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술 바디 <적벽가> 사설입니다
1. 도원결의
[아니리]
한(漢)나라 말엽 위한오(魏漢吳) 삼국시절에 황후유약(皇后幼弱) 하고 군도병기(群盜竝起)한디, 간흉(奸凶)허다 조맹덕(曺孟德)은 천자를 가칭(假稱)하야 천하를 엿보았고, 범람(汎濫)타 손중모(孫仲謀)는 강하(江夏)의 험고(險固)믿고 제업(帝業)을 명심(銘心)하여 창의(倡義)할 사, 유현덕(劉玄德)은 종사(宗社)를 돌아보아 혈성(血誠)으로 구치(驅馳)하니, 충간(忠奸)이 공립(共立)허고 정족(鼎足)이 삼분할 새, 모사는 운집(雲集)이요 명장은 봉기(蜂起)로다. 북위모사(北魏謀士) 정욱(程昱) 순유(筍攸) 순문약(筍文若)이며 동오모사(東吳謀士) 노숙(魯肅) 장소(張紹) 제갈근(諸葛瑾)과 경천위지(經天緯地) 무궁조화(無窮造化) 잘긴들 아니하리. 그때여 한나라 유현덕은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더불어서 도원(桃園)에서 의형제 결의(結義)를 하는디
[중모리]
도원이 어데인고, 한나라 탁현(??縣)이라. 누상촌(樓桑村) 봄이 들어 붉은 안개 피어나고, 반도화(蟠桃花) 흐르는 물 아침노을에 물들었다. 제단(祭壇)을 살펴보니, 금(禁)줄을 둘러치고 오우백마(烏牛白馬)로 제(祭) 지내며, 세 사람이 손을 잡고 의맹(義盟)을 정하는데, 유현덕으로 장형(長兄) 삼고, 관운장(關雲長)은 중형(仲兄)이요, 장익덕(張翼德) 아우 되어, 몸은 비록 삼인이나 마음과 한가지라. 유?관?장 의형제는 같은 연월(年月) 한 날 한 시에 죽기로써 맹약(盟約)을 하고, 피 끓는 구국충심(救國忠心) 도원결의(桃園結義) 이루었구나. 한말(漢末)이 불운(不運)하여 풍진(風塵)이 뒤끓는다. 황건적(黃巾賊)을 평란(平亂)하니 동탁(董卓)이 일어나고, 동탁 난을 평정(平定)하니 이곽(李郭)이 난을 짓고, 이곽을 평정한 후 난세간웅(亂世奸雄) 조아만(曹阿瞞)은 협천자이횡포(挾天子而橫暴)하고, 벽안자염(碧眼紫髥) 손중모(孫仲謀)는 강동(江東)에 웅거(雄據)하여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자랑한다.
2. 삼고초려
[아니리]
그 때에 유ㆍ관ㆍ장(劉?關?張)은 삼인이 결심하여 한실(漢室)을 회복코저 적군과 분투(奮鬪)하나, 장중(帳中)에 모사(謀士) 없어 주야로 한(恨)할 적에, 뜻밖에 서서(徐庶)가 떠나며 공명을 천거(薦擧)하되, “전무후무(前無後無) 제갈공명 와룡강(臥龍岡)의 복룡(伏龍)이요, 초당(草堂)에 깊이 묻혀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구궁팔괘(九宮八卦), 둔갑장신(遁甲藏身)을 흉중(胸中)에 품었으니 긍만고지인재이요(?萬古之人材), 초인간(超人間)의 철인(哲人)이라.” 이렇듯 말을 하니, 유현덕 반기 여겨 관?장과 와룡강을 찾아갈 제,
[진양조]
당당(堂堂)한 유현주(劉賢主)는 신장은 팔척(八尺)이요, 얼굴은 관옥(冠玉) 같고, 자고기이(自顧其耳)하며 수수과슬(垂手過膝) 영웅이라. 적로마상(?盧馬上)에 앞서시고, 그 뒤에 또 한 장군의 위인(爲人)을 보니, 신장은 구척이나 되고, 봉(鳳)의 눈, 삼각수(三角鬚), 청룡도(靑龍刀) 비껴들고 적토마상(赤兎馬上)에 두렷이 앉은 거동 운장 위세(威勢)가 분명하고, 그 뒤에 또 한 사람을 보니, 신장은 칠척(八尺) 오촌이요, 얼굴이 검고, 제비턱, 쌍고리눈에 사모장창(蛇矛長槍)을 눈 위에 번뜻 들고, 세모마상(細毛馬上)에 당당히 높이 앉아 산악을 와그르르르르르르 무너낼 듯, 세상을 모두 안하(眼下)에 내려다보니 익덕(翼德)일시가 분명쿠나. 이 때는 건안(建安) 팔년 중춘(仲春)이라. 와룡강을 당도하니 경개(景槪) 무궁 기이(奇異)하구나. 산불고이수려(山不高而秀麗)하고, 수불심이증청(水不深而澄淸)이요, 지불광이평탄(地不廣而平坦)하고, 임불대이무성(林不大而茂盛)이라. 원학(猿鶴)은 상친(相親)하고, 송죽(松竹)은 교취(交翠)로다. 석벽부용(石壁芙蓉)은 구름 속에 잠겨 있고, 청송(靑松)은 천고절(千古節) 푸른 빛을 띠었어라. 시문(柴門)에 다다라 문을 두드리며,
3. 삼고초려 2
[아니리]
“동자야, 선생님 계옵시냐?” 동자 여짜오되, “선생께옵서 박릉(博陵)의 최주평(崔州平)과, 영주(潁州)의 석광원(石廣元), 여남(汝南)의 맹공위(孟公威)며 매일 서로 벗이 되야 강호(江湖)에 배 띄워 선유(船遊)타가, 임간(林間)에 바돌 두러 나가신 지 오래이다.” 현덕이 이른 말이, “그럼 선생님이 오시거든 한종실(漢宗室) 유황숙(劉皇叔)이가 뵈러 왔더라고 잊지 말고 여쭈어라.” 동자다려 부탁하고 신야(新野)로 돌아와 일삭(一朔)이 넘은 후에, 두 번 다시 찾아가서도 못 뵈옵고 한운이 여류하여 수삼삭(數三朔) 지난 후에, 현훈옥백(玄?玉帛)으로 예물(禮物)을 갖추고 관?장과 삼고초려(三顧草廬) 찾아갈 제,
[중모리]
남양융중(南陽隆中) 당도하여 시문(柴門)을 두드리니 동자 나오거늘, “선생님 계옵시냐?” 동자 여짜오되, “초당(草堂)에 춘수(春睡) 깊어 계시나니다.” 현덕이 반기 여겨 관공?장비를 문 밖에 세워두고 완완(緩緩)히 들어가니, 소슬(蕭瑟)한 송죽성(松竹聲)과 청량(淸亮)한 풍경(風磬) 소리 초당(草堂)이 한적쿠나. 계하(階下)에 대시(待時)하고 기다려 서 있으되, 공명은 한와(閑臥)하여 아무 동정(動靜)이 없는지라.
[중중모리]
익덕이 성질을 급히 내어, 고리눈 부릅뜨고 검은 팔 뒤걷으며 고성대갈 왈(高聲大喝曰), “아! 우리 가가(哥哥)는 한주(漢主) 금지옥엽(金枝玉葉)이라. 저만한 사람을 보랴하고 수차(數次) 수고를 하였거든, 요망(妖妄)을 피우고 누워 일어나지를 아니하니, 부러 거만(倨慢)하여이다. 소제(小弟)가 초당을 들어가, 초당에 불을 버썩 지르면, 공명이 재주가 있다하니, 자나, 깨나, 죽나, 사나, 동정을 보아, 제 만일 죽기 싫으면 응당 나올 테니, 노끈으로 결박(結縛)하여 신야(新野)로 돌아가사이다.” 검불을 단박 쓸어 쥐고, 끄르럼에 불을 들고 초당 앞으로 우루루루루루 달려드니, 현덕이 깜짝 놀래 익덕의 손을 잡고, “현제(賢弟)야, 현제야, 이런 법이 없느니라. 은왕성탕(殷王成湯)도 이윤(伊尹)을 삼빙(三聘)하고, 문왕(文王)도 여상(呂尙)을 보랴하고 위수(渭水)에 왕래하니, 삼고초려가 무엇이랴.” 좋은 말로 경계(警戒) 후에, “운장은 익덕 데리고 문 밖에 멀리 서 동정(動靜)을 기다려라.”
4. 공명의 유비 영접
[아니리]
공명이 그제야 잠에 깨어 풍월지어 읊으는디 "초당에 춘수족(春睡足)하니 창외(窓外) 일지지(日遲遲)라. 대몽(大夢)을 수선교(誰先覺)요, 평생을 아자지(我自知)라." 동자 들어와 여짜오되 "전일 두 번 찾어 왔던 유황숙이 밖에서 기다린 지가 거웃 반일이 되었나이다."
[중모리]
공명이 그제야 놀랜 체 하고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한다. 머리에는 팔각(八角) 윤건(綸巾), 몸에는 학창의(鶴?衣)로다. 백우선(白羽扇) 손에 들고 당하에 내려와 현덕을 인도하여 예필좌정(禮畢坐定) 후(後)에, 공명이 눈을 들어 현덕의 기상을 보니, 수수(粹秀)한 영웅이요, 창업지주(創業之主)가 분명하고, 현덕도 눈을 들어 공명의 기상(氣像)을 보니, 신장은 팔 척이요, 얼굴은 관옥(冠玉) 같고, 미재강산정기(眉在江山精氣)하여 단념청기(丹念淸氣)하고, 밝은 기운이 미간(眉間)에 일어나니 만고영웅(萬古英雄) 기상이라. 현덕이 속으로 칭찬하며 공손히 앉아서 말을 한다.
5. 유비 간청
[아니리]
“선생님을 뵈옵고저 세 번 찾아온 뜻은 다름이 아니오라, 한실(漢室)이 경복(傾覆)하고, 간신이 농권(弄權)하와, 종묘사직(宗廟社稷)이 망재조석(亡在朝夕)이라. 이 몸이 제주(濟主)로서 갈충보국(竭忠報國) 하려 하되, 병미장과(兵微將寡)하고 재주 단천(短淺)하와 흥복(興復)치 못하오니, 사직(社稷)이 처량하고 불쌍한 게 창생(蒼生)이라. 원컨대 선생께옵서는 유비와 백성을 아끼시어 출산상조(出山上朝)하사이다.” 공명이 대답하되, “신(臣)은 본래 지식이 천박(淺薄)하여, 포의야부(布衣野夫)로 남양 땅에서 춘풍세우(春風細雨) 밭이나 갈고, 풍월(風月)이나 지어 읊을지언정, 국가 대사를 내 어찌 아오리까? 낭설(浪說)을 들으시고 존가(尊駕) 허행(虛行)하였나이다.” 굳이 사양 마다하니, 현덕이 하릴없어,
[진양조]
서안(書案)을 탕탕 두드리며, “여보 선생, 듣조시오. 천하대세(天下大勢)가 날로 기울어져서 조적(曹賊)이 협천자이령제후(挾天子而令諸侯)를 하니, 사백 년 한실(漢室) 운이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있삽거든, 선생은 청렴(淸廉)한 본을 받어 세상 공명(功名)을 부운(浮雲)으로 생각하니, 억조창생(億兆蒼生)을 뉘 건지리까?” 말을 마치고,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방울방울 떨어지고, 가슴을 두드려 복통단장(腹痛斷腸) 울음을 우니, 용의 음성이 와룡강(臥龍岡)을 진동한 듯, 뉘라 아니 감동하리.
6. 조조군사 대적
[아니리]
두 눈에 눈물이 떨어져 양 소매를 적시거늘, 공명이 감동하여 가기로 허락한 후에, 벽상(壁上)을 가리키며, “이건 형주(荊州) 지도요, 저건 서천(西川) 사십일주(四十一州)라.” 현덕이 형주 지도를 얻고, 서천 사십일주를 얻어 기업(基業)을 삼은 후, 관우 장비를 불러 공명과 상면(相面)시키고, 예단(禮緞)을 올려, 그날 밤 사인이 초당에서 유숙(留宿)하고 이튿날 길을 떠날 적에, 공명이 아우 균을 불러, “내 유황숙에게 삼고지은혜(三顧之恩惠)를 갚으려고 세상에 출세(出世)하니, 너는 송학(松鶴)을 잘 가꾸고 학업을 잃지 말라.” 신신(申申) 부탁하고, 사륜거(四輪車)에 높이 앉아,
[중모리]
와룡강을 하직하고 신야(新野)로 돌아오니, 병불만천(兵不滿千)이요, 장불십여인(將不十餘人)이라. 공명이 민병(民兵)을 초모(招募)하여 스스로 팔진법(八陣法) 가르칠 제, 방포일성(放砲一聲)하고 금고(金鼓)를 쿵쿵 울려 조적(曹賊)과 대결할 제, 박망(博望)의 소둔(燒屯), 백하(白河) 엄몰(淹沒)하고, 장담하던 하후돈(夏侯惇)과 승기(勝氣)내던 조인(曹仁) 등 기창도주(棄槍逃走) 패한 분심(憤心), 수륙대병(水陸大兵)을 조발(調發)하여 남으로 짓쳐 내려갈 제, 원망(怨望)이 창천(漲天)이요, 민심(民心)이 소요(騷擾)로구나. 현덕이 하릴없어 강하(江夏)로 물러나니, 신야, 번성(樊城), 양양(襄陽) 백성들이 현덕의 뒤를 따르거늘, 따라오는 저 백성을 차마 버릴 길이 바이 없어, 조운(趙雲)으로 가솔(家率)을 부탁하고, 익덕(翼德)으로 백성을 이끌어 일행십리(日行十里) 행할 적에, 그 때 마침 황혼이라 광풍(狂風)이 우루루루루루루루, 현덕 면전(面前)에 수자기(帥字旗) 부러져 펄펄 날리거늘, 경산(景山)에 올라 바라보니 조조의 수륙대병(水陸大兵)이 물밀듯이 쫓아온다. 기치창검(旗幟槍劍)은 팔공산(八公山) 나뭇잎 같고, 제장(諸將)이 앞으로 공을 다툴 적에, 문빙(文聘)이 말을 채쳐 달려드니, 익덕이 분기충천(憤氣衝天), 불같이 급한 성품 창을 들어 문빙을 물리치고, 현덕을 보호하여 장판교(長坂橋)를 지내갈 제, 수십 만 백성 울음소리 산곡중(山谷中)에 가득하고, 제장(諸將)은 사생(死生)을 모르고 앙천통곡(仰天痛哭)하며, 진(陣)을 헤쳐 도망을 간다.
