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의궤를 통해 본 전통시대의 색채

2017. 3. 31. 23:46건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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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궤를 통해 본 전통시대의 색채

1)조선시대의 색채관념

[圖 1] 오방정색(五方正色)과 오방간색(五方間色)

              

   위의 오방간색은 오행상극(五行相克)의 원리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오행상생(五行相生)의 원리에 따라 다섯 가지 간색을 만들기도 한다.

※ 『 규합총서(閨閤叢書) 』『 染色諸法 』

   “목생화(木生火)에서 청적간색(靑赤間色)이 되니 정(짙은 보라)이고, 화생토(火生土)가 황적간색(黃赤間色)이 되니 훈(纁 분홍)이며, 토생금(土生金)이 황백간색(황백간색)이 되니 규(硅, 연두)가 되고 금생화(金生水)하여 백흑간색(白黑間色)이 되니 불(잿빛)이며, 수생목(水生木)하여 청흑간색(靑黑間色)이 되니 암(黤 천청색)/참(민색)이다.”

이밖에도 사물이나 자연현상으로부터 연상된 색명, 물감의 제작 과정으로부터 유래하는 색명이 있었고, 또 밝고 어두움, 진하고 옅은 정도의 차이에 따라 많은 색을 인식하였으며 이는 전통의 다양한 색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용하는 물감은 기술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제한되어 있었다.      

      

2)음양론(陰陽論)

                

   왕실축제에는 왕실의 화려함과 위엄을 보여주는 각종 의장품과 의장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의장품과 의장기들이 상징하는 의미들은 이들이 지닌 색채를 통해 표현되며, 그 의미들은 전통시대의 사상체계, 그 중에서도 특히 음양오행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본 장에서는 왕실축제에 반영되어 있는 전통시대의 사상 체계를 파악하기 위한 예비 작업으로서, 음양오행사상의 기초 이론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
    음양오행사상은 우주와 자연의 생성·소멸 및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을 음양(陰陽)의 소장(消長)·변전(變轉)과 오행(五行)의 순환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으로, 조화와 통일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론과 오행론은 원래는 각각 독립되어 있던 사상이었는데, 대략 기원전 4세기초인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서로 결합되기 시작하여 자연과 사회의 여러 가지 현상들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두 이론은 하나의 정합적인 사상으로 통합되었다.

① 음양론(陰陽論)
    음양오행사상은 우주와 자연의 생성,소멸 및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을 음양(陰陽)의 소장(消長),변전(變轉)과 오행(五行)의 순환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으로, 조화와 통일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론과 오행론은 원래는 각각 독립되어 있던 사상이었는데, 대략 기원전 4세기초인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서로 결합되기 시작하여 자연과 사회의 여러 가지 현상들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두 이론은 하나의 정합적인 사상으로 통합되었다.
음양(陰陽)이라는 두 글자는 어원적으로 볼 때 각각 어두움(음)과 밝음(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음(陰)에는 언덕(丘)과 구름(雲)의 상형이 포함되어 있으며 양(陽)에는 모든 빛의 원천인 하늘이 상징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음은 여성적인 것, 수동성, 추위, 어두움, 습기, 부드러움을 뜻하게 되었고, 양은 남성적인 것, 능동성, 더위, 밝음, 건조함, 굳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두 개의 상호보완적인 힘이 우주와 자연을 발생,변화,소멸시킨다고 보는 것이 음양론이다.

*음양(陰陽) 이전의 상태
    음양 이전에는 두 기운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엉켜 있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음양으로 나뉘기 전에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 형태는 혼합된 기운일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을 혼돈(混沌)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혼돈은 ‘뒤죽박죽’이라는 뜻도 있지만, 명확하게 나눌 수 없음을 가리키는 말도 된다. 예를 들어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시간, 이를 일러서 혼돈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음양(陰陽)의 분리



   하나의 덩어리였던 혼돈에 어떠한 작용이 개입하면서 음양으로 분리가 되었다. 크고 작음, 높고 낮음, 맑고 탁함 등의 구분을 하게 되는 것이 음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양은 서로 상반된 형태를 하고 있다. 음양의 대립구조는 모든 사물에 적용될 수 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음양은 고정적이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다른 것과 비교를 통해 음양이 결정되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음양 될 수도 있고 양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밝기의 정도가 서로 다른 A, B, C가 있다고 가정하자. A보다 B가 밝고 B보다 C가 밝다면 B는 A와의 관계에서는 양이 되고 C와의 관계에서는 음이 된다. 이처럼 음과 양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또 비교 대상에 따라 변화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표 1] 음양(陰陽)의 분리

양(陽)

음(陰)


양(陽)

음(陰)

단단하다

부드럽다

밝다

어둡다

유정물(생물)

무정물(광물)

활발하다

침체하다

여름

겨울

가을

나무

암석

남자

여자

소년

노인

희망

절망

미래

과거

지혜

어리석음

기쁨

슬픔

    

          

*음양(陰陽)의 순환
   음양은 기본적으로 대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균형을 맞추어 가려는 성격을 가진다. 어느 한 쪽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반드시 그 반작용이 일어나 강한 것이 약해지고 약한 것이 강해진다. 즉 양의 기운이 최고조에 이르면 거기에서 다시 음의 기운이 생성되고, 음의 기운이 최고조에 이르면 그 순간 다시 양의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시소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시소는 양쪽이 번갈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균형을 맞추는데, 여기에서 올라가는 것이 양이고 내려가는 것이 음이라고 보면 균형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음양은 서로 끊임없어 돌고 돈다. 낮과 밤이 서로 교차되는 것, 달이 차면 다시 기우는 순환을 되풀이하는 것, 또 1년의 사계절이 항상 규칙적으로 순환을 하는 것 등이 음양의 순환을 증명해 준다. 


          

                

*음양(陰陽)에서 오행(五行)으로
   음과 양이 서로 균형을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음양의 비율에 따라 사로 다른 형태가 나타난다. 음과 양의 비율이 50 대 50이면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되고, 음양 중에서 어느 한쪽의 비율이 더 크면 비율이 큰 쪽의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비율의 차이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를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오행(五行)이다. 따라서 오행은 엄밀하게 말하면 음양의 형상을 분류한 것으로, 음양의 각기 다른 모습을 정형화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표 2] 음양(陰陽)의 다섯 가지 형태 변화


성격

음양의 비율

오행(五行)

양체(陽體)

양으로서 음의 기운을 포함하고 있는 것

양>음

목(木)

극양(極陽)

양이 극(極: 최고조)에 이른 것

양100%

화(火)

중간(中間)

양과 음이 완전한 균형을 이른 것

양=음

토(土)

음체(陰體)

음으로서 양의 기운을 포함하고 있는 것

양<음

금(金)

극음(極陰)

음이 극에 이른 것

음100%

수(水)

              

3)오행론(五行論)

   오행론은 음양론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오행이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가지 원소를 말한다. 이 다섯 가지 원소가 유행(流行)·변전(變轉)하여 만물을 생성한다는 것이 초기의 오행설이다. 위의 다섯 원소가 선별된 것은 이것들이 인간의 일상 생활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① 오행(五行)의 생성

  『주자어류(朱子語類)』에는 오행의 생성과 관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즉 하나의 기가 혼돈되어 있던 상태에서 기의 맑은 기운이 양이 되고 탁한 기운이 음이 되며, 맑은 양기에서 불(火)이 생성되고 탁한 음기에서 물(水)이 생성된다. 그리고 물이 다시 탁해지면서 흙(土)이 땅이 생성되고 맑은 불의 기운은 하늘이 된다. 이어 흙 속에서 나무(木)와 쇠(金)가 생성되어 오행이 모두 갖추어지게 된다. 이상과 같은 생성 과정을 도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도식 1] 五行의 생성 과정













一氣



















































五行







                

   위의 도식에서 보듯이 오행은 음양을 바탕으로 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결국 음양과 오행은 동일한 기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행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은 곧 음양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연과 인간 사회를 설명할 때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이론들은 대부분 오행과 관련된 것들이다. 

          

                

② 오행의 속성(屬性)

   오행은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각각 물리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⑴ 목(木) : 동방과 봄을 상징하며, 또 그 안에 불(火)의 기운이 숨어있기 때문에 온화하고 따스하며 부드러운 속성을 가진다.
⑵ 화(火) : 남방과 여름을 상징하며 화는 밝고 뜨거우며 치열하게 타오르는 속성을 갖는다.
⑶ 토(土) : 글자에 '토해낸다(吐)'라는 의미가 있으며, 정기를 머금었다 토해냄으로써 사물을 생성시킨다는 속성을 갖는다.
⑷ 금(金) : 서방과 가을을 상징하며 글자에 '금지'의 의미가 있어서, 음의 기운이 처음 일어나서 만물의 성장을 금지시킨다는 속성을 갖는다.
⑸ 수(水) : 북방과 겨울을 상징하며, 차갑고 습한 속성을 가진다. 물의 표면이 수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만물을 평준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고, 또 물이 땅을 적신다는 점에서 사물을 윤택하게 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③ 오행의 배속(配屬)

   오행설에서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모든 일들을 오행으로 설명한다. 즉 계절, 방위, 수, 색, 맛 등을 비롯하여 사람의 몸과 성격, 정치, 도덕 등 제현상들을 모두 오행에 입각하여 분류하는데, 이를 배속(配屬)이라고 한다. 오행의 배속을 정리하면 [표 3]과 같다. 

          

오행(五行)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속성

낳아줌

길러줌

조화와 성취

위축시키고 죽임

깨끗하고 굳어지게 함

계절

여름

계하

(季夏, 음력6월)

가을

겨울

방위

동방

남방

중앙

서방

북방

오행(五行)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기운

마르고 탁함

마르고 양명함

따스하고 탁함

굳게 엉김

맑고 참

기상

인(仁), 애(愛)

강(綱), 맹(猛)

관(寬), 홍(弘)

살(殺), 벌(伐)

유(柔), 화(和)

생수

3

2

5

4

1

성수

8

7

10

9

6

정색

푸른색

붉은색

누런색

흰색

검은색

간색

녹색

홍색

검은황색

옥색

자색

팔괘(八卦)

진(震), 손(巽)

리(離)

곤(坤), 간(艮)

건(乾), 태(兌)

감(坎)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냄새

누린내

그을리며

볶는 냄새

향기로운 냄새

비린내

썩는 냄새

곡식

밀·보리

기장

호마(胡麻)

콩·팥

기장·조

과일

배·사과

복숭아·오얏

감귤

호두·밤

포도

오상(五常)

인(仁)

예(禮)

의(義)

지(智)

신(信)

오사(五事)

모습(貌)

보는 것(視)

말(言)

듣는 것(聽)

생각(思)

오경(五經)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

시경(詩經)

서경(書經)

오음(五音)

각(角)

치(徵)

궁(宮)

상(商)

우(羽)

사람

오장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육부

쓸개

소장

대장

방광

오관

입과 입술

성품

인(仁)

예(禮)

신(信)

의(義)

지(智)

              

4)오행(五行)의 상생(相生)·상극(相剋)·부억(扶抑)

① 상생(相生)

㉠ 목생화(木生火) : 나무의 성질이 따뜻하여 불이 그 속에 숨어 있다가 마찰해서 뚫고 나온다. 그러므로 목이 화를 낳는다.
㉡ 화생토(火生土) : 불은 뜨겁기 때문에 나무를 불태우고 나무가 타면 재를 이루니 재는 곧 흙이다. 그러므로 화가 토를 낳는다.
㉢ 토생금(土生金) : 쇠는 돌 속에 있어서 산의 습기가 응고되어 생기고 흙이 모여서 산을 이루니 산은 반드시 돌을 낳는다. 그러므로 토가 금을 낳는다.
㉣ 금생수(金生水) : 소음의 기운은 윤택하여 진액이 흐르고 또 쇠를 녹이면 물과 같이 된다. 그래서 산에 구름이 끼고 습기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이 수를 낳는다.
㉤ 수생목(水生木) : 나무는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수가 목을 낳는다.

② 상극(相剋)
   오행은 꺼리는 것을 따라서 서로 극(剋)을 한다. 극은 제재하고 벌하는 것이니 힘이 강한 것으로 약한 것을 제재하기 때문에 목이 토를 극하고, 토가 수를 극하고, 수가 화를 극하고, 화가 금을 극하며, 금이 목을 극한다.

③ 부억(扶抑)
   상생,상극과 유사한 개념으로 오행의 부(扶)와 억(抑)이 있다. 부(扶)는 보조한다는 뜻이고 억(抑)은 억제하여 그치고 물러나게 한다는 뜻이다. 오행이 흥성하고 쇠퇴함에는 때가 있고 높고 낮은 것은 서로 바뀌며 대신하기 때문에 부하고 억하는 것이 서로 만나게 된다.

㉠ 오행의 부(扶) : 목(木)은 수(水)를 보조하고, 수(水)는 금(金)을 보조하고, 금(金)은 토(土)를 보조하고, 토(土)는 화(火)를 보조하고, 화(火)는 목(木)을 보조한다.
㉡ 오행의 억(抑) : 목(木)은 화(火)를 억제하고, 화(火)는 토(土)를 억제하고, 토(土)는 금(金)을 억제하고, 금(金)은 수(水)를 억제하고 수(水)는 목(木)을 억제한다.


[표 4] 오행의 상생·상극·부(扶)·억(抑)

오행

생(生)

극(剋)

부(扶)

억(抑)

              

5)전통 복식을 통해 본 색채의식 

          

그림 1. 사신도

그림 1. 사신도

          

①오행 중심의 색관념과 전통 복색(服色)
   우리 나라의 전통 복식은 색상의 중요성을 제외하고는 논의할 수 없다. 옷의 형태적인 측면이나 재질도 중요하지만, 색상의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통 복식의 색깔 논의에서 집중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방위에 따른 오방색이다.

