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을 꿈꾼 사람들-도석인물화전(1)>:간송미술관

2016. 4. 16. 11:03美學 이야기

주제가 있는 전시회 (44)

10.<불로장생을 꿈꾼 사람들-도석인물화전(1)>:간송미술관 전시회

 무진당 2009.10.25 12:42




<불로장생을 꿈꾼 사람들-도석인물화전>:간송미술관:2009년 10월 18일∼11월 1일>

 

 

        -  기다리고 기다리던 간송전시회  - 



 

   김홍도, <남해관음>, 비단에 담채, 20.6×30.6cm,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전시 주제가 《도석인물화》라는 신문기사를 본 날부터 빨리 보고 싶어 발싸심을 했더랬습니다. 지난 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겸재 정선》을 본 이후 인물화에 대한 글을 한번 써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동안 겸재의 진경산수화에 너무 매료되어 있었던 탓일까요? 전시회를 보면서 인물화가로서의 겸재를 재발견했습니다. 특히 겸재가 그린 여인의 모습을 《사공도시품첩》<섬농>에서 처음 봤습니다. 물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을 그린 <자연>에서는, 전체를 먹으로 그리고 손톱만한 낚시통만 붉은색으로 칠한 정선의 색채감각에 정선이 다 얼얼했습니다. 그동안 겸재 그림을 상당히 많이 봤다고 자부했는데 여전히 겸재는 제게 거대한 광맥입니다.



  

   정선, <섬농>《사공도시품첩》중에서, 1749년, 비단에 엷은 색, 27.8×25.2cm, 국박




 

                                    정선, <호방>《사공도시품첩》중에서, 1749년, 비단에 엷은 색, 27.8×25.2cm, 국박



   기왕 인물화에 관심이 있던 터에 이번 간송전에서는 인물화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인물화전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그동안 이런 우연함과 자주 만났습니다. 장승업에 대한 책을 쓰려고 하면 사방에서 장승업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김정희를 쓰려고 마음 먹으면 역시 미술관마다 약속이나 한 듯 김정희 특별전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런 필연적인 우연과 마주칠 때마다 마치 글을 쓰려는 나를 도와주는 듯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느끼곤 했습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간송미술관 입구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하니까 온 우주가 저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줄 알았습니다. 출렁거리는 우주의 에너지를 느끼며 글을 쓰는 순간에는 이 우주에서 오로지 저만 선택받은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우주는 자신의 태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똑같은 농도로 키워내고 배려하더군요. 아침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오로지 나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듯 생명을 지닌 우리 모두는 똑같이 귀하고 선택받은 존재들이지요. 다만 평소에는 그걸 느끼지 못할 뿐이었어요. 제가 글을 쓰려고 하니까 특별히 좋은 전시회가 열린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전시회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심이 없어 몰랐던 것이지요. 그러고보면 얼마나 많은 우주의 축복과 배려를 무관심 때문에 지나쳐 버렸는지 되새겨봐야겠습니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이제부터 간송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도석인물화는 도교와 불교의 신과 인물

 

                                               김홍도, <염불서승>, 모시에 담채, 28.7×20.8cm, 간송미술관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란 도교의 신선이나 불교의 스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지칭합니다. 도교의 인물화 소재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신선과 도인을 비롯하여 동왕공, 서왕모, 복희, 여와 등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천도복숭아, 불로초, 사슴, 학, 두꺼비 등 전통적으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길상적인 요소들과 함께 등장합니다. 김홍도가 그린 <낭원투도>는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도교의 동방삭을 그린 것이고, <남해관음>은 불교의 관세음보살을, <노승염불>은 불교의 스님을 그린 작품입니다. 김홍도처럼 한 작가가 불교와 도교의 여러 신선과 인물을 그린 사람도 있지만 같은 소재를 여러 작가들이 그린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작가들이 같은 주제를 그린 그림을 비교하면서 감살펴볼까요? 오늘은 불교쪽은 생략하고 도교 쪽 대문만 열어보겠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에 대한 정보만 간단하게 소개할 테니 편하게 감상하세요.

