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답사 산행ㅣ변산 월명암 & 내소사] 몽환적 산 속 전설의 산사 찾는 봄날의 산객들

2016. 5. 17. 04:56산 이야기



      

[산사 답사 산행ㅣ변산 월명암 & 내소사] 몽환적 산 속 전설의 산사 찾는 봄날의 산객들

입력 : 2015.03.16 11:11 [545호] 2015.03


남여치~월명암~내변산~와룡소~관음봉~내소사 산행

   명산에는 명찰이 있기 마련. 국내 유일의 반도형국립공원인 변산반도는 고려 때 사암(寺庵)이 80개나 넘었을 만큼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지역으로 전한다. 이제 대다수 사암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산사들은 고찰, 명찰로서의 명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산 남쪽 내소사(來蘇寺)는 돌병풍에 둘러싸인 호젓한 백제 고찰로 명성이 높고, 산 동쪽 개암사(開巖寺)는 백제 유민들이 나당연합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쌍선암 기슭 월명암(月明庵)은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와 더불어 세계 3대 거사 중 한 사람인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신라 신문왕11(691년)에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내변산 실상사(實相寺)는 6·25 전쟁 때 전소된 이후 새로 지어진 미륵전과 삼성각이 널찍한 터를 쓸쓸히 지키고 있지만, 신라 때 초의(草衣)선사가 짓고 조선시대 효령대군이 중창한 사찰로 고려 불상과 대장경 등 소중한 불교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눈 덮인 산사는 적막하다.
눈 덮인 산사는 적막하다. 모든 게 침묵 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곧 봄을 맞으면 산사는 신록과 더불어 싱그러움과 생명력이 넘칠 것이다. 월명암.


쌍선봉에서 산중호수 부안호를 바라본다.
쌍선봉에서 산중호수 부안호를 바라본다. 산수화 같은 변산 바깥으로 서해바다도 눈에 들어온다.




   월명암 가는 날은 봄날이었다. 산 밖 바닷가 외변산의 채석강과 적벽강 일원은 따스한 햇살에 훈풍이 더해져 더할 나위 없이 포근했다. 남여치를 넘어 편백나무 향에 취해 산 안으로 들어서는 사이 벌레 허물 벗듯 한 꺼풀 한 꺼풀 벗어젖혔다. 방풍재킷과 패딩재킷은 배낭 깊숙이 들어가고, 티셔츠만  입은 채 산을 올라도 추운 줄 몰랐다. 봄이 오고 있었다.

산 밖에서는 밋밋한 숲 산. 그러나 봄소식 담은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을 가로지르고 산릉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암괴봉이 신비롭게 솟아 있고 기암절벽이 곳곳 늘어진 변산의 진면목이 눈과 마음을 꼭 잡아 끌었다. 부안호는 산중호수처럼 아름답고, 암릉과 암봉은 꿈틀꿈틀 도원경을 그리고-. 그 꿈결 같은 풍광에 넋을 잃고 말았다.



월명암 대웅전과 범종각 외
1 월명암 대웅전과 범종각 / 2 연기가 피어오르는 요사채 /
 3 부설거사의 행적을 소설형식으로 기록한 <부설전> 안내석 / 4 산객을 배웅하는 삽살개 두 마리
삽살개가 지키는 선방
삽살개가 지키는 선방
소원을 담은 기왓장들
6 소원을 담은 기왓장들 / 7 산사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법당들



전설 같은 창건설화와 월명무애의 비경 간직한 월명암

   월명암을 700m쯤 앞두고 샘터를 지나자 냉기가 엄습했다. 다시 겨울. 마음 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경고인가보다. 이제 산은 두 가지 얼굴과 두 가지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푸르른 숲은 봄을 향해 치닫고, 숲 아래 사면은 하얀 눈 덮인 냉랭한 한겨울이다.

능선에 올라서자 쌍선봉 갈림목. 비지정탐방로임을 알리는 표시가 돼 있지만 조망 욕심에 쌍선봉(雙仙峰·459.3m) 정상으로 향한다. 역시 기대했던 조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자 산해절승의 절경이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졌다. 내일 오를 관음봉(424m)과 세봉(402.5m)은 물론 옥녀봉(432.7)과 변산 최고봉 의상봉(508.6m)에 이르기까지 변산반도의 명봉들이 불쑥불쑥 솟구친 채 산수화를 장식하고, 그 뒤로 곰소만과 선운산이 또 다른 풍경화로 다가왔다.