   우주와 인간 세계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모든 존재를 다섯 가지의 요소로 정리한 오행설은 색채까지도 다섯으로 규정짓고 우주의 모든 개념을 다섯 가지 기본색과 연결지으려 하였다.
오행사상에서는 색을 정색(正色)과 간색(間色)으로 나눈다. 먼저 정색은 동쪽의 청색, 남쪽의 적색, 서쪽의 백색, 북쪽의 흑색, 중앙의 황색 등 5가지 색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각각의 사이에 끼어있는 색을 간색이라고 하였는데, 홍색(紅色),벽색(碧色),류황색,녹색(綠色),자색(紫色)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오방의 정색과 간색을 중심으로 하여 여기에서 파생되는 색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5] 오방의 정색과 간색

오방

정색(正色)

간색(間色)

색이름

동(東)

청(靑)

벽(碧)

창(蒼), 남(藍), 아청(鴉靑), 청현(靑玄), 유청(柳靑), 창황(蒼黃)

녹(祿)

비색(翡色), 연두(軟豆), 옥색(玉色), 흑유색(黑幼色)

서(西)

백(白)


유백색(乳白色), 소(素)

중앙(中央)

황(黃)

류황(廥黃)

자황(雌黃), 송화색(松花色), 심황(深黃), 치자색(梔子色)

남(南)

적(赤)

홍(紅)

천(电), 비색(緋色), 주토(朱土), 담주(淡朱), 대홍(大紅), 훈색(糥色)

자(紫)

홍람(紅藍), 토홍(土紅), 진홍(眞紅), 도홍(桃紅)

북(北)

흑(黑)


현(玄), 오(烏), 조(早), 회색(灰色), 구색(鳩色), 치색(緇色)

              

   이상과 같은 색 개념은 방위나 계절에도 적용되어 옷의 색깔을 제한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여복제도(與服制度)가 처음 확립된 것은 후한(後漢)때였는데, 이 때 계절에 따라 문무백관의 관복 색깔을 변화시키는 오시(五時)의 복색(服色)이 규정되었다.
또 『예기(禮記)』의 『월령(月令)』에서도 이와 같은 예를 찾을 수 있는데, 즉 “이 달은 천자가 명당(明堂)의 남동쪽에 있는 곁방에서 정사를 보살핀다. 주색(朱色)의 난거(鸞車)를 타며, 적색 말을 타고 적색 기를 세우며, 주색 옷을 입고 적색 옥을 차고 숙(菽)과 닭을 먹는다.”고 한 것은 철저하게 방위와 계절의 색을 지키려는 인식을 보여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백의(白衣) 금지령이 자주 내려진 것도 방위에 따른 색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1275년(고려 충렬왕 1)에 태사국(太史局)에서 “동방은 목(木)의 자리이니 색은 마땅히 청색을 숭상해야 합니다. 백(白)은 금(金)의 색인데, 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융복(戎服)을 입고 흰 모시옷을 많이 입으니 이는 목(木)이 금(金)에게 제어받는 형상입니다. 청컨대 흰옷을 금하게 하소서.”라고 건의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ㅡ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권80, 예고(禮考) 27, 장복(章服)].


  이는 오행 사상에 근간을 둔 방위 개념에 기초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의복에 사용된 전통색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물론 이 다양한 색깔의 기본색은 청,황,적,흑,백(靑,黃,赤,黑,白)의 5색이고 이들의 농담(濃淡)에 따라 다양한 색이 창출된다. 이 색의 명칭은 염색의 방법을 알려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색에 대한 감각 표현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② 청색 인식과 그 의복
   청색은 오행으로 따지면 목(木)에 해당하고 동방을 뜻하며, 계절로는 봄이다. 청색은 태어남의 의미를 지니며, 물체가 소생하는 때의 색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청색에서 파생된 색들은 벽색(碧色) 계열과 녹색(綠色) 계열로 구분된다.
벽색 계열에는 창(蒼), 남(藍), 아청(鴉靑), 청현(靑玄), 유청(柳靑), 창황(蒼黃) 등이 포함된다. 창(蒼)은 면류관에 다는 구슬을 색을 말한다.
남(藍)은 일람(日藍),양람(洋藍),품람(品藍)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청색에 검정이 섞인 색이다. 왕비가 궁녀들이 가례 때는 남색 겹치마를 입고 그 위에 자주색 치마를 입었다. 


  젊었을 때는 대개 자주색이나 홍색 치마를 입지만 나이가 들면 남색 치마를 겉치마로 입었다. 또 혼자된 왕비나 대왕대비도 남색 치마를 입었다. 세자빈의 법복(法服)인 적의(翟衣)도 남색 바탕이다.
아청(鴉靑)은 검은빛을 띤 푸른색으로 조선시대 조신(朝臣)들의 관복 색깔로 규정되어 단령, 이엄, 감투 등에 사용되었다.
청현색(靑玄色)은 푸른빛이 도는 검은색으로, 조선시대에 당상관이 남색 철릭을 입은데 반하여 당하관은 청현색 철릭을 사용하였다.


  녹색 계열에는 비색(翡色), 연두(軟豆), 옥색(玉色), 흑유색(黑幼色) 등이 있다.
비색(翡色)은 남색과 청색의 중간색이고, 연두(軟豆)는 녹색과 황색의 중간색으로 원삼,당의,저고리,두루마기 등 주로 여성의 의복에 많이 사용되었다.
지한 녹색은 일반 서민이나 계급이 낮은 수모(手母)의 저고리로 사용되었다. 흑유색(黑幼色)은 검푸른 청색으로, 성종대에 조신들의 단령의 색으로 정한 적이 있다.
옥색(玉色)은 약간 푸른빛을 띤 파르스름한 색으로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왕비의 회장저고리나 왕의 평복에 사용한 예가 보인다. 궁녀들의 회장저고리 바탕색으로 궁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색이다.

   왕비도 혼자되면 회장저고리가 아닌 민옥색 저고리를 입었고, 왕은 대개 옥색 저고리, 옥색 두루마기가 통례이다.
『오례의(五禮儀)』에 임금의 상(喪)에서 졸곡(卒哭) 후에 백관들이 옥색 단령을 입도록 하였고, 중종대에는 릉(陵)을 옮길 때 백관들이 옥색의 옷을 입도록 하였다.
또 청색 계열에서 흔히 쓰인 색으로 감색(紺色)이 있다. 감색은 청색과 적색이 섞인 것으로, 적색으로 먼저 염색한 다음, 그 위에 남색으로 염색한 것이다.

③ 백색 인식과 그 의복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 우리 민족은 흰옷을 좋아한다고 기록할 만큼 백색은 상고시대부터 우리 생활에 중요한 색이었다. 이 백색의 방향은 서(西)쪽이고, 계절은 가을이며, 의(義),상(商),금(金)을 상징한다.
백색이 의복의 색깔로 제한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부터로, 오행설의 방위 개념에 따라 동방에 속하는 우리 나라는 의복에 있어서도 청색을 숭상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백의 금지의 논의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오행상극의 논의가 더욱 강하게 작용하면서 여러 차례 금령이 내려졌다.
명종대 이후 사람들이 점점 백의를 즐겨 입자 선조대에 다시 백의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현종대에는 백의 금지를 강력히 시행하여 사대부(士大夫)와 일반인 모두 이를 준행하도록 하였고, 백의 대신 담청색(淡靑色) 옷을 입도록 하였다. 또 백의를 입는 자는 엄벌에 처하도록 명시하였다.(『임하필기(林下筆記)』 권3)
이러한 영향에서인지 일상 의복에서는 백색을 꺼리게 되었다. 바지나 속옷, 버선 등에 흰색을 썼던 것이 확인되는 정도이다.

④ 황색 인식과 그 의복
   황색은 방위로 보면 중앙을 나타내고 신(信),궁(宮),토(土)를 상징한다. 『석명(釋名)』에서는 밝음을 상징하며 햇빛의 색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황색은 중앙을 상징하고 또 황제가 황색의 복색을 착용하였으므로 조정의 신하들은 황색의 옷을 착용하지 못하였다. 신라 법흥왕때 제정된 대사(大舍)에서 선저지(先沮知)까지의 하품 관리의 복색 규정이나 834년(신라 흥덕왕 9)의 복식금지령 등에서 일반인들의 황색 사용을 금지한 기록들이 보인다.
조선에서도 황색금지령은 복색금지령 중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내고 있는데, 특히 태종~세종대에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송화색이나 치자색의 못은 색이 주는 안정감으로 인해 부녀자들이 즐겨 입었다.


  송화색은 황색보다 약간 연한 색이다. 영조대(1724~1776)의 세자 가례때 재간택에 선발된 처자에게 궁에서 송화색 저고리를 내린 적이 있다. 또 궁중의 나인들 중 젊은 사람들은 노랑 저고리를 입을 수 있었는데, 이는 이 색이 중국 황제의 황금용포의 색과는 달랐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물로 전해오는 영왕비의 송화색 저고리는 당의를 착용할 때 안에 바쳐입는 당의삼작용으로 사용한 것이다. 또 평상복으로 착용하였던 삼회장 저고리도 전해지는데 모두 궁중유물전시관에 보존되어 있다.


   치자색은 진한 황색에 약간 붉은 기운을 띤 색으로, 치자를 염색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다년생 치자나무의 속씨 덩어리를 물어 담그면 진한 노랑색이 우러나오는데, 이것으로 천을 물들였다. 일반 서민들이 많이 사용한 색이며, 떡을 비롯한 음식을 물들일 때에도 사용하였다.


④ 적색 인식과 그 의복
   적색은 방위로는 남방에 속하고 계절로는 여름에 속하는 색으로, 예(禮),미(美),화(火)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적색 계열을 색은 다시 홍색 계열과 자색 계열로 구분된다.


  홍색은 조선시대 국왕의 곤룡포, 문무 관리의 단령(團領), 금관조복(金冠朝服), 동다리, 왕비의 원삼, 스란치마 등에 사용되었다. 홍색은 그 염료인 홍화(紅花),소목(蘇木) 등의 값이 비쌌기 때문에 여러번 금제가 내려졌던 색이기도 하다. 세종대에는 대홍염(大紅染)의 외의(外衣)를 조신들이 입지 못하게 하였고 또 양반 부녀자들의 외의와 서인(庶人),천인(賤人) 남녀의 내,외의에도 대홍색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한편 강(絳),훈(纁),비(緋) 등이 홍색 계열 색명들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는데, 왕의 공복(公服)인 강사포(絳紗袍)나 훈상(纁裳) 등과 같이 아예 색 이름이 의복의 이름에 붙어 정착된 경우도 있다.


    중국 한(漢)나라 때에 만들어진 『석명(釋名)』의 내용을 중심으로 적색과 그 간색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강색(絳色)에 대해서는 『석명』에서 “강색은 정교한 색으로 염색하여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 색을 얻으면 정교하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설문(說文)』에는 “수(蒐),모수(茅蒐),여로(茹蘆) 등을 염색의 재료로 사용하여 강색을 나타낼 수 있다.”라고 하였다. 모수(茅蒐)는 꼭두서니인데, 이 뿌리에서 빼낸 물감으로 염색한 적색이 강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색 계통의 염색에는 수은주(水銀朱)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때 나오는 색이 주색(朱色)으로, 수은주(水銀朱)를 속(粟)과 함께 삶아서 그 즙에 우근(羽根)을 담가 염색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3회 담그면 훈색이 나오며, 이것을 다시 흑색의 안료에 담그면 취색(翠色)이나 치색(緇色)을 낸다.


  훈색은 강색(絳色)이나 주색(朱色)보다 연한 색으로, 『설문』에는 “순색은 옅은 강색이다.”라고 하였으며 『시경(詩經)』『빈풍칠월』의 모전(毛傳)에는 “주색이 훈색보다 짙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색 이름으로 보면 분홍색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홍색(紅色)에 대해서는 『석명』에서 “홍(紅)은 강(絳)이다. 백색 중에서 강색에 가까운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설문』에서는 “홍색은 적색과 백색의 중간색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수은주에 의한 염색으로 1회 염색한 것이 홍색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홍색 계열에서 토홍(土紅)이 많이 쓰였다. 토홍은 주토(朱土)를 염재로 하여 염색한 붉은 계통의 색이다. 주토를 침수시켜서 그 찌꺼기를 뽑아내고 여기에 아교를 섞어서 염색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상색으로 여겼다. 조선 성종대(1469~1494)에는 “몇년 전부터 표의(表衣)에 일정한 제도가 없이 세탁하기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모두 토홍색을 좋아하니 매우 조채(朝彩)가 없다. 이제부터 잡색은 편한대로 입고 토홍색 외의 것을 길복으로 통용하라.”라는 명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한동안 조정 문무대신의 포의(袍衣)를 갖추지 못하다가 1600년(선조 34)에 비로소 조복을 갖추게 되었다. 처음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상은 심홍(深紅)의 비단을 입고 당하관은 심홍의 면포를 도록 하였다가, 국왕도 역시 홍의(紅衣)를 입기 때문에 군신이 같은 색을 입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하여 신하들의 복색을 흑색으로 바꾸었다.
한편 민간에서는 귀천의 구분 없이 홍람(紅籃)으로 염색한 옷을 선호하였는데, 염료의 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옷을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고, 옷 한 벌을 염색하기 위한 나무를 기르는데 한 가정의 1달치 식량에 해당하는 비용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진홍(眞紅)은 분홍 계통 중에서 가장 짙은 색으로, 도홍(桃紅)과는 농담의 차이가 있다. 분홍 계통의 색은 다홍(多紅),대홍(大紅),진홍(眞紅) 등으로 구분하였다. 도홍(桃紅)은 연한 분홍색으로 조선시대에 한때 흰옷 입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면서 선비들의 겉옷에 모두 도홍색을 사용하도록 한 것이 있었으나 시행한 지 5, 6년만에 중지되었다. 


          

                

  다음으로 자색(紫色)은 황색과 더불어 자주 금지령이 내려졌던 색으로 왕비나 세자빈의 법복에서 치마색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석명』에는 “자(紫)는 자(疵: 흠, 결점)의 뜻이다. 정색(正色)이 아니고 오색의 흠과 같아서 사람을 현혹시킨다.”라고 하였다.
자색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색에 대한 이미지와 큰 차이가 있다.


⑤ 흑색 인식과 그 의복
   흑색은 오행으로는 수(水)에 해당하며 방위는 북쪽, 계절은 겨울에 해당한다. 조선시대의 의복에 많이 쓰였으며 조신들의 관복에도 선조 이후 흑단령을 착용하게 되었다.일반서민,부인들도 무명에 검정색으로 물들인 치마를 입었으며, 저고리는 소색(素色)을 그대로 써서 무명저고리를 착용하였다. 


  흑색 계열의 색으로는 치(緇),조(早) 등의 이름이 문헌이 등장한다.
『석명』에 “치(緇)는 재(滓)의 뜻으로 진흙 중에서 검은 것을 재(滓)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주례(周禮)』에 대한 한대(漢代)의 주석에는 “훈색"으로 염색하려면 적색 안료액에 3회 담그면 된다. 이것을 다시 흑색 안료액에 2회 담그면 취(翠)가 되는데, 취는 작두색(爵頭色)이다. 이것을 다시 흑색 안료로 2회 염색하면 치(緇)가 된다...(중략)...정현은 ‘현(玄)'은 취(翠)와 치(緇)의 중간색이다. 치보다 1회 적은 6회 정도 염색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치색은 적색으로 염색한 후에 다시 흑색으로 염색한 것이다. 그리고 위 주석의 내용을 볼 때 중국 한나라 때에는"치→현→취"의 순으로 흑색이 점차 엷어져 간다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석명』에는 치색과 함께 조색(早色)을 들고 있는데, “조(早)란 아침을 말한다. 해가 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 물체를 보면 모두 검게 보이는데 이 색은 그 검은 색을 말하는 듯하다.”라고 하였다.
반면에 『설문』에서는 조(早)를 초(草)로 쓴 다음 “초는 초두(草斗)를 말하니 가죽나무의 열매이다. 혹은 상두(象斗)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다. 철의 매염제로 도토리 껍질을 삶은 물로 물드리면 깉은 자색을 띤 흑색이 되는데 조(早)를 이 색으로 보면 틀리지 않은 것이다.