7. 조자룡 양 부인 구출
[아니리]
한 모롱이 돌아드니, 현덕의 일행이 언덕 아래 쉬어 앉아 제장 모이기를 기다릴 적에,
[중중모리]
그 때에 조운(趙雲)은 공자(公子) 선(禪)과 양부인(兩婦人)을 잃고, 일편단심(一片丹心) 먹은 마음 분함이 추상(秋霜)이라. 위진(魏陣)을 바라보니, 번창휘마(繁槍揮馬) 가는 거동(擧動), 만리창천(萬里蒼天) 구름 속의 편진(翩進)하는 용의 모양, 구십춘광(九十春光) 새벽 밤에 빠르기는 유성 같고, 단산(丹山) 맹호 기상이라. 풍우(風雨)같이 지내다가 한 곳을 바라보니, 헤어진 남녀노소 서로 잡고 울음을 우니, 조운이 크게 웨쳐, “여봐라, 남녀 백성들아! 너희 총중(叢中) 가는 중에 감부인(甘夫人)을 보았느냐?” 그 때에 감부인은 오는 장수를 바라보며, 나삼(羅杉)을 무릅쓰고 일장통곡(一場痛哭)할 제, 조조의 제장 순우(淳于)가 미축(?竺)을 생금(生擒)하여 제 진으로 돌아갈 제, 조운이 얼른 보고 일성포향(一聲砲響)에 수년도를 선뜻 들어 탈마위진(奪馬魏陣)하여 감부인을 호송(護送)하고, 또 한 곳 바라보니 양양(襄陽)으로 가는 백성 막지소향(莫知所向) 길을 잃어 갈 바를 방황(彷徨)커늘, “여봐라, 남녀 백성들아! 너희들 가는 중에 미부인(?夫人)을 보았느냐?” 저 백성 이른 말이, “어떠한 부인인지, 전면(前面) 빈 집 안에 아이를 안고 우더이다.” 조운이 말을 채쳐 그 곳을 당도하니, 과연 부인이 공자를 안고, 좌편 팔 창을 맞고, 우편 다리 살을 맞아 일신(一身)이 운동을 못하고, 슬피 앉아서 울음을 운다.
8. 장판교 싸움 1
[아니리]
조운이 말에서 내려 부축하며 위로하되, “부인께서 고생함은 소장(小將)의 불충지심(不忠之心)이라 죄사무석(罪死無惜)이오나, 추병(追兵)이 급하오니 부인께서 승마서행(乘馬徐行)하옵시면, 소장이 보호하여 뒤를 끊고 가오리다.” 부인이 이른 말씀, “장군께서 갈성탄력(竭誠彈力)으로 어찌 두 목숨을 건지리까? 한나라 제실지체(帝室之體) 골육(骨肉)이 이뿐이니, 부디 이 아이를 살려 부자 상봉(相逢)케 함은 장군의 장중(掌中)에 있는가 하나이다.” 공자를 부탁하고 우물에 뛰어들어 자문지사(自刎之死)커늘, 조운이 하릴없어 담을 헐어 시신 묻고, 공자 일신(一身) 보존하여 갑옷으로 장신(臧身)하고,
[자진모리]
마상에 선뜻 올라 채를 쳐 도망할 제, 앞으로 마연(馬延)?장의(張?), 뒤로 초촉(焦觸)?장남(張南), 앞을 막고 뒤를 치니, 조운 일시 함정이라. 청공검(靑?劍) 빼어 들고, 동에 가 번뜻 서장(西將)을 뎅그렁, 남장(南將)을 얼러서 북장(北將)을 선뜻, 이리저리 헤쳐가다 토갱(土坑) 중(中)에 가 뚝 떨어져 거의 죽게 되었을 제, 장합(張?)이 바라보고 쫓아오니 자룡 생명이 급한지라. 뜻밖에 오색채운(五色彩雲)이 토갱 중에서 일어나고, 천붕지탑(天崩地?)이 와그르르르르, 번개불이 번뜻. 조운 탄 말 용총(龍?)이라, 벽력같이 소리 질러 토갱 밖으로 뛰어나오니, 장합이 겁을 내어 달아나고, 조운이 말을 놓아 행운유수(行雲流水)로 도망할 제, 장판교(長坂橋) 바라보니 일원(一員) 대장 먹장 얼굴, 장팔사모(丈八蛇矛) 들고, “조운은 속래(速來)하라! 오는 추병(追兵)을 내 막으마.” 조운이 말을 놓아 장판교를 지낼 제, 인피마곤(人疲馬困)하여 기사지경(幾死之境)이 되었구나.
9. 장판교 싸움 2
[아니리]
한 모롱이 돌아드니 현덕의 일행이 중인(衆人)들과 언덕 아래 쉬어 앉아 제장 모이기를 기다릴 적에, 조운이 말께 내려 복지(伏地)하여 여짜오되, “감부인을 호송하고, 미부인을 모셔 오려 하였더니, 공자를 부탁하고 우물에 뛰어들어 자문지사(自刎之死)커늘, 소장은 하릴없이 담을 헐어 시신을 묻고, 공자 일신(一身) 보존하여 근근(僅僅)히 살아왔나이다.” 갑옷 끌러놓고 보니, 아두(阿斗)는 잠이 들어 아직 깨지 않은지라, 조운이 아두 받들어 현덕에게 드리니, 현덕이 아두 받아 땅에 내던지며, “어린 유자(幼子) 살리려다 중(重)한 장군을 손상할 뻔하였고.” 조운이 급히 내려가 아두 안고 여짜오되, “소장(小將)은 심혈을 다 바쳐도 만분의 일(萬分之一)을 갚지 못하겠나니다.” 이렇듯 서로 위로할 적에, 한 곳 바라보니 그 때에 장익덕은 장판교 마상(馬上)에 높이 앉아 조적(曹賊)과 대결(對決)을 하는데,
[엇모리]
위진(魏陣)을 바라보니, 조조의 수륙대병(水陸大兵)이 물밀듯이 쫓아온다. 진두(塵頭)는 편야(遍野)하고, 함성(喊聲)은 통창(通敞)이라. 장판교상 바라보니, 일원대장(一員大將) 먹장 얼굴 장팔사모(丈八蛇矛) 들고 조진(曹陣)을 한번 일컬으며, “일원 연인(燕人) 장익덕은 이곳에 와서 머무른다.” 한 번을 호통하니 하늘이 떠그르르르르 무너져 벽해가 뒤넘는 듯, 두 번을 고함 질러노니 땅이 툭 꺼지는 듯, 세 번을 호통하니 십이간(十二間) 장판교가 중둥이 절컥 무너져 흐르는 물이 위로 출렁, 나는 새도 떨어지니, 조군이 황황(遑遑)하여 하후걸(夏侯傑)이가 낙마(落馬)하고, 조진(曹陣)이 쟁(錚)을 쳐서 퇴병(退兵)하여 물러가니, 익덕의 위엄 장하다.
10. 공명 동오로 건너감
[아니리]
강하(江夏)로 물러나와 견벽불출(堅壁不出)헐 제, 그 때에 강동의 손권, 주유(朱瑜), 한나라 공명선생의 높은 이름 듣고 노숙(魯肅)을 보내어 좋은 말로 유인커늘, 공명의 깊은 지혜 거짓 속은 체 가기로 허락한 후 현주전(賢主前) 하직하니, 현주 대경 탄왈(大驚歎曰), “분분(紛紛)한 천하득실(天下得失) 선생만 믿삽는데, 출타국(出他國)이 웬 일이오? 심양(心量) 처분(處分) 하옵소서.” 공명이 가만히 여짜오되, “이 때를 헤아리니, 오왕손권(吳王孫權)하고 위견조조(魏見曹操)하니 한실(漢室)이 미약이라. 신이 이때를 타 오나라 들어가 손권?주유를 격동(激動)하여 조조와 싸움 붙이고, 신은 도주이환(逃走而還)하여 중도이기(中途而起) 하오면, 오?위 양국 형세를 일안(一案)에 도취(圖取)하여 좌이득공(坐而得功)할 테오니, 현주는 염려치 말으시고, 금(今) 동짓달 이십일 묘시에 자룡을 일엽선(一葉船) 주어 남병산하(南屛山下) 오강(吳江) 어귀로 보내소서. 만일 때를 어기오면 신을 다시 대면(對面)치 못하리다.”
[중모리]
하직하고 물러나와, 공명선생 거동 보소. 노숙 따라 오나라 들어갈 제, 백우선(白羽扇) 손에 들고 일엽편주(一葉片舟) 빨리 저어 강동에 당도하니, 노숙이 인도하여 관역(館驛) 안헐(安歇)할 새, 공명이 눈을 들어 좌우를 살펴보니, 아관박대(峨冠博帶)로 장소(張昭) 등 십여 인이 일좌로 늘어서서 설전군유(舌戰群儒)가 분분할 제, 수다(數多)히 묻는 말씀 한두 말로 물리치니, 기이하구나, 공명선생. 손중모(孫仲謀)도 호일(豪逸)하매 주유를 격동(激動)할 제 대략이 무궁하니, 주유 부질없이 시기하여, 제 죽을 줄 모르고 욕살공명(欲殺孔明) 가소롭다. 삼일위한(三日爲限) 십만전(十萬箭)을 일야무중자득(一夜霧中自得)하니, 만고 높은 재주 귀신도 난측(難測)이라. 방통(龐統)의 연환계(連環計)와 황개(黃蓋)의 고육계(苦肉計)인들 공명 기품(氣稟) 아닐진대 게 뉘라서 성공하리.
11. 조조 호기
[아니리]
그 때여 적벽강 조승상(曹丞相)은 백만 대병을 조발(調發)하야,
[진양조]
천여 척 전선(戰船) 모아 연환계(連環計)를 굳이 무어 강상육지(江上陸地) 삼아 두고, 일등명장(一等名將)이 유진(留陣)할 제, 말 달려 창 쓰기며, 활 쏘아 총(銃) 놓기, 십팔기(十八技) 사습(私習)하기 백만군중(百萬軍中)이 요란할 제, 조조 진중(陣中)에 술 많이 빚고, 떡도 치고, 밥도 짓고, 우양(牛羊)을 많이 잡아 장졸(將卒)을 호궤(?饋)할 제, 동산월색(東山月色)은 여동백일(如同白日)이요, 장강 일대(長江一帶)는 여횡소련(如橫素練)이라. 그 때 조조는 장대상(將臺上)에 가 높이 앉아 남병산색(南屛山色) 그림 경(景)을, “동을 가리켜 시상(柴桑)이요, 서를 보니 하구성(夏口城)이요, 남을 가리켜 번성(樊城)이요, 북을 보니 오림(烏林)이로구나. 사면이 광활(廣闊)커든 어찌 성공 못할쏜가. 내 나이 오십사 세로 여득강남(如得江南)이면 향부귀하(享富貴何) 낙태평(樂泰平), 동작대(銅雀臺) 좋은 집에 이교녀(二喬女)를 가취(嫁娶)하면, 모년향락(暮年享樂)이 나의 원(願)에 족(足)할지라. 어와, 장졸 영 들어라. 너희들도 주육간(酒肉間)에 실컷 먹고 위(魏)?한(漢)?오(吳) 승부(勝負)를 명일(明日)로 결단하자. 만승제업(萬乘帝業)을 한 사람께 맡겼으랴. 득천하(得天下)한 연후(然後)에 천금상(千金賞) 만호후(萬戶侯)를 차례로 봉하리라.” 문무 장졸이 영을 듣더니 군례(軍禮)로 모두 늘어서서, “원득개가(願得凱歌) 하오리다.”
12. 군사들 노는 모양
[아니리]
이렇듯 군사들이 승기(勝氣) 내어, 주육(酒肉)을 쟁식(爭食)하고,
[중모리]
노래 불러 춤도 추고, 서름겨워 곡(哭)하는 놈, 이야기로 히히 하하 웃는 놈, 투전(鬪?)하다가 다투는 놈, 반취중(半醉中)에 욕하는 놈, 진취중(盡醉中)에 토하는 놈, 잠에 지쳐 서서 자다 창끝에다 턱 괴인 놈, 처처(處處) 많은 군병중(軍兵中)에 병루즉장위불행(病淚卽將爲不幸)이라. 장하(帳下)의 한 군사 벙치 벗어 손에 들고 여광여취(如狂如醉) 실성발광(失性發狂) 그저 퍼버리고 울음을 운다.
13. 군사 설움 타령 1
[아니리]
한 군사 내달으며, “아나, 이애. 승상은 지금 대군을 거느리고 천리전장(千里戰場)을 나오시며 승부가 미결(未決)되어 천하 대사를 바라는데, 어찌 요망스럽게 왜 울음을 우느냐? 이리 오너라. 우리 술이나 먹고 놀자.” 저 군사 연(連)하여 왈, “네 말도 옳다마는, 나의 설움을 들어봐라.”
[진양조]
“고당상(高堂上) 학발양친(鶴髮兩親) 배별(拜別)한 지가 몇 날이나 되며, 부혜(父兮)여 생아(生我)시고, 모혜(母兮)여 육아(育我)시니, 욕보덕택(欲報德澤)인대 호천망극(昊千罔極)이로구나. 화목하던 절내권당(節內眷堂), 규중(閨中)안 홍안(紅顔) 처자(妻子) 천리 전장에다가 나를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이 올거나, 내일이나 기별(寄別)이 올거나, 기다리고 바라다가 서산에 해는 기울어지니 출문망(出門望)이 몇 번이며, 바람 불고 비 죽죽 오는데 의려지망(依閭之望)이 몇 번이나 되며, 소중랑(蘇中郞)의 홍안거래(鴻雁去來) 편지를 뉘 전하며, 상사곡(相思曲) 단장회(斷腸懷)는 주야(晝夜) 수심(愁心)에 맺혔구나. 조총(鳥銃) 환도(環刀)를 드러메고 육전(陸戰), 수전(水戰)을 섞어할 적에 생사(生死)가 조석(朝夕)이로구나. 만일 객사(客死)를 하거드면, 게 뉘라서 안장(安葬)을 하며, 골폭사장(骨曝沙場)에 흐여져서 오연(烏鳶)의 밥이 된들, 뉘랴 손뼉을 두드리며 후여 쳐 날려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일일사친십이시(一日思親十二時)로구나.”
