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분재 및 원예생활의 복원 3-2-1. 고려조 이수종 합식의 존재 가능성

2016. 4. 25. 20:58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고려시대 분재 및 원예생활의 복원 3-2-1. 고려조 이수종 합식의 존재 가능 | 분재사고려시대

심천(心泉) 2011.04.2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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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얼비치는 아름다움-간발(間發)과 상영(相映)의 미의식

 

3-2-1. 고려조 이수종 합식의 존재 가능성

<3-1>의 분재는, 식재(植栽) 방식으로는 오늘날의 분재용어로 <이수종(異樹種) 합식(合植)>이며, 그림의 양식으로는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의 성격을 갖는데, 고려인들이 원예와 분재에서 추구했던 아름다움과 감상 방식은 이러한 방식에 매우 가까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조의 문학작품 <한림별곡>의 제 5장과 고려조 왕건릉 벽화와 밀양 박익묘의 벽화는 고려조에 이수종합식에 의한 분재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매우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오히려 고려가 송나라보다 이수종 합식을 먼저 시작했거나 훨씬 많이 행하고 즐겼을 가능성까지도 있다.

이수종합식에 관련한 ,(), 원대(元代)의 그림이나 기록을 찾기 어렵다면, 고려조의 이수종 합식의 미의식-곧 간발(間發)과 상영(相映)의 미의식은 당시 고려 특유의 미의식으로서의 개별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분경문화사; 이수화(李樹貨) . 중국임업출판사 간>에는 이수종합식에 대한 송(), 원대(元代)의 그림이나 기록이 없다. 이는 중국분재사에서도 이수종합식과 관련하여 존재하는 자료가 그만큼 희귀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림이나 기록으로 전하는 자료가 희귀하다는 것이 자료상의 공백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실제로 이수종합식의 부재(不在)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상세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나 필자의 추단으로는 후자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을것으로 보인다.

 

3-1 <세조여경(歲朝麗景)>의 분재는 상당히 난숙(爛熟)한 상태에 이른 것이어서 이미 그 이전에 이러한 <이수종 합식>이 시도되어 왔을 것으로 보이며, 또 수형의 기원과 형태 자체가 꽃꽂이와 정원의 아름다움을 축소해 가지는- 정원수의 식재 방식에 가까운 것이어서 이미 청대(淸代) 이전에 시도되었을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청대(淸代) 이전의 자료로는 명대(明代) 진홍수(陳洪綬) <송죽매석분경도(松竹梅石盆景圖)>가 있어 명대(明代)의 이수종합식의 존재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일반 수종이 아닌 사군자를 식재 수종으로 삼은 것이다.

그 외 이수종합식과 관련한 그림이나 문헌 기록은 보이지 않고, , 원대에 파초, 송백류, 대나무류에서 수총식(樹叢式)-일본분재용어로 주립(株立)- 분재가 존재했음을 밝히고 있다.

 

 

<3-2 명대(明代) 진홍수(陳洪綬) <송죽매석분경도(松竹梅石盆景圖)>

 

 

<3-2> <송죽매석분경도(松竹梅石盆景圖)>는 적당한 높이의 둥근 화분에 괴석과 소나무와 대를 섞어 심어, 산 속의 절리(節理)된 바위 위에 송죽매(松竹梅)가 어우러진 경색(景色)을 잘 표출하고 있다. 높이감을 연출하는 방식이 감상자의 상상에 의존하게 하는 근대분재보다 사실적인데 훌륭하게 산중턱의 돌출부를 연상하게 하고 있다.

화분의 형태는 현전 고려청자화분보다 다소 낮은 편이지만 형태는 유사하다. 화분이 가진 형태상의 단순성을 괴석과 이수종 합식의 다양한 경색으로 넘어설 뿐만 아니라, 화분의 높이를  산의 높이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절리(節理) 지역의 경치를 표출하는 의도를 살리고자 화분도 빙렬(氷裂)이 두드러진 화분을 가려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괴석을 같이 감상하는 경우 넓은 평분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괴석이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경우 전까지의 높이가 높은 화분도 자주 쓰인다.

 

 

고려조에도 청대(淸代) 3-1 <세조여경(歲朝麗景)> 같은 이수종합식의 분재가 존재했을까?

 

현재 이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시각적 자료는 없다.

그러나 <자수분경사계도> 4번째 폭(가을폭), 소나무석부 분재에 난초가 곁들여진 초보적 이수종 합식이 보이고(이는 앞 장에서 인용한 자료 <2-2>의 오른쪽 그림 <송대(宋代) 국화를 수놓은 발. 대북고궁박물관소장>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다.), 그 외 고려의 불화 <백의관음도>에서 최소한 <총식형(叢植形) 대나무분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송죽매의 경우는 분재로서는 아니지만 왕건릉의 벽화와 밀양 박익묘 벽화에서 송죽매가 함께 그려져 있으며, 이미 고려조 문인들이 사군자를 그리고 있어, 고려조에서도 송죽매 합식의 가능성을 추정해 볼 여지는 충분하다.

(사군자는 충선왕 이후 고려인들의 의식 세계와 이미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사군자 및 사군자 분재의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미흡한 대로 다음 장에서 따로 살피기로 한다.)

 

고려조 이수종합식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고려조의 시가(詩歌) 작품 <한림별곡>이다. 고려가요 한림별곡 제 5장은 고려조의 분재 문화나 원예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는 지극히 중요한 자료이다.

한림별곡 5장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왕건릉 박익묘 벽화대한 검토를 거치면, 분재문화의 이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고려조 분재의 방식, 특징, 미의식을 살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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