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자 이성희 '이미지의 모험' <38> 오창석 '세조청공도': 천지의 새 기운을 담는 방 안의 자연

2017. 3. 23. 04:02美學 이야기



      

미학자 이성희 '이미지의 모험' <38> 오창석 '세조청공도': 천지의 새 기운을 담는 방 안의 자연

정물, 방 안에서 솟구치는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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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5-12-29 18:54:56
  •  |  본지 18면

   


   
세조청공도(歲朝淸供圖)- 설날 아침에 삶의 새로운 시작을 감사하고 찬미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이다. 마치 신년에 귀한 이에게서 받는 반가운 연하장처럼 맑고 청량하면서도 굳센 기운이 감돈다. 중국 청대 말기 화가 오창석의 작품이다.
오창석의 그림은
전통과 근대가 등을 맞댄다
고전의 힘으로
새로운 청신함을 창조한다
그것이 또한
겨울의 죽음을 이겨내고
생명의 불씨를 새로 켜는
설날의 천지마음 아니겠는가


  삶이란 죽음과 재생의 반복이다. 겨울의 황량한 죽음, 그 심연에서 봄의 불씨가 실눈을 뜰 때, 우리는 그것을 새해, 설날이라고 한다. 우주의 계절은, 그리고 삶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청대 말기 화단의 일대 종사였던 오창석(吳昌石, 1844∼1927)은 71세에 맞이하는 설날 아침에 삶의 새로운 시작을 감사하고 찬미하는 '세조청공도(歲朝淸供圖)'를 그렸다. 마치 신년 연하장 같이 맑고 청량하면서도 굳센 기운이 감도는 이 작은 풍경 안에 신운(神韻)이 생동하고, 광활한 우주의 생명력이 숨 쉰다.

오창석은 절강성 안길현 출신으로 학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대는 대격변의 소용돌이였다. 그가 태어나가 4년 전에 아편전쟁이 터졌고, 7세 때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으며 이어서 제2차 아편전쟁, 중불전쟁, 청일전쟁이 이어졌다. 서구에 대한 중국의 패배가 가시화되고 전통적 삶의 양식이 도처에서 붕괴되던 때가 그에게 허용된 삶의 시간이었다.

그는 10세 때부터 인장을 새기는 데 빠지기 시작했는데, 소년의 감수성은 이 파란만장한 풍파의 시절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바람과 파도에도 지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새겨놓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의 모든 예술에는 이 전각(篆刻)의 새김이 선명하게 기입되어 있다.


■돌 매화 수선화를 사랑한 화가

  전란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시련 속에서 30세가 되어서야 오창석은 당대 저명한 화가 임백년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임백년은 이미 전각과 서법이 경지에 이른 것을 보고 그에게 서법으로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한다. 오창석은 오랫동안 전서체와 주문(주나라 때 글자체, 흔히 대전체라 한다)으로 된 금석문(金石文)을 연구하였다. 청대 사상계를 풍미했던 고증학과 금석학의 유산을 물려받았던 것이다. 그의 전각과 서예, 그림의 선은 그 근원이 모두 이 금석문에 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강건하면서도 중후한 금석의 기운이 서려 있다.

완숙한 경지에 이른 만년의 작품인 '세조청공도'에는 목이 긴 병에 꽂은 홍매화와 수석, 화분에 담긴 수선화와 부들, 그리고 바닥의 주황색 열매(모과인가?)와 감 등으로 구성된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그릇과 화초, 과일, 채소류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신년의 아침이 창호지에 스며드는 고전의 방 안은 온통 향기로 가득하다. 오른쪽 상단에서 아래로 꺾어진 홍매화 가지를 타고 매화의 그윽한 향기가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햇살처럼 사선으로 흘러내린다. 향기의 흐름은 수선화 화분에 잠시 머물고는 다시 과일의 향기를 실으면서 바닥의 주황색 열매 가지를 타고 굽이를 틀며 화면 아래로 흘러 우리에게로 온다. 그리하여 화면은 고요하면서도 생동하는 흐름을 품는다.

그 흐름의 가운데 부동의 침묵인 수석(壽石)이 있다. "돌은 매화와 어울려 더욱 기이하고, 매화는 돌과 어울려 더욱 맑아진다"고 오창석은 말했다. 돌과 매화는 어떻게 서로 어울리는 걸까? 돌과 매화는 모두 생명의 한계선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겨울, 그 죽음 속에서 다시 생명을 깨우는 첫 빛과 향기가 매화인 반면, 돌은 아득한 시공의 무정(無情)을 응축한다. 이 둘이 마주칠 때, 문득 매화는 고목의 가지에 고전의 시공을 열면서 예스러워지고, 돌의 차가운 심장에는 생명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한 덩어리 돌과 매화 한 가지만으로도 방안은 광활한 산수화가 된다.

