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에 등장하는 인물들.... / 之의 쓰임새

2016. 4. 19. 16:15잡주머니




♡록키의 사람사는 이야기♡    
       



    

작성자rocky
작성일2011-07-01 (금)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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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심보감에 등장하는 인물들/ 之의 쓰임새 

        
    명심보감에 등장하는 인물들

태공(太公) 또는 태공망(太公望) :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상(尙). 그의 선조가 여(呂)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여상(呂尙)이라 불렸고, 강태공(姜太公)으로 널리 알려졌다. 뜻을 함께 할 주군(主君)을 찾던 태공망은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을 그 대상으로 점지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곧은 낚시를 위수(渭水)에 담그고 낚시질을 하면서 세월을 기다렸다. 드디어 문왕을 만나 그의 스승으로 기용되었고,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하여 천하를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제(齊)나라에 봉함을 받아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병서(兵書) '육도(六韜)'는 그의 저서라 전해짐

장자(莊子) : 이름은 주(周)로서 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 사상가이다. 송(宋)나라 출생으로, 맹자(孟子)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자(老子)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을 발전시켜서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이루었다. 인생은 천명이라는 숙명설(宿命說)을 주장하였으며, 그의 인생관은 생사를 초월한 무한경지에서의 자유로운 소요(逍遙)를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슬퍼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기뻐하여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했다고 한다.

주문공(朱文公) : 주문공은 곧 주자(朱子)를 말한다.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로 이름은 희(熹), 자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이고 문(文)은 그의 시호이다. 주자는 주자학(朱子學), 송학(宋學), 정주학(程朱學)으로 불리우는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하였으며 《시집전(詩集傳)》,《소학(小學)》,《주역본의(周易本義)》,《사서집주(四書集註)》,《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근사록(近思錄)》 등의 편·저서가 있다. 주자학은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때 안향(安珦)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져 크게 꽃피었다.

무왕(武王) :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로 이름은 발(發)이다. 강태공(姜太公)과 소공석(召公奭)의 보좌를 받으면서 아우 주공(周公) 단(旦)과 협력하여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은(殷)나라를 쳐서 주왕조(周王朝)를 세웠다.

소강절(1011~1077) : 송나라 때의 유학자이자 시인으로, 이름은 옹(雍)이고 자(字)는 요부(堯夫), 강절(康節)은 시호이다.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 이정지(李挺之)로부터 도가의 도서(圖書)·천문(天文)·역수(易數)를 배워 특이한 수리철학(數理哲學)을 정립하였으며, 이에 의해 우주와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였다. 그는 복서(卜筮)의 대가로서 국가의 장래를 예견하였다. 주요저서로는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관물내외편(觀物內外編)》《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어초문답(漁樵問答)》 등이 있다.

순자(荀子) : 전국시대 말기인 조(趙)나라의 사상가. 이름은 황(況)이며, 순경(荀卿) ·손경자(孫卿子) 등으로 존칭된다. 자하(子夏 : 공자의 제자) 학파에 속하는 유학자이다. 맹자(孟子)가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는 데 대하여 순자는 성악설(性惡說 : 인간의 타고난 性品은 惡한데 그것을 禮와 義를 통해 바로 잡아야 선하게 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한비자(韓非子)나 이사(李斯) 등이 그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순자(荀子)》가 유명하다

당나라 때의 명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왕발(王勃)은 등왕각 낙성식이 있기 이틀 전에 꿈속에서 한 노인을 만나 등왕각 서문을 지으라는 계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있던 동정호에서 등왕각까지는 칠백리가 넘는 거리였다. 도저히 하루만에 갈 수 없었음에도 그는 배에 올랐다. 때마침 불어온 순풍을 타고 그는 하루만에 등왕각에 도착하였고 일필휘지로 <등왕각序>를 지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4세였다. 천복비에 관한 고사는, 송나라 때 한 가난한 선비가 있었는데 어떤 이가 명필 구양순이 썼다는 천복비를 탁본해 주면 후한 보상을 하겠다고 하자 천신만고 끝에 수천리를 애써 갔으나, 그날 밤에 난데없이 폭풍이 몰아치고 벼락이 떨어져 천복비를 깨뜨려버렸다는 이야기가 얽힌 비석이다. 등왕각은 장강(양자강) 유역의 남창시 감강 기슭에 있으며, 당나라 현경4년(653년) 태종 이세민의 아우 등왕 이원영이 홍주 도독으로 임명되었을 때 영조한 것이다. 각(閣)은 그의 봉호로 명명되었으며 예로부터 <강남 제1루>로 칭송되고 있는데, 호북 무한의 황학루, 호남 악양의 악양루와 함께 중국 3대 명루(名樓)에 속한다. 외관이 3층, 내부가 5층으로 높이가 25m, 면적은 5600평방m이다.

