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대제 때 사용하는 악기 이야기 外

2017. 4. 13. 00:23차 이야기




종묘제례 & 종묘제례악 3부 전쟁은 악기도 숨게 한다



                                              


게시일: 2014.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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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대제 때 사용하는 악기 이야기

범솥말 2013.06.24 00:44



종묘제례에 사용한 궁중악기 입니다.


   필자는 궁중악기나 궁중음악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종묘제례 당시 악사들이 다루었던 악기들을 사진으로 찍어 간략하게 옮깁니다.

우리의 것은 소중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우리의 대중음악과 고전음악 그리고 그 음악을 다루기 위해 더불어 함께 쓰이는 악기도 소중하며 궁궐에서 쓰이던 악기도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궁중음악이 모두 그러한 것인지 종묘제례에 사용되는 악기가 그러한지는 모르지만 악기는 중앙을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으로 각각 다른 악기가 배치된다는 점이 흥미롭고 이채롭습니다.

 


   서쪽에 배치한 악기입니다.


   종묘제례악은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를 거쳐 왔는데, 세조 당시에는 팔음(八音)을 갖춘 40여 종에 이르는 대 편성이었는데 팔음이란 악기재료에 따른 분류법으로 금(金)·석(石)·사(絲)·죽(竹)·포(匏)·토(土)·혁(革)·목(木)의 8가지 재료에 따른 분류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종묘제례악 연주에는 대금, 당피리, 태평소, 해금, 아쟁, 편종, 편경, 박, 축, 어, 방향, 장구, 절고(節鼓), 진고, 징(대금)으로 총 15종의 악기가 사용된다고 합니다.


   세종 때에 종묘제례에서 아악기로만 구성되었다고 하는데 세조 때에 향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대업과 보태평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하면서 일부의 아악기 외에 대부분 향악기와 당악기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종묘제례에 사용하는 궁중악기를 알아봅니다.



   호랑이는 타악기의 하나인 어 라고 부르는 악기입니다.

앞발 앞에 있는 채는 견죽이라 하는데 견죽은 대나무 끝을 갈라 아홉 조각을 냈는데 이 견죽으로 호랑이 등에 27개의 톱날모양을 긁거나 머리 부분을 때려서 소리를 내며 청색의 축을 동쪽에 배치하는데 반해 백색의 이 악기는 서쪽에 배치합니다.

또한 축은 시작을 알리는 데 반해 어는 끝을 알리는 악기인데 어의 연주는 견축으로 호랑이 머리를 세번 치고 등의 27개의 톱날 모양을 한번 긁는 것을 3번 반복합니다.

 

 



   편종입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궁중 악기인 편종은 중국의 대표적인 아악기인데 고려 때 송나라로부터 수입하여 궁중제례악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종시대에 와서 조선에서도 편종을 만들었는데 중국의 편종은 크기를 달리하여 음을 낸는데 반해 조선의 편종은 종의 크기는 같고 종의 쇠 두께에 차이를 두어 음음 만들었다고 하며 편종을 치는 채는 소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악기는 타악기 중에도 가장 큰 북으로 진고입니다.

제례에 사용하며 아헌악인 정대업을 시작할때 진고 10통을 치고 종헌인 정대업을 시작할 때 진고 3통만 칩니다.

 

 



   동쪽에 배치한 악기입니다.

 




   장구입니다.

보통 긴 북이라해서 장고로 잘못 부를 수 있는데 이 악기의 이름은 장구입니다.

장구라고 할 때는 한자로 노루 장(獐)자에 개 구(狗)자를 쓰는데 노루가죽과 개가죽을 써서 장구라고 합니다.

장구가 치는 면이 양면인데 그 각각의 면에 각각 가죽을 대는데 한쪽에는 노루가죽을 다른 한쪽에는 개가죽을 쓰는 게 맞는데 노루가죽이 귀하다보니  요즘에는 양쪽에 다 개가죽을 쓴다고 합니다.

궁편(왼쪽)에는 암캐 가죽을 써서 낮고 어두운 소리를 내며 채편(오른쪽)에는 숫캐 가죽을 써서 높고 밝은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값이 싼 소가죽이나 말가죽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축과 축퇴입니다.

축운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로 중요의 의미를 지니며 청회색 함과 절구대처럼 보이는 악기를 통칭하여 축이라고 하며 손잡이는 축퇴라고 하고 청회색 함은 방대라고 합니다.

네모진 상자(50cm, 40cm, 깊이40cm)에 위쪽에 구멍을 뚫고 구멍속에 망치를 꽂아두고 축퇴로 내리치며 소리를 내는데 이렇게 내리치면 음악이 시작되는데 땅과 하늘을 열어 음악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며 동쪽에 배치합니다.

 


 



   방향입니다.

방향은 당악기의 하나로 소리판이라고 부르는 강한 쇠붙이로 16쪽을 만들었는데 그 두께에 따라 고음과 저음 등 음이 달리 난다고 하며 편종과 편경을 주로 사용하며 잘 사용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편경입니다.

편경은 쇠가 아니고 돌로 만들어진 타악기이며 고려 공민왕 때 명나라에서 들여왔으며 이후 세종때 조선에서 편경으로 쓰이는 돌이 발견되어 조선에서도 만들었다고 하며 궁중제례악에 사용합니다.

 




   집박이 손에 쥐고 있는 악기는 박입니다.

박은 여섯 개의 단단한 나무조각을 엮어서 만든 타악기로 보통 대추나무로 만든다고 하는데 한 쪽 끝을 가죽 끈으로 묶여 놓았기 때문에 반대쪽을 잡고 부채를 펴는 것처럼 벌렸다가 닫으면서 치면 크고 단아한 소리가 납니다.

궁중음악에 편성되는 이 악기는 음악의 시작과 끝 그리고 음악상의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 치는데 음악을 시작할 때나 중요한 변화를 알릴 때는 한번, 끝날 때는 세번 칩니다.


   궁중음악의 연주에서 지휘자를 '집박'이라고 하는데  음악연주에서 실질적인 지휘와 감독의 임무를 맡는데 박을 치는 집박의 의상은 초록색으로 일반 연주자의 붉은색 홍주의(紅紬衣)와 구별되며 무대 한쪽에 서서 박을 손에 들고 지휘역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악사 뒷줄 4명의 악사가 불고 있는 작은 피리가 당피리입니다.

당피리는 관대를 황죽이나 오죽으로 만들고, 8개의 지공으로 되어 있으며 음량이 큰 당악 계통의 궁중음악과 종묘제례악에 편성됩니다.

 

   악사 앞줄 거문고 또는 가야금처럼 생긴 악기가 아쟁입니다.

아쟁은 현악기 중에서는 가장 좁은 음역을 지닌 저음악기로 서양악기의 콘트라베이스와 같은 저음을 내는데 판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7개의 줄을 개나리나무의 껍질을 벗겨 송진을 칠한 활로 문질러 소리 낸다고 합니다. 

 


   악사 뒷줄 3명이 연주하고 있는 악기가 대금입니다.

대금은 신라 삼죽의 하나로 젓대라고도 하는 횡적橫笛으로 취구, 청공, 지공, 칠성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악사 앞줄 2명이 연주하고 있는 악기가 해금입니다.

해금은 공명통 위와 주아(周兒)에 연결된 두 줄을 원산(遠山)으로 고이고 줄 사이에 낀 활의 배와 등으로 그어 소리를 내며, 궁중, 민간, 민속음악 등 전통음악에서 폭넓게 사용됩니다.


 


   정중앙에 있는 북이 절고라는 악기인데 진고에 비해 북도 작고 매다는 높이도 낮습니다.

절고는 음악을 시작할 때에 특종을 한번 친 다음 축 세 번을 친 다음 이 절고를 한번 치는 것을 세차례 반복한 다음 다시 특종을 한 번 치면 합주가 시작됩니다.

음악을 그칠 때에는 절고를 세번 친 뒤 이어서 어를 그 북소리에 따라 세번 긁고 특경을 침으로써 음악을 그칩니다.

 

   태평소는 몸통 부분인 관대와 서, 동구, 동팔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날라리, 쇄납 등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징은 농악, 불교음악, 무속음악, 군악인 대취타 등에 편성되는 금속타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에 따라 손에 들고 치거나, 틀에 매달아 앉아서 치고, 엎어 놓고 치기도 합니다.

 

종묘제례악에는 조선시대의 다양한 사상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재료에 따른 악기 분류법인 8음을 음양오행사상의 예로 들 수 있다고 하는데

8음의 악기 중

금(金), 석(石), 토(土)부는 만물이 응축하는 서방의 악기이고,

포(匏), 죽(竹), 목(木)부는 만물이 생성하는 동방의 악기이며,

사(絲)부는 여름을 상징하며 남쪽을 의미하고,

혁(革)부는 겨울을 상징하며 북쪽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삼재사상은 우주와 인간세계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이면서 그 변화의 동인으로 작용하는 천지인(天地人)을 일컫는다고 하는데 

등가(登歌)는 하늘에 응하는 것을 형상한 것이고,

헌가(軒架)는 북두칠성 자루가 지상을 가리키는 것을 형상하여 천·지를 상징하며,

사람을 상징하는 일무(佾舞)가 구비되면 천지인의 삼재사상이 갖추어진다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종묘제례악은 오랜 기간 조선왕조와 명운을 같이한 대표적인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우리 조상들에 의해 창조된 악·가·무에 따른 종합적인 예술형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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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궤 제1책

현재 사용하는 종묘의 등가(登歌) 도설

영녕전도 같다.
[DCI]ITKC_mk_i016_001_2011_00070_XML  




그림 내부의 명칭

축(柷)
향비파(鄕琵琶)
퉁소(洞簫)
편종(編鍾)
아쟁(牙箏)
대금(大笒)
장고(杖鼓)
현금(玄琴)
가(歌)
절고(節鼓)
박(拍)
가야금(伽倻琴)
가(歌)
장고(杖鼓)
방향(方響)
대금(大笒)
필률(觱篥)
당비파(唐琵琶)
당적(唐笛)
편경(編磬)

○ 공인(工人)은 모두 개책관(介幘冠), 홍주의(紅紬衣), 색조대(色縧帶) - 항상 띠를 착용한다. - 차림을 하고 박(拍)을 든다. 악사(樂師)는 복두(幞頭)와 청삼(靑衫)을 착용한다. 집사(執事)와 전악(典樂)은 관복(冠服)을 갖추고, 협률랑(協律郞) 뒤에 있는다.