여기에 꽃 중에 가장 맑아서 '신선화'로도 불린 수선화가 덧붙여지면 오창석이 가장 사랑한 세 벗이 된다. 그는 이 세 벗을 몹시 사랑하여 이들과 함께 모든 형체와 자취를 다 잊고 초연하게 세속 밖에 있게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 벗보다 '세조청공도'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를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은 생명(식물)과 생활의 기물(병, 화분)과 돌이다. 이 셋은 전혀 다른 범주의 것들이지만 하나의 선, 혹은 하나의 기운으로 이어진다. 그 기운이란 유정물과 무정물 모두를 가로지르는 천지의 리듬이다.


■금석의 강건함, 속필의 생동감

   
명구매화도- 매화를 생활의 기물과 나란히 그렸다.
  서양의 정물화는 '나뛰르 모르뜨'(nature morte)라고 하는데 프랑스어로 '죽은 자연'이라는 말이다. 서양 정물화의 꽃이나 사과는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생성의 연관 관계에서 차단된 채 화병이나 테이블 위에 놓인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꽃피운 정물화에는 화려한 꽃들이 제각각 꽃말이 있는 것처럼 각각 어떤 의미를 지시하지만, 정물화의 근원적인 미학은 시듦, 허무의 미학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화훼도, 그리고 이 '세조청공도'는 천지의 생성과 연관을 잃지 않는다. 오창석의 '명구매화도'에는 생활의 기물과 나란히 그려진 매화가 땅 위에 솟은 것인지 방 안에 놓인 것인지조차 모호하다. 허무가 아니라, 작은 방안에서도 구현되는 천지의 힘이다. '세조청공도'의 매화는 비록 화병에 꽂혀 있지만, 병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생명의 힘을 드러낸다. 이곳은 살아 있는 자연, 소우주이다. 꽃과 화분과 돌은 생성의 선을 공유한다.

오창석의 중후하고 강건한 선에는 금석에 새겨지는 기운이 흐른다. 왼쪽 상단의 화제를 보면 그가 해서나 행서를 초서의 흐름으로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행서이기도 하고 초서이기도 한 이 묘한 선은 그대로 그림의 선이 된다. 그림의 선이 금석기의 강건함 속에서도 속도감과 생동하는 흐름을 잃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흉중에 형상이 충만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둠 속에서 이미지가 꽃을 피우는 순간, 마치 솔개가 토끼를 낚아채듯 순식간에 속필로 이미지를 가로챘다. 이 금석의 강건함과 속필의 생동감이야말로 죽음을 이겨내는 재생의 아침에 오창석이 우리에게 보내는 선물이다.


■문인화 틀 벗고 과감한 채색

  오창석은 51세 때 강소성 안동현의 현령으로 추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1개월 만에 관직을 떠나고 만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예인(藝人)이었다. 화가로서 오창석의 삶은 거의 상해에서 이루어졌다. 상해는 당시 가장 번성하던 근대적 상업도시였다. 그는 서권기 가득한 학자였지만, 동시에 그림을 팔아 호구지책을 삼는 직업화가였다. 그는 전통 문인화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시민 계층의 기호를 받아들여 길상의 소재를 등장시키고 과감한 채색을 도입하였다.

그의 그림에는 문인화의 서권기와 시장이 만나고, 전통과 근대가 등을 맞댄다. '세조청공도'는 '법고창신(法古創新)', 고전의 힘을 통해 새로운 청신함을 창조한다. 그것이 또한 새로운 날, 겨울의 죽음을 이겨내고 생명의 불씨를 새로 켜는 설날의 천지 마음이 아니겠는가. 굳이 설날이 아니라도 우리는 하루하루 죽음을 이겨내고 새날을 맞는다. 아침에 눈 뜨는 오늘 하루는 우주에서 가장 새로운 날이다.

   
절집에 전해오는 옛 이야기 한 편이다. 어느 15일 아침, 운문문(雲門) 화상이 중들에게 말하기를, "15일 이전의 일은 너희에게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에 대해 말해보라." 아무도 말하는 자가 없자 운문이 스스로 말했다. "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이로다!('벽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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