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자 이성희 '이미지의 모험' <37> 공개 '중산출유도': 울분과 익살을 가로지르는 귀신들의 카니발

2017. 3. 23. 04:09美學 이야기



      

龔開(1222—1304), 중산출유도(中山出遊圖)


宋末元初 长卷 纸本水墨 纵32.8厘米 横169.5厘米 (美)弗利尔美术馆藏



미학자 이성희 '이미지의 모험' <37> 공개 '중산출유도': 울분과 익살을 가로지르는 귀신들의 카니발

'물러가라 元 악귀야' 나라 잃은 백성의 비분강개와 해학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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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5-12-22 18:54:06
  •  |  본지 20면

   


   
송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들어서던 시기에 살았던 중국 화가 공개(1222~1307)가 그린 두루마기 그림 '중산출유도(中山出遊圖)'. '귀신은 귀신이되 귀신 잡은 귀신'인 종규를 중심으로 귀신들이 행렬하는 모습을 그렸다.



- 남송 대신의 막료로 전쟁에 참여
- 망국 유민으로 낙향, 그림 그려

- 귀신 잡는 귀신 종규 앞장서고
- 누이 가마·귀신 뒤따르는 행진
- 요란하면서도 익살스럽다
- 혼례행렬인지 의심스럽지만
- 인물들 시선과 리듬 역동적


  귀신 시로 유명한 당나라 이하(李賀)의 싯구, "남산은 어찌 그리 슬픈가/ 귀신 비 쓸쓸히 풀 위에 내린다"에는 을씨년스럽고 처량한 귀곡성이 들린다. 그러나 송원교체기를 산 공개(龔開, 1222∼1307)의 귀신 그림에는 요란하면서도 약간은 익살스러운 행진곡이 들린다.

그의 두루마리 그림 '중산출유도(中山出游圖)'의 행렬을 보라. 그들은 우리 앞으로 시끌벅적한 퍼레이드를 벌리며 지나간다. 그러나 경쾌한 행진곡은 한순간에 음침한 장송곡으로 바뀔지 모른다. 귀신들이 괴성을 지르고 썩은 내를 풍기며 우리에게 와락 달려든다면 어쩔 것인가? 그런데 그래도 별로 무서울 것 같지 않은 묘한 귀신들의 사육제다.

   공개는 남송 말기 대신인 이정지의 막료로서 원(元)과의 전쟁에 참여했다. 남송이 결국 원에 망하자 그는 울분 속에 낙향하여 그림을 그리면서 궁핍한 삶을 살아갔다. 이 망국의 유민은 어쩌면 사람으로서 삶을 끝내버렸던 것이었을까? 그는 귀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산출유도'는 귀신은 귀신이되 귀신 잡은 귀신인 종규(鐘馗)의 그림이다. 그림의 오른쪽에 온통 털로 덮인 크고 시커먼 얼굴, 왕방울 눈에 돼지코를 하고 가마에 앉은 자가 바로 퇴마사 종규다.


■귀신 잡는 귀신, 종규의 등장

   
공개의 '중산출유도' 가운데 뒷부분에 나오는 귀신들의 모습.
   송나라는 성리학의 나라다. 동아시아 중세를 지배한 그 합리주의 사상은 귀신을 음양의 현상으로 해소해 버린다. 그러나 그러한 철학적 해명은 민초의 삶에서 만나는 귀신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한다. 민초의 상상력 속에서 귀신은 삶 속에 실존하는 두렵고도 신비로운 힘이다. 귀신은 원한을 품거나 애정을 드러내면서 삶에 끊임없이 관여한다.

   밤이 되면 세상은 온갖 귀신들로 들끓는다. 그러다가 도도산 복숭아나무 위의 금계(金鷄)가 새벽을 알리면 천하의 밤을 떠돌던 귀신은 모두 귀문(鬼門)을 통해 귀신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때 신도와 울루라는 수문장이 지키고 있다가 인간에게 해코지 한 놈들만 찍어내 호랑이 밥으로 던져버린다. 신도와 울루는 귀신 잡는 귀신인 것이다. 그런데 신도와 울루의 검문이 썩 믿음직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민초의 상상력은 기어코 귀신 잡은 귀신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종규가 등장한다.

