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끼노의 일본식물도감에 대하여/전의식

2013. 7. 30. 15:25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일본인에 의한 일본식물연구의 대가는 누가 뭐래도 도꾜대 교수가 아닌 , 독학자 마끼노도미타로오라 할 수 있다. 그는 일본 중의 아주 시골인 낙도의 시고꾸란 섬의 도사란 한 촌 구석에서 태어나 학교라고는 다닌 적이 없고, 오직 독학으로 공부하여, 도꾜대를 드나들며 연구했는데, 주임교수와 사이가 좋을 때는 강사로 근무하며 연구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쫓겨나기를 3번씩이나 당하다 다시 들어가는 등 파란 많은 역정을 겪은 학자이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결망학인" 그물을 짜듯 공부한 학자라 자칭했다.

   그가 어떻게 독학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일본 식물 천여종에 대하여, 라틴어로 신종을 기재했음은 그저 놀라울뿐이다. 그리고 일본의 식물상을 밝히지 위해 춘풍추우 수10년간 전국을 누비며, 식물을 채집하고, 묵묵히 수천의 그림을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수천의 신기재문을 작성하기도 하여서는 드디어는 1940년에 "마끼노일본식물도감"을 완성한 것이다.

   그는 그 도감에 저자 독자의 견해에 따른 학명, 새롭게 발표된 학명을 채택하고, 종래까지 없던 일본명의 뜻을 풀이하고, 한자명을 바르게 밝히는 등 심혈을 기울리며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고 독백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이상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의무는 다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더욱 가다듬고, 보완할 각오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식물을 연구하려면 첫째 돈이 있어야하고, 둘째 건강해야하며, 셋째는 그림을 잘 그려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록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가정이 유복해서, 연구 활동에 큰 도움이 됐으며, 타고난 건강의 소유자였고, 기가막히게 그림을 잘 그렸다. 그리하여 그 훌륭한 도감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사후 도꾜대 교수를 비롯한 사계의 권위자들이 그의 저서를 수차 증보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학자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학벌을 뛰어넘은 학자들의 정열과 금도에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두번째 증보판에는 사계의 권위자의 분담 집필에 의해 과거에 없던 검색표가 추가 됐다. 나는 이를 번역 우리 식물에 적용시켜, "원색전한국식물도감"에 수록하고 싶다.

   나는 그가 말한 3가지 조건 중 건강 외에는 가진 것이 없다. 물론 경제력도 없고, 그림 그리는 재주도 없다. 그러나 그림 못그리는 것을 발달된 사진기가 어느 정도 대신해 주어, 오늘도 80 노구를 이끌고 이 산, 저 산, 이 섬, 저 섬을 누비고 있다. 그러면서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우리나라의 식물을 한종도 빠지지 않게 수록한 "원색전학국식물도감" 의 허망한 제작을 꿈꾸고 있다. 내 혼자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전국의 식물애호가의 힘을 함친다면 가능할 것이란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오늘 부산의 모님으로부터 아직 우리나라의 식물도감에는 수록되지 않은 수궁초의 사진을 보내왔다. 충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중 한컷을 옮겨 싣는다. 이것이 진짜 수궁초이고, 지금까지 수궁초라는 이름으로 수록된 것은 수궁초 아닌 솜아마존이고, 과거에 내 고향에도 보았던 것 _지금은 용궁이 돼 버린 충주댐 속-도 솜아마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