열자(列子) : 전국시대 초기 도교의 사상가로 이름은 어구(御寇). 列子는 그의 존칭이자 저서(著書)의 이름이다. 황제(黃帝)·노자(老子)의 학문을 바탕으로 하여 지은 《열자(列子)》 8권이 있다. 장자가 지어낸 인물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손진인(孫眞人) 손진인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진인(眞人)으로 불리어지는 것으로 보아 도가(道家)에 속해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진인은 도가에서 참된 진리를 깨달아 득도(得道)한 사람을 일컫는 존칭이다.

근사록(近思錄) : 중국 송(宋)나라 때의 생활·처세 및 학문[道學] 지침서. 1175년 주희(朱熹:주자)와 여조겸(呂祖謙)이 주돈이(周敦燎) ·정호(程顥) ·정이(程燎) ·장재(張載) 등 네 학자의 글에서 학문의 중심문제들과 일상생활에 요긴한 부분들을 뽑아 14권으로 편집하였다. 제목의 ‘근사’는 논어의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切問而近思]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견지(夷堅志) : 12세기초인 북송때 홍매(洪邁)란 사람이 편찬한 책으로, 그의 일생 동안에 보고 겪은 신선, 귀신 등 괴이한 내용을 모아서 이야기로 엮은 설화집(說話集)이다. 420권으로 되어 있는데 夷堅(이견)이란 박물군자(博物君子)의 이름이라고 하고, 지(志)는 사물의 변천이나 연혁을 기록한 것을 말한다.

채백개(蔡伯 ) : 채옹(蔡邕). 중국 후한 때의 문인. 자(字)는 백개(伯 ). 젊어서부터 박학(博學)하기로 이름이 높았고 문장(文章)과 천문학, 거문고에 뛰어났다. 동탁(董卓)에게 발탁되어 시어사(侍御史), 시중(侍中)에서 좌중랑장(左中郞將)까지 승급하였으나 동탁이 죽음을 당한 후 투옥되어 옥중(獄中)에서 사망하였다.

공문십철(孔門十哲) : 공자(孔子)의 뛰어난 10명의 제자들을 말하며, 흔히 사과(四科)십철이라 한다. 덕행(德行)에는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伯牛)·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재여)·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염有)·계로(季路), 문학에는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뛰어나다고 하였다. 또 여기에 나오는 덕행·언어·정사·문학을 사과(四科)라고 한다.

재여(宰予) : 춘추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아(子我) 또는 재아(宰我)라고 한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자공(子貢)과 함께 언변에 능하였고 외교 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공자는 말을 조심하도록 늘 강조했기 때문에 말 잘하는 재여는 자주 스승의 눈을 거슬렸던 것 같다.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고 언변에만 능한 재여에게 "썩은 나무는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만든 담은 손질을 못할 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재여를 통해서 나는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람을 볼 때 그 말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까지도 살피게 되었다"라고 일침을 가하는 공자의 말씀이 있으며, 3년상이 너무 길다고 했다가 꾸중을 듣기도 한다.

