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율기(律己) 제3조 제가 (齊家) 음식을 사치스럽게 하는 것은 재화(財貨)를 소비하고 물자를 탕진하는 것이니 재앙을 불러들이는 길이다.

2017. 7. 11. 00:25다산의 향기



      [73] 율기(律己) 제3조 제가 (齊家)  음식을 사치스럽게 하는 것은 재화(財貨)를 소비하고 물자를 탕진하는 것이니 재앙을 불러들이는 길이다. 목민심서 / 일표이서

2015.02.0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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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한(後漢) 공분(孔奮)이 고장(姑臧)의 수령이 되었는데, 오직 늙은 어머니만은 아주 진수성찬이었고 처자들의 밥상에는 파와 겨자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공분을 조롱하기를,

“기름 속에 넣어두어도 스스로 윤택할 줄 모른다.”

하였다.


   조어(趙峿)가 합천 군수(陜川郡守)가 되어 청렴한 절조가 비길 데가 없었다. 군수로 있을 적에 아들과 사위, 노비(奴婢)들이 왕래하는 경우에는 모두 자기 양식을 가지고 왔다. 또 그 고을에 은어(銀魚)가 났는데, 여름철에 고기가 썩게 되더라도 처자들에게는 먹지 못하게 하였다.


   후당(後唐) 때 유찬(劉贊)의 아버지 유빈(劉玭)이 현령이 되었고, 유찬은 그때 비로소 입학하였는데, 청포(靑布) 저고리와 바지를 입혔고, 식사 때마다 자기는 고기반찬을 먹으면서 유찬에게는 따로 나물 반찬을 차려 상 아래에서 먹게 하면서,

“육식은 임금이 주신 녹이다. 너도 먹고 싶거든 부지런히 공부하여 국록을 받도록 하여라. 내가 먹는 육식은 네가 먹어서는 안된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유찬은 힘써 공부하여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호수안(胡壽安)영락(永樂) 연간에 신번지현(新繁知縣)이 되었는데, 벼슬살이할 적에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 아들 자휘(自徽)가 문안드리기 위해 와서 한달 동안 묵으면서 닭 2마리를 삶아 먹었다. 호수안이 노하기를,

“음식을 밝히는 사람은 사람들이 천하게 여긴다. 나는 벼슬살이한 지 20여 년이 되도록 항상 사치함을 경계하고 있으나 오히려 끝을 잘 맺지 못할까 걱정하는데, 네가 이처럼 먹기를 좋아하니 내게 누(累)가 되지 않겠느냐.”

하였다.



[주B-001]제가(齊家) : 가정을 바로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지방 수령으로서 주의해야 할 가정에 관계된 제반 문제를 서술한 것이다.
[주D-001]공분(孔奮) :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 때 사람으로 자는 백어(伯魚)이다. 고장장(姑臧長)을 거쳐 무도 태수(武都太守)에 이르렀는데, 청렴하고 공평하였다. 《後漢書 卷31 孔奮列傳》


[주D-002]조어(趙峿) : 조선 문신. 세종 때 사람으로 벼슬은 합천 군수(陜川郡守)ㆍ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을 지냈다.
[주D-003]유찬(劉贊) : 후당(後唐) 사람으로 벼슬은 어사중승(御史中丞)ㆍ형부시랑(刑部侍郞)을 지냈다. 《舊五代史 卷68》 《唐書 卷44 劉贊列傳》 《新五代史 卷28 唐臣傳 劉贊》


[주D-004]호수안(胡壽安) : 명(明)나라 성조(成祖) 때 사람으로 신번지현(新繁知縣)으로 있을 때 몸소 채소를 심어 먹었다. 그래서 채지현(菜知縣)이라 불렀다.
[주D-005]영락(永樂) : 명 성조(明成祖)의 연호이다. 1403~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