[주D-001]홍주의(紅紬衣) : 홍색 명주로 만든 상의(上衣)이다.
[주D-002]색조대(色縧帶) : 색깔이 있는 끈으로 된 띠이다.
[주D-003]청삼(靑衫) : 청색 적삼이다.

한국고전번역원 ┃ 선종순 (역) ┃ 2008




종묘의궤 제1책
                  
현재 사용하는 헌가(軒架) 도설

영녕전도 같다.
[DCI]ITKC_mk_i016_001_2011_00080_XML  




그림 내부의 명칭

편경(編磬)
가(歌) - 대금(大金)을 겸한다. -
해금(奚琴)
대금(大笒)
중금(中笒) - 태평소(太平簫)를 겸한다. -
방향(方響)
축(柷)
필률(觱篥)
당비파(唐琵琶)
노도(路鼗)
장고(杖鼓)
박(拍)
당적(唐笛)
진고(晉鼓)
대금(大笒)
필률(觱篥)
장고(杖鼓)
편종(編鍾)
훈(塤)
소금(小笒)
조촉(照燭)
가(歌) - 소금(小金)을 겸한다. -
지(篪)

○ 공인의 관복(冠服)은 등가와 같다.


ⓒ 한국고전번역원 ┃ 선종순 (역) ┃ 2008





 

 종묘의궤 제1책 > 종묘의 등가와 헌가 악기 도설 《오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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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궤(宗廟儀軌)종묘의궤 제1책종묘의 등가와 헌가 악기 도설 종묘서(宗廟署)2008

 


종묘의궤 제1책
 

 

종묘의 등가와 헌가 악기 도설 《오례의》

 


편종(編鍾) 현재 사용한다.

 




《문헌통고》
〈소서(小胥)〉에 “대체로 종과 경(磬)을 다는 것은, 반(半)을 도(堵)라고 하고 전부를 사(肆)라고 한다.” 하였는데, 주에 이르기를, “종과 경을 엮어서 달 때, 두 층에 각각 8매(枚)씩 16매를 한 틀 〔簴〕***에 단 것을 도라고 하고, 종 1도와 경 1도를 사라고 한다.” 하였다. 지금의 대성악(大晟樂)이 전대의 제도를 근본으로 하여 역시 16매를 쓰는데, 12매는 정성(正聲)의 종이고, 4매는 청성(淸聲)의 종이다. 

 (*** 악기다는 틀 거 簴 : 1. 악기() 다는 틀 2. 종ㆍ경쇠ㆍ북 따위를 다는 틀의 기둥대  )

《주례도》
《예서》에, “종을 다는 틀의 세로로 세운 것을 거(簴)라고 하고, 가로로 댄 것을 순(簨)이라고 한다. 순 위에 숭아(崇牙)를 두고, 거 위에 업(業)을 설치한다. 업 위에 깃〔羽〕을 꽂고, 양쪽 끝에 벽삽(璧翣)을 둔다. 종을 다는 틀은 맹수〔臝〕 따위로 장식하니, 두꺼운 입술에 꽉 다문 입, 튀어나온 눈에 짧은 귀, 큰 가슴에 화려한 꽁무니, 큰 몸체에 짧은 과 같은 모습이다. 그 소리가 크고 웅장하니, 종에 알맞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편경(編磬) 현재 사용한다.

 

 

 

특종(特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해설은 위에 보인다. - 지금 특종은 등가(登歌)에 사용하고, 그 가종(歌鐘)으로는 편종을 사용한다. -

 

 

특경(特磬)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해설은 위에 보인다. - 지금 특경은 등가에 사용하고, 그 가경(歌磬)으로는 편경을 사용한다. -

 

 

노고(路鼓)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진씨(陳氏)의 《악서》
〈고인(鼓人)〉을 보면 뇌고(雷鼓)는 천신(天神)의 제사인 신사(神祀)에 치고, 영고(靈鼓)는 사직의 제사인 사제(社祭)에 치며, 노고는 종묘의 제사인 귀향(鬼享)에 친다. 뇌(雷)는 하늘의 소리이고, 영(靈)은 땅의 덕이고, 노(路)는 사람의 도이다. 천신(天神)의 음악은 여섯 번 변하여 뇌고와 뇌도(雷鼗)가 6면(面)이고, 지기(地祇)의 음악은 여덟 번 변하여 영고와 영도(靈鼗)가 8면이다. 인귀(人鬼)의 음악은 아홉 번 변하는데 노고와 노도(路鼗)는 4면이다. 금(金)이라는 물체는 화(化)하기는 해도 변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귀신도 이와 같은데, 금은 토(土)가 아니면 생성되지 않으므로 토를 상징하는 숫자 5로 금을 상징하는 숫자 4에 더한다. 이것이 아홉 번 변하는 까닭인가 보다.
주에는 “뇌고는 말가죽을 사용하니, 건(乾)의 덕은 말이 되기 때문이고, 영고는 소가죽을 사용하니, 곤(坤)의 덕은 소가 되기 때문이다.” 하였다.

 

 

노도(路鼗) 현재 사용한다.

 



《주례》 〈태사악(太司樂)〉
뇌고에는 곧 뇌도가 있고, 영고에는 곧 영도가 있으며, 노고에는 곧 노도가 있다.

《악서》
고(鼓)로 음악을 절주(節奏)하고 도(鼗)로 음악을 시작하니, 음악을 연주하는 도이다. 도(鞉)는 연주를 시작하기 위하여 치는 것이다. - 도(鞉)는 도(鼗)와 같다. -

《문헌통고》
도는 작은 북이다. 나무로 꿰었으며, 두 귀가 있어 돌리면 저절로 쳐진다. 뇌도는 북이 3개이고, 영도는 북이 4개이며, 노도는 북이 2개이다.

 

 

 

절고(節鼓) 현재 사용한다.

 



《문헌통고》
강좌(江左)의 청악(淸樂)에 절고가 있는데, 모양은 바둑판 같고, 붉은 칠을 한 다음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받침대 가운데에 둥근 구멍을 터서 북을 넣기에 적당하게 하였다. 이 북을 쳐서 음악을 조절한다. 당나라 이후로 아악(雅樂)의 성가(聲歌)에 사용하였으니, 등가의 음악을 시작하고 그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진고(晉鼓) 현재 사용한다.

 




《문헌통고》
진고는 그 제도가 크면서 짧으니, 대개 금주(金奏)를 연주하기 위한 것이다. 종사(鐘師)는 종과 북으로 구하(九夏)를 연주하고, 박사(鎛師)는 금주의 북을 관장하니, 아마도 진고일 것이다.
주에 “나무 기둥으로 북을 꿰고, 아래에는 받침〔趺〕을 만들며, 위에는 가로로 댄 순(筍)을 만든다.” 하였다.

 

 

축(柷)과 지(止) 현재 사용한다.

 


《악서》
축이라는 악기는 사방 2자 4치이고 깊이는 1자 8치인데, 한가운데에 바닥에 연결된 ‘몽치 자루〔椎柄〕’가 있어 그것을 두드려서 좌우를 치게 한다. 음(陰)은 2와 4에서 시작하여 8과 10에서 마치니, 음의 수는 4와 8인데 양의 수 1로 주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연주하게 되면 모든 악기 중에서 가장 먼저 연주할 따름이고 음악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형(兄)의 도리가 있다. 이것이 축이 궁현(宮縣)의 동쪽에 위치하여 봄이 만물의 처음을 이루는 것을 상징하는 까닭이다.

《이아(爾雅)》
축을 치는 도구를 ‘지(止)’라고 한다. 축으로써 음악을 합주하여 시작한다. 반드시 연주를 지로 하는 것은 처음에 경계하려는 것이다.

 

 

어(敔)와 진(籈) 현재 사용한다.

 


《악서》
어라는 악기는 형상이 엎드린 호랑이 모습과 같으니, 호랑이는 서방(西方)의 음(陰)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모두 27개의 톱니〔鉏鋙〕가 있으니 3과 9를 곱한 수이고, 채〔櫟〕의 길이는 1자이니 10의 수이다. 양(陽)은 3에서 이루어지고 9에서 변하여 음의 수 10으로 이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그치게 되면 능히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여기니, 단지 흘러가 버려 자기를 잃어버리는 데에 이르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족히 지나침을 금함이 있다. 이것이 어가 궁현의 서쪽에 위치하여 가을이 만물의 이루어 마침을 상징하는 까닭이다.

《이아》
어를 치는 도구를 진이라고 한다. 어로써 음악을 조절하여 그친다. 반드시 연주를 진으로 하는 것은 뒤를 깨끗이 하려는 것이다.

 

 

 

생(笙)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예서》
생은 죽관〔管〕을 박통〔匏〕 안에 열 지어 세우고 죽관 끝에 황(簧)을 설치한다. 큰 것은 황이 19개이고 작은 것은 황이 13개이다. 우(竽)는 황이 36개이다. 생의 길이는 4자이고, 우의 길이는 4자 2치이다. 황은 쇳조각〔金鐷〕으로 만든다. 대개 많은 죽관이 박통 안에 들어 있어 ‘새 둥지〔巢〕’와 같은 형상이 있기 때문에 대생(大笙)을 소(巢)라고 하며, 큰 것이 선창(先唱)하면 작은 것이 화답하기 때문에 소생(小笙)을 화(和)라고 한다.