시경(詩經) : 춘추 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여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 시대적으로는 주(周)나라 초기부터 춘추(春秋) 초기까지의 것 305편을 수록하고 있다. 본래 3,000여 편이었던 것을 공자(孔子)가 풍속 교화와 백성들의 성정(性情)을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되는 것 350여 편으로 개편했다는 말이 있다. 국풍(國風) ·소아(小雅) ·대아(大雅) ·송(頌)의 4부로 구성되며, 국풍은 여러 나라의 민요, 아(雅)는 공식 연회에서 쓰는 의식가(儀式歌), 송은 종묘의 제사에서 쓰는 악시(樂詩)이다.
각부(各部)를 통하여 상고인(上古人)의 유유한 생활을 구가하는 시, 현실의 정치를 풍자하고 학정을 원망하는 시들이 많은데, 내용이 풍부하고, 문학사적 평가도 높으며, 상고(上古)의 사료(史料)로서도 귀중하다. 원래는 사가소전(四家所傳)의 것이 있었으나 정현(鄭玄)이 주해를 붙인 후부터 ‘모전(毛傳)’만이 남았으며, 그 때부터 《모시(毛詩)》라고도 불렀다. 당대(唐代)에는 《오경정의(五經正義)》의 하나가 되어 경전화하였다.
[시경]의 시들은 그대로 백성들이 지닌 순수한 인정(人情)의 발로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시경 삼백 편을 생각함에 사악(邪惡)함이 없는 것이다. [시삼백(詩三百),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시경] 속에는 여러 가지 미덕(美德)이 담겨져 있다. 첫째, 가정 및 가족의 도덕으로서 효도, 부덕(婦德), 우애가 있고, 둘째, 수신의 도덕으로서 공경 및 근신(謹愼)의 덕성, 성정을 바로 잡는 극기의 덕성, 근면과 검소의 미덕 등이 있다.

서경(書經) : 흔히 《상서(尙書)》라고도 하는데, 진(秦)나라 이전에는 《서(書)》라고만 불렀으며, 《서경》이나 《상서(尙書)》라는 말은 훗날 붙여진 이름이다. 《서경》은 고대 중국의 여러 나라에 전해 내려온 사관(史官)들의 기록을 공자(孔子)가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라고 한다. 맹자의 기록처럼 비록 일부 내용의 진위(眞僞)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서경》을 통하지 않고 유가(儒家) 사상이나 동양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당초에는 100편이었다고 하나,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의 분서(焚書)로 상실되었다가 후세에 복원된 58편이 전해진다. 《서경》은 중국 고대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歷史書)이며, 중국 산문(散文) 문학의 창시(創始)이자, 중국 사상(思想)의 뿌리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서경》은 예부터 《시경(詩經)》 《역경(易經)》 등과 함께 삼경(三經)을 이루게 되었으며,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경서(經書) 중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 사서(四書):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
* 삼경(三經):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 오경(五經): 삼경(三經)과 예기(禮記), 춘추(春秋)
* 육예(六藝): 시(詩) 서(書) 역(易) 춘추(春秋) 예기(禮記) 악(樂)
* 십삼경(十三經): 삼경(三經)과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禮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논어(論語), 효경(孝經), 이아(爾雅), 맹자(孟子)