 

 

- 도교의 신과 신선들

 

① 마고 선녀와 하선고 

                                                   석경,<마고선녀가 지초를 캐다>, 비단에 채색, 19.0×21.9cm




                                        최우석,<마고선녀가 지초를 캐다>, 비단에 채색, 45.5×141.5cm ,간송미술관




                       김홍도, <군선도8곡병> 중 일부분, 1776(32세), 종이에 담채, 132.8cm,×575.8cm, 호암미술관

 


   마고는 후한대 선녀입니다. 18세의 아리따운 미녀인데 서왕모의 생일날에 영지로 술을 빚어 축하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왕모는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의 힘을 지닌 최고의 여신입니다. 서왕모와 주나라 목왕과의 스캔들은 워낙 유명해서 그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대번에 간첩으로 의심받았다고 하는군요. 서왕모만큼은 아니지만 마고 선녀도 바다가 뽕나무밭으로 변하는 것을 세차례나 봤다고 하니 그만하면 어지간히 장수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고사 성어 속에 담겨 있는 장수(長壽)에 대한 인간들의 욕망이 투영된 여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 발톱 같은 손톱미녀가 약초바구니를 들고 가거나 천도복숭아나 불수, 영지버섯이 든 잔을 들고 가거든 모른 채 마시고 마고선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미인은 잘 삐지거든요.

  

   여자 신선으로는 마고 선녀 이외에 하선고라는 미녀가 한 명 더 있습니다. 그녀는 14, 15세 무렵에 꿈에 나타난 신인이 운모 가루를 먹으라는 계시를 따라 신선이 되었답니다. 그녀는 산꼴짜기에서 따온 과일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모습은 약초나 복숭아를 담은 바구니를 든 여인으로 등장하는데 여인의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의 주인공으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마고선녀와 하선고의 모습은 비슷비슷해서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더군요.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홍도<군선도> 마고하선고가 함께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누가 마고이고 하선고인지 알아맞춰 보실래요?

 

 

②수노인(壽老人)

 

                                        김명국, <수노인이 거북을 끌다>, 종이에 수묵, 52.7×100.5cm

 




   수노인(壽老人)은 말 그대로 장수를 상징하는 신선입니다. 별 중에서는 남극성을 가리키는데 수성(壽星)이라 불리는 남극성을 보면 장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노인은 8등신이 아니라 ‘3등신’이라 할 정도로 몸에 비해 머리가 큰 짱구입니다. 머리카락이 없어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번쩍번쩍할 정도로 쿨(cool)한 노인이 흰 수염을 휘날리고 있으면 틀림없이 ‘수노인’입니다. 여기에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와 소나무가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요. 선종화의 대가답게 김명국은 굵은 필선 몇가닥으로 거북이를 끌고 가는 수노인을 그렸습니다. 수노인 뒤에 마우스처럼 생긴 물건이 거북이입니다. 매우 추상적인 작가였던 것 같습니다. 



 

                                                          윤덕희, <남극노인>, 모시에 수묵, 69.4×160.2cm




   그에 반해 가 그린 수노인은 꼼꼼한 성격이 느껴집니다. 좌측에 쓴 글에 의하면 윤덕희의 나이 55세 때인 기미년(1735)에 최영숙의 회갑을 기념하여 그려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수노인이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승업, <추남극노인>, 종이에 채색, 64.1×134.7cm

 

 

   장승업<추남극노인> 또한 ‘남극성이 보이면 임금께서 오래 사시고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 라고 적고 있어 왕에 대한 축수용 그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춘남극노인>과 쌍을 이루는 이 작품은, 하늘의 별이 빛을 잃어가는 가을 새벽에 오직 남극성만이 붉게 빛나고 있습니다. 다른 별들도 모두 빛나고 있었겠지만 유독 남극성만이 눈에 들어왔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길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금새 눈에 띄는 이치와 통하지 않겠어요?

 

 

③거지의 몸 속에 들어간 철괴

 

                                            김명국,<철괴>, 종이에 담채, 20.2×29.5cm, 간송미술관                           

                         

   

   가장 도교적인 신선이 바로 철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김명국이 그린 <철괴>를 보면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이네요. 언제 빗은 지 알 수 없는 헝클어진 머리에는 헤어밴드를 두르고, 몸에는 누더기를 걸친 모습이 영락없는 거지입니다. 게다가 한쪽 다리를 절어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 손에는 술병을 들고 있군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인생의 막장에 도달한 걸인의 필요 충분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까지였다면 도교의 신선으로 추대되지도 않았겠지요? 이제부터 그의 인생역정을 간단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철괴는 성이 이씨로(그래서 이철괴, 철괴리로 불리기도 합니다), 도에 관심이 많아 산속 동굴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자를 만나기 위해 화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전 철괴는 제자에게, "몸을 이 곳에 두고 가는데 만약 7일동안 혼이 돌아오지 않으면 몸을 태우라."고 이릅니다. 육신은 두고 영혼만 슝슝 날아 다닌다는 발상이야말로 가장 도교적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영혼이 떠난 스승의 몸을 지키던 제자에게 일이 발생합니다. 늙은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전갈이 온 것입니다. 마음이 급해진 제자는 7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스승의 시신을 태워버립니다. 그 다음부터는 상상이 되시지요?

