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장나무 실거리나무 머귀나무 무환자나무 주엽나무

2017. 6. 5. 13:21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우리 나무의 세계1


보리장나무

다른 표기 언어 Glabra Oleaster , 甫里樹 , ツルグミ蔓茱萸                                  



요약 테이블
분류 보리수나무과
학명
Elaeagnus glabra         


   보리장나무는 서남 해안에서부터 제주도에 걸쳐 자라는 늘푸른 덩굴성 나무다. 그러나 가지를 길게 뻗어 다른 나무에 걸쳐 자랄 뿐, 특별히 빨판을 붙이거나 감지는 않는다.

흔히 볼 수 있는 보리장나무는 그렇게 굵지 않으나 난대림 숲속에서 오래 자란 나무는 발목 굵기에 길이가 10미터를 훨씬 넘어 큰 덩굴 모양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보리장나무 이외에 보리밥나무, 녹보리똥나무, 큰보리장나무, 왕볼레나무 등 이름도 생김새도 비슷한 종류들이 여럿 있다. 학자들 사이에 종(種)의 분류에 대한 논란이 있는 종류도 있어서 더더욱 헷갈린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독특한 잎 모양이다. 타원형의 잎은 두껍고 표면에 광택이 있으며, 잎 뒷면에는 비늘모양의 극히 짧은 털이 촘촘히 있어서 은박지나 호일을 붙여 둔 것처럼 약간 번쩍인다. 이것은 다른 나무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잎의 특징이며, 보리장나무 종류마다 이 색깔이 다른 경우가 많다.



   꽃은 대체로 늦가을에서부터 초겨울에 걸쳐 잎겨드랑이에 2~7개씩 피고, 열매는 다음해 늦봄에 붉게 익는다. 새끼손가락 첫마디만 하고 앵두처럼 생겼으며, 표면에는 작은 점들이 무수히 찍혀 있다. 이 점들은 잎이나 어린 가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마치 덕지덕지 붙은 파리똥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보리’란 나무 이름과 관련이 있다. 남부지방에서는 파리를 ‘포리’라 하므로 포리나무가 변하여 보리밥나무, 보리똥나무, 보리장나무 등 여러 가지 ‘보리나무’가 생긴 것으로 짐작된다.

   보리장나무 종류의 열매는 단맛을 기본으로 떫고 조금 신맛이 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 6년(1500)에 전라 감사에게 “보리수(甫里樹) 열매는 익은 다음에 올려 보내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의 보리수가 바로 보리장나무 종류로 짐작되며, 임금이 먹을 만큼 중요한 과일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우리 입맛에는 별로 손길이 가지 않는 야생열매일 뿐이다. 그러나 열매가 익는 늦봄은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앵두도 아직 익지 않은 계절이다. 당연히 옛사람들에게는 귀한 과일일 수밖에 없다. 열매나 잎, 뿌리 등은 장염이나 설사가 날 때 달여 먹는 약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비교적 만나기 쉬운 것은 보리장나무와 보리밥나무다. 이 둘의 차이점은 잎의 뒷면이 적갈색이 강하면 보리장나무, 흰빛이 더 강하면 보리밥나무다. 중부지방으로 올라오면 비슷한 종류로 보리수나무가 있다. 잎이 좁은 긴 타원형이며 갈잎나무인 것이 보리장나무 종류와의 차이점이다. 부처가 도를 깨우친 보리수(菩提樹)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무다.



    

실거리나무

다른 표기 언어 Mysore Thorn , 夜皁角 , ジャケツイバラ蛇結茨

요약 테이블
분류 콩과
학명 Caesalpinia decapetala


   실거리나무는 한반도의 남부 해안과 섬 지방에서 자라는 자그마한 갈잎나무다. 나무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름조차 생소할 것이다.

