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7. 17:02ㆍ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중국 분재의 독만권서(讀萬券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 일본 분재의 대관 분재예술관
중국 분재의 독만권서(讀萬券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 일본 분재의 대관(大觀)
1.중국 분재의 독만권서(讀萬券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
한목회 한봉수님이 번역한 <중국 분재의 창작과 감상>이란 글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분재 창작 수준을 제고하기 위하여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길을 걸어 갖은 봉우리를 찾아 다니며 초고를 작성하여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만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들이 응당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예술 수양, 정조를 제고하고, 심령을 넓히는 것을 말하고, 만리길을 걷는다는 것은 작가들이 응당 명산대천을 돌아 다니며 산천과 수목의 영기를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야만 기운이 살아 움직이고 더없이 훌륭한 분재 작품을 창작해낼 수 있는 것이다.
분재를 창작하기 위해 분재 작가에게는 어떠한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며 그에 바탕하여 분재작가는 어떠한 품격과 안목을 갖추어야 하는지 혹은 지향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는데 분재작가를 두고 언급하고 있어서 그것이 분재의 독자적 전통과 관련된 것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한국 정민 교수의 <산의 철학, 산의 미학>이란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좋은 글을 지으려면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즉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걸어 가슴 속에 호연한 기상을 품어야 한다. 그제서야 천지산하의 정기가 폐부에 스며들어 강산의 도움을 받게 되니 그 글에 그윽한 향기가 있고, 상쾌한 솔바람 소리가 울려나오게 된다. 가슴 속에 한폭의 구학(丘壑)을 품어야만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산을 보아야만 글도 지을 수 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걸어 갖은 봉우리를 찾아 다니며” 란 앞의 말은, 뒤의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의 번역이니, <중국 분재의 창작과 감상>에서의 언급은, ‘좋은 글’을 짓기 위한 요건으로 제시한 후자의 관점을 그대로 차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자료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독만권서(讀萬券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는 원래 분재에서 기원된 것이 아니라 동양문화권에서 문사(文士)들이 좋은 글을 짓기 위해 필요한 내면적 자질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2) 중국의 분재관은, 분재의 창작을 좋은 글을 쓰는 것과 동일한 관점과 차원에서 생각하고, 많은 산수 견문과 독서를 통한 심신 수양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시와 서예, 그림이 하나로 통한다는 시서화 일체에 더하여 시, 서, 화, 분재가 그 근원에서는 일체라는 관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분경 역사는 이 부분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분재의 기원과 발전은 산수화, 산수시, 산수원림과 밀접한 연계가 있다. 중국의 당조 전성 시기에 문화 예술은 전례 없이 번영하였고 산수화 명가들이 대량 배출되었다. 원림 예술은 산수화 및 당시의 영향하에 시와 그림을 원림을 적어넣는(진열하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시내에 있는 사람들은 산림의 유유함을 갈망하였다. 그리하여 관료 부호들은 자택 옆에 원림(정원)을 조성하였고 문인들은 분재를 창작하는 것으로 산림의 진실한 의미를 표출하였다” <호운화;중국분경예술 역사와 연혁>
3) 분재의 창작이 좋은 글을 짓기 위한 노력과 통한다는 것은, 분재가 생경(生景), 화경(畵景), 의경(意景)에서 마땅히 의경(意景)을 품는 경지에 이르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예술 수양, 정조를 제고하고, 심령을 넓히는 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바(의경) 의 바탕을 심화 확대하는 것이며, ‘산천과 수목의 영기를 체험하는’것은 천지산하의 정기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인 동시에 그대로 표출 대상 자체의 체험이며 창조 대상에 해당하는 것이니, 이는 분재가 응당 의경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4) 분재의 창작이 좋은 시서화의 창작과 그 맥이 같은 것이라면, 이는 동양 3국의 분재는 그 근원을 공유하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한중일의 분재가 분재미의식의 상이성이나 개성을 가진다 할지라도, 전통적 분재, 좋은 분재, 깊이를 가진 분재라면 삼국인이 모두 그 근원에서 아름다움과 덕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2. 일본 분재전 <대관전(大觀展)>이란 명칭의 의미
분재의 창작이 전통적으로 좋은 시서화의 창작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어서, 동양 3국의 분재가 그 근원에 잇어 공유하는 바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대관전(大觀展)>이란 일본 분재전의 명칭이다.
