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2018. 2. 13. 12:07잡주머니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한국전통연희사전
樂民(장달수) | 조회 129 |추천 0 | 2018.02.01. 10:30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노 중 방*


<차례>
1. 서론
2. 목련고사와 바리공주 서사무가
3. 중국 법사희와 바리공주 서사무가
4. 결론


<국문초록>
이 논문은 한국 목련고사 유전 상황을 밝히기 위해 바리공주 서사무가와 목련고사를 비교 연구하였다. 목
련고사란 불교 우란분재와 함께 전승되었던 목련의 지옥구모 고사를 말한다. 이 고사는 인도에서 발원하였고
중국에서 발전하여 한국과 일본에까지 전승되었는데, 유전의 시기가 상당히 오래되었고 불교와 민간에 널리
전래되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어왔다. 한국의 목련고사는 주로 ?불설대목련경?을 중심으로 불교와 민간에
서 유전되었다. 이 판본은 변문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대본으로의 활용이 가능한 판본이어서 그 유전 과정이
상당히 주목되었다. 그런데 무속에서도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목련고사를 모방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무속은 그 유파가 많고 무의례 또한 다양하여 연희창 형식으로 진행되는 굿판은 공연적 성격이 짙다. 서사무
가 바리공주가 목련고사의 내용을 모방하여 연희창의 형식으로 공연의 성격을 포함한 제의로써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목련고사와 그 연행이 불교계를 넘어 무속에서도활발히 전승되었음을 증명해준다. 기
실 한국의 무속은 지옥관념이 부족하여 주로 불교에서 습합의 형식으로 빌려와 자신의 모습으로 변용하였는
데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 목련고사는 모방대상의 최고 우선순위에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도교법사희도불교목련고사의연행을모방한사실이있었다. 중국은초기변문을통해매년우란분
재 때 사찰에서 목련희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유행의 정도는 지금과 같지 않아 일 년 중 상당히 중요한
행사로서성대히진행되었다. 이러한불교계의목련고사전승이 해마다큰호응을얻으며전승되자도교의법사
들이불교공연형식의법회를빌려와자신들에게맞게변용하여공연과도법활동이융합된새로운형식의목련
희 공연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 도사 법사희는 공연 속에 제의 의식이 들어가 있는 것이며, 제의 과정에 목련
희 공연이 진행되었다. 이 도법 형식의공연이 끝나면 공연의 주제자는 망자가 지옥에서벋어났다고 믿었다. 이
* 한밭대학교 중국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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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관련하여 한국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불교 목련고사를모방하였던 사실은 중국의도교법사희의 탄생과상당
히 흡사하다. 한국역시 불교계의 우란분재때 목련고사 관련 공연이나 법회가 크게성행하였는데, 이것을무속
에서 모방하여 기존 바리공주의 원형고사에 목련고사의 구성이나 내용까지 포함시켰다. 이러한 바리공주 서사
무가는 무속의 씻김굿 속에서 구연되고, 이 공연격의 구송 과정이 끝나면 망자가 천도된 것으로 여겼다.
주제어:목련고사, 바리공주, 서사무가, 우란분재, 목련경, 도교, 법사희


1. 서론
目連故事의 유전은 盂蘭盆齋의 전승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매년 개최되는 우
란분재는 민간에 끊임없이 목련고사가 전승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본
래 ?불설우란분경?에 “매년 칠월 십오일은 항상 효순과 자비로써 낳아 주신 부
모와 칠세의 부모에게 盂蘭盆을 행하여 부처와 승에게 시주함으로써 부모의 길
러주심과 자비로운 사랑의 은혜에 보답하라.”1) 고 하여 우란분절의 발생이 목련
고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지속되는 의식의 전승을 통
해 고사는 발전을 거듭하였고, 발전된 고사는 목련 관련 문화 발전에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고사와 제의가 함께 결합되어 전승된 이유로 그 전승은 자연스럽게
유구한 역사를 이어나갔고, 부모에 대한 효를 주제로 삼았던 만큼 목련고사의 향
유계층은 상하 민간은 물론 왕실에 이르기 까지 상당히 광범위하게 펴져있었다.
이로써 목련고사의 문예사적 가치는 국제적으로도 상당히 높게 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며, 중국에서는 이미 목련고사 전승에 관한 제반사항을 “目連文
化”2)라 지칭하고 이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일본에서도 목련


1) “年年七月十五日, 常以孝順慈憶所生父母, 乃至七世父母爲作盂蘭盆施佛及僧, 以報
父母長養慈愛之恩.” ?佛說盂蘭盆經?
2) 왕정신은 목련문화를 말하길: “목련문화란 목련구모 고사를 뼈대로 하고 인과 응
보사상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것은 곡예예술을 주요 표현 방식으로 역사적 발
전을 거쳐 점차 형성된, 그리고 종교와 민속이 희곡에 융합된 문화 복합체”라고
하였다. 본고에서 사용하는 목련문화는 왕정신의 견해에 따른다. 王廷信, 黃竹三,
「試論‘目連文化’」, ?民族藝術? 第4期, 廣西民族文化藝術研究院,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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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관련된 연구가 민간 제의와 관련하여 상당히 자세하게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한국의 목련문화 연구는 일부 관심 있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진행되었으나, 실직적인 전승 자료의 부족으로 구체적이고 심도 있
는 유전 상황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매년 끊임없이 우란분재나 百中등의 민속문화가 불교나 민간에
서 뿌리 깊게 전승되었다. 현재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민간과 사찰의 우
란분재 의식이나 이와 관련된 여러 문화유산들이 그 성황의 사실을 증명한다.
특히 불교문화의 유전에 있어 한국은 일본에 교량으로서 역할을 하였고, 나아
가 목련문화는 불교문화의 정수라 할 만하니 한·중·일 삼국의 불교문화의 교류
차원에서 보아도 한국 목련문화 역시 대단한 관심 속에서 전승되었을 것은 분
명하다. 한국 목련문화의 유전과 그 연행의 정황이 이처럼 분명하니 우리는 좀
더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개략적이라 하더라도 목련고사의 전승이나 관련 공
연의 유전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모습을 밝혀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 목련고사의 연구사를 살펴보면 최초로 ?佛說大目連經?3)과 敦煌變
文과 연관성을 연구한 민영규의 「목련경과 돈황의 변문」을 들 수 있다.4) 이
논문에서 민영규는 한국에 유전되고 있는 ?목련경?이 중국의 변문과 거의 동
질적 수준에 있음을 밝히고 “돈황의 변문과 우리의 위경은 하나이고 둘이 아
니다”고 하였다. 사실 ?목련경?과 돈황의 변문 3종5)은 그 내용상의 변화 과
정을 살펴보아도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 이 위경이 목련변문과 매우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단지 이 ?목련경?이 어떠한 방식으로 공연되거나
혹은 활용되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목련경?은 그 내용상의 특성과 변문과의 연관성 등으로 소설적
특성이나 희곡적 성격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6) 목련의 무소불위한 능력과
3) 이하 ?목련경?으로 간칭.
4) 민영규, 「목련경과 돈황의 변문」, ?사학회지? 1, 1963.
5) 돈황삼종의목련고사변문작품은<目連變文>, <目連緣起>, <大目乾連冥間救母變文>을말한다.