역경(易經) : 주역(周易)을 말하며 단순히 《역(易)》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原典)과도 같은 것이며, 동시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凶運)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 하는 처세의 지혜이며 나아가서는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하다. 주역(周易)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 시대의 역(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夏)나라 때의 연산역(連山易), 은(殷)나라 때의 귀장역(歸藏易)이라는 역서가 있었다고 한다.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주역》은 8괘(八卦)와 64괘, 그리고 괘사(卦辭) ·효사(爻辭) ·십익(十翼)으로 되어 있다. 작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왕필(王弼)은 복희씨(伏羲氏)가 황허강[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圖形)을 보고 계시(啓示)를 얻어 천문지리를 살피고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8괘를 만들고, 이것을 더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사마 천(司馬遷)은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문왕(文王)이 64괘와 괘사 ·효사를 만들었다 하였고, 융마(融馬)는 괘사를 문왕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십익은 공자(孔子)가 만들었다고 하여 그 정확한 작자를 밝혀낼 수가 없다.
역은 양(陽)과 음(陰)의 이원론(二元論)으로 이루어진다. 즉, 천지만물은 모두 양과 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약한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등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 ·음 두 가지로 구분하고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원리이다. 달은 차면 다시 기울기 시작하고, 여름이 가면 다시 가을 ·겨울이 오는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그 원칙은 영원불변한 것이며, 이 원칙을 인간사에 적용시켜 비교 ·연구하면서 풀이한 것이 역이다.
태극(太極)이 변하여 음 ·양으로, 음 ·양은 다시 변해 8괘, 즉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괘가 되었다. 건은 하늘 ·부친 ·건강을 뜻하며, 태는 못[池] ·소녀 ·기쁨이며, 이는 불[火] ·중녀(中女) ·아름다움이며, 진은 우뢰 ·장남 ·움직임이며, 손은 바람 ·장녀, 감은 물 ·중남(中男) ·함정, 간은 산 ·소남(少男) ·그침, 곤은 땅 ·모친 ·순(順)을 뜻한다. 그러나 8괘만 가지고는 천지자연의 현상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이것을 변형하여 64괘를 만들고 거기에 괘사와 효사를 붙여 설명한 것이 바로 주역의 경문(經文)이다.
한편 공자는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그 원글을 해석하고 이치를 밝힌 《십익》을 저술하였다. 십익이란 새의 날개처럼 돕는 열 가지라는 뜻으로, 즉 단전(彖傳) 상 ·하편, 상전(象傳) 상 ·하편, 계사전(繫辭傳) 상 ·하편,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이 그것이다. 《주역》은 유교의 경전 중에서도 특히 우주철학(宇宙哲學)을 논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일본 ·베트남 등의 유가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술의 원전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다.

구래공(寇來公) : 송(宋)나라 때의 어진 정치가로, 자는 평중(平仲), 시호는 충민(忠愍)이며 구래공(寇來公)으로 불리워진 것은 요(遼)나라가 침입했을 때 시국을 수습한 공으로 내국공(來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이다. 육회명(六悔銘)은 관리와 부자, 재주와 배움, 술취함과 건강 등 여섯 가지 후회할 일에 대해서 미리 경계할 것을 강조한 글이다.

자장(子張) :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전손사(전孫師). 공자가 행동이 지나치다고 평할 정도로 매사에 의욕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배우는 데도 열의가 있었고, 위급한 것을 보면 생명을 내걸 정도로 의협적인 성격을 지녔다. 이 글은 자장이 벼슬길에 나가게 되어 공자에게 하직인사를 올리면서 수신(修身)에 대하여 묻는 글인데, 논어 위정편(爲政篇)에도 자장이 공자에게 벼슬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묻는 대목이 보인다.

자하(子夏) :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복상(卜商). 문학에 재능이 있었으며 소극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는 <시경> <서경> <예기> <악기> <춘추> 같은 경전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깊이 연구하였으며, 공자가 가르친 유학의 전승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한유(韓愈) : 자(字)는 퇴지(退之), 하남 남양 출생으로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이다. 시호는 문(文)이므로 한문공(韓文公)이라 한다. 그 선대에는 일찍이 창려(昌黎)에 살았으므로 자칭 창려한유(昌黎韓愈)라고 하였다. 한유는 어려서부터 빈곤한 가운데에 자랐으나 더욱 분발하고 부지런하게 학문을 닦아 국자박사(國子博士), 형부시랑(刑部侍郞), 국자제주(國子祭酒) 등의 관직에 올랐다. 이 글의 출전은 韓昌黎全集(한창여전집) 符讀書城南이다.

휘종황제(徽宗皇帝) : 북송(北宋)의 제8대 임금. 수호지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재위하였다. 그 자신이 서예와 그림에 조예가 깊었으며, 토목·건축·조원(造園) 등에 정열을 쏟았고, 화원(畵院)을 보호하여 미술·공예 등 도시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였다. 아들 흠종 때에 여진족인 금(金)나라의 침입을 받아 북송은 멸망하였고 중국은 금(金)과 명장 악비(岳飛)가 흠종의 아들(고종)을 내세워 항주(杭州)에 임시정부로 세운 남송(南宋)으로 갈린다.