일본의 대표적 분재전으로는 일본분재협회 주최로 도쿄에서 매년 2월경 열리는 <국풍분재전(國風盆栽展)>, 매년 늦가을에 교토에서 열리는 <일본분재대관전(日本盆栽大觀展)>, 또 도쿄에서 열리는, 전문분재작가들이 기술과 작풍을 경쟁하는 <일본분재작풍전(日本盆栽作風展)>, 소품분재를 주로 하여 교토에서 열리는 <아풍전(雅風展)>, 아이치현에서 열리는, 추부 지방의 명수(名樹)를 모아 전시하는 <명풍분재전(名風盆栽展)> 등이 있다.
<국풍분재전>은 이름으로 그 전시가 제시하고자 하는 바의 의미와 기준, 자부심을 누구나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풍(國風)이란, 그 나라 특유의 풍습, 문화라고 하는 뜻으로, 분재를 고유의 문화, 예술로 인식하는 이름인 동시에, 그 수준과 수준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일본분재작풍전(日本盆栽作風展)>, <아풍전(雅風展)>, <명풍분재전(名風盆栽展)>도 그 특징을 내면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으나, 이 분재전의 이름들은 어느 정도 그 분재전의 성격과 추구하는 바를 표시하고 있다.
(일본 분재가 추구하는 분재관과 분재미의 특질을 이해하려면 위에서 말한 분재전에 대해 그 명칭의 관점에서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분재대관전(日本盆栽大觀展)>의 <대관전(大觀展)>이란 무슨 뜻인가?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로는 한, 중, 일이 모두 “①크고 넓게 전체를 내다봄. 또는 그런 관찰. ② 장관(壯觀)”의 뜻이다.
위의 사전적 의미와 같이, 오늘날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큰 경치, 대상을 크고 넓은 견지에서 바라봄’의 의미로 쓰이고 그런 정도의 이해에서 멈추고 있지만, 일본분재전 <대관전(大觀展)>의 이 명칭은 동양의 산수관(山水觀)에서 근원을 둔 것이다.
이른바 대관(大觀)의 안목이란 무엇인가? 인간 세상 잗단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만고상청(萬古常靑)의 불변을 닮아가는 것이다. 승지를 찾으려면 마음의 준비 뿐 아니라 여러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단 한 번 산에 올라 산을 안다할 수 있는가? 오래 머물러 바라보며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되는 물아일체의 호흡이 있어야 한다. 그때 산은 비로소 가슴을 열어 나를 전신으로 받아 들인다. 산을 안다는 것, 산과 만나 막역의 사귐을 맺는다는 것이 그리 쉬울까? 북송의 위대한 산수화가 곽희(郭熙)는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민 ; <산의 철학>)
옛사람들의 대관(大觀)이란 산의 외면적 크기를 말함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는 마음, 산으로 말미암아 변화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대관전의 분재를 올바로 본다는 것은, 분재의 크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분재의 크기로 미루어 커다란 풍경을 연상하여야 할 것이요, 나아가서 그 커다란 경관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의 변화를 이루어내야 하고 그 변화를 읽어내야 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관전(大觀展)>이란 이름은. 명칭에 있어 일본의 개별성과 자부심을 강조하는 <국풍(國風)>이란 이름과 달리, 동양삼국의 공통적 (산수)시서화의 본질에 이어져 있고, 또한 최소한 일군(一群)의 일본 분재인들은 이를 뚜렷이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명칭이 일본 전통 문화의 중심지인 쿄토(京都)에서 채택된 것이라는 사실도 더불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대관전(大觀展)>이란 명칭은 일본분재가 <국풍전>과 차별화하여 한편으로 시서화분재 일체의 전통적 분재관을 분재의 중요한 한 흐름으로 지니고자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출품작으로 명백히 차별화되어 나타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지만 분재전의 명칭이 갖는 의미와 다른 분재전과의 차별화 의도는 어느 정도 전시회에 반영되어 나타날 것이다. (일본분재의 특징과 미의식을 살피는 것은 일본의 각 분재전을 상세히 살펴야 가능하겠지만 대체로 볼 때),
<국풍전>이 형태의 완결성과 미려함을 특징으로 한다면, <대관전>은 (일본분재풍 안에서)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여 형태적 규범성이 해체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노수거목형이라도 일지의 위치가 높아 허리를 드러내 보이는 유형과, 송백과 잡목 양쪽에서 형태적 완결성보다는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여백과 운치를 구현하는 문인풍 유형이 많이 나타난다. 그 결과는 풍경의 연상과 감상의 여유로 이어진다.(국풍전도 이러한 특징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극히 적은 수에 한정되며, 그 경우도 완결성과 미려함이라는 국풍전의 특질을 지니고 있어야 출품을 허용하고 있다.)