6) 사재동, 「목련전 연구」, ?한국언어문학? 3, 한국언어문학회, 1965. 서병윤, 「불설목
련경의 서사문학 고찰」, 충남대학교 석사논문, 1983. 박광수, 「한국목련전승의 유
전양상」, ?우란분재와 목련전승의 문화사?, 중앙인문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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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여정을 묘사한 이 고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소설적 내용을 완성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 이 작품이 ?月印釋譜?에 포함되고 운문이 더해짐으로
결과적으로 講唱文學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불서는 한국에서
어떠한 형식으로든 연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것이 중국의 잡극이나 전기
처럼 정형화된 모습으로 나타나 있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위경이 실제 저
본으로 응용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에 대해서 엄국천은 이 위경을 공
연텍스트로 설정하고 ?목련경?과 변상과의 관련성, ?月印千江之曲?을 통한
유추, 우란분재와의 관계 등을 연구한 결과 이 불서가 공연텍스트로 인정하
기에 무리가 없다고 하였다.7) 이어서 그는 이어의 희곡이론을 바탕으로 ?목
련경?의 구조를 분석하여 그것이 동양의 희곡이론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므로 이 ?목련경?은 중국의 목련변문과 동일한 형태의
공연 텍스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한국에도 목련고사가 성황리에 전승되었고 또한 그것이 여러 문학 장
르의 형식을 빌려 유전되었던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목련경?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학성은 우리에게 이 불서가 한
국 문예사상에서 반드시 그 공연적 실체가 있었음을 추론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목련문화 연구는 ?목련경?에서 크
게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목련고사의 연행 방식이
어떠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한국에서 구전으로 전승되었던 敍事
巫歌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서사무가 중에는 몇몇 지옥고사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존재하고 그 속에는 목련고사를 모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 때
문이다. 대표적으로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그러한데 이 작품은 풍부한 서사성
을 지니며 실제 무당에 의해서 관중을 향해 직접 공연되었다. 그리고 서사무
가의 구연 방식 중 演戱唱은 구경 온 관중에게 재미를 더해주기 위하여 오락
적 요소를 가미한 무가 구연 방식인데 이 연희창은 한 때 판소리가 서사무가
에서 기원하였다는 설이 나올 정도로 다분한 공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7) 엄국천, 「<목련경>의 공연 텍스트적 성격과 구조 분석」, ?중앙논단? 20, 中央大學
校大學院學生會,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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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굿판의 공연적 성격은 그것이 벌어지는 지역과 무당의 성격에 따라 많
이 좌우되었고 특히 동해안 지역 세습무들의 굿판을 보면 그것이 실제 한국
판소리와 매우 흡사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 연희 방식의 무의례 진행에는 종
종 굿판의 분위기를 흥겹게 하기 위해서 빈번한 삽입가요의 첨가 하였고, 그
삽입가요의 첨가 방식은 노래와 대사의 구분이 명확하다. 또한, 그것이 양
중8)이라는 악사를 대동하여 공연자와 연주자가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나뉘며, 관중의 참여도 역시 매우 높아 이것이 놀이적 성격을 포함한 하나의
공연 형태를 이루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서사무가 바리공주가 연희창과 같은
방식으로 구연되었을 것인데 서사무가를 일종의 공연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고 이들 서사무가에 목련고사를 모방한 사실을 증명한다면, 그것으로써 한
국식 목련고사 공연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고 이것을 증명한다면 그 이면으로서 기왕에 존재했던 한국 목련고사의 연
행 정황을 실질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겠다.
본고에서는 먼저 서사무가 바리공주와 목련고사의 연관성을 자세히 살펴
보고 이들의 모방 관계를 증명하겠다. 이를 통해 한국 목련고사 전승이 불교
에서만 머물지 않고 변형된 형태로써 한국 무속인의 공연을 통해 그 전통을
이어왔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타 종교가
불교 목련고사를 모방 사실이 단지 한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
다. 가까운 중국 도교에서도 불교 목련고사 연행을 모방하여 道教法師戲라
는 형식의 새로운 공연 모습으로 재창조한 적이 있었다. 이 극종은 의식과 공
연이 하나로 접목된 형태로 한국의 바리공주 연행의 모습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 그러므로 한·중 양국의 타 종교에서 불교의 목련고사 연행을 모방한 사
실을 바탕으로 이들 고사 간 연행의 모방 모습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상
당히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본고의 마지막에서는 한국의 바리공주가
연행되었을 상황을 백중이라는 민속제의 의식과 관련하여 이 서사무가가 어
떠한 방식으로 공연되었을지에 대해서도 간단히 추론해 보겠다.
8) 홍태한, 「서사무가바리공주의형성과전개」, ?구비문학연구?4, 한국구비문학회, 1997, 408쪽.
106 語文硏究85(2015. 9)
2. 목련고사와 바리공주 서사무가
서사무가 바리공주는 그 분포도가 전국적이고 매우 잘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
인 무가이다. 넓은 분포로 인해 다른 무가에 비하여 그 유전 상황을 잘 살펴볼
수 있고, 잘 짜인 구성으로 문학적 가치도 높아 서사무가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
고 있다. 현재까지 채록된 서사무가 바리공주의 구전본은 모두 47종9)에 이른다.
우선 목련고사의 모방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중서부 지역의 바리공주 구
송본 중에서 서울 문덕순본10)을 대상으로 그 본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1)
옛날에 업비대왕님이 삼나라 다스리면서도 정전이 비어 국모가 없어 길대
중전마마와 길일을 택하여 혼인하고자 하였다. 혼인 날짜를 정하기 위해 문복
(問卜)하였는데, 문복의 결과 금년에 길례를 하면 칠공주를 얻게 될 것이고
명년에 길례를 하면 세자대군을 보리라 하였다. 그러나 업비대왕은 문복의 결
과를 무시하고 금년에 혼례를 치르도록 결정한다. 이후 업비대왕은 문복의 결
과대로 연이어 딸을 낳게 되고 일곱째까지 딸을 낳자 "나는 전상에 죄가 남아
옥황상제 일곱 딸 점지하옵시니 서해 용황에 진상이나 보내리다"라고 말하고
마지막 딸을 옥함에 넣어 버리는 죄를 짓는다. 이때 석가세존이 삼천 제자를
거느리고 사해도 구경하고 인간제도도 하러 나오다가 타향산 서촌에서 서기
(瑞氣)를 보고 목련존자에게 그곳에서 "하날 아는 천인"을 찾으라 한다. 목련
이 찾지 못하자 석가세존은 "네 공부가 멀었다"라고 말하고 나아가 옥함 안에
있는 바리공주를 찾는다. 그때 근처에 지나가던 비리공덕 할아비와 비리공덕
할미가 있어 이들에게 바리공주를 데려다가 기르라 명한다. 비리공덕 할미 할
아비는 바리공주를 키우게 되고 시간이 흘러 바리공주가 커서 자신의 부모를
찾자 하늘과 땅이 부모라 하며 둘러댄다. 바리공주가 십오 세가 되었을 때 업
비대왕과 길대중전마마가 한날한시에 병에 걸린다. 문복을 하여 물어보니 하
늘이 내린 자손을 버린 죄로 죽을병에 걸렸고, 바리공주를 찾아 약수를 구해
9) 홍태한, 「바리공주의 연구 성과 검토 및 무가권의 구획」, ?바리공주 서사무가 전
집? 제1권, 민속원, 1997, 15쪽.
10) 김진영, 홍태한 공편저,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제1권, 민속원, 1997, 150-175쪽.