소광(疏廣) : 전한(前漢) 선제(宣帝)때 태자의 스승인 태부(太傅)의 벼슬에까지 오른 학자. 그가 나이가 들어 벼슬에서 물러날 때 황제와 태자가 많은 재물을 하사하였다. 소광은 그 재물을 자신이나 자기 자손들을 위해 쓰거나 앞날을 위해 모아두지 않고 어렵게 사는 친지와 이웃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 그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자손들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자 소광은 '賢人多財卽損其志 愚人多財卽益其過' 즉, 어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재물이 많아지면 그 지조를 손상할 수밖에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재물이 많아지면 그 허물을 더하게 되는 법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가 상소하여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는 뜻으로 사용한 '걸해골(乞骸骨)'로 유명하며, 천자문의 '兩疏見機'에 나오는 두 명의 소(疏)란 바로 이 소광과 소기를 말한다.

사기(史記) : 전한(前漢) 때 사마천(司馬遷)이 상고시대의 황제(黃帝)에서 한(漢)무제까지 약 삼천년 동안의 중국의 역사를 기전체(紀傳體)로 기록한 책으로(기전체의 효시), 후한(後漢)시대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저술한 한서(漢書)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 사서(史書)로 꼽힌다.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제후를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연대표인 표(表) 10편, 시대를 상징하는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 70편 등 총 130편으로 구성되었다.

가어(家語) : <孔子家語>를 말하며, 공자(孔子)의 언행(言行) 및 그 제자와의 문답을 수록한 책이다. 위(魏)나라 왕숙(王肅)이 공안국(孔安國)이라는 이름으로 <좌전(左傳)> <국어(國語)> <맹자(孟子)> <순자(荀子)> <대대례(大戴禮)> <예기(禮記)> <사기(史記)> <설원(說苑)> <안자(晏子)> <열자(列子)> <한비자(韓非子)> <여람(呂覽)> 등에서 공자에 관한 기록을 모아 수록한 위서(僞書)가 전해진다.

소동파(蘇東坡) : 북송(北宋) 때의 시인으로, 본명은 소식(蘇軾),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며 파공(坡公) ·파선(坡仙)이라고도 불린다. 소순(蘇洵)의 아들이며 소철(蘇轍)의 형으로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 중국 당(唐)나라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송(宋)나라의 구양수(歐陽修)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증공(曾鞏) ·왕안석(王安石) 등 8명의 작가]에 속한다. 대표작으로 <적벽부(赤壁賦)>가 있다.

명도선생(明道先生) : 북송(北宋) 때의 유학자인 정호(程顥)의 존칭. 명도는 그의 호. 동생 정이(程燎)는 이천선생(伊川先生)으로 불리우며 두 형제를 가르켜 정자(程子) 혹은 이정자(二程子)라고 일컫는다. 형제가 모두 염계(濂溪) 주돈이(周敦燎)의 제자이며, 후에 주자(朱子)에게 큰 영향을 주어 송나라 유학의 기초를 이루었고, 정주학(程朱學)을 완성하였다.



附錄

之의 쓰임새에 대해서...

