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까지 솔레르 신부로부터 시작하여 알베니스를 거쳐 그라나도스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이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는데 파야에 관한 글은 이 주제에 의한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이 작곡가들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소지도 있으나 스페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음악에 있어서 민족적 자각이 늦게 발현되었고, 그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와 같이 잦은 외세의 침략과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다.
파야는 스페인 작곡가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을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요소가 과거로 묻힐 유물이 아니라 지극히 현대적인 미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아름다운 작품을 통하여 직접 실천해 보임으로써 스페인 음악이 나아가야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파야가 알베니스와 그라나도스가 가진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파야를 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의 완성자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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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나먼 민족음악의 길
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은 바로크 시대 말기 솔레르(A. Soler 1729~1783) 신부로부터 시작하여 펠리페 페드렐(F. Pedrell 1841~1922)이라는 몽상가에 의해 꿈꾸어지다가 이삭 알베니스(I. Albeniz 1860~1909)와 엔리케 그라나도스(E. Granados 1867~1916)라는 작곡가에게로 이어져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4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고 그들의 작품이 피아노라는 악기에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음악이 스페인적인 색채로 채색되어 있다고는 하나 스페인 전통음악에 대한 인식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즉, 알베니스의 작품은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옷을 입고 스페인적인 정서를 표현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재능과 감각에 의존하고 있을 뿐 스페인 음악의 역사적 전통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라나도스의 경우에도 이 같은 한계를 보이고 있는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또나디야곡집 Tonadillas》과 같은 작품에서 스페인의 음악적 전통에 대한 무관심이 발견된다. 막간극에서 출발한 '또나디야 Tonadilla'라는 장르는 기지와 유머가 가득 담긴 것이지만 그라나도스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기지와 유머는 고사하고 처연하고 애상적인 감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곡들이 아름다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냥 '가곡집'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고 《또나디야곡집》이라는 제목을 붙인 대목에선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껴지는 건 필자가 음악을 너무 관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시 말하자면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적 감성과 창작의 욕구에 의해 작품을 썼을 따름인데 관념적인 시각으로 작곡가를 재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필자가 이렇듯 스페인의 민족주의 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건 기실 필자의 관심이 우리나라의 민족음악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라는 것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에 있어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19세기에 시작된 낭만파 시대의 음악에서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한다. 낭만파 음악은 바로 시민사회의 형성을 모태로 하여 태어났지만 이 시기의 스페인은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한 채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음악은 20세기 들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양 음악적인 시각에 의해 교육이 행해졌고 우리나라의 음악적 환경은 필자를 비롯한 우리 세대들에게 우리의 전통 음악에 대한 미감을 심어주지 못하였다. 국악이 우리의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서양 음악적인 환경 속에서 자란 우리 세대들에게 서양음악은 남의 것이고 국악은 우리의 것이라는 게 설득력을 지닐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세대들은 서양음악의 음계와 화음에 바탕을 둔 유행가를 들으며 자라왔고, 국악을 듣기보다는 서양의 고전음악을 더 가까이 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음악보다는 서양음악이 더 친숙한 것이 사실이다.
내 자신을 비롯한 우리들이 TV에서 우리의 전통음악이 방영되면 채널을 딴 데로 돌려버리는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채널을 딴 데로 돌려버리는 것은 우리의 전통음악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음악에 대한 미감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하여 음악의 큰 틀이 마음 속에서 자리잡았을 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우리 세대들에게 이러한 음악적인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많은 작곡가들은 지금도 민족음악의 실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필자는 작고하신 나운영 선생으로부터 우리나라 민족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많은 감화를 받았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 외로운 길을 걸어오신 선생의 족 적에서 필자는 성자와도 같은 숭고함을 느꼈었다. 스페인은 유난히 외세에 의한 침탈을 많이 당했고 20세기 들어서는 우리와 같은 사상적 대립과 동족상잔의 아픔도 겪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시작된 스페인의 민족주의 음악이 전개되는 과정과 스페인의 작곡가 파야의 민족주의 음악을 향한 성자와도 같은 발자취를 조명해보면서 아직도 머나먼 우리나라의 민족 음악을 향한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 파야의 삶과 작품세계
파야는 1876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항구도시 까디스(Cadiz)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발렌시아 출신의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까딸루냐 출신으로 피아노에 능숙해서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연주의 기초를 배웠으며, 9세에는 교 회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이든의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피아노 연탄용으로 편곡한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파야는 마드리드 음악원으로 들어가 명교수 호세 트라고(J. Trago 1856~1934) 교수 아래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작곡과 교수로 있었던 펠리페 페드렐(F. Pedrell 1841~1922)에게서는 스페인 민족음악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감화를 받는다.
