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감춘 땅] 희양산 최후 보루 용추토굴

2017. 3. 9. 03:32사진이야기



[하늘이 감춘 땅] 희양산 최후 보루 용추토굴


게시일: 201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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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훔치는 ‘도적의 소굴’되기 십상


    조현 2008. 03. 04
    조회수 18531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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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감춘 땅] 희양산 최후 보루 용추토굴  

     
    희양산은 남근 발딱 선 모습…용추는 여성의 자궁
    자기와의 싸움을 벌일 전사만이 머물 수 있는 곳

     
      희양산에 감춰진 계곡은 금강산 계곡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절경입니다. 옛부터 희양산은 봉암용곡으로 불렸습니다. 879년(신라 헌강왕 5년) 희양산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국사가 이 터를 둘러본 뒤 “봉황 같은 바위에 용의 허리가 감싼 계곡”이라고 평한데서 이 말이 유래했습니다.
     


      지증국사는 이렇게 드센 터는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희양산의 바위 자체가 멀리서 보면 남근이 발딱 선 것 같은 모습입니다. 인도에 가면 모든 힌두사원에 남근을 형상화한 링가를 신으로 모시는데, 희양산은 꼭 링가의 확대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강한 힘, 강한 정력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함부로 쓴다면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지증국사의 우려였을 것입니다.


       불교에서 도적은 문 밖에서 들어오는 외인이 아닙니다. 바로 눈에 보이는 것(색·色)과 들리는 소리(성·聲), 코 속을 파고드는 향기(향·香), 혀끝에 스미는 맛(미·味), 몸의 감각을 자극하는 촉감(촉·觸),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생각(법·法)등 6근(6根)에 현혹돼 ‘본래 청정한 불성’을 망각해버리고 마는 이 마음입니다.


     
    있는 듯 하면서도 없고, 없는 듯 하면서도 살아 숨쉬는 것
     
        1100년 동안 선승들이 참선을 통해 그 마음을 찾아온 도량 뒤로 ‘용의 계곡’(용곡·龍谷)이 희양산 깊숙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용은 늘 영물로 회자되고, 복권을 산 사람들은 오늘도 용꿈 한번 꿔보자며 빌고 또 비는데, 과연 용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물이 기화해 하늘을 타고 오르면 계곡은 곧 다 말라버릴 듯한데 어느덧 수증기는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계곡으로 돌아오는 이 용곡의 변화무쌍함은 과연 무슨 작용일까요. 그 용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저절로 ‘마음을 찾아가는 길’이 됩니다.

      우리는 또 늘상 마음, 마음합니다. 그런데 과연 마음이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있는 듯하여 찾고 또 찾으면 어느 곳에도 없고, 없는 듯 하여 간과하면 어느덧 용처럼 생생히 살아나 나를 부추기고 골탕먹이면서 살아 숨쉬는 게 마음 아니던가요.

      그 용곡을 거슬러 1시간 반을 올라가면 희양산 최후의 보루 용추토굴이 나옵니다. 희양산문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숨은 이 토굴 터에 들어서니 이제 봉황 같은 바위도 용 같은 계곡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희양산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만 같습니다. 세인을 출입시키지않는 봉암사에서도 한시간반을 달려 깊숙하고 깊숙한 산 속으로 들어왔는데, 이곳은 오히려 어느 마을의 뒷동산처럼 안온하기만 합니다.

      용추(龍湫)란 ‘용이 사는 못’을 말하기도 하고, 여성의 자궁을 뜻하기도 합니다. 용추란 말이 딱 들어맞을 만큼 낮은 산이 둘러싸고 있고 햇볕이 잘 들어서 어머니의 품이나 자궁처럼 따스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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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 겨울 우선 스님이 앉아서 열반 
     
      하지만 이곳은 속세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봉암사도 깊고 깊은 산중인데, 봉암사에서도 멀고 먼 산골에 있으니 말이지요. 선승들은 이곳 최후의 보루에서 생사를 넘어서기 위한 마지막 결전을 준비했습니다.

      4년여 전인 2003년 겨울이었습니다. 이곳에선 우선 스님이 홀로 살며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11월 12일 그의 스승인 전남 곡성 성륜사 청화 스님이 열반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40여년 동안 몸을 일체 바닥에 눕지않은 장좌불와를 하고 하루도 거르지않고 하루 한끼만 드는 고행의 삶을 사신 분입니다. 저도 그 분을 몇번 뵌적이 있는데, 솔바람 같은 청정한 기운을 늘 내뿜는 분이었지요. 우선 스님은 그 스승을 모셨던 분입니다.