   之는 술어로는 “~에 가다” (갈 지)의 뜻이고, 어조사로는 우리말의 관형격 조사인 “~의”의 뜻이 있다. 어조사로서 또 하나의 쓰임새는 목적어․대명사(지시대명사)로서의 之를 들 수 있다. 한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가 바로 이 “之”자(字)이지만 다소 그 쓰임새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 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흔히 之를 목적어․대명사로 보아 “이것을,” “그것을” 등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이것만으로는 之의 쓰임새를 온전히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만약 之가 “목적어․대명사”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진다면, 之앞에는 반드시 타동사만 와야 할 것이며, 또한 대명사로서 之가 받는 목적어가 문장내에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之는 타동사는 물론이고, 자동사 뒤에도 붙어서 두루 쓰이는 글자이며, 또한 문장내에 대명사로서 之가 받는 목적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즉, 之를 목적어․대명사라는 명칭으로 불러서는 之의 쓰임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또한 오역(誤譯)의 가능성도 상당히 많다. 이에 우리 선조들은 之를 “어조사”라는 다소 애매한 명칭으로 이 之자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之는 목적어․대명사라기 보다는 문장의 어감(語感)이나, 어기(語氣), 어세(語勢) 등을 위해서 더 많이 쓰인 글자이다. 즉, 之자는 무엇을 지칭하기 위한 대명사라기 보다는 문장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유지하고, 어조(語調)를 고르기 위한 글자로서의 기능이 더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之자는 此(이것을), 是(이것을) 등과 같은 글자처럼 그 지시성(指示性)이 강한 글자가 아니며, 다만 문장의 안정감과 어조 등을 위해서 붙여준 글자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말로 “이것을,” “그것을” 이라고 하여 지시대명사로 번역될 성격의 글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 선조들께서 옮겨 놓은 각종 언해본(諺解本) 등을 살펴 보면 之자를 “이것을,” “그것을”이라고 해석한 경우가 절대로 없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之자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래에서는 之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 之는 타동사 뿐만 아니라 자동사 뒤에도 붙어서 두루 쓰이는 글자로서 “목적어․대명사”라는 명칭은 적합하지 않다.
대개 어느 나라의 언어이건 간에 자동사 보다는 타동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문의 경우에도 자동사 보다는 타동사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술어+之”에서 之가 마치 그 술어의 목적어인양 설명하면 처음에는 잘 들어 맞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之는 딱히 무엇을 지칭하기 위한 대명사가 아니라, 문장의 균형감과 안정감, 어세(語勢), 어조(語調) 등을 고르기 위한 기능이 더 중요한 글자인 것이다. 따라서 之는 타동사이건 자동사이건 두루 붙어서 쓰일 수 있는 글자이다. 만약 “자동사+之”에서 之를 대명사로 본다면, 이는 오역(誤譯)이 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아래에서는 자동사 뒤에도 之가 붙을 수 있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하겠다.


○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자로가 말했다. 환공(桓公)이 공자 규(公子糾)를 죽이자, 소홀(召忽)은 죽고, 관중(管中)은 죽지 아니하였으니 (관중은) 仁하지 못하였던 것입니까? (論語)
※ 死之에서 死는 자동사로서 “죽다”의 뜻이다. 만약 타동사로 본다면 오역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之는 대명사가 아니며, 4.4의 한문 고유의 댓구를 맞추고 어감, 어세, 어기 등등을 위해서 써준 글자이다. 아래에 경우도 모두 이와 같다. 자칫 之를 대명사로 보았다가는 오역을 하기 십상이다.
○ 執其手曰 亡之
그 손을 잡고서 말씀하시기를, “어쩔 도리가 없구나.” (論語)
○ 深淵而魚生之, 山深而獸往之
연못이 깊으니 물고기가 살고, 산이 깊으니 들짐승이 다닌다. (史記)
○ 朋黨之說, 自古有之
붕당의 설이 옛부터 있었다. (朋黨論)
○ 貊, 五穀不生, 惟黍生之
맥 땅에는 오곡이 나지 않고, 오직 기장이 난다. (孟子)
○ 死之, 可也 (죽는 것이 좋을 것이다. 春秋左傳)
○ 伯夷曰, 父命也, 遂逃去, 叔齊亦不立而逃之
백이가 말하기를, “아버님의 명령이시다”하고 마침내 달아나 가버리니, 숙제 또한 (임금자리에) 서지 않고 달아 났다.
○ 飮酒樂甚, 扣舷而歌之
술을 마시고 즐거움이 무르익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한다. (前赤壁賦)
○ 不知手之舞之, 足之蹈之也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것도 모르다. (詩經)
○ 子路問政, 子曰, 先之, 勞之
자로가 정치를 묻자 공자께서 말하기를, 솔선하고 노력해야 한다. (論語)
○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큰 수레에 수레채 마구리가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 막이가 없으면 그 (수레가) 어떻게 갈 수 있으리요? (論語)
※ “其何以行之哉”문구를 “어떻게 그것을 가게 하리요?”라고 번역하면 안된다. 論語集註를 보면 行이 타동사가 아님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으며, 만약 行이 타동사라면, “~을 행하다”의 뜻이지, “~을 가게하다”의 뜻이 아니다.
○ 五畝之宅 樹之以桑 五十者可以衣帛矣
오무쯤 되는 땅에 뽕나무를 심으면 쉰 살된 사람은 솜옷을 입을 수 있다. (孟子)
○ 子曰 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論語, 陽貨篇) ※邇와 遠은 타동사가 될 수 없다. 자동사이다.
지금까지 살펴 보았듯이 之는 자동사 뒤에도 쓰일 수 있는 글자이다. 만약 之를 “대명사․목적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면, 之앞에 붙는 술어는 모두 타동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오역을 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위에서 보듯이 之는 문장의 안정감과 균형감을 주고, 어기(語氣), 어세(語勢) 등을 고르기 위한 기능이 더 중요한 것이다.