활처럼 휜 능선을 지나 북쪽 봉우리에 오르자 이제 부암댐 호수 물이 변산의 기암괴봉과 산릉을 몽땅 빨아들일 듯 강렬한 코발트빛으로 빛나고 있다.

“구시골은 참으로 멋진 골짜기였어요. 민가도 있었고….”

산 아래 곰소 토박이 진재창씨는 1996년 완공된 부안호를 바라보며 댐이 들어서기 전 아름답던 골짜기와 마을을 설명해 주었다. 그중 변산반도국립공원 최고봉 의상봉에서 물줄기가 발원하는 구시골은 풍광이 빼어났다며 아쉬워했다.


눈앞에 펼쳐진 신비감 넘치는 풍광이 가슴을 뛰게 했다면,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월명암은 마을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하얀 눈 덮인 산릉의 암자는 더욱 정갈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산객의 마음을 빼앗았다.

발걸음이 바빠졌다. 산릉으로 이어지던 산길은 어느 샌가 사면길로 접어들더니 월명암이 머리 위쪽으로 보인다. 통나무 토막을 지게에 싣던 스님은 평일 오후 늦은 시각에 산사에 나타난 낯선 이들이 반가운지 합장하며 맞아 주고, 법당 앞마당에 올라서자 커다란 삽살개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혀로 손등을 핥으면서 반겨 준다.



내변산의 상징인 직소폭포.
내변산의 상징인 직소폭포.


   “10년 새 엄청 커졌어요. 옛날엔 법당과 요사채 두 채만 있었는데. 오늘 보니까 열 채는 되겠는데요.”

월명암은 십수 년 전 기억 속의 암자는 아니었다. 옛날 법당 아래 웅장한 대웅전이 자리잡고, 주변에 크고작은 당우와 요사채가 들어서 있었다.

“부설거사라고 들어보셨지요?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와 더불어 세계 삼대거사 중 한 사람이래요. 월명암은 부설거사가 692년 창건했다는 암자예요. 부인 묘화, 아들 등운, 딸 월명과 함께 모두 불도를 깨쳐 일가족이 모두 해탈했다 하고요.”

월명암 창건설화에 의하면, 부설거사는 두 명의 도반과 함께 불도를 닦기 위해 오대산으로 향하다 당시 백제 땅인 만경평야의 한 민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그 집에는 묘화라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스무 살이 되도록 말 못 하는 벙어리였다. 헌데 부설을 보는 순간 말문이 터지더니 “이는 3생에 걸친 인연이니 부부의 연을 맺어야 한다”며 그를 붙잡았다. 부설이 이를 무시하며 민가를 떠나려 하자 묘화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구제하라는 부처님 말씀)하기 전에 나부터 구하라. 만일 그대로 문지방을 넘는다면 자살하고 말 것”고 애원했다. 

결국 부설은 묘화의 청을 뿌리지치 못해 부부의 인연을 맺은 이후 아들과 딸을 낳고 살았으나, 불도를 닦는 일만큼은 끊임없이 정진했고, 그 모습에 아내와 자식들 역시 불심이 깊어지고 결국은 승려의 길로 들어섰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다.


낙조대에서 바라본 변산의 산릉과 격포 앞바다.
낙조대에서 바라본 변산의 산릉과 격포 앞바다.
관음봉 정상에 오르자 환호하는 박민희씨  외
2 관음봉 정상에 오르자 환호하는 박민희씨 /
3 원시적이면서도 잔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회양골 /
5 회룡골 험로를 오르는 취재팀


   “부설거사가 아내를 위해 낙조대 아래 묘적암(妙寂庵)을 짓고, 아들 등운(登雲)을 위해 월명암 뒤에 등운사를 세우고, 딸 월명을 위해 월명암을 지어 일가족 네 사람이 각기 다른 암자에서 수도에 힘써 불도를 깨우쳐 널리 펴니 이때부터 변산에서 불교가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얘기가 아니더라도 월명암은 조망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산사다. 눈앞에 펼쳐진 변산반도의 산봉들은 하나하나 기암이요 괴봉이며, 깊은 골은 뭔가 숨어 있고 감춰져 있을 것처럼 은밀하게 느껴졌다.