14. 군사 설움 타령 2
[아니리]
이렇듯이 설리우니 한 군사 내다르며 “부모 생각 네 설움은 성효지심(誠孝之心)이 기특허다. 전장에 나와서도 효성이 지극하니 너는 아니 죽고 살고 가그라.” 또 한 군사 내다르며
[중중모리]
“여봐라, 군사들아. 네 내 설움을 들어라. 네 내 설움을 들어봐라. 나는 남에 오대독신(五代獨身)으로 열입곱에 장가들어, 근(近) 오십 장근(將近)토록 슬하(膝下)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어 매일 부부 한탄. 엇다, 우리 집 마누라가 온갖 공을 다 드릴 제, 명산대찰(名山大刹), 영신당(靈神堂), 고묘(古廟), 총사(叢祠), 석왕사(釋王寺), 석불(石佛), 보살(菩薩), 미륵(彌勒), 노구(老軀)맞이 집짓기와, 칠성불공(七星佛供), 나한불공(羅漢佛供), 백일산제(百日山祭), 신중(神衆)맞이, 가사시주(袈裟施主), 인등시주(引燈施主), 다리 권선(勸善), 길닦기,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성주(城主), 조왕(?王)에 당산(堂山), 천룡(天龍), 중천군웅(中天群雄)에, 지신제(地神祭)를 지극 정성 드리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근 남기가 꺾어지랴. 그달부터 태기(胎氣) 있어, 석부정부좌(席不正不坐)하고, 할부정불식(割不正不食)하고, 이불청음성(耳不聽淫聲),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하여 십 삭(十朔)이 점점 차더니, 하루난 해복(解腹) 기미가 있구나.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혼미 중(昏迷中)에 탄생하니, 딸이라도 반가울 데 아들을 낳았구나. 열 손에다 떠받들어 땅에 뉘일 날이 전혀 없이 삼칠일(三七日)이 다 지나고, 오륙삭(五六朔) 넘어가니, 발바닥에 살이 올라 터덕터덕 노는 양, 빵긋 웃는 양, 엄마 아빠 도리도리, 쥐얌, 잘깡, 섬마 둥둥 내 아들. 내 아들이지, 내 아들. 옷고름에 돈을 채워, 감을 사 껍질 벗겨 손에 들려서 어르며, 주야 사랑 애중(愛重)한 게 자식밖에 또 있느냐? 뜻밖에 급한 난리, ‘위국 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 가자. 나오너라.’ 웨는 소리 아니 올 수 없더구나. 사당(祠堂) 문을 열어놓고 통곡(痛哭) 재배(再拜)한 연후, 간간한 어린 자식, 유정(有情)한 가솔(家率) 얼굴 한 데 대고 문지르며, ‘부디 이 자식을 잘 길러서 나의 후사(後嗣)를 전해 주오.’ 생이별(生離別) 하직하고 전장(戰場)에를 나왔으나, 언제나 내가 다시 고향을 돌아가 그립던 자식을 품안에 안고, ‘아가, 응아.’ 얼러볼거나.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15. 군사 설움 타령 3
[아니리]
이렇듯이 울음을 우니 여러 군사 하는 말이, “자식 두고 생각하는 정 졸장부(拙丈夫)의 말이로다. 전쟁에 나와서 너 죽어도, 후사(後嗣)는 전켔으니 네 설움은 가소(可笑)롭다.” 또 한 군사 나오면서,
[중모리]
“이내 설움 들어봐라. 나는 부모님을 조실(早失)하고, 일가친척 바이없어 혈혈단신(孑孑單身) 이내 몸이, 이성지합(二姓之合) 우리 아내 얼굴도 어여쁘고 행실도 조촐하여, 종가대사(宗家大事) 탁신헌정(託身獻情) 일시 떠날 뜻이 바이없어 철가는 줄 모를 적에, 불화변 일어나며, ‘위국땅 백성들아. 적벽으로 싸움 가자.’ 천아성(天鵝聲) 웨는 소리 족불리지(足不離地) 나를 끌어내니, 아니 갈 수 없더구나. 군복 입고, 전립(戰笠)을 쓰고, 창대 끌고 나올 적에, 우리 아내 내 거동을 보더니 버선발로 우루루루루루 달려들어 나를 안고 엎더지며, ‘날 죽이고 가오. 살려 두고는 못 가리다. 이팔홍안(二八紅顔) 젊은 년을 나 혼자만 떼어두고 전장을 가랴시오?’ 내 마음이 어찌 되겄느냐? 우리 마누라를 달래랼 제, ‘허허, 마누라, 우지 마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났다가 전쟁 출세를 못하고 죽으면, 장부 절개가 아니라고 하니, 우지 말라면 우지 마오.’ 달래어도 아니 듣고, 화를 내도 아니 듣더구나. 잡았던 손길을 에후리쳐 떨치고 전장을 나왔으나, 일부일전쟁(日復日戰爭)은 불식(不息)이라. 살아가기 꾀를 낸들, 동서남북으로 수직(守直)을 하니 함정에 든 범이 되고, 그물에 걸린 내가 고기로구나. 어느 때나 고향을 가서, 그립던 마누라 손을 잡고 만단정회(萬端情懷) 풀어볼거나.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운다.
16. 군사 호기
[아니리]
이렇듯 설리 우니, 한 군사 내달으며 “가속(家屬)이라 하는 것은 불가무자(不可無字)라 어쩔 수가 없느니라. 네 설움을 울만허다.” 또 한 군사 나서는디 그 중에 키 작고 머리 크고 모기눈 주벅 턱에 쥐털수염 거사리고 작도만한 칼을 막 내두리며 만군중이 송신(送神)을 허게 말을 허겄다.
[중중모리]
“이놈 저놈, 말 듣거라. 너희들 모두다 졸장부다. 위국자불고가(爲國者不考家)라 옛 글에도 일러 있고, 남아하필연처자(男兒何必戀妻子)리오? 막향강촌노장년(莫向江村老壯年)하소. 우리 몸이 군사되어, 전장을 나왔다가 공명도 못 이루고 속절없이 돌아가면 부끄럽지 않겠느냐? 이내 심사(心思) 평생 한(恨)이 요하삼척(腰下三尺) 드는 칼로 오한(吳漢) 양진(兩陣) 장수 머리를 선뜻 뗑기렁 베어 들고, 창끝에 높이 달아, 개가성(凱歌聲) 부르면서, 득승고(得勝鼓) 쿵쿵 울리며 본국으로 돌아갈 제, 부모, 동생, 처자, 권솔(眷率), 일가친척이 반기하여 펄쩍 뛰어나오며, ‘다녀온다, 다녀와. 전장 갔던 낭군이 살아를 오니 반갑네. 이리 오오, 이리 와.’ 울며불며 반기할 제, 원근간(遠近間) 기쁨을 보이면 그 아니 좋더란 말이냐? 우지 말라면, 우지 마라.”
17. 싸움타령
[아니리]
이렇듯이 말을 하니 한 군사 내다르며, “네 말이 참말로 그럴진대, 천하장사 항도령이라고 불러주마.” 한 군사 또 내다르며 싸움타령으로 노래를 하는디,
[중모리]
“습용간과(習用干戈) 헌원씨(軒轅氏) 여염제(與炎帝)로 판천(阪泉)싸움. 능작대무(能作大霧) 치우작란(蚩尤作亂) 사로잡던 탁록(琢鹿)싸움. 주나라 쇠진(衰盡) 천지(天地) 분분한 춘추(春秋)싸움. 위복진황(威福秦皇) 늙은 후에 잠식(蠶食) 산동(山東) 육국(六國)싸움. 봉기제장(蜂起諸將) 요란하다, 팔년풍진(八年風塵) 초한(楚漢)싸움. 칠십여전(七十餘戰) 공(功)이 없다, 항(項)도령의 우벽(羽壁)싸움. 통일천하 언제 할꼬, 위한오 삼국싸움. 동남풍이 훨훨 부니, 위텁구나 적벽(赤壁)싸움.” “얘, 아서라, 싸움타령. 가슴 끔적 기막힌다. 싸움타령 하지 말고, 공성신퇴(功成身退) 하고지고.” 또 한 군사 나서면서, “너희 아직 술잔 먹고 재담(才談), 취담(醉談), 실담(失談), 허담(虛談), 장담(壯談), 패담(悖談), 하거니와, 명일(明日) 대전(大戰) 시살(?殺)할 제 승부를 뉘 알쏘냐? 유능제강(柔能制剛)이요, 약능제성(弱能制盛)이라. 병가(兵家)의 징험(徵驗)이요, 흥망성쇠 재덕(在德)이니, 승부간(勝負間)에 즉사(卽死), 악사(惡死), 몰사(沒死)할 제 너희들 어찌 하려느냐?” 뭇 군사들이 모두 이 말을 듣고 회심(回心) 걱정을 하올 적에,
18. 오작남비
[진양조]
떴다, 저 까마귀. 월명심야(月明深夜) 고요한데, 남천(南天)을 무릅쓰고 반공(半空)중에 둥둥 높이 떠서 ‘까옥 까옥 까르르르르르르’ 울고 가니, 조조가 보고서 묻는 말이, “저 까마귀 여하명(如何鳴)고?”
[아니리]
좌우제장(左右諸將)이 여짜오되 "달이 밝으매 별이 드무니 까마귀가 새벽인가하야 남으로 떠서 우나보이다." 조조 듣고 시흥(詩興)이 도도(滔滔)하야 글 지어 읊었으되 "월명성희(月明星稀)에 오작(烏鵲)이 남비(南飛)허니 요수삼잡( 樹三 )에 무지가의(無枝可依)라. 까마귀가 떠서 울고 우리 진(陣)을 지내가니 어떻다 하리오." 제장 중 유복(劉馥)이가 여짜오되, "월명성희에 오작이 남비하고 요수삼잡에 무지가의란 곡조는 명일 임전시에 반드시 불길조(不吉兆)로소이다." 조조 듣고 화를 내어, "네 이놈! 니가 어찌 나의 심중에 있는 말을 헌단말인고." 요설(妖說)이라 집단(執斷)허고 취중에 살해하니 근들 아니 불쌍하냐. 수육군을 분발허고 싸움을 재촉헐제,
19. 조조 장수 분발
[자진모리]
차일(此日) 수군도독(水軍都督) 모개(毛?), 우금(于禁)이요, 연쇄전선(連鎖戰船) 필쇄(畢鎖)하고, 즉일(卽日) 군병 재촉하여, 조조 누선(樓船)에 높이 앉아 수륙군(水陸軍) 제장(諸將)을 분발(分發)할 제, 수진(水陣)의 중협총(中挾摠) 모개, 우금이요, 전협총(前挾摠) 장합(張?)이요, 좌협총(左挾摠) 문빙(文聘)이며, 우협총(右挾摠) 여통(呂通), 후협총(後挾摠) 여건(呂虔)이라. 육진(陸陣)의 전사파(前司把) 서황(徐晃)이며, 좌사파(左司把) 악진(樂進)이요, 우사파(右司把) 하후연(夏侯淵)이며, 수륙응접사(水陸應接使) 하후돈(夏侯惇)이며, 조홍(曹洪)이요, 좌우 호위장(護衛將)에 허저(許?), 장요(張遼)라. 수진(水陣)에 발방왈(發榜曰), ‘관기청착(官旗聽著) 이청금고(耳聽金鼓) 목시정기(目視旌旗) 가선여마(駕船如馬) 견적쟁선(見賊爭先) 동주공명(同舟共命) 종도적주(縱逃賊舟)면, 군법부대(軍法不貸) 관초고동(關哨鼓動) 기거(旗擧)아.’ 육진에 분부하되, ‘유유소설(悠悠小設)하면, 적유소시(敵有所施)하여, 시여청여(視如聽如)라. 가증여탈퇴(假曾汝脫退)면 적불급거이(敵不急據而)니 각대정제(各隊整齊)하여 불허참전(不許參戰) 월후(越後)하라.’ 각응성필(各應聲畢)에 전선(戰船) 풍범(風帆)으로 연선(連船), 평지같이 왕래하여 이리저리 다닌다.
[아니리]
조조, 연습을 관광(觀光)하고 마음이 대희(大喜)하여, 방사원(龐士元)의 묘한 계책을 진중에 자랑하니, 정욱(程昱)?순욱(荀彧) 여짜오되, “만일 불로 치올진댄 어찌 회피하오리까?” 조조 듣고 대답하되, “나의 진은 북에 있고, 저의 진은 남에 있으니, 만일 불로 치면은 저의 진이 먼저 탈 것이니, 반드시 승전(勝戰)할 묘법(妙法)이로다.”
20. 주유 탄식
[중모리]
그 때여 오나라 주유는 진세(陣勢)를 가만히 살펴보니, 광풍(狂風)이 홀기(忽起)하여 조채황기(曹寨黃旗)는 강중(江中)에 떨어지고, 오진(吳陣) 깃발은 주유 면상(面上) 치고 가니 화공(火攻)할 징조로되, 동남풍이 없었으니 욕파무계(欲破無計)하여 한 소리 크게 하고 토혈기색(吐血氣塞)이 가련(可憐)토다.
[아니리]
주유 병세가 점점 깊어 눕고 일지 못헐 적에 공명이 노숙을 반연(攀緣)허여 주유의 병을 볼 제, 좌우를 물리치고 양약(凉藥)을 먹일지라. "양(凉)은 서늘한 게요, 서늘한 즉 바람이라." 주유 아무 대답을 아니 허니 공명이 다시 십육자 글을 써서 주유를 주니 주유 받아 본 즉 허였으되 “욕파조병(慾破曺兵)이면 의용화공(宜用火攻)허고 만사구비(萬事具備)허나 흠동남풍(欠東南風)이라.” 주유 탄복허여 물어 왈 "바람은 천지 조화온디 어찌 인력으로 얻으리까?" 공명이 대답허되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내 헐 일 다 헌 후에 천의야 어찌 아오리까. 오백장졸만 명하야 주시면 노숙(魯肅)과 남병산(南屛山)에 올라가 동남풍을 비오리다."
