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30. 22:23ㆍ들꽃다회
춘천 느랏재 들꽃다회
2017625 일요일, 흐리고 가끔 비
엉퀑퀴와 왕팔랑나비 그리고 꽃등에 종류, 탁엽 아래에 작은 거미
왕팔랑나비
사진 출처 : 2012.06.04블로그 > Daum블로그 blog.daum.net/hpw21
엉퀑퀴와 왕팔랑나비 그리고 꽃등에 종류, 탁엽 아래에 작은 거미
국립수목원국가생물종지식...
왕팔랑나비
분류 | 나비목 > 팔랑나비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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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Lobocla bifasciata (Bremer et Grey, 1853) |
출현시기 | 5월, 6월, 7월 |
굵은줄나비
- 앞,뒷날개에 굵은 흰색줄이 있다
사진 출처 : 2017.06.16블로그 > Daum블로그 blog.daum.net/smrt2009
엉퀑퀴와 왕팔랑나비 그리고 꽃등에 종류
엉퀑퀴와 왕팔랑나비 그리고 꽃등에 종류, 탁엽 아래에 작은 거미
타락죽(駝酪粥)
타락죽은 우유에 쌀을 갈아 만든 무리를 넣고 끓인 죽으로 우유죽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의 일부 상류가정이나 궁중에서 애용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에서 우유를 언제부터 식품으로 썼는지 그 상한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헌으로 미루어 고려시대부터 유우소(乳牛所)가 있었고 낙수(酪酥)를 가공하여 상류층 일부에서 식용으로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증보산림경제≫·≪규합총서 閨閤叢書≫·≪부인필지≫ 등에 조리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규합총서≫에서는 타락죽을 쑬 때 우유와 무리의 비를 부피로 1:0.8 정도로 하였다. 재료의 비는 다소 임의로 가감할 수 있다. 단, 우유보다 무리가 많은 것은 좋지 않다.
타락죽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보양식으로 먹던 음식이다. 얼마나 귀했는지 임금님도 아무 때나 먹지 못했으며 특별한 명절이나 몸이 아플 때 주로 먹었다.
타락죽은 궁중음식을 기록한 『왕실양명술(이원섭 지음)』에도 기술되어 있다.
타락이란 낙타의 젖을 말함으로 몽골 등 유목민들에게는 가장 좋은 영양소로 꼽는다. 원나라가 고려를 침략해 고려를 지배할 때 들어온 소·말·양·낙타젖을 타락으로 부르게 된 것 같다. 소화력이 높은 찹쌀과 우유를 섞은 타락죽은 밤새 비워 둔 위를 부드럽게 한 다음 아침 수라를 들게 하는 약죽이였던 것이다.
조선조 고종 말년에 궁중의 약방기생을 했던 박봉래(朴奉來)할머니는 소젖으로 끓인 타락죽을 끓여 황제가 먼저 들고 약간을 남겨 동침한 궁녀에게 물려준다 했다.
이것을 분락지간(分酪之間)이라하여 임금과 동침한 궁녀와 타락죽을 나누어 먹는 사이라고 하였다.
석가모니가 6년간의 고행 끝에 쇠약한 몸을 우유 죽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해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는 유명한 얘기는 모두가 알듯이, 지금도 몽골이나 티베트같은 유목생활을 하는 산간지방에서는 식사 대신 보릿가루에 우유와 차를 타서 하루에 수십 잔씩 마시고 있다
야채가 귀한 이들은 차를 마시고 비타민 C 등 야채의 성분을 보충하고 있다.이 우유 죽을 만드는 방법이 빙허각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에 적혀 있다. '쌀을 담갔다가 무리를 정하게 갈아 밭치고 생우유가 한 사발이면 무리는 다소 적게 한다. 무리란 물에 불린 쌀을 물과 함께 맷돌에 갈아 체에 밭쳐 가라앉힌 앙금을 말한다. 묽고 되기는 잣죽 만큼 하여 먼저 쑤다가 익으려 하거든 우유를 부어 섞어서 쑨다. 이것이 곧 임금이 잡숫는 약을 만드는 내의원에서 타락죽 만드는 법이라.'했습니다.쌀 무리를 갈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찹쌀가루를 빻아다가 냉동실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쓰면 좋다.