1905년 마드리드 음악원이 주최한 오페라 공모에 《허무한 인생 La Vida Breve》을 출품하여 우승을 했으며, 다음 날에 있 었던 피아노 연주부문에서도 우승을 하여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이 작품은 원래 단막의 오페라였으나 후에 2막으로 개작을 하였으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스페인 무곡 Danzas Espanolas》을 비롯하여 1막의 아리아 《행복은 웃는 자의 것 Vivan los que rien》, 2막의 아리아 《거기서 그는 웃고 있건만 Alli esta! Riyendo》와 같은 매력적인 곡을 담고 있다.
《스페인 무곡》은 기타와 피아노로 편곡되어 널리 연주되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고, 2막의 아리아 《거기서 그는 웃고 있건만》은 살루드(Salud 여주인공)가 사랑하는 빠꼬(Paco 남주인공)의 결혼 소식에 절망하며 부르는 아리아인데 주체할 수 없는 격한 감정의 폭발과 히스테릭한 감정까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이토록 잘 표현한 음악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말러(G. Mahler 1860~1911)의 초기 작품인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중에 나오는 《그녀의 결혼식 날 Wenn mein Schatz Hochzeit macht》이란 곡도 사랑하는 사람의 결혼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비교해서 들어 보면 독일적인 감성과 스페인적인 감성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말러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멀찌감치 서서 관조적인 태도로 쓸쓸하고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어 파야와 좋은 대조를 보인다. 이는 아마도 민족성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파야는 1907년 7일 간의 여정으로 파리에 다녀올 예정으로 스페인을 떠났는데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낸다. 이 일은 바흐가 북스테후데의 오르간 연주를 듣기 위해 1개월의 휴가를 얻어 거의 400Km를 걸어서 갔다가 4개월이나 지난 뒤에야 돌아왔다는 이야기처럼 새로운 음악세계를 향한 파야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뒤카, 알베니스, 드뷔시, 포레, 라벨, 스트라빈스키 등과 교유하는데 이 시기는 좁은 스페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세계 음악계의 조류를 경험하고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했던 중요한 시기이다.
1909년에 작곡한 《7개의 스페인 민요 7 Canciones populares Espanolas》를 들어보면 빠리의 음악가들과 교유하면서 파야가 느꼈을 스페인 음악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곡인 《폴로 Polo》에서는 스페인의 전통음악인 깐떼 혼도(Cante Jondo '깊은 노래'라는 의미로 플라멩꼬 음악의 한 장르)와 무조적인 기법이 결합하여 기막힌 현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1914년 1차대전의 발발로 파야는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빠리에서 익힌 세계음악계의 흐름과 조국 스페인의 음악적 전통이 결합하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1915년에 발표한 발레음악 《사랑은 마술사 El Amor Brujo》이다. 이 작품에서 비로소 파야의 개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데 선배 작곡가인 알베니스나 그라나도스가 관심을 쏟지 않았던 스페인의 전통적인 음악인 깐떼 혼도와 무속(巫俗)적인 요소를 음악 속에 용해하여 스페인만의 독특한 미적 세계를 창조하였다.
