칠하거나 나무 그늘은 땅 위에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시인의 경우도 이와 흡사하다. 짧은 시의 짧은 행에서 시인은 일종의 포괄적인 도색관을 사용한다. '푸른 초원 속의 홍일점'은 앞에서 말한 바 있었다. 여자의 피부색을 단순하게 '홍'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이마는 '노랗고', 볼은 '푸르다'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옛날에 쓰던 전통적인 모자의 색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무와 과일이나 꽃이나 경치를 묘사한 때에도 이와 동일하게 간소하게 처리한다. 즉 오렌지와 수양버들의 순은 다같이 태양과의 연관성 때문에 '황금색'으로 비유된다. 무각들도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되지만 채색을 빈번히 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흥'이라 비유된다. 이와 같이 멀리 보이는 강은 '흰 강'으로 표현하고, 강물을 바로 내려다보면 그 물은 '초록색'이고, 모래나 진흙이 섞인 급류는 '누런 강'이라 표현한다. 시인이 '붉게 물든 나뭇잎'을 노래하면 가을이 왔음을 알고 '초록색'이라면 여름이 왔음을 안다. 가을은 갈색, 오렌지 색, 적갈색이 많은 계절이고, 봄은 연한 색깔의 꽃들 사이에 푸른색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시인이나 예술가는 다 같이 내면적으로 가장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지배적인 색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주위의 다른 색채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더 중요시한다. 인간의 시각은 인간의 마음과 일체가 되어 이렇게 작용한다. 즉 인간이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그만둔다면 형태와 색채의 정확하고 논리적인 관계가 분명해진다. 중국의 예술가들은 논리의 시녀가 결코 아니다. 달빛의 색깔은 물과 같고 물 빛은 하늘의 색깔과 같다. 이 시에서 우리는 당장 그 의미를 파악한다. 우리는 그 의미를 추리하려고 머뭇거리지 않는다. 시와 회화는 이처럼 서로 반작용을 하는 것 같다. 즉 시를 쓸 때 중국 시인은 예술가의 관찰을 이용하고, 풍경화를 그릴 때 중국 예술가들은 시인의 말을 색채와 형태로 번안하고 시인의 기분과 혼연 일체가 된다. 중국 그림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비논리적인 색채와 형태뿐 아니라 또한 물체의 비자연적인 배열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 마찬가지로 예술가가 그이 소재를 시인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여자의 눈썹이 버들잎 같고 그 얼굴이 연꽃잎 같고, 머리가 구름 같은 것과 같이 예술가도 인체의 조직을 무시하고 인물화를 그리며, 건축법을 무시하고 건물을 그린다. 중국의 시에는 '황하의 아홉 구비'라든가 '만 리 양자강'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긴 길이와 큰 파도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소동파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그는 그 거리를 실제로 자를 가지고 재지 않았다. 말과 말 탄 사람, 그리고 만발한 살구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는 광경이 그저 그의 마음 속에 '새겨져'있는 것이다. 중국 시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 명확한 것이 온전히 포착하기 어려운 것, 손으로 만져 느낄 수 없는 것과 형언할 수 없게 뒤섞인 혼합물이다. 중국 그림도 이와 동일한 평을 받는다. 중국 화가들은 몽롱하고 안개 낀 경치를 그릴 때가 있으나, 꿋꿋한 필법으로 경계선이 분명한 그림을 붓으로 그리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과감한 필테가 상상력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어떤 화가는 뿌리가 없는 꽃을 그리고, 또 어떤 화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산에다 탑의 지붕을 곁들인 그림을 그린다. 어떤 화가는 험준한 산 속에, 험상궂은 바위만큼 크고 나무키 만큼 높은 곰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다른 화가들은 붓의 움직임을 갑자기 멈추어 나머지 장면을 구름에 둘러싸이게 하거나 여백으로 남겨 둔다. 이때 여백은 형태보다도 더욱 웅변적이다.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이는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그 형태 자체의 상상적인 생명과 그 창작자의 상상적인 생명을 느낄 수만 있다면 상관하지 않는다. 화가의 목적은 어떤 분위기, 시적인 표현을 피할 수가 없다. 중국인들이 작은 난초나 소녀를 그리건 또는 양자강 협곡의 험준한 절벽을 그리거나 간에 언제나 그들이 전달할 시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예술가들이 지닌 명상의 결실을 보는 사람의 마음으로 전달할 수만 있다면 중국 사람들은 그것이 실물에 가까운지 아닌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이성과 비이성은 예술가가 선택하기에 따라서 어느 쪽으로든지 기울 수 있지 때문이다. 중국 화가들이 그리는 물체가 그 물체를 닮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그림이 예술가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심오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붓끝을 통해서 예술가 자신의 생명의 피인 양 먹물과 융합한다면 그 예술 작풍에 생명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다. ▶참고자료 설리반 : 영국 캠브리지 대학 건축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동양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이다. 저서로는『20 세기의 중국 미술』,『동서 미술의 만남』등이 있다. 백승길 :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등 다수의 미술서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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