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마도의 주인공 달마는 중국 불교의 대표적인 승려입니다. 남인도의 한 왕국의 왕자였고, 9년 동안 벽만을 바라보고 수행을 하여, 놀라는 경지에 오른 대사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단어입니다. 이미 “달마야 놀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등 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 등장하여 친근한 미소의 꼬마 스님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리고 또 하나. 조선시대 수묵화 중에 굵은 선으로 힘차고 단순하게 쭉쭉 뻗어나간 획이 인상적이고, 비록 쏘아보는 듯한 큰 눈이지만 결코 거북하지 않은 달마도 또한 우리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달마도를 그린 조선의 화가 김명국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여느 조선시대의 화가들이 그렇듯이 김명국 또한 출생연월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위의 숫자도 많은 이들의 추측일 뿐이죠.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천시 받은 환쟁이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림을 술에 취한 채 그렸다는 그는 최북, 장승업과 더불어 조선의 3대 광기(狂氣) 화가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이한 행적들이 설화처럼, 혹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죠.
조선시대에는 도화서라는 화원이 두어 화가들을 길러내기도 하고, 능력있는 화가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국가가 돕기도 했습니다. 김명국은 도화서의 교수급 쯤 되는 사람이었는 데요. 워낙 실력이 출중하고, 인기가 좋아서 그의 그림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집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고 하네요. 특히 두 번이나 통신사로 다녀온 일본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현재 일본에서 유명한 보아처럼, 그도 그 시대에 보아와 비슷한 문화사절단 노릇을 하였네요. 예나 지금이나 일본 사람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나 봅니다.
김명국은 그의 호를 위에 소개한 연담과 함께 “취옹(醉翁 : 술 취한 늙은이)”이라 할 만큼 술을 좋아했다고 해요. 그래서 김명국 시대의 한 역사가는 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죠. "김명국은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여 남이 그림을 요구하면 곧 술부터 찾았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 재주가 다 나오질 않았고, 또 술에 만취하면 만취해서 제대로 잘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대부분 거칠고 힘있는 필법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혹자에게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칠다는 평도 받고 있죠. 술에 취해 순식간에 그려낸 듯한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대륙적 기질의 중국못지 않은, 호방하며 힘찬 기상을 느낄 수도 있죠. 하지만 가지고 있는 능력과 상관없이 타고난 신분으로 인해 출세에의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아웃 사이더의 슬픔이 가만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강하면서도 끝이 아련한 그의 필치에는, 가지고 있는 예술성을 다 보이자니 억울하고, 보이지 않자니 답답하여, 술의 힘에 빌어 자신을 드러내는 화가의 애닯은 삶의 울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명국이 죽은 후에는 그 이전 어떤 화가들도 받지 못한 "신필(神筆)" 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힘있는 필치와 선의 움직임은 인물화 뿐 아니라 산수화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의 내용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린 화가의 정서까지 느끼게 하고 있죠. 그의 붓은 인생에 대한 한과 설움, 예술에 대한 강한 욕망 등 그의 내면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김명국의 그림을 보시면서 그림 속 그의 선이 어디에서, 어떻게 끝나는 지 따뜻한 시선으로 따라가 주세요. 그의 마음까지 느끼실 수 있으실 거에요. | |
[ 달마도 (1650) ]
달마는 중국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사이며, 수묵으로 인물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달마도를 빼놓지 않고 그리곤 합니다. 달마도는 불교의 궁극적 깨달음과 선의 세계를 담을 수 있는 휼륭한 인물화이거든요. 중국과 일본에서도 많은 달마도가 그려졌는 데요, 그 중에서 김명국의 달마도가 가장 유명합니다. 그의 달마도에는 거칠 것 없는 호방함과 시원스러운 묵선(墨線)과 여백의 조화가 압권이거든요. [ 기려도(騎驢圖) (1650) ] 단순한 듯하면서도 공간 속 여백의 힘이 충만한 이 그림은 불교적 느낌의 풍취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배경은 간략하게 되어 있고, 나귀에 탄 선비에게만 화가의 마음이 쏟아 있는 듯 합니다. 나귀는 지쳐 보이지만, 갓을 쓴 선비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하네요. 그림을 통해 불교에서 중시하는 명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사관화도 (1650) ] 소나무 아래서 늙은 선비 둘이서 그림을 감상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구부러진 소나무, 흑백 대비가 강한 바위 모습, 인물 표현 등에서 다소 거친 필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명국의 전형적인 광태적 화풍에 비하여 좀더 부드럽고 섬세한 필치가 느껴지기도 하죠.
[ 고사관수도 (1650) ] 고사관수도는 절벽을 배경으로 바위 위에 두 팔을 모아 턱을 괸 채 앉아 수면을 바라보고 있는 한가한 선비의 모습을 그려낸 그림입니다. 고사관수도는 김명국 뿐 아니라 강희안의 작품으로도 유명하죠. 가운데 설정되어 있는 선비의 표정과 의상이 중국 스타일로 보여집니다.
[ 설중귀려도 (1650) ] 힘있는 필법으로 그려진 선과 구도가 화면에 가득히 펼쳐져 있습니다. 하인을 거느리고 먼 길을 떠나는 노인과 그를 배웅하는 여인의 애틋한 모습이 애잔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듯한 분위기가 보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을 더욱 크게 느끼게 하고 있구요. 그래도 그림 속 필치마다 보여지는 힘이 역시 김명국의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네요.
[ 탐매도 (1650) ] 탐매(探梅)는 원래 매화가 피어 있는 경치를 구경한다는 뜻이랍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인 맹호연이라는 사람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맹호연은 매화를 좋아하여 눈이 녹기 시작하는 초봄이 되면 매화를 찾아 다녔다고 하네요. 지팡이를 비스듬히 잡고 서 있는 은사(隱士)와 그 옆의 시자(侍者)의 모습에서 김명국 특유의 필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 달마절로도강 (1650) ] 이 그림도 달마의 행적을 그려낸 것으로, 그가 중국의 양(梁) 나라에서 설법을 했는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자, 갈대잎을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갔다는 전설을 담고 있습니다. 달마의 얼굴은 그 특징을 잘 살려, 비교적 섬세하게 그려져 있죠. 하지만 그 옷의 선들은 술에 취한 김명국의 팔에 의해 리드미컬하게 그려내어 졌습니다.
[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 만춘 (1662) ] 초춘. 만춘. 초하. 만하의 네 폭으로 그려진 화첩 중 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비단에 그려져 있어서 매우 독특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죠. 잔잔한 물결이 멀리 나타나 있고, 긴 가지를 늘어트리고 있는 버드나무가 앞에 크게 부각되어 있네요. 그림의 뒤에서 멀리 보이는 산들이 현세상에는 있지 않을 듯한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 초하 (1662) ] 무성한 나뭇가지의 버드나무가 그림 속에 한 가득 있고, 그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누각들이 여름의 정취를 더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는 강물의 수위가 높아진 것으로 보아 장마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네요. 가만히 들여다 보면 비옷 같은 도롱이를 입고 두 인물이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주 작게 그려져 있으니 가만히 들여다 보세요.
[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 만하 (1662) ] 사시팔경도의 만하는 야경을 그려낸 것입니다. 전경의 나무들이 바람에 크게 흔들리며 사뭇 동적으로 그려져 있죠. 화면 중앙에 치솟아 있는 나무 하나가 매우 위풍당당해 보입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강 또한 바다 처럼 넓고 광활한 느낌이 들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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