《문헌통고》
송나라 왕조의 대성악에서 전해지는 생은 모두 황이 17개이다. 옛날에는 17개의 죽관 외에 2개의 죽관을 설치하여 일정하게 두지 않았으니, 이것을 의관(義管)이라고 한다.
《대성악보(大晟樂譜)》에 생은 대나무를 모아 만든다고 하였는데, 17개의 죽관을 사용하되, 앞에 8개의 황, 뒤에 9개의 황이다. 높고 낮은 것은 차서가 있는 것이다. 죽관이 긴 것은 9치 5푼이고 밑바닥의 높이는 2치 5푼이니, 전체의 높이는 1자 5치이다.

 

 

관(管)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주례도》
6개의 구멍은 12개월의 음(音)이니, 관 두 개를 나란히 합하여 분다.

《악서》
선왕이 관을 만든 것은 음양의 소리를 통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양은 홀수이면서 혼자이고 음은 짝수이면서 무리를 이루며, 양은 크면서 적고 음은 작으면서 많으며, 양은 드러나서 밝고 음은 그윽하여 어둡다. 고죽(孤竹)으로 만든 고죽관은 천신(天神)을 강신하게 하니, 양의 홀수이면서 혼자인 점을 취한 것이고, 손죽(孫竹)으로 만든 손죽관은 지기(地祇)를 나오게 하니, 음의 작으면서 많은 점을 취한 것이며, 음죽(陰竹)으로 만든 음죽관은 인귀(人鬼)에게 예를 올리는 것이니, 음의 그윽하여 어두운 점을 취한 것이다. 《역(易)》에 “향방은 부류로써 모이고, 사물은 무리로써 나뉜다.”라고 한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우(竽)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해설은 위에 보인다.

 

 

화(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해설은 위에 보인다.

 

 

지(篪) 현재 사용한다.

 


《주례도》
《대성악서(大晟樂書)》에 “훈(塤)과 지는 모두 구멍이 6개인데, 다섯 구멍으로 소리를 낸다.” 하였는데, 이 두 악기는 구멍을 모두 막으면 황종(黃鐘)이 되고, 구멍을 모두 열면 응종(應鐘)이 된다. 이것이 훈과 지가 서로 화응하는 까닭이다. 나머지 악기도 모두 그렇다.

 

 

훈(塤) 현재 사용한다.



《주례도》
훈의 모양은 저울추와 같고, 흙으로 만든다.
《시경》에는 ‘훈(壎)’으로 되어 있다.

《악서》
훈이라는 악기는 입추(立秋)의 음이다. 바닥이 평평하고 구멍이 6개이니 물의 수이고, 속은 비고 위는 뾰족하니 불의 형상이다. 훈은 물과 불이 서로 합한 뒤에 악기가 완성되니, 또한 물과 불이 서로 어울린 이후에 소리를 이룬다. 그러므로 큰 것은 소리가 황종과 대려(大呂)에 맞고, 작은 것은 소리가 태주(太簇)와 협종(夾鐘)에 맞으니, 요컨대 중성(中聲)의 조화에 있을 따름이다.
주에는 “훈의 여섯 구멍은 위에 하나, 앞에 셋, 뒤에 둘이다.” 하였다.

 

 

둑(纛) 현재 사용한다.

 

《악서》
〈군자양양(君子陽陽)〉 시에 이르기를, “왼손에 깃일산을 잡고〔左執翿〕”라고 하였고, 〈완구(宛丘)〉 시에 “백로 깃을 꽂고 있도다.〔値其鷺翿〕”라고 하였는데, 《이아》에 이르기를, “도(翿)는 둑이다.” 하였고, 곽박(郭璞)은 말하기를, “지금의 우보당(羽葆幢)이다.” 하였으니, 대개 춤추는 자가 세워 두어 의용(儀容)으로 삼는 것이지 손에 들고 추는 물건이 아니다.
성조(聖朝 송나라)의 태악(太樂)에서 쓰는 것은, 높이가 7자이고, 깃대 머리에 나무 봉황을 앉혔으며, 드리운 깃대 장식은 한 겹이고 승천하는 용을 그린 훈백(纁帛)을 매달았다. 두 명의 공인이 이것을 들고 좌우로 나뉘어 서서 문무(文舞)를 인도하니, 또한 옛날부터 전해 오는 제도를 얻은 것이다.

 

 

휘(麾) 현재 사용한다.

 


《악서》
주관(周官)의 건거(巾車)목로(木路)를 관장하는데, 목로에 대휘(大麾)를 세워 사냥을 하고 번국(藩國)을 봉하는 데에 사용한다.
《서경(書經)》에 “왼손에 황월을 쥐고, 오른손에 백모를 잡고서 깃발을 휘두른다.〔左仗黃鉞 右秉白旄以麾〕” 하였으니, 휘(麾)는 주(周)나라 사람이 세운 것이다. 후세에서는 협률랑(協律郞)이 이것을 잡고서 악공(樂工)을 호령하였다. 대개 그 제도는 높이가 7자이고, 깃대 장식은 용머리로 하였으며, 훈백을 매달고 그 위에 승천하는 용을 그렸다. 음악이 시작될 때 이것을 들고 음악이 그치면 이것을 누인다. 당 위에서는 서계(西階)에 세우고, 당 아래에서는 악현(樂懸)의 앞쪽에서 조금 서쪽에 세운다. 《당악록(唐樂錄)》에서 ‘훈간(暈干)’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대성악보》
기폭〔幡〕은 위에 매단 검붉은 색이 5치이고, 가운데의 비견(緋絹)이 3자 6치이며, 아래의 황색이 5치이다. 받침이 있다.

 

 

우(羽)와 약(籥) 현재 사용한다.

 

《문헌통고》
약사(籥師)는 제사 때에 고동시켜 우와 약을 들고 추는 춤을 추게 한다.

《시경》
왼손에 약을 잡고 오른손에 을 들었네.〔左手執籥 右手秉翟〕
대개 약은 소리를 위한 것이고, 적은 의용(儀容)을 위한 것이다.

 

 

조촉(照燭) 현재 사용한다.

 
《시경》
조촉의 제도는 장대로 그 끝에 강라(絳羅)로 만든 등롱을 달고, 그 가운데에 촛불을 켠다. 밤에 어둡고 휘가 멀어 분변하기 어려우므로 이것을 들어서 음악을 시작하고 뉘어서 음악을 그친다.

 

 

방향(方響) 현재 사용한다.

 
《악서》
방향의 제도는 대개 양(梁)나라의 동경(銅磬)에서 나왔다. 모양은 길이가 9치이고 폭이 2치이며, 위는 원형이고 아래는 방형이다. 그 수는 16개로 두 줄로 엮으며, 업(業)은 설치하지 않고 틀 위에 의지하여 종(鐘)과 경(磬)을 대신한다. 모두 16성(聲)이니, 12율에 배열하고 나머지 4성은 청성(淸聲)뿐이다. 후세에서는 혹 철로 만들기도 하였다. 교방(敎坊)의 연악(燕樂)에 사용하고, 지금 민간에서 사용되는 것은 겨우 3, 4치일 뿐이다.

 

 

교방고(敎坊鼓)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문헌통고》
제도는 큰북과 같다. 반룡(蟠龍)의 무늬가 북통에 빙 둘러 있으며, 횃대〔架〕가 있고 받침이 있다. - 지금 교방에서 사용하는 북의 제도가 이와 같다. -

 

 

장고(杖鼓) 현재 사용한다.

 
《문헌통고》
갈고(羯鼓), 장고, 요고(腰鼓)는 한(漢)나라와 위(魏)나라에서 사용하였다. 큰 것은 질〔瓦〕로 만들고, 작은 것은 나무로 만든다. 이런 부류는 모두 머리 부분이 넓고 배 부분이 가느니, 송나라 사람 소사(蕭史)가 말한 세요고(細腰鼓)가 이것이다. 오른쪽은 채로 치고 왼쪽은 손으로 두드린다. 후세에서는 그것을 장고라고 하였다. 그 소리는 조화롭고 웅장하여 절도가 있다.

 

 

박(拍) 현재 사용한다.

 

《문헌통고》
박판(拍板)의 길이와 너비는 손을 겹친 것과 같다. 큰 것은 판이 9개이고 작은 것은 판이 6개인데, 가죽 끈으로 엮는다. 호부(胡部)에서 음악의 박자로 삼았으니, 대개 손뼉〔抃〕을 대신한 것이다. 당(唐)나라 사람들은 간혹 이것을 써서 악곡의 일정한 박자를 만들었다. 송나라 왕조의 교방에서 사용한 것은 판이 6개이고 길이는 1치이며, 위는 뾰족하고 얇으며 아래는 둥글고 두껍다. 박달나무〔檀〕나 뽕나무〔桑〕로 만들었으니, 축(柷)과 어(敔)의 변형인 듯하다.

 

 

월금(月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문헌통고》
월금은 형태가 둥글고 목이 길다. 위에 4현(絃)과 13품주(品柱)를 안배하였으니, 금휘(琴徽)를 본뜬 것이다. 현의 축(軸)을 돌려서 율을 맞춘다. 진(晉)나라 사람 완함(阮咸)이 만들었다. 당 태종(唐太宗)이 다시 1현을 더하여 그 현에 금, 목, 수, 화, 토라고 이름 붙였고, 개원(開元) 연간부터 아악(雅樂)에 편입하여 사용하였으니, 아마 순 임금의 유제(遺制)를 얻은 것인 듯하다.

 

 

해금(奚琴) 현재 사용한다.

