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그린 산수화(山水畵)는 조선시대 회화를 대표하는 분야이다. 동양화(東洋畵)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 또한 산수화이다. 우리나라 산수화는 삼국시대의 무덤벽화나 백제의 산수무늬가 그려진 벽돌 등에서도 나타나듯이 아주 오래전 부터 그려졌다.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도 산수화가 많이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 오늘날 볼수 있는 산수화는 조선시대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산수화는 문인화로서 전문화가인 도화서 화원 뿐만 아니라 사대부계층에서도 많이 그렸다. 이는 자연의 이치를 담은 마음속의 산수를 그리는 중국 남종화(南宗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안견(安堅, ?~?)으로 대표되는 조선전기 화가들은 산수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담은 산수화를 많이 그렸다. 김명국으로 대표되는 조선중기에는 인물과 산수과 조화를 이룬 산수인물도를 그렸다. 조선중기까지 산수화는 실제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전해오는 고사(古事)나 마음속에 바라던 이상적인 풍경을 그렸다. 정선(鄭敾, 1676~1759)으로 대표되는 조선후기 화가들은 실제 풍경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산천을 표현하여 산수화의 경지를 높이 끌어올렸다. 또한 일반서민들의 민화산수화도 크게 유행하였다. 중앙박물관에서는 진품은 아니지만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전시하기도 했으며, 이징(李澄)을 비롯하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산수화 걸작들을 살펴볼 수 있다.
산수화(山水畵)
산수화는 자연을 그린 그림이다. 옛사람들은 항상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꿈꾸었으며 화가들은 자연을 살아 숨쉬는 듯 느끼며 생동감 있게 그리고자 노력하였다. 우리나라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삼국시대 무덤 벽화의 산과 나무 표현에서 고대 산수화의 양상을 엿볼 수 있다. 통일신라 이후의 산수화는 전해지는 작품이 거의 없어서 자세한 모습을 알기 어려우나 고려시대에는 감상을 위하여 산수화를 본격적으로 그렸으며 주위의 산천을 그리는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산수화는 남아 있는 작품이 많아 쉽게 시기별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화가들은 중국의 새로운 기법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이룩해 나갔다. 안견을 중심으로 한 조선 전기의 화가들은 산수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담은 산수화를 주로 그렸다. 김명국 등을 중심으로 한 조선 중기의 화가들은 산수와 인물이 조화를 이룬 대범한 분위기의 산수인물도를 많이 그렸다. 산수화가들은 자연의 이치를 담은 마음속의 산수를 그리고자 하였다. 중국의 문인화풍인 남종화의 예술 사상과 기법은 조선 후기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한편 후기의 진경산수화는 조선의 산천을 우리식으로 표현하여 산수화의 경지를 높이 끌어올렸다. 조선말기에는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문인화의 흐름이 깊어진 가운데 근대적 감각을 보이는 참신한 화풍의 산수화가 그려졌다. 또한 일반 서민들의 민화 산수화도 유행하면서 다음 시대로 이어졌다. <출처:중앙박물관>
꿈속에서 여행한 복사꽃 마을(몽유도원도), 안견, 1447년, 복제본. 조선전기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는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산수화이다. 원본은 일본에 있다.
몽유도원도는 중국 화풍을 이어받은 정통 산수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경치가 아닌 상상속의 경치이다.
그림 왼쪽편에 적혀 있는 글씨. 안평대군의 제서와 시 1수를 비롯해 당대 문인들이 쓴 20여 편의 찬문이 이어져 있다.
이 두루마리 그림은 안평대군이 꿈에 복사꽃 마을을 여행한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안평대군이 직접 쓴 발문에 의하면 안견이 3일 만에 그림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평화로운 도원을 여행한 꿈 이야기는 중국 동진대에 시인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 두루마리에는 안평대군의 제서와 시 1수를 비롯해 당대 문인들이 쓴 20여 편의 찬문이 이어져 있다. “지곡가도”라는 안견의 관지가 있고, 그 아래 “가도”라는 붉은 색 도장이 찍혀 있다. 그림의 왼쪽은 나지막한 야산들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를, 나머지는 꿈속 장면으로, 도원의 바깥쪽 입구와 안쪽 입구, 그리고 복사꽃이 피어 있는 도원의 경치를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사계절의 산수,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전 안견(安堅), 15세기, 비단에 엷은 색. 정선과 함께 산수화를 대표하는 안견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다. 그의 화풍을 살펴볼 수 있다.