21. 공명 동남풍 기원
[자진모리]
주유가 반겨 듣고 오백 장졸을 영솔(領率), “일백이십 정군(精軍)은 기 잡고 단을 지켜 청령사후(聽令俟侯)하라!” 그 때여 공명은 기풍삼일(祈風三日)하랴 하고 노숙과 병마(竝馬)하여 남병산 올라가 지세(地勢)를 살피더니, 동남방(東南方) 붉은 흙을 군사로 취용(取用)하여 삼층단(三層壇)을 높이 쌓으니, 방원(方圓)은 이십사장(二十四丈)이요, 매일층고(每一層高)삼척, 합하니 구척이로구나. 하일층(下一層) 이십팔수(二十八宿) 각색 기를 꽂았다. 동방(東方) 칠면(七面) 청기(靑旗)에는 교룡학호토호표(蛟龍?狐兎虎豹)로다. 포창룡지형(布蒼龍之形)하여 동방(東方) 청기(靑旗)를 세우고, 북방(北方) 칠면(七面) 흑기(黑旗)에는 해우복서연저유(懈牛?鼠燕猪?)로다. 작현무지세(作玄武之勢)하여 북방(北方) 흑기(黑旗)를 세우고, 서방(西方) 칠면(七面) 백기(白旗)에는 낭구치계오후원(狼狗雉鷄烏?猿)이라. 거백호지세(踞白虎之勢)하여 서방(西方) 백기(白旗)를 세우고, 남방(南方) 칠면(七面) 홍기(紅旗)에는 안양장마녹사인(?羊獐馬鹿蛇蚓)이라, 성주작지상(成朱雀之狀)하여 남방(南方) 홍기(紅旗)를 세우고, 제일 층 중루(中樓)에는 황신대기(黃神大旗)를 세웠으되, 하도낙서 그린 팔괘 육십사괘를 안검, 팔위를 배립하여 한가운데 둥두렷이 꽂고, 상일층 용사인, 각인을 속발관대하고, 검은 나포 봉의와 박대 주리 방군을 입히고, 전좌입일인하여 수집장간(手執長竿)하고, 간첨상(竿尖上)에 용계우보(用鷄羽?) 이초풍신(以招風信)하고, 전후입일인(前後立一人) 계칠성호대(繫七星號帶) 이표풍색(以表風色), 후좌입일인(後左立一人) 봉보검(奉寶劍)하고, 후우입일인(後右立一人)인 봉향로(捧香爐)하여, “단하(壇下)에 이십사인(二十四人)은 각각 정기(旌旗), 보검(寶劍), 대극(大戟), 장창(長槍), 황모(黃耗), 백월(白鉞)과 주번(朱?) 조독(?纛)을 가져 환요사면(環繞四面)하라.” 차시(此時)에 공명은 목욕재계(沐浴齋戒) 정(淨)히 하고, 전조단발(剪爪斷髮), 신영백모(身?白茅), 단상에 이르러서 노숙의 손을 잡고, “여보, 자경.” “예.” “자경(子敬)은 진중에 내려가서 공근(公瑾)의 조병(調兵)함을 도우되, 만봉향로(捧香爐)하여야 내가 비는 바 응(應)함이 없더라도 괴이(怪異)함은 두지 마오.” 약속을 정하여 노숙을 보낸 후에 수다(數多)한 장졸(將卒)에게 엄숙히 영을 하되, “불허단이방위(不許壇離方位)하며, 불허실구난언(不許失口亂言)하며, 불허교두접이(不許交頭接耳)하며, 불허대경소괴(不許大聲所怪)하라! 만일 위령자(違令者)는 군법으로 참(斬)하리라.” 그 때에 공명은 완보(緩步)로 단에 올라,
22. 공명 하산
[아니리]
분향(焚香) 헌작(獻酌) 후에, 하늘을 우러러 독축(讀祝)을 하는데, 이 축문(祝文) 조화야 뉘가 알 리 있겠느냐. 삼일을 제 지내고 하단(下壇), 장중에 잠깐 쉬어 풍세(風勢)를 살피더니, 바람을 얻은 후에
[중모리]
머리 풀고, 발 벗고, 학창의(鶴?衣)를 거듬거듬 흉중(胸中)에다가 딱 붙이고, 장막(帳幕) 밖으로 선뜻 퉁퉁, 남병산을 얼른 넘어 상류를 바라보니, 강촌(江村)은 요락(遙落)하고 샛별이 둥실둥실 떠, 지난 달빛 비꼈난데, 오강변(吳江邊)을 당도하니, 상산(常山) 조자룡(趙子龍)은 배맡에 등대(等待)하고 선생 오심을 기다리다, 선생 오심을 보고, 자룡의 거동 봐라. 선미(船尾)에 충충 내려가 공명전(孔明前) 절하며, “선생은 위방진중(危邦陣中)을 평안히 다녀오시니까?” 공명 또한 반가라고 자룡 손길 잡고, “현주(賢主) 안녕하옵시며, 제장군졸(諸將軍卒)이 다 무사하오?” “예.” 둘이 급히 배에 올라, 일편(一片) 풍석(風席)을 순풍(順風)에 추여 달고, 도용도용(滔溶滔溶) 떠나간다.
23. 조자룡 활쏘다
[아니리]
그 때여 주유는 일반 문무(文武)와 장대상(將臺上)에 모여 앉아 군병 조발(調發) 예비(豫備) 할 제, 이날 간간근야(間間近夜)에 천색(天色)은 청명(晴明)하고 미풍(微風)이 부동(不動)커늘, 주유 노숙다려 왈, “공명이 나를 속였다. 이 융동(隆冬) 때에 어찌 동남풍이 있을쏘냐?” 노숙이 대답하되, “제 생각에는 아니 속일 사람인 듯 하외이다.” “어찌 아니 속일 줄을 아느뇨?” “공명을 지내보니, 재주는 영웅이요, 사람은 또한 군자라, 군자 영웅이 이러한 대사에 거짓말로 어찌 남을 속이리까? 조금만 기다려 보사이다.”
[자진모리]
말을 맞지 못하여 이날 밤 삼경시(三更時)에 바람이 차차 일어난다. 뜻밖에 광풍이 우루루루루루루루, 풍성(風聲)이 요란커늘, 주유 급히 장대상에 퉁퉁 내려 깃발을 바라보니, 청룡(靑龍) 주작(朱雀) 양 기각(兩旗脚)이 백호(白虎) 현무(玄武)를 응하여 서북으로 펄펄. 삽시간에 동남대풍(東南大風)이 불어 기각(旗脚)이 와지끈, 움죽, 깃폭판도 떼그르르르르르 천둥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양을 보더니, 간담(肝膽)이 떨어지는지라. “이 사람의 탈조화(脫造化)는 귀신도 난측(難測)이라. 만일 오래 두어서는 동오의 화근(禍根)이매, 죽여 후환(後患)을 면하리라.” 서성(徐盛), 정봉(丁奉)을 불러 은근(慇懃)히 분부하되, “너희 수륙으로 나누고 남병산을 올라가서, 제갈량을 만나거든, 장단(長短)을 묻지 말고 공명의 상투 잡고 드는 칼로 목을 얼른 쏵, 미명(未明)에 당도하라. 공명을 지내보니, 재주는 영웅이요, 사람은 군자라. 죽이기는 아까우나, 그를 살려 두어서는 장차에 유환(遺患)이니, 명심불망(銘心不忘)하라.” 서성은 배를 타고, 정봉은 말을 놓아, 남병산 높은 봉을 나는 듯이 올라가서 사면을 살펴보니, 공명은 간 곳 없고, 집기장사(執旗壯士)는 당풍립(當風立)하여, 끈 떨어진 차일(遮日) 장막(帳幕) 동남대풍에 펄렁펄렁. 기 잡은 군사들은 여기저기가 이만하고 서 있거늘, “이놈, 군사야.” “예.” “공명이 어디로 가더냐?” 저 군사 여짜오되, “공명은 모르오나 바람을 얻은 후 머리 풀고, 발 벗고, 이 너머로 가더이다.” 두 장수 분을 내어, “그러면 그렇지. 지재차산중(只在此山中)이여든 종천강(從天降)하며 종지출(從地出)할까? 제가 어디로 도망을 갈까?” 단하(壇下)로 쫓아가니, 만경창파(萬頃蒼波) 너른 바다 물결은 흉용(洶湧)한데, 공명의 내거종적(來去踪跡) 무거처(無去處)이어늘, 수졸(水卒)을 불러, “이놈, 수졸(水卒)아.” “예.” “공명이 어디로 가더냐?” “아니, 소졸등(小卒等)은 공명은 모르오나, 작일(昨日) 일모시(日暮時) 강안(江岸)에 매인 배, 양양강수(洋洋江水) 맑은 물에 고기 낚는 어선배, 십리장강벽파상 왕래하던 거룻배, 동강(桐江)의 칠리탄(七里灘) 엄자릉(嚴子陵)의 낚싯배, 오호상연월(五湖上煙月) 속에 범상공(范相公) 가는 밴지 만단(萬端) 의심을 하였더니, 뜻밖에 어떤 사람이 머리 풀고, 발 벗고 창황분주(倉惶奔走) 내려와 선미에 다다르매, 그 배 안에서 일원대장(一員大將)이 우뚝 나서는데, 한 번 보매 두 번 보기 엄숙한 장수 선미에 퉁퉁 내려, 절하며 읍을 치고, 둘이 귀를 대고 무엇이라고 소근소근, 고개를 까딱까딱, 입을 쫑긋쫑긋하더니, 그 배를 급히 잡어 타고 상류로 가더이다.” “옳다. 그것이 공명일다.” 날랜 배를 잡어 타고, “이놈, 사공아.” “예.” “네 배를 빨리 저어 공명 탄 배를 잡아야망정, 만일에 못 잡으면, 이내 장창(長槍)으로 네 목을 뗑기렁 베어 이 물에 풍덩 드리치면, 네 장창(長槍)을 뉘 찾으리?” 사공들이 황겁(惶怯)하여, “여봐라, 친구들아! 우리가 까딱 잘못하다가는 오강(吳江)의 고기 밥이 되겄구나. 열두 친구야, 키따리 잡아라. 위겨라 저어라 저어라 위겨라 어기야뒤야 어기야, 어기야뒤여 어어어허 어어이허기야, 엉 어기야 엉 어기야.” 은은(殷殷)히 떠들어갈 제 상류를 바라보니, 오강 여울 떴는 배 흰 부채 뒤적뒤적 공명일시가 분명쿠나. 서성이 크게 외쳐, “저기 가는 공명 선생. 가지 말고 게 머물러 나의 한 말 듣고 가오.” 공명이 허허허 대소(大笑)하며, “너의 도독(都督) 살해 마음 내 이미 아는지라, 후일 보자고 회보(回報)하라!” 서성?정봉 못 듣는 체 빨리 저어서 쫓아오며, “긴(緊)히 할 말이 있사오니, 게 잠깐 머무소서.” 자룡이 분을 내어, “선생은 어찌 저런 범람(氾濫)한 놈들을 목전(目前)에다가 두오니까? 소장의 화살 끝에 저놈의 배아지를 산적(散炙) 꿰듯 하오리다.” 공명이 만류하되, “아니, 그는 양국 화친(和親)을 생각해서, 죽이든 말으시고 놀래켜서나 보내소서.” 자룡이 분을 참고 선미(船尾)에 우뚝 나서, “이놈, 서성, 정봉아. 상산 조자룡을 아는다, 모르느냐? 우리나라 높은 선생 너의 나라 들어가서 유공(有功)이 많았거든, 은혜는 생각지 않고 이놈들, 해(害)코자 따라오느냐? 너희를 죽여 마땅하되, 양국 화친을 생각하여 죽이든 않거니와 나의 수단(手段)이나 네 보아라.” 가는 배 머무르고, 오는 배 바라보며 백 보(百步) 안에 가 드듯마듯, 장궁(長弓) 철전(鐵箭)을 먹여, 비정비팔(非丁非八)하고 흉허복실(胸虛腹實)하여, 대투를 숙이고, 호무뼈 거들며, 주먹이 터지게 줌통을 꽉 쥐고, 하삼지(下三脂)에 힘을 올려 궁현(弓弦)을 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귀밑 아씩, 정기일발(正機一發) 깍지손을 딱 떼니, 번개같이 빠른 살이 해상(海上)으로 피르르르르르르. 서성 탄 배 덜컥, 돛대 와지끈 물에 가 풍! 오던 배 가로져 물결이 뒤채어, 소슬광풍(蕭瑟狂風)에 뱃머리 빙빙 빙빙빙빙 물결이 워리렁 출렁 뒤둥그러져 본국으로 떠나간다.
[중모리]
자룡의 거동 보소. 의기(意氣) 양양하여 활 든 팔 내리고, 깍지손 올려 허리 짚고 웅성(雄聲)으로 호령(號令)하되, “이놈들, 당양(當陽) 장판교 싸움에 아두(阿斗)를 품에 품고, 필마단창(匹馬單槍)으로 위국적병(魏國敵兵) 십만 대군을 한 칼에 무찌르던 상산 조자룡이란 명망(名望)도 못 들었는냐? 너희를 죽일 것이로되, 우리 선생 명령하(命令下)에 너희를 산적(散炙)죽음을 못 시키는구나. 어, 분한지고. 사공아.” “예.” “돛 달고 노 저어라.” 순풍에 돛을 달고 도용도용(滔溶滔溶) 떠나간다.
24. 주유와 공명, 제장 분발
[아니리]
서성 전봉이 겁주(怯走)하여 돌아와 이 사연을 회보(回報)하니, 주유 듣고 하릴없어, ‘그러면 조조를 먼저 치고, 현덕을 후도(後圖)하자’ 약속을 다시 하고, 수륙군을 정돈하여 싸움을 재촉할 제,
[중모리]
“감녕(甘寧)은 채중(蔡中) 항졸(降卒) 거느리고 조조 진중 들어가서 거화위호(炬火爲號)하라. 전영(前營)의 태사자(太史慈)는 각솔삼천(各率三千)하여 각처(各處)에 매복(埋伏)하고, 영병(領兵) 군관(軍官) 제일대(第一隊) 한당(韓當), 제이대(第二隊) 주태(周泰), 제삼대(第三隊) 장흠(蔣欽), 제사대(第四隊) 진무(陳武) 등은 삼백 전선(戰船) 일자(一字)로 파열(擺列)하여, 상부도독(上部都督) 주유, 정보(程普), 서성, 정봉, 선봉대장(先鋒大將) 황개(黃蓋)라.” 주유 군중에 호령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승화연여운(乘火煙如雲)하고 일제(一齊) 응진(應陣)하며, 봉총(捧銃) 휴봉(携棒)하여 산붕여장도(山崩如壯圖)라고 하였으니, 황개(黃蓋) 화선(火船) 거화(炬火) 보아 황혼시(黃昏時) 호령출(號令出)을 각선(各船)에 청후(聽侯)하라. 기거(起去)아.” 차시에 한나라 공명 선생은 일엽편주(一葉片舟) 빨리 저어 본국으로 돌아오니, 일등명장(一等名將)이 벌였는데, 거기장군(車騎將軍) 장익덕(張翼德)과 진군장군(鎭軍將軍) 조자룡 군례(軍禮)로 꾸벅꾸벅 현신(現身)하니, 공명 또한 군중(軍中)에 답배(答拜)하고 현주께 뵈온 후에, 장대상(將臺上)에 가 높이 앉아 방포성(放包聲)의 금고(金鼓)를 쿵쿵 울리며, 장졸을 차례로 분발한다. “병과장소(兵寡將少)하니 필용파선(必用派先)이라.” 진군장군 조자룡을 불러, “그대는 삼천군(三千軍) 거느리고 오림(烏林) 갈대숲에 둔병매복(屯兵埋伏)을 하였다가, 조병(曹兵)이 지나거든 내닫지 말고, 선군(先軍) 지내거든 불 놓아 엄습(掩襲)하여 사로잡으라. 기거(起去)아.” 거기장군 장익덕을 불러, “그대도 삼천군 거느리고 오림산등후(烏林山嶝後) 호로곡(葫蘆谷)에 둔병매복을 하였다가, 명일 오시(午時)에 조조 비를 맞고 그리 지내다가 군사 밥 먹이느라고 연기 날 것이니, 불 놓아 엄살하여 사로잡으라. 기거아.” 미방(?芳), 미축(?竺), 유봉(劉封)을 불러들여, “너희는 각각 모두 전선 타고 강상에 가 멀리 떴다, 패군(敗軍) 기계(器械)를 앗아오너라.”
