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에 관한 시 모음> 홍수희의 '아, 진달래' 외

2016. 4. 10. 03:46



     

<진달래에 관한 시 모음> 홍수희의 '아, 진달래' 외


15 도토리 2011.04.13 08: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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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에 관한 시 모음> 홍수희의 '아, 진달래' 외



+ 아, 진달래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네
마음속에 자꾸 커 가는
이 짓붉은 사랑
무더기로 피어나 나를 흔드네
내 살아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리도 가슴 뛰는 일이네
내 살아 너를 훔쳐볼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숨막히는 슬픔이었네
파도치는 내 마음
감춘다는 건 다 말장난
아, 진달래
(홍수희·시인)


+ 진달래꽃

아리어라.
바람 끝에 바람으로
먼 하늘빛 그리움에
목이 타다
산자락 휘어잡고 文身을 새기듯
무더기 무더기 붉은 가슴
털어놓고 있는
춘삼월 진달래꽃.

긴 세월 앓고 앓던
뉘의 가슴
타는 눈물이런가.

大地는 온통
생명의 촉수 높은 부활로 출렁이고
회춘하는 봄은
사랑처럼 아름다운
환희로 다가온다.
(박송죽·시인, 1939-)


+ 진달래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 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 적이 있니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持病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 구름 스쳐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서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 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진달래                                
          
신작로
잘려나간
산자락에

그네에
매달린
아기처럼
피어 있는    
진달래

초연(超然)한
연분홍
색깔 너머로
무거운    
하늘을 이고

마음 저리도록
그리운
내 님
모습 같이
피어 있다
(김근이·어부 시인)


+ 진달래

꽃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삼각산을 오르다가

나목(裸木)들의 더미 속
가녀린 여인의 몸 같은

진달래 한 그루가
몇 송이 꽃을 피웠다

수줍은 새악시 볼 같은
연분홍 고운 빛 그 꽃들은

속삭이듯 말했지
봄이다!

너의 그 가냘픈 몸뚱이 하나로
온 산에 봄을 알리는

작은 너의 생명에서 뿜어 나오는
빛나는 생명이여

말없이
여림의 강함이여!
(정연복·시인, 1957-)


+ 4월의 진달래

봄을 피우는 진달래가
꽃만 피운 채
타고 또 타더니,

꽃이 모자라
봄이 멀까요?

제 몸 살라 불꽃
산불까지 내며
타고 또 탑니다
(목필균·시인)


+ 진달래와 어머니

진달래 숲길을 걷고 계신 어머니는
배고프던 옛날에 진달래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고
하신다. 진달래 한 송이를 맛보시면서
앞산 진달래를 꺾어 와 부엌 벽 틈마다 꽂아두면,
컴컴하던 부엌이 환했다고 하신다.
진달래 맛이 옛맛 그대로라고 하신다.
얼핏 어머니의 눈빛을 살펴보니
어머니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계셨다.
처녀 적 땋아 내린 긴 머리 여기저기에
진달래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빨간 풍선처럼 이 산 저 산을 마구 떠다니시는 듯했다.
(어머니, 너무 멀리 가지 마셔요.)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산에 피는 꽃이나 사람꽃이나 사람 홀리긴
매한가지라시며,
춘천을 오갈 때는 기차를 타라고 하신다.
일주일에 내가 이틀씩 다니는 경춘가도의
꽃길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어머니 말씀이 제겐 詩로 들리네요
하니깐, 진달래 숲길에서 어머닌
진달래꽃 같은 웃음을 지으신다.
(설태수·시인, 1954-)


+ 진달래 능선에서

진달래 한 송이 지게에 달고
꽃 같은 마음이라야 하느니라 하시던
아버지 그 말씀......

아버지 생전에
지게발통 작대기 장단에
한을 노래 삼아 콧노래 부르시더니

저승 가시는 길에
가난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배움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허리 굽은 능선에 빨갛게
꽃으로 서 계시는 당신

오늘도
진달래 불타는 산 허리춤에
꽃가슴 활짝 열고 계시군요
생시처럼

아버지!
당신 계시는 음택(陰宅)
진달래 타는 불꽃에
가슴이 아려
꽃잎에 이슬이 내립니다
(이계윤·시인)


+ 진달래와 아이들
  
지금은 없어진 이 땅의 보릿고개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높았다는.
밑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풀뿌리 나무껍질 따위로 연명했죠.

허기진 아이들은 산에 들에 만발한
진달래 따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다르데요.
어제 숲 속의 샘터로 가는데,

두 아이가 진달래 꽃가지를
흙을 파고 정성껏 심는 것을 보았어요.
물론 그들이 꺾은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꺾어서 버린 걸 말예요.
나는 집에 돌아와서야 깨닫게 되었지요
그 진달래는 내 가슴속에도 심어졌다는 것을.
(박희진·시인, 193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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