《괴로운 사랑의 노래 Cancion del Amor Dolido》, 《불의 춤 Danza rituel del fuego》, 《도깨비불의 노래 Cancion del Fuego fauto》와 같은 음악은 스페인적인 세계가 아니고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괴로운 사랑의 노래》는 깐떼 혼도의 새로운 변용이고, 《불의 춤》에 나타나는 집시들의 무속(巫俗)적인 세계는 유럽국가들에게는 사라지고 없는 스페인만의 독특한 세계이다. 파야는 유럽국가들이 스페인의 후진성을 이야기할 때 단골 메뉴로 이야기하던 바로 그 소재를 가지고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킨 것이다.
(인상주의 음악의 전도사였던 스페인 출신의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녜스. 그는 알베니스, 드뷔시, 라벨 등의 피아노 작품을 초연하였다. 라벨은 그에게 많은 작품을 헌정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발표한 《스페인 정원의 밤 Noches en los jardines de Espana》은 파리 시절부터 구상하던 것으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독주 피아노가 나오지만 협주곡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파야는 이를 '관현악과 피아노를 위한 교향적 인상'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3개의 악장은 각기 독특한 매력을 담고 있는데 드뷔시의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적 색채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정서가 결합된 걸작이다.
1악장 '헤네랄리페(En el Generalife)'는 알함브라 궁전에 부속된 아름다운 정원을 말한다. 이 정원은 무어인들이 알함브라 궁전을 건설할 때 시에라 네바다 산맥으로부터 물을 끌어와 멋진 분수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정원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무척 회화적인 곡이지만 이 정원에서 펼쳐진 무어인들의 아픈 역사까지 느껴지는 건 필자의 상상력이 너무 과한 탓일까?
2악장 '먼 곳의 무도(Danza lejana)'에서는 스페인 출신답게 멋진 춤이 펼치고 있다. 2악장에 이어 쉬지 않고 3악장 '꼬르도바 산의 정원에서(En los jardines de la Sierra de Cordoba)'이 이어진다. 이 곡은 파리 유학시절부터 친교를 맺어 온 스페인 출신의 대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녜스(R. Vines 1875~1943)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그에게 헌정되었다.
1919년에 파야는 《삼각모자 El sombrero de tres picos》라는 발레곡을 발표하는데 이 곡은 디아길레프(S. Diaghilev 1872~1929)가 파리에서 결성한 러시아 발레단(Ballets Russes)의 위촉으로 작곡된 것으로 클래식 발레를 스페인의 플라멩꼬와의 접목을 시도한 작품이다. 당시의 러시아 발레단은 스트라빈스키(I. Stravinsky 1882~1971) 의 《봄의 제전 Le Sacre du Printemps》과 《불새 L'oiseau de feu》, 드뷔시(C. Debussy 1862~1918)의 《목신의 오후 L'Aprs-midi d'un faune》와 같은 발레를 공연하였는데 니진스키(V. Nijinsky 1890~1950)와 같은 대스타로 인해 인기 절정에 있었다. 이 작품은 원래 《시장과 방앗간집 마누라 El Corregidor y la Morinera》라는 무언극을 개작한 것이다. 이 곡을 들어보면 판당고, 세기디야, 파루까, 호따와 같은 스페인의 토속적인 춤이 극적인 클라이막스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동 끼호테의 인형 설계 - "페드로 두목의 인형극" 중에서)
1923년에는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 El Retablo de Maese Pedro》를 작곡하여 파리에서 초연하였는데 스페인의 전통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파야와 평소에 친분이 두터웠던 피아니스트 리까르도 비녜스, 기타리스트 에밀리오 뿌홀, 쳄발리스트 반다 란도프스카, 지휘자 블라디미르 골쉬만 등이 초연의 연주나 배역에 직접 참여하였다.