25. 관운장 항의
[아니리]
이렇듯이 약속하여 분발할 제,
[엇모리]
한 장수 들어온다. 한 장수 들어온다. 이는 뉜고 하니 한수정후(漢壽亭侯) 관공(關公)이라. 봉의 눈 부릅뜨고, 삼각수(三角鬚) 거사려, 청룡도(靑龍刀) 비껴들고 엄연(嚴然)히 들어와, 큰 소리로 여짜오되, “형장(兄長) 모아 전장마다 낙오(落伍)한 일이 없삽더니, 오늘날 대전시(大戰時)에 찾는 일이 없사오니, 그 어쩐 일이니까?”
26. 관운장 행군
[아니리]
공명이 허허 웃으며 대답하되, “장군을 제일 요긴(要緊)한 화용도(華容道)로 보내랴 하였으나, 전일 조조가 장군에게 후대(厚待)한 공이 적지 아니한지라, 장군은 조조를 잡고도 놓을 듯하여 정(定)치 아니하오.” 관공이 정색(正色)하여 칼을 짚고 궤고 왈(?告曰), “군중은 무사정(無私情)이온데 어찌 사(私) 두오리까?” 만일 조조를 잡고도 놓으면 의율당참(依律當斬)하올 차(次)로 군령장(軍令狀)을 써서 올리거늘, 공명이 허락하여 관공을 화용도로 보낼 적에, “장군은 제일 요긴한 화용도를 가시거든, 화용도 소로(小路) 높은 봉(峰)에 불 놓아 연기 내고, 조조를 유인하여 묻지 말고 잡아오시오.” 관공이 다시 꿇어 여짜오되, “그곳 길이 둘이온데, 만일 조조가 그 길로 아니 오면 그는 어찌 하오리까?” “예. 나도 그는 군령장을 두니 그리 아오.” 맞군령장(軍令狀)에 두 착함(着銜)이 분명하니, 관공이 대희(大喜)하사 관평(關平), 주창(周倉) 거느리고, 오교도수(五校刀手) 앞세워 원앙대로(鴛鴦大路) 배립(排立)하여 화용도로 행군할 제, 청도기(淸道旗)를 벌였는데, 행군(行軍) 절차가 꼭 요렇게 생겼던가 보더라.
[자진모리]
청도기를 벌였는데, 청도(淸道) 한 쌍, 홍문(紅門) 한 쌍, 청룡(靑龍), 동남각(東南角), 동북각(東北角), 청고초(靑高招), 청문(靑門) 한 쌍, 주작(朱雀) 남동각(南東角), 남서각(南西角), 홍고초(紅高招), 홍문(紅門) 한 쌍, 백호(白虎), 서북각(西北角), 서남각(西南角), 백고초(白高招), 백문(白門) 한 쌍, 현무(玄武), 북동각(北東角), 북서각(北西角), 흑고초(黑高招), 흑문(黑門) 한 쌍, 황신(黃神), 표미(豹尾), 금고(金鼓) 한 쌍, 나 한 쌍, 쟁(錚) 한 쌍, 바라 한 쌍, 영기(令旗) 두 쌍, 고(鼓) 두 쌍, 세악(細樂) 두 쌍, 중사명(中司命), 좌관이(左貫耳) 우영전(右令箭) 집사(執事) 한 쌍, 군뢰직열(軍牢直列)이 두 쌍, 난후(?後), 친병(親兵), 교사(敎師) 당보(塘報) 각 두 쌍으로 좌르르르르 늘어서서 좌마(座馬) 독(纛)으로 가는 거동, 기색(氣色)은 영웅이요, 검광(劍光)은 여상(如霜)이라. 위엄이 늠름하고, 살기(殺氣)가 등등(騰騰)하니, 이런 대군 행차(行次)가 세상에서는 드문지라.
27. 조조 장담
[아니리]
현덕이 공명을 치하하고, 주유 용병(用兵) 간심차(看審次)로 번구(樊口)를 내려서니, 동남풍이 점기(漸起)로구나.
[중모리]
그 때여 적벽강 조조는 장대상(將臺上)에 가 높이 앉어 장검(長劍)을 어루만지며, “이봐 장졸, 들어서라! 이내 장창으로 황건(黃巾) 동탁(董卓)을 베고, 여포(呂包) 사로잡아 사해(四海)를 평정(平定)하니, 그 아니 천운(天運)이냐? 하늘이 날 위하여 도움이 분명하니, 어찌 아니가 좋을쏘냐?” 정욱이 여짜오되, “분분(紛紛)한 융동(隆冬) 때에 동남풍이 괴이하니 미리 예방을 하사이다.”
[아니리]
조조 허허 웃으며 대답하되, “동지(冬至)에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니, 기유동남풍(豈有東南風)가?” 의심 말라 분부하고, 황개 약속을 기다릴 제,
[중머리]
그 때여 오나라 황개(黃蓋)는 이십 화선(二十火船) 거느리고, 청룡아기(靑龍牙旗) 선기상(船旗上)에, 삼승(三升)돛 높이 달아, 오강(吳江) 여울 바람을 맞추어 지국총 소리하며 조조 진중 바라보고 은은(殷殷)히 떠들어오니, 조조가 보고 대희(大喜)하여 장졸(將卒)다려 이른 말이, “정욱아, 네 보아라. 정욱아, 정욱아, 네 보아라. 황공복(黃公覆)이 나를 위하여 양초(糧草) 많이 싣고 저기 온다. 정욱아, 정욱아. 네 보아라. 허허 흐흐.” 대소(大笑)하니,
28. 화공
[아니리]
정욱이 여짜오되, “군량(軍糧) 실은 배량이면 선체(船體)가 온중(穩重)할데, 요요(搖搖)하고 범류(泛流)하니, 만일 그 속에 간교(奸巧) 있을진댄 어찌 회피하오리까?” 조조 이 말 듣고 의심이 나서 방비(防備)를 해보는데, “그래 그래, 네 말이 당연하니 문빙(文聘) 불러 방색하라.” 문빙이 우뚝 나서, “저기 오는 배 어디 배요? 우리 승상님 영(令) 전에는 진 안을 들어서지 말랍신다.”
[자진모리]
이 말이 지듯마듯 뜻밖에 살 한 개가 피르르르 문빙(文聘) 맞아 떨어지고, 황개 화선 이십 척에 거화포(擧火砲) 승기(乘機) 전(前)에 때때때 나발소리, 두리둥둥 뇌고(雷鼓) 치며 황개 합선 동남풍에 배를 몰아 번개같이 달려들어 고함이 진동하여, 한 번을 불이 벗썩, 천지가 뜨르르르르르르르, 강산이 무너지고, 두 번을 불이 벗썩, 우주가 바뀌는 듯, 세 번을 불로 치니 화염이 충천(衝天), 풍성(風聲)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 물결은 출렁, 전선(戰船) 뒤뚱, 돛대 와지끈, 용총, 활대, 노사욱대, 비우, 삼판나리, 족판(足板), 행장(行裝), 멍에, 각 부대(各部隊)가 물에 가 풍! 기치(旗幟) 펄펄, 장막(帳幕) 쪽쪽. 화전(火箭), 궁전(弓箭), 방패, 창과 깨어진 퉁노구, 거말장, 마름쇠, 나발, 장고, 북, 꽹과리 왱기렁 쟁기렁 와르르 철철철 산산히 깨어져서, 풍파강상(風波江上)에 화광(火光)이 훨훨. 수만 전선(戰船)이 간 곳이 없고, 적벽강이 뒤끓어 붉게 되어 불빛이 난리가 아니냐. 가련할손 백만 군병은 날도 뛰도 못하고, 숨 막히고 기막히고, 살도 맞고 창에도 찔려, 앉아 죽고, 서서 죽고, 울다가 웃다 죽고, 밟혀 죽고, 맞아 죽고, 원통히 죽고, 불쌍히 죽고, 애써 죽고, 똥싸 죽고, 가엾이 죽고, 성내어 죽고, 졸다가 죽고, 진실로 죽고, 재담(才談)으로 죽고, 무단(無斷)히 죽고, 함부로 덤부로 죽고, 떼떼구르르 궁굴며 아뿔싸 가슴 탕탕 두드리며 죽고, 참으로 죽고, 거짓말로 죽고, 죽어보느라고 죽고, ‘이놈 네에미’ 욕하며 죽고, 떡 입에다 물고 죽고, 꿈꾸다가 죽고, 또 한 놈은 돛대 끝으로 우루루루루루루 나서 이마 우에 손을 얹고 고향을 바라보며, 앙천통곡(仰天痛哭) 호천망극(昊天罔極), ‘아이고, 어머니. 나는 죽습니다.’ 물에 가 풍 빠져 죽고, 한 군사 내달으며, ‘나는 남의 오대독신(五代獨身)이로구나. 칠십당년(七十當年) 늙은 양친을 내가 다시 못 보고 죽겄구나. 내가 아무 때라도 이 봉변 당하면은 먹고 죽을라고 비상(砒霜) 사 넣었더니라.’ 와삭와삭 깨물어 먹고 죽고, 한 놈은 그 통에 한가한 치라고 시조(時調) 반장(半章)을 빼다 죽고, 즉사(卽死), 몰사(沒死), 대해수중(大海水中)의 깊은 물에 사람을 모두다 국수 풀 듯 더럭더럭 풀며, 적극(赤戟), 조총(鳥銃), 괴암통, 남날개, 도래송곳, 독바늘 적벽풍파(赤壁風波)에 떠나갈 적에, 일등 명장이 쓸 데가 없고, 날랜 장수가 무용(無用)이로구나. 허저(許?)는 창만 들고, 서황(徐晃)은 칼만 들고 남은 군사 거느리고 죽을 뻔 도망할 제, 황개 화연(火煙)을 무릅쓰고 쫓아오며 웨는 말이, “붉은 홍포(紅袍) 입은 놈이 조조니라. 도망 말고 쉬 죽거라. 선봉대장에 황개라.” 호통하니, 조조 여혼(餘魂) 기겁할 제, 입은 홍포를 벗어버리고 죽을 뻔 도망할 제, 다른 군사를 가리키며, “참 조조는 저기 간다.” 제 이름을 제가 부르며, “이놈, 조조! 부질없이 총 놓다 화약 눈에 뛰어들어서 몹시도 아리니라. 날다려 조조란 놈 제가 진실 조조니라.” 꾀탈앙탈 도망할 제, 장요(張遼) 활을 급히 쏘니, 황개 맞아서 배 아래 뚝 떨어져 물에 가 풍 거꾸러져 낙수(落水)하니, “의공(義公)아, 날 구하라.” 한당(韓當)이 급히 건져 살을 빼어 본진으로 보내랼 적에, 좌우편 호통소리 조조 장요 넋이 없어 오림(烏林)께로 도망을 할 적에, 조조 잔말이 비상(非常)하여, “둔종(臀腫) 났다, 다칠세라. 배 아프다, 농치지 마라. 까딱하면은 똥 싸겄다. 여봐라, 정욱아. 위급하다, 위급하다. 날 살려라, 날 살려라.” 조조가 겁김에 말을 거꾸로 타고, “아이고, 여봐라, 정욱아. 어찌 오늘은 이놈의 말이 퇴불여전(退不如前)을 하여, 적벽강으로만 뿌드등 뿌드등 돌아가는구나. 주유 노숙이 축지법(縮地法)을 못하는 줄 알았더니마는, 상(上)부터 땅을 찍어 우그리던가 보구나. 여봐라, 정욱아. 위급하다, 날 살려라.” “승상이 말을 거꾸로 탔소.” “언제 옳게 타겄느냐. 말 머리만 들어다가 뒤에다가 붙여라. 나 죽겄다, 어서 가자.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29. 오림 패주
[아니리]
정욱이 웃고 여짜오되, “승상 말씀을 듣자오니, 영웅이란 말씀은 삼국에 날만도 하시오.”
[중모리]
창황분주(蒼黃奔走) 도망을 갈 제, 새만 푸르르르르르 날아가도 복병(伏兵)인가 의심을 하고, 낙엽만 버썩 떨어져도 추병(追兵)인가 의심을 하여, 엎더지고 자빠지며, 오림산 험한 곳을 반생반사(半生半死) 도망을 간다.
[아니리]
조조가 가다가 목을 움쑥움쑥 움치니 정욱이 여짜오되 "아 승상님 무게 많은 중에 말 허리 느오리다. 어찌하야 목은 그리 움치시나니까?" "야야 말마라 말 말어. 내 귓전에 화살이 위윙허고 눈앞에 칼날이 번뜻번뜻 허는구나." 정욱이 여짜오되 "이제는 아무 곳도 없사오니 목을 늘여 사면을 더러 살펴보옵소서." "야야 진정 조용허냐?" 조조가 막 목을 늘여 사면을 살피랴 헐 제, 의외에도 말굽통 머리에서 메초리란 놈이 푸루루루 날아나니 조조 깜짝 놀래, "아이고 여봐라 정욱아. 내 목 달아났다 목 있나 좀 보아라." "눈치밝소. 그 조그마한 메초리를 보고 그대지 놀래실진대 큰 장꿩 보았으면 기절초풍 할 뻔하였소, 그리여" "야야 그게 메초리드냐. 허허 그놈 비록 조그마한 놈이지마는 털 뜯어서 가진 양념하야 보글보글 보글보글 볶아놓면 술 안주 몇 점 쌈박허니 좋니라마는." "그 우환 중에도 입맛은 안 변했소 그려." 조조가 목을 늘여 사면을 살펴보니 그새 적벽강에서 죽은 군사들이 원조(寃鳥)라는 새가 되어 모도 조승상을 보고 원망을 허며 우는디 이것이 적벽강 새타령인가 보더라.
