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치료제 목표’ 다양한 연구개발 전략들

2018. 3. 3. 01:11건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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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치료제 목표’ 다양한 연구개발 전략들


등록 :2018-02-20 10:53수정 :2018-02-20 11:20
[윤태진의 신약개발 최신 트렌드]     
원인단백질 엉킴 막고, 면역 활성화 하고…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추억을 떠올린다. 출처: Pixabay.com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추억을 떠올린다. 출처: Pixabay.com


“결국 사진만 남는다.”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이 여행을 끝내고 그 여행을 추억하면서 하는 가장 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통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희미해져 가지만, 여행의 단편을 담은 사진을 보면, 기억의 저편에 고이 간직되어 있던 그 여행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결국 사진은 기억 속 어느 공간에 자리하고 있던 추억을 떠올리도록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서도 추억을 떠올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흔히 기억해야 할 것들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 분들을 볼 때가 있다. 현실이 아니라도 <살인자의 기억법>, <내 머리속의 지우개>, <스틸 앨리스> 같은 영화를 통해서 기억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삶을 간접 경험해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990만 건의 치매가 새로 진단되고 있다. 3.2초당 1건씩 발생하는 것이니, 치매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보기 어려운 질병은 분명히 아닌 것 같다. 특히 아시아인은 전체 치매환자의 49%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추억을 상실하게 하는 이 가슴 아픈 병이 생각보다 우리에게 꽤나 가까이 있는 것이다. 노인성 치매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어떤 치료제들이 개발되고 있는지 그 연구의 흐름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알츠하이버병 치료제들은?

   불행하게도 알츠하이머의 정확한 발병 원인과 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병리적인 특징으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의 응집이 뇌 속에서 관찰되며, 그로 인하여 기억력이 떨어지고, 언어 능역, 시공간 파악 능력이 저하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판단력, 수행 능력이 떨어지며 보행 장애나 공격적인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만약 정확한 발병의 원인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제거하거나 보완하는 방식의 약물을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알츠하이머의 경우는 그 발병 원인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 원인이 무엇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가설에서 치료제 연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치료제 개발을 위해 사용했던 가설은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현상을 볼 때에 신경세포 간에 신호전달의 문제를 해결해주면 치매가 치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품목을 살펴보면, 신경전달물질의 분해를 막음(AChE inhibitors)으로써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증가시켜 효과를 볼 수 있는 약들이 있다.

   또한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가 과도하게 활성화 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물질(NMDA receptor antagonist: 이것들의 과도한 활성화는 신경세포를 죽게 만들기도 한다)이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사용된다. 위 두 가지 성분을 혼합한 복합체도 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은 약물이다. 이 치료제들은 증상의 심화를 늦추어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근본 치료를 할 수 있는 치료제라 말할 수는 없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신피질. 원인 단백질의 응집으로 생긴 노인성 반점들이 관찰된다(네모 안).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알츠하이머 환자의 신피질. 원인 단백질의 응집으로 생긴 노인성 반점들이 관찰된다(네모 안).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베타아밀로이드 가설

   근본적인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꿈을 위해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가설이 필요했다. 정상인에게서 발견되는 것보다 지나치게 많이 발견되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의 응집 현상에 기반을 두어 베타아밀로이드 가설과 타우 엉킴 가설이 만들어졌다. 현재 임상실험이 진행 중인 수많은 물질 중에서 가장 많은 수가 베타아밀로이드 그리고 타우를 약물의 타깃(표적)으로 삼고 있다.