안견은 중국 북송 곽희 화풍을 기본으로 독특한 화풍을 이루었다. 그의 화품은 다른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조선 전기 산수화의 큰 줄기인 안견파 화풍이 형성되었다. 초봄과 늦봄, 초여름과 늦여름, 초가을과 늦가을, 초겨울과 늦겨울 등 한 계절의 흐름을 두 화면에 담았다. 가까운 언덕과 멀리 보이는 산을 연결시키지 않고 수면과 안개 등으로 넓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안견파 화풍의 특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사계절의 산수,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전 안견(安堅), 15세기, 비단에 엷은 색
사계절 산수,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김명국(金明國, 1600~1663 이후), 1662년, 비단에 금니.
<달마도(達磨圖)>로 유명한 김명국(金明國, ?~?)이 그린 그림이다. 그는 도화서 화원출신으로 조선중기의 화가로 산수화와 인물화를 잘그렸으며 두차례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왔다. 붓의 움직임이 힘차고 거친 필치가 특징으로 산수와 인물이 조화를 이룬 산수인물화를 잘 그렸다고 한다.
비단에 먹물을 입히고 금니로 그린 그림이다. 사계절을 각기 두폭씩 그린 사계 산수 중 가을이다. 두 폭씩 쌍을 이루어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로 그려져 중앙을 비우는 화면 구성이다. 나뉘 탄 인물과 앞서 갈 길을 재촉하는 듯한 시동, 먼 산 위로 날아가는 새들 등에서 서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출처:중앙박물관>
화개현에 있는 별장,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 이징(李澄), 1643년, 비단에 먹, 보물 1046호. 화가 이징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전문화가로 다양한 종류의 그림을 남겨 놓고 있다.
별장과 주변의 경치를 엷게 그려 놓고 있다.
지리산 화개현에 있던 정여창의 별장을 그린 것이다. 후에 별장이 훼손된 것이 아쉬워 화가 이징을 불러 기록에 의거해 그리도록 한 것이다. 맨 위에는 “화개현구장도”란 제목이 전서체로 적혀 있고, 중간에는 별장의 주변 산수를 엷게 그렸다. 그림 전체의 배치가 오른쪽에 치우쳐 있으면서 근경, 중경, 원경이 잘 나타나 있고 산과 바위에는 흑백의 대조가 뚜렷하다. 그림 아래에는 정여창과 유호인의 시와 제작배경을 적은 글 등이 있다. 이징은 문인화가 이경윤의 서자로, 1628년에는 태조의 진영을 개수한 공으로 동반의 6품직을 받았다. 산수를 비롯한 인물.영모.초충 등 모두 능하여 당대 제일의 기량을 갖춘 화가로 평가받았다. <출처:중앙박물관>
산수도(山水圖), 전 이징, 조선 17세기, 비단에 색.
화가 이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산수화로 안견의 화풍을 이어받은 전문 화가가 그린 정통 산수화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뱃놀이하고 낚시하는 장면, 독서하는 장면, 벗을 찾아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면이 수려한 산수 속에 조화롭게 묘사되어 있다.
이징은 이경윤(李慶胤)의 서자로 벼슬은 주부(主簿)를 지냈다. 이 그림은 뱃놀이를 하고 낚시하는 장면, 독서하는 장면, 벗을 찾아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면이 수려한 산수속에 조화롭게 묘사되어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산은 강에서 뒤로 물러나면서 점차 높아지고 멀어지는 삼단구도의 안견파 화풍을 보여준다. 산수는 청록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은 소청록 산수로서, 먼 산은 청록으로 설채하고 앞산과 바위에는 청록을 혼합한 녹색의 태점을 찍어 화원 특유의 정교함과 화려함을 살리면서 수묵의 우아함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이징은 20대부터 나라 안에서 최고가는 화가로 소꼽혔으며 인조에게 총애받는 화원으로 활약하였다. 여유로운 필선과 치열한 구성, 둥글둥글한 산의 형태, 산세를 따라 찍혀 있는 태점 등이 그의 그림의 특징이다. 중앙에 바둑 두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기암절벽이 복잡하게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내용의 산수화다. 화면에 ‘완산이징’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소상의 여덟 풍경,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이징, 조선 17세기 전반, 비단에 엷은 색
‘소상팔경도’는 중국 호남성 동정호(洞庭湖) 남쪽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류하는 지역의 빼어난 경관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것이다. 이 주제는 이상경(理想景)을 대표하는 산수화의 상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조선 초기에 제작이 활발하였다. 작가 이징은 조선 중기 화가 이경윤(李慶胤)의 서자로 태어나 화원으로 활약하며 인조에게 총애를 받았다. 여유로운 필선과 치밀한 구성, 둥글둥글한 산의 형태와 산봉우리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 산세를 따라 찍혀 있는 태점(苔點) 등 이징 그림의 특징적인 면들이 나타나 있다. 화면에 ‘완산이징이라는 주문방인 찍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농사일과 누에치기를 그린 그림,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 작가미상, 비단채색.