소나무 대관전 24회 2005 소나무 대관전 24회 2005
첫 분재는 국풍전의 특징인 형태적 완결성이나 미려함을 벗어나 잇고, 둘째는 가다듬어지긴 했으나 가다듬기를 억제하고 자연풍을 살리고자 하고 있다. 국풍전과의 차이다. 형태적 완경성을 벗어나 있으면 감상의 여유-대관(大觀)의 마음가짐-가 생겨남을 느낄 수 있다.
산감 대관전 24회 205년 산감 대관전 24회 05년
대관전의 개성을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이다. 왼쪽 작품의 경우는 아마도 국풍전에는 출품될 수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에 견주어 같은해 국풍전에 출품된 작품 둘을 본다.
가문비 국풍79회 2005년 국풍79회 2005년
첫째는 같은 해(2005년) 열린 국풍전에서, 같은 수형(문인) 같은 수종(산감, 소나무)의 예를 들 수 없어 제시한 가문비 문인풍 수형이다. 국풍의 미려함을 담고 있다. 후자는 대관전의 문인풍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사례이나 이 또한 위에 든 (수종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산감의 경우와 다르다. 대관전 작품의 성근 가지가 빚어내는 여백과 풍정을 취하는 대신 가지를 어느 정도 밀집시켜 형태적 완결성을 부여하고 있다.
중국의 분재이론은 공산당 주도하에 지식인들을 투입함으로쎄 위에서 아래로 세워진 것이기에 중국의 모든 분재인들이 독만권서(讀萬券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를 알거나 실천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일본의 모든 분재인들이 대관전에 깃든 깊은 의미를 알고 구현하려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고 분재의 길을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나중에 큰 차이를 빚어내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동양의 산수관(山水觀)
그렇다면 동양의 옛사람들이 산수(山水)를 어떻게 바라보고 누렸는가, 혹은 산수와 관련하여 무엇을 소망하였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분재 창작의 토대가 될 것이며 매우 귀중한 간접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산수유기에서 추려본다. (이하 인용의 출처는 한양대 정민 교수 저 <산의 철학>이다)
1) 세속을 벗어남
옛길은 적막해라 솔 뿌리 얽혀/ 낮은 하늘 북두.견우 손뻗으면 닿겠네.
뜬 구름 흐르는 물, 절 찾은 나그네/붉은 잎 푸른 이끼, 스님은 문을 닫고.
가을 바람 싸늘히 지는 해 불어가자 /산 달이 떠오더니 잔나비 울음 우네.
기이쿠나. 흰 눈썹의 늙은 중이여 / 긴 세월 시끄러운 세상 꿈 꾼 일 없네.
古逕寂寞縈松根 天近斗牛聯可捫 浮雲流水客到寺 紅葉蒼苔僧閉門
秋風微凉吹落日 山月漸白啼淸猿 奇哉호眉一老衲 長年不夢人間喧
정지상(鄭知常)의 〈변산소래사(邊山蘇來寺)〉
속객의 발길 닿지 않는 곳 / 올라서니 생각이 해맑아 지네.
산 모습 가을이라 더욱 고웁고 / 강 물빛 밤인데도 외려 밝아라.
해오라비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 외론 돛만 홀로 가벼히 떠가네.
부끄럽다. 달팽이 뿔 위에서 / 功名을 찾아다닌 나의 반 평생.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김부식(金富軾)의 〈제송도감로사차혜원운(題松都甘露寺次惠遠韻)〉
고려조 당대 벼슬길에서 쟁쟁한 인물이자 대표적 문인으로 할약하던 정지상과 김부식이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의 세속을 벗어나길 원하는 심회를 노래하고 있다. 정지상은 묘청의 난과 관련하여 김부식에 의해 죽었는데 두 사람이 함께 세속의 초탈을 노래하고 있어 더욱 ‘현실의 각박스러움과 세속을 초탈한 삶의 대비’가 뚜렷이 부각된다.
2) 유유자적의 생활
물은 흘러도 마음은 바쁘잖코 / 구름 떠가니 생각조차 더뎌지네.