조선 후기 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에 궁중에서 필요할 때 타락죽을 끓이는데, 특히 임금이 병이 났을 때 내의원 약국에서 타락죽을 진상했다고 나온다. 또 해마다 10월 그믐부터 정월까지 내의원에서 타락죽을 만들어 원로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원로들에게 하사하는 겨울 특별 보너스였던 셈이다. 먹는 음식인 타락죽을 만드는 곳도 주방이 아니었다. 궁중 병원인 내의원 약방에서 제조했으니 음식이 아니라 보약으로 여겼다.
타락차(駝酪茶)에 대한 기록과 오늘날에 응용
숙종 때 김창업이 사신을 따라 북경을 다녀와 《연행일기》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 조선 사신들이 자금성에 도착해 황제를 알현하려고 기다리는 동안 타락차 한병을 내왔는데 다른 사신들은 아무도 마시려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일찍이 먹어본 적이 있어 맛이 좋음을 알았기 때문에 연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고 했다.
당시 김창업은 서장관으로 따라갔으니 정사와 부사와 함께 황제를 알현하려고 대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사, 부사와 같은 고위직 벼슬아치가 타락차가 낯설어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니 고위직 관리라도 원로가 아니면 타락차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창업의 <연행일기>에 나타난 타락차가 진하게 졸인 연유에 가루녹차를 타서 만든 것인지 연유(煉乳)에 긴압차나 녹차를 우려낸 차를 더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대접에 담지 않고 병에 내온 것으로 보아서 타락죽이 아니라 타락차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농경문화 보다 수렵문화를 우선시하던 팔기군 출신의 청황조 지배층들은 정복한 중원의 차문화를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확장편입한 티베트의 수유차(酥油茶)나 몽골과 위구르 회족의 함내차(咸奶茶) , 내차 등 우유, 소금 또는 볶은 찹쌀가루나 보릿가루와 긴압차를 함께 넣고 끓인 변방민족들의 다양한 차문화를 골고루 즐겼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타락차는 졸인 우유에 가루녹차를 타서 저어 거품내어 마시는 녹차라테 종류이다. 또한 보이차 등의 긴압차나 녹차 등을 우리거나 달인 차에 진하게 졸인 우유나 연유를 섞어서 흔들어 마시는 것도 피로물질을 빨리 배출하고 영양을 보충하는 동시에 정신이 맑아지는 각성효과까지 있어 운동전후나 병후 회복식으로 즐길 만하다.
일본 다도종가(茶道宗家)들의 원류가 된 삼국통일 후 혼란을 수습한 원동력이 되었던 원효대사의 무애차(無碍茶)나 나중에 이 무애차를 일본에 전하고 나라지방의 동대사를 창건한 백제 유민의 후손인 행기대사의 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 서대사(西大寺)의 큰차담기(大茶盛) 행사 등을 미루어 보건데 이미 신라시대부터 단차(團茶)를 달여서(煎茶) 마시는 전다법과 아울러 가루차(末茶)의 자다법(煮茶法)은 통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실제로 안압지에서 출토된 차(茶)자가 쓰여진 "언정차영(言貞茶榮)명 백토분장 토기다완"의 유물로 볼 때 가루차(末茶)의 음용은 신라시대부터 죽 이어져 온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찻사발, 국립경주박물관소장
- 경주 안압지(676년 건조)에서 출토된 토기류(무유, 無釉)의 다구(茶甌)에
“언(言), 정(貞), 차(茶), 영(榮)”이라 쓰여진 것이 말차용 찻사발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여겨진다.
크기는 구경 16.8cm 높이 6.7cm 이며 굽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자료 : midoyo9.wordpress.com/2016/04/27/다완찻사발에-관심을-갖기/
midoyo9.wordpress.com/2016/05/04/다완과-함께-살펴보는-차茶의-..
재미있는 사실은, 조선시대에 말차를 제사상에 올리는 풍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원래 차는 달여서 탕으로 마신다. 가례에는 점다(點茶)하는데, 찻가루를 잔 속에 넣고 끓인 물을 부은 다음 차솔로 휘젓는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가루차를 타는 방법과 같다. 이것만 보아도 가루차가 일본 고유의 차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타락(駝酪)의 어원
타락(駝酪)은 우유라는 뜻이다. 한자로 보면 낙타의 젖으로 만든 버터나 치즈 같은 식품이지만 우유의 한자 음역인 것으로 보인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타락은 본래 돌궐 말인 토락(Torak)에서 전해진 말이라고 했다. 고려 때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돌궐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목축을 담당했기에 우유를 돌궐 말로 타락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 최남선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우유에다 찹쌀을 넣고 끓인 죽이 바로 타락죽이니 고려 때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음식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양 사람들도 디저트로 타락죽을 먹는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디저트인 아로스 콘 레체(Arroz con leche)가 바로 타락죽이다. 스페인 말로 아로즈는 쌀, 콘 레체는 우유로 만들었다는 뜻이니 우유인 타락으로 끓인 죽에 다름 아니다.