실제 풍경을 그린 진경산수화와는 달리 전통적인 산수화는 문헌이나 그림으로 알고 있었던 풍경에 화가의 주관을 들어간 상상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고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풍경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시경>의 ‘빈풍칠월’편을 그린 그림이 빈풍칠월도인데, 빈나라(주나라의 옛이름)의 국풍을 말하는 것이다. 빈풍칠월편은 주나라 문황에게 백성들의 어려움을 일깨우고자 삼촌인 주공이 지은 것이라 한다. 이 그림은 청록산수화풍으로 그려졌으며, 빈풍칠월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뽕잎 따는 여인, 지붕 위의 박 따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금니의 선을 긋고 윤곽선을 따라 태점을 찍어 화려하게 장식한 청록산수화로, 각이 진 산의 형태에 청록의 농담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입체감을 부여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조선초기 화가 안견 화풍의 영향을 받은 16세기 산수도로, 왼쪽으로 치우친 편파구도로 그려졌다. 원경, 중경, 근경의 삼단 구성을 보인다. ‘학포사(學圃寫)’의 관지에 이어 ‘양팽손장(梁彭孫藏)’으로 판독되는 도장이 있다. 원경의 산들은 중첩되었고, 죽림의 초가집은 비워두고 언덕에 올라 담소를 나누는 선비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산의 치형돌기, 침엽수림, 나무의 해조묘법 등에서 안견파 화풍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금궤도(金櫃圖), 17세기, 전 조숙 비단에 색. 신라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최북이 그린 사계절의 그림,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최북(崔北), 18세기, 종이에 엷은 채색.
최북은 조선후기 영조대에 활동한 화가로 괴팍한 성질과 관련된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인물.초충도 등도 잘 그렸으나 남아있는 작품은 대부분 산수화이다. 그는 진경산수화와 남종화풍의 산수화를 그렸는데, 이 그림은 남종화풍의 산수화이다.
최북(1712~1786)은 자가 칠칠(七七), 호가 호생관(毫生館)으로, 성격이 괴팍하고 행적이 기이하여 적지 않은 일화를 남겼다. 이 화첩은 사계절의 풍경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사시팔경도로 적절히 구사된 담채가 깔끔하고 청아하게 느껴진다. 왼편의 <한강조어도(漢江釣魚圖)>는 이 화첩의 마지막 폭으로 눈이 소복하게 내린 추운 겨울 강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출처:중앙박물관>
매화 가득한 산 속에 은거하는 선비, 매화서옥(梅花書屋), 조희룡(趙熙龍), 18세기
눈송이 같은 매화꽃이 만발한 산 속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선비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이것은 중국 청대 다농 장심(茶農 張深)이 그린 매감도(梅龕圖)를 떠올리며 그린 것이다. 서예적인 필치로 사물의 형태에 연연해하지 않은 조희룡 특유의 활달하고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매화서옥도>는 김정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조선시대 문인들 사이에 성행하였고, 조희룡, 전기, 김수철, 박기준 등에 의해서도 애호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끝없이 펼쳐진 강과 산,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1, 이인문(李寅文), 18세기, 비단에 엷은 색. 대자연의 풍경을 긴 두루마리에 그린 그림으로 추사 김정희의 소장품이었다고 한다.
