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7. 10:16ㆍ경전 이야기
- 브라흐마나의 제식주의 -
1. 브라흐마나와 제식주의
B.C.1000-600년 무렵에 이르면서 베다의 본집에 대한 해석과 제사의 규칙을 담은 브라흐마나(Brāhmaṇa) 문헌들이 작성되기 시작했다. 브라흐마나라는 용어는 원래 바라문(Brahman) 종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차츰 베다에 대한 주석을 집성한 문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브라흐마나에는 제사의 규칙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만뜨라의 의미에 대한 분석도 나타난다.
브라흐마나는 제식에 관한 깊은 사색을 통해 제식의 만능을 기하였다. 베다에서 비롯된 제사 의례는 이 시기에 이르면서 매우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 절차가 규정되었다. 제식의 복잡화는 제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것을 수행하는 바라문 사제들은 세습적 제관으로서 특수한 사회계급의 지위를 공고히 하였다. 그들은 제식에 대한 관념을 더욱 발전시켜 자연계의 운행과 질서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제사의 실천에 연결시켰다.
브라흐마나 전반에 걸친 사상의 일관된 특징을 한마디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브라흐마나의 전체적인 흐름이 형식적인 의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브라흐마나에서는 베다의 찬가들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영감이나 감동이 희석되는 대신 제사 의식 자체가 주된 관심사로 부각된다. 따라서 기도의 의미가 정해진 형식에 따라 만뜨라를 읊조리고 거룩한 신조들을 일정한 운율에 맞추어 낭송하는 따위의 의례의 집행으로 한정되게 되었다.
브라흐마나에 이르면서 제사의 모든 의식이 세세히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제사의 규정이 엄밀해 지면서 인격신에 대한 냉담한 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제사의 만능화로 인해 신의 위상이 급격히 좁아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제사란 원래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으며 혹은 신에게 은혜를 기원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제사의 절차가 정교해지고 형식화됨에 따라 신이 아닌 제사 자체가 더욱 중요시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제사의 효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을 불러 일으켰고, 급기야 신조차도 제사 없이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믿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바로 이것이 브라흐마나 문헌에 나타나는 제사만능주의이다. 이것에 따르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올바른 제사 행위 자체이다. 따라서 제사는 우주론적 의의를 지니게 되었고, 제사를 주관하는 바라문들은 그 스스로 제사의 신비한 힘을 집행하는 주술자가 되었다.
2. 브라흐만 개념과 업 관념의 정착
이러한 제사만능주의로부터 인도철학에서 2가지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 사고가 싹트게 된다. 하나는 우주의 통일적 원리이자 실재를 나타내는 브라흐만(Brahman) 개념의 성립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의 인과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정착이다. 전자는 자율적 인격성을 배제한 ‘원리 혹은 법칙으로서의 신’을 나타내고, 후자는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는 것으로 업 관념의 시원적 형태이다.
브라흐만(√bṛh, 팽창하다, 전개하다)이란 베다 본집에서도 발견되는데, 대부분은 송가나 기도 내지 주술의 말 혹은 그 말에 들어 있는 신비한 힘을 뜻했다. 이 용어에는 사물의 운행 과정을 지시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따라서 리타(ṛta, 理法)라든가 존재(sat, 有) 등의 용어와도 상응한다. 즉 이 용어는 만유와 제신의 배후에 있는 근원적 실재 혹은 법칙성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제사만능주의에 있어서 브라흐만 개념은 제사의 효력을 설명하기 위한 인과적 원리 혹은 이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제사만능주의에 따르면 규칙에 따라 행해진 제사는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것에 상응하는 필연적 결과를 야기한다. 바로 거기에서 브라흐만 개념은 제사 행위의 인과적 효용성을 설명해 주는 원리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 개념은 인간 자신이 만유의 운행에 주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브라흐만은 인격성이 배제된 ‘중성적 원리’로서의 의미를 지녔고, 그러한 ‘중성적 원리’에 대한 인식은 그것의 활용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브라흐만 개념의 정착과 더불어 인간은 신들의 영역에 가담하여 우주의 생성과 발전에 참여하는 계기를 맞는다. 이와 관련하여 까우시따끼 브라흐마나(Kauṣītakī Brāhmaṇa)에는 “인간은 그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 세계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26. 3)”는 내용이 나타난다. 또한 사따빠타브라흐마나(Śatapatha Brāhmaṇa)에는 “인간은 물론 신까지도 제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은 제사에 의해 현재의 위치를 얻는다.(III, 1, 4, 3)”는 언급이 나타난다.
