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바드기따와 힌두교 / 인도철학사(교안) 임성택 교수

2013. 7. 27. 10:24경전 이야기

 

 

인도철학사 강의안 7

- 바가바드기따와 힌두교 -

 

 

  1. 서사시 문헌의 등장

  고대 바라문교의 근거가 되었던 『베다』와 『우빠니샤드』의 시대는 B.C. 400년이 지나면서 일단락 되기에 이른다. 이후 A.D.200년 무렵에 이르러 본격적인 정통 힌두교의 육파철학(六派哲學)이 전개되는데, 그 중간의 대략 600년에 이르는 시기를 서사시 문학시대로 일컫는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따(Bhagavad-Gīta, A.D. 4세기)』가 바로 이 서사시 문학시대에 속한 문헌이다.

 

  서사시의 특징은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 혹은 전설 등을 통해 특정한 영웅의 행적을 객관적인 형식으로 읊었다는 점에 있다. 이 시기에 편집․저술된 대부분의 서사시는 대부분 이주민인 아리안족과 토착민인 비아리안 인종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서사시 문학은 고대 『베다』 문화의 대중적 확산이라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즉 이들 문헌의 등장으로 인해, 고대의 협소한 바라문교는 힌두교라는 포용적 종교로서 탈바꿈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인도의 2대 서사시로는 『마하바라타(Mahābharata)』와 『라마야나(Rāmayaṇa)』가 있다. 『마하바라타』는 왕권을 둘러 싼 종족간의 전쟁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며, 기원전 13-12 세기 경에 있었던 대 전쟁에 사실적 기원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형식의 18권 10만 송의 형태는 A.D. 4세기 무렵에 편집되었다. 한편 『라마야나』는 라마(viṣṇu의 화신)라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로서 전체 24000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2. 바가바드기따의 내력

  『바가바드기따(Bhagavad-Gīta, A.D. 4세기)』의 원형은 이미 B.C. 2세기 경에 성립되었으며, 바로 그것이 서력 기원 이후 대서사인 『마하바라타』에 편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학적 분석에 의하면, 『바가바드기따』는 원래 바수데바(Vasudeva-Kṛṣṇa)라는 인격신을 숭배하던 중인도 서부의 바가바타(Bhagavata)파에 의해 만들어진 독립된 詩篇이었다고 한다.  

 

  『바가바드기따』는 전체 18권 10만송으로 구성된 『마하바라타』의 제6권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으며 도합 700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의 내용은 바가바타파들이 거주하던 지방에 살았던 크리슈나(Kṛṣṇa)라는 영웅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유래하였다. 바로 이것이 바라문 문화의 중심지에 퍼지면서 비쉬누(Viṣnu) 신의 화신으로 간주되기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바가바드기따』는 100명에 이르는 드르타라슈트라(Dhṛtarāṣṭra)의 아들들과 그들의 사촌인 판두(pāṇḍu) 5형제간에 벌어진 왕권을 둘러싼 전쟁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헌에서는 판두 5형제 중에서 셋째인 아르쥬나(Arjuna)와 그의 馬夫인 크리슈나(kṛṣṇa)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친족간의 전쟁에 회의를 품고있는 아르쥬나에게 크리슈나가 무사(武士, kṣatriya)로서의 의무를 설하여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한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이다.  

 

         쿠루(Kuru)족의 왕권

                  

         드르타라슈트라(Dhṛtarāṣṭra) −−−−−−−−−−−−−−−−−  판두 (Pāndu)

         (장님으로서 통치자격을 상실)                   (왕위계승)

                                                               

                                                   유디스티라(Yudhiṣṭira, 법적 왕권상속자)

                                                   비마(Bhima)

         두료다나(Duryodhana) 外   < ---- >      아르쥬나(Arjuna, 바가바드기따의 주인공)

              99명의 형제             (전쟁)       나쿨라(Nakula)

                                                   사하데바(Sahadeva)

 

                            (『바가바드기따』 기본 구성)