30. 새타령
[중모리]
산천은 험준(險峻)하고 수목(樹木)은 총잡(叢雜)한데, 만학(萬壑)에 눈 쌓이고, 천봉(千峰)에 바람이 칠 제, 화초목실(花草木實)이 없었으니, 앵무 원앙이 끊쳤는데, 새가 어이 울랴마는, 적벽화전(赤壁火戰)에 죽은 군사 원조(寃鳥)라는 새가 되어, 조승상을 원망하여 지지거려 울더니라. 나무 나무 끝끄터리 앉아 우는 각새 소리, 도탄에 싸인 군사 고향 이별이 몇 해런고. 귀촉도(歸蜀道) 귀촉도 불여귀(不如歸)라 슬피 우는 저 촉혼조(蜀魂鳥). 여산군량(如山軍糧)을 소진(燒盡)하니 촌비노략(村匪擄掠)이 한때로구나. 소탱 소탱 저 흉년새. 백만 군사를 자랑터니 금일 패군(敗軍)이 어인 일고, 입삐쭉 입삐쭉 저 삐쭉새. 자칭 영웅 간 데 없고 백 계도생(百計圖生) 을 꾀로만 판다, 꾀꼬리 수리루리루 저 꾀꼬리. 초평대로(草坪大路)를 마다하고, 심산총림(深山叢林)의 골기악 까옥 저 까마귀. 가련타, 주린 장졸 냉병(冷病)인들 아니 들리. 병에 좋다고 쑥국 쑥쑥국. 장요(張遼)는 활을 들고, 살이 없다 걱정 말아라, 살 간다 수루루루루루 저 호반(湖畔)새. 반공에 둥둥 높이 떠 동남풍을 네가 막아주랴느냐, 너울너울 저 바람막이. 철망(鐵網 의 벗어났구나, 화병아 우지 마라, 노고지리 노고지리, 저 종달새. 황개 호통 겁을 내어 벗은 홍포(紅袍)를 내 입었네, 따옥 따오기 저 따오기. 화용도가 불원(不遠)이로다, 적벽풍파(赤壁風波)가 밀려온다, 어서 가자 저 게오리. 웃는 끝에는 겁낸 장졸 갈수록 얄망궂다. 복병(伏兵)을 보고서 도망을 하리. 이리 가며 팽당그르르르, 저리 가며 행똥행똥, 사설(辭說) 많은 저 할미새. 순금 갑옷을 어디다가 두고 활도 맞고 창에도 찔려, 기한(飢寒)에 골몰(汨沒)이 되어 내 단장(丹粧)을 부러워 마라, 상처 독기(毒氣)를 쪼아주마. 뾰족한 저 긴 부리로, 속 텅 빈 고목 안고 오르며 떼그르르르, 내리며 꾸뻑 떼그르르르, 뚜드럭 꾸벅 찌꺽 떼그르르르르, 저 때쩌구리는 처량하구나. 각새 소리 조조가 듣더니 탄식한다. “우지 마라, 우지 마라. 각새들아, 너무나 우지를 말아라. 너희가 모두 다 내 제장(諸將) 죽은 원귀(寃鬼)가, 나를 원망하여서 우는구나.”
31. 조조, 조자룡 피해 도망
[아니리]
한참 이리 설리 울다가 “히히히 해해해” 대소하니, 정욱이 여짜오되 "근근도생(僅僅圖生) 창황중(蒼黃中)에 슬픈 신세는 생각잖고 무슨 일로 그렇게 또 웃나니까?” 조조 듣고 대답하되, “야야, 내 웃는 게 다름이 아니니라. 주유는 실기(實技)는 있으되 꾀가 없고, 공명은 꾀는 좀 있으되 실기 없음을 생각하여 웃었느니라.”
[엇모리]
이말이 지듯마듯 오림산곡(烏林山谷) 양편(兩便)에서 고성(高聲) 화광(火光)이 충천(衝天). 한 장수 나온다. 한 장수 나온다. 얼굴은 형산(荊山) 백옥(白玉) 같고, 눈은 소상강(瀟湘江) 물결이라. 인(麟)의 허리, 곰의 팔, 녹포엄신갑(鹿布掩身甲)에 팔척(八尺) 장검(長劍)을 비껴들어, 당당(堂堂) 위풍(威風) 일포성(一咆聲) 큰 소리로 호령(號令)하되, “네 이놈, 조조야! 상산명장(常山名將) 조자룡을 아는다, 모르는다? 조조는 닫지 말고 내 장창 받아라!” 우레같은 소리를 벽력같이 뒤지르며, 말 놓아 달려들어, 동에 얼른 서를 쳐, 남에 얼른 북을 쳐, 생문(生門)으로 들이달아 사문(死門)에 와 번뜻. 장졸의 머리가 추풍낙엽이라. 여 와서 번뜻하며 저 와 땡기렁 베고, 저 와서 번뜻하며 여기 와 땡기렁 베고, 좌우로 충돌. 어릅파 어릅파 어릅파, 백송골이 꿩 차듯, 두꺼비 파리 잡듯, 은장도(銀粧刀) 칼 빼듯, 여름날 번개치듯 홍행홍행 쳐들어갈 제, 피 흘러 강수(江水) 되고, 주검이 여산(如山)이라. 서황(徐晃), 장합(張?) 쌍접(雙接) 겨우겨우 방어하고 호로곡으로 도망을 간다.
32. 조조 신세 한탄
[진양조]
바람은 우루루루루루루 지동치듯 불고, 궂은비는 퍼붓는데, 갑옷 젖고, 기계(器械) 잃고, 어디메로 가야만 살거나. 조조 군중에 영을 놓아 촌려노략(村廬擄掠) 양식을 얻고, 말도 잡아 약간 구급(救急) 을 하며, 젖은 옷은 쇄풍(?風)해 달고 겨우겨우 살아갈 적, 한 곳을 바라보니, 한수(漢水) 여울 흐른 물은 이릉교(彛陵橋)로 닿았는데, 적적산곡(寂寂山谷) 청계상(淸溪上)에 쌍쌍(雙雙) 백구(白鷗)만 흘리떴구나. 두 쭉지를 쫙 벌리고, 펄펄 수루루루 둥덩. 우후청강(雨後晴江) 좋은 흥미(興味), “묻노라, 저 백구야. 너는 어이 한가하여 홍요월색(紅蓼月色) 어인 일고? 어적수성(漁笛數聲)이 적막한데 뉘 기약을 기다리다가, 범피창파(泛彼滄波) 흘리떠서 오락가락 승유(勝遊)하고, 나는 어이 분주(奔走)하여, 천 리 전장을 나왔다가 백만 군사 몰사(沒死)를 시키고, 풍파(風波)에 곤(困)한 신세 반생반사(半生半死)가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고향을 갈거나. 애닯고 분한 뜻을 어이하면은 갚드란 말이냐?”
33. 조조, 장비 피해 도망
[아니리]
탄식하던 끝에 “히히 해해” 대소하니, 정욱이 기가 막혀, “얘들아, 승상님이 또 웃으셨다! 승상이 웃으시면 복병(伏兵)이 꼭 나느니라.” 조조 듣고 기가 막혀 “야 이놈들아! 내가 웃으면 복병이 꼭꼭 난단 말이냐? 아 이전에 우리집에서는 아무리 웃어도 복병은커녕 뱃병도 안나고, 좋은 청주병만 자주 들어오더라. 한참을 이러할 제, 좌우 산곡(山谷)에서 복병이 일어나니, 정욱이 기가 막혀, “여보시오, 승상님. 죽어도 원(怨)이나 없게 즐기시는 웃음이나 실컷 더 웃어보시오.” 조조 웃음 쑥 들어가고 미쳐 정신 못 차릴 적에,
[자진모리]
장비의 거동 봐라. 표독(慓毒)한 저 장수. 먹장낯 고리눈에 다박수염을 거사리고, 흑총마(黑?馬) 집떠타, 사모장창(蛇矛長槍)을 들고, 불꽃같이 급한 성정(性情) 맹호(猛虎)같이 달려들어, “엇다, 이놈 조조야! 날다 길다, 길다 날다? 팔랑개비라 비상천(飛上天)하며, 뒤제기라 땅을 팔다? 닫지 말고 창 받아라!” 우레같은 소리를 벽력같이 뒤지르며 군중(軍中)에 횡행(橫行)가자, 조조의 약간 남은 군기(軍器) 일시에 다 뺏는다. 청도순시(淸道巡視), 사명영기(司命令旗), 언월환도(偃月環刀), 쟁(錚), 북, 나발, 금고(金鼓), 세악수(細樂手), 화전(火箭), 숙정패(肅靜牌), 장창(長槍), 대검(大劍), 쇠도리깨, 투구, 갑옷, 화살, 동개, 고두리, 세신바늘, 도래송곳, 마름쇠, 장막(帳幕), 퉁노구, 부시, 화용(火茸)을 일시에 모두 앗고, 차시(此時)에 대장이 풍백(風伯)을 호령하니, 웅성낙조불견(雄聲落鳥不見)하여 나는 새도 떨어지고, 땅이 툭툭 꺼지는 듯. 조조가 황겁(惶怯)하여 아래턱만 까불까불. “여봐라, 정욱아. 전일(前日)에 관공 말이, ‘내 아우 장익덕은 만군중(萬軍中) 장수 머리를 풀같이 베어 온다’ 주야장천(晝夜長川) 포장(褒?)터니마는, 그 말이 적실(的實)하니, 이러한 영웅 중에 내가 어이 살아가랴. 날 살려라. 날 살려라.” 허저, 장요, 서황 등은 안장 없는 말을 타고 한사협공(限死挾攻) 방어할 제, 조조는 갑옷 벗고 군사 한 데 뒤섞이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도망을 가는구나.
[아니리]
한 곳을 당도하니 전면에 길이 둘이 있는지라. 조조 제장(諸將)다려 물어 왈, “이 길은 어느 지경(地境)으로 닿았으며, 저 길은 어느 지경으로 행(行)하느냐?” 제장이 대답하되, “대로(大路)로는 초평(草坪)하오나 이십 리가 더 머옵고, 소로(小路)로는 가까우나 화용도 길이 험악하오니, 초평대로(草坪大路)로 가사이다.” 조조 위급함만 생각하고, “소로로 가자.” 정욱이 여짜오되, “소로 산상(山上)에 화광(火光)이 있사온즉, 봉연기처(烽煙起處)에 필유군마유진(必有軍馬留陣)하리니 초평대로로 가사이다.” 조조 듣고 화를 내어, “너 이놈, 네가 어찌 병법(兵法)도 모르고 어찌 장수라고 다니는고? 병서(兵書)에 하였으되, 실즉허(實卽虛)하고, 허즉실(虛卽實)이라 하였느니라. 꾀 많은 공명이가 대로에 복병하고 소로에 헛불을 놓아 날 못 가게 유인한들, 내가 제까짓 놈 꾀에 빠질쏘냐? 잔말 말고 소로로 가자.” 장졸을 억제(抑制)하고 화용도로 들어갈 제,
34. 정욱과 군사 탄식
[중모리]
이 때 인마(人馬) 기진하여 데인 노약(老弱) 막대 짚고, 상(傷)한 장졸(將卒) 갱려(羹藜)하여, 눈비 섞어 오는 날에 산고수첩(山高水疊) 험한 길로 휘어진 잡목이며, 엉클어진 칡잎을 허첨허첨 검쳐잡고, 후유 끌끌 혀를 차며, “촉도지난(蜀道之難)이 험(險)타한들 이에서 더할쏘냐?” 허저, 장요, 서황 등은 뒤를 살펴 방어하고, 정욱이가 울음을 운다.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평생의 소약지심(所約之心) 운주결승(運籌決勝)하쟀더니 제부종시불여의(諸復終始不如意)라. 초행노숙(草行露宿) 어인 일고? 승상이 망상(妄想)하여 주색(酒色)보면 한사(限死)하고, 임전(臨戰)하면 꾀병터니, 삼부육사(三傅六師) 간 곳 없고, 백만 대병이 몰사하니, 모사(謀事)가 허사되고, 장수 또한 공수(空手)로다.” 이렇듯이 울음을 우니 전별장(全別將)도 울고 간다. “박망(博望)의 소둔(燒屯) 겨우 살아 적벽화전(赤壁火戰) 또 웬일고? 우설(雨雪)에 상(傷)한 길을 고치라고만 호령을 하니, 지친 군사가 원(怨)없을까? 전복병(前伏兵)에 살아오나, 후복병(後伏兵)이 다시 나니, 그 일을 뉘랴서 당하더란 말이냐?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운다.