      한 도반이 은사의 열반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봉암사에서 용추토굴까지 먼 길을 갔다고 합니다. 도반이 방문을 열어보니, 우선은 앉은 채로 좌선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큰소리도 불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니 그는 이미 열반에 들어있었습니다. 앉은 채로 몸을 벗어버린 것입니다. 좌탈열반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어딘가에 붙들어 매어두거나 누군가 붙잡아 주지않고 홀로 앉아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의식을 놓지않아야 몸을 지배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않다면 몸은 당연히 꼬꾸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 열반의 세계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용추토굴은 마치 현세를 잊은 듯 피안의 고요만이 감싸고 있었습니다. 세상만사를 잊고 용추토굴에서 정진만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냥 보기엔 참으로 좋지, 그러나…” 
     
      그곳엔 법웅 스님이 함께 갔습니다. 법웅 스님은 봉암사 선원의 입승입니다. 입승은 선원장을 모시고 죽비를 잡고 선원을 이끄는 중요한 위치입니다. 선방의 군기반장인 셈이지요. 법웅 스님은 애초부터 제가 알던 분입니다. 몇년 전엔 덕숭산 정상 아래 만공선사가 머물렀던 소림초당에서 100일 동안 장좌불와를 끝낸 그를 소림초당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때 몸에서 풍겨져나오는 기운이 보기 좋아서 제가 서울에 올라오시면 연락을 주시라고 해서 공양을 대접한 적이 있지요. 취재원이 기자에게 밥 얻어먹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스님은 저에게 몇번 공양을 얻어드셨으니 ‘능력’이 있는 셈이지요.

      제가 그 용추토굴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법웅 스님이 물었습니다.

     “그냥 보기엔 참으로 좋지?”

      스님은 “그냥 보기엔 좋아서 살 것 같지만, ‘마음 밖’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사람은 단 며칠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갈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눈에 비치는 것과 귀에 들리는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생각을 쫓아다니기에 급급한 마음 자세로는 이런 곳에서 견뎌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외부와 경계를 끊고 철저히 자기와 싸움을 벌일 전사만이 이런 곳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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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추토굴에서 정진중인 법웅 스님.



       
    “영화를 보듯이 6근 경계(色,聲,香,味,觸,法)를 쫓아다녀서는 안된다. 영화는 끝나기 마련이다. 스크린을 쫓는게 아니라, 만물을 녹이는 화두 하나로 심안의 세계, 무영(그림자가 없는)의 세계로 가면 어떤 수행법이 간화선에 비길 것인가. 근기를 따르지 못하면 어렵지만, 그 하나에서 백천만겁의 세월이 갈파가 되어버린다. 전후가 끊어져버린다. 시작과 끝을 물을 자리가 없어져 버린다. 가히 최고의 수장을 뽑아서 중생을 편케 하는 것이지, 중생의 양념을 맞추기 위해 이 도량을 건립치 않았다. 그래서 사자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우나 토끼는 사자가 산을 평정하면 그 아래서 사는 것이지 그들이 산을 평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가의 법좌, 선가의 법좌를 사자좌라고 한다.”


     
    백척간두에서 한판 승부 겨루다 돌아와 이름 없는 주검들 염 
     
      그는 마음 밖을 쫓는 것을 끊기 위해 한번은 고도(孤島·외딴섬)와 같은 곳에 떨어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법웅 스님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괴퍅하기 그지없는 성질로 수행처를 들쑤셔놓기도 했던 그는 14년 전 중앙아시아 키르키스탄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철 스님의 상좌로 열반한 원명 스님이 당시 키르키스탄에 세운 선방에서 지도해달라는 부탁으로 처음 키르키스탄에 갔다고는 하지만, 1993년에만 해도 한국 사람이라고 거의 찾아볼 길이 없는 고도 같은 그곳에 간 것은 자신 밖과의 시비를 끊고 철저히 자신과의 한판 승부를 겨루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백척간두에 스스로를 세운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도 끝내 이기고 싶고, 살고 싶은 마음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요. 그는 백척간두에서 한발을 내디딜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5년 뒤 귀국해 여수에 있는 한 병원 영안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아무 연고가 없는 주검들의 염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그 주검들을 정성껏 씻고, 옷을 입히고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주검들은 나비가 벗어버린 번데기처럼, 껍질처럼 허망하게 한 줌의 재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7개월 동안 수백구의 주검들의 염을 해주었고, 그 주검들이 아무런 존재도 남기지않고 무화(無化)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마침내는 이런 주검들만 아니라 보이는 모든 것이, 들리는 모든 소리가, 만져지는 모든 감촉이, 일어나는 모든 생각이 허망한 껍데기요, 그림자일 뿐이었습니다.