 
《문헌통고》
해금은 호중(胡中)의 해부족(奚部族)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현도(絃鼗)에서 나와 모양도 유사하다. 제도는 두 현 사이에 죽편(竹片)을 넣어 퉁기는 것이다. 민간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현금(玄琴) 현재 사용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현금은 중국 악부(樂部)의 금(琴)을 본떠 만들었다.

《신라고기(新羅古記)》
처음에 진(晉)나라에서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내왔다. 당시에 제2상(第二相)인 왕산악(王山岳)이 그 법제를 고쳐 제작하고, 겸하여 악곡을 지어 연주하였는데, 이에 현학(玄鶴)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름을 현학금(玄鶴琴)이라고 하였는데, 후에는 다만 현금이라고 하였다.

 

 

가야금(伽倻琴) 현재 사용한다.

 
《삼국사기》
가야금은 쟁(箏)의 제도와 조금 다르지만 대개는 비슷하다.

《신라고기》
가야국(伽倻國)의 가실왕(嘉實王)이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제작하였다.

 

 

당비파(唐琵琶) 현재 사용한다.

 

《악서》
비파의 제도가 가운데는 비고 겉이 실한 것은 천지의 형상이고, 반(盤)이 둥글고 자루가 곧은 것은 음양의 순서이다. 기러기발〔柱〕이 12개인 것은 율려(律呂)에 맞춘 것이고, 4개의 현(絃)은 사시(四時)를 본뜬 것이며, 길이가 3자 5치인 것은 삼재(三才)와 오행(五行)을 본뜬 것이다. 진(秦)나라 말에 백성들이 장성(長城)을 쌓는 부역에 시달리다 못해 이 악기를 만들어 근심을 풀었다.

《석명(釋名)》
비파는 본래 호중에서 말 위에서 타던 악기이다. 손을 밀어 전진하는 것을 비(琵)라고 하고 손을 당겨 물리는 것을 파(琶)라고 하니, 이것을 인하여 악기의 이름으로 삼았다.

《문헌통고》
당악(唐樂)에 대비파(大琵琶)와 소비파(小琵琶)의 제도가 있다. 지금 교방에서 사용하는 것은 바로 목이 굽은 것이고, 목이 곧은 것은 아니다.

 

 

향비파(鄕琵琶) 현재 사용한다.

 

《삼국사기》
향비파는 당나라의 제도와 대동소이하니, 역시 신라에서 시작되었다. 다만 어떤 사람이 제작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대쟁(大箏)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문헌통고》
쟁은 진(秦)나라 지역의 음악이다. 부현(傅玄)의 〈쟁부서(箏賦序)〉에 “위가 높은 것은 하늘과 같고 아래가 평평한 것은 땅과 같다. 가운데가 빈 것은 육합(六合)에 준하였고, 현주(絃柱)는 열두 달에 비겼다. 설치하면 사상(四象)이 있고, 연주하면 오음(五音)이 발하니, 이야말로 인(仁)과 지(智)의 악기이다.” 하였다.

《석명》
쟁은 현을 타면 높아서 소리가 쟁쟁(箏箏)하다. 하였으니, 병주(幷州)와 양주(梁州)의 쟁은 모양이 슬(瑟)과 같다.

《풍속통(風俗通)》
쟁은 본래 5현이었으나 지금은 13현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수서(隋書)》 〈음악지(音樂志)〉
쟁은 13현이고, 몽염(蒙恬)이 만들었다.

 

 

아쟁(牙箏) 현재 사용한다.

 
《악서》
당나라에 알쟁(軋箏)이 있으니, 편죽(片竹)으로 그 현을 매끄럽게 하여 퉁긴다.

 

 

당적(唐笛) 현재 사용한다.

 

《문헌통고》
《풍속통》에 이르기를, “적(笛)은 씻어 낸다〔滌〕는 의미이니, 사악하고 더러운 기운을 씻어 내고 고상하고 바른 기운을 들이는 것이다. 길이는 1자 4치이고, 7개의 구멍이 있다.” 하였다.

《악서》
적이 씻어 낸다는 것은 사악한 기운을 씻어 없애고 바른 소리를 내어 드날린다는 것이다.

 

 

대금(大笒) 중금(中笒), 소금(小笒)의 제도도 같다. 현재 사용한다.

 

《삼국사기》
삼죽(三竹)이란 첫째는 대금, 둘째는 중금, 셋째는 소금이니, 역시 당적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이 역시 신라에서 시작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퉁소(洞簫) 현재 사용한다.

 

《석명》
퉁소는 밑이 없는 소(簫)이다.

왕자연(王子淵)〈퉁소부(洞簫賦)〉
통(洞)은 통(通)이니, 밑이 없음을 말한다. 위와 아래가 서로 통하므로 퉁소라 한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퉁소의 구멍은 8개이다.

 

 

필률(觱篥) 현재 사용한다.

 

악서》
필률은 일명 비율(悲篥)이라고도 하고, 일명 가관(笳管)이라고도 하니, 강호(羌胡) 구자(龜玆) 지역의 음악이다. 대나무로 관(管)을 만들고, 갈대로 머리〔首〕를 만든다. 모양은 호가(胡笳)와 유사하고, 9개의 구멍이 있다. - 당필률(唐觱篥)은 9개의 구멍이 있고, 향필률(鄕觱篥)은 8개의 구멍이 있다. -

 

 

태평소(太平簫) 현재 사용한다.

 
 