이탈리아의 쌀죽인 부디노 디 리조 역시 이름만 다를 뿐 우유를 넣고 끓인 반액체의 음식이니 타락죽과 비슷하고 아랍과 인도에서 먹는 피르니,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우유죽인 소홀라도 모두 타락죽의 일종이다.
엉퀑퀴와 왕팔랑나비 그리고 탁엽 아래에 작은 거미
국립수목원국가생물종지식...
호리꽃등에
분류 | 파리목 > 꽃등에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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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Allograpta balteata (De Geer, 1776) |
엉컹퀴에 호리꽃등에
- 비온 다음날이자 비가 계속 내릴려는 날씨이니
뭇 곤충들의 채밀활동이 활발해진다.
가루차 녹차로 타락차(駝酪茶) 준비
- 지금은 느랏재터널 개통 후 임도로 변해있는 옛 56번 국도상에서......
끓여서 졸인 우유를 붓고 찻솔로 저어주다
오늘의 산중찻자리에서 다화(茶花)는 산솜다리(에델바이스)
- 산솜다리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산악회(대한산악연맹의 전신)에 대항하여
민족지사들이 설립한 백령회(白嶺會)의 후신으로 광복 후 이름을 바꾼
한국산악회의 휘장과 뺏지 도안으로 쓰이고 있다.
원예전문가인 지인이 종자를 채취하여 발아시켜 키워서 선물하다.
끓은 우유 위에 뜬 버터성분과 가루차가 뭉쳐서 무량광(無量光) 다완에 작은 찌꺼기들이 많다.
우리 고유의 다법대로 차숫가락으로 저으면서 격불하다.
다음에는 따로 물을 끓여서 가루차를 차죽상태로 갠 다음 우유를 첨가해 보련다.
무량수(無量壽) 다완에는 비교적 차 찌꺼기가 적다.
- 찻솔(茶筅)으로 무애차 격불 순서대로 108회를 젓다.
차를 저을 때 차를 젓는 도구의 차이와 격불하는 요령의 차이로 보인다.
한번 더 반복하여 행다(行茶)하다.
같은 량의 가루차를 넣었는데에도 타락차가 더 진한 연두색을 띈다.
우유를 더 첨가하여 격불해 준다.
차거품에 연노란색의 버터성분인 유지방(乳脂肪)이 떠있는 것이 보인다.
- 이 유지방 성분이 타락차의 고소한 맛을 더하여 준다.
끓여 졸인 우유를 더 붓고 격불하다.
차숟가락으로 저은 처음보다는 작은 차알갱이 찌꺼기가 적어지다.
끓인 맑은 물을 부어 백비탕(白沸湯)을 만들어 마시다.
두번째 백비탕에 다완 내에 물이 맑아졌다.
세번째 백비탕
처음으로 돌아가 깨끗해진 옻칠 다완
- 행다(行茶)의 끝마침은 사용전 상태로 다기들을 청결하게 되돌려 놓는데 있다.
이젠 다포(茶布)로 잘 닦아서 다구들을 마무리 포장해 놓으면 된다.
처음 준비에서부터 마지막 다구 정리까지 모든 과정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팽주(烹主)의 소임이다.
공적으로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서 팽주가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이대로 따르는 것이 우리의 차예절로 내려오다.
조용히 차맛만을 음미하고 찻자리를 즐기려면 팽주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찻손님(茶客)의 한사람으로 참석하면 될 일이다.
한국나비도감(원색)
왕은점표범나비
분류 | 네발나비과(Nymphalidae) > 네발나비아과(Nymphalin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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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Argynnis nerippe (C. & R. Felder, 1862) |
분포지역 | 한반도(울릉도 제외), 중국, 티베트, 일본 |
출현시기 | 6~9월 〈연 1회 발생〉 |
〈좌〉암컷, 인천 영종도(102d), 〈중앙〉수컷, 전북 백양사(102e), 〈우〉암컷, 전북 백양사(102f)
〈좌〉수컷, 강원 덕가산(102a), 〈중앙〉수컷 아랫면, 강원 쌍룡(102b), 〈우〉암컷, 경기 고령산(102c)
국립수목원국가생물종지식...
왕은점표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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