35. 장승타령
[아니리]
조조 듣고 화를 내어, “네 이놈들, 사생(死生)이 유명(有命)커늘 너희 어찌 하여 또 우는고? 또 다시 우는 자 있으면, 이놈들, 군법으로 참(斬)하리라.” 초원 산곡(山谷) 아득한데, 두세 번 머물러 낙후패졸(落後敗卒) 영솔(領率)하여 한 곳을 당도하니, 적적산중(寂寂山中) 송림간(松林間)에 소리 없이 키 큰 장수 노목(怒目)을 질시(嫉視)하고, 채수염 점잖으니, 엄연(嚴然)히 서 있거늘, 조조 보고 대경(大驚)질색하여, “아이코 여봐라, 정욱아! 저 앞에 나를 보고 우뚝 섰는 저 장수가 저 누구냐? 좀 살펴봐라. 어디서 보던 얼굴 같다.” 정욱이 여짜오되, “승상님, 그게 장승이오.” 조조 더욱 깜짝 놀래, “장승이라니? 장비네 한 일가(一家)냐?” 정욱이 여짜오되, “화용도 이수(里數) 표(標)한 장승이온데, 그다지 놀래시니이까?” 조조 얕은 속으로 화를 솔곳이 내가지고, “이 요망한 장승놈이 영웅 나를 속였구나. 네 여봐라, 그 장승놈 잡어들여서 군법으로 시행하라.” “예.” 좌우 군사 소리치고 장승 잡아들일 적에, 조조가 잠깐 조으는디, 비몽사몽간에(非夢似夢間) 목신(木神)이 현몽(現夢)을 허는디,
[중중모리]
“천지만물(天地萬物) 생겨날 제, 각색 초목(各色草木)이 먼저 나, 유소씨(有巢氏) 신농씨(神農氏) 구목위소(構木爲巢)를 하였고, 헌원씨(軒轅氏) 작주거(作舟車) 이제불통(以濟不通)을 하였고, 석상(石上)의 오동목(梧桐木)은 오현금(五絃琴) 복판(腹板) 되어 대순(大舜) 슬상(膝上)에 비껴 누워, 남풍가(南風歌) 지어내어 시르렁 둥덩 탈 제 봉황도 춤추고, 산조(山鳥)도 날아드니 그 아니 태평이며, 문왕지감당목(文王之甘棠木)은 비파성(琵琶聲) 띠어 있고, 사후(死後) 영혼 관판목(棺板木)은 백골신체(白骨身體) 안장(安葬)하고, 신발실당(身發室堂)하올 적에 율목(栗木)은 신주(神柱) 되어 사시절사(四時節祀) 기고일(忌故日)에 만반진수(滿盤珍羞) 설위(設爲)하고, 분향(焚香), 헌작(獻酌), 독축(讀祝)하니 그 소중이(所重) 어떠하며, 목물(木物) 팔자(八字)가 다 좋되, 이내 일신 곤궁하여 하산작량(下山作樑)이 몇 해런고. 궁궐(宮闕) 동량(棟梁) 못 될진대, 차라리 다 버리고 대광(大廣)이나 바랐더니, 무지한 어떤 놈이 가지 찢어 방천(防川)말과, 동동이 끊어내어 마판(馬板) 구유, 작도판, 개밥통, 뒷간 가래 소욕(所欲)대로 다 헌 후에, 남은 것은 목수를 시켜, 어느 험귀(險鬼) 얼굴인지, 방울눈, 다박수염, 주먹코, 주토(朱土)칠, 팔자 없는 사모품대(紗帽品帶) 장승이라고 이름 지어, 행인거래(行人去來) 대도상(大道上)에 엄연(嚴然)히 세워두니, 입이 있으니 말을 하며, 발이 있어 걸어갈까. 유이불문(有耳不聞), 유목불견(有目不見), 불피풍우(不避風雨) 우뚝 서서 진퇴중(進退中)에 있는 나를, 승상님은 모르시고 그다지 놀래시니, 그리하고 대전(對戰)하며, 기군찬역(欺君纂逆) 아닌 나를 무죄행형(無罪行刑)이 웬 일이오? 분간(分揀) 방송(放送)하옵기를 천만천만(千萬千萬) 바라내다.”
36. 군사 점고
[아니리]
조조가 깜짝 놀라 잠에서 퍼뜩 깨더니마는, “얘들아, 목신(木神) 행형(行刑) 마라. 목신 보고 놀랜 것이 내 도리어 실체(失體)로구나. 도로 그자리 갖다 분간(分揀) 방송(放送)하여라.” 도로 그 자리에 갖다 세웠것다. 조조가 홧김에 일호주(一壺酒) 취케 먹고 앉아서, 오한(吳漢) 양진(兩陣) 장수(將帥) 험구(險口)를 하는데, 이런 가관(可觀)이 없제. “내가 이번 싸움에 패(敗)는 좀 보기는 보았지만은, 도대체 오한 양진 장수 근본(根本)인즉 그놈들이 보잘 것 없는 상놈들이니라. 유현덕 이 손은 제가 자칭 한종실(漢宗室)이라 하되, 양산(陽山) 채마전(菜痲田)에서 돗자리 치기 짚신 삼아 생활하던 궁반(窮班)이요, 관공 그 손은 하동(河東) 그릇장사 점한(店漢)이요, 장비 그 손은 탁군(??郡) 산육장사놈이라. 그놈의 고리눈에 돌리어 유ㆍ관ㆍ장(劉關張) 삼인(三人)이 결의형제(結義兄弟) 맺었것다. 또한 조자룡인가 이 손은, 제가 벼룩 신령(神靈) 아들놈인 체하고, 진중으로 팔팔팔팔팔팔팔 뛰어 다니면서 아까운 장수 목만 쏵쏵 베어가거든. 그놈 근본 뉘 알 리 있나? 그놈은 상산 돌 틈에서 쑥 불거진 놈이라, 뉘 놈의 자식인 줄 모르지마는, 저희끼리 차작(借作)하여 조자룡이라 하것다. 아, 내 나이 실존장(實尊長)인데, 이 놈이 여차하면, ‘이놈, 조조야, 이놈, 조조야.’ 하고 이웃집 개 이름부르듯 불러대니 내가 세욕(世慾)에 뜻이 없단말여. 그놈 뒈졌으면 좋지마는, 죽지도 않고 내 원수놈이었다. 또한 제갈량인지 요 손은, 술법(術法) 있는 체하고 말은 잘 하지마는, 현덕이가 용렬(庸劣)한 자라, 그 손을 데려다가 선생이니, 후생(後生)이니 하지마는, 남양 땅에서 밭 갈던 농토생이 아니냐? 제까짓놈이 알며는 얼마나 알겠느냐? 너희들 그놈들 만나거든 미리 겁내지 마라. 아주 별 보잘것 없는 보리몽탱이니라.” 정욱이 여짜오되,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영유종호(寧有種乎)아. 예로부터 일렀삽고, 병교자(兵驕者)는 패(敗)라 하니, 남의 험구 그만하시고 남은 군사 점고(點考)나 하사이다.” “점고하잘 것 뭣 있나? 정욱이 너, 나, 나, 너, 모두 합쳐서 한 오십 명쯤 되니, 손가락으로 꼽아봐도 알겠구나. 정욱이 네가 점고하여 봐라.” 정욱이가 군안(軍案)을 안고, 군사점고를 하는데, “대장의 안유병이!” “물고(物故)요!” 조조가 듣더니마는, “아차차차차, 아까운 놈 죽어버렸네. 안유병이가 어찌하여 죽었느냐?” “오림에서 자룡 만나 죽었소.” “너희 급히 가서 안유병이 살인 가 물러오너라.” “아, 승상님 혼자 가겨 물러 보시시오.” “야, 이놈들아. 나 혼자 가 맞아 죽게야?” “아, 그러면 소졸등(小卒等)은 어찌 간단 말씀이오?” “그놈이 하도 불쌍해서 하는 말이다. 또 불러라!” “후사파(後司把)에 천총(千摠) 허무적이!”
[중모리]
허무적이가 들어온다. 투구 벗어 손에 들고, 갑옷 벗어 짊어지고, 부러진 창대를 거꾸로 짚고 전동전동 들어오며, “원한(怨恨)하니 제갈량 동남풍 아닐진대 백만 대병(百萬大兵)이 다 죽을까. 어이타 불에 소진(燒盡)하여 돌아가지 못할 패군(敗軍), 갈 도리(道理)는 아니하고 점고는 웬 일이오? 점고 말고 어서 가사이다.” 조조가 화를 내어, “네 이놈! 너는 천총지도리(千摠之道理)로 군례(軍禮)도 없이 오연불배(傲然不拜) 괘씸하구나. 네, 저놈 목 싹 베어 내던져라!” 허무적이 기가 막혀, “예, 죽여주오. 승상 장하(杖下)에 죽게되면, 혼비중천(魂飛中天) 날아 고향을 가거드면 부모, 동생, 처자, 권솔(眷率) 얼굴이나 보겄내다. 당장에 목숨을 끊어 주오.” 조조 감심(感心)하여, “오냐, 허무적아, 우지 마라. 네 부모가 내 부모요, 네 권솔이 내 권솔이니 우지 마라, 우지를 말어라. 이애, 우지 마라.”
37. 골래종이, 전동다리, 구먹쇠
[아니리]
“우지 말고 거기 있다가 점고 끝에 함께 가자. 또 불러라!” “좌기병(右旗兵)에 골래종(骨內腫)이!”
[엇모리]
골래종이 들어온다. 골래종이 들어온다. 좌편 팔 창을 맞고, 우편 팔 살을 맞아, 다리도 절룩절룩, 반생반사(半生半死) 들어와, “예!”
[아니리]
조조가 고만허고 보더니, “에끼, 엇다, 거 병신 부자로구나. 저놈이 어디서 낮잠 자다가 산벼락 맞은 놈 아니냐, 저? 네 여봐라, 우리는 죽겄다 살겄다 달아나면, 저놈은 뒤에 느지막히 떨어졌다가 우리 간 곳만 손가락으로 똑똑 가르쳐줄 놈이니, 너그 여러 날 전쟁불식(戰爭不息)에 소증(素症)인들 없겠느냐. 저놈 큰 가마솥에다가 물 많이 붓고 폭신 진케 달여라. 한 그릇씩 먹고 가자.” 골래종이 골을 내어 눈을 찢어지게 흘기며, “승상님 눈 뽄이 인장식(人醬食) 많이 하게 생겼소.” “엇다, 저놈 보기 싫다. 쫓아내고 또 불러라!” “우기병(右旗兵)에 전동다리!”
[중중모리]
전동다리가 들어온다. 전동다리가 들어온다. 부러진 창대 드러메고, 발세치레 건조(乾調)로 세 발걸음 중뛰엄, 몸을 날려 껑정껑정 섭수 있게 들어와, “예!”
[아니리]
조조가 보더니, “에끼, 웬 놈이 저리 성하냐?” “성하거든 어서 회쳐 잡수시오.” “네 이놈, 그게 웬 말인고?” “아, 승상님이 병든 놈은 달여 먹자기로, 성한 놈은 회쳐 잡수라 하였소.” “워따, 이놈아. 너는 하도 성하기에 반가와서 하는 말이로다.” “승상님 군사들이 미련해서 죽고 병신이 되지요.” “네 이놈, 그게 웬말인고?” “승상님도 생각을 해보시오. 싸움할 때는 뒤로 숨고, 싸움 아니할 때는 앞에서 저정거리고 다니면 죽을 바도 없고 병신될 바 만무(萬無)하지요.” “워따, 그놈 뒀다가 군중에 씨 할까 무섭구나. 저놈 보기 싫다. 쫓아내고 또 불러라.” “마병장(馬兵長) 구먹쇠!” “예이!” “야, 이놈아, 너는 전장에 잃은 건 없느냐?” “예, 잃은 건 별로 없습니다.” “야, 그 신통하구나. 말은 다 어쨌는고?” “팔아버렸소.” “이런 흉(兇)한 도적놈이 있나. 아, 이놈아, 그 좋은 말을 날더러 묻지도 않고 네 것 팔듯 팔았단 말이냐?” “그런 게 아니라, 한나라 공명이가 사러 보내더라고 왔기에, 미리 대돈금으로 열일곱 마리에 양 일곱 돈 받고 팔아버렸소.” “야, 이놈아. 말 없으면 무엇을 타고 간단 말이냐?” “아, 승상님도, 타고 가실 것은 걱정 마시오. 들것을 만들어서 타고 가시든지, 정 편케 가실 양이면, 지게에다 짊어지고 설렁설렁 가면, 길 붇고 더욱 좋지라우.” “아, 이놈아. 내가 앉은뱅이 의원이냐? 지게에다 짊어지고 가게, 이 쳐 죽일 놈아! 그놈 눈구녁이 큰 일 낼 놈이로고.” “아, 눈이사 승상님 눈이 더 큰 일 내게 생겼지라우.” “여봐라, 정욱아. 이놈들 말말에 폭폭하여 나 죽겄다. 점고 그만하고 내 시장한께 어서 군량(軍糧)지기 불러 밥 지어라!”
[중모리]
점고하여 보니 불과 백여 명이라. 그 중에 갑옷 벗고, 투구 벗고, 창 잃고 앉은 놈, 누은 놈, 엎진 놈, 퍼진 놈, 배가 고파 기진(氣盡)한 놈, 고향을 바라보며 앙천통곡(仰天痛哭) 우는 소리 화용산곡(華容山谷)이 망망(茫茫)하다. 조조 마상(馬上)에서 채를 들어 호령하며 행군길을 재촉하더니마는,
38. 관운장 출현
[아니리]
“히히 해해” 대소하니, 정욱이 기가 막혀, “얘들아, 승상님이 또 웃으셨다! 적벽에서 한 번 웃어 백만 군사 몰사하고, 오림(烏林)에 두 번 웃어 죽을 봉변당하고, 이 병 속 같은 데서 또 웃어놨으니, 이제는 씨도 없이 다 죽는구나!” 조조 이 말 듣고 얕은 속에 화를 내어, “야, 이놈들아. 내가 웃으면 복병이 꼭꼭 나타난단 말이냐? 느그놈들도 내 웃으면 트집 잡지 말고 생각을 좀 해 봐라. 만일 주유 공명이가 이곳에다가 복병(伏兵)은 말고 병든 군사 여나믄만 묻어 두었더라도, 조조는 말고 비조(飛操)라도 살아갈 수 있겠느냐?” “히히 해해” 대소하니,
[자진모리]
웃음이 지듯마듯 화용도(華容道) 산상(山上)에서 방포성(放砲聲)이 ‘꿍!’ 이 너머에서도 ‘꿍!’ 저 너머에서도 ‘꿍 궁그르르르르르르르!’ 산악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바뀐 듯, 뇌고 나팔 우, 쿵 쾡 처르르르르르르르. 화용산곡(華容山谷)이 뒤끓으니, 위국(魏國) 장졸(將卒)들이 혼불부신(魂不附身)하여 면면상고(面面相顧) 서 있을 제, 오백(五百) 도부수(刀斧手)가 양 편으로 갈라서서 대장기(大將旗)를 들었는데, ‘대원수(大元帥) 관공(關公) 삼군(三軍) 사명기(司命旗)라!’ 둥두렷이 새겼는데, 늠름하다 주안봉목(朱顔鳳目), 와잠미(臥蠶眉), 삼각수(三角鬚)에 봉의 눈을 부릅뜨고, 청룡도(靑龍刀) 비껴들고, 적토마(赤兎馬) 달려오며, 우레 같은 소리를 벽력같이 뒤지르며, “네 이놈, 조조야! 네 어디로 도망을 갈다? 짜른 목 길게 빼어 청룡도 받아라!” 조조가 기가 막혀, “여봐라, 정욱아! 오는 장수 누구냐?” 정욱이도 혼을 잃고, “호통 소리 장비 같고, 날랜 모양 자룡 같소!” “아, 이 녀석아. 자세히 좀 살펴봐라!” 정욱이 정신 차려 살펴보고 하는 말이, “기색(旗色)은 홍색이요, 위풍(威風)이 인후(仁厚)하니 관공(關公)일시 분명하오.” “더욱 관공이량이면 욕도무처(欲逃無處)요, 욕탈무계(欲脫無計)라.”