[주D-001]소서(小胥) : 《주례》 〈춘관종백(春官宗伯)〉에 속한 관명으로, 학사(學士)의 징령(徵令)을 관장한다.
[주D-002]대성악(大晟樂) : 송 휘종(宋徽宗) 숭녕(崇寧) 3년(1104)에 설치한, 음악을 관장하는 기관인 대성부(大晟府)에서 제정한 신악(新樂)의 이름이다. 《宋史 卷129 樂志4》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려 예종 9년(1114)에 송 휘종이 신악인 대성악을 하사하여, 11년에 태묘(太廟)에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국역 성호사설 제13권 인사문 대성악》
[주D-003]숭아(崇牙) : 순(簨) 위에 설치하여 종이나 경을 다는 장치이다.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은나라의 숭아〔殷之崇牙〕’라고 하고, 주에 “순 위에 나무를 깎고 그림을 그려 숭아 형태를 만들어서 종과 경을 거는 것을 말한다.” 하였다.
[주D-004]양쪽 …… 둔다 : 벽삽(璧翣)은 업의 양쪽 끝에 매단 장식을 말한다. 《예기》 〈명당위〉에 ‘주나라의 벽삽〔周之璧翣〕’이라고 하고, 주에 “비단에 그림을 그려 삽(翣)을 만들고 구슬〔璧〕을 인 다음 오색 깃을 아래로 드리워 순의 모서리 위에 세워 놓은 것이다.” 하였다. 대본은 ‘有端有璧翣’인데, 《악서(樂書)》에 “숭아 위에 업이 있고, 업의 양쪽 끝에 또 벽삽이 있다.〔崇牙之上有業 業之兩端 又有璧翣〕”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대본의 ‘有端’을 ‘兩端’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5]맹수〔臝〕 따위 : 대본은 ‘羸屬’인데, 《주례》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 재인(梓人)〉에 의거하여 ‘臝’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례》 〈동관고공기 재인〉에 “천하의 큰 짐승이 다섯이니, 지자(脂者), 고자(膏者), 나자(臝者), 우자(羽者), 인자(鱗者)이다.” 하였는데, 주에 “지자는 소와 양 따위이고, 고자는 돼지 따위이고, 나자는 호랑이, 표범, 비휴, 교룡 같은 털 짧은 짐승 따위이고, 우자는 날짐승 따위이고, 인자는 용사(龍蛇) 따위이다.” 하였다.
[주D-006] : 대본은 ‘肘’인데, 《주례》 〈동관고공기 재인〉에 의거하여 ‘脰’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7]경을 …… 알맞다 : 이 역시 앞 편종의 도설과 마찬가지로 《예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D-008]가종(歌鐘) : 노래의 반주로 쓰이는 종을 말한다.
[주D-009]고인(鼓人) : 《주례》 〈지관사도(地官司徒)〉에 소속된 관명으로, 육고(六鼓)와 사금(四金)의 음성을 교육하는 일을 관장한다.
[주D-010]주례 …… 있다 : 《주례》 〈춘관종백(春官宗伯) 태사악〉에 천신(天神)에 지내는 제사에는 “뇌고와 뇌도, 고죽(孤竹)의 관(管), 운화(雲和)의 금슬(琴瑟)……”이라고 하고, 지기(地示)에 지내는 제사에는 “영고와 영도, 손죽(孫竹)의 관, 공상(空桑)의 금슬……”이라고 하고, 인귀(人鬼)에 지내는 제사에는 “노고와 노도, 음죽(陰竹)의 관, 용문(龍門)의 금슬……”이라고 한 것을 말하는 듯하다. 대본의 ‘本師樂’은 ‘太師樂’의 오류로 보아 바로잡았다.
[주D-011]청악(淸樂) : 청상악(淸商樂)으로, 남조(南朝)의 구악(舊樂)이다. 후위(後魏)의 효문제(孝文帝)가 회(淮)와 한(漢)을 정벌하고 얻은 남음(南音)을 수집하여 청상악이라고 하였는데, 수(隋)나라의 평진(平陳)이 청상서(淸商署)를 설치하고 총괄하여 청악이라고 하였다. 《舊唐書 卷29 音樂志2 淸樂》
[주D-012]금주(金奏)를 …… 것이다 : 금주는 종(鐘)과 박(鎛)의 연주를 말한다. 《악서》 권50 〈주례훈의(周禮訓義) 춘관(春官) 종사(鐘師)〉에 “북을 먼저 연주하고 뒤이어 종을 연주한다.〔鼓先而鍾從之〕”라고 하였으니, 진고를 먼저 친 다음에 편종을 친다는 말이다.
[주D-013]종사(鐘師)는 …… 연주하고 : 종사는 《주례》 〈춘관종백〉에 속한 관직이다. 《주례》에는 “종사는 금주를 관장하니, 무릇 음악의 일은 종과 북으로 구하(九夏)인 왕하(王夏), 사하(肆夏), 소하(昭夏), 납하(納夏), 장하(章夏), 제하(齊夏), 족하(族夏), 개하(祴夏), 오하(鷔夏)를 연주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금주를 관장한다는 말은 주에, 종과 박을 쳐서 음악을 연주하는 절주로 삼는 것이라고 하였다.
[주D-014]박사(鎛師)는 …… 관장하니 : 박사는 《주례》 〈춘관종백〉에 속한 관직이다. 《주례》 주에 “진고를 쳐서 종과 박을 연주한다는 말이다.” 하였다.
[주D-015]바닥에 연결된 몽치 자루〔椎柄〕 : 위의 그림 중 아래에 있는 지(止)가 ‘ㅗ’ 모양으로 연결된 것을 말하는 듯하다.
[주D-016]궁현(宮縣) : 종(鍾)과 경(磬) 등 악기를 틀에 거는 제도의 하나이다. 《주례》 〈춘관종백 소서(小胥)〉에 “왕은 궁현, 제후는 헌현(軒縣), 경과 대부는 판현(判縣), 사는 특현(特縣)이다.” 하였는데, 주에 “궁현은 4면에 거는 것인데, 4면은 궁실의 4면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것을 형상하므로 궁현이라고 한 것이다.” 하였다.
[주D-017]의관(義管) : 박통 안에 있는 죽관 이외에 별도로 있는 2개의 죽관을 말한다. 《문헌통고》에 의하면 ‘균을 변하고 조를 바꿀 때〔變均易調〕’ 썼다고 한다. 즉 ‘일정하게 두지 않았다’는 말은 궁(宮)이 변할 때마다 바꾸어 끼웠다는 말이다. 다음 그림은 《악서》 권150 〈팔음(八音)〉에 실린 의관생(義管笙)의 모습이다.
[주D-018]대성악서(大晟樂書) : 저자는 유병(劉昺)이고, 2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宋史 卷202 藝文志1》 대성은 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연간에 창립된, 음악을 관장하는 관서 이름이다.
[주D-019]나머지 …… 그렇다 : 대본은 ‘餘樂皆然’인데, 《고악서(古樂書)》 하권 〈금음제도(金音制度)〉에 “나머지 악기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오직 훈과 지만이 응화(應和)의 뜻이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대본의 ‘皆然’은 ‘不然’의 오류인 듯하다.
[주D-020]입추(立秋)의 음 : 팔음(八音) 가운데 토음을 말한다. 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 팔음을 추분, 입동, 하지, 춘분, 입춘, 입추, 동지, 입하 여덟 절후에 해당시킨 것인데, 토는 입추의 음으로 악기는 훈(壎)과 부(缶)가 이에 속한다. 금은 추분의 음으로 악기는 종(鐘)이고, 석은 입동의 음으로 악기는 경(磬)이며, 사는 하지의 음으로 악기는 금(琴)과 슬(瑟)이고, 죽은 춘분의 음으로 악기는 관(管)과 약(籥)이며, 포는 입춘의 음으로 악기는 생(笙)과 우(竽)이고, 혁은 동지의 음으로 악기는 도(鼗)와 북이며, 목은 입하의 음으로 악기는 축(柷)과 어(敔)이다. 《樂學軌範 卷1 八音圖說》
[주D-021]군자양양(君子陽陽) : 《시경》 〈국풍(國風) 왕풍(王風)〉의 편명이다.
[주D-022]완구(宛丘) : 《시경》 〈국풍 진풍(陳風)〉의 편명이다.
[주D-023]건거(巾車) : 《주례》 〈춘관종백〉에 속한 관직으로, 공거(公車)의 정령(政令)을 관장한다. 《周禮 春官宗伯 巾車》
[주D-024]목로(木路) : 제왕이 타는 다섯 종류의 수레 가운데 하나로 칠만 하고 가죽으로 덮지 않으며, 금이나 옥, 상아 따위의 수식이 없는 것이다. 목로(木輅)라고도 한다. 《周禮 春官宗伯 巾車》
[주D-025]약사(籥師) : 《주례》 〈춘관종백〉에 속한 관직으로, 문무(文舞)를 관장하여 국자(國子)에게 꿩 깃을 들고 추는 춤과 피리 부는 것을 가르친다. 《周禮 春官宗伯 籥師》
[주D-026]적(翟) : 치우(雉羽), 즉 꿩의 깃이다.
[주D-027]송나라 …… 이것이다 : 소사(蕭史)는 소사화(蕭思話)를 말한다. 《송서(宋書)》 권78 〈소사화열전(蕭思話列傳)〉에 “사화는 나이 10여 세 때 책은 알지 못하고 노름과 노니는 것을 일삼아 옥동을 타고 세요고 치는 것을 좋아하였다.〔思話年十許歲 未知書 以博誕遊遨爲事 好騎屋棟 打細腰鼓〕” 하였다.
[주D-028]호부(胡部) : 당(唐)나라 때 호악(胡樂)을 관장하던 기구인데, 호악을 지칭하기도 한다. 호악은 서량(西涼) 일대에서 유입된 것으로 당시에 호부신성(胡部新聲)이라고 일컬어졌다.
[주D-029]금휘(琴徽)를 본뜬 것이다 : 금휘는 거문고의 현을 매는 줄로 음의 위치를 표시하며, 13개의 휘가 있다. 대본은 ‘豪琴之徽’인데, 《황조예기도식(皇朝禮器圖式)》에서 《문헌통고》의 이 내용을 인용하면서 ‘豪’ 자를 ‘象’ 자로 썼으므로, 이에 의거하여 번역하였다.
[주D-030]순 임금의 유제(遺制) : 순 임금이 켰다는 오현금(五絃琴)을 말한다.
[주D-031]부현(傅玄) : 진 무제(晉武帝) 때 사람으로 자는 휴혁(休奕)이다. 박학다식하고 특히 음률에 밝았다. 저서에 《악부가장(樂府歌章)》이 있다. 《晉書 卷47 傅玄列傳》
[주D-032]편죽(片竹)으로 …… 퉁긴다 : 《악서》 권146 〈알쟁(軋箏)〉과 《구당서(舊唐書)》 권29 〈음악지(音樂志) 2〉에는 ‘그 현을 매끄럽게 하여〔潤其絃〕’가 ‘그 끝을 매끄럽게 하여〔潤其端〕’로 되어 있는데, 《구당서》의 주에 “장종태본(張宗泰本)에 ‘潤’이 ‘撋’으로 되어 있는데,문의(文義)에 따라 개정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이로 보아 여기의 ‘絃’은 ‘端’의 오류인 듯하다. 그러나 만일 ‘絃’이 맞다면 ‘潤’은 ‘撋’의 오류로 ‘그 현을 문질러서〔撋其絃〕’로 해야 문의에 맞을 듯하다.
[주D-033]왕자연(王子淵) : 자연은 한(漢)나라 때의 문인 왕포(王褒)의 자이다.
[주D-034]구자(龜玆) : 《국역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1 소학 자서〉에 “음은 구자(丘玆)인데 나라 이름이다.” 하였다. 한나라 효선제(孝宣帝) 때 정길(鄭吉)이 오루성(烏壘城)의 도호(都護)가 된 이후에 한나라에 예속되었다. 왕도(王都)는 연성(延城)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선종순 (역) ┃ 2008

 

 

종묘의궤(宗廟儀軌)종묘의궤 제1책종묘의 등가와 헌가 악기 도설 종묘서(宗廟署)2008

 

 


 




종묘의궤 제1책
 
종묘의 헌가 도설 《오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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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가는 종묘 뜰의 남쪽 가까운 곳에 둔다. 동쪽, 서쪽, 북쪽 세 방향에 각각 편종 1도(堵)와 편경 1도를 설치한다. 노고(路鼓) 2개를 북쪽 헌가의 북쪽에 설치하되, 하나는 서북쪽 모퉁이에, 하나는 동북쪽 모퉁이에 둔다. 노도(路鼗) 2개를 노고 사이에 둔다. 축과 어를 북쪽 헌가 안쪽에 설치하되, 축은 동쪽에, 어는 서쪽에 두고, 노래하는 사람 6인을 축의 동쪽과 어의 서쪽에 나누어 두어 첫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방향(方響) 1개, 당비파 2개, 현금 1개, 향비파 1개는 동쪽에, 방향 1개, 당비파 2개, 가야금 1개, 월금(月琴) 1개는 서쪽에 두어 두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장고 2개, 필률 6개, 태평소(太平簫) 2개를 동쪽과 서쪽에 나누어 두어 세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진고(晉鼓)를 중앙에 놓고, 장고, 관(管), 지(篪), 훈(塤), 해금(奚琴)을 각각 2개씩 동쪽과 서쪽에 나누어 두어 네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장고, 당적, 퉁소, 우(竽), 생(笙) - 서쪽에는 화(和)이다. - 을 각각 2개씩 동쪽과 서쪽에 나누어 두어 다섯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교방고(敎坊鼓)를 중앙에 놓고, 장고 2개, 대금 4개, 중금(中笒)과 소금(小笒)을 각각 2개씩 동쪽과 서쪽에 나누어 두어 여섯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모두 북쪽을 향한다. - 공인의 관복(冠服)은 등가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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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궤 제1책

                                                                   

