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청렴하다는 명성이 사방에 퍼져서 ...

2016. 4. 8. 13:37다산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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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 청렴하다는 명성이 사방에 퍼져서 좋은 소문이 날로 드러나면 또한 인생의 지극한 영화이다. 목민심서 / 일표이서

2015.02.0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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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윤선좌(尹宣佐)가 충숙왕(忠肅王) 때에 한양 부윤(漢陽府尹)이 되었다. 얼마 후에 왕과 공주(公主)가 용산(龍山)에 갔는데, 왕이 좌우를 보고 이르기를,

“윤윤(尹尹)은 청렴하고 검소해서 목민관(牧民官)을 삼았으니 너희들은 조심하여 그를 괴롭히거나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후에 왕이 친히 수령을 발탁하다가 계림 부윤(鷄林府尹)을 뽑는데 이르러 붓을 놓고 생각하다가는 말하기를,

“조신(朝臣)이 조정에 가득하지만 윤윤(尹尹) 같은 사람은 없다.”

하고 곧 그를 임명하였다.


   고려 전녹생(田祿生)이 경주 판관(慶州判官)이 되어 정사를 청백하게 하였다. 이제현(李齊賢)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전랑(田郞)이 우리 계림의 판관 되니 / 田郞作倅吾鷄林
부로들 지금도 맑은 덕 사모하네 / 父老至今懷淸德

   완선군(完善君) 이의전(李義傳)이 양근 군수(楊根郡守)가 되었는데, 창석(蒼石) 이준(李埈)이 일찍이 그 군을 지나면서 감탄하기를,

“맑은 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든다.”

하였다.


   이목(李楘) - 호는 송교(松郊) - 이 서천 군수(舒川郡守)로 있었는데, 감사 이안눌(李安訥)이 그의 고과(考課)에 쓰기를,

“맑기는 옥항아리 같고 은혜롭기는 봄바람 같다.〔淸如玉壺 惠似春風〕”

하였다.
채번옹(蔡樊翁)이 이천 부사(伊川府使)가 되어 정사가 청렴함과 간소함을 숭상하였다. 감사가 그의 고과에 쓰기를,

“어떤 덕정(德政)을 행하였기에 이천(伊川) 물이 맑게 되었는가.〔行何德政 伊水爲淸〕”

하였다.

  
이규령(李奎齡)이 수원부사(水原府使)가 되어 정사를 청렴하고 자애롭게 하였다. 송우암(宋尤菴)이 편지를 보내어 치하하기를,

“큰 물이 산을 둘러쌌으니 지척에서도 남의 말을 듣지 못하지만, 어진 소문만은 귓전에 쟁쟁하다.”

하였다.
이천(利川)에 옛 비(碑)가 있는데, 거기에 ‘이후 규령 통만고제일청덕 선정비(李侯奎齡通萬古第一淸德善政碑)’라 새겨 있다.



[주B-001]청심(淸心) : 맑은 마음가짐. 여기서는 수령이 청렴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주D-001]윤선좌(尹宣佐) : 1265~1343. 고려 문신ㆍ학자. 자는 순수(淳叟),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벼슬은 한양윤(漢陽尹)ㆍ계림윤(鷄林尹),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등을 지냈다. 《高麗史 卷109 尹宣佐傳》
[주D-002]한양 부윤(漢陽府尹) : 남경유수(南京留守)를 충렬왕 34년에 고친 이름. 품계는 3품 이상이 임명된다. 《高麗史 卷77 百官志2 外職南京留守》
[주D-003]공주(公主) : 여기서 말하는 공주는 충숙왕의 비(妃)인 금동공주(金童公主)를 말한다. 금동공주는 원(元)나라 위왕(魏王) 아목가(阿木哥)의 딸.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에 봉해졌다.
[주D-004]전녹생(田祿生) : 1318~1375. 고려 문신. 자는 맹경(孟耕), 호는 야은(壄隱),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벼슬은 정당문학(政堂文學)ㆍ문하평리(門下評理)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에는 《야은집(壄隱集)》이 있다. 《高麗史 卷112 田祿生傳》
[주D-005]이제현(李齊賢) : 1287~1367. 고려 문신.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ㆍ실재(實齋)ㆍ역옹(櫟翁)이고, 본관은 경주(慶州),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벼슬은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저서에는 《익재난고(益齋亂藁)》ㆍ《익재집(益齋集)》ㆍ《역옹패설(櫟翁稗說)》ㆍ《효행록(孝行錄)》 등이 있다.
[주D-006]이의전(李義傳) : 1568~1647. 조선 문신. 자는 의중(宜仲),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완선군(完善君)에 봉해졌다. 양근 군수(楊根郡守) 때는 치행(治行)이 으뜸이어서 표리(表裡)를 하사받고 재임되었다.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아들. 4현(縣)ㆍ5군(郡)ㆍ2부(府)를 다스리는 동안 가는 곳마다 치적이 있었다.
[주D-007]이준(李埈) : 1560~1635. 조선 문신. 자는 숙평(叔平), 호는 창석(蒼石)ㆍ유계(酉溪)이다. 벼슬은 부제학(副提學)에 이르렀다. 저서에는 《창석집(蒼石集)》이 있고, 편서(編書)에 《형제급난지도(兄弟急難之圖)》가 있다.
[주D-008]이목(李楘) : 1572~1646. 조선 문신. 자는 문백(文伯), 호는 송교(松郊), 본관은 전주(全州),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벼슬은 서천 군수(舒川郡守)와 부제학(副提學)ㆍ대사헌(大司憲)을 지냈다.
[주D-009]이규령(李奎齡) : 1625~1694. 조선 문신. 자는 문서(文瑞), 본관은 한산(韓山), 시호는 정혜(貞惠)이다. 벼슬은 경기ㆍ경상도 관찰사와 형조 판서 등을 지냈다.
[주D-010]송우암(宋尤菴) : 1607~1689. 조선 문신. 자는 영보(英甫), 호가 우암(尤菴), 이름은 시열(時烈),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문묘(文廟)에 종향(從享)되었다. 저서에는 《송자대전(宋子大全)》이 있다.
[주D-011]이후 규령 통만고제일청덕 선정비(李侯奎齡通萬古第一淸德善政碑) : 만고를 통틀어 제일인 수령 이규령의 청덕선정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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