11) 홍태한은 일찍이 무가권의 구획을 4가지로 나누었는데 그 중 중서부 지역의 바리
공주 서사무가에서 목련고사의 모방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07
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한 신하가 나와 바리공주를 찾으러 갈 것을
자처하고 바리공주는 대왕마마를 만나게 된다. 바리공주가 나머지 여섯 형제
에게 어찌 부모를 위해 효양하러 가지 못하는지 묻자 모두 핑계를 대고 거절
한다. 이에 바리공주가 부모님을 위하여 스스로 나서며 무쇠지팡이와 무쇠주
령, 무쇠신을 신고 길을 떠난다. 바리공주가 무쇠주령을 한 번 들너 짚으니 천
리를 가고, 두 번 둘너 집으니 이천 리를 가고, 세 번을 둘너 집으니 삼사천 리
를 간다. 길을 가던 중에는 석가여래를 만나는데 석가는 효행의 길을 나선 바
리공주에게 낭화 세 가지와 금주령을 건네준다. 이어 바리공주는 칼산지옥, 불
산지옥, 독셔지옥, 한빙지옥, 구렁지옥, 배암지옥, 물지옥, 흔암지옥, 무간 팔만
사천지옥을 넘더니, '구름 슈여 넘고 바람도 슈어 넘는 곳'에 다다른다. 난관에
이른 바리공주가 낭화를 흔드니 지옥이 무너져 내리고 지옥에 갇혀있던 죄인
들이 풀려난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니 '짐생의 깃도 가라안고 배도 없는 곳'에
도착한다. 이에 바리공주가 부처의 금주령을 던지니 한 줄 무지개가 생겨나
그것을 타고 건너간다. 그곳을 건너자 무장승이 나타나고 바리공주는 부모 구
할 약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무장승은 자신을 위하여 삼 년 물 기르
고 나무 하여줄 것을 요구하며 또한 결혼하여 아이 낳아줄 것을 청한다. 바리
공주는 약수를 얻기 위해 무장승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같이 지내다 꿈속에서
부모가 위독함을 알게 된다. 바리공주가 급히 돌아오는 도중에 저승 가는 배
들의 행렬을 구경하다가 자신의 부모 상여가 나온다는 말을 목동에게서 듣는
다. 바리공주가 자신이 가져온 약수를 부모에게 먹이자 죽었던 부모의 몸이
부활한다. 다시 살아난 부모가 바리공주에게 큰 보상을 해주려 하지만 바리공
주는 모두 마다하고 인도국왕 보살이 되어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였다.
상기 서사무가의 주제는 바리공주가 부모를 구하기 위해서 지옥을 여행한다
는 내용이다. 이 무가는 주로 씻김굿에서 구송되는데 지옥에 관련된 내용이나
주인공의 무소불위한 능력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무속에서 불교의 지옥
관념을 차용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므로 이 바리공주 서서무가 역시 불
교의 지옥관념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의 목련고사를 읽어본 독자
라면 상기 바리공주의 내용을 보고 이 두 고사 간의 비슷한 점을 발견했을 것이
다. 이제 이 두 고사 간의 유사점을 찾아보고 이들 간의 관계를 살펴보겠다.
첫 번째 나타나는 유사성은 목련에 대비되는 주인공 바리공주의 역할과 위치
108 語文硏究85(2015. 9)
이다. 부모를 구하기 위해서 지옥에 들어간다거나 그곳에서 그녀가 펼쳤던 신통
한 능력, 그리고 이 고사의 주인공으로서 항상 효행을 덕목으로 삼고 있었다는
점 등이 목련고사의 목련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들 주인공은 모두 죽은 자의 영
혼을 구제해 주었고 그 과정에는 석가가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이 지옥
여정을 완료함으로 결국 자신의 부모를 지옥에서 구제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바리공주의 행위 전반을 볼 때 고사상의 위치는 실로 불교의 목련존자와 다름
없다. 물론 목련고사에서 주인공 목련은 남자이고 그가 이미 죽은 이를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바리공주 고사와 다르지만, 이 두 고사가 죽음
과 지옥의 고통을 떠나 각자의 이상세계로 자신들의 부모님을 구하고, 자식으로
서의 효를 행한다는 점에서 그 대의는 동일하다 하겠다. 주인공의 성별이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목련고사가 불교 사상을 담고 있는 반면 서사무가 바리공주는
한국 무속을 통해 전승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무속에서는
그 담당 계층이 여성이 중심이 되고12) 또한 현세의 구복적 성향이 짙은 상황을
볼 때 이러한 차이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간다.
두 번째 공통점은 목련고사와 바리공주 이야기에서 부정적 인물로 등장하
는 부모이다. 이들 부모는 악업을 쌓으면서 지옥에 떨어지거나 죽을 운명에
처하며 동시에 구원의 대상이다. 목련고사에서는 아버지가 먼저 극락에 갔지
만 어머니는 가축을 살생하고, 葷食하며, 집에 찾아온 중을 매질하는 등 여러
가지 악행을 하여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목련이 이러한 어머니를 구
하기 위해 지옥에 들어갔던 것이다. 바리공주 서사무가에서는 바리공주의 부
모가 하늘이 내린 아기를 버린 죄로써 양부모가 한날한시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問卜의 예언을 듣는다. 그리고 목련과 마찬가지로 바리공주 역
시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약수물을 구하기 위하여 지옥 여정에 들어간다. 바리
공주의 여러 구송본 중에는 양부모가 모두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지만 어머
니만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고 아버지만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단지 서사
12) 무속의 특성상 무속과 여성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어서 무속신화에는 주로 여
신의 수난이 많다. 염원희, 「무속신화의 여신 수난과 신 직능의 상관성 연구」, ?한
국무속학? 20, 한국무속학회, 2010 참고.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09
무가 바리공주가 목련고사와 다른 점은 이들 부모가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
졌다는 내용이 없다. 그러나 죄악으로써 받아들여지는 결과는 역시 죽음이며
또한 바리공주가 약수를 구하러 간 사이 부모는 이미 죽음을 경험하고, 죽은
상태에서 바리공주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
세 번째 공통점은 목련과 바리공주 모두 석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부모를
구한다는 점이다. 이들 두 주인공은 스스로의 신통력 또한 대단하였으나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부분, 즉 지옥 여정하다 커다란 지옥문 앞에서 난관을 겪는 부분
에서는 동일하게 석가의 도움을 받았다. 다음은 목련고사에서는 목련이 석가를
찾아가 어머니가 있는 곳을 물어보고, 또한 구제 방법에 관하여 묻는 장면이다.
목련이 다시 앞으로 가다가 보니 한 커다란 지옥이 있다. 담의 높이는 만
길이나 되고 검은 벽은 만 겹이나 된다. 철망으로 얽어서 그 위를 덮었고, 그
위에는 또 네 마리 큰 동구가 있는데, 입으로 항상 뜨거운 불길을 토하여 그
것이 무럭무럭 하늘로 타오른다. 소리를 질러 천 마디나 불러보아도 아무도
대답이 없다. 목련이 다시 돌아와 옥주에게 묻는다. …… 옥주가 대답하길:
“스님의 법력이 부족한 탓아요. 이 문이 열리게 하려면 부처님께 물어볼밖에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13)
모련고사에서 석가 조력자로 등장한 부분과 마찬가지로 바리공주 서사무
가에서도 바리공주는 석가의 도움을 받아 지옥의 난관을 헤쳐 나간다.
“정성이 지극하면 지성이 감천이라. 너 말이 기득하옵시니 길을 인도하리라.
네가 낭화 가져 왔너냐?” “총망 중에 못 가져 왔난이다.” 낭화 세 가지를 주시
고 금주령을 주시며 “니 중령을 끌고 가면 험로는 육지 되고 육지는 평지 되며
대해는 물이 되난이다.” 하옵시고 …… 한곳을 나아가니 칼산지옥 불산지옥 독
셔지옥 한빙지옥 구렁지옥 배암지옥 물지옥 흔암지옥 무간 팔만사천지옥 넘어
가니 칠성이 하날에 닿았는데 구름 슈여 넘고 바람도 슈여 넘는 곳에 귀를 기
13) 目連次復前行, 見一大地獄, 牆高一萬丈, 黑壁萬重, 鐵鋼交加, 蓋覆其上, 上面又有
四大銅狗, 口中常吐猛炎, 炎炎燒空, 叫得千聲, 殊無人應, 回來問獄主, …… 獄主答
師, 師法力微少, 要此門開, 無過問佛。?佛說大目連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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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이고 들으니 죄인 다스리는 소래 육칠원 악마 구리 우는 소래더라.14)
상기 내용은 바리공주가 목련과 마찬가지로 지옥 여정에 큰 장애물을 만
나는 장면이다. 이 난관에서 바리공주는 석가가 일러준 대로 神物을 사용하
여 난관을 헤쳐 나간다. 목련이나 바리공주는 그들의 부모를 구하기 위해 가
장 큰 조력자로서 동일하게 석가가 등장한 것이다. 무소불위한 목련존자와
마찬가지로 바리공주 역시 무쇠주령을 들고 천 리, 이천 리, 삼사천 리를 뛰
어넘지만 지옥 여정 중 다른 절대적 위치의 조력자를 만나 도움을 얻는다. 즉
절대적 조력자인 석가가 등장함으로써 주인공들의 지옥 여정은 큰 힘을 얻게
되고 동시에 이 고사를 읽거나 듣는 독자들에게 이야기 흥미진진하게 전개시
켜 나갈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때의 조력자로는 석가 이외에도 다른 여
러 사람이나 동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둑 두는 노인, 관음보살,
학, 선녀, 스님들, 산신보살 등이다.