   철괴의 영혼이 육신이 있는 곳에 돌아와 보니 자기 몸이 없어져 버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할 수 없이 철괴는 굶어죽은 거지의 몸속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비호감인 거지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 괜찮은 몸으로 이사하기 위해 빠져 나오려는 순간 호로병에서 노자가 나와서 한마디 합니다. 진정한 도는 외모가 아니라 마음에 있느니라.

 

 

    심사정,<철괴>, 비단에 담채, 29.7×20.0cm, 간송미술관     

 

   이 부분이 철괴전의 압권입니다. 또한 그 때문에 훈남인 철괴가 영원히 비호감으로 남게 된 계기가 됩니다. 그러면서 노자는 금테와 철지팡이를 주고 사라집니다. 그 후 철괴는 외모에 현혹되지 않는 진정한 도인의 상징이 되어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는 도교의 신선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에게 깨우침을 준 호로병은, 혼백을 분리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물건으로 인식되어 철괴를 그릴 때면 꼭 등장하게 됩니다.  


 

 이한철,<철괴>, 종이에 담채, 36.0×25.0cm, 간송미술관

 


   이제 보니 머리에 두른 것은 헤어밴드가 아니라 노자한테 받은 도의 상징이었네요? 손에 든 병은 술병이 아니라 호로병...에구, 하마터면 귀한 물건을 몰라보고 무식한 소리를 할 뻔 했습니다. 김명국이 워낙 술을 좋아해서 저는 또 술병을 그린 줄 알았지요. 철괴를 그린 작품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심사정<철괴>가 아주 좋습니다. 함께 감상하시지요. 이한철이 그린 <철괴>에서 동행한 신선은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눈 어두운 중생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신분증을 확실히 가지고 다니시라나까요. 무명씨 신선님.

 

 

④노자출관(노자가 함곡관을 나가다) 

                          








                                           김홍도, <노자출관>, 종이에 담채, 52.1×97.8cm, 간송미술관

 

 

   순서가 조금 바뀌었네요. 도가를 창시한 분을 먼저 소개했어야 하는데 철괴 얘기 다음에 넣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세요, 노자님. 공자와 함께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노자는 득도한 다음 서역으로 떠나기 위해 소를 타고 함곡관을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 때 함곡관을 지키던 관리가 노자를 알아보고 도에 대해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치미를 떼던 노자가 거듭되는 그의 간청에 마음이 열려 도에 대해 들려준 얘기가 오늘날 전해지는 『도덕경』입니다. 노자는 실존인물이지만 언젠가부터는 도교의 교조로 추앙받으면서 태상노군(太上老君), 원시천존(元始天尊) 등으로 신격화됩니다.


   노자와 관련된 그림은 특히 함곡관을 배경으로 한 이 장면이 많이 그려집니다. 소를 탄 노인이 손에 책을 들고 있거나 성문을 뒤로 한 채 어떤 사람과 얘기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면 반갑게 달려가서 아는 체 하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노자일 테니까요. 이번 간송전에서 <노자출관>정선김홍도의 작품이 전시되었습니다. 특히 정선의 <노자출관>은 거의 비슷한 구도의 작품이 왜관수도원 소장품 중에도 들어 있으니 비교해서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간송 작품에서 담백한 수묵의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왜관수도원 장품에서는 강렬한 채색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선, <청우출관>, 비단에 담채, 24.6×23.0cm, 왜관수도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9월 8일부터 《겸재 정선》전을 하고 있는데 왜관수도원 소장품 정선 화첩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화첩이라 전체 그림을 다 전시할 수가 없어 일주일마다 화첩을 넘겨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저도 실물은 처음 보기 때문에 매 주마다 가서 보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하는 생각. 역시 작품은 실물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에서 도판으로 보는 것은 그저 그림의 그림자만 보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이틀 전에 갔더니 <연광정>을 전시하고 있더군요. 도판으로 볼 때는 그다지 큰 감동을 받지 못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구도나 필치 등 그림을 풀어내는 솜씨가 조선 제일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 했습니다. 인물과 산수를 그리는 솜씨가 어찌나 정교하던지 함께 구경하던 지인이 정선을 ‘진짜 쪼잔한 인간’이라고 혀를 내두르더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저런 치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냐는 거예요. 저라면 날마다 쪼잔한 인간이 되어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연광정>같은 작품만 그릴 수 있다면요. 정말 쪼잔해지고 싶습니다.