水流心不競 雲在意俱遲 <두보(杜甫)의 강정(江亭)〉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 외론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간다.
서로 보아 둘다 싫증나지 않는 것은 / 경정산 너 뿐이로구나.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이백의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
초록 나무 그늘 아래 꾀꼬리 울제 / 푸른 산 그림자 속 띠로 엮은 집.
이끼 낀 길 한가히 거니노라면 / 비갠 뒤 그윽한 향 풀꽃 위에 진동하네.
綠樹陰中黃鳥節 靑山影裏白茅家 閒來獨步蒼苔逕 雨後微香動草花
최기남(崔奇男)의 〈한중(閒中)〉
봄날이 무르익어 숲으로 들어가면 꼬불꼬불 숲속으로 산길이 통해 있고, 소나무 대나무 서로를 비추이고 들꽃은 향기 가득 산새들은 지저귄다. 이러할 때 거문고 안고 바위 위에 올라 앉아 두 세 곡 연주하면 이몸은 아득히 동중선(洞中仙) 화중인(畵中人)일세.
차 익어 향기 맑을 제 길손이 찾아오니 이 아니 기쁠소냐. 새 울고 꽃이 질 땐 아무도 없다 해도 마음 절로 유유하다. 진원(眞源)은 맛이 없고, 진수(眞水)는 향이 없네.
대나무 책상 창가에 놓고 부들자리 깔고 앉으니, 높은 뫼엔 구름 들고 그 아래론 맑은 시내. 울타리엔 국화 심고 집 뒤엘랑 원추리를. 언덕 가득 꽃이 피어 지나는 길을 막고, 버들은 대문 앞을 버티고 서있구나. 굽은 길엔 자옥한 안개 주막으로 이어지고, 맑은 강에 해가 지니 어촌에는 고깃배라. <상촌 신흠의 ‘야언(野言)’>
3) 인위(人爲)를 벗어난 망아(忘我)의 경지
마음이 지치고 몸이 피곤하면 낚시대를 던져 고기를 잡고, 옷자락을 부여 잡아 약초를 캐며, 도랑물을 터서 꽃에 물을 주고, 도끼를 잡고 대나무를 가르며, 더움을 씻고 손을 닦고, 높은 데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이리저리 거닐며 노닐면 오직 뜻에 맞으리라. 밝은 달이 떠올라 맑은 바람 불어 오면 가고 멈춤에 얽매임이 없게 되니, 이목과 폐장(肺腸)이 모두 내가 주인이 된다. 외롭고도 아득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다시 어떤 즐거움이 이것을 대신할 지 모르게 된다.
오래된 거문고 하나, 책 한 권을 주머니에 메고 술병을 들고 가고 싶은대로 간다. 마음에 느낌이 일어나면 문득 기쁘게 시를 읊조리고, 흥에 따라 술 마시며, 가고 머묾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지친 새가 둥지에 깃들자 흘러가던 구름은 골짜기를 감싼다. 석양이 산기슭에 걸리고 달이 띠집 위로 떠오르면 사방벽은 고요하고 창문은 환하다. 취해 돌아와서 자재로이 읊조리며, 희황(羲皇)의 거처에 누워 무하유(無何有)의 나라에 노니노라면, 마침내 내가 즐거운지 즐겁지 않은지조차 알지 못하게 된다. <허균의 한정록(閑情錄)>
4) 인자요산(仁者樂山)과 거인위사(巨人偉士)의 풍모
주자(朱子)는 공자의 말을 풀이하여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통하고 막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은 점이 있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은 점이 있는 까닭에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보면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대저 어진 자는 어째서 산을 좋아합니까?"
"산은 높으면서도 면면히 이어져 만민이 우러러 보는 바이다. 초목이 그 위에서 생장하고, 온갖 생물이 그 위에 서 있으며, 나는 새가 거기로 모여들고, 들짐승이 그곳에 깃들이며, 온갖 보배로운 것이 그곳에서 자라나고, 기이한 선비가 거기에 산다. 온갖 만물을 기르면서도 싫증내지 아니하고 사방에서 모두 취하여도 한정하지 않는다. 구름과 바람을 내어 천지 사이의 기운을 소통시켜 나라를 이룬다. 이것이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정약용은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에서 무등산의 의연한 모습을 마치 거인위사(巨人偉士)가 말없이 웃지도 않으면서 조정에 앉아 있어, 비록 움직이는 자취는 볼 수 없어도 그 공화(功化)가 사물에 널리 미치는 것과 같다고 하며, 벼락과 번개, 구름과 비의 변화가 항상 산 허리에서 일어나 자욱히 아래로 향해 내려가지만, 산 위는 그대로 푸른 하늘일 뿐이니 그 산의 높음을 알 수 있겠다고 하였다. 이어 "가운데 봉우리의 정상에 서면 날 듯이 세상을 가볍게 보고 홀로 가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고락은 마음에 둘 것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나 또한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며 산위에서 느끼는 호연한 기상을 술회한 바 있다.