이처럼 목련과 바리공주는 모두 커다란 지옥 앞에서 여정의 난관을 겪는
데 이 지옥이 무너진 다음의 결과도 비슷하다. ?목련경?에서는:
철상지옥은 변해서 연화자가 되고 검수지옥은 변해서 백옥으로 만든 사다
리가 되고, 확탕지옥은 변해서 부용지가 되었다. …… 우두옥졸을 시켜서 죄
인을 놓아 모두 하늘에 다시 나게 하였다.15)
라고 하였으며, 바리공주에서는:
바리공주께 고월을 제도하여지라 하오니 공주 하온 말삼 서방경토 극락
세계 삼십육만인 십일만 구천오백 동명 동호 대자비 아미타불 극락세계 시왕
가리 시왕 가고 극락 가리 극락 가소서16)
14)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앞의 책, 168-169쪽.
15) 照鐵床化作蓮華座, 劒樹化爲白玉梯, 鑊湯化作芙蓉池(中略) 勅牛頭獄卒盡皆放生
天. ?佛說大目連經?.
16)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앞의 책, 169쪽.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11
라고 하였다. 우선 목련고사를 살펴보면, 목련이 석가의 도움으로 어머니
가 갇혀있던 아비지옥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고 아비지옥에 있던 죄지
은 중생들이 모두 하늘에 다시 나게 된다. 목련의 최종 목적은 어머니를 구하
기 위한 것이지만, 이 지옥 여정에 다른 무수한 중생들을 함께 구제했던 것이
다. 바리공주를 살펴보면, 역시 어머니를 살릴 약수물을 구하러 가는 여정에
서 칠성으로 둘러싸인 지옥을 부수고 그 속의 모든 죄인들로 하여금 시왕 가
리 시왕 가고 극락 가리 극락 가게 하였다. 즉 목련고사와 바리공주가 지옥
여정에서 하나의 큰 지옥을 만나고, 이어서 그 지옥을 깨고 그곳에 있던 죄인
들에게 모두 새로운 삶의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네 번째는 지옥을 여정 하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 사용된 도구에서 유사점
을 찾아볼 수 있다. 목련고사에서는 목련이 지옥에 들어가는데 여러 가지 난
관을 겪는다. 그때 목련은 세존의 도움을 받는데 그 방법으로서 세존은 목련
에게 특정한 도구를 빌려주면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목련고
사에서는 세존의 鍚材, 袈裟, 鈸釬가 사용되어, 석장을 세 번 흔들면 옥문이
저절로 열리고 자물쇠도 저절로 떨어지며 옥중에 있는 죄인들이 석장소리에
잠시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목련이 이 말을 듣자 발우를 던지고 하늘로 솟아 부처님이 있는 곳으로 갔
다. 그는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나서 부처님께 아뢴다. “세존이시어! 목련이
큰 지옥을 가서 보니 담의 높이가 만 길이나 되고 검은 벽이 만 겹이나 되는
데 아무리 여러 번 큰소리를 질러도 대답하는 사림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목
련에게 말한다. “너는 나의 열두 고리가 달린 석장을 짚고, 내 가사를 입고,
내 발우를 가지고 그 지옥문 앞에 이르러 석장을 세 번 흔들면 옥문이 저절로
열리고, 자물쇠가 저절로 떨어지며, 옥중에 있는 모든 죄인들이 내가 짚던 석
장 소리를 듣고 모두 잠시의 휴식을 얻을 것이다. 17)
17) 目連聞是語已, 擲鉢騰空, 徃到佛所, 繞佛三匝, 白佛言: “世尊, 目連見大地獄, 墻高
萬丈, 黑壁萬重, 呌得千聲, 無人應矣.” 佛語: “目連, 汝執我十二鐶錫杖, 被我袈裟,
掌我鉢盂, 至地獄門前, 掁錫三聲, 獄門自開, 關鏁自落, 目連突入獄中, 獄卒出, 師是
何人, 擅開此門, 此門長劫不開. ?佛說大目連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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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마찬가지로 바리공주 서사무가 역시 석가세존의 도움을 받아 바리공주
가 여러 난관을 극복한다. 그 장면의 묘사 부분을 직접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낭화를 흔드니 칠성이 다 무너져 평지 되거날 다스리던 죄인을 보니 눈 뺀
죄인, 팔 없난 죄인, 다리 없는 죄인, 못 없는 죄인, 합츤 귀졸이 나와 …….18)
그곳을 지나가서 약수 삼천 리 다다르니 이곳은 짐생의 깃도 가라앉고 배
도 없는 곳에 바자이다가 부처의 일으신 말삼을 문득 생각하고 금주령을 던
지시니 한 줄 무지개가 스거날 그을 타고 건너가서 무장승을 보니…….19)
바리공주 서사무가에서는 ‘철성’을 부수기 위해 부처가 준 ‘낭화’를 사용하
고, 바다를 건너기 위해 ‘금주령’을 사용하였던 일을 묘사하고 있다. 바리공주
가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사용한 물건이 목련고사와 다르지만 지옥을
건너는 길에서 장애물을 통과하기 위해 세존의 소장품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는 서로 동일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신물을 던지거나 흔드는
간단한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난관을 손쉽게 헤쳐 나가는 것도 비슷하다. 이
로써 혹독한 지옥은 일순간 평화가 찾아오고 고통 받던 죄인들이 지옥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목련과 바리공주는 동시에 사자를 극락으로
보내주는 석존의 대리인으로 역할을 함으로 동일하게 신도를 포함한 일반 대
중들의 우상 대상이 된다. 기타 신물의 사용방법에서도 바리공주가 세존에게
받은 물건은 아니지만 무쇠주령을 집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목련은 발우를 하늘에 던져 자유롭게 공간을 이동하였다. 여기에
서도 그 유사점은 드러난다고 하겠다.
다섯 번째는 지옥 공간에 대한 소개 과정에서 나타난다. 목련고사와 바리
공주 서사무가에서는 공통되게 이승에 대한 악업과 그 악업의 결과로써 들어
가는 지옥을 소개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부분은 무속에 지옥관념이 부재한
이유로 나타나는 결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목련고사에서는:
18)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앞의 책, 169쪽.
19) 위의 책, 169쪽.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13
목련이 다시 앞으로 가다가 검수지옥을 보고 …… “이 지옥에 있는 중생들
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제 이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오?” 지옥 주
인이 대답했다. “이것은 남염부제의 사람들이 인과를 믿지 않아 중생을 괴롭
혀 …… 형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20)
목련은 다시 앞으로 가다 보니 한 석합지옥이 있다. …… 목련이 슬퍼하면
서 옥주에게 물었다. “이 지옥의 중생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입니까?” 옥주가 대답했다. “이것은 남섬부주의 중생들이 개
미와 벌레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이제 제자의 수중에 떨어져 이렇게 괴로
움을 달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21)
라고 하였다. 이 부분은 목련이 자신의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졌음을 알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여러 지옥을 찾아 돌아다니는 부분이다. 서술 방식은
목련이 직접 앞으로 나아가며 만나게 되는 지옥을 각 옥주나 죄인에게서 설
명을 듣는 부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사무가 바리공주에서도 바리공주가
각기 지옥에 관해서 설명을 듣는 부분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고흔 향기가 가득하여 맑은 기운이 띄여 오는 배는 어떤 밴고?” “그 배에
오는 망제는 세상에 있을 적에 나라에 충신이요 부모에 효성 있고 동기간에
우애 있고 …… 선왕제 사십구제 백일제 받아 극락세계 세왕세계 왕생천도하
여 가는 배로셩이다.”22)
또 그 뒤에 오난 배는 활 든 이 총 든 이 창 든 이 머리 풀어 산발하고
…… “모진 악기 가득하여 오난 배는 어떤 밴고?” “그 배에 오는 망제는 세상
에 있을 때에 나라에 역적이요 무부에 불효 일찍이에 우애없고 …… 만법 궁
수에 비방한 죄로 한탕지옥 칼산지옥으로 가는 배로셩이다.”23)
20) 目連次復前行, 見一劔樹地獄, …… 目連悲哀, 問獄主, 此獄衆生, 前身作何罪業, 今
受此苦? 獄主答師, 此南閻浮提, 不信因果, …… 只得歡喜忍受. ?佛說大目連經?.