  흑색의 간색으로 회색을 들 수 있다. 회색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좋은 중국 먹을 갈아서 물에 타고 신초를 조금 쳐서 흰 명주나 비단을 물들이면 깉은 재빛이 붉고 푸른빛을 띠어 품스럽고 고우며 향내가 기이하다.”라고 하여 회색의 염색법을 설명하고 있다.
세종조(1418~1450)에 “개국한 이래로 문무조관이 모두 회색 단령을 입었는데, 뒤에 동방은 목(木)에 속하니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하여 회색의 사용을 금하였으며, 이후로는 주로 상복이나 승복 등에만 사용되었다. 조선조 말에 와서는 동궁비의 가례 때에 대례복 적의(翟衣) 속에 받쳐입는 의대에 회색 중단을 사용하였으며, 남자 한복의 바지색으로도 회색을 사용하였다.


  구색(鳩色)도 회색과 더불어 승복에 많이 사용되었다. 먹을 갈아 물들이거나 숯을 갈아서 물들였다는데, 고려시대부터 승복에는 구색 또는 회색이 사용되었다. 한편 조선초에는 승려들의 흑색 사용을 금한 바가 있었는데, 이는 흑색을 옅게 물들이면 은은한 옥색과 같이 보이기 때문에 이를 제지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전통 복식에서 사용하고 있는 색을 오방색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생활의 기저를 이루고 있던 음양오행사상이 의복의 색을 규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을 확인하였으며, 특히 황색이나 백색의 경우에는 오방의 개념을 준용하려는 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 오방색을 중심으로 생성된 다양한 간색들의 색상 명칭에서 색에 대한 인식을 찾을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6)의복색의 시대적 변화 


            

    

① 삼국의 공복색(公服色)
   고구려의 국왕은 오채복채(五采服彩)를 입었고 백라(白羅)로 관을 만들어 썼으며 혁대에는 금테를 둘렀다. 신하들은 청라관(靑羅冠) 혹은 강라관(絳羅冠)을 썼는데 새 깃을 꼿고 금·은으로 테를 둘렀으며, 백위대(白韋帶)를 두르고 황혁리(黃革履)를 신었다. 『북사(北史)』 고구려조에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 절풍을 쓰는데 모양이 변(弁과) 비슷하다. 사인(士人)들은 두 개의 깃을 더 꼿는다. 존귀한 자는 자라(紫羅)로 만들고 금은으로 장식한 관을 쓰고 대수삼(大袖衫, 통소매 저고리)과 대구고(大口袴, 통이 큰 바지)를 입고 소피대(素皮帶)를 매고 황혁리를 신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 고구려의 관인들이 착용하였던 복식의 색채를 정리하면 자색, 청색, 강색, 비색, 황색 등이다.

   백제의 국왕은 자색의 대수포(大袖袍)에 바지는 청금고(靑衿袴)를 착용하고 소피대를 매고 금화(金花)로 장식한 오라모(烏羅帽)를 썼다. 16관제의 신하들의 경우 관복의 색은 비색(緋色)으로 모두 동일하였지만 대(帶)의 색에 차등을 두어 7품은 자색, 8품은 조색, 9품은 적색, 10품은 청색, 11품은 황색, 13품은 백색의 대를 띠도록 규정하였다. 반면 일반 서민들에게는 자색과 비색의 사용을 금하였다. 여기에서도 자색, 청색, 비색, 조색, 황색, 백색 등의 색 이름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라에서는 법흥왕(514∼540) 7년에 처음으로 백관공복의 차서를 정하였는데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6] 신라의 공복제 규정

관직의 등급

복색

비고

태대각간∼대아찬 (1-5등급)

자색(紫色)

이찬·잡찬―금관 착용 /파진찬·대아찬―비관 착용

아찬∼급찬 (6-9등급)

비색(緋色)


대내마∼내마 (10-11등급)

청색(靑色)


대사∼선저지 (12-17등급)

황색(黃色)


              


  한편 무관의 등급을 상징하는 깃발의 색으로는 녹색, 자색, 백색, 비색, 황색, 흑색, 벽색, 적색, 청색 등 9가지 색을 비롯하여 저황, 비홍, 황설(黃屑), 자분(紫粉), 멸자(滅紫), 표(縹), 취벽(翠碧), 벽자(碧紫) 등의 분화된 색 이름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상 관복의 색상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삼국은 자색, 청색, 비색, 강색, 황색 등의 색을 기본으로 사용하였는데, 이 중 강색은 고구려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삼국 모두 자색을 가장 우위에 둔 공통점이 있으며, 오방색 가운데 중앙의 색이라고 하여 중국 왕제의 복색으로만 사용되던 황색이 신라의 공복 체계에서는 맨 아래인 제4등급의 색으로 채택되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② 고려의 공복색
   고려의 공복 제도는 광종대에 4색 공복제로 정비되었으며, 이후 관직 체계의 변화에 따라 중기 의종대에 개정되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표 7]과 같다.
한편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왕의 복식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상복(常服)·조복(朝服)·제복(祭服)·공복(公服)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복·조복은 착수상포(窄袖裳袍), 제복은 구장복(九章服), 공복은 자라공복(紫羅公服)을 사용하였다.
영관(令官)·국상(國相)·근시(近侍)·종관(從官)·경감(卿監) 등은 자문라포(紫文羅袍)에 각각 대(帶)를 달리 하였으며, 조관은 비문라포(緋文羅袍), 서관은 녹의(綠衣)를 착용하도록 하였다. 이와 아울러 귀부인은 백저포(白苧袍)에 문릉관고(文綾寬袴)를 착용하였고, 귀녀는 황의를 착용하였다. 공경대부(公卿大夫)의 처와 사민(士民)의 처 등은 신분의 차이에 따른 복색의 구별이 없었다
고려의 공복에서는 녹포가 처음 등장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표 7] 고려의 공복제 규정

광종대 규정

의종대 규정

관직의 등급

복색

관직의 등급

복색

원윤 이상

자삼(紫衫)

4품 이상

자색(紫色), 금어(金魚)

중단경 이상

단삼(丹衫)

6품 이상

비홍색(緋紅色), 은어(銀魚)

도항경 이상

비삼(緋衫)

9품 이상

녹색(綠色)

소주부 이상

녹삼(綠衫)

각문(閣門) 무신

자색, 어부(魚符)는 차지 못함

              


③ 조선의 의복색

 
*국왕의 의복

          

                

                

ⅰ) 면복(冕服)
   왕이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에 착용한 제복으로, 면관(冕冠), 장복(章服), 상(裳), 폐슬(蔽膝), 말석(襪潟) 등으로 구성된다. 면관은 겉을 흑모라(黑毛羅)로 싸고 안은 붉은 비단으로 배접하였다. 또 면관 앞과 뒤에는 주, 백, 청, 황, 흑 등 5색의 구슬을 순서대로 꿰어늘였다.
면관에서 채용하고 있는 현색(玄色)과 홍색(紅色)은 각각 음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음과 양의 화합에 의한 우주의 조화를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면관의 앞뒤에 늘어뜨린 오색 구슬은 화(火)가 금(金)을 이기고 금(金)이 목(木)을 이기고 목(木)이 토(土)를 이기고 토(土)가 수(水)를 이기고 수(水)가 화(火)를 이긴다는 오행상극(五行相剋)의 순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또 제복의 일부인 방심곡령이나 직령, 단령 등에 흑선(黑선)을 두른 것도 우리 나라가 수근목간(水根木幹)의 땅이기 때문에 '흑(黑)으로 부모를 삼고 청(靑)으로 몸을 삼는' 오행사상에서 연유된 것이다.

   장복을 흑색으로 하고 상과 폐슬을 훈색으로 한 점 역시 각각 천지를 상징하여 조화를 꾀하려고 했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아여 할 것이다. 정색인 흑색을 위에, 간색인 훈색을 아래에 착용한 것은 음양의 조화를 배려한 것이며, 면관의 흑색과 말석의 홍색 역시 음양관계의 표현이다. 


   이상과 같이 왕의 제복인 면복에 쓰인 여러 가지 색들은 천지·음양의 조화를 꾀하려는 의식이 표현된 것이다. 

          

            

    

ⅱ) 황룡포(黃龍袍)
  대한제국기에 황제가 착용한 시무복이다. 189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한 후 『대명회전(大明會典)』을 근거로 새롭게 단행한 복제 개혁에서 황제의 시무복을 황룡포로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황후도 황원삼(黃圓衫)을 대례복으로 입게 되었다.


*왕비의 의복


          

 

               

ⅰ) 홍원삼(紅圓衫)
   궁중에서 왕비가 예복으로 착용한 의복이다. 겉은 홍색 단이나 사(紗)로 하고 안은 황색을 썼으며 남색 단을 둘렀다. 겨드랑이가 트이도록 만들었으며 뒷자락에 비하여 앞자락이 짧다.
소매 끝에는 황색, 남색의 색동과 백색 한삼을 달았는데, 문양은 목단문이다.홍원삼의 색은 포의 색인 홍색을 중심으로 황색, 남색, 백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궁중의 예복에 겉감과 안감의 색을 달리하고 색동을 통하여 색이 조화를 꾀하려 한 것은 미적인 기준은 물론 음양의 조화도 함께 고려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ⅱ) 당의(唐衣)
   비빈이나 사대부가의 부인들이 소례복으로 착용하던 겉옷의 일종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당의의 형태를 보면, 겉은 연두색 고단으로 꽃과 문자 문양이 자수로 새겨져 있고 안은 홍색이며, 소매 끝에는 백색의 거들지를 달았다. 당의에서도 역시 청색계의 겉감과 홍색계의 안감을 써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자 하였으며, 백색의 거들지 또한 오행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의를 착용할 때에는 먼저 속적삼을 입고 그 위에 진분홍 남색끝동 저고리, 송화색 삼회장 저고리, 당의를 순서대로 입는다. 이를 '저고리 삼작'이라고 하는데, 각각의 특색있는 미적형태와 색채배합은 뛰어난 조화미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속적삼의 백색, 진분홍 남색끝동 저고리의 홍색과 남색, 송화색 삼회장 저고리의 황색과 홍색 등이 2중 3중으로 음양의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다. 


          

                


                

ⅲ) 남(藍) 수란치마 

          

                

   겉은 남색 목단문사이고 안은 백색 삼팔주로 만든 스란치마이다. 스란단에는 화염문을 사이에 두고 봉황이 마주보고 있는 봉황문양이 부금되어 있다. 총 8폭으로 되어 있는데 허리 말기와 끝은 백색 생고사로 만들었다.


  남색 스란치마는 홍색 대란치마 안에 착용하였는데, 착용시에 홍색 대란치마를 조금 올려 입어서 안에 착용한 남색 스란치마의 스란단에 부금된 봉황문양이 드러나도록 하였다. 이 경우 남색과 홍색의 색감, 그리고 스란단에 부금된 문양이 조화를 이루어 한층 품위를 더했다. 물론 여기에서도 음양을 나타내는 색상의 조화를 엿볼 수 있다.




*일반인의 의복

          

                

ⅰ) 활옷과 원삼
   활옷은 왕실에서 공주, 옹주의 대례복으로 착용하거나 양반가에서 혼례복으로 착용한 대표적인 여성 예복이다. 형태는 다홍색 바탕에 깃 섶 무가 없이 트여 있는데 앞자락은 둘, 뒷자락은 등솔 없이 하나로 모두 세 자락으로 되어 있으며 앞이 뒤보다 짧다. 온 전체에 장수와 길복(吉福)을 상징하는 심장생, 모란, 나비 등의 문양을 수놓았으며, 또 혼례의 복됨이나 부귀의 기원을 담은 글귀를 새겨놓았다. 또 양 어깨의 앞에 동자의 문양을 수놓은 것도 특징적인 모습이다.

   안감은 남색견으로 하고 소매에는 홍색, 황색, 남색의 색동을 달며 끝에는 모란 문양 등을 수놓은 백색 한삼을 달았다. 활옷 안에 입는 다홍색 치마에 노항색 삼회장 저고리는 모든 것이 흙에서 성장된다는 운이에 바탕을 두고 미혼 여성의 예복 색으로 정하였다.

  참고로 복식의 색과 오행의 상생·상극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8] 복색(服色)과 오행의 상생·상극

오행

복색

상생(相生)

노랑색 저고리―다홍색 치마

연두색 저고리―다홍색 치마

상극(相剋)

노랑색 저고리―남색 치마

연두색 저고리―남색 치마

              


   혼례복으로 쓰인 옷은 활옷 외에 원삼이 있다. 원삼의 형태는 앞의 홍원삼과 같으나 색깔이나 문양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데, 즉 연두색 겉감과 홍색 안감을 쓰며 소매는 색동으로 하였다.
혼례의 예물에서 음양의 원리는 철저하게 지켜졌다. 예서에 규정된 함의 내용물을 보면, 대개 청색과 홍색 옷감 각 한벌씩을 예물로 넣었는데, 이때 청색 비단은 붉은 간지에 싸서 청색 명주실로 동심결(同心結)을 맺어서 올려 놓고, 홍색 비단은 청색 간지에 싸서 홍색 명주실로 경사동심결(경사동심결)을 맺어 올려 놓았다. 폐백 보자기도 시아버지 것은 남색보를, 시어머니 것은 다홍색보로 달리 사용한 것도 이러한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ⅱ) 색동저고리 


          

                

   조선시대 복식 중에는 색동 옷감이 많이 쓰였다. 색동에 사용된 색의 배합이나 배열에는 음양을 나타내는 청색과 홍색, 오행을 상징하는 청·적·황·백·흑색 등이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색동에 음양오행설이 개입할 소지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색동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비율이 큰 차이가 없어서 색채의 배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박상의, 1978, [색동에 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오히려 색동에 사용된 5색의 의미는 오행, 오덕, 오미 등과 같이 숫자 5의 개념에서 차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색동에 즐겨 사용된 백색은 어느 색과도 잘 조화되면서 주변색을 더욱 선명하게 강조해 주기도 한다. 이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탁월한 색채조화 능력과 융통성 있는 미적 취향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에서 복식 색채의 시대적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사상적 측면에서 우리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음양오행설이 의례복의 색채 구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성리학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에는 자색(紫色)이 색채의 중심을 이루었던 반면, 성리학적 생활 규범이 강조된 조선시대 이후에는 황색(黃色)이 중심색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것이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 오방색의 이해

1) 오방색의 배경사유체계

① 음양오행원리와 오방색

   한국의 전통색으로 알고 있는 오방색은 동아시아의 배경사상체계인 음양오행원리에서 유래한다. 오방색은 한국의 색원리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색원리이다. 오방색은 원리적, 개념적으로 음양오행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서구의 과학은 빛의 세기를 측정하여 우주를 구조체로 이해하였다. 환원주의적, 기계론적, 비유기론적 관점에서 이해된 서구의 우주관은 과학적 측정과 분석을 토대로 하는 뉴턴-데카르트적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물론 관점은 다르나 동아시아에서도 전일주의적, 직관적, 유기적 관점에서 우주를 이해한 사실은 확인되었다. 음양오행원리는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우주의 운행, 자연현상에 대한 직관을 통하여 인간과 외계의 관계에서 만물의 이치를 깨우치는 세계관의 기초원리이다. 오방색원리는 이러한 음양오행원리를 직관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원리이다. 오방색의 원리를 이해하기에 앞서 음양오행원리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음양오행원리는 세계관으로서 ‘음양오행설’로 전해지고 있다. 동양의 사유체계를 과학이라고 보는 신과학의 입장에서 음양오행은 ‘동양과학의 광범위한 기초'의 역할을 한다. 과학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생존을 위한 것이다.『음양오행설의 연구』의 내용은 과학에 대한 이와 같은 인간의 욕구가 자연의 개별적 전체적 연관성과 통일성을 설명하고 법칙화 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생존을 위한 욕구에서 나왔다고 하고 있다.