   실거리나무와 나의 첫 만남은 전남대 재직 시절이었던 1980년대 초 보길도에서였다. 마을 앞 여러 잡목들이 멋대로 자란 작은 숲에 들어가는데, 이 녀석이 앞을 가로막아 섰다. 긴 세월 동안 숲속을 자주 헤매고 다닌 터라 큰 나무가 아닌 웬만한 나무는 한쪽으로 밀치고 밟고 다니는 일에 익숙한 나였지만, 그 나무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길게 뻗은 가지에 마치 낚싯바늘이 연상되는 짧고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의 예리한 가시가 달려 있어서다. 크진 않아도 낫 모양의 가시가 너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원래 덩굴나무는 아니지만 길게 늘어진 가지들이 덩굴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이 녀석의 심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막대기 하나를 잡아 이리저리 누르고 발로 밟으면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유연성이 좋은 가지들이 자꾸만 앞을 가로막았다. 실랑이는 금방 내가 들어간 길로 되돌아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실거리나무라는 이름은 얼기설기 가시 때문에 ‘실이 걸린다’는 특징에서 따온 것이다. 실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잘 걸린다. 그래서 보길도에서는 총각이 이 나무 사이로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 하여 총각귀신나무라 하고, 흑산도에서는 단추걸이나무란 별명도 있다. 지방에 따라 띠거리나무, 살거리나무라고도 한다.

   어쨌든 실거리나무의 특징은 험악한 갈고리 가시로 대표된다. 제주도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각주1) “옛날 바닷가 어느 마을에 젊은 과부가 살고 있었다. 모양내기를 좋아했던 과부는 대처로 나가 예쁜 옷을 한 아름 사들고 배를 타고 마을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일어난 풍랑에 배가 기우뚱거리자, 옷 보따리를 그만 물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과부는 보따리를 건지려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으나 사람도 옷 보따리도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후 사람들은 실거리나무가 바로 한을 간직한 과부의 넋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거리나무는 낚싯바늘 같은 가시를 달고 사람만 얼씬거리면 옷을 걸어 꼼짝 못하게 하고, 한번 걸리면 가시가 부러지기 전에는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거리나무의 가시 특징을 한참 이야기했지만, 이 나무의 진짜 백미는 꽃이다. 5월 중하순 경에 피는 꽃은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다섯 장의 5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샛노란 꽃잎을 펼친다. 그냥 노랗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운데에 가느다란 10개의 붉은보랏빛 긴 수술이 노랑 꽃잎의 화사함에 악센트를 주고 있다. 금방 날아가 버릴 노랑나비가 앉아 있는 듯, 가시투성이의 나무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꽃의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실거리나무의 잎도 꽃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화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까시나무 잎처럼 잔잎이 여럿 달린 겹잎이다. 더 작고 초록빛도 더 짙으며 잎의 개수도 많고, 또 이중 겹잎이다.

   짧은 콩꼬투리 안에 들어 있는 까만 열매는 해열제나, 설사를 멈추게 하는 데 쓰이며, 때로는 구충제 등 민간약으로 이용한다. 콩과에 속하는 나무라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

   나는 따뜻한 남쪽나라에 자그마한 농장 하나를 갖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 이제 그 꿈을 접어야 할 연륜이 되었지만, 항상 머릿속에서는 실거리나무 산울타리에 노랗게 핀 꽃 천지를 그리고 있다. 아름다운 꽃은 꽃대로 감상을 하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울타리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는 나무가 바로 실거리나무다.




머귀나무

다른 표기 언어 Japanese Prickly Ash , 食茱萸 , カラスザンショウ烏山椒

요약 테이블
분류 운향과
학명 Zanthoxylum ailanthoides


   머귀나무는 제주도 및 남해안 등지의 난대림에서 자란다. 언뜻 보면 산초나무처럼 생겼는데 이 둘은 같은 속(屬)에 들어가는 형제나무다. 다만 머귀나무는 산초나무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잎이 크고 나무도 훨씬 굵게 자란다. 키는 6~8미터로 보통이지만 15미터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머귀나무는 야산 자락에서 흔히 만날 수 있고, 특히 벌채한 노출지 등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먼저 자리를 잡은 선구식물이기도 하다. 잎은 가죽나무처럼 작은 잎이 여럿 모인 겹잎이며, 전체 길이가 때로는 80센티미터가 넘을 정도로 크다. 잎이 떨어진 자국(엽흔)은 유관속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코 없는 사람 얼굴처럼 재미있게 생겼다. 잎이나 엽흔의 모양이 모두 가죽나무와 닮았으므로 종명(種名)에도 가죽나무를 뜻하는 ‘ailanthoides’가 들어 있다.