2. 타동사 뒤에 붙는 之라도 다른 지시대명사인 此나 是처럼 강한 지시성(指示性)을 품고 있지 않고, 그 지시성이 거의 희박하다.


○ 造次 必於是 顚沛 必於是
잠시라도 이에 반드시 있고, 급해도 이에 반드시 있다. (論語)
○ 自是舜以克孝 而徽五典
이로부터 순임금이 능히 효도함으로써 五典을 아름답게 하시고....(孝經大義序)


   만약 之가 대명사라면 무엇을 특정하는 지시성(指示性)이 강해야 할 것이다. 즉, 此나 是자 처럼 그 지시성(指示性)이 뚜렷하여야 할 것이지만, 之에는 그렇게 뚜렷한 지시성이 없다. 즉 다시 말하면, 之자는 무엇을 딱히 지칭하기 위한 글자가 아니라, 문장의 균형감, 안정감, 어세, 어기, 어조 등을 위해서 쓰이는 글자인 것이다. 만약 之가 무엇을 딱히 지칭하는 그 지시성(指示性)이 강하다면 위의 문구의 是대신에 之자도 쓰여야 할 것이다. 즉 지시성이 강한 是자를 대체해도 무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문에는 “於之(그것에, 이것에),” “自之(그것으로부터, 이로부터)”와 같은 문구는 절대로 없다. 즉, 之에는 是와 같은 지시성(指示性)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지시성(非指示性)은 아래와 같은 문장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 上有麾之, 中有乘之, 下有附之
위에서는 지휘하고, 중간에서는 이어받아 따르고, 아래에서는 이에 부합한다. (明心寶鑑)
○ 易地思之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 愛之重之 (사랑하고 중히 여긴다)
○ 衆惡之 必察焉,
뭇사람들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그를) 살핀다. (論語)
○ 孔子曰, 小子 聽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내 말을) 듣거라. (論語)
○ 百行之本, 忍之爲上
백행의 근본은 참는 것이 최상이다. (明心寶鑑)
※ 忍之는 명사구로서 이때 之는 앞의 글자를 술어답게 하는 어감을 주는 기능을 한다. 즉, “忍爲上”과 “忍之爲上”은 어감상 큰 차이가 있다.
○ 小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어렸을 때는 혈기가 미정한 까닭에 경계할 것은 色에 있다. (論語)
※ 역시 마찬가지로 戒在色과 戒之在色은 어감상 차이가 많다. 즉, 전자는 戒가 명사일 뿐이다. 따라서 “경계가 여색에 있다”의 뜻으로 문맥에 맞지도 않는다. 그러나 之를 戒다음에 붙임으로써 戒는 명사가 아니라 술어가 되며 하나의 명사구로서 “경계할 것이 여색에 있다”의 뜻이 되어 어감이 분명히 다르다.
○ 敎之之術, 其次第節目之詳, 又如此
가르치는 술법의 차례, 절차, 세목의 상세함이 또한 이와 같다. (大學集註)
○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진실은 하늘의 도리요, 진실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다. (中庸)
위의 글에서 之는 모두 무엇을 딱히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다. 즉, 무엇을 지칭하기 위해서 之를 쓴 것이 아니라, 다만 문장의 균형감과 안정감, 어기, 어세, 어감 등을 위해서 써준 것이다. 특히 마지막의 네가지 사례들은 모두 “술어+之”가 명사구로 쓰인 것들이다.