또한 제사만능주의는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는 업 관념에 매우 근접한 것이다. 따라서 행위의 인과율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정착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여러 브라흐마나 문헌에 자주 나타나는 아뿌르바 까르마(apūrva-karma)는 제식주의의 전문 술어로서, 특정한 제사 행위가 아직 그 결과를 드러내지 않고 잠재적인 힘으로만 존속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것은 업에 의한 응보의 관념이 구체화되는 단계적 과정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3. 브라흐마나의 내세관
브라흐마나의 내세관 역시 고유의 제식주의와 밀접한 상관성을 지닌다. 사후 세계의 행복을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관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규정된 절차에 따라 치른 제사는 사후의 안락함을 보장하는 應報思想이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새롭게 정립되기 시작한 업 관념과 맞물려 인도철학 전체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 세상에서 아그니 호뜨라(Agni Hotra)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올바른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나무를 꺾어서 불에 넣는 자,
이런 자는 저 세상에서 나무가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그를 먹는다.
이 세상에서 아그니 호뜨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올바른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울부짖는 가축을 구워 먹는 자,
이런 자는 제 세상에서 가축이 인간의 모습을 취해서 그를 먹는다
.......... 중략 .......
이 세상에서 아그니 호뜨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올바른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믿음이 없이 제사를 행하는 자는 믿음 없는 자가 된다.
반대로 믿음을 가지고 제사를 행하는 자는 믿음으로 이른다. (Śatapatha-Brahmaṇa. i. 42. 44.)
* 브라흐마나의 윤리적 측면
한편 브라흐마나의 제식주의는 더한층 발전된 윤리 의식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브라흐마나에서는 인간들에게 주변의 대상에 대해 갚아야 할 빚 혹은 의무가 있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① 신에 대한 의무, ② 성전에 대한 의무, ③ 죽은 조상에 대한 의무, ④ 사람에 대한 의무, ⑤ 하등 생물에 대한 의무로 집약된다. 이러한 의무규정에는 고매한 윤리의식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누구나 식사 전에 음식의 일부를 신․조상․사람․동물들에게 나누어주고, 또한 일상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관행은 인간 자신이 그를 둘러 싼 주변 세계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한 방법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또한 신을 공경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은 스스로 신성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과 같은 의무들은 종교적인 것일 뿐 아니라 윤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한편 브라흐마나 시대에 이르러, 아슈라마다르마(āśrama-dharma)가 도입되었거나 혹은 더욱 정교한 형태로 체계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4단계에 걸친 삶의 과정을 규정한 것으로, 梵行期(brahmacārin), 家住期(gṛhastha), 林棲期(vānaprastha), 遊行期(sannyāsin) 등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한다.
범행기는 생후 일정한 연령(16년, 22년, 24년)에 도달하여 지덕을 겸한 스승 아래에 들어가 베다를 공부하고 종교적으로 심신을 단련하는 기간이다. 가주기는 범행기를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와 일가의 가장이 되어 생업에 종사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임서기는 가장으로서의 임무를 마친 다음 가사를 자손에게 상속시키고 아내와 함께 혹은 독신으로 심신을 수련하는 기간이다. 마지막의 유행기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사방을 유행하면서 임종의 때를 기다리는 기간으로 설정된다.