   머귀나무의 또 다른 특징은 잎자루와 줄기에 가시가 있다는 것이다. 가시는 어릴 때는 녹색이고 줄기와 붙은 부분에 코르크가 발달하여 동그랗게 된다. 나이를 먹으면 가시의 날카로움은 없어져도 이 코르크 부분만은 오랫동안 남아 있어서 머귀나무는 숲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여름에 가지 끝에 원뿔모양의 꽃차례를 만들어 많은 꽃이 달리고 가을이면 반질반질하고 까만 씨가 익는다. 열매 껍질은 산초나무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향기가 있다.

   《월인석보》에 ‘오동(梧桐)은 머귀’란 구절이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문헌에 머귀나무는 오동나무의 옛 이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동나무와 모양새나 쓰임새에 있어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지금의 머귀나무가 왜 ‘머귀나무’라는 오동나무의 옛 이름을 빌려 쓰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중국 이름은 식수유(食茱萸)인데, 오수유, 산수유와 함께 수유(茱萸)란 이름이 들어간 이들은 대부분 약용식물이었다.

   그러나 세종 12년(1430)에 중국 사신을 수행한 관원 노중례가 임금께 아뢰기를 “신 등이 우리나라에서 나온 약재를 가지고 가서 중국의사인 주영중(周永中)과 고문중(高文中) 등에게 보이고 검증받은 결과 식수유(食茱萸) 등 10가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또 식수유는 중국에서만 자라는 오수유와 명확하게 구분하여 기술하지 않은 문헌도 있어서 약재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한편 《해동농서》에 나오는 식수유 설명을 보면 “가죽나무처럼 키가 크고 줄기 사이에 가시가 있으며 열매는 고추처럼 맵다. 오래 저장했다가 간식용품을 만든다”라고 하여 지금의 머귀나무임을 알 수 있다.

   머귀나무는 오동나무와 오수유와의 관련성 등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으나, 오늘날 남부지방의 난대림에서는 좀 특별한 모양새를 가진 나무로서 우리 눈에 잘 띈다. 작은 잎 20~30개가 모여 커다란 잎을 만들고 곧게 뻗은 줄기에 점점이 박힌 가시 자국, 초록이 더욱 깔끔해 보이는 어린 가지들도 머귀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무환자나무

다른 표기 언어 Chinese Soapberry , 無患樹 , ムクロジ無患子

요약 테이블
분류 무환자나무과
학명 Sapindus mukorossi


   무환자(無患子)나무는 환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환상의 나무다. 중국에서는 무환수(無患樹)라 하여 근심과 걱정이 없는 나무로 통한다. 늙어서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원죄가 없어진다니 수많은 세상 나무 중에 이보다 더 좋은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무환자나무는 본래 중국에서 도교를 믿던 사람들이 즐겨 심은 나무로서 무환자란 이름이 붙게 된 사연이 있다. 옛날 앞날을 기막히게 잘 알아맞히는 이름난 무당이 있었는데, 그는 무환자나무 가지로 귀신을 때려죽였다. 그래서 나쁜 귀신들은 무환자나무를 보면 도망을 가고 싫어했다. 이를 안 사람들은 다투어 무환자나무를 베어다 그릇을 만들고 집 안에 심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무환자나무가 알려졌으며, 《산해경(山海經)》에는 옛 이름이 환(桓)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것으로 각인된 이 나무는 자연스럽게 ‘무환’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 그루의 무환자나무를 뜰에다 심어두고 온갖 근심 걱정을 다 떨쳐버리면, 나무와 함께 자연히 무병장수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환자나무는 일본 남부, 타이완, 중국 남부, 인도 등 주로 난대나 아열대가 고향이다. 우리나라의 무환자나무는 인도가 원산지로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여 경남과 전남, 남부 섬 지방, 그리고 서해안을 따라 충청도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갈잎나무로서 키 20미터, 지름은 한 아름이 넘게 자랄 수 있다. 잎은 아카시나무 잎처럼 9~13개의 작은 잎이 한 대궁에 붙어 있다. 잎 끝으로 갈수록 뾰족하며, 뒷면에는 주름살이 많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가을에 샛노랗게 물드는 단풍은 품격 있는 정원의 운치를 한층 더 높여준다.