   중국의 철학자 풍우란(馮友蘭)은 음양오행설에 대한 입장을 “더 많은 허구로써 사실을 대체하고, 더 많은 상상으로써 진실의 결핍된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뿐”, “그러나 그들은 자연철학의 임무를 짊어졌던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음양오행설이 세계관으로서 동양의 삶의 태도를 결정짓게 되는 기초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생활 속에서 직관적 경험을 통하여 귀납된 관념체계였던 음양오행설은 한대에 완성된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양의 사유체계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세계관으로 이해되어 왔다. 음양오행설은 유기적 변증법적 세계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이전의 문헌에서는 현재의 음양오행이 연용된 흔적이 드물었다. 춘추시대에 이루어진 음양관념의 가장 큰 발전은 음양을 천(天)이 생성한 육기(六氣) 중의 이기(二氣)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는 만물에서 연속적인 하나의 기(氣)가 형성된 것으로 보았으며, 겉보기의 차이는 기(氣)의 다른 모습으로 이해하였다. 문헌은 한자로 기록되었고, 한자는 한글자에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였다. 따라서 음양오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음’과 ‘양’의 글자 의미는 어떻게 해석되는가. 「설문해자」에서는 말하는 음(陰)은 어둡다는 의미이며,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런 의미가 확대되어 일반적으로 가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해를 등지는 곳, 즉 북쪽을 의미하게 된다. 양(陽)은 연다는 의미로 ‘일(日)’자와 ’일(一)‘자 그리고 ’물(勿)‘자를 합한다. 해가 땅 위로 떠올라 깃발을 내걸면 깃발이 매우 힘차게 날리는 모습을 의미한다. 이 역시 의미 확대로 해의 광채를 나타내고 해가 뜨면 따뜻한 기운이 생기므로 양기(陽氣)라 하게 된다. 해를 향하면 빛을 볼 수 있으므로 표면 혹은 남쪽을 의미한다. 

          

그림 1. 태극도(太極圖) 도해
:3000여년 전부터 사유되어 왔던 음양오행설은 주돈이(周子)(1017~1073년)에 의해 태극도로 정리되어 체계화되었다. 
출처 : 淸?張伯行 輯(1990) 太極圖詳解. (北京 : 學苑出版社)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四時生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性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
주자태극도설 (周子太極圖說)

그림 1. 태극도(太極圖) 도해


:3000여년 전부터 사유되어 왔던 음양오행설은 주돈이(周子)(1017~1073년)에 의해 태극도로 정리되어 체계화되었다. 
출처 : 淸 張伯行 輯(1990) 太極圖詳解. (北京 : 學苑出版社)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四時生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性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




주자태극도설 (周子太極圖說)
      

   주자(周子)의 태극도설에 따르면, 음양오행이란 태극과 지구의 거리가 멀고 가까워지는 차이로 발생하는 변화과정을 이르는 개념이다. 태극이란, 불덩이는 열과 빛으로 뭉쳐있는 순수한 양기 덩어리다. 빛은 열이자 온도이며 색으로 지각 가능하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는 음양오행의 원리가 형성되는 것과 함께 색의 원리를 이해한 샘이 된다. 양기인 태극은 빛과 열의 원천이며, 우주의 원동력이자 대동맥인데 형체는 없다고 정의한다.


           

그림 2. 블랙홀의 운행모습1.
출처 : The Complete Cosmos

그림 2. 블랙홀의 운행모습1.
출처 : The Complete Cosmos

          

그림 3. 블랙홀의 운행모습 2.
출처 : The Complete Cosmos

그림 3. 블랙홀의 운행모습 2.
출처 : The Complete Cosmos

          

   태극도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면, 우주는 가득 차 있으면서 비어있는 무극에서 시작된다. 무극은 비어있으면서도(空:void) 동시에 채워져(實:solid) 있는 상태(象態)이다. 무극은 비어있음과 채움의 반복과정을 통해서 기(氣)를 만든다. 무극이 극에 이르면 태극이 되는데 이 태극은 채워짐으로 인해 생성된 상태이다. 

          

그림 4. 태극기

그림 4. 태극기

          

   태극은 끊임없이 기운을 생성하며, 움직이는데(動) 이 움직임이 또 다시 극에 이르면 멈춤(靜)에 이른다. 다시 멈춤이 극에 이르면 새로운 움직임(動)이 시작되고 이 과정의 반복으로 태극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음(陰)과 양(陽)을 낳는다. 음양의 생성과정을 보게되면, 음양(陰陽)이 서로 상보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생성과정이 움직임과 멈춤(動靜)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 우주는 끊임없는 탐구의 대상이며, 생존을 위해 발견과 탐험을 거듭해야 하는 미지(未知)의 세계(世界)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의 우주과학은 지속적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며, 지구 밖 행성들과 위성들의 운행을 연구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림 5. 닐스 보어의 의장

그림 5. 닐스 보어의 의장

          

   인간에게 있어 우주는 끊임없는 탐구의 대상이며, 생존을 위해 발견과 탐험을 거듭해야 하는 미지(未知)의 세계(世界)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의 우주과학은 지속적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며, 지구 밖 행성들과 위성들의 운행을 연구하고 기록하고 있다.

   서양이 관측한 사진을 통해서 확인된 블랙홀의 모습은 태극도에서 설명하는 ‘양기덩어리’의 운행모습과 다르지 않다. 두 기운의 운행과정으로 보여지는 나선구조의 움직임은 음양(陰陽)의 동정(動靜)하는 과정의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동양의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사유체계가 음양오행사상이다. 


   오행이 세상만물을 이루는 근본조건이었으며, 오행 원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자연에 순응하는 조화된 삶을 지향하여왔다. 서구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은 동아시아의 전일적 세계관에서 강조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음양오행의 원리에 대한 이해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적 사유체계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한다.            


2) 오행의 기본원리와 오방색의 개념

① 宇宙觀/自然觀으로서 五行原理와 五方色
  오행에는 오색이 따르고 방위와 절계가 따른다. 오행은 음양에서 나온다. 오색을 자연현상에 대한 지각경험의 색으로 가정할 때 절계와 방위에 따른 자연의 직관적 관찰을 통해서 지각되는 색을 의미하게 된다. 도형기호체계원리와 함께 설명될 것이지만 ‘오방색’의 ‘방(方)’에는 방위의 의미 외에 ‘정방형(正方形)’으로 네변의 길이가 같은 사각형의 중심의 위치를 의미가 내포되어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오방색’을 ‘방’을 중심으로 하는 위치를 포함하는 동-서-남-북의 방위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음양의 순환으로 오행이 생성되는데, 이후의 운행 과정은 오방색을 사유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우주와 자연을 보는 관점으로 오행원리를 살펴보자.

   오행원리에서 봄은 목(木)자에 해당한다. 평선(一) 밑에 하나의 씨앗을 묻었을 때 금방 싹트는 것은 없다. 태양의 열기와 흙(土)이 가지고 있는 습기와 혼합으로 온도가 맞을 때 뿌리를 하나씩 얻을 것이며 (才), 지각인 표면을 뚫고 올라온 형상이 나무(木)이다. 생명은 봄에서 시작하며 목(木)은 세상 만물이 생동(生動)하는 것을 글자로 나타낸 표상(表象)이다. 생동하는 것은 녹(綠)을 포함한 청색(靑色)으로 존재한다. 태양의 뜨거운 기운이 강해짐에 따라 오행상 화(火)에 해당하는 여름이 된다. 여름은 남쪽의 방향에서 시작되며 뜨거운 열기는 붉은 기운으로 표현된다. 뜨거운 기운이 다하면 온도가 하강하고, 열이 식는다. 서쪽의 편서풍이 시작되면서 가을이 오며, 곡식을 가을에 거두어들이니 황금이며 황금은 금속으로 금속의 백색기운으로 표현된다. 태양의 열과 온도의 영향이 없는 북쪽은 그늘이며 춥다. 계절로서는 겨울에 해당하며, 눈과 얼음으로 물(水)에 해당하며, 빛이 없이 어두우므로 거믄 기운에 해당한다. 

          

그림 1. 五方色 氣運 설명도

그림 1. 五方色 氣運 설명도

          

   이와 같은 오행의 원리는 자연현상에 대한 음양오행사상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림 1.에서와 같이 음양오행의 이러한 원리를 근거로 하여 해당되는 자연현상의 사진을 배열, 그림(diagram)으로 정리하여 오방색의 개념을 시각화하였다. 음양오행원리의 기본은 동양이 본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림 1.에서는 정사각형의 지각의 틀을 볼 수 있으며, 틀을 기준으로 배열된 다양한 자연현상의 사진들은 오행원리에 기초하여 배열하였다. 북(北)쪽의 방향에는 검고 어두운 기운에 빛이 없으며, 그늘이고 추운 겨울의 사진이 위치한다. 동(東)쪽의 방향에서는 북쪽 기운으로 생성된 물(水)에 의해 생명이 싹트는 자연현상을 보게된다. 만물을 싹트게 하고 생명을 주는 것, 북쪽 기운에 해당하는 오행원리의 물(水)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두 기운의 관계성, 상보성을 확인하게 된다. 녹색기운을 포함하는 청색기운은 동쪽에서 이루어지는 자연현상과 기후를 반영한다. 계절상 청색기운에 해당하는 봄의 기운이 극(極)에 이르면 뜨거운 기운의 여름이 되는데 오행원리의 불(火)이 이것에 해당한다. 불은 붉은 기운으로 지각된다. 불이 식어 차가운 기운이 시작되는 서(西)쪽 방향은 수확, 황금, 백색의 금속, 열이 식은 상태의 사진으로 백색기운을 설명한다. 중앙은 흙(토)에 해당한다.

   자연현상의 사진 배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행의 원리는 동양의 사유체계를 통해서 자연현상을 지각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원리이다. 오행은 빛과 온도, 그리고 이들의 작용으로 가능한 자연의 현상을 설명한 원리이다.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에 있어 ‘색’이 중심을 이루고 있음은 오행의 각 기(氣)에 해당하는 ‘기운 색’으로 설명 가능하다. 자연현상의 색지각을 통해 오행은 동양의 전통색채인 ‘오방색’과 밀접한 관계성을 보인다. 그러나 현대에서 이해하는 오방색은 자연현상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되었지만,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음양오행원리에 따른 자연현상에서 보여지는 색은 특정 ‘색’으로서 정의될 수 없다. 오방색은 계절변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의 하나로 자연현상에 대한 직관적 경험을 통해 지각한 색채체계이다.



② 생활 속의 오방색

*한국 백색의 의미 (The meanings of Korean White)

   한국은 전통적으로 우주가 가득 차 있으면서도 비어있는 무극(無極)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하는 음양오행원리(陰陽五行原理) 따라 만물(萬物)을 이해해 왔다. 동양에서 말하는 무극(無極)은 비어있으면서도(空;void) 동시에 채워져(實;solid) 있는 상태이다. 무극이 극(極)에 이르면 태극(太極)이 되는데, 태극은 움직임(動)과 멈춤(靜)을 반복한다. 멈춤의 기운인 음(陰)과, 움직임의 기운인 양(陽)의 두 기(氣)가 상호관계를 이루며 운행하는 가운데 오기(五氣 : 수(水), 금(金), 화(火), 목(土), 토(土))가 생겨나고, 이 오기(五氣)가 운행됨을 오행(五行)이라 한다. 음양오행원리는 이와 같은 음양기운의 상호관계에서 세상만물이 생성된다고 설명한다. 음(陰)과 양(陽)의 운행에서 양(陽)은 백색(白)의 동(動)하는 기운, 즉 빛의 기운이 생동함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고요한 기운을 가믄 기운(현;玄;어두움)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색으로 표현한 것이 흑(黑)에 해당한다. 사유체계상에서 보았을 때, 한국의 백색(白色)은 이와 같은 우주만물의 생성과정에서 이해되어 온 양(陽)의 에너지(energy, 氣)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백(白)을 에너지로 여겨온 한국은 백색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조선시대에는 신분과 계급의 차이 위해 국가가 제도상으로 색채의 사용을 제한하는 금제(禁制 : 조선시대 경국대전 4, 5冊 형전 내용의 하나)를 두었는데, 이와 같은 금채색(禁彩色)의 제도에 따라 일반백성들의 의복에서는 다양한 색의 사용이 제한되었다. 정치 제도상 제한된 것이기는 하였지만, 백색 무명의 옷을 즐겨 입게 되어 백(白)은 한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빛이 되었다, 흰 빛을 신성하게 여겨온 한민족은 가장 친근한 백색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해 내었다. 한국미는 ‘담백의 미학(淡白의 美學)’으로 일컬어지는데 그 이유는 흰색의 아름다움을 보고 다양하게 표현한 것에 있다. 투명하고 절제된 순수하고 깨끗한 흰 빛은, 모든 빛을 반사하여 다른 색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듯 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한다. 이러한 백색의 ‘미(美)’를 표현하고자 한 예를 백자와 같은 유물에서 볼 수 있다. 검소, 질박, 결백함의 미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국은 백색의 자기를 제작하여왔다. 


   한국의 ‘백색’은 안료의 ‘백’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의 백색은 한민족이 역사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체험한 자연 에너지의 근원이요, 만물의 시작이 되는 바탕의 색을 의미한다. 한국의 백색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한국인 삶의 지혜와 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 흑색의 에너지

   흑색은 태양의 열과 온도의 영향이 없는 북쪽에 해당하며, 그늘이며, 추운 기운을 연상케 한다. 빛이 없어 어둡다. 태양이 솟아오르고, 생명이 시작되는 봄의 청색기운, 목(木)의 기운을 준비하는 겨울은 흑색(黑)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이어오는 봄을 생동케 하는 것은 숨겨진 흑색(黑)의 힘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흑색은 고요한 가운데서 느껴지는 숨겨진 에너지라 할 수 있다.

   한국사람들 의식속에서의 흑색(黑色)은 이와 같이 모든 우주만물이 생겨나는데 힘이 되는 음(陰)의 에너지(energy, 氣)를 의미한다. 즉 빛을 잃음에 따라 보여지게 되는 "색"이라기 보다는 빛의 자극이 있거나, 혹은 다른 여러가지 색을 동시에 볼 때 그 사이사이에서 검게 보이는 관계상에서 보여지는 흑색이다. 해가 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 만물을 보면 모두가 검게 보이는데, 이와 같은 검은 색이 한국의 흑색(黑)이다. 에너지로 여겨온 한국의 흑(黑)은 생활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졌을까.