 

  3.  『바가바드기따』의 3종 요가

  『바가바드기따』는 인도인 특유의 종교적 감성을 잘 드러내는 문헌으로 평가된다. 여기에는 궁극의 구원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3가지 요가의 형식으로 제시된다. 즉 신애(信愛)의 요가(bhakti-yoga), 행위의 요가(karma-yoga), 지혜의 요가(jñāna-yoga)가 그것이다. 이들 3종의 요가는 개개인의 기질과 성향에 부응하는 것으로, 각기 다른 유형의 종교적 삶이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먼저 신애의 요가(bhakti-yoga)에서는 신(神)에 대한 헌신과 은총에 의해 괴로움의 세계로부터 구원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애의 요가는 인도의 유신론적 종교 사상을 대변하며, 계급적 차별이 없는 대중적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나에게 귀의하면 미천한 태생, 여자, 바이샤 그리고 수드라라고 할지라도 지고의 경지에 도달한다오(9장 32게송)”라든가, “온 존재로써 오직 그분만을 귀의처로 삼으시오. 그분의 은총으로 평안하고 영원한 처소에 이르게 될 것이오(9장 62게송).” 등을 대표적인 구절을 꼽을 수 있다.

 

  신애의 요가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철학의 전형적 유파로는 라마누자(Rāmānuja, AD. 11세기)의 유신론적(有神論的) 베단따(Vedānta) 사상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초월적 창조주로서의 이슈와라(Īśvara)와 그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간의 경계를 명확히 하였다. 그에 따르면 궁극적인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창조주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그는 인간이 행해야 할 유일한 일은 “인위적인 모든 의무행(sarvadharma)를 포기하고서 신에게 절대적으로 귀의하는 것(18장 66게송)”뿐임을 강조한다. 바로 그러한 속에서만 궁극의 구원인 해탈이 가능하다.

 

    [모든] 행위를 브라흐만 안에서 받아들이고 집착을 포기한 채 행위 하는 자는 죄악에 물들지 않는다오. 물에 [젖지 않는] 연꽃잎처럼. (5장 10게송)

    모든 존재 안에 머무는 나를 신애하며 [나] 하나에만 전념하는 요가행자는 어떻게 살든 내 안에서 사는 것이라오. (6장 31게송)

    또한 모든 요가행자들 중에서도 내적 자아로 나에게 온 자, 신심을 지니고 나를 신애하는 자가 가장 잘 제어된 자라고 나는 생각하오. (6장 47게송)

    나를 지극히 생각하면서 공경하는 사람들은 항상 제어된 자들이라오. 나는 [그들에게] 지복을 가져다 준다오. (9장 22게송)

    행동하고 먹고 공양하고 보시하고 고행하는 [그 모든 것을], 꾼띠의 아들(아르쥬나)이여!  나를 위한 봉헌으로 [여기고] 행하시오. (9장 27게송)

    [그리하면] 그와 같이 좋고 나쁜 결과를 [야기하는] 행위의 속박에서 해방될 것이오. 포기의 요가에 의해 제어된 마음으로 자유롭게 되어 나에게 이를 것이오. (9장 28게송)

    나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평등하다오. 나에게는 적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오. 그러나 나를 신애로써 숭배하는 사람들, 그들은 내 안에 [있으며] 나도 또한 그들 안에 [있다오]. (9장 29게송)

 

 한편 행위의 요가(karma-yoga)는 올바른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이것에 따르면, 현실의 삶에 직면하여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곧 구원으로 이어진다. “죽임을 당한다면 천국에 이를 것이요, 승리한다면 지상의 영광을 누릴 것이니, 싸움을 위해 결단을 내리고 일어서시오…  즐거움과 고통, 이익과 손해, 승리와 패배를 동등하게 여기고 싸울 준비를 하시오. 그리하면 [업에 의한] 죄과를 받지 않을 것이오(2장 37게송, 38게송).”라는 언급이 그것이다.