   늦봄에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팥알 크기 정도의 작은 꽃이 황갈색으로 핀다. 열매는 둥글고 지름은 2센티미터 전후로 가을이 짙어 갈 때 황갈색으로 익는데, 마치 고욤처럼 생겼다. 꼭지 부분에는 작은 딱지(心皮)가 살짝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아 귀엽고 깜직하다. 안에는 지름 1센티미터 가량의 새까만 씨가 한 개씩 들어 있다.


       

   이 열매는 돌덩이같이 단단하고 만질수록 더욱 반질반질해져 스님들의 염주 재료로 그만이다. 불교 경전인 《목환자경》에 보면 “무환자나무 열매 108개를 꿰어서 지극한 마음으로 하나씩 헤아려 나가면 마음속 깊숙한 곳에 들어 있는 번뇌와 고통이 없어진다”라고 했다. 그래서 무환자나무의 다른 이름은 아예 ‘염주나무’, 또는 ‘보리수’라고도 한다. 또 이수광의 《지봉유설》 〈훼목부〉에도 “열매는 구슬과 같아서 속담에 이것을 무환주(無患珠)라고 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무환자나무 무리를 나타내는 속(屬) 이름인 Sapindus는 ‘인도의 비누’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이고, 영어 이름인 소프베리(soapberry)는 아예 ‘비누 열매’란 뜻이다. 열매 껍질과 줄기, 그리고 가지의 속껍질에는 사포닌이라는 일종의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어서 인도에서는 빨래를 할 때 우리나라의 잿물처럼 사용했다. 열매 껍질은 머리를 감는 데도 쓸 수 있다 하니 머리털을 건강하게 하고 환경보존을 위해서라도 무환자나무의 열매를 이용해 봄직하다. 민간에서는 술을 담가 감기 치료제로 쓰였으며 열매 껍질은 거담제나 주근깨를 없애는 등 한약재로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주엽나무

다른 표기 언어 Japanese Honey Locust , 皁莢 , サイカチ皁莢                                  



요약 테이블
분류 콩과
학명 Gleditsia japonica


   식물분류학이란 학문의 체계가 잡혀 있는 지금도 같은 나무를 두고 여러 이름으로 부르거나 다른 나무를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혼란스럽다.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의 관계가 그렇다. 주엽나무는 전국에서 자라는 토종나무이고, 조각자나무는 중국에서 약재로 쓸 목적으로 수입하여 일부 지방에서 심고 있는 나무다. 하지만 외모는 주엽나무와 구분이 안 될 만큼 줄기와 잎 모양이 거의 같다. 다만 주엽나무의 열매는 꼬투리가 비꼬여 있고, 가시의 횡단면이 약간 납작한데 반해 조각자나무는 열매 꼬투리가 곧바르며 가시의 횡단면이 둥글다.