 
   흑색(黑)에는 현색(玄色 ; 어두운 공간으로 느껴지는 검은색), 오색(烏色 ; 불투명의 검은색), 현청색(玄靑色 ; 새벽의 어슴프레한 검은색), 묵색(墨色 ; 투명기미가 느껴지는 검은색) 등이 있다. 한국의 흑색은 칠흑 같은 검정이 아니다. 거무스레한 기운이다. 일반적으로는 흑색이 어두움과 죽음 등의 부정적인 상징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한민족에게 흑색은 에너지의 색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림 2 .흑색의 에너지

그림 2 .흑색의 에너지

          

   서예에서 느껴지는 먹의 힘이 바로 흑색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쉬운 예이다. 흑색의 기운이 백색 한지 배경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고요한 붓의 놀림이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호흡의 조절과 손끝에 전달되는 힘의 강약이 먹(墨)의 흑색(黑)을 통해 표현되어진다.
서예가와 혼연일치가 되어 붓의 끝자락을 통해 그 기운과 에너지가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음양오행원리를 따른 한민족은 우주의 두 기운이 서로 작용하는 과정을 통해 에너지의 색으로서 백색과 흑색을 인식하여 왔다. 


   한민족의 흑색은 생명을 품기 위한 준비의 과정을 대변하는 색이며, 숨겨진 에너지이다.
우리가 보는 가지각색의 모든 색이 모여서 흡수되면 검은색이 된다. 검은색은 색이 없는 현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는 모든 색이 모여진 힘의 원천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검은색이다.


*한국의 청과 홍

    색은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의 문화유물에서는 청색과 홍색을 함께 이용한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 3. 조복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그림 3. 조복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한국의 청(靑:blue)은 동쪽의 방향을 상징한다. 또한 봄의 색이다. 한국은 전통염색에서 쪽염색이라 하여 옅은 청색에서 검정에 가까운 청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청을 만들었다. 쪽풀에서 염색의 안료를 얻어 염색을 하는데, 이를 남색(藍)이라 한다. 예로부터 이 “남색” 혹은 “쪽빛”은 아주 귀한 색으로 여겨왔다. 높은 신분의 사람들의 의복이나 중요한 곳에 사용한 색이 남색이며 청색이다.

   또하나, 한국 청색의 특징적인 내용은 한국의 청색(blue)은 녹색(green)의 의미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푸른산, 푸른들의 경우 산과 들은 녹색이지만 ‘푸른’이라 하여, 청(靑;blue)색으로 표현한다. 그 이유는 눈으로 보았을 때의 색상의 차이보다는 청색이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다. 청색(靑;blue)은 백색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색채어이다.




   한국에서 청색과 가장 많이 배색되는 색은 적색이다. 한국의 붉은 색은 적색 또는 홍색, 주색 등으로 말한다. 또한 남쪽 방향을 상징한다. 남쪽은 따뜻한 곳이기에 생명활동이 왕성한 곳으로 생각한다. 적색은 불과 태양을 상징한다. 따뜻한 기운이 왕성할 때 복이 온다고 믿었던 우리 조상들은 적색 기운이 차가운 기운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기운을 귀신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적색은 귀신을 물리치는 색이다. 적(赤;red)색은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하여 한국의 조상들은 집안에 붉은 팥, 붉은 고추, 대추 등을 두었다. 적색이 병을 예방하고 좋지 않은 일을 막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생활에서는 청색과 적색이 함께 쓰이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청과 적의 배색은 한국 국기의 태극에서뿐만 아니라 건축물과 복식에서도 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색채문화가 널리 퍼져 사찰과 같은 건축물에 청색과 적색을 칠하였다. 이를 단청이라 한다. 단청은 ‘丹(붉을 단)’과 ‘靑(푸를 청)’을 의미하는데 붉은 색과 푸른 색을 주로 칠한다. 단청은 현재도 궁궐이나 사찰의 건축에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조복 위에 둘렀던 후수는 관직의 위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식의 하나이다. 후수에서는 적색 비단에 학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을 청. 황. 청. 백색의 4단이 수로 놓여진 것을 볼 수 있다. 계급에 따라 수의 내용과 재료가 금, 은, 동으로 달라진다. 아래에는 청색실로 망과 매듭을 짜서 장식했다. 청과 적 또는 홍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훌륭한 장식으로 사용되어진 예를 유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의 청색과 홍색은 방향과 기후의 색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생활속에서 경험을 통해 색을 이해하고 해석하여 생활에 적용한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한국의 황색(黃色) Golden yellow

   한국의 황색(黃色)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황색과는 다르다. 금색의 기운을 띤 황색이 한국의 황색이다. 천하를 통치하는, 천자(天子)를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왔던 한국의 황색은 어떤 색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한국의 황색은 흙의 색을 의미하며, 황토의 비옥함을 나타낸다. 오방색에서 네 방향의 중심에 위치하는 황색은 인간, 즉 왕을 의미한다. 중심의 색인 황색의 옷은 태양의 빛깔로서 황제 혹은 왕만이 입을 수 있었다. 서양 일부에서는 황색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하였지만(예: 이집트의 상복, 스페인의 사형집형인의 복색, 유태인의 별모양 노란표지, 유다의 옷), 한국은 황색을 태양의 빛깔로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색으로 고귀한 색으로 여겨왔다. 황제의 색이라 하여 일반 서민들은 황색의 옷을 입을 수 없도록 하였다. 황제의 황색은 생명의 원천이며, 풍요와 생산을 의미한다. 마르코폴로는 한국을 ‘황금의 나라’라고 하였으며, 한국인들은 금색이 고귀함을 표시한다고 여겨 금(金)자를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왕의 색이며, 생명원천의 색으로 여겼던 황색이 한국의 Golden Yellow 이다.


   황색과 금색이 함께 보여지는 색이다. 이러한 색을 Golden Yellow라 한다. Golden Yellow는 투명하지 않은 금속의 느낌을 준다. 이 색은 종교적인 그림에서 빛을 표현하는데 쓰여졌다. 뿐만 아니라 왕의 상징으로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적색과 황색을 배색하였다. 그림에서 적색 바탕 위의 황색을 볼 수 있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흉배는 조선시대 신분을 나타내 주는 표장이다. 그림은 홍색 원삼에 부착했던 자수이며 집권층의 남성의 옷에 부착했던 것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청색과 적색의 조화는 선명하고 유쾌한 느낌을 들게 하면서 그 권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한국의 Golden Yellow는 장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권위와 풍요, 다산, 생명원천을 의미하는 고귀한 색이다. 태양을 의미하는 색이며, 한국인의 정서를 황금빛의 빛깔로서 표현하는 색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만물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색이 바로 한국의 Golden Yellow이다.



*한국색채의 자연미 - 쪽빛

   한민족은 자연에 동화되어 사는 삶을 살아왔다. 도시화, 산업화에 따라 생활의 모습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 자연의 변화모습을 관찰하는 가운데 생활의 지혜를 터득해왔다. 한국 사람들의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전통 염색이다. 특히 쪽색은 전통 천연염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한국적 색으로 이해되어지고 있다.

   쪽은 인류역사상 가장 먼저 사용된 식물염료중의 하나이다. 마디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이다. 이 식물의 잎에는 남색색소(Indigo)가 들어 있어 염료로 많이 사용된다. 중국과 인도차이나가 원산지이지만 환경이 비슷한 한국에서도 많이 재배되어왔다.
여름이면 한국의 전남 나주 영산포 일대는 쪽으로 푸르게 물들었다고 한다.


   쪽풀은 옷감의 염색에 주로 이용되었다. 쪽으로 염색한 옷감은 화학약품으로 처리하지 않아도 방충효과가 있다. 쪽물로 물들인 종이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다른 종이에 비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쪽색은 중요한 고대문헌이나 불경, 서화용의 종이염색에 이용되어왔다. 쪽물로 염색한 천은 피부병의 치료에도 좋다. 방충 방균 방염의 성능이 있어 옛 어른들은 옷장에 속에 넣어두어 충해를 방지하기도 했다.


   쪽염색은 쪽염료에 옷감을 담그는 횟수에 따라서 색이 다른 것이 또 하나의 매력이다. 촉매역할을 하는 매염재의 첨가 없이 쪽풀과 조개껍질의 가루만으로 푸른 염색이 가능하다. 

          

그림 4. 쪽염색과 양파염색

그림 4. 쪽염색과 양파염색

          

   하지만 염색의 과정은 그 푸른색의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특별한 만큼 복잡하고 정교하다. 쪽풀의 재배시기부터 염색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순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쪽염색은 쪽물에 담그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짙은 청색에 가까워지는데, 여러번 반복하면 검정에 가까운 맑은 Indigo와 같은 청색이 된다.


   쪽 염색뿐만 아니라 한국전통 천연염색을 통해서 아름답고 다양한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림 5. 쪽염색과 양파염색

그림 5. 쪽염색과 양파염색

          

   홍화, 치자, 양파, 동백, 검정콩 외에 여러 가지 재료로 전통염색이 가능하다. 한국인은 자연그대로에서 나온 염료와 친자연적, 무공해의 과정으로 염색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색의 옷을 만들어 입었다. 한국색채가 자연스러우며 아름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색을 만들고, 염색하는 과정이 친자연적이며, 자연 그대로의 염료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쪽색은 예로부터 고귀하게 생각되어졌다. 염색과정이 복잡한 이유도 있지만, 높은 신분의 귀족들이 즐겨 입는 옷의 색이 쪽색이었다. 고유한 염색법과 자연재료의 사용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자연미”를 드러내는 것이 한국의 색채미의 특성이다.


*한국색채의 자연미 - 담장과 장독대

   한국의 건축물은 크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며 마치 숨어 있는 듯 그 놓인 곳의 자연과 닮아 있어 아름답다. 뒷산을 배경으로 한 높지 않은 처마선이 정겹다. 한국의 집은 시골사람의 모습인 양 소박하다. 구석구석 모든 모양과 색이 자연을 옮겨 놓은 듯하다. 자연물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손질하여 집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그대로 자연의 색을 지닌 것이다. 

          

그림 6. 꽃담

그림 6. 꽃담

          

그림 7. 한국의 담장

그림 7. 한국의 담장

          

   이렇게 한국의 전통가옥은 자연재로 지어졌다. 진흙과 돌, 자갈과 목재를 주로 이용하였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조립만으로 건축되기도 하였다. 한국 건축의 특징에서 돋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담이다.

   혹시 한국의 담을 본 적이 있는가. 곧 무너질 듯한 담이 있는가 하면, 정교하게 한층한층 돌을 쌓아 만든 정겨운 돌담,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한 꽃담에 이르기까지 규모와 형태가 다양하다. 담 너머로 보이는 펼쳐진 들과 산은 액자 안의 그림처럼 보인다. 사랑방의 문을 열어 밖을 보자.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그림 8. 담장과 장독대

그림 8. 담장과 장독대

          

그림 9. 장독대

그림 9. 장독대

          

   뜰의 장독대에는 다양한 진흙 빛깔의 옹기가 모여있다. 다양한 크기의 옹기를 모아두었고, 그 빛깔 또한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자연을 배경으로 본 옹기들은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조화롭다. 이와 같이 한국의 집과 마당은 자연과 어색함이 없다. 담은 외부와의 경계를 표시하고, 방어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보일 듯 말 듯한 절묘한 높이와 함께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붉은 색과 검은색 벽돌을 이용하여 장식하거나 기와편만으로 기하학적 추상과 장수를 상징하는 문양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꽃담 뿐만 아니라 공간 구획을 위해 만들었던 내외담에서도 한국인의 미적감각을 엿볼 수 있다. 투박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은 그 재료와 색채에서 연유한 것이다. 페인트로 도색하거나 특별한 마감재료가 없었지만, 자연그대로의 재료와 색채를 이용하여 특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담을 따라 들어가면 뒷마당에서는 담장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독대를 볼 수 있다. 간장, 된장 등의 장을 담은 항아리를 모은 곳이다. 담장과 장독대의 어울림은 서로 닮아 있으면서 또한 다르다. 투박한 흙담아래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그 흙을 구운 짙은 빛깔을 띠고 어울려 있다. 한국에서는 의식주의 다양한 어울림 속에서 한국색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색채의 아름다움은 곧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멋이다. 4계절의 뚜렷한 변화와 조화를 이루는 색채는 소박하고 아담한 자연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 색채에서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온 생활과 풍습의 영향이다. 

          

3) 오행원리와 오방색

   빛과 태양을 원동력으로 운행하는 삼라만상의 원리를 오행으로 정의한 음양오행원리는 흙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는 우주의 운행원리이다. 또한 운행의 과정이 빛과 그에 따른 온도의 변화로 경험되는 기운에 따른다. 

          

五行

節季

方位

色相

神獸

목(木)

봄(春)

동(東)

청(靑)

청룡(靑龍)

화(火)

여름(夏)

남(南)

적(赤)

주작(朱雀)

토(土)

토용(土用)

중앙(中央)

황(黃)

 

금(金)

가을(秋)

서(西)

백(白)

백호(白虎)

수(水)

겨울(冬)

북(北)

흑(黑)

현무(玄武)

표 1. 오행에 따른 색상,방위,절계표
출처 : 임영주 (1991) [단청] 빛깔이 있는 책들.제 39권(서울: 대원사) 115쪽

   

           

   표 1. 에서 오행의 원리에 따른 절계, 방위 색상의 관계성을 볼 수 있다. 표 1. 에서 마지막의 신수(神獸)는 자연의 운행을 설명한 오행 원리에 동양 전통사회의 종교적인 영향에서 비롯된 상징적인 부분에 해당하지만, 절계(節季), 방위(方位), 색상(色相)에 따른 분류는 오행원리가 우주의 운행원리에 따른 자연현상에 대한 직관적 경험에 근거한 기록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오행과 자연 기후현상은 토용(土用)를 제외한 4절계인 봄(春), 여름(夏), 가을(秋), 겨울(東)과 대응으로 관계한다. 태양이 뜨는 동쪽은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며, 생명은 나무(木)에 트는 싹에서 보여지는 푸른 기운으로 지각한다. 여름(夏)은 봄에 시작된 생명이 절정을 이루는 절기(節氣)로서 태양에너지의 효율은 최대에 이른다. 즉 열 효율이 가장 높은 시기이며, 남쪽의 뜨거운 기운이 이동하면서 시작된다. 뜨거운 기운은 지속적으로 열을 보존할 수 없다. 

   시간이 경과하면 식게 되며, 온도는 하강한다. 한랭한 기운의 이동으로 가을(秋)이 시작되며, 서쪽에서 불어오는 편서풍(偏西風)은 가을을 대표하는 기후현상의 하나이다. 겨울(冬)은 태양에너지의 효율이 낮아지면서 한랭한 기운이 극에 이르는 절기로서 빛에너지의 부족으로 어둡고, 추우며, 온도가 하강하는 시기로 빛에너지에 대한 흡수량이 적어지면서 그늘진 북쪽의 차가운 기운을 형성한다. 차가운 기운은 태양에너지로 유지해 온 생명체의 활동을 정지시키게 되고, 얼게 만든다. 이러한 자연현상은 생명을 느낄 수 없는 절기인 겨울(冬)의 대표적 현상에 해당한다. 표 1. 의 내용을 오행원리에 따라 정리한다.