종묘의 등가 도설 《오례의(五禮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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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가는 당(堂) 위에 둔다. 가운데 어도(御道)를 열어 놓고, 특종(特鐘)은 동쪽에, 특경(特磬)은 서쪽에 두며, 박(拍) 하나는 그 남쪽 한가운데에 둔다. 다음으로 축(柷)은 동쪽에, 어(敔)는 서쪽에 두고, 아쟁(牙箏) 하나는 축의 서쪽에, 대쟁(大箏) 하나는 어의 동쪽에 두어 첫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노래하는 사람 6인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두어 두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방향(方響)을 중앙에 놓고, 현금(玄琴)과 편종(編鍾)은 동쪽에, 가야금과 편경(編磬)은 서쪽에 두어 세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절고(節鼓)를 중앙에 놓고, 당비파(唐琵琶), 향비파(鄕琵琶), 장고(杖鼓), 화(和)를 각각 하나씩 동쪽에, 당비파, 월금(月琴), 장고, 생(笙)을 각각 하나씩 서쪽에 두어 네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필률(觱篥), 해금(奚琴), 대금(大笒), 당적(唐笛), 훈(塤)을 각각 하나씩 동쪽에, 필률, 퉁소(洞簫), 대금, 당적, 지(篪)를 각각 하나씩 서쪽에 두어 다섯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모두 북쪽을 향한다. - 공인은 모두 개책관, 비난삼(緋鸞衫), 백주중단(白紬中單), 백초대(白綃帶), 백포말, 오피리 차림을 하고, 악사는 복두(幞頭), 녹삼(綠衫), 오정대(烏鞓帶), 흑피화(黑皮靴) 차림을 한다. -


[주D-001]비난삼(緋鸞衫) : 붉은색의 난삼으로, 난삼은 난새 문양이 있는 적삼이다. 세종 때 박연(朴堧)은 당시 사용했던 오승포의(五升布衣), 즉 닷새 베옷이 적삼의 제도가 아니라 하여 난삼으로 바꿀 것을 건의한 바 있다. 《世宗實錄 15年 3月 22日》
[주D-002]백주중단(白紬中單) : 흰색 명주로 만든 중단으로, 중단은 조복(朝服)과 제복(祭服) 안에 받쳐 입던 옷이다.
[주D-003]백초대(白綃帶) : 흰색 생사로 만든 띠이다.
[주D-004]녹삼(綠衫) : 녹색 적삼이다.
[주D-005]오정대(烏鞓帶) : 검은색 가죽 띠이다.
[주D-006]흑피화(黑皮靴) : 흑색 가죽으로 만든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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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
화대백과사

종묘제례악

다른 표기 언어 宗廟祭禮樂

요약 테이블
문화재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성격 제례음악
유형 작품
분야 예술·체육/국악

요약 조선시대 종묘에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와 무용의 총칭.


종묘제례악 / 일무
종묘제례악 / 일무

             

내용

   조선시대 종묘에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와 무용의 총칭. ‘종묘악’이라고도 하며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임.

종묘라 하면 정전(正殿)을 지칭하는 것이나 사실은 그 서편에 조묘(祧廟)인 영녕전(永寧殿)이 있어 두 사당으로 이루어졌다. 종묘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나 음악을 제향에 사용하기는 고려 초기 숙종 무렵이다.


   이 때의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뒤 송나라에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와 1116년(예종 11) 10월부터 아악이 사용되었으나 체계가 갖추어진 것이 못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것을 답습하다가 1395년(태조 4) 11월 고려의 옛 제도를 바꾼다는 원칙 아래 종묘악장(宗廟樂章)을 고쳤으나 그 음악에 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405년 4월에 조묘(祖廟)·사직(社稷)·문묘(文廟) 등 배신(陪臣)의 제복(祭服)과 악기 등이 모두 낡아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다음해 7월에 내사(內史) 박린(朴麟)과 김희(金禧) 등이 중국으로부터 악기를 들여와 그 해 10월부터 종묘에서 사용하였다.

1425년(세종 7) 세종은 이조판서 허조(許稠)에게 “우리는 향악(鄕樂)을 익혀왔는데 종묘에 먼저 당악(唐樂)을 연주, 초헌·아헌을 한 다음 종헌에 이르러 향악을 연주하니 조상들이 평소에 듣던 음악을 쓰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고, “아악은 본래 우리 나라 음악이 아니므로 평소에 익히 듣던 음악을 제사용으로 쓰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살아서 향악을 듣다가 죽으면 아악을 연주하니 어찌된 까닭인가.” 하여 음악의 모순을 힐문하기도 하였다.


   ≪세종실록≫ 권 138에 의하면 국초(國初)에 여러 곡이 지어졌으나 모두 한 가지 일을 주장한 것으로, 조종(祖宗) 공덕의 성대함과 초창(草創)의 어려움을 형용하기에 부족하다 하여 세종이 고취악(鼓吹樂)과 향악에 바탕하여 <정대업 定大業>·<보태평 保太平>·<발상 發祥>·<봉래의 鳳來儀> 등 신악(新樂)을 창제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 <정대업>과 <보태평>은 1447년에 회례악무(會禮樂舞)로 창제되었고 아직 종묘제례악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정대업>은 15성(聲, 曲)이고 <보태평>은 11성인데, 이 두 곡은 세종이 친히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절(節)을 만들고 하루 저녁에 지어, 수양대군이 여기(女妓) 10명으로 하여금 금중(禁中)에서 익히게 하였다고 한다.

1460년 세조는 “세종이 제정한 악무(樂舞)가 쓰이지 않고 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라고 하면서 <정대업>·<보태평>이 그 음악의 성대함과 용장(勇壯)함에도 불구하고 종묘에 쓰이지 않으니 애석하다 생각하고, 최항(崔恒)에게 명하여 세종 때의 가사의 뜻은 그대로 두고 이를 간추려 새로 짓게 하여 이에 따라 그 곡조도 축소되었다.

이와 같이 세종 때 회례악으로 만든 <정대업>과 <보태평>이 다소의 개정을 거쳐 1464년 이후 종묘제례악으로 정식 채택된 것이다.


   선조 때에는 임진왜란으로 음악이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에 점차 복구되었다. 1626년(인조 4)에 <보태평> 중 정명장(定明章) 다음에 광국중흥(光國中興)의 위업을 이룩한 선조의 실(室)에 새로 지은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하였다.

악보는 ≪세종실록≫ 권138, ≪세조실록≫ 권48, ≪대악후보 大樂後譜≫ 권2, ≪속악원보 俗樂源譜≫ 권1(仁)·권6(信) 등과 현행 악보에 전하여 온다.

조선 초기 종묘제례악의 악장(樂章)은 고려시대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4자(字) 1구(句), 8구 1장(章)의 정제된 정형의 한시(漢詩)였다. 그리고 그 행례에 있어서도 고려시대의 것과 같이 각 실에 각기 다른 악장을 사용하였고, 오늘날에 보듯 제실(諸室)에 통용하는 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태평>과 <정대업>이 아악풍의 고정된 시형이 아니고 비교적 불규칙한 시형으로 바뀐 것은, 본디 제사의 악장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회례연의 악장으로 지어진 때문이다.

그 뒤 세조 때 세종이 만든 <정대업>·<보태평>이 그 가사의 자구(字句)가 많아서 짧은 제의(祭儀)에 다 불리기 어려우므로 이것을 많이 축약하고, 그 위에 악장이 없던 진찬(進饌)·철변두(徹籩豆)·송신(送神) 등은 최항이 새로 지어 종묘 악장이 고루 갖추어진 것이다.


   현행 종묘 일무(佾舞)의 기원은 1464년(세조 10) 종묘에 사용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일무에는 문덕을 찬양한 문무(文舞)와 무덕을 찬양한 무무(武舞)가 있다.

≪악학궤범≫ 권2에 보이는 문무와 무무는 48인의 6일무로 <보태평지무 保太平之舞>와 <정대업지무 定大業之舞>가 있는데, 이것은 ≪세조실록≫ 권48에 보이는 것과 동일하다.

<보태평>과 <정대업>의 춤은 종묘제례에서 추는 춤과 향악정재(鄕樂呈才)로 연향(宴享)에서 여기가 추던 춤의 두 종류가 있다.

제향에 추던 <보태평>의 춤을 ≪악학궤범≫에 보면 악공 38인 중 춤 36인, 둑 2인은 모두 진현관(進賢冠)을 쓰고 남빛 명주옷에 검은 선을 두른 붉은 치마를 입고 붉은 말대를 띠고, 흰 베 버선에 검은 가죽신을 신는다. 왼손에 약(蘥)을 잡고 오른손에 적(翟)을 쥔다. 문무로 영신·전폐·초헌례에 추는 춤이다.


   <정대업>의 춤은 악공 71인이 모두 가죽 변(弁)을 쓴다. 의상은 <보태평>의 문무와 같다. 춤 36인은 각각 칼[木劒]·창[木槍]·화살[弓矢]을 쥔다. 무무는 아헌과 종헌에 추는 춤이다.

나머지 35인은 각각 의물(儀物)을 들고 악절에 따라 움직이며 춤을 춘다. 이 밖에 일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시용무보 時用舞譜≫에 전한다.

오늘날의 일무는 이 ≪시용무보≫에 의거하여 정리된 것으로, 무원은 8일무로 64인이고, 문무는 왼손에 약과 오른손에 적을 들고, 무무는 앞 4줄은 목검, 뒤의 4줄은 목창을 들고 춘다. 무복(舞服)도 문무와 무무가 모두 복두(幞頭)·홍주의(紅綢衣)·남사대(藍絲帶)·목화(木靴)의 차림이다.


   창제 당시에는 <보태평> 11성이 임종궁평조(林鐘宮平調)였고, <정대업>15성은 남려궁계면조(南呂宮界面調)였으며, 정간(井間)의 수효도 1행 32정간에 12율명으로 표기되었다.