강산무진도-2
강산무진도-3
산과 물이 서로 만나고 갈라지면서 이루는 대자연의 절경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그린 긴 두루마리 그림이다.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 보는 듯한 시점으로 산수의 변화무쌍함을 장대하게 구성하였다. 국토와 백성을 상징하는 한편, 강과산이 끝없이 펼쳐지듯 왕조가 영원하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련된 필치, 감각적인 색채는 조선후기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 화원화가 이인문의 뛰어난 솜씨를 잘 보여준다. 화면 앞뒤에 <추사(秋史)>와 <추사진장(秋史珍藏)>이라고 새겨진 도장이 있어 김정희의 소장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오진을 본받아 그린 산수, 방오진산수도(倣吳鎭山水圖), 심사정, 조선 1735년, 비단에 엷은 색.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은 정선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스스로 깨쳐 중국 남종화를 토착화시킨 인물로 김홍도와 함께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산수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을묘년(1735) 여름 심사정이 20대 때 그린 초기 산수도이다. 발문(跋文)에 의하면 중국 원사대가(元四大家) 중의 한 인물인 오진(吳鎭, 1280~1354)의 필의를 따랐다고 적혀 있다. 산을 쌓아올린 듯 중첩된 주산(主山)의 표현이나 화면 전반에 거친 갈필(渴筆)을 구사한 점 등에서 원사대가의 화풍이 엿보인다. 심사정은 중국의 남종화법을 수려하며 오진 뿐만 아니라 황공망(黃公望), 왕몽(王蒙), 심주(心柱) 등 다양한 중국 문인화를 모방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렇듯 중국 대가의 화풍을 모방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심사정 산수화의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뱃놀이, 주유도(舟遊圖),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강 위에 우뚝 솟은 기암절벽과 산봉우리들 사이로 돛단배 4척과 나룻배 2척이 떠 있는 모습이다. 산 어귀를 돌아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돛단배는 포구 근처에 이르러 돛을 내리고 있으며, 나룻배들은 사람들을 태우고 막 출발했거나 정박하고 있다. 화면 가운데 위치한 누각 근처에 붉은 꽃이 핀 것으로 보아 화창한 봄날을 배경으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화면 하단 포구를 향하고 있는 선비와 고깔을 쓴 승려는 화면 가운데 위치한 사찰에서 나오는 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수직준(垂直皴)을 써서 뽀족하고 깍아지른 듯한 바위산을 묘사하면서도, 부드러운 담채로 산수의 정취를 살렸다. 또한 중국풍의 인물이 아닌 조선의 선비가 등장하는 점 등으로 미루어 19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물관>
사계절의 산수, 사계산수도(四季山水圖)-1, 정수영(鄭遂榮, 1743~1831), 조선 1814년, 종이에 엷은 색.
사계산수도-2
조선후기 문인화가 정수영의 사계산수도로 그는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시서화(詩書畵)를 즐겨 했던 인물이다. 총 8폭의 화면에는 사계절이 각 2장면씩 그려졌으며, 각 폭의 상단에는 늙고 병든 심경을 담은 자작시(自作詩)와 함께 ‘군방(君芳)’, ‘지우재인(之又齋印)’이라는 낙관이 찍혀 있다. 마지막 겨울 장면에는 갈필로 산세의 윤곽만을 그려 황량한 겨울의 느낌을 잘 살렸고, 화면 아래 나귀를 탄 나그네는 고갯길을 지나 화면 상단에 자리 잡은 고을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8면에 “갑술련(1814) 여름 72세의 노인 정수영이 병중에 그렸다.”고 밝히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도에 차분한 갈필과 담채로 말년의 무르익은 기량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눈쌓인 소나무, 설송도(雪松圖), 이인상,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추운 겨울에 독야청청한 소나무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꼿꼿이 서 있는 소나무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소나무는 서로 교차하며 관람자의 눈앞으로 바짝 당겨져 과감하면서도 파격적인 구도를 만들고 있다.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눈 쌓인 표현이다. 소나무 주변 가지에 먹을 가하지 않고 남겨둔 부분이 자연스럽게 눈처럼 보이게 된다. 능호관 이인상은 담백하고 격조있는 문인화를 즐겨 그렸던 조선후기 화가다. 서얼 출신이면서도 사대부 벗들에게 청렴한 선비로 추앙받았고, 그들과 더불어 평생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출처:중앙박물관>
눈속에 길 떠나는 선비, 설중여행풍(雪中旅行風), 김명국, 조선 17세기, 모시에 엷은 색