 

  행위의 요가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결과에 대한 욕심 없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행하는 무집착의 행위이다. 바로 이러한 내용은 현세적인 삶에 투철하는 그것이 곧 궁극적인 구원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행위의 요가를 중심에 두는 사상들로는 미망사(Mīmāṁsā)의 제식주의와 자이나(Jainism)의 고행주의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행위의 응보적 원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통해 초월자의 관념을 도입하지 않고서 현실 삶의 문제를 해명하려 하였다.

 

    그대의 특권은 바로 행위에 있는 것이지 결코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오. 어느 때건 행위의 결과가 [그 행위의] 원인이 되어서는 아니되오. 그대는 무행위에도 집착하지 마시오. (2장 47게송)

    요가에 의지하여 행위를 하시오. 집착을 버리고 성공과 실패를 평등히 하고 [행위를 하시오.] 다남쟈야(아르쥬나)여! 평등성을 요가라고 한다오. (2장 48게송)

     그러므로 언제나 집착 없이 행해야 할 행위를 하시오. 왜냐하면 집착이 없는 사람은 행위를 하면서도 지고에 도달하기 때문이오. (3장 19게송)

    무지한 사람들이 행위에 집착되어 행하듯이, 바라따의 자손(아르쥬나)이여! 현명한 사람은 세상의 유지를 원하여 집착 없이 행한다오. (3장 25게송)

     공덕이 없다하더라도 자신의 의무[를 행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의무를 성취하는 것보다 낫다오. 자신의 의무[를 행하는] 중에 죽는 것이 낫다오. 다른 사람의 의무[를 행하는 것은] 위험과 공포를 초래하오. (3장 35게송)

     행위 속에서 무행위를 보는 자 그리고 무행위 속에서 행위를 [보는 자는] 사람들 가운데 지혜로운 자이며 제어된 이로서 완전한 행위자라오. (4장 18게송)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정진력과 열정으로 가득 차 성공과 실패에 변함이 없는 행위자를 순수하다고 한다오. (18장 26게송)

 

  마지막의 지혜의 요가(jñāna-yoga)는 불교(Buddhism), 요가(Yoga), 상까라(Śaṅkara, A.D. 8세기)의 불이론적 베단따(Advaita-Vedānta)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그들 모두는 업에 의한 속박이 진리에 대한 무지와 번뇌로 인해 야기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참된 존재(reality)에 대한 자각을 통해 그것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예컨대 불교에서는 ‘있는 그대로(yathabhūtaṁ)’에 대한 통찰(vipassanā)에 의해 무지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고, 요가에서는 번뇌(kleśa)의 소멸을 통해 유일한 정신적 실재인 푸루샤(puruṣa)를 자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정통 인도철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상까라는 고유의 파기(破棄, sublation, subration) 이론을 통해 실재(實在, pāramarthika-sattā, reality)와 현상(現象, vyāvahārika-sattā, appearance) 그리고 비실재(非實在, prāthibhasika-sattā, unreality)를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현실 삶의 속박과 구속은 개개인이 지닌 정신적 성취에 따라 달리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해탈의 이상향은 인식론적 문제로 귀착된다.  

 

  이러한 지혜의 요가와 관련하여, 『바가바드기따』에는 “지혜로써 수련된 현명한 사람들은 업으로부터 생겨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환생의 속박을 벗어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한다오(2장 51게송).”라든가, “모든 일에 욕망과 분별을 버린 사람, 지혜의 불로 업을 태워버린 사람을 일컬어 철인들은 현명한 사람이라 부른다오(4장 19게송).” 등의 구절이 등장한다. 이들 게송은 지혜야말로 권위와 형식을 넘어선 이상적인 구원의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혜로써 수련된 자는 이 세상에서 선행과 악행 양쪽 다 버린다오. 그러므로 요가를 수련하시오. 요가란 행위에 있어서의 숙련이라오. (2장 50게송)      