첫째, 오행원리의 토(土)는 세상만물 시작의 전제조건이다.
둘째, 오행원리의 목(木)은 세상만물의 생명이 시작되는 푸른 기운의 봄(春)이 해당된다. 봄에 동쪽에서 뜨는 태양은 생명시작의 원동력이 되며, 뜨거운 기운을 만든다.
셋째, 오행원리의 화(火)는 태양에너지의 흡수가 극에 이르면서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 찬 기후현상으로 계절상 여름(夏)이 해당된다. 여름은 남쪽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적색의 기운으로 지각된다.
넷째, 오행원리의 금(金)은 열이 뜨거운 기운에서 차가운 기운으로 이동하면서 생겨나는 자연현상인 서쪽의 바람(편서풍;偏西風)과 함께 시작된 가을(秋)이 해당되는 원리이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로서 수확의 절기이며, 만물이 결실을 맺는 시기로서, 가치 있는 금속에 비유하며 금속의 백색기운과 대응한다.
다섯째, 오행원리의 수(水)는 가을에 시작된 차가운 기운의 이동으로 기온이 하강하고, 태양에너지 집적의 감소로 생명체의 활동은 정지된다. 북쪽의 한랭한 기운의 하강으로 어둡고, 음습한 거믄 기운에서 시작된 겨울(冬)이 해당된다.

   요약된 내용과 같이 오행원리를 다음과 같이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으로 정리할 수 있으며 여기에 봄을 시작으로 하여 연결관계로 보고 간략히 도식화 할 수 있다.
「목생화(木生火) - 화생토(火生土) - 토생금(土生金) - 금생수(金生水) - 수생목(水生木)」


① 象徵體系로서 五方色
   ‘전통색’에는 상징적인 의미를 바탕으로 하는 오방색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서양이 확인한 블랙홀(black hole)의 모습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오방색이 red(r), yellow(y), black(bk), green(g), blue(b), white(w)에 purple(p)의 보여지는 색만을 의미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황색의 경우는 황제를 의미하고 있는 것과 같이 파생의 의미가 존재하는 색의 경우 상징화된 색으로 이해하며 오방색에서는 이와 같은 특징이 두드러진다. 상징체계로 오방색이 표현된 사신도(四神圖)를 그 예로 든다.

그림 7에서 볼 수 있는 사신도에 표현된 오방색은 ① 눈으로 지각되는 고유한 색 값 외에, ② 방향을 설명하는 색으로, 쌍을 이루는 ③ 신수(神獸)를 설명하는 등 다양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체계로서 오방색을 이해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사신도에서 확인된 오방색 만으로 전체를 상징색이라 단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그림 7에서는 표 1. 에서 정리한 바에 따라, 북현무-동청룡-남주작-서백호-황룡이 오방색과 상호관계를 이루도록 표현하였다. 기복신앙에 바탕을 둔 사신도는 도교적 애니미즘의 영향으로 신수와 함께 오방색이 표현된 예이다. 그림 4. 에서는 오방색을 오행원리에 대한 직관적 경험에 의한 관찰로서 자연의 기운(氣運)에 따라 배열하였다. 그림 7. 에서는 상징체계로 정리하였으며, 이와 같은 성격으로 오방색과 같이 이해되는 예를 현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오방색은 ‘색깔’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일정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오방색은 독립된 ‘색’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방색이 자연 현상색임을 전제로 상징체계임을 가정할 때, 색은 부분으로서 관계되어 상대색으로 존재한다.


② 圖形記號體系로서 五方色
   오방색은 동양의 전통에서 보여지는 다섯 가지의 색상인 청(靑), 백(白), 적(赤), 황(黃), 흑(黑)이다. 오색(五色)은 방위, 절계, 신수 등과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 상징체계로서 오방색은 다양한 의미가 함축된 동양 고유의 색채개념이며, 자연관/우주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계절의 흐름, 빛의 밝고 어두움으로 반복되는 변화를 보인다.

   도형기호체계상에서 오방색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오(五)’는 숫자 다섯(5)을 의미한다. 오방색이 하나의 단어로 이해될 때 ‘오-색’은 다섯 가지 색을 의미하지만, 오행원리에서 숫자 ‘오’는 다양한 단어와의 연결구조를 형성한다. 오행(五行), 오미(五味), 오채(五彩)등은 숫자 ‘오(五)’가 의미하는 다섯 가지로 구성되는 독립된 개념들의 집합이다. 


          

그림 1. 방(方)의 개념도

그림 1. 방(方)의 개념도

          

   오방색의 ‘오(五)’를 다섯이라는 숫자로 대표하여, 나눔-결합이 되는 가능성의 정도를 표현한 개념으로 정의한다. 오방색에서 ‘방(方)’은 동서남북(東西南北) 위치값으로서의 상대적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명사에 붙어 정의되는 방위(方位:direction)를 의미한다. 


   오방색의 ‘방(方)’은 네 변의 길이와 내각(內角)이 같은 정방형의 중심(中心:center of square)이다. 즉 왕(人)이 자리하는 위치점(位置點:the point of location)으로서 왕을 인간으로 본다면, 인간이 자연현상과 만물의 원리를 지각하는 바로 그 위치점이 ‘방(方)’이다. 방의 네 변의 길이가 같고, 내각이 같은 정방형의 사각형을 그린 위에 사각형의 중심점(中心點;center point)에는 ‘방’을 표기한다. 사각형의 각 변은 방향에 대한 공통되는 약속인 북쪽부터 시작하여 북-동-남-서의 순으로 표기하였다. ‘색’을 제외한 ‘오방(the point of five location)’의 개념을 이상과 같이 도형의 체계로 설명해 보면, 일반적으로 이해한 ‘오방(the point of five direction)’과의 큰 차이점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이 ‘중심’으로서 개념 정의됨에 따라 자연현상을 지각하는 주체가 인간이며, 오방색이 단순히 기본 ‘오색’의 빛깔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 인식하는 ‘색’은 물체의 고유색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개념정의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방의 개념도’ 상에 흑-청-적-백-황이 위치한다는 전제에서 방위의 관계와 색의 위치관계의 기준이 정해질 수 있으므로 도형기호체계에서 나타나는 결과로 오방색이 관계색과 상대색으로 개념정의 될 수 있다.
‘방’의 개념에 초점을 두고 도형화(圖形化) 하였다.


③ 自然色系로서 五方色의 가능성
   자연색체계의 원리는 인간의 상대적인 감각에 의해 색채를 나타내는 색채체계원리로서 유기적 기준에 근거하여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한 색채체계원리이다. 뿐만 아니라, 신과학적 입장과 유기적, 전일적 세계관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영하고 있다.

   오행원리는 전일적, 유기적 관점에서 신과학의 특징인 상보관계, 대응관계를 토대로 변화 반복되는 운행체계로서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원리이다. 


          

그림 2. 오방색의 청색과 녹색 중심의개념도

그림 2. 오방색의 청색과 녹색 중심의개념도

          

   상징색체계로서 오방색의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오방색이 상대색, 관계색임을 알 수 있다. 도형기호체계원리에서 ‘방’의 개념을 재정의하여 오방색이 색체계원리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지각된 ‘색’은 동양의 전통을 통해서 본 ‘색’과는 차이가 있다.
‘오방색(五方色)’이라는 명칭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개념정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음양오행원리에 따르면, 음의 기운이 한번 정(靜)하면 다시 양의 기운이 동(動)하게 된다. 태양의 빛이 시작되는 동(東)쪽은 양의 기운에 해당한다. 따뜻한 기운에서 나무의 푸른 생명이 시작되므로 청록(靑綠)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되는 봄은 ‘청(靑)색’’이 된다. 양(陽)의 기운이 극에 달하는 여름은 일조량이 증가하여 뜨거운 기운을 동반한다. 극에 이른 양(陽)은 만물을 꽃피우고, 붉게 물들인다. 뜨거운 기운과 붉게 물든 꽃은 ‘적(赤)색’으로 지각된다. 양이 극에 이르면 다시 음이 정(靜)하는데 이런 기운의 운행이 시작되면서 가을(秋)이 된다. 식은 것은 희뿌옇게 지각된다. 


   백(白)은 열이 식은 상태의 현상(現象:phenomena)을 지각(知覺)한 색(色)이다. 끝으로 ‘황(黃)’은 방(方)에 해당하는 중앙(中央)의 기운이다. ‘황(黃)’은 땅의 기운을 의미하며, 또한 임금의 위치인 ‘방(方)’의 색이다. 자연현상의 색으로 지각한 바 있는 흑(黑), 청(靑), 적(赤), 백(白), 황(黃)의 오방색은 각각의 ‘색깔’이 아닌 자연현상에서 보여지는 ‘빛깔’이다. 우주의 운행원리 및 기후변화와의 상호관계성을 가지면서 지각된 현상색(顯象色)이다.



④ 色彩言語와 慣用色名
    오방색에서 ‘청색’의 경우는 그 색채어가 포함하는 색영역이 광범위하여 개념의 규정을 필요로 한다. ‘청’의 개념을 명확히 하여 둔다.



⑤ 색명으로서의 청
   오방색에서의 청색(靑色)은 시각적으로 지각되는 푸른색(blue)이 아니다.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푸르름의 개념을 포함한다. 따라서, 푸른 산, 푸른 들, 푸른 하늘에서와 같이 청색과 녹색은 ‘색깔’의 시각적인 차이보다는 녹색(綠色)을 포함하여, 청색(靑色)의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푸르름(관념/觀念)으로 의식화(意識化)되어 있다. 한국인에게 있어 청색이 색깔(물감) 그 자체의 지각적(知覺的:perceptual) 특성보다는 청색이 환기하는 개념적(槪念的:conceptual)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청’과 ‘녹’을 함께 위치시켜 두었다.
빛의 스펙트럼에서의 청색영역과 색명의 상관관계를 밝힘으로써 청색의 개념을 정의한다. 

          

표2.빛 스펙트럼-색명 상관표
스펙트럼
파장영역
450~480nm
480-520nm
520-570nm
색명
靑色(blue:460nm)
靑綠色(blue-green:490nm)
綠色(green:560nm)
NCS-CIE 상관
NCS
CIElab(D65, 2°)
NCS
CIElab(D65, 2°)
NCS
CIElab(D65, 2°)
L a b
L a b
L a b
NCSS4050-R80B
NCSS4050-R90G
NCSS4050-B
NCSS4050-B10G
NCSS4050-B20G
NCSS4050-B30G
36.26 6.85-34.33
39.23-1.76-31.31
41.77-1056-26.95
41.69-16.65-22.57
43.64-21.94-17.75
44.69-24.86-14.45
NCSS4050-B40G
NCSS4050-B50G
NCSS4050-B60G
NCSS4050-B70G
NCSS4050-B80G
43.80 -27.38 -10.90
43.68-28.99-8.34
43.36-30.05-5.32
43.46-32.33-3.05
43.42-33.520.32
NCSS4050-B90G
NCSS4050-G NCSS4050-G10Y NCSS4050-G20Y NCSS4050-G30Y NCSS4050-G40Y
43.24 -35.49 4.31
43.13-34.5610.45 45.15-31.9015.92 46.37-28.4320.64 47.46-23.3724.44 49.89-18.8630.19
전통색명
석청(石靑), 청태(靑苔), 청채(靑菜)
청송(靑松), 청산(靑山), 청과(靑果)
벽록(碧綠), 취록(翠綠),품록(品綠), 초록(草綠)
한글
형용사
일반
색명

해맑은 파랑, 밝은 회파랑, 회파랑, 어두운 회파랑, 검파랑, 연파랑, 진파랑, 샛파랑, 우중충한 파랑, 어두운 파랑, 밝은 파랑, 파랑
해맑은 청록, 밝은 회청록, 어두운 회청록, 검청록, 연청록, 우중충한 청록, 어두운 청록, 밝은 청록, 청록, 진청록, 샛청록
해맑은 녹색, 밝은 회녹색, 회녹색, 어두운 회연두, 검녹색, 연녹색, 우중충한 녹색, 어두운 녹색, 밝은 녹색, 진녹색, 샛녹색
관용
색명
세룰리언 블루, 베이비블루, 스카이그레이, 옥색, 터쿼어즈블루, 샤이안, 마린블루, 물색, 남회색, 하늘색
청죽색, 철색, 피콕그린, 나일블루, 피콕블루
리프그린, 풀색, 어린잎색, 솔잎색, 백록색, 상록수색, 코발트그린, 에메랄드그린, 청록색, 말라카이트 그린, 짙은녹색, 보틀그린, 청자색, 비리디언
계통
색명
파랑, 감청
청록, 바다색
국방색, 연두, 풀색, 녹색, 초록

근거자료: 김용훈(1998), 『색채매카니즘』, 부록3. 전통색명일람표, p.223 ; pp.226-247. 
         허은영(1999), 『중국어 색채어 연구:오색어의 문화상징과 구조를 중심으로』.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청구논문), p.23.

  표 2. 에서는 크게 빛스펙트럼과 색명을 기준으로 청색과 녹색에 해당되는 파장 영역을 설정하였다. 색에 녹색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은 색채의 개념이 색채의식적 특성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표에서는 오방색에서의 청색 개념의 정의를 위하여 한국인의 색채의식이 반영된 색명을 분류해 보았다. 빛의 스펙트럼에서 청색-녹색에 해당하는 가시광선의 영역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파장과 색명을 대응하여 열거하였다. 빛의 스펙트럼에서 청색과 녹색의 영역(440nm-570nm)을 분리하여 청색 파장의 범위를 440nm-465nm, 녹색 파장의 범위를 530nm-570nm로 설정하고, 중간영역을 청록색의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CIE의 표색계에 따르면 청색(靑色:blue)은 460nm, 녹색(綠色:green)은 560nm로 정하고 있으나, 동양의 ‘색’은 정량적(定量的:quantitative)으로 수치화된 자료(data)가 없으므로 CIE 표색계를 기준으로 파장(波長:wavelength)의 영역을 정성적(定性的:qualitative)으로 구분하였으므로, 오차가 있음을 밝혀둔다. 연구자는 동양의 청색(靑色)과 녹색(綠色)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하여 청색-녹색의 파장에 해당하는 CIE Lab의 대응 값을 S/NCS의 값과 함께 표기하여 보았다. 한국의 전통색명을 열거해 보면 청색과 녹색의 경계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색명이 다수이다. 청송(靑松), 청산(靑山), 청과(靑果)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색명은 분명히 청(靑)색이지만, 실제로 현상(現象;phenomena)에서 지각(知覺:percpetion)되는 색은 녹(綠)색에 가깝다.

    한글 형용사를 통해서 본 일반색명의 경우 형용사에 단계를 두고 파랑, 청록, 녹색과 결합하여 의미 구분을 하고 있지만 정확한 색은 연상되지 않는다. 관용색명(慣用色名)의 배열에서도 녹색기운이 감도는 옥색(玉色), 청죽색(靑竹色), 청자색(靑磁色)에서 모두 ‘청색(靑色)’의 개념이 녹색(綠色)을 포함하고 있다. 끝으로 계통색명(系統色名)에 해당하는 ‘바다색’의 경우 일반적으로 색을 나타내는 형용사와 결합되어 ‘푸른 바다’로 통용되는데 여기서 ‘바다’가 의미하는 색은 녹색기운이 감도는 색이다. 이와 같이 정리된 자료를 통해서 빛 스펙트럼과 색명의 관계에서 ‘청(靑)색’은 ‘녹(綠)색’이 내포된 색임을 확인하였다.