조선중기 대표적 도화서 화원인 김명국의 작품으로, 겨울 새벽녁 먼 길 떠나는 인물과 사립문에 기대어 배웅하는 동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부벽준을 대담하게 그린 날카로운 절벽과 앙상한 나무는 매서운 겨울날의 계절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산수와 힘있는 필획은 중국 절파(浙派) 화풍의 영향을 보여준다. 경물의 기이하고 과장된 모습과 대담한 필묵은 김명국의 특징이기도 하다. 문 앞까지 나와 떠나는 길을 배웅하는 동자를 뒤돌아보며 아쉬움을 전하는 나귀 탄 고사(高士)의 모습은 매화를 찾아 떠나는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을 연상케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매화를 찾아 떠나는 선비,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 심사정, 조선 1766년, 비단에 엷은 색
중국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이 겨울날 파교를 건너 산속으로 들어가 눈 속에 핀 매화를 찾아 다녔다는 고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화면 상단의 낙관(落款)을 통해 조선 후기 문인화가인 심사정이 66세가 되던 해 초여름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나귀를 타고 파교를 건너려는 맹호연과 그를 따르는 시동(侍童)이 화면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 주위는 눈 덮인 삭막한 겨울 풍경이 에워싸고 있다. 전체적인 구도나 인물, 소라껍데기 형태의 언덕, 한림(寒林)과 구불거리는 필선 등에서 심사정 만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산수도(山水圖), 윤의립(尹毅立, 1658~1643), 조선 17세기, 비단에 엷은 색
산수도(山水圖), 윤의립(尹毅立, 1658~1643),
조선 중기에 활당한 월담 윤의립의 작품으로, 총 6면의 화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의립은 선조대 문과에 급제하여 판서까지 지낸 문인화가로, 중국 남송의 마하파(馬夏派)와 조선 초기의 안견파(安堅派) 화풍이 융합된 화풍을 구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설경사수도를 살펴보면 월담이 붓을 들었다는 뜻의 “월담농묵(月潭弄墨)”이 붉은 색으로 적혀 있다. 또한 화첩 곳곳에는 금박의 흔적이 보이고, 주로 조선 중기에 선호되었던 니금(泥金)으로 산세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정이 선생을 기다리는 제자, 정문입설도(程門立雪圖),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이다. 전통적인 남종화에 가까운 그림이다.
눈으로 덮인 초옥(草屋)에 사는 노인과 앞마당에서 있는 두 선비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이는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는다. 程門立雪’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중국 송나라에서 유래한 일화로, 제자들이 유학자 정이(程頤, 1033~1107)를 찾아 갔을 때 선생이 사색에 잠겨 있었고, 마침내 눈을 떴을 떄는 이미 눈이 한자나 쌓였다는 내용이다. 마당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무릎 아래를 여백으로 남겨 밤새 눈이 쌓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좌씨 별장에서 열린 밤의 연회, 야연좌씨장(夜宴左氏莊), 이방운(李昉運, 1761~1815년 이후), 조선 18세기 말 ~19세기 초), 종이에 먹,
초승달과 별이 떠 있는 밤하늘 아래 두 인물이 거문고와 칼을 앞에 두고 마주보고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화면 좌측 상단에 쓰인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를 화제(畵題)로 한 시의도(詩意圖)이다. 시 아래에 찍혀 있는 ‘유련(流連)’이라는 인장을 통해 조선 후기 화가 이방운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방운은 조선 후기 화가들 중 가장 많은 시의도를 남긴 화가로, 이방운 특유의 구도와 필치를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은 현재 전하는 ‘야연좌씨장’을 다룬 시의도로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출처:중앙박물관>
명나라 심주를 본받아 그린 산수, 강세황(姜世晃), 1749년, 종이에 엷은 색. 옛 대가의 화풍에 따라서 그리는 방倣이라는 형태의 그림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중국 명나라 때의 화가 심주(沈周)를 모방하여 그린 두루마리 산수화이다. 방倣은 옛 대가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을 넘어서서 필의(筆意), 즉 그림에 담긴 뜻과 필치를 본받는 것으로 문인화의 중요한 전통이었다. 심주는 남종화풍의 중요한 갈래인 오파(吳派) 화풍을 창시한 화가이다.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은 강세황이 심주의 화풍을 잘 소화하였음을 보여준다. 강세황이 남종화풍(南宗畵風)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문인화의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심주를 따른 산수도, 방심석전산수도(倣沈石田山水圖), 심사정(沈師正), 1758년, 종이 엷은색