    왜냐하면 지혜로써 수련된 현명한 사람들은 행위로부터 생겨난 결과를 포기하여 환생의 속박을 벗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라오. (2장 51게송)

    그대의 지성이 미망의 수렁을 건너 설 때, [그대는 앞으로] 들어야 할 것과 [이미] 들은 것에 대한 초탈에 도달하게 될 것이오. (2장 52게송)

    모든 일에 욕망과 분별을 버린 사람, 지혜의 불로 행위를 태워버린 사람을 현명한 사람들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소. (4장 19게송)

    확고한 지혜를 지니고 미혹함이 없이 브라흐만을 알며 브라흐만에 머무는 자는 좋아하는 것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을 것이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얻어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오. (5장 20게송)

    외계와의 접촉에 집착됨이 없는 자아를 지니고 자기 안에서 행복을 발견할 때, 그는 브라흐만의 요가에 의해 제어된 자아로 불멸의 행복에 도달한다오. (5장 21게송)

     실로 이들 모두가 숭고하오. 그러나 나는 지혜로운 자를 바로 [나] 자신으로 여긴다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제어하고 무상의 경지인 바로 나에 머물기 때문이라오. (7장 18게송)

 

 

  4.  『바가바드기따』의 포용성과 3종 요가의 회통

  『바가바드기따』에서는 이러한 지혜의 요가를 통해 나머지 다른 요가와의 회통을 시도한다. 예컨대 “행위 속에서 행위하지 않음을 보는 자, 그리고 행위하지 않음 속에서 행위를 보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절제된 이로서 완전한 행위자라오(4장 18게송).”이라든가, “어리석은 자들은 이론과 실천을 다르게 말하지만, 현명한 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오. 하나라도 바르게 전념한 자는 둘의 결과를 얻는다오(5장 4게송).” 등의 구절이 그것이다.

 

  『바가바드기따』는 이러한 방식으로 3종의 요가가 서로 보완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바로 이점은 다종교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어떠한 자세로 타인 혹은 타종교를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나의 길을 따르나니, 나에게 오는 대로 나는 베푼다오(4장 11게송).”는 언급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바가바드기따』는 여러 힌두 학자들에 의해 서로 다른 종교들이 만나 회통할 수 있는 지혜의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다.

 

    [나에게] 귀의한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서 어떠한 형상을 숭배하길 원한다면, 누구든 어떠한 것에 대한 것이든, 나는 그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허락한다오. (7장 21게송)

    그는 그러한 믿음으로 스스로를 절제하며 그러한 숭배를 원한다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소망을 성취한다. 바로 내가 그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라오. (7장 22게송)  

 

    또한 신심으로 가득 차 다른 신을 신애하고 숭배하는 자들도, 꾼띠의 아들(아르쥬나)이여! 바로 나를 숭배하는 자들이라오. [비록] 정해진 틀을 벗어났지만. (9장 23게송)

     행위 속에서 무행위를 보는 자 그리고 무행위 속에서 행위를 [보는 자는] 사람들 가운데 지혜로운 자이며 제어된 이로서 완전한 행위자라오. (4장 18게송)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항상 만족하며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사람은 행위에 관여된다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오. (4장 20게송)

    이들 가운데 지혜로우며 항상 절제되어 [나] 하나만을 신애하는 자가 뛰어난 자라오. 지혜로운 자에게 있어 나는 지극히 사랑스러운 [존재이며,] 그도 또한 나에게 사랑스럽기 때문이라오. (7장 17게송)

 

