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시모음> 김하인의 '진달래' 외

2016. 4. 10. 03:43



      

<진달래 시모음> 김하인의 '진달래' 외


15 도토리 2012.04.12 21: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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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시모음> 김하인의 '진달래' 외


+ 진달래

산 가득 뒤덮듯 흘러내립니다.
지난해, 산에 묻은 시퍼런 슬픔을
봉우리마다 얼마나 찧고 찧었는지
짓붉은 피 배어 올라 사태집니다.
(김하인·시인이며 소설가, 1962-)


+ 진달래꽃

어제는 버얼겋게 산몸살 앓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당신이 홍역을 앓고 있다
언젠가 터질 화약火藥처럼
(김미숙·시인)


+ 진달래꽃

감추려 애써도
자꾸자꾸 망울지는
이 붉은 그리움

아직은 쌀쌀한 당신인데도
그 앞에 자꾸만
부푸는 가슴

오늘은
당신 앞에서

붉고 붉은 빛으로
피는 사랑을
감출 수가 없네요
(손상근·시인)


+ 진달래꽃

한라에서
백두까지

봄마다
앓는 홍역

열꽃 피워
가슴 태우는

이루지 못한
애달픈 사랑
(김경숙·시인)


+ 진달래꽃

그대여
저 능선과 산자락 굽이마다
설레임으로 태어난
그리움의 바다를 보아라

모진 삼동을 기어이 딛고
절정으로 다가오는
순정한 눈물을 보아라

그리하여 마침내
무수한 사랑의 흔적으로 지는
가엾은 설움을 보아라

그러나 그대는 알리라
또 전설처럼 봄이 오면
눈물과 설움은 삭고 삭아
무량한 그리움으로
다시 피어나는 것을
(김종안·시인, 전남 여수 출생)


+ 진달래 꽃

기나긴 아픔을 삼키고 피어난
진달래 꽃
그래서 꽃망울도 멍이 들었나?

아픔 없이는
꽃을 피울 수 없기에
온 겨울 아픔을 이겨내고 피었다.

이겨냈기에
견디어 냈기에
환하게 웃고 있는 진달래.

그 꽃 하나 피우기 위해
진달래는 갖은 눈보라의 행패도
참아 왔던 게 아니었나.

세상을 더 아름답게 수놓고자
기쁨 없는 인생들 가슴에
희망을 하나 가득 선물 하고자

기나긴 날 눈물로 싹을 틔워
아름다운 꽃 문을 열었다
얼굴 가득, 밝은 미소 머금고
(윤광석·목사 시인)


+ 진달래

그땐 참,
내 마음이 저리
붉었습니다

당신이 지나치며
투욱,
떨어뜨린 불씨 하나가

내 영혼 가파른
벼랑 위로
잘도 활활 타들어
올랐습니다

타들어
오신 길 마저 닿을 듯

아슬한 그리움
문득 철렁이는 아픔
되어도

다시는 그 후
지나치며

투욱,
불씨 하나 떨어뜨려 주지
않으셔도

그땐 참,
이별도 사랑이라 저리
붉었습니다

그땐 참,
눈물도 꽃잎이라 저리
붉었습니다
(홍수희·시인)


+ 진달래꽃

너의 연분홍 미소만 보면
애써 묻어둔 유년의 기억들이
독새풀처럼 돋아나
가슴이 온통 그리움으로 회오리친다

걔랑 나랑
뒷동산 너럭바위에 앉아
너의 긴 수염 뽑아
꽃 싸움으로 동강낸 반찬거리들

깨소금같이 고소하게 쏟아지던
종다리 노랫소리 듬뿍 넣고
사금파리 밥그릇 비비던
밤 쭉정이 숟가락까지 그리워져
너의 연분홍 미소만 보면
(권오범·시인)


+ 진달래를 보며

나지막한 산자락
듬성듬성 하던 진달래가
사방으로 피어나고

속내를 감추지 못한
여린 꽃잎은
바람이 지날 때마다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지난날
애틋하게 남아 있는 추억들이
이제는 너무나 아득해서
기억에도 없을 것이라고

이름마저 서먹해서
꿈속에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꼭 그럴 것만 같았는데

산마루를 향해 번지는
분홍빛 꽃잎처럼
내 안에 갇혀 있던
그리움도 함께 피어나고 있다.
(이미순·시인, 경남 의령 출생)


+ 진달래

눈을 감아라
봄날 산에서는
숨을 고르라

아련히 떠오르는
그대들의 표표한 상징들
산꽃들이 날리며
물들어 버린 산에는

아,
미치도록 점점이 뿌려지고
흩뿌린 선홍색 꽃잎들이
아스라이 따스운 피 뿌리는데

산마다
끝머리에서 혼백들이
온통 젖어 들어 물드니
눈을 감아라
(이국헌·시인, 1956-)


+ 진달래

순이 볼 언저리
매양 돌던
배고픈 짝사랑을

이 산에서
저 산까지 다 먹어도
겨우내 주린 배는
부르지 않으리

척박한 땅의 맨살에
뿌리와 뿌리로 얽혀
육신을 부풀리는

살아 단 한번
양달진 가슴 쬐어 보지 못했던 이들의
새붉은 노여움을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다 헤매도록
한세월 앓아온 내 사랑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리
(박계희·승려 시인)


+ 초롱불 진달래

삭둑삭둑 키를 잘라낼 땐
피 한 방울 안 나던 진달래
오늘 아침 창문을 열고 보니
꽃분홍 선혈을 뒤집어쓰고 있네

조금씩 가지를 쳐낼 땐
신음소리 한마디 안 내던 진달래
오늘 아침 물주다 보니

빨갛게 켜든 초롱불 속에
마디마디 아픔이 웅크린
눈물을 감추고 있네

초롱불 한 잎 한 잎 만지작거리다
돌아선 나의 등뒤에서
진달래 아픈 비명소리가
딸,딸,딸, 신발을 끄을며 따라오네
(김지향·시인, 1938-)


+ 진달래
  
바람이 기댄 낮은 산으로
긴 겨울 이야기 속에 잠들었던 꿈이
파랗게 망울지어 오른다
하늘도 한아름
옅은 향을 뿌리고

봄이 깨어 일어난 자리마다
연분홍 가슴들이 물기를 머금고
터진 볼을 비비며
몰래 비밀스런 눈짓을 감춘다
풀잎이 눕는다

산은 온통 사랑의 마찰음으로
부드럽게 무너져 내리고
무성한 햇살이
이슬 머금은 허리를 감싸 안는다
들이 가는 숨을 몰아쉰다

돌아서면 우수수 꽃잎 질까
비단 하늘에 슬픈 물들이지 않을까
통탕거리는 가슴을 안고
서서 두 눈만 감는데
눈시울이 뜨겁게 화사하다
(김승동·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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