[아니리]
“사세도차(事勢到此)하니 암커나 대적(對敵)하여 볼밖에는 도리가 없다. 너희들도 힘껏 한 번 싸워보아라.” 정욱이 여짜오되,
[중모리]
“장군님의 높은 재주, 호통 소리 한 번 하면 길짐승도 갈 수 없고, 검광(劍光)이 번뜻하면 나는 새도 뚝 떨어지니, 적수단검(赤手單劍)으로 오관참장(五關斬將) 하던 수단(手段), 인마(人馬) 기진(氣盡)하였으니 감히 어찌 당하리까? 만일 당적(當敵)을 하려다는 씨 없이 모두 죽을 테니, 전일 장군님이 승상 은혜를 입었으니, 어서 빌어나 보옵소서.” “빌 마음도 있다마는, 나의 웅명(雄名)이 삼국에 으뜸이라, 사즉사(死卽死)언정 이제 내가 비는 것은 후세의 웃음이 되리로다.”
39. 조조 목숨 애걸
[아니리]
“허허 얘들아. 내가 신통한 꾀를 하나 생각했다.” “무슨 꾀를 생각했소?” “내가 죽었다고 홑이불로 덮어놓고 군중(軍中)에 발상(發喪)하고, 느그들 모두 발 뻗어놓고 앉아 울면, 송장이라고 피할 것이니, 그 때 홑이불 뒤집어쓰고 그냥 살살 기다가 한달음박질로 달아나자.” 정욱이 여짜오되, “여보시오, 승상님. 산 승상 잡으려고 양국 명장(名將)이 쟁공(爭功)한데, 사승상(死丞相) 목 베기야, 청룡도 그 잘 드는 칼로 누운 목 얼마나 그리 힘들여 베오리까? 공연한 꾀 냈다가 목만 허비하고 보면, 다시 움 길어날 수 없고, 화용원귀(華容怨鬼) 될 터이니, 얕은 꾀 내지 말고 어서 들어가 한 번 빌어나 보옵소서.” 조조가 하릴없이 장군 마하(馬下)에 빌러 들어가는디,
[중모리]
투구 벗어 땅에 놓고, 갑옷 벗어서 말께 얹고, 장검 빼어서 땅에 꽂고, 대하머리 고추상투 가는 목을 움츠리고 모양없이 들어가서, 큰 키를 줄이면서 간교한 웃음소리로, “히히 해해.” 몸을 굽혀 절하며 하는 말이, “장군님 뵈온 지 오래오니, 별래무양(別來無恙)하시니까?” 관공의 어진 마음 마상(馬上)에서 몸을 굽혀 호언(好言)으로 대답하되, “나는 봉명(奉命)하여 조승상을 잡으려고 이곳에 와 복병해서 기다린 지 오래것다!” 조조가 비는 말이, “탁명한사(濁名寒士) 조맹덕은 천자의 명을 받아 만군(萬軍)을 거느리고, 천리 전장 나왔다가 오적(吳賊)의 패(敗)를 보고, 초수(楚水) 오산(吳山) 험한 길에 황망(慌忙)히도 가옵다가, 천만의외(千萬意外) 이곳에서 장군님을 만났으니, 어찌 아니 반가리까? 유정(有情)하신 장군님은 고정(古情)을 생각하여, 살려 돌려보내 주심을 천만천만(千萬千萬) 바라내다.” 관공이 꾸짖어 왈, “이놈, 네 말이 간사한 말이로다. 내 비록 전일에 후은(厚恩)은 입었으나, 오늘날은 오(吳)?한(漢) 양진사(兩陣事)에 어찌 사(私)로 공(公)을 폐(廢)하리오? 진작 죽일 것이로되, 전일 면분(面分) 생각고 문답(問答)은 서로 하거니와, 필경(畢竟)은 죽이려니. 네 누세한록지신(累世漢祿之臣)으로 능상겁하(凌上怯下)할 뿐더러, 삼분천하(三分天下) 분분(紛紛)함도 널로 하여 요란하고, 기린각충의인(麒麟閣忠義人)도 널로 하여 훼파(毁破)되니, 난세지간웅(亂世之奸雄)이요, 치세지능신(治世之能臣) 너를 뉘 아니 미워하리? 좋은 길 다 버리고 화용도로 들어올 제는 네 운명이 그뿐이니, 잔말 말고 칼 받아라!” 조조가 다시 애긍(哀矜)히 비는 말이, “장군님, 듣조시오. 절흉(絶凶)같은 흉노(匈奴)로되, 백등칠일지위(白登七日之圍)하여 한고조(漢高祖)를 살렸삽고, 지백지신(智伯之臣) 예양(豫讓)이는 조양자(趙襄子)를 죽이려고 협비수(挾匕首)하고 궁중도측(宮中塗?)하였으되, 조양자 어진 마음 의인(義人)이라 이르시고 오근피지(吾謹避之)하였으니, 장군님도 그를 보아 소장을 살려주고, 삼가 피하소서.” 관공이 꾸짖어 왈, “예양은 의인(義人)이요, 조양자는 천중대인(天中大人)이라 일이 그러하거니와, 너는 한나라 적자(賊子)요, 나는 한나라 의장(義將)이라, 너 잡으러 예 왔으니, 어찌 너를 살려 보낼쏘냐? 갈 길이 총급(悤急)하니, 잔말 말고 칼 받아라!”
40. 관운장 호령
[중중모리]
우뢰같은 호통 소리 조조의 약간 남은 일촌간장(一寸肝腸)이 다 녹는다. “아이고 여보, 장군님. 시각(時刻)에 죽일망정 나의 한 말을 들어보오. 전사(前事)를 잊으리까? 장군님의 장략(將略)으로 황건적(黃巾賊) 패(敗)를 보아, 도원형제(桃園兄弟) 분산(分散)하고 거주(居住)를 모르실 제, 내 나라로 모셔 들여 삼일소연(三日小宴), 오일대연(五日大宴), 상마(上馬)에 천금(千金)이요, 하마(下馬)에 백금(百金)이라. 금은보화 아끼잖고 말로 되어서 드렸으며, 천하일색(天下一色) 골라 들여, 고대광실(高臺廣室) 높은 집 미녀충공(美女充空)하였으며, 조석(朝夕)으로 문안 등대(等待), 정성으로 봉양터니 그 정회(情懷)가 적다하며, 도원형제 만나려고 고귀(告歸)없이 가실 적에, 오관(五關) 육장(六將)을 다 죽여도 나는 원망을 아니 하고 직지(直旨) 호송을 하였는데, 장군님은 어찌하여 고정(古情)을 저버리시고 원수같이 미워하니, 의장(義將)이라 하신 말씀 그 아니 허사(虛辭)니까?”
[중모리]
관공이 듣고 꾸짖어 왈, “네 이놈, 조조야. 네 말이 모두 당치않다. 내 그 때 운수 불길하여 네 나라 갔을 적, 하북대장(河北大將) 안량(顔良), 문추(文醜)가 네 나라 수다(數多) 장졸 씨 없이 모두 죽이거늘, 은혜를 생각하니 그저 있기가 미안하여, 신하로 자칭(自稱)하고 전장으로 나갈 적에, 네 손으로 술을 부어 내게 올리거늘, 잔을 잠깐 머무르고 적토마상(赤兎馬上)에 선뜻 올라 나는 듯이 달려가, 일고성(一高聲) 한 칼 끝에 안량, 문추 두 장수 머리 선뜻 땡기렁 베어 들고 네 진으로 돌아오니 술이 식지 아니했고, 적장이 황겁(惶怯)하여 백마위진(白馬圍陣) 무너지고, 벽산도 천 리 땅을 일전(一戰) 모두 앗아내야 네 안책(案冊)에다 기록하니, 그 은혜 갚아 있고, 오늘날은 너를 잡을 때라, 군령장(軍令狀)에다 다짐을 두었으니, 잔말 말고 칼 받아라!”
41. 주창의 재촉
[아니리]
칼을 번쩍 빼어들고 조조 앞으로 바짝 달려드니, 조조가 질색하여 옷깃으로 가리면서 칼 막으려 방색(防塞)하니, 관공이 웃으시며, “네가 박적을 쓰고 벼락은 피할망정, 네 옷깃으로 내 청룡도를 피한단 말이냐?” “글쎄요. 초행노숙(草行露宿)하옵다가 겁결에 잠이 깨어 초풍할까 조급(躁急)하니, 장군님 제발 가까이 좀 서지 마옵소서.” “이놈, 네 말이 날다려 유정(有情)타 하며, 어찌 가까이 서지는 말라는고?” “글쎄요. 장군님은 유정하오나, 청룡도는 무정하여 고의를 베일까 염려로소이다.” 관공이 칼을 들어 조조 목을 베이는 듯, “검여(劍汝) 둘이 혼인(婚姻)하면 생기자유혈(生其子流血)이라. 네 목에 피를 내어 내 칼을 한번 씻으려 함이로다.” 칼을 번뜻 들어 조조 등 너머의 땅을 컥 찍어노니, 조조 정신 아찔하여 군사들을 돌아다보며, “얘들아, 청룡도가 잘 든다더니 과약기언(果若其言)이로구나. 아프잖게도 잘도 도려가신다. 내 목 있나 봐라.” 관공이 웃으시며, “목 없으면 죽었으니, 죽은 조조도 말을 하느냐?” “예. 그는 정신이 좋삽기로 말은 겨우 하지마는, 혼은 벌써 피란(避亂) 간 지가 오래로소이다.” 관공은 본디 조조의 은혜를 태산같이 입은지라, 조조의 애긍(哀矜)히 비는 말에는, 아무리 철석(鐵石)같은 간장(肝腸)인들 감동 아니할 리가 있겠느냐? 조조를 놓을까 말까 유예미결(猶豫未決)하던 차에,
[자진모리]
주창(周倉)이 여짜오되, “장군님은 어이하여 첫 칼에 베일 조조 여태까지 살려두니, 옛 일을 모르시오? 강동(江東)의 모진 범이 함양(咸陽)을 파(破)한 후, 홍문연(鴻門宴) 앉은 패공(沛公) 무심히 그를 놓아 항장(項莊)의 날랜 칼이 쓸 곳이 없었고, 계명산(鷄鳴山) 추야월(秋夜月)에 장량(張良)의 옥퉁소 한 곡조 슬피 불어 팔천병(八千兵) 흩었으니, 오강풍랑(烏江風浪)의 자문사(自刎死)라. 하물며 조맹덕(曹孟德)은 치세지능신(治世之能臣)이요, 난세지간웅(亂世之奸雄)이라. 소량지인(小量之人) 이요, 양호유환(養虎遺患)이라. 장군이 만일 놓사오면 소장(小將)이 잡으리다.” 별안간 달려들어 조조의 멱살을 꽉 잡으며, “왕지명이(王之命) 현어주창수(懸於周倉手)라, 내 손에 달린 목숨 네 어디로 피할쏘냐.” 냅다 잡고 흔들어노니,
42. 관운장이 조조 살려줌
[아니리]
조조가 벌벌 떨며, “여보, 주별감(周別監). 내 이다음에 만나거든 주별감 좋아하는 술 많이 받아드릴 테니 제발 날 좀 놔주시오.” 관공이 가만히 보시더니, “아서라, 아서라. 그리 마라. 어디 차마 보겠느냐? 목불인견(目不忍見) 이로구나. 목숨일랑 끊지 말고 사로잡아 가자.” 좌우에 제장군졸을 한편으로 갈라 세우고 관공이 막 말머리를 돌리실 제, 조조가 급히 말을 잡아 타고 일(一)마장을 달아난지라. 관공이 거짓 분을 내어, “내 분부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달아나니, 그 죄로 죽어 보라!”
[중모리]
조조 듣고 말 아래 뚝 떨어지니, 장졸들이 황겁하여 장군 마하(馬下)에 가 두 손 합장(合掌) 비는데, 사람의 인륜(人倫) 으로는 못 볼레라. “비나이다, 비나이다, 장군님전 비나이다. 살려주오, 살려주오, 우리 승상 살려주오. 우리 승상 살려주면, 높고 높은 장군 은혜 본국 천 리 돌아가서 호호만세(呼號萬歲)를 하오리다.” 조조 기가 막혀, “우지 마라! 불쌍한 장졸들아, 우지를 말어라. 나 죽기는 설잖으나, 잔약(孱弱)한 너의 정상(情狀) 불인견지목(不忍見之目)이로구나. 풍파의 곤한 신세 곤귀고향(困歸故鄕) 가는 길에 장군님을 만났으니, 인후(仁厚)하신 처분으로 설마 살려주시제, 죽일쏘냐.” 관공이 거짓 꾸짖어 왈, “이놈, 네 말이 당치않은 말이로다. 내 너를 잡으러 올 제 군령장에다 다짐을 두었으니, 그대 살고 나 죽기는 그 아니 원통하냐?” 조조가 애연(哀然)히 비는 말이, “현덕과 공명 선생님이 장군님 아옵기를 오른 팔로 믿사오니, 초로(草露)같은 이 몸 조조 아니 잡어가더라도 군율(軍律) 시행은 안 하리다. 장군님이 타신 적토마(赤兎馬)며 청룡도(靑龍刀)를 소장(小將)이 드리고, 그 칼에 죽삽기는 그 아니 원통허오? 별반통촉(別般洞燭)을 허옵소서.” 관공이 감심(感心)하여 조조를 쾌(快)히 놓고 회마(回馬)하여 돌아가니, 세인(世人)이 노래를 하되, “슬겁구나, 슬겁구나. 화용도 좁은 길에 맹덕이가 살아가니, 천추(千秋)에 늠름한 대장부는 한수정후(漢壽亭侯)신가 하노매라.”
[아니리]
본국으로 돌아와 공명전(孔明前) 배알(拜謁)하되, “용렬(庸劣)한 관모(關某)는 조조를 잡고도 놓았사오니 의율시행(依律施行) 하옵소서.” 공명이 급히 내려와 관공의 손을 잡고,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 고(故)로 장군을 그곳에 보냈사오니, 그 일을 뉘 알리오.”
[엇중모리]
제갈량은 칠종칠금(七縱七擒)하고, 장익덕은 의석엄안(義釋嚴顔)하고, 관공은 화용도 좁은 길에 맹덕(孟德)이를 살려주니, 인후(仁厚)하신 관공 이름 천추(千秋)에 빛나더라. 그 뒤야 누가 알리. 어질더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