   그 가설은 간단하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과도하게 발견되는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를 제거함으로써 알츠하이머를 막을 수 없을까”가 그 기본 가설이라 할 수 있으며, 수많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단백질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베타아밀로이드의 경우 임상 3상에서 많은 약물이 실패를 맛보아야 했기에 과연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함으로써 알츠하이머 증상을 완화, 억제, 제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현재도 저명한 학자들 사이에 “그렇다”, “아니다” 하는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논쟁은 존재하지만 여전히 베타아밀로이드가 중요한 약물 타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의미 있는 작은 변화가 감지된다. 베타아밀로이드는 단량체(monomer), 소중합체(oligomer), 그리고 소섬유(fibril)라는 3가지 형태를 만들 수 있는데, 소중합체만이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유독한 형태라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기존에 베타아밀로이드를 약물 타깃으로 삼아 만들어진 물질들은 단량체만을 타깃으로 삼거나, 위에서 언급한 3가지 모두를 타깃으로 삼는 등의 선별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약물 효과가 감소하는 비효율성이 나타나거나, 신체에 독성을 일으킬 수 있는 등의 부작용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몇몇 기업들의 연구는 소중합체 형태의 베타아밀로이드에만 결합하는 물질의 개발로 연구전략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나기 20여 년 전부터 침착이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는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함으로써 증상을 완화, 억제, 제거할 수 있을지는 임상에서 증명되기 전까지 아직은 불완전한 가설일 뿐이다.

또다른 약물 타깃, ‘타우 엉킴’

신경세포는 가운데 길게 늘어진 축삭(axon)을 통해 먼 거리에 신호를 전달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신경세포는 가운데 길게 늘어진 축삭(axon)을 통해 먼 거리에 신호를 전달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비슷한 관점에서 임상에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약물은 타우 단백질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타우 단백질은 신경세포가 축삭(axon)을 구성하여 먼 거리의 신경세포에 자극을 전달할 수 있도록 축삭의 안쪽에 생성되는 미세소관(microtubule, 단백질의 이동 통로)을 단단히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타우 단백질이 과하게 인산화 되면 안정적인 미세소관을 유지하지 못하며 축삭 역시 끊어지고 신경세포가 퇴행하고 사멸한다.

   흥미로운 점은 타우 엉킴(tau tangle)이 퍼지는 현상은 물감이 퍼지듯 한 곳에서 시작해 그 주변으로, 더 먼 곳으로 영향이 퍼져나가는 식이 아니라 서로 떨어진 부분에서 타우 엉킴의 영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후각피질에서 쌓이기 시작한 다우 엉킴은 해마를 거쳐서 뇌피질에 퍼지는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위치들이 알츠하이머 병리 증상의 기준이 되는 브라카 스테이지(Braak Stage)와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타우엉킴을 제거함으로써 알츠하이머 증상을 완화, 억제,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우 엉킴을 타깃으로 한 약물 연구의 가설이 만들어졌다.

   타우 엉킴이 신경세포 말단의 시냅스 사이에서 전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작동양식의 약물들이 개발 중에 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 바로 오-글렉넥(O-GlcNAc)이라고 불리는, 당과 타우 엉킴의 상관관계에서 나온 방법이다. 타우 엉킴은 타우 단백질이 과다하게 인산화 되어 나타나는 현상인데, 단백질에서 특정한 아미노산의 가지에만 인산화가 이뤄진다. 위에서 언급한 오-글렉넥이라는 당이 단백질에 붙었다 떨어지는 과정이 두 효소(O-GlcNAc transferase, O-GlcNAcase)에 의해 조절되는데, 그 당이 붙는 위치가 타우에서 인산화 되는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글렉넥이 계속 타우 단백질에 붙어 있는다면, 타우 단백질의 인산화를 막을 수 있고, 그 결과 타우 엉킴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단백질에서 오-글렉넥을 떨어뜨리는 효소(O-GlcNAcase)의 작용을 막는 저해제를 만든다면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심도 깊은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중추신경계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의 역할

   면역 작용은, 한의약 또는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음양 원리와 같이 정상적인 몸의 상태를 위해서 때로는 면역이 작동하게 하고, 면역 작용이 과하기 이전에 면역 작용을 사라지게 조절한다. 최근 들어 중추신경계의 여러 질병에 대한 면역 작용의 역할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졌으며, 특히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신경 퇴행성 장애의 경우 중추신경(CNS)에서 활동하는 대식세포인 미세아교세포(microglia)가 발견된 이후 중추신경계 장애들이 이 면역세포와 관련성이 있다는 많은 새로운 발견들이 발표되고 있다.