   한글에서 ‘청색’이라는 색채어는 yellowish green에서 reddish blue에 이르는 넓은 영역에 해당되는 모든 색을 일컫는다.


⑥ 色과 言語의 關係
   오방색의 ‘청색’에는 ‘녹색’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눈으로 본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할 때 언어로 설명한다. 색은 색언어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인간은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인간이 지각한 색은 색언어로 변환되어 그 느낌을 공감하기를 원하는 타인에게 전달된다. 색명의 체계화는 인간대 인간에서 이루어지는 색에 관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민족과 문화에 따라, 색언어의 표현에서는 동일한 색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색지각은 어느 누구와도 일치될 수 없다. 모든 ‘색’에 있어 정확한 의사소통은 어렵다. 하지만 공통으로 지각되는 색에 대해서만이라도 언어적 약속과 체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방색은 한자문화권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으므로 한글로 정의된 색명과는 의미상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음양오행원리에서 오색이 생성되는 과정은 신과학적, 전일적 관점에서 상보적 대응관계로 유기적 기준에 근거한 순환과정과 같다.
대응색 원리 개념은 서양에 비해 시대적으로 앞서 있었으나, 오방색은 발전적 전개로 이어지지 못하여 체계로서보다는 ‘색’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글의 경우는 서로의 조합 없이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한자의 경우 문자 하나는 다의성을 가지므로 체계적으로 규준화하는데 있어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 

          

그림 4. 오방색의 도청화

림 4. 오방색의 도형화

          

  앞서 ‘청색의 개념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색언어는 색 정보의 정확한 전달을 위한 기호의 역할을 하기는 하나 간혹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여 혼돈을 주기 때문에 색에 대한 언어의 공통된 약속이 이루어져 체계화되어야 한다.

   26자 알파벳의 조합만으로 모든 단어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이 한글의 경우 24자의 자모의 조합으로 단어가 구성된다.

특히 한글은 발음기관을 본떠서 만든 문자라는 데 있어 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음성기호로서 소리와 파장에 의해 의미가 전달되는 문자이다. 

          

그림 5. 나무꼭두

그림 5. 나무꼭두

          

  공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청각은 색채와 인간의 시지각과 같은 구조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이상에서 볼 때 오방색을 자연색체계로 이해하고자 하는 체계화의 노력은 색채언어를 체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⑦ 五方色體系와 그 構造的 特性의 이해

   오방색체계는 오행원리에 대한 관심의 지속으로 생겨난 ‘색채’의 체계이다. 오행의 운행원리가 무극을 시작으로 움직이고 멈추는(動靜)과정의 반복으로 형성된다는 것은 문헌을 통해서 확인된 바이다. 서구 신과학의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볼 때, 오방색체계는 자연의 현상을 대응의 관계로 지각하였으므로 자연색체계의 구조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도형기초체계로서 정의할 때 오방색체계에서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방’의 위치점을 강조하였다. 중심을 기준으로 상보관계를 이루는 오색은 우주 만물의 운행과 변화 모습을 반영한다. 상징체계로서 오방색체계에서는 도형상으로 표현되기는 어려우나, 색의 이미지를 떠올릴 경우, 그림 7.의 사신도에서와 같이 표현될 수 있었다. 


   색채언어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청색’의 개념이 분명하게 정의된다면, 오방색은 대응원리에 기초한 자연색체계로서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6. 여인천하 중에서

림 6. 여인천하 중에서    

       

그림 6. 여인천하 중에서

그림 6. 여인천하 중에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오방색이 체계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노력이 필요하다.


   오방색체계가 자연색체계로서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하였지만, 현대사회에서 전통색으로서 오방색은 ‘색’의 상징적 의미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색체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방색체계에서 확인되는 색의 원리, 방의 원리는 색을 대응관계에서 이해한 헤링의 생리학적 지각과정과 구조적 특성에서 다르지 않다. 음양오행의 원리적 이해와 함께 살펴본 오방색은 자연색체계의 구조를 가지며, 체계화의 가능성이 기대된다. 

          

(3)왕실의 혼례복에 담긴 색채와 사상

1) 국왕과 왕비의 혼례복과 색채

   혼례식의 화려함과 장엄한 맛을 풍겨주는데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궁중 복식이다. 궁중복식이 지니는 가장 큰 의미는 조선시대 최고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는 데 있었다. 국왕과 왕비의 복식 자체에 새겨진 문양과 화려한 색채들은 단순히 미적인 감각만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며, 문양에 나타난 상징성은 국가와 왕실의 권위를 뒷받침해주며, 색채에 반영된 음양오행사상은 최고 권위자의 절대적인 지위를 보여준다. 본 장에서는 국왕과 왕비의 법복(法服:중요한 의식 때 입는 복식)과 의대(:갖추어 놓는 의복)를 중심으로 궁중 복식의 면모를 살펴보기로 한다.

①국왕과 왕비의 혼례복과 색채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에는 대전법복(大殿法服) 항목에 국왕이 착용할 복장으로 면복(冕服), 평천관(平天冠), 적말(赤襪), 적석(赤潟), 강사포(絳紗袍), 원유관(遠遊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국왕의 의복은 가례 때의 육례에 마다 착용하는 옷이 달랐다.
면복은 ‘국왕이 조회를 보거나 종묘 사직 등에 제사를 지낼 때 입었던 옷이다. 육례의 경우 국왕은 납채, 고기, 친영, 동뇌의 의식 때 면복을 입었다. 면복은 전설상인 인물인 중국의 黃帝가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황제는 중국 전설 속의 삼황제 중의 한 사람으로 의복, 배와 수레, 활과 화살을 처음 만든 문명의 시조로 추앙받았다. 이러한 황제가 만든 의복인 면복을 착용한다는 것은 신성함과 권위를 한껏 상징하는 것이다. 면복은 고려시대 공민왕이 몽고에 대한 자주운동을 전개하면서 몽고복을 혁파하고 명나라 관제를 따르면서 명나라로부터 사여받은 이래로 조선시대에도 국가의 중요 행사에 착용되었다.

   면복은 대개 면류관, 곤복(장복), 상(裳), 중단(中單), 폐슬(蔽膝:궁중유물(빛) 폐슬 사진), 혁대, 패옥, 대대(大帶), 수(綏), 말석(襪潟), 규(圭) 등으로 구성되었다(그림24, 25 면복 자료사진). 수는 예복을 입을 때 허리 뒤에 달아 늘이기 위해 색실로 짜서 대대에 매단 것이며, 말은 붉은 색의 버선, 석은 붉은 색의 신발을 의미하며, 규는 면복을 입고 손에 들던 물건으로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지게 만든 긴 관으로 왕은 청색옥을 사용하였다.


   면류관은 면복을 입을 때 쓰는 관으로서 면판의 겉은 검정색, 안은 붉은색으로 되어 있으며 앞면이 뒷면보다 약간 숙여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면판의 앞뒤에는 구슬이 달려져 있는데 중국의 천자가 12류를 단 데 비하여 조선의 국왕들은 9류로 하고, 앞 뒤 모두 18개의 구슬을 달았다. 매 류마다 9개의 옥이 있었으며, 옥의 빛깔은 붉은색,흰색,푸른색,금색,검은색의 5채색이었다. 귓가 옆에는 옥진(귀막이)을 늘어뜨렸는데 이것은 귀가 너무 밝은 것을 경계하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곤복 역시 중국의 천자가 12장복인데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9장복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고종대에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황제를 칭하면서 12장복을 착용하게 되는데, 대한제국의 선포는 왕실의 복식에도 변화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곤복과 함께 혼인 예복으로 사용된 의복으로 강사포가 있다. 국왕은 납징, 책비의 의식 때 강사포를 입었는데, 강사포는 흔히 조복(朝服)이라고도 불렸다. 강사포 착용시에는 원유관을 쓰므로 원유관포 또는 원유관복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중국의 남북조시대의 복제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고려말 공민왕 때 명나라로부터 조복으로 사여받은 이래로 정착되었다. 


   원유관은 검은색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18개의 오색 구슬이 앞 뒤 각 9개씩 달려 있었다. 금비녀를 꽂았으며, 황색,푸른색,백색,붉은색,검은색의 오색 구슬을 앞 뒤 각 9옥씩 18개 장식하였다. 강사포의 구성은 포(袍), 상(裳), 중단, 폐슬, 대대, 패옥, 수, 말, 석 등으로 구성되어 면복의 경우와 같았다. 다만 포와 상은 붉은색 비단으로 하였고 문양이 없다는 것이 면복과의 차이점이다.

   국왕은 혼인의 마지막 의식에 해당하는 동뇌연을 마치면 원유관, 강사포 대신에 평상복에 해당하는 익선관과 곤룡포로 갈아 입었다. 만원권 지폐를 통해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세종대왕이 바로 익선관을 착용한 모습이다 (영조가 익선관을 착용한 모습)



   국왕과 왕비가 혼례식에 갖추었던 예복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② 국왕의 혼례복
* 대전법복(大殿法服: 국왕의 의례복)
면복 1건, 평천관 1건, 적말1) 1건, 적석2) 1부
강사포 1건, 원유관 1부, 적말 1건, 적석 1부.

* 의대(襨) 
유철릭3) 1감: 초록토주(草綠吐紬) 1필, 안감 반홍정주(磻紅鼎紬) 1필
유과두 1감: 백토주(白吐紬) 1필, 안감 백정주(白鼎紬) 1필
곁주름 1감: 백토주(白吐紬) 1필, 안감 백정주(白鼎紬) 1필
장삼아 1감: 백정주 1필
단삼아 1감: 백정주 1필
핫바지 1감: 백토주 1필
홑바지 1감: 백정주 1필
말총두건 1부
말총망건 1부
흑궤자피화 1부: 백양모정(白羊毛精:백양 털로 만든 신발 창)을 갖춤
흑사피화 1부: 백양모정을 갖춤
흑웅피삽폐 1부


③ 왕비의 혼례복         

   

                

   왕비의 혼례복 중 가장 화려한 맛을 풍기는 의복은 적의(翟衣)이다. 적의는 가례의 절차 중에서 책비례를 행할 때 입었던 옷으로 조선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을 상징하는 복식이었다. 적의는 꿩무늬를 수놓은 포를 말하는 것으로 꿩무늬는 친애해로(親愛偕老)를 상징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왕비가 법복으로 적의를 착용한 것은 고려 공민왕대에 중국에서 관복을 보내온 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때 중국에서 처음 적의를 받아들였고 인조 때 우리식으로 옷이 바뀌어서 붉은색의 적의를 만들어 입다가 고종 때는 황제비가 입던 푸른색 적의로 바뀌게 되었다. 


   왕비의 복식도 유행을 따르고 잇었던 것이다. 조선후기까지 왕비의 적의는 대홍색의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흉배로서 금색 실을 수놓은 5조룡보를 붙이고 적의를 9등분하여 꿩 무늬를 수놓았다. 적의에는 중단, 하피(霞鞁 :적의를 입을 때 어깨의 앞뒤로 늘어뜨리는 것으로 긴 한폭으로 되어서 목에 걸치는 것이다), 상, 폐슬, 대대, 혁대, 패옥, 수, 말, 석, 규 등이 갖추어졌다. 적의를 입었을 때는 패옥을 달고 백옥의 규를 들며 대를 둘렀다. 버선(말)과 신발(석)은 붉은색으로 갖추었다.

   적의가 왕비의 대례복이라면 왕비의 소례복으로 착용된 옷은 원삼이었다.

   원삼은 사금단(紗金緞)으로 홍색의 용무늬 스란치마와 같이 입는데 앞에는 청색의 스란 웃치마를 입었다. 원삼은 소매가 길고 넓으며 소매 끝단에는 넓은 한삼이 봉재되어 있다. 원삼에는 큰 머리를 하는데 어여머리라 하여 다리를 사용하거나 나무로 만든 어여머리를 쓰기도 하였다. 왕비의 평상복은 당의였다. 당의는 조선초의 단배자(短背子)에서 나온 것으로 양옆이 터지고 길이는 엉덩이 정도로 내려와 평상복 저고리와 유사한 형태이다. 당의에는 대개 용첩지를 쓰고 머리는 쪽을 지고 봉잠을 꽂는다. 평상복은 일반 서민의 복식과 거의 같되 색이나 직물의 질에서 차이를 보였다. 가례시에는 특히 단저고리를 입었는데, 이것은 청색 계통의 바탕에 홍색 금선을 댄 저고리로 왕비의 가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4)
--> 적의, 원삼, 당의에 대한 사진 자료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 16권 21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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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왕이 신는 붉은 색의 버선
2)국왕이 정복을 입을때 신는 신
3)솜을 두어 만든 철릭. '유'는 속에 입는 짧은 옷을 의미한다. 상의와 아래 치마를 따로 재단하여 치마를 주름잡아 상의에 연결시켰다. 인조대 이후 공복으로 사용되었으며, 당상관은 남색, 당하관은 홍색임. 철릭(天益)은 왕이 입었을때의 호칭이며, 신하들의 것은 帖裏·貼裏등으로 불렀다.
4)정신 문화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왕비복' 참조.

              

2) 혼례복에 담긴 음양오행사상

   조선시대의 혼인 의복에서 또 하나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복식의 색에 나타난 음양오행사상이다. 음양오행사상은 추상적인 사상에만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의 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의복의 색채 또한 음양오행사상이 생활에 반영된 결과이다. 음양오행사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는 청(좌),백(우),적(남),흑(북),황(중앙)이다. 복색에서는 오색을 정색으로 하고 정색간의 배합에 의하여 만들어진 색으로서 벽(碧),녹(祿),유(黝),자(紫),홍(紅) 등의 간색을 적절히 안배하고 있다. 『예기』에는 ‘의(衣:웃옷)에는 오색의 정색을 쓰고 상(裳:치마)에는 간색을 쓴다’고 하였는데 의는 위에 있어서 양이고 상은 아래에 있어 음이기 때문에 간색을 쓴다는 것이다. 정색과 간색은 양음, 귀천의 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다.