그러나 1463년에는 <정대업>·<보태평>의 곡 수를 각각 11곡으로 줄이고, 악보도 1행 16정간으로 축소, 개편함과 동시에 표기법도 율자보(律字譜) 대신에 오음약보(五音略譜)를 창안하여 썼다.

그 뒤 1625년에 선조의 광국중흥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용광(龍光)과 정명(貞明)을 열광정명(烈光貞明)으로 합치고 중광장(重光章)을 새로이 첨가하였다. 이는 사실상 악장(가사)만 새로 지어 역성곡(繹成曲)에 얹어 불렀을 뿐 악곡에는 별 변동이 없었다.


   음계에 있어서 <보태평>과 <정대업>은 세종 때와 세조 때 것이 서로 다르다. 세종 때의 <보태평>은 임종(林鐘, G)·남려(南呂, A)·황종(黃鐘, C)·태주(太簇, D)·고선(姑洗, E)의 5음계 평조이고, <정대업>은 남려(A)·황종(C)·태주(D)·고선(E)·임종(G)의 5음계로 된 계면조이다.

그런데 세조 때의 <보태평>은 청황종 평조로서 황(黃, C)·태(太, D)·중(仲, F)·임(林, G)·남(南, A)의 5음계로 고치고, <정대업>은 청황종 계면조로 그 음계는 황(C)·협(夾, Eb)·중(F)·임(G)·무(無, Bb)이다. 세조 때의 철변두·송신·진찬의 음악은 황(C)·태(D)·고(E)·중(F)·임(G)·남(A)·무(Bb)의 7음계로 된 점이 특이하다.


   <정대업>과 <보태평>의 선율구조를 살펴보면 두 곡 모두 선율타악기(편종·편경·방향)의 기둥선율 위에 선율악기(당피리·대금·해금·아쟁)들이 장식적 부선율을 덧붙이기도 하고, 장식적으로 주선율을 보강하면서 연주되는 위에 또 더 다양한 가락을 가진 악장의 노래가 중첩된다.

세종 때나 세조 때에는 각 음의 시가가 달랐으나 ≪속악원보≫ 이후 현행에는 모두 균일화되어 그 위에 새로운 선율선(旋律線, 마디)이 이루어졌으며, 리듬의 주기 등이 전곡을 통하여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정대업>에 있어서는 유율타악기군과 관악기군 사이에 황종(C)·무역(無射, Bb)의 마찰적 장2도의 음색이나 시음(始音)이 아닌 청황종(潢)과 종지의 황종음(黃)을 무역(無)으로 떨어뜨려 연주한다. 또 임종은 중려(仲)로, 청황종은 무역(하행시 제외)으로 떨어뜨려 요성(搖)한다. 원음 무역도 요성을 하는 점 등이다.

<보태평>에서의 희문과 전폐희문의 관계는 국악곡 변주의 좋은 보기로서 총 4구 중 제3·4구에서 관악과 현악이 크게 변주되는데, 타악기의 중심적 음은 다만 시가만 변할 뿐이다.



   종묘대제의 행례에 따른 주악의 순서는 영녕전도 같다. 종묘대제의 행례는 당상에 있는 집례의 창홀(唱笏)로 진행되나, 음악이 함께 연주되는 만큼 집사악사(執事樂師)의 소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신(迎神)은 헌가에서 <영신희문 迎神熙文> 9성(成)을 아뢰는 바, 8성초에 악사의 ‘부르오(請呼)’로 집례가 ‘헌관이하개사배(獻官以下皆四拜)’를 창홀하여 4배가 있고, 9성 졸장(卒章)에 이와 같이 악지(樂止)를 부르게 하여 끝난다. 일무는 문무를 춘다.

전폐(奠幣)는 등가에서 <전폐희문 奠幣熙文>을 연주하는데 행례의 지속(遲速)에 따라 악무의 정수가 없으나 대개 정전인 종묘는 2성으로 예필(禮畢)이 되고, 영녕전은 1성으로 악지가 되는 것을 관례로 하였다. 일무는 또한 문무를 춘다.

진찬은 헌가에서 악가(樂歌)만이 진찬을 연주하고 일무는 없다. 행례의 지속에 따라 정수가 없고 헌관이 제말실(第末室)까지 대개 진찬곡 6, 7성이면 되었다.


   초헌례는 등가에서 <보태평>을 연주하고 일무도 문무인 <보태평>을 춘다. 행례에 있어 가장 무겁고 어려운 주악이 초헌례가 되고 있다. 먼저 인입장(引入章)은 인입희문(引入熙文) 1곡으로 헌관이 제1실까지 이르도록 대어야 하고, 헌례장(獻禮章) 9곡으로 19실인 종묘, 그리고 15실인 영녕전은 적당히 안배하여 남거나 모자람이 없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초헌례는 대축(大祝)의 독축(讀祝)이 있고, 이 사이는 매번 악지가 되는 것이므로 집박(執拍)과 편종·피리 등 차비(差備)가 몹시 심로(心勞)하는 것이다. 헌례장 9곡으로 정하게 완주(完奏)하므로 추호도 남거나 모자람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초헌관이 제19실에서 나서면 곧 <역성>을 연주하여 제자리에 돌아온다.


   그에 비하면 아헌과 종헌례는 비교적 순탄하다고 할 것이다. 인입장 <소무 昭武>로서 헌관이 제1실에 이르는 것은 같으나, 다음의 작헌(酌獻)에 있어서는 독축이 없을 뿐더러 헌례장 9곡으로 꼭 필주(畢奏)되지 않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행례가 빨라 악곡이 남으면 남는 대로 인출장 <영관 永觀>을 연주하면 되고, 행례가 더디어 악곡이 모자라면 다시 헌례장 제1장 <독경 篤慶>에서부터 환주(還奏)하여도 허물되지 않았다. 아헌·종헌례는 함께 무무를 춘다.

철변두는 등가에서 <진찬> 1곡을 연주하고 송신은 헌가에서 <진찬> 1곡을 연주하며, 이 때 집례가 ‘헌관이하개사배’를 불러 헌관 이하 제관 전원이 4배하고 악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악지를 명하면 행례가 모두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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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삼국사기』
  • 『고려사』
  • 『태조실록』
  • 『태종실록』
  • 『세종실록』
  • 『세조실록』
  • 『악학궤범』
  • 『대악후보(大樂後譜)』
  • 『속악원보(俗樂源譜)』
  • 『시용무보(時用舞譜)』
  • 『국악논고』(장사훈,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 『한국음악서설』(이혜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7)
  • 『한국음악논고』(성경린, 동화출판공사, 1976)
  • 『국악사』(이성천, 국민음악연구회, 1976)
  • 『국악감상』(성경린, 국민음악연구회, 1976)
  • 『한국의 무용』(성경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 『종묘제례악』(김기수, 국립국악원, 1980)
  • 『한국음악통사』(송방송, 일조각, 1984)
  • 『중요무형문화재해설』-음악편-(문화재관리국, 1985)









  
  
  
  

   종묘제례의식에는 각 절차마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여러 음악을 연주하며 동시에 종묘악장(宗廟樂章)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문무(文舞)인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와 무덕(武德)을 찬양하는 무무(武舞)인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 곧 일무(佾舞)를 춘다. 세종 31년(1448)에 세종이 국초에 여러 곡을 지었으나, 조종(祖宗)의 공덕이 성대함과 초창(草創)의 어려움을 나타내기엔 부족하다 하여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을 토대로 보태평·정대업·발상(發祥)·봉래의(鳳來儀) 등 새 음악을 창제하였는데, 보태평은 11곡(曲·聲)이고 정대업은 15곡인데, 여기에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악장(樂章)을 얹어 부르게 하고 아악기(雅樂器) 당악기(唐樂器) 향악기(鄕樂器)를 섞어 편성하여 연주하고 문무와 무무를 일무(佾舞)로 추도록 하여 연향(宴享)에서 공연하였다.
   세조 9년(1463)에 보태평과 정대업을 개편하여 세조 10년에 처음으로 종묘제향에서 연주되었다. 이 제례악은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음악이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점차 복구되었으며 인조 4년(1626)에 보태평 중 정명장(定明章) 다음에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하였으며, 1946년까지 제향에서 연주하였으나 그 뒤 멈추었다가 1971년부터 해마다 5월 첫 일요일에 행하는 종묘대제에서 종묘제례악과 악장과 일무가 동시에 연행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말기까지 장악원(掌樂院) 악사(樂士)들에 의하여 전승되었고, 일제 때에는 구황궁아악부(舊皇宮雅樂部) 악사에 의하여 전승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 악사들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보유자는 김종희 외 여러 명이다. 현재 보태평은 희문(熙文), 기명(基命), 귀인(歸仁), 향수(享壽), 집녕(輯寧), 융화(隆化), 현미(顯美), 용광정명(龍光貞明), 중광(重光), 대유(大猷), 역성(繹成) 등 11곡으로 구성되었고 정대업도 소무(昭武), 독경(篤慶), 탁정(濯征), 선위(宣威), 신정(神定), 구웅(舊雄), 순승(順應), 총수(寵綏), 정세(靖世), 혁정(赫整), 영관(永觀) 등 11곡으로 구성되었다. 보태평은 황종궁평조(黃鐘宮平調 : C-Sol旋法)로 되어 있고 정대업은 황종궁계면조(黃種宮界面調 : C-La선법)로 되어 있다. 