3. 之는 문장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주고, 어세(語勢), 어기(語氣), 어조(語調) 등을 고르기 위한 기능이 더 중요한 글자이다.
위의 논거만으로도 之는 “대명사․목적어”라는 명칭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글자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之는 무엇을 지칭하기 위한 대명사라기 보다는, 즉 뜻이 있는 실사(實辭)라기 보다는 문장내에서 “기능”을 주로 하는 허사(虛辭)에 가까운 글자이다. 이러한 기능은 위의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거니와, 아래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 爲善者 天報之以福 (善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 갚는다. 明心寶鑑)
○ 有陰德者 天報以福 (음덕을 쌓은 자는 하늘이 복으로 갚는다. 蒙求)
※위의 두 문장은 거의 똑같은 문장이다. 그런데 하나는 之를 쓰고 하나는 之를 쓰지 않았다. 그것은 어감상의 차이이다. 즉, 아래의 문장은 4.4의 한문 고유의 댓구 형식에 따랐기 때문에, 之를 붙여주면 어감만 나빠지기 때문이다.
○ 沽酒市脯 不食 (論語)
※ 여기서는 食이 타동사임에도 之를 붙이지 않았다. 역시 之를 붙이면 어감만 나빠지기 때문이다. 특히 “不+술어+之”와 같은 형태의 구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별로 쓰이지 않는다. 아래의 문장을 보면 之가 어감, 어세, 어기 등을 고르기 위한 기능이 더 큼을 알 수 있다.
○ 勢利紛華 不近者 爲潔, 近之而不染者 爲尤潔
권세와 이익의 화려함에 가까이 하지 않는 이가 고결한 것이요, 가까이 있더라도 물들지 않는 자는 더욱 고결한 것이다. (菜根譚)
※ 이 문장에서 之는 아주 특별한 기능을 한다. 즉, 之를 통해서 문장의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어세(語勢)와 어조(語調) 등을 고르게 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즉, “不近者”를 不近之者“라고 하지 않거니와, ”近之而不染者“를 ”近而不染之者“라고 한다거나, ”近之而不染之者“라고 하지 않는 것은 모두 그 어감과 어세 등을 위해서 그런 것이다. 또한 ”不+술어+之“와 같은 구문은 특별한 어세를 나타내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다.
○ 得爲而不爲 不得爲而爲之 均於不孝
할 수 있는 데도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데도 하는 것은 불효에 있어서는 똑같다. (論語集註)
※ 여기서도 之는 어조를 고르기 위한 기능을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조동사(得, 可)+술어+之”와 같은 구문도 어세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다. 즉, 위의 문장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得爲而不爲”를 “得爲之而不爲之”라 하지 않은 것은 이유 있는 것이다.
○ 王曰 王政可得聞與
왕께서 이르기를, 왕도정치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孟子)
※이 문장에서도 “王政可得聞之與”라 하지 않은 것은 어세가 좋지 못해서이다.
특히 아래의 예문들은 모두 之가 어기를 고르기 위한 기능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관용구들이다.
○ 願比死者 一洒之 如之何則可
죽은 자를 위하여 한번 원수를 갚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孟子)
○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동 일으키길 좋하는 일은 아직 없었다. (論語)
○ 如其善而莫之違也 不亦善乎
만약 그것이(임금의 말이) 옳기 때문에 어기지 못하는 것이라면 또한 좋지 않습니까? (論語)
위의 표현들은 대부분 굳어진 관용적인 표현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어감을 위한 것이지, 무엇을 지칭하기 위해 之를 쓴 것이 아니다. 



   이상으로 대략 之의 쓰임새를 살펴보았다. 之는 한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며, 또한 한문을 가장 한문답게 만들어주는 독특한 글자이다. 단순히 之를 “목적어․대명사”라는 명칭으로 불러서는 之의 온전한 쓰임새를 제대로 알 수 없으며, 또한 之의 쓰임새에 대해서 오해는 물론 자칫 오역할 가능성도 많다는 점. 즉, 之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라기 보다는 그 기능이 더 중요한 글자이며, 그 미묘한 기능을 알지 못하고는 한문의 참맛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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