   종규는 당 현종의 꿈에 나타나 악귀를 퇴치하고 황제의 병을 낫게 함으로써 일약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다. 현종은 당시 화성(畵聖)으로 불리던 오도자에게 꿈에 본 형상을 그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상상계의 무중력을 떠돌던 종규는 비로소 인간 세계의 형상을 갖게 되었다. 이후 종규의 형상은 황제가 신하에게 하사하는 신년 선물의 필수 품목이 되고 악귀를 쫓고자 하는 민가의 대문마다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중산출유도'에서 종규의 나들이는 그 정체가 좀 모호하다. 그것은 두 번째 가마에 있는 종규의 누이 때문이다. 험상궂은 종규에게는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다. 그 누이와 함께 나오는 도상은 누이를 시집보내는 '종규가매도(鐘馗嫁妹圖)'라는 제목이 붙는다. 그렇지 않은 종규의 나들이는 대개 귀신 사냥이다. 화제가 '중산출유도'인 것을 보면 화가는 아마 귀신 사냥을 그리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긴 두루마리의 구성을 위해 종규의 여동생을 그려 넣는 순간 이미지들은 화가의 기획 의도를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비분강개'에 끼어든 익살

  '중산출유도'의 등장인물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그룹은 종규를 가마에 태우고 앞장서 가는 그룹이다. 두 번째는 종규 여동생과 시녀들의 그룹이다. 세 번째 그룹은 짐을 들고 가는 졸개 귀신들의 행렬이다. 세 그룹은 시선에 의해 절묘하게 서로 이어진다. 뒤돌아보는 종규의 시선을 누이가 받고, 누이 그룹에서 고양이를 안은 한 시녀가 뒤를 돌아봄으로써 셋째 그룹과 이어진다. 마치 눈짓에 의해 장면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환술처럼.

   첫 번째 그룹의 시선 가운데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들이 있다.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표시다. 그 할 말이란 곧 비분강개 속에서 귀신을 그리는 화가가 하고 싶은 말이리라. 그것은 악귀 같은 이민족, 원 왕조의 퇴출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정면응시는 우리를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이기도 하다. 특히 유일하게 대열을 이탈하여 그림과 우리가 만나는 접선까지 내려와 우리를 바라보는 까만 도깨비는 우리를 그 어두운 세계로 유혹하는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도깨비의 모습이 익살스럽다. 여기서부터 화가가 기획했을 비분강개에는 해학적 균열이 발생한다.

   퍼레이드가 악귀 사냥이 아니라 혼례 행렬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드는 누이 그룹, 저 눈 아래가 검은 기이한 여인들은 우리를 밤과 꿈의 판타지로 이끄는 장치이다. 누이의 모자는 보름달 같으며, 가마 뒤의 시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고 그 뒤의 시녀는 베개를 들고 있다. 보름달과 고양이와 베개는 모두 밤과 꿈과 몽상의 표지이다. 등장인물들의 눈이 모두 왕방울 같은 이유는 요마(妖魔)들이라서보다 지금이 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은 밤의 세계다.

   세 번째 그룹은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가마가 만드는 횡선이 주를 이루는 앞부분에 비해 여기는 졸개들이 들고 있는 장대의 횡선과 사선이 화면에 역동적인 리듬을 만든다. 장대에 매달린 작고 검은 것들은 아마 포획된 악귀들 같은데 그 몰골들이 가련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졸개들이 든 돗자리, 봇짐, 커다란 호리병박(아마 술병?), 광주리 등은 금방이라도 흥겨운 잔치판을 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선 행렬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이곳은 카니발이다.


■잡귀 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이 카니발에는 미묘한 대립들이 숨어 있다. 종규는 그 어원이 '방망이'이며 또한 장승의 기원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방망이 종규는 남근의 상징성을 가진다. 그 상징성은 졸개가 들고 있는 칼에 의해 강화된다. 반면 보름달 누이는 뒤의 호리병박과 의미상 이어지는데, 호리병박은 여체 혹은 여음의 오래된 상징이다. 공교롭게도 칼과 호리병박을 든 귀신 둘은 모두 정면을 응시하면서 그 상징성을 우리에게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대립 이미지가 있다. 세 번째 그룹 호리병박 바로 뒤를 자세히 보면, 귀신(도깨비) 뿔을 잡고 있는 익살스러운 요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선묘로만 그려졌는데 잘 보면 꼬리가 여러 개인 구미호다. 구미호는 크기가 유사한 첫 그룹의 까만 도깨비와 흑백 대비를 이루는 해학적 요소이다. 실상 까만 도깨비가 종규와 함께 남성-남근의 영역을 이룬다면, 구미호는 호리병박과 함께 여성-여음의 영역을 이룬다. 이러한 이미지의 재담들이 그림에 다양한 결을 부여하면서 질펀한 이미지의 카니발을 연다.