다음 주부터 11월 2일까지는 <고산방학>을, 11월 3일부터 8일까지는 <노자출관>편이 펼쳐집니다. 간송전이 11월 1일까지니까 간송에 다녀오신 다음, 며칠 후에 국박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⑤유해

 


                                                심사정, <해섬자희>, 비단에 담채, 15.6×22.8cm, 간송미술관




      

 이수민,  <해섬자>, 종이에 담채, 24.3×15.4cm, 간송미술관

 


   10세기경 중국의 후량에 살았던 선인 유해와 두꺼비에 관한 내용은 이 블로그의 <그림 만나는 날> 코너의 1번에 올려 놓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유해와 두꺼비를 그린 그림 중에서 심사정<해섬자희:해섬자가 혼자 놀다>야말로 빼 놓을 수 없는 명작이라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림은, 유해가 자신을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주는 두꺼비를 끈에 금전을 묶어 낚아 올리고 있습니다. 더풀더풀한 머리카락에 누더기같은 옷, 그리고 맨발. 금테와 호리병과 지팡이같은 주민증은 없지만 마치 철괴를 그린 듯 이미지가 겹칩니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중에서 가장 많은 도석인물화를 남긴 심사정답게 선배들의 작품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이 한 듯, 거칠고 선기(禪氣)가 느껴지는 맛이 김명국의 선종화를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심사정의 <해섬자희>를 보고 이한철이 <철괴>를 그릴 때 유해를 함께 그린 것은 아닐까요? 이한철(1808-1880)이 심사정(1707-1769)보다 백 여년 뒤의 후배이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괜히 이한철의 <철괴>를 보면서 무명씨라고 놀렸네요. 이렇게 미운털이 박혔으니 아프더라도 철괴의 도움을 받기는 틀린 것 같군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고 하더니 제가 꼭 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수민<해섬자>에 등장하는 신선들이 금새 파악이 되네요. 철괴와 유해. 이제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겠어요. 죄송해요 철괴님.

그런데 유해는 어떻게 해서 신선이 되었을까요? 그의 스승인 여동빈을 만나보겠습니다.

 

 

⑥검의 신선 여동빈

 

김홍도,<협사수심:의협심이 많은 사람이 마음을 닦다>,종이에 담채, 13.0×22.4cm, 간송미술관  

 


   머리에 도인들이 쓰는 화양건을 쓰고 소요복이라는 편안한 옷을 입고 보검을 들고 있는 남자. 그가 바로 여동빈입니다. 당나라 때 실존했던 인물인 여동빈은 어린 시절부터 날마다 일만어에 이르는 문장을 읽을 정도로 총명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모습은 용을 닮았고 눈은 봉황과 비슷했다고 하니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여의치 않아 20세부터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히 낙방하다 겨우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여산의 현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산에 놀러가서 종리권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무상과 권력무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여동빈에게 종리권은 뜬구름같은 관리생활을 버리고 영생의 도를 구하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러면서 악귀를 쫓아낼 수 있는 천둔검법과 용호금단이라는 불로장생의 약 제조법을 전수해 줍니다. 그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현지사를 그만두고 수행에 전념하여 훌륭한 신선이 되었습니다. 금단을 만들어 사람들을 구하기도 하고 양자강 일대를 돌아다니며 천둔검으로 요괴를 해치웠습니다. 그의 검은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평범한 검의 의미에서 마음속에 들끓는 탐욕스러움과 어리석음과 성내는 마음을 자르는 심검(心劍)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마음의 번뇌까지 끊어주는 검이라니.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검입니다.


   문인이면서 검법에 능한 여동빈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문무를 겸비한 신선으로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홍도<협사수심>은 선비이자 검객인 여동빈의 이미지를 감필묘로 훌륭하게 처리했습니다. 전혀 검을 쓰지 않을 것 같은 선비의 이미지. 그러나 나비의 날갯짓까지도 감지해낼 수 있는 예리한 촉각. 정중동(靜中動)이란 저런 모습이겠지요?