<참고 1> 중국의 분재이론 성립
1979년 4월에는 국가도시건설총국에서 중국 분경 예술 연구과제를 하달하였으며 자금을 제공하여 상해, 광주, 소주, 양주, 성도 등 5개 도시에 분재 전문가를 초빙하여 분재의 정의, 역사, 분류, 유파특징, 창작이론에 대하여 총결과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중국 분재 예술의 체계적인 창작 이론을 성립하는데 견실한 기초를 닦아놓았다. 정확한 이론 지도 하에 분재 창작은 더욱 번영하고 명작들이 부단히 출현하였으며 또 많은 원림학과가 있는 대학과 직업 학교에서 계속 분경예술과를 설립하여 분재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참고 2> 와우각상쟁 [蝸牛角上爭]
원래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이란 뜻으로,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고도 한다. 《장자(莊子)》 <칙양편(則陽篇)>에 나오는 말이다.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위(魏)나라 혜왕(惠王)을 배신하자 혜왕은 제나라를 치려 하였다. 이때 대진인(戴晉人)이란 사람이 달팽이를 예로 들어 그 왼쪽 뿔은 촉씨(觸氏)의 나라이고 오른쪽 뿔은 만씨(蠻氏)의 나라인데 두 나라가 영토를 놓고 싸우다가 사람이 1만여 명이나 죽고, 달아나는 적을 보름 동안이나 추격하다 돌아왔다고 비유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광대한 우주와 넓은 세계 속의 위나라나 제나라는 달팽이 뿔보다도 작은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 말이다. 또, 이 말은 백거이(白居易)의 시구 “蝸牛角上爭何事(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을 다투리요) 石火光中寄此身(석화 빛 속으로 이 몸을 기대노라)”에도 언급되어 있다.
<참고 3>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응제왕(應帝王)·지북유(知北遊) 등 여러 곳에 나오는 말이다.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말로, 이른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행해질 때 도래하는, 생사가 없고 시비가 없으며 지식도, 마음도, 하는 것도 없는 참으로 행복한 곳 또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소요유와 응제왕편에서 무하유지향은 광막한 들(廣莫之野), 끝없이 넓은 들(壙垠之野)로 표현되어 있다. 누가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장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무하유지향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였다. “물러가라. 너는 야비한 인간이로구나. 이 얼마나 불쾌한 질문이냐. 난 지금 조물주와 벗이 되려 하고 있다. 싫증이 나면 다시 아득히 높이 나는 새를 타고 이 세계 밖으로 나아가 아무것도 없는 곳(無何有之鄕)에서 노닐며 끝없이 넓은 들판에서 살려 한다. 그런데 너는 어찌 천하를 다스리는 일 따위로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가.”
지북유편에서는 무하유지향에 들었을 때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제 시험 삼아 당신과 함께 유위(有爲)가 없는 무하유의 경지에서 소요하고 너와 나의 대립을 떠나 만물과 하나가 되는 도에 대해 말해 보겠네. 그리고 시험삼아 당신과 함께 무위의 입장에서 담담하고 조용하게, 고요하고 깨끗하게 만물과 조화를 이룬 채 유유자적해 보겠소. 그렇게 하면 우리 마음은 다른 사물로 가지 않을 것이므로 마음이 가서 닿을 바도 알지 못할 것이고, 갔다가 와도 사물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므로 그 멈출 곳을 알지 못할 것이오. 그래서 광대무변한 세계에 풀어 놓으면 아무리 큰 지혜로 엿보아도 그 끝이 다함을 알지 못할 것이오."
서양에서 말하는 유토피아도 결국은 어느 곳에도 없는 땅이라는 말이다. 장자가 말하는 무하유지향도 언어상으로는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이지만, 우리 의식 저 건너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장 높은 안식처이다.
http://blog.daum.net/gardenofmind/1342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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