이런 산세에 안개가 얼마나 짙게 끼고 아지랑이가 얼마나 많이 피어올랐으면 안개 무(霧)자와 아지랑이 애(靄)자를 써서 월명무애(月明霧靄)란 말이 생겨났을까. 아침나절 구름안개가 낄 적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눈앞에 펼쳐진 풍광이 몹시 신비로운 선경이기에 몽환적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한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하얀 눈이 소복이 덮인 산사는 산객들의 발걸음을 한동안 묶어 놓았다. 바람소리에 풍경소리가 더해지자 몸도 마음도 시간도 멈췄다. 이젠 발길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절 바깥쪽으로 틀자 삽살개들이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길손의 마음을 흔들어댄다.

월명암을 벗어나 눈 덮인 길 따라 낙조대로 올라선다. 육산 위에 바윗덩이 하나 얹혀 있는 낙조대에 올라서자 격포는 발아래요, 바다의 작은 섬들은 돛단배처럼 둥둥 떠다니며 시심을 돋운다. 고사포해변 앞바다의 하섬, 대죽도, 소죽도, 대형제도, 소형제도가 부연 이내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월명암에서 바라보이는 변산의 산봉과 산릉들.
월명암에서 바라보이는 변산의 산봉과 산릉들.
월명암은 전국서 몇 안 되는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로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함께 호남지방의 3대 영지(靈地)로 꼽힌다.


   오후 3시 50분, 해가 바다 깊이 잠기려면 아직 두어 시간이나 남았지만 숲 아래 눈밭에선 냉기가 올라오고 산은 급속도로 추워진다. 하산길로 접어든지 얼마 되지 않아 숲이 걷히고 바위지대가 드러나면서 산중호수인 직소보는 강렬한 코발트빛의 아름다움을 맘껏 자아내고 그 뒤로 관음봉과 세봉이 철옹성처럼 눈앞에 솟구친다. 선운산도 바라보이고 그 사이 곰소만은 또 다른 산중호수처럼 아름답게 눈에 들어온다.

봉래곡으로 내려서는 사이 바람이 차가워지고 산도 냉랭해진다. 그런데도 산객들은 골 바닥으로 내려서자 산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산 안으로 들어선다. 직소폭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 사이 냉기와 함께 산은 땅거미가 골바닥까지 스며들기 시작하고 하늘엔 둥근달이 떠올랐다.


변산 산 안의 최고 비경지 와룡소

“힘들 좋아요, 어제 직소폭포까지 다녀온 걸 보면.”

“매번 대간이다, 정맥이다 하며 좀 세게 다녔어요! 어제만 같아 봐요. 한 시간쯤 올랐다가 한 시간쯤 내려와 폭포 탐승으로 이어지는 산행 말이에요. 오늘도 어제랑 비슷한 거죠? 여성 해설사도 동행하니까 살살해야 해요?”

관음봉 정상에서 기념촬영한 취재팀.
관음봉 정상에서 기념촬영한 취재팀.


   작은 산, 짧은 산행 코스지만 산사 답사 산행은 좀더 느긋하게 하고 싶었다. 해서 첫째날 오후 남녀치~월명암~봉래구곡~내변산 코스를 답사하고, 둘째날 다시 내변산에서 출발해 회양골 와룡소 일원을 둘러보고 세봉과 관음봉을 거쳐 변산을 대표하는 산사 내소사로 내려서기로 했다.

“어제 산행한 남녀치는 옛날 부안현감처럼 높은 분들이 남여 타고 직소폭포 구경하러 오다가 쉬던 고개였대요. 남여 아시죠? 지붕 없는 가마. 어라, 하늘에서 눈이 오네요. 그런데 아직 변산바람꽃이 피지 않았네. 2월 10일 전후면 변산바람꽃, 노루귀, 복수초가 앞다퉈가며 꽃을 피워요. 정말 예뻐요.”

김지현씨(변산반도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와 김형관씨(변산반도국립공원 재난구조대원)의 동행으로 꽃, 전설, 사찰 얘기가 더해지면서 내용이 훨씬 탄탄해졌다. 김지현씨는 변산바람꽃은 변산에서 처음 발견된 바람꽃이지만 한라산, 지리산, 마이산에도 자라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저기 보이는 봉우리 이름이 천황봉이에요. 변산에는 옥황상제와 얽힌 지명이 많아요. 옥황상제 딸을 이름 삼은 봉이 옥녀봉이에요.”