심사정이 51세 때인 1758년 가을에 서강 정영년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명대 오파(吳派)의 석전 심주(心柱)의 화법을 따랐다고 밝혔다. 근경과 중경 사이는 수면으로, 중경과 원경 사이는 옅은 안개로 채웠다. 모서리마다 각진 바위, 화면의 곳곳에 액센트로 찍은 진한 먹점 등은 심사정 화풍의 특징적 요소들이다. 강세황은 심사정이 중년 이후에 대부벽준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는데, 중경의 절벽에 부벽춘이 구사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연못 위 정자에서 수업하는 두 인물, 이인문(李寅文), 15세기, 종이에 엷은 색
25점의 그림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산수 표현에 능숙한 기량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괴석과 다양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연못 위 정자에 두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방석 위에 앉은 인물 앞에 책을 펴 놓고 앉아 있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낚시를 하고 있는 인물, 두 마리의 사슴, 빈 배 등의 소재와 맑은 담채가 잘 어우러져 서정적인 분위기로 그려졌다. <출처:중앙박물관>
구룡폭(九龍瀑), 이인상(李麟祥, 1710~1760), 1752년, 종이에 엷은 색
이인상은 28세인 1737년 당시 인제 군수였던 임안세를 모시고 금강산 여행을 하였다. 그 후로 15년이 지난 1752년에 그린 금강산 구룡폭 그림이다. 그런데 실제 구룡폭 경관과 전혀 비슷하지 않다. 이인상은 마음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일부러 색을 칠하지 않고 뼈대만 그렸다고 밝혔다. ‘이인상인(李麟祥印)’과 ‘보산인(寶山仁)’ 2개의 도장을 찍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나무와 바위, 수석도(樹石圖), 이인상, 1739년, 종이에 엷은 색
26세 때인 1739년에 그린 세 그루의 나무와 바위 그림이다. 추위에 놓인 나무의 모습에서 빼어냄을 찾아내고, 무늬가 있어 멋있는 바위의 모습에서 거침을 보았다. 추위에 놓인 모습의 빼어남, 무늬가 있는 멋스러움과 기질은 상반되는 개념이다. 이인상은 그 속에 서로 공존하는 천연의 경치를 보고 있다. 이 그림의 묘미는 들여다볼수록 점점 드러나는 바위의 윤곽이다. 물기가 많은 옆은 미필로 그려진 바위는 마치 그림자처럼 보일듯 말 듯 하다. <출처:중앙박물관>
산은 고요하고 해는 기네, 산정일장도(山靜日長圖), 이인문(李寅文), 1817년, 종이에 엷은 색
이인문은 김홍도와 함께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원화가이다. 자를 문욱 호를 고송류순관도인이라고 했고, 산수화에 특히 뛰어났다. 이 그림은 중국 송나라의 문인 나대경(羅大經, 1196-1242)이 자신의 산거 생활을 묘사한 글인 <산정일정(山靜日長)>을 바탕으로 그린 병풍이다. 조선후기에는 복잡한 세상을 벗어나 자연을 벗아여 살아가고자 하는 선비의 생활을 그린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그 중에서도 산정일정도는 이름난 문인의 은거 생활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그림으로서 즐겨 감상되었는데, 글의 내용을 여덟장면으로 나누어 병풍으로 꾸미는 경우가 많았다. 이 작품은 이인문이 73세 때 그린 것으로 여덟폭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만년의 완숙한 기량이 돋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산수화의 준법(皴法). 준법이라 바위, 산, 나무를 그릴 때 입체감이나 표면의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단선점준(短線點皴), 2~3mm 정도의 짧은 선이나 점의 형태로 산, 언덕의 능선, 바위표면의 질감을 나타내는 준법이다. 조선시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유행하였다.
피마준(披麻皴), 마(麻)의 올을 풀어서 늘어놓은 것처럼 선을 반복하여 그린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준법으로 바위 없는 산을 그릴 때 사용한다.
하엽준(荷葉皴), 연잎 줄기가 퍼져내려 간 것처럼 표현하는 기법이다. 주로 산봉우리나 물이 흘러 고랑이 생긴 산비탈 등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우모준(牛毛皴), 소의 털과 같이 짧고 가느다란 필선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피마준보다 짧고 가늘다.
미점준(米點皴), 붓을 옆으로 뉘어서 횡으로 쌀 모양의 점을 찍는 기법이다. 북송대의 화가 미불(米芾)이 창안하여 그의 성을 따른 것으로 주로 안개가 끼어 있거나 멀리 있는 산을 그릴 때 사용하였다.
수직준(垂直皴), 예리한 필선을 죽죽 그어 내린 기법으로, 정선이 창안하였다. 강하고 활달한 맛을 내며, 금강산 내외경의 뾰족한 바위산을 묘사하는데 많이 사용하였다.
부벽준(斧劈皴), 도끼로 나무를 찍었을 때 생기는 단면처럼 바위나 산의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붓을 기울인 자세로 쥐고, 폭넓게 끌어당겨 형태를 만든다.
반두준(礬頭皴), 백반 덩어리와 같은 모양으로 그리는 기법이다. 모서리가 마멸되거나 부식된 작은 산봉우리를 묘사할 때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