 

이인상, <검선:검의 신선>,종이에 담채, 96.7×61.8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가 여동빈을 그린 작품은 <검선관란:검선이 물결을 바라보다>가 한 점 더 전시되어 있고, 이인문<동정검선:동정호의 검선>도 좋습니다. 그런데 ‘여동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이인상<검선>입니다.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인상의 <검선>은 평생을 고고하게 살고자 했던 이인상의 이상이 담겨 있는 문기 넘치는 산수인물도입니다. 만약 정선의 <노자출관>을 보러 가시거든 이인상의 <검선>도 함께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아참, 여동빈이 유해와 만나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여동빈이 신선이 된 다음에 때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가도 때로는 사라져 버리는 신비한 존재가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동빈이 동전 위에 계란을 열개나 쌓는 묘기를 부렸답니다. 이것을 본 관리하나가 깜짝 놀라며, ‘앗! 위험한데!’라고 소리를 질렀답니다. 그 때 여동빈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대 눈에는 이 계란이 위험하게 보일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는 그대의 지위가 더욱 위태롭게 보이는군.”


 

 이인문,<동정검선:동정호의 검선>,종이에 담채, 41.5×30.8cm, 간송미술관

 

   그 말을 듣고 한 소식 한 관리가 유해입니다. 역시 신선이 될 사람들은 평범함 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니까요.

여동빈에게 반해 신선이 된 사람으로는 조국구한상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실존했던 인물로 조국구는 왕족임에도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은둔해 살았답니다. 그의 신분증은 딱따기인데 언제든지 궁궐을 드나들 수 있는 증서라고 합니다.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술을 좋아한 한상자는 빈 술독에서 술을 만들고 연주 솜씨가 뛰어난 신선입니다. 그의 퉁소 소리를 들으면 사나운 짐승까지도 꼬리를 내리고 순한 눈빛으로 모여들 정도였다니 가히 ‘뮤즈의 신선’이라 할 만합니다.

 

 

⑦동방삭과 장과로와 종리권 


 조중묵, <종리>, 종이에 수묵, 29.0×37.7cm, 간송미술관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화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선 중 세명을 더 보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신선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합니다. 때로는 이야기의 내용이 허무맹랑하고 과장이 심해 웃음거리로 넘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소망과 바램, 지향점과 이상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신선이 실재한 인물이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을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추구하려고 했는지를 읽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신선의 숫자가 해를 거듭할 수록 많아진 것도 사람들의 갈망과 소망이 그만큼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현재까지 알려진 신선만 해도 500여명이 넘을 만큼 많습니다.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닌 그들을 다 얘기하자면 500여 일로도 모자랄 테니 오늘은 인기 순위 10위 안에 든 신선들만 살펴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살고 있는 여동빈을 꼬드겨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을 버리게 한 사람이 종리권입니다. 종리권은 당대의 실존인물로 눈이 부리부리하고 수염이 많은 무인(武人)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손에는 파초로 된 부채를 들고 있는데, 이 부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어 살릴 수 있는 신비스런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김홍도, <장과도기:장과가 거꾸로 타다>, 비단에 담채, 56.6×134.6cm, 간송미술관

 

   종리권같은 실존인물로 신선이 된 사람으로는 장과로가 있습니다. 그는 흰 종이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하루에도 수백리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쉴 때에는 나귀를 곱게 접어 종이처럼 얇은 상자 속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하면 물을 뿌려 나귀를 일으켜 세워 타고 갔다고 합니다. 그는 얼마나 오래 살았던지 그의 나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당 태종과 당 고종, 측천무후까지 그를 곁에 두고 싶어 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장과로는 흰 나귀를 거꾸로 타고 앉아 책을 보고 있거나 박쥐가 함께 그려집니다. 박쥐가 그려진 것은 원래 그가 세상과 함께 생겨난 흰 박쥐의 정령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홍도, <낭원투도:낭원에서 복숭아를 훔치다>, 종이에 담채, 49.8×102.1cm, 간송미술관

 