21) 目連次復前行見一石礚地獄, …… 目連悲哀問獄主, 此獄衆生前身作何罪業, 今受此
苦? 獄主答, 言此是南閻浮提衆生, 多殺蟲犠, 殺害無量, 今落弟子手中, 只得歡喜忍
受. ?佛說大目連經?.
22)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앞의 책,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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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바리공주가 부모님이 위독함을 알고 무장승과 함께 부모를 구
하기 위해 돌아오는 과정에서 지옥과 극락으로 떠나는 배를 마주하게 되는
부분이다. 서술 방식이 목련고사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아가며 하나씩 설명
을 듣게된다. 그런데 이 서사무가에서는 목련고사와 다르게 지옥에 대한 설
명 부분 이외에 상당 부분 극락에 대한 서술이 존재한다.
상기한 공통점 이외에도 바리공주와 목련의 부모에 대한 효성, 지옥관념의 동
일함, 그리고 내용의 전개와 구성 방식 등에서도 이 작품들 사이에서 나타난 공
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 두 고사 간의 모방 관계를 밝히는 데는
상기 서술한 내용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고 여기서는 논하지 않겠다.
이처럼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불교의 목련고사 모방 정황이 확실하다면 우
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이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목련고사를 어떠한 방식으로 모방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바리공주 서사
무가가 한국의 민간이나 무속에 전승되던 원형고사를 통해 독자적으로 완성
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불교와 무속의 유전상황을 살펴본다면, 이 두 작품
간에는 어떠한 수수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그러므로 우
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가능성을 두고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애초
부터 바리공주가 지옥 고사에 대한 모방의 목적을 가지고 창작된 후 나아가
단순한 모방에서 그친 고사가 그 내용의 구전 과정에서 살을 더해 지금의 바
리공주 이야기를 완성한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의 이미 존재했었던 바
리공주 고사에 목련의 이야기가 삽입된 경우이다.
무속에서는 본래 지옥관념이 부재했고 무속이 불교의 지옥체계를 따랐다
는 측면에서는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처음부터 모방을 목적으로 창작했을 가
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고사 전반을 살펴볼 때 바리공주 서사
무가에는 한국에 이미 존재했던 여러 설화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태몽설
화나 기아설화, 그리고 여러 가지 효행설화 등이 이 고사의 탄생에 밑거름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4) 특히 기아설화에서 '아기장수전설'과 같은 내용은
23) 위의 책, 172쪽.
24) 「서사무가 바리공주의 형성과 전개」, 앞의 논문, 418쪽.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15
바리공주를 버린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그리고 호남지방의 서사무가
바리공주에서는 목련을 모방한 흔적, 예를 들어 고사에 목련이 직접 등장한
다든지, 혹은 석가모니가 나타나서 바리공주를 도와준다든지, 혹은 여러 지옥
들을 여정 하는 내용들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바리공주 서사
무가는 기존의 여러 설화를 기반으로 완성된 서사무가에 목련고사의 내용이
첨가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서사무가 바리공주의 전래에 있어서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목련고사의 내
용이 첨가된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중서부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홍태한은 일찍이 바리공주 이본들을 대상으로 하여 무가권을 구획한 바 있는
데 모두 4개권으로 북한 지역, 동해안·경상도 지역, 중서부 지역, 전라도 지역
으로 나누었다.25) 그리고 바리공주 서사무가 처음 전라도 지역에서 발생하여
경상도와 중서부 지역으로 전승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중서부 지역의 바리
공주 고사는 다른 무가권과 다르게 고사의 내용에 불교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
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인과응보 사상을 강조하여 착한 행동을 한 자
는 극락세계로 가고 악행을 한 자는 지옥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악업에 따른 결과로 들어가게 되는 지옥도 분류되어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의 바리공주 고사에는 불교의 목련 역시 가장 많이 등장하여, 현재까지
조사된 자료에서는 속초 탁순동본, 영일 김석출본, 명주 신석남본 등을 제외한
15개의 구전본이 모두 중서부 지역에서 발생하였다.26) 이로써 바리공주 서사
무가의 전승을 지역별로 살펴볼 때 전라도 지역에서는 바리공주 고사의 내용
에 불교적 성격이나 목련고사를 모방한 흔적은 찾기 어려우며, 동해안 지역에
는 소수의 작품이 불교 사상이나 내용을 담고 있고, 중서부지역에서는 본격적
으로 목련고사를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인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지역
25) 위의 논문, 394쪽.
26)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목련이 등장하는 중서부권의 구전본은 다음과 같다. 1.서울
문덕순본, 2.서울 새우젖집본, 3.인천 정영숙본, 4.인천 도정희본, 5.평택 노재웅본,
6.천안 배명부본, 7.공주 노재웅본, 8.서울 박종복본, 9.원옥희본, 10.서울 이해집본,
11.서울 정영도본, 12.서울 윤혜진본, 13.구리 권정옥본, 14.남양주 이영희본, 15.경
기도 성남 장성만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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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불교 사상이나 목련고사를 인용한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 인용이 어떠한 특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속의 유파별로 나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홍태한의 견해에 따르자면, 고사 발
생의 시작점인 전라도의 기본적인 바리공주 내용이 중서부 지역으로 넘어오
면서 바리데기에서 바리공주라는 명칭을 얻고 고사의 정형성을 획득하게 되
고 제의적 측면이 강조 되었으며, 동해안·경상도 지역으로 넘어오면서는 좀
더 놀이적 측면이 강하게 변화된 것이다. 여기서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제의적
측면의 강조가 필요했다면 목련고사를 인용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서부 지방의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목련고사를 모방했을 가능성과 관련
하여 조선시대 한양의 도성의 거리와 골목에서는 불교 목련고사가 크게 유행
한 사실이 있었다. ?세종실록? 27년 7월 7월조의 기사에서는 도성에서 벌어
진 우란분재의 불교행사로 정책적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다는 문헌이 보인다.