(Wanda Landowska의 연주 모습. 세고비아는 쳄발로 소리를 "기타가 감기 걸린 소리"라고 란도프스카 여사에게 농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1926년 파야는 폴란드 출신의 쳄발리스트 반다 란도프스카(Wanda Landowska 1879~1959) 여사를 위하여 《쳄발로 협주곡
Concerto for Harpsichord》을 완성하였다. 란도프스카 여사는 쳄발로라는 악기를 현대에 부활시킨 사람으로서 중후한 리듬과 액센트, 다이내믹한 연주로 20세기 전반기를 주름잡던 여걸이었고 고음악에 대한 여러 저술도 남기고 있다. 그녀가 쳄발로로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명연 중의 명연으로 꼽힌다.
《쳄발로 협주곡》은 신고전주의적인 기법에 의한 작품으로 1악장은 15세기 스페인의 마드리갈(Madrigal)에서 따온 선율에 바탕을 두고 있고, 2악장은 종교적인 내용이고, 3악장은 18세기에 유행했던 스페인의 춤곡에 바탕을 두고 있다. 《쳄발로 협주곡》은 협주곡이라고는 하지만 쳄발로라는 악기가 음량이 작으므로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아니라 5개의 악기가 반주를 하는 실내악적인 편성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란도프스카 여사에게 헌정되었다.
1930년대로 들어서자 스페인은 정치적인 격변에 휘말리게된다. 공화국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과 우익 보수세력을 지지하는 파시즘 세력간에 내전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은 2차대전의 전초전의 성격을 띠는데 공화국 정부를 지지하는 공산세력과 국제여단, 프랑코 장군의 파시스트를 지지하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 아래 스페인은 양분되었다. 이 와중에서 파야와 절친했던 스페인의 민족시인이자 극작가인 가르시아 로르까(F. G. Lorca 1898~1936)가 야만의 총칼 아래 희생되고 말았다. 정치적인 활동과 무관했던 로르까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워 총살해버린 것이었다.
1938년 프랑코 장군의 명에 따라 파야는 '스페인 음악연구소장'으로 임명되었으나 내키지 않아 자택에서 임명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양해를 받았다. 프랑코 총통이 통치하는 스페인에서 더 이상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음을 직감한 파야는 1939년 연주회 를 핑계로 아르헨티나로 망명길에 올랐다.
1946년 세상을 뜨기까지 칸타타 《아틀란티다 Atlantida》의 작곡에 매달렸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아틀란티다》는 까딸루나의 시인 베르다게르(Verdaguer 1845~1902)의 서사시를 텍스트로 한 작품인데 파야의 필생의 역작이다. 이 작품은 파야의 제자인 에르네스또 알프테르(E. Halffter 1905~1989)에 의해서 완성을 보게된다.
파야의 선배 작곡가인 알베니스와 그라나도스는 작품이 피아노라는 악기에 한정되어 있어 음악의 세계가 다양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 선배 작곡가들의 작품이 스페인적인 색채로 채색되어 있다고는 하나 스페인의 음악적 전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저 솟아나는 음악적 욕구에 의해 나이팅게일처럼 울어댔던 것이다.
그러나 파야는 다양한 장르에 작품을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하나 하나가 모두 대표성을 가지는 작품이다. 파야는 무척 강직하고 경건한 삶을 산 사람이었으며 하나의 기법이나 경향에 의해 여러 작품을 작곡하는 일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 하나 하나는 모두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하므로 감상자의 입장에서 무척 접근이 어려운 작곡가 중의 하나이다. 그가 작곡한 작품의 양은 그가 활동한 시기에 비해 많지 않으며 작품이 어느 한 시기에 치우쳐 있지 않고 고른 분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파야가 하나의 작품을 구상할 때 매우 신중을 기했음을 대변해준다.