   삼천갑자(1갑자는 60년이니까 18만년)를 살았다는 동방삭도 실존인물입니다. 말솜씨가 뛰어나 그는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곤륜산에 올라가 낭원이라는 복숭아밭에서 선도복숭아를 세번이나 훔쳐 먹었습니다. 선도복숭아는 3천년 만에 한번 꽃이 피고 3천년이 지나야 익는다고 하는데 이 복숭아를 먹으면 1천갑자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동방삭을 6천년만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 선도 복숭아를 먹은 신선으로 만든 사람들. 그들의 가슴 속에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강렬하게 담겨 있었으면 동방삭같은 캐릭터를 창출했을까요? 백년도 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 6만년을 세번 정도 살면 만족할까요? 아닐 겁니다. 6만년을 10번을 살게 해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동방삭을 시켜 선도복숭아를 더 훔쳐오게 하지 않을까요? 아니, 어쩌면 곤륜산의 복숭아나무를 뿌리채 캐오라고 시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밖에도 양치기소년으로 신선이 된 황초평, 사슴을 몰고 다니며 불로초를 캐는 신선 청오자 등도 여러 작가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수없이 많이 그려진 도교의 신선들을 보니까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복희여와같은 전설속의 인물도 있지만 여동빈, 청오자, 동방삭, 철괴 등은 모두 실존했던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도교의 단련술을 익혀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은 어쩌면 우리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생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요? 아니, 꼭 그러고 싶다는 강렬한 염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로장생이란 단어를 보니까 갑자기 서양 신화의 티토노스가 떠오르는군요. 인간의 몸으로 제우스에게 영생을 청할 때 ‘영원한 젊음도 함께’ 달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서 결국은 늙어서 매미가 되었다는 사람입니다. 그에 비하면 동양의 신선들은 참 영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음을 잃고 단순히 오래 살기만 한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것을 젊은 나이에 알았다니 대단합니다. 기왕이면 젊은 모습으로 영생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 그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신선도를 그린 도석인물화는 계속 그려질 것입니다.  

 

 

-글을 마치면서 

   처음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불교쪽 그림도 함께 다룰 예정이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할 수 없이 다음 기회를 약속해야겠습니다. 요즘은 글을 짧게 쓰는 것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듯 자꾸 긴 글만 씁니다. 구닥다리같아 이 버릇을 고치려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별로 고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자료를 찾고 그림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면서 공부하는 즐거움을 유행에 따르느라 희생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첫번째 독자는 바로 저입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첫번째 독자가 만족하고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전시 작품을 완전히 해부하여 재배열하듯 공부하고 나면 글을 쓰고 싶은 소재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옵니다. 그림만 스캔 떠서 올린다면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선물입니다.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직접 보고 도록을 사서 돌아와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것. 이것보다 더 좋은 미술사 공부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으면(없어도 시간을 내서) 전시장에 다시 가서 작품을 보면 적어도 그 전시 작품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전시회를 볼 때마다, 글을 쓸 때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입니다. 같은 작품이 전시되어도 매번 전시장을 찾는 이유입니다. 대충 넘어가도 될 글을 받아쓰기 하듯 길게 쓰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긴 글을 읽어주신 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장승업의 명작 한 편을 소개하면서 1부를 마치겠습니다. 장승업의 <삼인문년:세 사람이 나이를 묻다>는 세 노인이 서로 자기 나이가 많다는 것을 자랑하는 얘기를 그린 그림입니다. 한 노인이 먼저 말문을 엽니다. 내 나이가 몇 살인 지는 모르겠으나 천지를 창조한 반고와 친하게 지냈지. 그렇다면 이 노인이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뜻이겠지요? 그러자 두번째 노인이 말을 받습니다. 바다가 변해 뽕나무밭이 될 때마다 산가지 하나씩을 놓았는데 그 산가지가  열칸 집에 가득하네. 뽕나무 밭이 변해 바다가 되었다는 얘기는 옛날 노인들이 긴 시간을 얘기할 때 상투적으로 써먹는 수법입니다. 이 분도 장수하셨군요. 마지막 세 번째 노인도 질 수 없습니다. 내가 말이야.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아래 버렸는데 그 씨가 벌써 곤륜산 높이만큼 쌓였어. 3천년에 한번 꽃이 피고 3천년에 한번 열매가 열리는 복숭아를 얼마나 먹었던 지 그 씨가 곤륜산만 하답니다. 대단하시군요, 어르신들. 행여 이 분들 얘기 듣고 '모두 뻥이야!'하시는 분들 없으시겠지요? 굳이 노인들을 타박하시면 안됩니다. 그 분들은 단지, 천도복숭아를 먹으며,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상 끝날 때까지 장수하고픈 인간의 욕망을 대신 말했을 뿐이니까요. 결국 신선은 시대마다 옷만 갈아입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 아닐까요? (조정육) 

 

 

 장승업, <삼인문년>, 비단에 채색, 69.0×152.0cm, 간송미술관

 



blog.daum.net/sixgardn/15770146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