오늘 산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회양골 비경지 와룡소(臥龍沼). 이름 그대로 용이 누워 있는 형태를 닮았다는 골짜기 명소다. 산길은 골짜기 대신 산등성이를 타고 이어졌다. 회양골은 부안호 남쪽으로 흘러드는데 골 막바지 일원에 미선나무를 비롯한 보호수종들이 자라 2030년까지 특별보호구로 지정, 입산을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봄 길을 걷는 듯 따스하다가 산등성이를 넘어서자 다시 겨울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그러나 물줄기를 끼고 내려서는 사이 골짜기는 분지를 이룬 듯 넓어져 마음이 포근해졌다.

“내변산에 마을이 다섯 곳 있었대요. 변산댐이 생기면서 없어지기도 했지만 그 이전 여순사건 때 남부군들이 이곳에 들어서자 토벌대가 마을을 몽땅 소거시켰대요. 옛날 회양골 주민들은 숯을 구워 ‘청림 중장’이나 굴포장에 내다 팔았대요. 변산에 절이 80개나 있었는데 스님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선 장이 중장이었어요.”


널찍한 분지형 골짜기인 가마소삼거리(내변산주차장 2.1km, 와룡소삼거리 0.5km, 세봉삼거리 1.9km) 일원은 대숲이 우거져 있고, 널찍한 묵밭도 곳곳에 눈에 띈다. 민가 흔적이다. 김지현씨는 “가을이면 꽃무릅과 상사화 꽃이 만발하는데 많이 없어졌다”며 아쉬워했다.

“도적들이 굴바위에서 불을 피우면 바닷가 해창 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대요. 허균이 홍길동전을 집필한 곳이고도 하고요. 신비롭기도 하고, 도적들 문인들이 숨어들어 살기에도 좋을 만큼 깊고 깊은 곳이란 얘기겠지요.”



구름안개에 선경을 자아내는 산릉을 따라 관음봉으로 향하고 있다.
구름안개에 선경을 자아내는 산릉을 따라 관음봉으로 향하고 있다.


   와룡소 가는 길은 계곡이라기보다는 산 안의 내를 거슬러 오르는 분위기다. 널찍한 소는 살얼음이나 낙엽이 두텁게 덮여 있기도 하지만 녹아내린 곳은 투명거울 보듯 맑디맑다. 마음도 편안해진다. 이런 산세에 사람이 살지 않을 리 없다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숨이 콱 막힐 만큼 멋진 절경이 펼쳐진다. 널찍하고 맑은 옥수가 담긴 소 위쪽에는 돌기둥이 우뚝 서서 골을 막고 있다. 소 왼쪽 바위 굴 안으로 들어서자 고드름은 옥황상제의 침소 앞에 늘어진 수렴처럼 반짝이고, 굴을 빠져나가 기둥바위를 한 발 한 발 올라서자 거울 같은 물빛의 와룡소가 발아래다.

위쪽으론 또 어떤 풍광이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 바위 턱을 올라서자 거무튀튀하고도 붉은빛 도는 바위벼랑이 골 양옆에 곧추섰다. 그 사이로 옥수가 흘러내린다. 예가 분명 도원경, 유토피아가 아니겠는가.


내소사 대웅보전  외
2 내소사 대웅보전 / 3 내소사 천왕문 / 4 소박한 분위기의 내소사 당우들 /
 5 회양골로 내려서는 일행.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다시 가마소삼거리로 내려선 다음 세봉으로 향한다. 식수를 마련하고 물줄기를 건너자마자 능선 오르막. 눈발이 흩날리고 바람이 불어대면서 다시 겨울이 찾아오는가 싶은데 산객들의 표정은 즐겁기만 하다. 눈발과 옅은 안개는 시야를 흐릿하게 하지만 반면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 산을 한층 신비롭게 변신시켜 준다.

“와~ 대단하시네요. 이게 전부 젓갈이에요?”

세봉삼거리에 올라서기에 앞서 바람이 잘 불지 않는 언덕마루에서 점심상을 폈다. 동행한 곰소댁 박민희씨가 배낭 안에서 꺼내놓은 플라스틱 용기에는 저마다 다른 젓갈이 담겨 있다. 명란과 창난젓에 오징어, 황석어젓 등 다양한 젓갈에 진재창씨 아내가 준비해 준 기름기 잘잘 흐르는 밥. 여기에 줄포막걸리가 더해지자 모두 싱글벙글. “젓갈은 밥도둑”이라며 밥통이 바닥날 때까지 숟가락 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를 든든히 불린 뒤 다시 세봉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바람도 한층 강해졌다. 오늘이 입춘(立春)인데 대길(大吉)이 아니라 대설(大雪)을 맞는가보다. 