  5. 『바가바드기따』의 영향

  『바가바드기따』는 일찍부터 서구권에 보급되어 수많은 애독자를 낳았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괴테(Goethe, 1749-1832)․피히테(Fichte, 1762-1814)․쉘링(Schelling, 1775-1854)․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니체(Nietzsche, 1844-1900) 등을 꼽을 수 있다. 심지어 언어학자 훔볼트(Humboldt, 1767-1835)는 『바가바드기따』를 읽을 때까지 살아 있도록 허락해 준 신의 섭리에 감사를 드릴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비베까난다(Vivekānanda, 1863-1902)라든가 오로빈도 고쉬(Aurobindo Ghosh, 1872-1950) 등의 현대 힌두교 학자들은 『바가바드기따』의 포용성을 근거로 보편종교(Universal Religion)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다. 사실 『바가바드기따』의 3종 요가는 현존하는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가 지니는 특징들을 망라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바가바드기따』에는 인도철학의 주요 가르침들이 집약되어 있다. 이 문헌에 대해서는 논리적 일관성이 다소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형식이 구애됨이 없이 무한한 종교적 영감을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다. 『바가바드기따』에 나타나는 서술상의 특징은 철학적인 사유와 논의를 수행의 방편으로 생각했던 인도인 특유의 종교 관념이 잘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6. 힌두교의 의미

  힌두교는 인도인들이 믿는 다양한 신앙 형태의 복합체를 말한다. 곧 인도에서 출현하여 『베다』의 권위를 믿고 그것을 따르는 모든 종교를 지칭한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불교와 자이나교는 힌두교의 범위 안에 포함된다. 그러나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불교와 자이나교 내부에서는 이러한 통합주의적 시각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  

 

  힌두교는 『베다』와 『브라흐마나』의 종교사상을 모두 포함시키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고대의 바라문교와 구분된다. 즉 고대의 바라문교는 아리안족을 중심으로 비아리안 문화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앙 체계로 규정할 수 있다. 반면에 힌두교는 그러한 바라문교 위에 인도 고유의 여러 토착신앙이 자생적으로 습합된 형태를 말한다.

 

  힌두교는 굽타(Gupta) 왕조의 성립(A.D.320년)을 기점으로 한다. 이 시기는 불교 등의 비아리안계 사상이 크게 발흥했던 시기로, 바라문교 내부에서 스스로를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던 때이다. 여기에는 앞에서 살펴 본 서사시 문학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힌두교는 상키야(Sāṇkhya)․요가(Yoga)․와이세시까(Vaiśeṣika)․니야야(Nyāya)․미망사(Mīmāṁsā)․베단따(Vedānta) 등 육파철학(六派哲學)의 출현과 함께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7. 힌두교의 특징

  『베다』의 종교를 모태로 하는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이다. 힌두교의 신봉자들은 보통 그가 태어난 가계에서 전통적으로 믿어온 가정의 신, 그리고 스스로가 택한 신을 믿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들은 다양한 구원의 길을 인정하였고, 어느 하나의 도그마만을 고집하여 다른 사상을 이단으로 모는 예가 거의 없었다.

 

  힌두교는 다신교이지만 그 多神의 배후에 최고신의 존재를 상정한다. 이것은 브라흐마(Brahma), 위슈누(Viṣṇu), 쉬와(Śiva)의 3신 일체설에서 잘 나타난다. 최고의 실재이자 중성적 원리인 브라흐만은 남성적 창조신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며, 위슈누는 세계의 유지자로서의 성격을, 그리고 쉬와는 파괴의 신으로 상징된다. 이들 3신은 단일한 신의 세 측면으로 해석되며 하나의 성음 ‘옴’으로 표현되곤 한다.

 

  따라서 힌두교는 다신교적 형태 안에 일신교적 성향이 잠재해 있고 할 수 있다. 바로 이점은 하나의 신이 다양한 신격이나 인물․동물 등으로 나타난다는 힌두교 고유의 化身(avatāra) 사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화신 사상은 여러 지방이나 부족 혹은 카스트의 신들이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힌두교가 지니는 이러한 포용성은 『베다』에서부터 『우빠니샤드』 그리고 『바가바드기따』로 이어지는 통합주의적 사고 경향과도 일정한 상관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권오민 지음, 『인도철학과 불교』, 서울: 민족사, 2004.

  이지수 옮김, 『인도철학』, 서울: 민족사, 1991.

  임승택 지음, 『바가바드기타강독』, 서울: 경서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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