나라의 풍속이 7월 15일은 절에 가서 혼을 불러 제사하였는데, 이날 무뢰
한 승도들이 도성에 들어와 거리 골목에서 기를 세우고 쟁과 북을 치며 탁자
를 설치하여 찬구를 늘여 놓고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 백종 · 시식이라고
이름하였다. 사녀들이 수없이 모여들어 곡식과 베를 시사하되 남에게 뒤질까
두려워하고, 경사의 집에서도 하는 자가 있었다. 임금이 이를 듣고 크게 노하
여 승정원에 이르기를, “승도들이 방자한 것이 이렇게 극도에 이른 것을 나도
들었는데, 경들은 어째서 아뢰지 않았는가.”하고, 또 사헌부를 불러 말하기를,
“왜 금하지 않았느냐.” 하여 힐책하기를 마지 않았다. 이때에 장령 민건은 중
들이 방울을 흔들며 염불을 하는 것을 보고도 못 들은 체하고 지나니, 사람들
이 많이 이를 비난하였다. 27)
상기 문헌은 7월 15일 중원절에 관련된 기록인데 변상을 방불케 하는 ‘幡
27) 國俗以七月十五日, 就寺招魂以祠, 是日無賴僧徒入都城, 於街巷竪幡幢, 擊錚鼓, 設
卓陳饌, 唱死人名, 號曰百種施食. 士女坌集, 施捨粟布, 惟恐不及, 卿士之家, 亦有爲
者. 上聞之, 大怒, 謂承政院曰: "僧徒縱恣, 以至此極. 予亦聞之, 卿等何不以啓?" 又
召司憲府曰: "何不禁耶?" 詰責不已. 時掌令閔騫見僧搖鈴梵唱, 似若不聞而行, 人
多譏之. ?조선왕조실록?, 世宗109卷, 27年.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17
幢’, 연희 합주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錚鼓’, 演唱의 상황과 유관한 ‘梵唱’의
등장과 함께 관중의 열기를 나타내는 듯한 ‘士女坌集’의 분위기 등으로 미루
어, 이날은 사원이나 항간에서 목련고사의 전승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
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마지막 민건이 못 들은 체하고 넘어갔던 “방
울을 흔들며 염불하는 중(僧搖鈴梵唱)”이다. 이 대목은 당시 무불습합의 일
면을 보여주고 있다. 7월 15일은 분명 우란분재일이고 또한 당연히 불교행사
에 관련된 일인데 이날에도 방울을 흔들며 염불하듯이 하는 자가 있었다고
하니 무속인이 불교 행사에 관여한듯 하다. 즉 불교 우란분재일에 무속에서
도 여러 의식을 통해 망자를 천도하는 제의를 벌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무속인인 장성만씨의 제보에 의하면 바리공주 무가의 유파를 선희궁제라 하
였으며 그것이 본래 궁궐에서 구송되었던 것인데 궁궐 밖으로 유포되면서 여
러 유파가 발생하였다고 하였다. 이로써 궁궐 주변에 선희궁제의 유파에서
갈라진 구파발제, 노들제, 되됨이제, 각심말제28) 등으로 바리공주의 기본 줄
거리를 유지한체 전승되었다. 도성의 거리에 이처럼 불교의 목련 고사와 함
께 서사무가 바리공주가 함께 활발히 전승되었으니 목련고사와 바리공주 고
사간의 모방 현상이 일어날 충분한 환경은 이미 조성되었던 것이다.
목련고사가 서술하는 내용은 인간 사후에 관한 내용이며 지옥에 관한 내
용이다. 사람이 살면서 벗어나지 못할 두려움은 죽음이며 이러한 내용을 다
루는 지옥고사는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다. 우란분재와
그에 따른 목련고사가 민간에 큰 호응을 얻어 유전된 사실이 이점을 설명해
준다. 그러므로 한국의 무속이 불교 지옥관념을 인용하던 것인데 상기 내용
28) “원래 바리공주 무가는 궁궐에서 구송되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바리공주 무
가의 유파를 선희궁제라고 했다. 그러다가 이것이 궁궐 밖으로 유포됨에 따라 구
파발제, 노들제, 되됨이제, 각심말제로 갈라졌다. 각 제는 바리공주 무가의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세부적인 묘사와 어조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희궁제는 주로 궁중의 언어를 많이 사용했고 노들제와 구파발
제는 민간의 언어가 많이 녹아들어 사용되었다. 지금은 이러한 제의 구분이 많이
약화되었지만 주로 노들제가 가장 널리 퍼져 있다. 지방에서 구송되고 있는 바리
데기와는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시 기우정사에서 조사. 제보자:
장성만씨) 「서사무가 바리공주의 형성과 전개」, 앞의 논문, 423쪽 각주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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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종합하면 전라도 지역 원형의 바리데기 서사무가가 중서부 지역으로 넘어
와서 목련고사가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3. 중국 법사희와 바리공주 서사무가
서사무가 바리공주와 목련고사의 모방관계가 이처럼 분명하다면 한국 무
속이 불교계의 목련고사를 모방한 이유와 목적은 과연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
해서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관해서는 가까운 중국에서 불교의 목
련희를 모방하여 공연했던 道教의 法師戲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한·
중이 긴밀한 불교문화 교류를 유지한 상태에서 우란분재를 배경으로 목련고
사가 연행되었는데, 이 두 나라의 목련문화 발전이 매우 흡사하게 진행되었
던 사실이 있고,29) 또한 중국 법사희의 발생 배경과 그 연행의 모습이 한국
바리공주 서사무가의 연행 양상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법사희는 道士戲, 打城戲, 和尚戲등으로도 불리는데, 이 법사희의
기원은 불교 우란분재에서 행해진 법회가 일반 대중을 위하여 통속적으로 변
화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즉, 일부 법사가 우란분재에서 더욱 큰 효과를 얻고
법사 방면에서 자기와 같은 계열 사람들보다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 법사와 변
문을 융합하여 간단한 공연을 진행하도록 한 것이 법사희다.30) 그 후 불교 우
란분재의 법사 공연이 대중의 큰 인기를 얻자 도교에서 이를 모방하여 자신들
만의 새로운 내용과 모습을 지닌 일종의 공연 형태의 제의를 만들었다. 중국
에 전해지고 있는 도교 법사희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된 것으로 현재
복건성과 대만 등의 지역에서 그 유전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으로 완
성된 법사희는 자연스럽게 공연과 의식이 하나가 되어서 공연이면서도 제의
의식이고, 제의 의식이면서도 공연의 형태를 이루어, 공연을 진행함으로 하나
의 제의 의식을 벌이는 복합적 예술형식을 이루고 있다.31) 이 법사희 공연은
29) 盧仲邦, ?韓國目連故事流傳研究?, 南京大學博士論文, 2013 참고.
30) 朱恒夫, ?目連戲研究?, 南京大學出版社, 1993, 44쪽.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19
그 기원이 상당히 오래되어 泉州打城戲는 이미 개원(713~741)년간에 이와
같은 형식의 공연이 시작32)되었고, 송대에 와서는 예술상으로 더욱 진일보
발전하여 중국의 瓦舍勾欗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법사희 연구는
중국 민간 희곡 발생 기원에 대한 연구에도 매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도사법사희의 특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면 閩
四南지방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道法활동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
에서는 오래전부터 민속 제의와 장례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도교와 불교가 매우 발달하여 수많은 도교 사원과 사찰이 세워져 있어 민속
과 불·도의 종교적 융합이 이루어지기 쉬운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
지역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에 한해서는 도법으로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는
제의가 벌어지는데, 이 과정에는 “目連沙燈道場”이라는 도교 科儀가 진행된
다. 그리고 이 “목련사등도장”에 진행되는 “目連破獄科”의 科儀本이 ?地獄册?
이라는 유전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지옥책?은 바로 목련고사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극본 형식의 대본으로써 도교의 도법 과의의 내용과는 다른 극본
형식이 되어 있으며, 중국의 南戲戲文과도 그 형식이 비슷하다. 그 내용의
순서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목련이 지옥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출발 전에 석가를 만나 그
에게서 필요한 神物을 받는다. 그리고 석가는 목련에게 여정을 도와줄 손오공
등을 만나보라는 계시를 받는다. 이에 목련은 석가의 말대로 花果山에서 孙行
者를 만나고 또한 猪八戒를 만나 지옥 여정을 하게 된다. 이로써 목련과 손행
자 그리고 팔계 3인은 여러 지옥을 지나고 마지막으로 ‘追陽縣禹城十八重地獄’
에서 손행자와 저팔계는 임무를 마치고 떠난다. 후에 목련이 혼자 남아 지옥에
서 어머니를 찾고 마지막 ‘破獄’ 부분에서 지옥을 깨고 어머니를 구한다.
31) 葉明生, ?道教目連戲之戲劇形態及其戲史價值?, 中華戲曲, 1998.
32) 천주타성희는 개원사(開元寺)의 중에 의해서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이곳에 개원
사가 지어진 당대 수공(垂拱, 165~188) 2년부터 시작되어 송대 천희(天禧,
1017~1021)년간까지 공연이 이어졌다. 이 희극의 최초 극목은 <白猿搶經>이었
다. 주항부, 앞의 책, 44쪽 참조.