세봉삼거리(↓가마소삼거리 1.9km, ←내소사 일주문 2km, →관음봉삼거리 1.7km·내소사 3km)에 도착하자 김지현씨는 변산이 불교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원불교이 성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변산은 불교 성지지만 원불교 성지이기도 해요.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이 젓갈과 소금장사하다가 내소사 청련암 스님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만든 종교가 원불교래요. 어쩌면 우리가 걸은 길이 100년 전 소태산이 걸었던 길일지도 몰라요.”

김지현씨 말에 원광대 출신으로 히말라야 고봉을 여럿 등정한 진재창씨는 “원불교는 전북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며 “가죽신에 두루마기 입고 이렇게 험한 길을 다녔다는 것은 옛 사람들이 그만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강했고,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전문 산악인이었을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이르기 어렵다’는 산 안의 산사

   세봉을 오르는 사이 다시 눈이 흩날리고 안개가 짙어지면서 산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다. 이 풍광을 보여 주기 위해 애를 먹인 것일까, 세봉에 올라서자 산 안의 안개는 하늘 높이 올라가고 변산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소사 쪽도 구름안개가 산릉을 넘으려 부단히 넘실대지만 산릉에 닿기 직전 기세가 꺾이기를 반복한다.

험로로 이어지는 산릉 따라 관음봉에 올라서자 내소사는 보일 듯 말 듯하며 갈증을 일으킨다. 정 보고 싶으면 어서 내려오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산 길을 서두른다.

허릿길 따르는 사이 섬뜩섬뜩하다가도 재백이고개~직소폭포 갈림목을 지나자 유순한 산길이 마음 편안케 하고 바위 능선에 다다르자 내소사는 반듯한 모습으로 산객을 맞아 준다. 내소사를 상징하는 전나무숲길, 반듯한 진입로와 반듯하게 배치된 법당과 요사채들. 산객은 산사의 외모에 반해 한 마리 새가 된 듯 내소사 앞뜰에 털썩 내려앉는다.



변산 개념도 

           

 일행은 산을 내려서자마자 내소사 경내로 흐르는 물줄기로 내려가 등산화부터 닦는다. 겨울을 털어내고 봄을 맞는 분위기였다.

“내소사가 백제 무왕 34년(633년) 혜구두타(惠丘頭陀)라는 스님에 의해 창건한 사실은 알고 계시죠? 보물급 문화재도 여럿이에요. 기암이 돌병풍처럼 빙 둘러싸고, 전나무숲이 들머리를 장식하고 있다는 등, 아름다운 산사로서의 여러 면을 지니고 있지만 탐방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유를 아시나요?”

김지현 해설사는 내소사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새로 들어선 당우가 여럿이지만 대웅보전과 설선당을 중심으로 뒤편에 흩어져 있어 언제 와도 그리 변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귀띔해 준다. 게다가 일주문부터 대웅보전에 이르기까지 거리가 짧고 거의 평지를 이루고 있다는 점 또한 노약자도 쉽게 탐승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천왕문과 봉래루 사이 당산나무에서는 해마다 당산제를 지내요. 전국 사찰 가운데 스님들이 법복 갖추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해 주는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내소사가 유일할 거예요.”

내소사는 그간 꽤 여러 번 찾았지만 그다지 변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김지현씨의 말을 듣는 사이 대웅보전, 봉래루, 설선당 그리고 해우소 외의 당우와 요사채들은 최근 십수 년 사이 새롭게 들어섰다는 사실과, 들머리를 장식한 전나무숲길도 주변의 잡목이 많이 제거되면서 허허로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왕문을 들어서자 1,000년 된 느티나무 당산나무가 고찰 분위기를 돋워 주고, 높낮이가 다른 24개 주춧돌에 기둥이 얹힌 봉래루를 빠져나가자 대웅보전이 민낯 그대로 모습으로 반겨 준다. 설선당은 툇마루 아래 신발 여러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건만 스님들이 강론을 펼치는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대웅보전 왼쪽 2012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사고를 당한 고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의 영정이 반듯이 놓여 있다. 내소사는 이제 전설로 남은 세 산악인의 혼령을 품어 주고 있었다.