파야가 선배 작곡가인 알베니스와 그라나도스의 음악세계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알베니스와 그라나도스는 프랑스와 가까운 까딸루냐 지방 출신인데 이 지방은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하며 '천박한 남부의 플라멩꼬 음악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음악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는 지방으로 인근의 프랑스 남부와 문화적으로 근친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음악이 스페인적인 색채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서유럽(영국, 독일, 프랑스)의 음악을 은연중에 닮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비해 파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출신으로 이 지역은 아랍의 지배가 15세기 말까지 행해졌으며,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와도 가까울뿐 더러 집시들의 플라멩꼬 음악이 생겨난 지역으로 미신이나 무속적인 전통도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여기서 자라난 파야가 자신의 음악 속에 이러한 요소들을 용해시킨 것은 극히 자연스런 귀결이었을 것이다.
파야는 전통적인 것에서 소재를 이끌어 내어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을 계속했지만 당시 유럽을 휩쓴 쇤베르크(A. Schonberg 1874~1951)의 음열주의(Serialism)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드뷔시를 주축으로 한 인상주의(Impressionism)와 스트라빈스키에 의해 주도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라는 도구를 가지고 알베니스나 그라나도스와 같은 선배 작곡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전통적인 것이 현대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 파야를 연주한 음반
파야는 인기 있는 작곡가이니 만큼 음반도 부지기수로 많다. 이 많은 음반들에서 옥석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Dallas 오페라단의 "La Vida Breve" 공연모습. Maria Benitez 안무)
오페라 《허무한 인생》의 전곡을 연주한 음반이 많지 않아 필자가 보유한 2종의 음반만 들어보았다. 파야의 제자인 에르네스토 알프테르(HMV)가 지휘한 음반과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Angel)가 지휘한 음반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우열을 가리기 힘든 연주다. 다만 알프테르의 음반은 모노 녹음이라 아무래도 음질에서 떨어진다는 면에서 스테레오 음반인 부르고스의 연주를 권하고 싶다.
살루드(Salud) 역은 둘 다 로스 앙헬레스가 맡고 있는데 알프테르 지휘에서 더 싱싱한 가창을 보여주고 있지만 부르고스 지휘에서는 원숙미가 느껴진다. 2막의 아리아 《거기서 그는 웃고 있건만》는 부르고스의 음반이 더 낫다.
전곡 연주가 아닌 아리아만을 수록하고 있는 음반도 있는데 로빈슨의 지휘와 로스 앙헬레스의 콤비에 의한 음반(EMI CDH 7 64028 2)은 최고의 명연을 들여주고 있다. 1948년도 녹음이라 다소 낡았지만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협연도 최고이다. 《행복은 웃는 자의 것》과 《거기서 그는 웃고 있건만》은 로스 앙헬레스의 연주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고 싶다.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카르멘으로 인기를 누렸던 콘치타 수페르비아)
《7개의 스페인 민요》도 많은 음반이 있다. 콘치타 수페르비아(C. Supervia 1895~1936)의 노래(Odeon)는 지나간 세대의
창법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하지만 다소 심한 듯한 비브라토가 약간 귀에 거슬린다. 테레사 베르간사의 노래(BIS)는 힘있고 어두운 음색이 곡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데 표정이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
로스 앙헬레스는 스페인 정서에 맞는 모범적인 노래(Angel)를 들려주고 있는데 육감적인 집시 여인의 체취까지 느껴지는 훌륭한 연주이다. 기타 반주로 편곡한 음반도 있는데 예페스(N. Yepes)의 기타반주 아래 테레사 베르간사는 피아노에서보다 더 멋진 연주를 들여주고 있다. 피아노 반주보다도 기타 반주가 어울리는 건 기타가 스페인의 민속악기이고 이 곡들이 기타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야의 대표적인 작품인 《사랑은 마술사》도 스토코프스키(Columbia), 장 마르티농(Columbia), 줄리니(Angel), 로젠탈(Westminster), 앙세르메(Decca) 등이 지휘한 음반이 있는데 줄리니의 음반을 추천한다. 오케스트라는 앙세르메가 좋으나 독창자의 가창이 로스 앙헬레스에 비해 스페인적인 감성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어 다소 아쉽다.