120 語文硏究85(2015. 9)
이 법사희는 공연이 진행되면서도 도법 의식을 중간에 삽입하여 관람하는 이
로 하여금 이 공연이 제의의식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 과정을 좀 더
살펴보자면 먼저 공연의 처음 시작 부분에서는 “開壇請神”이라는 과의가 진행
된다. 여기에서는 공연을 주관하는 법사가 나와서 향을 피운 후 靈山三世佛, 觀
音, 地藏, 閻羅등의 신을 불러내 지금의 도장으로 破獄의 공덕과 이로써 망혼이
구제받아 승천하는 것을 증명하도록 한다.33) 이 과정이 끝나면 목련존자를 불
러내는데, 그러면 천도하려는 망자의 옷을 짊어진 목련이 나와서 공연을 시작한
다. 공연의 중간에는 또한 “存變封獄”의 과의가 삽입되는데, 여기에서도 법사가
나와 “나의 몸은 내가 아니다. 석가의 제자이며, 관음대사이며, 지장애존이
다”34)라고 말하여 지금의 공연이 제의의 한 부분임을 관중에게 상기시켜 주기
도 한다.35) 마지막 “파옥” 부분이 공연될 때에도 다시 목련대신 법사를 주재하
는 도인이 나와 「地獄經句」를 읽으며 여러 지옥을 하나씩 깨면서 나아가고 마
지막 아비지옥을 열면서 목련의 어머니를 구한다.36) 이 과정을 거치면서 喪家
의 도법을 주제한 발원자는 죽은 이를 천도하였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공연 진행 중 도법이 삽입된 상황을 잘 살펴보면 이 도법 삽입 목적이 공연
의 주체가 되는 법사가 목련을 대신하여 다재한 능력을 발현하도록 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공연의 처음 시작 부분부터 도법이 위치하여 이 공연
이 지옥을 부수는 공덕임을 관객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로써 관객은 공연
진행의 목적이 바로 법사의 망자천도에 있음을 인지하고 관람에 들어가게 되
는 것이다. 이어서 공연이 진행되고 내용진행의 중요한 부분에서 다시 관중에
게 목련공연자의 신분이 단순히 공연 속의 배우 목련존자가 아님을 일깨워 준
다. 관객들은 다시 한 번 이 과정을 통해서 이 공연이 단순히 목련희를 공연하
는 것이 아니고 도법 과정의 하나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의
지옥을 부수는 장면은 이 법사희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써 망자의 영혼을 천
33) 劉遠, 「<地獄冊>校注」, ?中華戲曲?, 中國戱曲學會, 1998, 258쪽.
34) “吾身, 不是吾身, 化为释迦弟子, 又为观音大士、地藏慈尊”
35) 劉遠, 앞의 논문, 265쪽.
36) 위의 논문, 285쪽.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21
도하는 과정이며 이 공연의 최종 목적이다. 이때 공연의 주인공이었던 목련은
그 역할을 다하여 물러나고, 지옥을 부수는 것은 법사의 역할로 넘어간다. 관
객은 지옥이 법사에 의해서 파괴됨과 이로써 망자가 지옥에서 나오게 됨을 도
법 의식으로써 보게 되는 것이다. 극으로서의 목련의 역할은 법사가 지옥을
부수도록 이끌어 주는 안내자의 역할인 것이고, 마지막에는 법사의 도법이 빛
을 발하게 되었다. 공연 진행 과정에 도법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삽입된 위
치와 효과는 모두 법사의 도법활동에 주목할 수 있도록 안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불교 목련 고사를 공연하고 있지만, 사실 이 목련의 무소불
위한 능력이 도법의 주제인 도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도교 법사희의 목련고사 공연과 관련하여 한국의 바리공주 서사무
가에서도 목련의 위상이 축소된 부분이 있다. 모든 구전본에서 드러나고 있
지는 않지만 목련이 석가의 제자로 등장하여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다. 이 부분을 직접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석가세존이 삼천 제자를 거느리고 사해도 구경하고 인간제도 하롭시려 나
옵시다가 타향산 서촌을 굽어보옵시니 밤이면 서기 반공하고 낮이며는 운무
안개 자욱하니 "아란존자 가섭존자 목련존자 들으라. 저곳에 하날 아는 천인
이 있을 것이니 네 가서 보와라" 하옵시니. "소승의 눈에 보이지 안네이다"
석가세존 하온 말삼 "네 공부가 멀었다"하옵시고 둘배를 바삐 저어 황천경
손에 들고 위절절절 들어가니…….37)
예문은 바리공주가 버려지고서 나타난 상서로운 현상들의 묘사하고 있으며,
이어서 세존이 직접 바리공주를 찾아내고, 마침 그곳을 지나던 비리공덕 할아
비 할미에게 바리공주의 양육이 맡겨지는 것으로 진행된다. 상기 내용은 각 이
본들 간에 차이가 있어 어떤 판본은 수궁용왕 큰댕이에 의해서 구해지기도 하
고, 학이나 황새와 같은 짐승에 의해 구해지기도 하지만 석가여래가 발견하고
그의 제자들이 돕는다는 내용이 상당수를 차지하므로 목련이 등장하는 내용은
그것이 바리공주에서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등장하
37)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앞의 책, 160쪽.
122 語文硏究85(2015. 9)
는 목련의 역할은 그다지 그 비중이 크지 않다. 목련고사에서는 목련이 무소불
위한 능력을 지니고 자유자재로 지옥을 넘나들지만 이 서사무가에서는 오히려
세존이 이미 발견한 바리공주도 찾지 못하여 세존에게 공부가 멀었다는 꾸지
람을 듣는다. 이에 반해 고사의 주인공 바리공주는 고사 안에서 절대적인 능력
을 지닌 신격으로써 등장한다. 무쇠주령을 들고 지옥을 넘나들기도 하고 세존
의 도움을 받아 난관을 헤쳐 나가며 결국 무장승의 약수를 구해 부모를 죽음에
서 구했다. 즉 이 서사무가는 목련의 역할을 축소시키면서 주인공인 바리공주
를 부각시키기 위해 내용상 신격의 위치로 올려놓았던 것이다. 이로써 무속적
관념에서는 목련은 아직 공부가 덜된 상태이며 바리공주는 세존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천상과 이승을 연결해 주는 신적 대리인이 되었다.
이상을 통해 도교 법사희에 등장하는 목련과 서사무가 바리공주에서 등장
하는 목련의 입지가 동일하게 축소된 것을 보았다. 물론 법사희에 등장하는
목련의 위치가 본래의 고사보다 크게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
로 파옥의 과정을 도법의 의식 형태로 내어준 것이다. 한국의 서사무가에서
는 목련의 역할을 바리공주가 온전히 차지하였고, 목련이 석가의 제자로 잠
깐 등장하여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은 본래 불교에서 성행하였던 목련고사를 인용
하면서 자신의 몸에 맞도록 변용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헌으로 증명되는 것처럼 우란분재와 목련고사의 전승이 오랜 기간 불교와 민
간에서 극성하였고, 이것을 타 종교에서 잠시 빌려오길 원했는데 서로 다른
종교적 배경으로 인하여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각자 충분히 인용하면서도 자신의 특성에 맞도록 변용한다면, 자신들의 종교
발전에 도움이 되고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하겠다. 이제 한국
서사무가에서 목련고사를 모방한 이유와 목적을 중국의 도교 법사희와 비교
하여 추론한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사항은 공연자가 연기를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이다.