아슈라마 다르마는 현세적인 삶의 과정에 충실하면서도 초월주의적 이상을 실현케 하는 원리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것은 제식주의의 형식적 사고가 사회적 윤리의식과 병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이와 같이 윤리의식과 결부된 형식성의 강조는 브라흐마나 고유의 종교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점은 브라흐마나의 종교 체계가 지닌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을 오랫동안 유지케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편 제식주의의 형식성은 카스트(caste) 제도의 성립과도 일정한 관련성이 있다. 리그베다의 마지막 찬가에는 신이 태초의 거인 뿌르샤(Purusa)로부터 네 계급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거기에 따르면 뿌루샤의 입으로부터 브라흐만(Brahman)이 나왔고, 팔로부터는 끄샤뜨리아(Kṣatriya)가 나왔으며, 넓적 다리로부터는 바이샤(Vaiśya)가 나왔고, 발은 수드라(Śūdra)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내용이 브라흐마나 시대에 이르러 구체적인 사회 계급제도로 정착된 것이다.
카스트 제도는 폐쇄적인 인도의 전통사회가 남긴 산물로서,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안고 있다. 이 제도는 인도 사회의 자유로운 사고를 억누르고 사상적 발전을 저해하는 기능을 하였다. 특히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수의 지배자 계급이 다수의 민중들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해 왔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그러나 카스트 제도는 원래 직능상의 분업 체계가 지녔던 장점에서 비롯된 것이며, 바라흐마나 초기에만 하더라도 바라흐만이 반드시 끄샤뜨리야나 바이샤 계급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은 아니다.
* 제식주의의 의의와 평가
브라흐마나의 제식주의는 우주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인간 자신에 대한 주체적․자존적 능력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제사의 형식적 측면에 치중하여 내면적인 의도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난점이 지적된다. 더욱이 제사 행위는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소수 바라문 계급의 전유물이었고, 그러한 이유에서 그들의 지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취약점은 브라흐마나의 제식주의가 지닌 태생적 한계라 할 수 있다.
브라흐마나 문헌은 제식만능주의라는 독특한 방법을 통해 인간 지위의 근본적 전환을 가능케 해 주었다. 즉 신의 지배 아래에 종속된 존재에서 오히려 신을 부릴 수 있는 존재로 격상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했던 제사는 세속적인 쾌락이나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목적에서 수행되었다. 다시 말해서 브라흐마나의 제식만능주의는 세속적인 가치 추구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바로 그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인간은 스스로 욕구하는 것을 이룰 때 잠시나마 행복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의 휴식에 불과하다. 권태의 상태에 빠지던가 아니면 새로운 욕구의 충족을 위해 부단히 나가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까타 우빠니샤드(Kaṭha-Upaniṣad)에는 “재물에 눈이 어두운 미혹한 이에게는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 세상이 있을 뿐 다른 세상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나의 지배 아래에 떨어질 것이다.(“na sāmparāyaḥ pratibhāti bālam pramādyantaṁ vittamohena mūḍham: ayaṁ loko nāsti para iti mānī, punaḥ punar vaśam āpadyate me.” Kaṭha-Upaniṣad I. 2. 6.)”는 구절이 등장한다.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반성적 사고는 브라흐마나의 제식만능주의적 사고에서 부각되지 않았다. 따라서 신성한 종교적 의식마저 세속적이고 상업적인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될 위험성에 노출된다. 사실 브라흐마나는 지극히 상징적이고 난해한 절차들에 치우쳤고, 나태하고 교활한 바라문 사제들의 허례 허식을 조장한 측면들이 없지 않다. 이것은 내적 본성에 대한 성찰이 미약한 종교적 분위기에서 쉽사리 노출되는 타락상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락상은 우빠니샤드의 초월주의적․금욕주의적 가르침이 배태되기 위한 조건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권오민 지음, 『인도철학과 불교』, 서울: 민족사, 2004.
길희성 지음, 『인도철학사』, 서울: 민음사, 1989.
이거룡 옮김, 『인도철학사』 1권, 서울: 한길사, 1999.
William K. Mahony, “Karman”,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vol.8.,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1987.
< 수행자의 길>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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