줄리니와의 콤비에 의한 로스 앙헬레스가 부른 《괴로운 사랑의 노래》은 정말 일품이다. 이 노래는 스페인의 전통적인 깐떼 혼도 스타일의 노래인데 스페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으므로 스페인 사람이 아닌 경우는 제대로 표현이 어렵다. 《도깨비불의 노래》, 《사랑놀이의 춤》도 절창인데 집시여인의 관능적인 분위기까지 잘 포착하고 있다.
《스페인 정원의 밤》도 아르헤리히(Erato), 하스킬(Philips), 소리아노(EMI), 라로차(Decca), 카자드쉬(Columbia)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들 비중 있는 피아니스트들이지만 라로차 여사와 코미시오나 콤비에 의한 연주와 소리아노와 부르고스의 콤비에 의한 연주를 추천한다. 어느 것 하나 기울지 않는 팽팽한 연주다.
특히 코미시오나의 지휘는 밤의 풍경을 기막히게 묘사하고 있다.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옛부터 색채감 있는 이러한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낸 만큼 물 만난 고기처럼 지휘자를 잘 따르고 있다. 독주자인 라로차 여사의 연주도 발군이다. 소리아노와 부르고스의 콤비도 훌륭하다. 이들은 둘 다 스페인 음악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들이라 여유가 느껴지는데 대략 25분이 걸리는 연주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음악에 빠져들게 만든다.
《삼각모자》도 부르고스(EMI), 앙세르메(Decca), 찰스 메케라스(Vanguard), 로진스키(Angel), 헤수스 아람바리(Columbia), 엔리케 호르다(Hallmark), 불레즈(Columbia), 줄리니(EMI), 헤수스 코보스(Claves) 등이 지휘한 음반이 있다. 이 중 부르고스와 앙세르메를 추천한다. 부르고스는 원래 독일인이었지만 스페인이 좋아 귀화한 만큼 스페인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앙세르메는 오케스트라로 그림을 그린다는 지휘자니 만큼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독창자로 나오는 수잔 당코의 귀여운 노래도 좋다. 이 작품은 유난히 스페인의 여러 가지 춤곡이 많이 나오는데 '방앗간집 마누라의 춤'은 판당고 (Fandango)라는 춤곡을 토대로 한 것이고, '이웃사람들의 춤'은 세기디야(Seguidilla)라는 춤곡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곡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방앗간 주인의 춤'은 파루카(Farucca)라는 아주 격렬한 춤으로 기타곡으로 편곡하여 자주 연주되고 있다. 헤수스 코보스가 지휘한 음반(Claves)은 이 곡의 원곡인 《시장과 방앗간집 마누라》을 연주하고 있는데 이 두 곡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작곡가의 개작과정을 짐작해볼 수 있어 무척 재미있다.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 《쳄발로 협주곡》, 《아틀란티다》는 음반이 많지 않고 아직 CD로 나온 음반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파야의 작품 중 연주기회도 많지 않고 그리 인기 있는 곡들이 아니라서 CD녹음은 한참을 기다려야할 것 같다.
(페드로 두목의 인형극 중 한 장면)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은 아르헨타(London)와 에르네스토 알프테르(Ducretet Tomson)가 지휘한 음반이 있는데 아르헨타의 녹음을 추천한다.
《쳄발로 협주곡》역시 2종의 음반이 있다. 아르헨타(London)와 불레즈(Columbia)가 지휘한 음반이 있는데 아르헨타의 음반은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과 같이 커플링이 되어 1장의 음반으로 둘 다를 들어볼 수 있어 좋다. 다만 LP녹음이라 음반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흠이다.
파야의 미완의 대작인 칸타타 《아틀란티다》는 그의 제자 에르네스또 알프테르(E. Halffter)가 완성하였는데 EMI에서 1978년 LP로 녹음하였다.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의 애정 어린 지휘가 담긴 음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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