전나무숲길로 들어서기 직전 내소사를 다시 바라본다. 관음봉을 중심으로 기암괴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지만 역시 일주문 현판에 적힌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는 범어의 뜻대로 ‘능가산(楞伽山)’이란 이름이 더 어울린다 싶어졌다. 오후 늦은 시각임에도 그런 ‘이르기 어렵다’는 산 안의 산사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산행 길잡이

3~4월 산불예방기간엔 내변산~와룡소 코스 통제
남여치~월명암~직소폭~관음봉~내소사 길 따라야

남여치~월명암~내변산 코스는 특별히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빤한 코스다. 단지 대중교통편은 오전·오후 한 차례씩만 다녀 조금 불편하다. 2시간30분 정도 걸리며, 직소폭포까지 탐승한다면 1시간 정도 더 잡아야 한다.

변산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변산~와룡소~세봉~관음봉~내소사 코스는 4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아쉽게도 봄철 건조기(3~4월)에는 산불예방을 위해 통제된다.
따라서 봄철인 3~4월에는 남여치를 출발해 월명암~봉래구곡~직소폭~재백이고개~관음봉삼거리~관음봉~관음봉삼거리~내소사 코스로 진행해야 한다. 산행은 4시간 정도면 가능하지만 산사를 꼼꼼히 둘러보면서 조망과 봄 분위기를 만끽하려면 한두 시간 더 잡아야 한다. 승용차로 남여치에 접근할 경우 오후 2시 이전 내소사 주차장까지 내려선다면 마실1 버스를 타면 남여치로 돌아갈 수 있다.

내소사는 문화재관람료 어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을 받는다.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소장 이재원)는 국립공원의 자연생태계 및 자연자원 보호를 위해 봄철산불조심기간(3월 2일~4월 30일)을 설정하고 산불발생 위험이 높은 일부 탐방로 출입을 통제한다.

출입이 통제되는 탐방로는 사자동~가마소삼거리~우동리, 바드재~용각봉 삼거리, 세봉삼거리~가마소삼거리, 세봉~인장암, 만석동~감불, 어수대~쇠뿔바위~중계교 인근 등 6개 구간 연장 24.2km로 이 구간을 제외한 정규탐방로는 평상시와 같이 출입이 가능하다. 문의(지역번호 063) 공원사무소 582-7808, 내변산분소 584-7807, 내소분소 583-2443. 내변산 사자동편의점 581-3355.

교통 서울→부안 서울 동서울터미널 07:40, 09:50, 12:30, 14:10, 17:40, 19:00 출발. 3시간 30분, 1만4,300원. www.busterminal.or.kr

정읍→부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7:00, 07:50, 09:30, 10:50, 11:40, 12:30, 14:45, 16:30, 17:30, 18:20, 20:10 출발. 4,000원. www.busterminal.or.kr
전주→부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7:00~20:00 약 30분 간격 운행. 5,100원.
대구→부안 서부터미널에서 07:50, 13:10, 17:50 출발. 4시간, 1만7,900원. www.busterminal.or.kr     * 부안 시외버스터미널 콜센터 1666-2429
부안→내변산(사자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6:30, 08:20, 10:20, 13:20, 15:40, 17:45, 19:40 출발. 내변산에서 변산행은 07:15, 09:10, 11:40, 14:20, 16:30, 18:25, 20:15 출발. 30분, 3,300원. 사랑버스 581-1803, 스마일버스 582-6363
변산면소재지에서 약 3km 거리인 남여치는 부안에서 08:10(마실2), 내소사에서 14:00(마실1) 출발.
부안→내소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19회(06:00~20:00) 운행. 3,300원.

숙식(지역번호 063) 내소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다. 토·일요일 1박2일로 실시하는 트레킹 템플스테이에서는 내소사~실상사~직소폭포~재백이고개~전나무숲~내소사로 이어지는 트레킹도 한다. 성인 6만 원, 고교생 이하 4만 원. 연중 실시하는 휴식형 템플스테이는 1박2일(4만 원/3만 원), 2박3일(8만 원/6만 원), 3박4일(12만 원/9만 원). 가족형은 1박2일 13만 원, 2박3일 26만 원, 3박4일 39만 원(6명 이하 기준, 1인 추가 시 2만 원 추가)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문의 템플스테이 사무국 583-3035 www.naesosa.org

내변산 일원에는 식당이나 숙박업소가 눈에 띄지 않는다. 내소사 들머리의 산, 들, 바다 산촌체험마을은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숙박업소다(581-2124, 010-7506-6506 장정종). 이밖에 정든민박(582-7574), 여정펜션(583-5767, 010-4252-2289 신선철) 등의 숙소가 있다.