   악기는 박(拍), 편종(編鐘), 편경(編磬), 방향(方響), 피리, 대금(大琴), 축(?), 어(?), 해금(奚琴), 진고(晋鼓), 마조촉(摩照燭), 절고(節鼓), 아쟁(牙箏), 태평소(太平簫), 대금(大金)으로 편성된다. 종묘제례의 영신례(迎神禮)와 전폐례(奠幣禮)에서 악사들은 희문이라는 보태평 제1곡을 아뢰고, 초헌례(初獻禮)에는 보태평을 아뢰며 도창(導唱)은 조종의 문덕(文德)을 기리는 악장을 노래부르며 무원(舞員)들은 손에 약(?)과 적(翟)을 갈라쥐고 문무(文舞)를 팔일무(八佾舞)로 춘다. 아헌례(亞獻禮)와 종헌례(終獻禮)에서 악사들은 정대업 전곡(全曲)을 아뢰고 도창은 조종의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악장을 부르고 무원들은 앞두줄은 목검(木劍, 나무칼)을 들고 중간 두줄은 목창(木槍,나무창), 뒤로 두 줄은 활과 화살을 들고 무무(武舞)를 팔일무로 춘다. 진찬(進饌)ㆍ 철변두(徹邊豆)ㆍ송신례(送神禮)에는 아악곡(雅樂曲)을 아뢰고 악장과 일무(佾舞)는 없다. 종묘제례악은 장엄하고 웅대한 음악이며 500여 전에 전승되던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이 제례악(祭禮樂)으로 승화되어 전승되어온 귀한 음악이다.





헌가에서 보태평지악의 영신희문을 9번 반복하여 연주하고, 일무는 문무(보태평지무)이다. 악기는 편종, 편경, 방향, 장구, 진고, 당피리, 대금, 해금, 축, 박 등이 편성된다.

 영신 : 조상신을 영접하는 절차
 헌가 : 노랫말이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희문 : 조종(祖宗)의 문덕을 기리는 보태평 11성 중 일성.
등가에서 보태평지악의 전폐희문을 반복하여 연주하고, 일무는 문무이다. 악기는 편종, 편경, 방향, 장구, 절고, 당피리, 대금, 아쟁, 축, 박 등이 편성된다.
 전폐 : 조상신에게 폐백을 올리는 절차
 등가 : 노랫말이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헌가에서 풍안지악의 진찬곡을 연주하고, 일무는 무무이다. 악기는 편종, 편경, 방향, 장구, 진고, 당피리, 대금, 해금, 축, 박 등이 편성된다.
 진찬 : 신위가 모셔진 각 실의 제상에 제물을 진설하는 절차
 신위 : 조상신이 머무는 자리. 지방.
 진설 : 제물을 제사상에 차리는 행위.
 
등가에서 보태평지악의 희문을 헌관이 신위전에 이르기까지 연주하고, 그 후는 보태평 전곡을 모두 연주하며, 악사는 보태평의 악장을 도창으로 하고, 일무는 문무이다. 악기는 편종, 편경, 방향, 장구, 절고, 당피리, 대금, 아쟁, 축, 박 등이 편성된다.
 초헌 : 조상신에게 첫 술잔을 올리는 절차
 헌관 : 조상신께 술잔을 올리는 사람.
 
헌가에서 정대업지악의 소무, 독경, 탁정, 선위, 신정, 영관을 연주하고, 악사는 도창하고 일무 는 무무(정대업지무)다. 악기는 편종, 편경, 방향, 장구, 진고, 당피리, 대금, 해금, 축, 박, 태평소 등이 편성된다.
 아헌 : 조상신에게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절차.
  소무,독경,탁정,선위,신정,영관 : 정대업지악의 11성중 6성.
 
헌가에서 정대업지악의 분웅,순웅,총유,정세,혁정,영관을 연주하고, 악사는 도창하고 일무는 무무(정대업지무)다. 악기는 편종, 편경, 방향, 장구, 진고, 당피리, 대금, 해금, 축, 박, 태평소 등이 편성된다.
 종헌 : 조상신에게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절차.
  분웅,순웅,총유,정세,혁정,영관 : 정대업지악의 11성중 6성.
 
등가에서 옹안지악의 진찬곡을 연주하고, 일무는 없다. 악기는 편종, 편경, 방향, 장구, 절고, 당피리, 대금, 아쟁, 축, 박 등이 편성된다.
 철변두 : 제사에 쓰인 제물을 거두어들이는 절차.
 
헌가에서 흥안지악의 진찬곡을 연주하고, 일무는 없다. 악기는 편종, 편경, 방향, 장구, 진고, 당피리, 대금, 해금, 축, 박 등이 편성된다.
 

송신례 : 신을 보내드리는 절차.









 조선전기: 박, 특경, 어, 방향, 축, 특종, 당비파, 대쟁, 가야금, 피리, 거문고, 아쟁, 향비파, 월금,
 대금, 퉁소, 당피리, 해금, 지, 생, 장고, 절고, 훈, 화, 편경, 편종, 휘, 조촉
 조선후기 : 1930년대: 박, 휘, 아쟁, 대금, 당피리, 방향, 편경, 절고, 장고, 편종, 축
 
현재: 박, 휘, 해금, 대금, 아쟁, 어, 방향, 편경, 절고, 피리, 장고, 편종, 축 

 조선전기: 노도, 노고, 편종, 박, 편경, 어, 축, 월금, 가야금, 당비파, 방향, 거문고, 향비파, 태평소,
 피리, 장고, 해금, 훈, 지, 관, 화, 우, 퉁소, 당적, 교방고, 생, 소금, 중금, 대금, 진고
 조선후기 : 1930년도: 조촉, 박, 진고, 편종, 장고, 축, 편경, 방향, 당피리, 대금, 해금, 태평소, 징
 현재 : 조촉, 박, 어, 진고, 편종, 장고, 축, 편경, 방향, 대금, 해금, 태평소, 피리, 징

                          
   종묘제례악은 편종, 편경, 방향과 같은 타악기가 주선율이 되고, 여기에 당피리, 대금, 해금, 아쟁 등 현악기의 장식적인 선율이 부가된다. 이 위에 장구, 징, 태평소, 절고, 진고 등의 악기가 덕욱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노래가 중첩되면서 종묘제례악은 그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중후함과 화려함을 전해 준다. 즉 고전문헌인 “악기(樂記)”에서 “악 · 가 · 무를 모두 갖춘 것을 악이라고 한다”고 했는데, 종묘제례악은 이들 삼박자를 갖추고 있어서 독특하게 평가받고 있다.




   악장(樂章)이란 궁중음악의 성악에 쓰이는 가사나 노래 자체를 일컫는 용어로 종묘제례악의 각 악곡에 부르는 노래를 종묘 악장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조선왕조를 개국한 선대왕들의 문덕과 무공을 찬양하는 것으로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것과 마찬가지로 4자 1구, 8구 1장의 정형화된 한시였다.
   악장은 세종이 친히 지은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5곡에 연원을 두고 있는데 이들이 아악풍의 고정된 형식이 아니고 비교적 불규칙한 한시형태로 바뀐 것은 본래 제사용이 아닌 회례연(會禮宴)의 악장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 뒤 세조 때 세종이 만든 보태평과 정대업 가사의 자구가 많아서 짧은 제사의식에 다 불리기 어려우므로 이것을 많이 축약하고 그 위에 악장이없던 진찬, 철변두, 송신은 최항이 새로 지어 전체적인 종묘악장이 고루 갖추어지게 되었다.
세조10년(1464년) 정식으로 채택된 종묘악장은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웅장하면서도 미려한 한문체로 작성되어 우리나라 한문학의 독특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보태평 악장은 조종(祖宗)이 나라 운을 열어 찬란한 문치가 창성한 내력과 태조의 4대 선왕(목조.익조.도조.환조) 및 태조, 태종의 문덕을 기리는 내용이다. 이들은 신령에게 첫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 때 불리는데 평조(平調)로 되어 있다. 초헌은 인입장(引入章) 희문(熙文)과 인출장(印出章 ) 역성과의 사이에 구변(九變), 즉 9곡이 있어 모두 11곡이므로 악장도 11개가 있다. 따라서 보태평 악장 11곡은 희문(熙文). 기명(基命). 귀인(貴仁). 형가(亨嘉). 집녕(輯寧). 융화(隆化). 현미(顯美). 용광정명(龍光貞明). 중광(重光). 대유(大猶). 역성(繹成) 등이다. 

 

   정대업 악장은 “하늘이 우리 조종을 돌보사 이어 무공을 나타내시도다”라고 운을 뗀 뒤 역시 선대왕들이 외적과 맞서 공을 세운 무공을 호기 넘치는 시어로 칭송하고 있다. 아현례와 종헌례 때 불리는데 계면조(界面調)로 되어 있다. 정대업 악자의 11곡으로는 소무(昭武) · 독경(篤敬) · 탁정(濯征) · 선위(宣威) · 신정(神定) · 분웅(奮雄) · 순웅(順雄) · 총유 · 정세(靖世) · 혁정(赫整) · 영관(永觀) 등이 있다. 





종묘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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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토요명품공연 [2016.05.14.] 01. 종묘제례악




게시일: 2016. 5. 17.


01. 종묘제례악 '전폐희문·희문·기명·역성·소무·독경·영관'
○ 집사/문현, 집박/이영, 악장/김병오
○ 피리/양명석·황규상·김성진·홍현우(태평소)·윤형욱·민지홍, 대금/노붕래·문응관·김영헌·박장원·이결·이종범,
○ 해금/김주남·윤문숙·사현욱·공경진·김용선·한갑수, 가야금/조유회·정지영·김형섭, 아쟁/김창곤,
    거문고/윤성혜·이방실·고보석
○ 편종/김치자, 편경/조인환, 방향/채은선, 장구/홍석복, 절(진)고/안성일, 징/홍창남
○ 축/이준아, 어/채성희, 휘/이명하, 문무/최형선·김진정, 무무/정현도·김서량





국립국악원 추천 음악 - 조선왕조 영혼의 음악 "종묘제례악(jongmyojeryeak)"



  


게시일: 2015. 8. 31.

세계유네스코위원회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 영혼의 음악 종묘제례악’



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알기쉬운 종묘제례악


게시일: 201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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