   
    원이라는 몽골 악귀를 토벌하고자 하는 준엄한 퇴마의 그림에 이러한 재담과 익 살을 슬쩍 넣을 줄 알았던 공개는 비분강개하는 지사이면서도 분명 유머를 아는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귀신 잡는 귀신 종규를 만난 김에 우리도 한번 외쳐볼 일이다. "훠어이 훠어이 잡귀야 물러가라." 묵은해를 떠나보내면서. 

  



기운생동(氣韻生動) | 中國의 歷史文化
관운 | 조회 58 |추천 0 | 2014.06.05. 18:50
  

 

기운생동(氣韻生動)

 

  

   우리는 훌륭한 예술작품을 보고는 '살아서 움직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표현한 대상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표현할 대상''표현된 대상'을 서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표현했을 때도 이런 말을 쓴다. 이처럼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을 형사(形似)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 예술은 형사보다는 대상 뒤에 숨어 있는 내용을 표현하길 요구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신사(神似)이다. 예술적 표현은 대상에 대한 사실적 표현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지만, 대상의 외형에 담겨진 내재적인 정신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듯 '형사'를 초월하여 '신사'에 도달하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여겼다. 서양과 달리 중국미학이 '신사(神似)'·'표현(表現)'·'사의(寫意)'에 중점을 두는 것도, 바로 형상을 초월한 '상외지상(象外之象)'·'미외지미(味外之味)'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의경(意境)'·'신사(神似)'·'사의(寫意)'·'초이상외(超以象外)' 등의 개념 역시 이것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신을 우리는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작품에 대한 총체적 요구이며, 최고의 예술적 경지이다. 밖으로 드러난 형체와 색을 표현할 뿐 아니라 내재적인 정신적 기질과 성격적 특징을 중점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이러한 경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동적인 느낌을 주는가 하면,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고 현실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작가와 대상은 그 어떤 것도 우주적 기와 통해 있다. 그 우주적 기와 교감하기 위해서는, 기교적이며 인격적인 수양과정을 통하여 대상의 세계를 관조해야 한다. 그러나 '기운생동'은 결코 우아하거나 화려한 화면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추악한 모습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남송(南宋) 공개(龔開, 1222-1304)중산출유도(中山出游圖)를 예로 들어보자. 이 그림에는 외양이 험상궂고 추악한 종규(鍾馗)와 그를 추종하는 온갖 잡 귀신이 등장한다. 종규와 그 여동생이 작은 귀신들이 메는 가마에 타고 유람을 나서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종규는 중국민간 전설에 등장하는데, 외모는 비록 추악하게 생겼지만 사악한 무리를 제거한다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화면 전체가 모두 검은빛으로, 종규가 긴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검은 비단 모자를 썼을 뿐만 아니라, 종규의 여동생도 얼굴에 검은 분 화장을 했으며 잡귀신들 역시 온몸이 검다. 종규는 큰 눈을 부릅뜨고 얼굴 가득 검은 수염이 나 있으며, 잡귀신은 해골같이 뼈만 남아 있는 추루한 모습이다. 용필이 거칠면서도 화면을 형성하는 힘이 강렬하다.

 

   거친 용필과 음침한 형상 속에 유머가 담겨 있다. 추악한 외형에 대한 표현은 풍자적 의미와 함께 추악미(醜惡美)의 표현이다. 화면 전체에 흐르는 대상의 음침하고 거친 외양 속에 숨어 있는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다. 외양 속에 숨어 있는 내재미를 표현하는 것은 기교와 화의(畵意)가 결합한 경지이며, 그것으로부터 외양의 한계를 초월한 내재적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기운생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첫째, '기운생동'의 핵심은 '변화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의 세계는 상호 대립적인 음()과 양()의 변화로 이루어져 있다. 양자의 대립과 극복, 즉 양의성(兩儀性)을 터득하는 것이 '기운생동'을 이해하는 길이다. '기운생동'은 조화의 미학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예술적 대상을 우주공간의 끝없는 변화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둘째, 낡은 형식이나 문화의 구속으로부터의 일탈과 파격이 '기운생동'의 미학을 조성한다. 예술가의 창조적 역량은 세속의 제도나 형식으로부터 벗어나 정신적 해방을 획득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초월하고 그 내면적 본질을 파악할 때, 예술적 생명력이 살아난다.

