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6. 17:40ㆍ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고려시대 분재 및 원예생활의 복원 3-2-3. 원대(元代)의 모란 분재와 조선 분재사고려시대
고려시대 분재 및 원예생활의 복원
-고려인들의 분재미의식
3-2-3. 원대(元代)의 모란 분재와 조선조의 화초 이수종합식
다음은 원대(元代)의 모란 분재이다. 화분의 형태는 다르나, 수형은 앞에서 본 청자 기물의 문양과 거의 유사하다. 고려조에도 최소한 이와 같은 모란 분재가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 3-6 원대 모란 분재 중국 하남 무척현 조전묘 벽돌 부조>
이와 같은 모란 분재가 고려조에 존재했으리라 추정하는 까닭은 앞에서 살핀 모란 꽃꽂이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고 화분의 형태 때문이기도 하다.
흥미 있는 것은 위 원대 모란 분재의 화분 형태와 유사한 화분 형태가 18세기 조선조 청화백자의 문양으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3-7 백자청화화접문양이호 북한 출토지 미상 18세기>
수종은 하나는 국화이고 하나는 원추리로 추정된다.
국화의 뿌리부가 드러나고 있다-사군자화로 국화를 그릴 때는 뿌리가 얽힌 모습을 그리는 것이 기본이라는 사실과 관련된 완상방식일 것이다-는 사실과 화병은 괴석을 화대로 쓰지 않는다는 사실로 판단할 때 이는 국화와 원추리를 꽃꽂이한 병화(甁花)가 아니라, 화초분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조
담백과 운치라는 점에서는 조선조 유가(儒家)의 분위기를 가지면서도 나비와 잠지리를 벗하는 화사함은 고려조의 미감(美感)에 맥이 통한다. 이는 18세기가 도학적 관념을 벗어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물의 세부에 대한 관찰에 새롭게 눈을 뜨기 시작한 새로운 시대였다는 사실과 관계 있을 것이다.
흥미 있는 것은 화분의 형태이다. 병의 입이 어깨보다 낮은 형태로 앞에 제사한 원대(元代)의 모란화분재의 화분 형태와 유사하다. 오늘날 화분 형태로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단순히 화기(花器)의 디자인상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의 용어로 뿌리뻗음새 부분과 줄기솟음새 부분을 중요한 감상 영역으로 삼고자 하는 경우 선택한 화분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원대(元代) 사람들과 18세기 조선인들은 주안점을 두고 감상(感傷)하고자 하는 부위에 따라 화분의 형태를 달리 만들어 썼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원나라 사람들과 18세기 조선 사람들만 그러했을까.
위 <백자청화화접문양이호> 속의 화분 형태는 18세기에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최소 400년의 시간적 거리 속에 들며 나며 사용되다 그와 같이 자리잡은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조에 이와 같은 화분 형태가 있었을 것이고, 거기에 모란을 심었으리라 추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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