   알츠하이머와 미세아교세포의 연관성도 또한 깊게 연구되고 있으며, 미세아교세포의 활성을 조절함으로써 알츠하이머를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세아교세포의 활성화가 너무 낮다면 죽은 세포들과 잘못된 구조의 단백질들이 빠르게 (미세아교세포에 의해) 제거되지 못하기 때문에 미세아교세포 활성화를 유도함으로써 알츠하이머를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방향의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다.

   한편, 특정 유전자(ApoE4)를 지닌 사람들에서는 과도한 면역반응이 유도되어 신경세포들이 사멸되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런 관찰 결과는 내인성 면역반응이 알츠하이머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결과이다. 이에 따라 이 특정 유전자의 영향을 차단하는 것이 과도한 미세아교세포의 염증 반응과 이로 인한 신경세포 사멸을 막아 알츠하이머를 예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가설도 연구되고 있다.

면역항암제를 직접 이용한다면?

   암을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면역항암제가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종양 환경에서는 암세포가 면역을 억제해 자신의 생존과 전파를 꾀하기 때문에 점점 암세포는 좋아하는, 면역 세포들은 싫어하는 환경이 조성된다. 면역항암제는 이런 환경을 만드는 핵심 요인인 면역 관문 분자(예를 들어 PD-1/PD-L1 축)들을 차단함으로써 면역 활성화를 유도해 환자 자신의 면역에 의해 암세포가 사멸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미국식품의약국의 허가를 받은 ‘항 피디-1 항체(’anti-PD-1 antibody)를 사용하여 알츠하이머 질환모델 실험동물인 마우스에서 그 효과(베타아밀로이드 침착이 줄어들고, 공간학습 기능이 향상되는)를 확인하였다. 또한, 같은 연구진이 수행한 선행연구에서는 면역억제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Treg 세포)의 활성화를 완화해 면역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로 알츠하이머 증상의 완화(베타아밀로이드 침착 감소, 인지행동 개선)를 유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위의 두 결과는 모두 면역세포가 뇌의 맥락총(CP: Choroid plexus) 부위로 침투하여 면역 활성화 효과를 유도하는 핵심 인자가 인터페론 감마(IFN-gamma)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더구나 최근 논문들은 중추신경에만 작용하는 특이적인 면역 관문 분자가 있을 가능성을 보고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중추신경계 특이적인 면역 관문 분자들의 조절을 통해 중추신경계 특이적인 면역을 활성화함으로써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려는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다.

젊은 피의 수혈을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있는 한 신생회사(Alkahest)는 위에서 살펴본 맥락과는 전혀 다른 가설을 기반으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비롯해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는 젊은 피에 있는 단백질 성분들 중에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퇴행성 뇌질환을 역전시킬 수 있는 성분이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가설은 젊은 쥐와 늙은 쥐의 몸을 수술로 연결해 혈액 공유가 이뤄지도록 한 결과, 젊은 피를 공급받은 늙은 쥐의 인지능력과 뇌세포들의 신경 발생이 활발해졌다는 결과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최근 인간 탯줄에 존재하는 특정 단백질(TIMP2)에 의해서도 늙은 쥐의 인지능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실험 결과들과 가설들을 근거로, 알츠하이머 환자들에 젊은 피를 투여한 최초의 소규모 임상시험 결과가 2017년 11월 발표됐다. 그 결과에 따르면, 4주 동안 매주 젊은 피(혈장)를 투여하는 치료 방법은 안전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쇼핑이나 식사준비 같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일상활동이 개선되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결과는 환자 18명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실험 결과일 뿐이라 그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 해서는 안 된다고 연구진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좀 더 개선된 방식으로 준비된 젊은 피(적혈구 세포들과 많은 단백질들이 제거된 후 사용)를 사용하는 대규모 임상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많은 질병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지만, 알츠하이머병은 살아왔던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 둘씩 잊어버리게 하는 가슴 아픈 질병이다. 여행 사진들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꺼내어 추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더 현실적으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을 기억할 수 있도록 지금도 연구자들은 다양한 가설과 접근법으로 치료제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윤태진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 tjyoon70@gmail.com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32820.html?_fr=dable#csidx6f4d510f7091328910decf22f5e70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