 

셋째, 기법과 정신의 통일이 '기운생동'의 경지를 만든다. 사혁이 말한 육법(六法)은 개별적 독립체가 아니라 유기적 상호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손과 만나는 붓이나 종이, 그리고 표현되는 대상이 '()'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동안 정신적 수양과 기법적 수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운생동''전신(傳神)'의 결과라고 하여 '()'부분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예술의 본래 기능과 영역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넷째, '기운생동''상외지상(象外之象)'언외지지(言外之旨)'의 미학이다. '기운생동'은 대상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내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비록 화려한 색채나 수려한 수사가 없어도 대상 속에 작가의 개성적 특징이 저절로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운생동'은 수식과 기교의 외부적 장치 속에 들어 있는 본질을 파악하는 미학이다.

중국 그림을 보면, 물체가 그려져 있는 부분과 그려져 있지 않은 빈 공간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고 빈 공간이 많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이 이른바 '여백의 미'이다. 이는 대상의 형체보다는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두 그림에는 모두 빈 공간이 있다. 그러나 두 빈 공간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명대(明代) 진홍수의 그림은 반 이상이 빈 공간이다. 그나마 그려진 부분 역시 대부분 자연 산수이고, 사람과 건물은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의 여백은 광활한 우주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다음 페이지의 오휴(吳休)의 그림은 하단부에 자그마한 빈 공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외견상의 여백은 작아 보이지만, 오히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담아 내고 있다. 위로부터 길게 뻗어 내리는 폭포수 아래에는 이를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王时敏小像》(明)曾鲸 绢本设色64cm×42.3cm 现藏天津市艺术博物馆


   이런 미학은 산수화뿐만 아니라 인물화에도 적용된다. 증경(曾鯨, 1568-1650)왕시민소상도(王時敏小像圖)를 보자. 이 그림은 증경이 당시(明 萬曆 丙辰 五月) 25살이던 왕시민을 그린 것이다. 왕시민은 명말 청초의 화가였다. 먼지 털이개를 들고 방석 위에 앉아 있는 왕시민의 모습은, ()보다는 선조(線條)가 중심이다. 인물 외에는 배경에 아무 것도 장식하지 않았다. 실처럼 부드러운 선만으로 한 인물의 풍모, 즉 사대부의 지고한 인격, 엄숙한 자태, 단아한 외모를 유감없이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이 그림 속에서 우리가 잔잔한 음악과 간결하고 고요한 정조를 느낄 수 있다면, 이는 모두 대상의 내면을 중요시하는 미학 때문일 것이다.

 

   전곡(錢穀, 1508-1578)동희상(董熙像)에 표현된 간결한 선조의 맛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편복한 여인의 반신상을 그린 것인데, 여인의 정숙한 풍모와 청순한 이미지 그리고 고매한 인격을 몇 가닥의 선으로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역시 매우 놀라운 일이다.

 

   두 그림 모두 외형을 비슷하게 묘사하는 '형사(形似)'보다는 대상의 정신을 묘사하는 '전신(傳神)'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미학적 표현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중국 그림은 간결과 압축의 기법을 사용하며, 숨겨져 있는 것이 나타나 있는 것보다 깊고 광활한 미학을 추구한다. 중국의 그림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총체적 예술행위의 하나이다. 이렇게 별개로 존재하는 것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은 중세의 보편주의에 의한 것이다. 이는 중세의 지식인들이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우주 속의 하나의 보편적 원리 속에서 파악하려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백의 미학-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깊고 넓은 미학 (중국,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 2011.3.3, 다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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钱谷 锺馗移家图(局部)

钱谷(1508-1578) 锺馗移家图(局部)





中国明代画家 钱穀

    钱穀,[明](一五○八至?)一作(一五○八至一五八七)字叔宝,自号罄室,吴县(今江苏苏州)人。少孤贫,失学,迨壮始知读书。家无典籍,游文徵明门下,日取架上书读之,以其余功点染水墨,便学心通。山水爽朗可爱,兰竹兼妙,翩翩不名其师学,而自腾踔於艺苑名公间。手录古文金石书几万卷。善书,行法苏,篆法二李,小楷法虞、欧,每得其妙於法外,识者以为真有渴骥奔猊、漏痕折钗之势。然为画掩,世罕知者。按明史附文徵明传作壬申(一五七二)六十五卒。考故宫博物字藏有万历六年(一五七八)客金陵王氏修行馆作兰竹卷,时年七十一。《冯元成集、肯史·文徵明传、列朝诗集小传、苏州府志、明画录、无声诗史、明史·艺文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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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代字画名人钱穀人物画



钱谷 董熙像_百度图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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