     
    건들거리 듯 말하곤 해 스님답지 않다고들 하지만 
     
      “산에 있다보면 바람이 온 산을 집어삼킬 듯이, 송곳으로 온 뇌를 헤집으려는 듯이 불어 닥치지. 그런데도 얇은 창호지 한 장 때문에 방안엔 바람 한점이 닿지를 앉아.”

      밖을 향한 마음을 쉬고서는 폭풍우 몰아치는 밤에도 산사의 방처럼 고요했고, 험상궂은 투쟁의 와중에서도 마치 바보처럼, 혹은 미친 사람처럼 웃을 수 있었습니다. 도반들은 어느 새 상좌를 20여 명씩 두거나 대찰의 주지가 되어 어른 노릇을 하지만, 그는 상좌 한 명이 없어도, 머물 방 한 칸이 없어도 좋았습니다.

      스님이 건들거리듯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는 스님답지 않다고 책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그런 ‘형식’으로 사람을 잘 평가하지않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는 너무 유가적 ‘예의’ 속에만 갇혀 있습니다. 불교를 비롯해서 종교가 그게 더욱더 심하지요. 세상의 공동체에서 살다보면 예의범절을 비롯해서 규범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진리)의 세계, 선(禪)의 세계에선 그런 형식이 오히려 여름날 솜이불을 쓴 것과 같기도 합니다. 여름엔 홀딱 벗고 계곡물에서 목욕을 하는게 제격이겠지요. 어찌보면 예의범절과 폼을 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위의’를 갖추는 것보다 오히려 거짓이 없고, 허위가 없고, 솔직하고, 폼을 재지않는 수행자를 더욱 더 높게 평가합니다.
     


    명문대학 나왔거나 석·박사 따고 출가한 스님들도… 
     
      사설이 길어졌지만, 그런 점에서 애써 권위를 세우려하기보다는 그냥 중생의 씨름판으로 내려와 진한 무애의 진담을 나누는 스님에게서 실상과 허상의 경계가 무너진 진속불이(眞俗不二)의 통쾌함을 느끼곤 합니다. 봉암사 선방엔 명문대학을 나왔거나 세계적인 대학들에게 석사 박사를 따고 출가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개인적 고민과 대중살이의 갈등을 이겨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법웅 스님이 젊은 출가자들에게 “번뇌와 고뇌와 (상대의) 허물을 ‘진짜’로 보는 것은 플라톤이 말한 동굴 속에 갇힌 죄수가 형상의 그림자를 실체로 잘못 아는 것과 같다”면서 “그림자가 허상임을 알면 남들은 모두 시비하는 상대에 대해서도 그 장점을 살려주는 성현이 되는 것”이라고 일러줄 수 있게 된 것도 처절한 산경험에서 비롯한 것일 겁니다.  

      용추토굴 위에 태양이 솟아올랐습니다. 동굴 속에 갇혀있을 때는 그림자의 본체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태양 아래선 나무 그림자를 보기보다는 나무를 보고, 사람 그림자를 따라 오락가락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봅니다.
     용이 노는 못인 용추엔 아무런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림자 없는 못에서 허리를 곧추 세운 잠룡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도 지금 용이 살아 있습니다.
     
     
     *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곡은 Josh Groban의 Let Me Fall(추락하게 하소서) 입니다. ‘태양의 서커스’의 노래로 사용된 이 곡은 늘 위험천만한 공중 곡예를 벌이는 서커스단원들이 추락을 통해 다시 비상하려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나아감으로써, 즉 자신이 죽어도 놓지못하던 집착의 끈을 한순간 놔버림으로써 해탈 진경의 기쁨을 맞이하는 선(禪)의 세계를 잘 표현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문경 희양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박종찬 기자 pjc@hani.co.kr·조소영 피디.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하늘이 감춘 땅>(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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