   이렇게 두 나무는 모양도 비슷하고 옛 문헌 기록에서도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취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엽나무 열매를 조협(皁莢)이라 하는데, 조협나무가 변하여 주엽나무가 되었다. 《동의보감》에 보면 “조협은 장조협(長皂莢), 저아조협(猪牙皂莢) 등 두 가지가 있다. 지금 의사들은 풍기를 없애는 알약이나 가루약에는 장조협을 쓰고, 이빨의 병과 적(積)을 낫게 하는 약에는 저아조협을 많이 쓴다. 성질과 맛은 대체로 비슷하다”라고 했다. 《산림경제》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장조협은 조각자나무로 생각되고, 저아란 활처럼 휜 멧돼지 이빨을 말하니 열매 모양으로 보면 주엽나무에 해당한다. 이렇게 둘을 구분한 경우는 드물고 옛사람들은 같은 나무로 취급했다.



   주엽나무는 키 15미터 정도, 줄기둘레가 두세 아름에 이르는 큰 나무다.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며, 작은 가지는 녹색이다. 나무껍질은 짙은 회색으로 나이를 먹어도 갈라지지 않는다. 줄기와 가지에는 직각으로 솟아오른 험상궂은 가시가 있는 것이 주엽나무 종류의 특징이다. 잔가지가 변형된 가시이므로 껍질이 변형된 장미나 음나무 가시와 달리 튼튼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가시는 매년 생장을 하여 몇 번씩 가지를 쳐 길이가 한 뼘에 이르기도 한다.

   이상하게 생긴 가시는 조각자(皁角刺)라고 하여 귀중한 약재로 쓴다. 《본초강목》에는 “대나무 속껍질을 나무에 둘러놓으면 하룻밤 사이에 가시가 저절로 떨어진다”라는 희한한 처방도 있다. 가시 떼기가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동의보감》에 보면 조각자는 “터지지 않은 옹종을 터지게 한다. 이미 터진 때에는 약 기운을 끌고 가므로 모든 악창과 문둥병에 좋은 약이 된다”라고 했다. 《산림경제》에는 “갑작스런 뇌졸중 등 여러 가지 위급상황이 닥치면 조각자 가루를 먹인다”라고 하였으며, 책에 좀이 스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도 썼다. 그 외에 조각자를 땅속에 묻어두면 대나무가 뿌리를 뻗지 못하며, 조각자나 조협을 삶은 물로 빨래를 하면 때가 잘 빠진다고 한다. 나무껍질은 흑갈색 또는 암회색으로 매끈하다. 《천공개물》에 보면 “소금을 만들 때 물이 잘 엉기지 않으면 주엽나무 껍질을 찧어서 조와 벼의 겨를 섞어 끓을 때 넣고 저으면 소금이 곧 엉기게 된다”라고 했다. 잎은 달걀모양의 작은 잎이 5~8쌍씩 모여 짝수 깃꼴겹잎을 이룬다.

   주엽나무는 이처럼 여러 가지 재료로 쓰인 나무이지만 남아 있는 고목은 드물다. 전북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에 있는 나이 200년, 키 8미터, 줄기둘레가 두 아름이 조금 넘는 보호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 조각자나무는 경북 안강 독락당의 천연기념물 115호로 지정된 키 15미터, 뿌리목 둘레가 세 아름이 넘는, 이언적 선생이 심었다는 5백 년 된 고목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주엽나무는 쥐엽, 주염, 쥐엄나무 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성서의 〈누가복음〉 15장에는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배를 채워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주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때의 쥐엄나무(학명 Ceratonia siliqua)는 늘푸른나무로 주엽나무나 조각자나무와는 속(屬)이 다른 별개의 나무다.각주1) 기독교가 중국에 전파될 때 처음 번역한 사람들이 콩꼬투리의 생김새가 주엽나무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우리나라는 주엽나무의 경기도 방언인 쥐엄나무로 번역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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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 직업교수 전체항목 집필자 소개

평생 나무를 연구한 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나무 관 등 나무로 만든 문화..펼쳐보기

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1
우리 나무의 세계 1 | 저자박상진 | cp명김영사 전체목차 도서 소개

나무의 생태학적인 접근을 넘어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재조명한다. 우리 민족의 삶이 담긴 역사서 속에서 나무 문화재 대한 향기로운 이야기와 비밀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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