내소사 입구에 내소식당(581-8877), 가람식당(583-2800). 전주식당(584-9090) 등 청국장을 비롯해 토종음식을 취급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격포 일원에 횟집, 백반집 등 다양한 메뉴의 식당이 타운을 이루고 있다.


곰소 산꾼 진재창씨
“재창이와 정순이가 다시 횟집 해요”  ‘재창이와 정순이가 있는 횟집’ 개업

곰소 산꾼 진재창씨
곰소 산꾼 진재창씨
진재창(49)씨와 박정순(47)씨는 산꾼들에게 제법 잘 알려진 산악인들이다. 곰소 토박이로 원광대 산악부 출신 진재창씨는 고 박영석 히말라야 원정대 멤버로서 2009년 봄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 개척의 주역이었다. 그에 앞서 박영석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원정을 여러 차례 다녀온 바 있다. 박정순씨는 전주기전대 OB로서 요즘도 전북산악연맹에서 중추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부부 인연을 맺은 1996년 이후 2010까지 곰소항에서 싱싱수산이란 상호로 횟집을 하다가 전주시내에서 횟집 2년, 내소사 앞에서 찜질방 3년 등 외도를 했다. 그러다 곰소 횟집만큼 정붙이고 할 만한 일이 없다는 생각에 지난해 10월 곰소항에 ‘재창이와 정순이가 있는 횟집’이란 상호로 새롭게 개업했다.

진재창씨는 “어디 갔다 이제 왔냐?며 횟집을 찾아 주는 단골손님과 산꾼들을 만날 때마다 다시 곰소에 횟집을 차린 게 무척 기쁘다”며 “좋은 생선을 푸짐하게 내놓는 게 감사의 표시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철 생선과 어패류, 회, 젓갈 등이 나오는 회정식은 8만 원, 10만 원, 12만 원. 12가지 젓갈이 나오는 젓갈백반 1인당 1만 원, 살아 있는 해물로 만드는 해물칼국수 1만 원. 문의 063-582-8850.

곰소젓갈
“가을에 새우젓 내놓으면 마구 집어 먹어요”

곰소젓갈
곰소젓갈
 

   곰소에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몇 군데 남지 않은 염전이 있다. 예전에 비하면 규모가 크게 줄었지만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부안에서 오다 보면 곰소로 진입하기 직전 오른쪽으로 시커먼 목조 소금창고가 줄지어 서 있는 곳이 바로 곰소염전이다.

곰소 젓갈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변산반도 근해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어패류를 재료로 하며 바로 이 곰소염전에서 생산된 양질의 소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곰소 젓갈은 맛이 담백하기로 유명하다. 염도가 적당한 곰소소금을 알맞게 배합하고 여기에 해풍의 영향을 받아 좋은 젓갈이 만들어진다는 게 현지 상인들의 얘기다. 곰소 일원에는 무려 68개 업소가 젓갈을 판매하고 있다.

3대에 걸친 어머니 깊은 손맛을 자랑하는 청정바다젓갈 안병관 사장은 “가을철이면 김장을 앞두고 젓갈 사러 오는 사람들로 곰소 거리가 꽉 차는데, 누구건 간에 새우젓을 보면 맛보겠다며 마구 집어먹는다”며 “살이 통통한 새우로 담근 육젓을 듬뿍 찍은 돼지고기 맛은 정말 기가 차다”고 말한다.

안 사장은 “새우젓은 2~3년 냉장 상태로 숙성해야 상품이 되지만 명란젓, 창란젓, 아가미젓, 오징어젓, 꼴뚜기젓 같은 양념젓갈은 숙성기간이 60일로 짧은 편이며, 까나리액젓, 멸치액젓, 갈치젓 같은 것들은 지하 5m에서 숙성한다”고 귀띔해 준다.

문의 청정바다젓갈 063-583-7661, www.gomsojutgal.com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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