   혼례복에서는 구체적으로 오행사상이 적용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면복은 장복을 흑색으로 하고 상과 폐슬 등을 훈(적색에 대한 간색)으로 하여 오행의 정, 간색에 의한 착용방식을 따랐다. 면복 착용에서 신체의 제일 윗부분에 쓰는 면관을 흑색으로 하고 제일 아랫부분인 발에 신는 버선과 신을 홍색으로 한 것 또한 음양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한편 천자는 정색을, 왕은 간색을 착용한다는 관념이 조선시대의 복색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의 국왕이 강사포의 경우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정색에 해당하는 적색이 아닌 간색인 다홍색을 입은 것이 그러한 예이다. 이런 점에서 고종대 왕비의 혼례복인 적의의 색깔 변화는 주목된다. 적의는 조선후기까지도 간색인 다홍색 적의를 입었으나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난 후에 정색인 청색으로 바귀었다. 이제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황제를 칭한 고종의 의지가 복색에도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대한제국기 적의 사진 --> 궁중유물 참조)

    활옷 속에 입는 다홍색 치마에 노랑색 삼회장 저고리는 모든 것이 흙에서 성장된다는 원리를 생(生)과 성(成)에 바탕을 두어 미혼 여성의 예복의 색으로 정하였다. 예복에 있어서는 겉감과 안감이 달랐는데 대례복의 경우는 다홍 거죽에 다홍 안이었고 내복은 연두 거죽에 다홍 안이었다. 왕비의 평소복이나 일반 부인의 예복으로 노랑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착용한 것은 노랑색(양)과 남색(음)이 상극을 이루는 색의 배합이지만 자색으로 선을 된 노랑색 삼회장 저고리를 입음으로서 상생을 이루었다고 한다. 혼례는 인간사에 있어서 음양의 합일 의식으로 볼 수 있으며 혼례 복식에서의 현훈, 적치(赤緇), 청홍 등 두 색의 결합은 붉고 푸른 가시적 색채와 함게 천지라든가 남녀의 결합 같은 음양오행사상에 의한 개념적 색채 표현이라 할 수 있다. 5)




<왕비가 혼례식에 갖추었던 예복의 구성>


① 중궁전법복(中宮殿法服: 왕비의 의례복)
적의(翟衣) 1감: 대홍광직(大紅唐織) 35척, 안감 대홍광직 5척 5촌
폐슬(蔽藤) 1감: 대홍광직(大紅唐織) 1척 5촌, 대홍향직(大紅鄕織)으로 대용, 안감 대홍사(大紅絲) 2척
대대(大帶) 1감: 초록광직 6척
대홍광직: 반폭 6척, 대홍향직으로 대용, 안감 백라(白羅) 반폭 6척
수(綬) 1감: 금의향직(錦衣鄕織) 1척 6촌
하피) 1감: 모단(冒緞) 6척
상전삼후사(裳前三後四) 앞이 세 폭, 뒤가 네 폭으로 된 치마.
감: 남광직(藍廣織) 34척, 안감 백방사주(白方紗紬) 24척
수(繡) 1감: 대홍광직 5척 5촌, 대홍향직으로 대용
면사(面紗) 1감: 자적라(紫的羅) 9척
적말(赤襪) 1감: 대홍광직 3척 5촌, 대홍향직으로 대용
적석 1부: 진주(眞珠)는 제외함
왜주홍칠함 1부

② 의대(衣)
겸장삼 1감: 대홍광직 1필
개오 ‘오’는 도포 또는 두루마기류로 긴 것을 포라 하고, 짧은 것을 오라 함.
1감: 대홍광직 30척
경의(景衣) 왕비나 왕세자빈이 입는 예복의 일종.
1감: 남광사(藍廣紗) 12척
겹면사 1감 : 자적광사(紫的廣紗) 10척
수사기(首紗只:댕기) 1감 : 자적라(紫的羅) 4오리 길이 2척 4촌, 넓이 1촌
곶의(串衣:고쟁이) 1감 : 초록토주 1필, 안감 대홍수주(大紅水紬) 1필
유저고리 1감 : 초록토주 1필, 안감 반홍정주 1필
겹저고리 1감 : 자적초(紫的?) 16척, 안감 대홍수주 1필
유호수 1감 : 자적토주 1필, 안감 반홍정주 1필
겹치마 1감 : 대홍광직 1필, 안감 백정주 1필
유치마 1감 : 남광직 1필
세수장삼(洗水長衫) : 초록정주 1필
노의대(路衣帶) 1감 : 자적라 6척 7촌
자초립 1감 : 자적초 1척 5촌
겹너울 1감 : 자적라 8척 5촌 안감 자적초 6척
흑웅피화온혜(黑熊皮化溫鞋) 1부
각양 의대를 쌀 보자기 감 : 대홍주 2필
왜주홍칠 의대함 : 4부
체발 : 10단
흑칠함: 1부, 흑각장잠(黑角長簪) 2개, 흑각대잠 5개, 흑각중잠 5개,
흑각독소잠(黑角禿小簪) 4개, 흑각차소잠: 3개, 흑각소소잠: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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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앞이 세폭, 뒤가 네폭으로 된 치마.
7)'오'는 도포 또는 두루마기류로 긴것을 포라 하고, 짧은 것을 오라 함.
8)왕비나 왕세자빈이 입는 예복의 일종.

   의궤에 나타난 자료를 통해서 왕과 왕비가 가례 때 사용된 혼례복을 일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각 복식 및 장식품에 소용된 재료와 그 크기를 알아 볼 수 있다. 또한 혼례복의 재료에 관한 규정에서도 영조가 추구한 사치방지 의지가 곳곳에 나타난다. 중국산 비단 대신에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옷감을 사용하도록 한 것이라든지, 적석에 진주 사용을 금한 것은 이러한 예로 볼 수 있다.             

          

3) 궁녀와 내관의 의복과 색채

   한편, 국왕과 왕비의 법복과 의대를 기록한 다음에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의 복장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이제껏 우리 역사에서 소홀히 되었던 상궁이나 시녀, 나인, 내관 등의 복장과 의장품들이 기록된 것이 흥미를 끈다. 

          

                

   궁녀는 왕족을 제외한 궁중의 모든 여인들을 총괄하는 용어로, 궁중의 여관으로 궁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內人이라 하였다(읽을 때는 나인이라 함) 이들은 모두 대전과 내전 및 왕세자 궁에서 시녀로 봉사하는 여자들이었다. 이중 가장 위가 상궁인데, 상궁의 우두머리인 제조상궁 쯤 되면 그 세력이 영의정을 능가할 정도였고, 남자라도 아래 직급에 있으면 '~하게'라고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외에 궁중 각 처소에서 청소일을 담당한 무수리, 궁중의 내의원에 소속되어 의료 업무에 종사한 의녀 등이 궁녀의 구성원이 되었다. 궁녀는 대개 가장 어린 경우 4~5세에 궁에 들어왔으며, 대개는 12~13세에 궁궐로 들어왔다. 궁녀는 원칙적으로 종신제였으며, 남색 치마에 옥색 저고리, 머리에는 개구리첩지를 단 제복을 입었다. 궁녀들은 방대한 궁궐의 안방살림을 도맡아 왔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드라마 상에서 항상 분주하게 움직이는 궁녀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데 그만큼 궁녀들의 일상은 빡빡한 일정으로 채워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궁녀와 함께 궁중 업무를 담당한 주요 인물이 내시이다. 우리는 TV 드라마 등을 통하여 내시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내시도 엄연히 품계와 관직이 있는 벼슬아치의 하나에 속한다. 이들의 품계는 종2품인 상선(尙膳), 정3품인 상온/상다/상약에서, 종9품인 상원(尙苑)까지 직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내시의 관청인 내시부 또한 조선시대의 다른 관서처럼 궁궐밖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서울 북부의 준수방 지금의 경복궁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궁궐 안에도 내시들이 업무를 보는 관청이 있었다. 이곳이 내반원(內班院)이다. 내반원은 국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내시의 업무 성격상 왕이 계시는 내전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내시는 국왕의 최측근에서 온갖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 직원과 가장 가깝다. 『경국대전』에는 내시의 임무에 대해 ‘궁궐 안의 음식물을 감독하고 왕명을 전달하고, 궐문을 지키고 청소하는 임무를 담당한다’고 규정하여 내시의 임무가 크게 네 가지임을 설명하고 있다. 궁궐에서 일하는 내시의 숫자는 『경국대전』에 140명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대전통편』에 가서는 그 수효가 일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왕의 뜻에 따라 정하도록 변동이 된다. 내시의 근무 형식은 비교적 장기간 궁궐에 머물면서 근무하는 방식(장번), 교대로 궁궐을 출입하면서 근무하는 방식(출입번)이 있었다.9)



   혼례식에 입었던 이들 궁녀와 내관들의 복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상궁 4인의 복장
단장삼 4감: 아청사 각 23척 5촌
겹저고리 4감: 초록주 각 26척 2촌
유치마 4감: 남정주 각 1필
장차마 4감: 홍주 각 1필
말군10) 4감: 백정주 각 1필
활한삼아(闊汗衫兒)11) 4감: 백저포 각 28척 2촌
대(帶) 4감: 남사(藍紗) 각 반폭 8척
너울 4감: 조라 각 7척
양이엄(凉耳掩) 4감: 모단(冒緞) 각 1척 2촌 5푼

② 시녀 4인, 유모 1인의 복장
흑장삼(黑長衫) 5감: 흑저포 각 1필 7척
겹저고리 5감: 초록주 각 21척
유치마 5감: 남주 각 1필
장치마 5감: 홍주 각 28척
말군 5감: 백정주 각 1필
활한삼아(闊汗衫兒) 5감: 백저포 각 28척
대(帶) 5감: 남사(藍紗) 각 반폭 8척
너울 5감: 조라 각 12척
양이엄(凉耳掩) 5감: 모단(冒緞) 각 1척 2촌 5푼

③ 기행 나인(騎行內人) 4인의 복장
홍장삼(紅長衫) 2감: 대홍저포 각 1필 17척 5촌
황장삼(黃長衫) 2감: 황저포 각 1필 17척 5촌
겹저고리 4감: 초록주 각 26척 2촌
유치마 4감: 남주 각 1필
장치마 4감: 아청 각 1필
말군 4감: 백정주 각 1필
삼아(衫兒) 4감: 백정주 각 26척 2촌
대(帶) 4감: 남사(藍紗) 각 반폭 7척
너울 4감: 조라 각 12척
양이엄(凉耳掩) 4감: 모단(冒緞) 각 1척 2촌 5푼

④ 보행 나인 4인의 복장
겹저고리 4감: 초록주 각 26척 2촌
장치마 4감: 홍주 각 1필
단치마 4감: 백주 각 1필
유치마 4감: 남주 각 1필
삼아 4감: 백정주 각 26척 2촌
양이엄 4감: 모단 각 1척 2촌 5푼

⑤ 귀유치(歸遊赤) 내관 20인의 복장
홍주의(紅紬衣) 10건
자적주의(紫的紬衣) 10건
감투(敢頭) 20건
다회(多繪) 20건
두석토환(豆錫吐環)12) 20건
흑단운혜(黑緞雲鞋) 20부
청목행전(靑木行纏)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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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홍순민, 1999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256쪽 참조.
10)치마위에 껴입는 바지 비슷한 옷.
11)활옷을 입을 때 덧대는 흰 천.
12)두석으로 만든 고리

   위에서 궁녀와 내관의 복장을 의궤에 기록된 대로 정리해 보았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나인 중에서도 말을 타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과 말을 탄 사람의 복장은 보행하는 사람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행 나인 2명은 홍색 장삼을, 2명은 황색 장삼을 착용한 것과 귀유치 내관 20인 중 10명은 홍색 옷을 10명은 자색옷을 입게하여 통일성과 함께 색채의 다양성을 꾀한 모습 또한 흥미롭다. 그리고 여성인 만큼 여성의 얼굴이나 신체 일부를 가릴 수 있는 장비가 상당수 발견된다. 행렬의 여인 중에서는 신체를 가리는 장비인 너울이나 장옷을 입은 여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너울은 모자를 쓰고 그위로 얇은 천을 뒤집어 쓰는 것이고, 장옷은 맨머리에 쓸치마를 뒤집어쓰는 것으로서 착용방법이 다르다. 여성이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특히 중동지방에서 두드러진 풍습으로, 현재까지도 서역의 여인들이 차도르를 두른 모습은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에서도 여인들이 얼굴을 가렸던 풍습이 고려시대부터 이어졌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 인종 때 사신으로 왔다가 당시 개경의 모습을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는 책의 부인(婦人) 항목에는 고려 여인들이 얼굴에 쓰던 몽수(蒙首)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고려 여인들은 크게 화장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검은 색 얕은 턴 세 폭으로 길이가 여덟자 되게 만들어 뒤집어 썼는데 눈과 얼굴만 내 놓았다' 

  
   고려 여인들이 썼다는 이 몽수가 바로 너울의 전신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고려시대의 몽수는 여덟자나 될 만큼 그 길이가 길었다.



   왕실 혼례의 모습을 정리한 『가례도감의궤』에서 뿐만 아니라 부녀자를 주 소재로 삼은 신윤복의 그림에서도 너울을 쓴 여인이나 장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료:신윤복의 말 탄 여인의 그림) 너울과 장옷은 조선시대에는 1412년(태종 12)에 부녀자 외출시에 얼굴을 가리라고 하여 한층 더 보편화되었는데 가난한 아녀자들은 삿갓을 대신 쓰고 다니기도 하였다. 의궤의 기록에 의하면 너울을 한동안 너불(汝火)이라고 쓰다가 후기에 이르면 너울(羅兀)로 표기하였다고 한다.(신영훈, 『우리문화 이웃문화』 참조) 

  
   왕비 또한 너울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에는 왕비의 겹너울을 만드는데 사용한 재료가 나타난다. 자적라(紫的羅) 8척 5촌, 안감용의 자적초 6척, 끈을 만드는데 사용된 자적라(紫的羅) 1척 2촌, 매듭감 대홍진사(大紅眞絲) 1냥 5전, 금전지 3반, 속에 넣을 향사(鄕絲) 3돈, 바느질용 자적진사 1돈이 들어간 것으로 나타난다. 너울의 주재료는 자색의 비단이었으며, 각 부분마다 매듭과 장식이 있었다. 이처럼 의궤에는 소용된 재료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현재에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전통시대의 물품들을 복원할 수 있다. 

          

(4)결론

   이상에서 국왕과 왕비의 혼례복의 구성 및 혼례복에 나타난 색채를 중심으로 그것이 지닌 의미와 상징성을 파악하였다. 전통시대 의복의 색채는 단순한 미적 감각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에는 왕실의 위엄과 권위와 함께, 전통적인 음양오행사상이 담겨져 있었다.

   이외에 궁녀와 내관 등 왕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복에는 그에 대한 색채와 재료와 치수 등에 대한 상세한 규정이 있었다. 조선시대 왕실 행사의 주요한 내용을 기록으로 정리한 의궤에는 이러한 부분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전통시대 문화의 면면과 함께 왕실축제에 나타난 당시인들의 사상과 의식과 사상 체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 전통문화의 진수를 담고 있는 의궤와 같은 자료의 적절한 활용은 조선시대 왕실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최근 우리의 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이에 대한 복원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시대 왕실 축제의 재현에서 복식이 갖는 비중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단순하지 만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시대 의복에 나타난 색채의 상징성을 이해한 바탕 위에서 문화의 재현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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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색채학회(2001) 「한국인의 색채의식」『색색가지 세상』. 권영걸외 27인 (편저) 서울 : 도서출판 국제,
양계초, 풍우란 외(1993)『음양오행설의 연구』. 김홍경(편역) 서울 : 신지서원.
梁鶴馨(해역)(1994)『주역(周易) : 신의 지혜와 자연의 신비』.
서울 : 자유문고.
淸.張伯行 輯(1990)『太極圖詳解』. (北京 : 學苑出版社)
王寒生(1957) 『太極圖』. 臺北 : 民主憲政雜誌社.
허은영(1999)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중국어 색채어 연구:오색어의 문화상징과 구조를 중심으로』.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
홍순민, 1999 『우리 궁궐 이야기』
정신문화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임영주(1991) 『단청』, 빛깔있는 책들, 제39권 (서울 : 대원사),
한정언(2002)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부 석사학위 청구논
『자연색체계로서 오방색원리의 구조적 특성과 그 현대적 의미에 관한 고찰』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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