공연자는 이 서사무가를 연기함으로써 높은 경제적 이익을 창출했을 것으로 보
인다. 중국의 목련고사가 민간에서 연행되면서 불교적 성격을 벋어나 점차 주술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23
적 특성이 강해졌다. 목련희 공연이 벌어지면 온 마을이 축제의 분위기가 되었
는데, 액막이를 위해 한 해에 한 번은 꼭 목련고사를 벌이길 희망하였다. 그리고
이 목련고사가 공연 되어야지 마을이 한 해 동안 무탈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러한 목련희 공연을 도교에서 모방하여 도사 법사희를 만들었고 죽은
영혼을 천도하는 목적으로 도법활동과 함께 겸하여 공연되었다. 마찬가지로 한
국의 불교계 역시 우란분재와 그에 따른 행사를 통해서 적지 않은 경제적 이익
창출했을 것이고, 한국 무속이 이점을 활용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특성은 관중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즉 관중들은 도법 활동
이나 무속의 제의 의식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희망했다. 중국 목련고
사가 공연될 때 관중의 호응도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는 이미 기술하였다.
목련희가 공연될 때에는 심지어 관중의 함성으로 외구가 침입한 것으로 오해
하였다 하였으니38) 그 관중의 열기가 어떠하였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중국
목련고사의 공연은 그것이 주술적 특성과 결합하면서, 공연을 관람하므로 혹
은 공연함으로 개인과 마을의 무탈을 기원하기도 했고 병을 치료하기도 했으
며 액막이 기능을 하였다. 관중은 이러한 공연을 신심으로 관람하였으며 공
연이 끝난 다음에는 실제 효험과는 상관없이 심리적 만족감을 얻었던 것이
다. 도교 법사희는 이러한 목련고사 공연의 특성을 빌려 공연과 의식을 함께
진행시킴으로 발원 자에게 지옥을 부수고 망자를 천도하는 과정을 시각적으
로 보여주고 있다.39) 이 공연의 진행으로 불의의 사고로 당해 죽은이의 영혼
이 천도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굿판 역시 마을의 축제이며 동시에 제의 의식이었
는데, 망자의 천도를 목적으로 하는 굿에는 이 바리공주가 대표적이다. 무속
인에 의해서 이 바리공주가 구송되면 축원자가 망자의 영혼이 구원받았다고
믿는다. 이로써 무속에 참가했던 관객들도 심리적 안위를 얻게 된다.
38) 김영지, ?중국 공연문화의 꽃 – 목련희연구?, 한국학술정보, 2006, 233쪽.
39) 도교 법사희에서는 법사가 지옥으로 설정된 모래 언덕이나 종이로 만든 문등 등
을 직접 부수거나 찢는 행위를 함으로써 지옥이 파괴되었음을 설정한다. 泉州의
打城戲「打地下城」과 龍岩道士法事戲「破獄」등이 그러하다.
124 語文硏究85(2015. 9)
세 번째 특성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공연의 시간적 공간적 확장이다. 중국 도
교 법사희의 목련고사 연행 모습이 보여주었듯이, 이 공연은 무대의 범위와 공
연의 시간이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다. 불교의 목련고사 공연은 우란분재와 함
께 공연되었기 때문에 한 해 한 번 사찰 등지에서 공연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도교의 도법 활동과 함께 묶여서 언제든지 죽은 이의 영혼을 천도할 목적으로
공연하게 되었다. 공연 장소는 사찰 무대를 넘어 마을 전체로 확대되었고, 공연
시간은 사실상 실제 공연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시작되었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효력이 남아 한해의 무탈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한국도 그대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불교 목련고사를 모방하여 완성된 서사무가
바리공주는 祭主의 요청에 의해서 무대의 범위가 좁게는 제주의 가정에 한하겠
지만 넓게는 마을 전체를 넘어 이승과 저승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구연을 통해 완성된 무속적 행위이지만 그 공연 시간의 유효함은 현행되
는 공연 시점을 넘어 무한의 연속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굿을 통해 얻어지는
심리적 만족감 역시 연희적 공연을 포함한 제의가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네 번째 특성으로는 무속의 신격 상승과 종교적 선양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도교 법사희 공연이 진행될 때, 그 안의 배우가 목련의 신분을 공연하면서 종
종 그 신적 경험을 관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로써 본래 불교
목련의 다재다능한 능력이 도교의 법사에게 전달됨으로 결과적으로 목련의
위에 위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바리공주 서사무가 역시 무속인의
구송을 통해 망자가 천도되는데, 상기했던 것처럼 바리공주에서는 무능했던
석가의 제자 목련을 대신하여 지옥 여정을 마친다. 그러므로 바리공주 역시
불교의 목련존자 위에 좌정한 것을 볼 수 있다. 무의례의 주제자 역시 신적
대리인으로 위치하지만 관람자의 눈에 비치는 공연자는 망자를 천도해 주는
신격과 다르지 않다. 민간에 뿌리 깊이 전승되었던 불교의 우란분재의 의식
이 무속에도 바리공주를 통해 제의적 공연이 진행되었으니, 무속의 종교 선
양에도 적지 않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이상을 통해 한국의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목련고사를 모방했을 이유와 목적
을 중국의 도교 법사희와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실 한국의 바리공주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25
서사무가는 구체적 판본을 통해서 전승된 것이 아니고 단지 구전을 통해 후대
무속인들 사이에서 전승되었고 또한 구전의 전승 과정에는 어쩔 수 없이 유동
적 내용 변화가 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바리공주
서사무가 안에 목련고사의 내용이 들어갔는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이와 같
은 상황에서 비교적 모방의 정황이 분명한 중국의 도교 법사희를 단서로 하여
한국의 모방 상황을 추론해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국과 중국의 불교문화는 오래전부터 빈번한 교류를 통해 거의 동질의 수준을
유지하였고, 특히 당대에는 한국의 수많은 유학승들이 중국에서 불교문화를
한국에 가져오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중국에서 극성했던 불교문화를
한국에도 전승하여 속강의 형식으로 공연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40) 그러
므로 중국의 도교 법사희와 비슷한 목적으로 불교 목련고사의 전승 형태를 무
속에서 모방했을 것인데 그 결과로 바리공주 서사무가가로 나타난 것이다.
4. 결론
한국 목련고사의 유전은 ?목련경?에 관한 연구에 집중되었던 것이 사실이
다. 하지만 이 불서 조차도 그 국적이 온전하게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
라 원대 중국에서 유전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내용의 전개가 중국의
3종 목련변문과 유사점이 많이 드러난다. 한국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란
분절은 중요한 연래 불교문화 행사였으며, 이날에는 불교와 민간에 목련고사
와 관련된 연희가 진행되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40) ?朴通事諺解? (京城帝國大學學部,1943,274-277쪽.)에서는 “這七月十五日是諸
佛解夏之日,慶壽寺裏為諸亡靈,做盂蘭盆齋,我也隨喜去來,那壇主是高麗師
傅,青旋旋圓頂,白淨淨顏面,聰明智慧過人,唱念聲音壓眾,經律論皆通,真是
一箇有德行的和尚,說目連尊者救母經,僧尼道俗善男信女,不知其數,人人盡盤
雙足,箇箇擎拳合掌,側耳聽” 라고 하여 당시 고려의 속강승이 중국에서 목련고
사를 강창한 사실이 주목된다. 특히 얼굴에 흰색을 칠하고, 노래 부르며 독백(唱
念)한 점은 이미 단순한 강경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126 語文硏究85(2015. 9)
러한 목련고사의 연행 전통이 이 위경에 관련된 전승 말고는 구체적으로 어
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바리공주에서 불교 목
련고사를 모방 흔적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를 남기고 있다. 지
옥 관념이 부족했던 무속에서 목련고사를 모방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불교 사찰에서 큰 유행을 통해 전승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또한 공연과 제의
가 결합된 형식으로 전승되었다는 것은 이면에 한국의 불교에서도 목련고사
가 연희 형식으로 유통되었을 가능성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 본고에서는 우선 바리공주 서사무가와 목련고사가 내용상
모방의 정황이 있음을 증명하였고, 다음으로 중국의 도교 법사희의 유전 상황
을 바탕으로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불교 목련고사를 모방한 목적에 대해서 살
펴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불교의 우란분재를 민간에서는 백
중41)이라 불렀는데, 이 백중의 행사는 민간의 무속 행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
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중의 행사 중 중요한 무속 제의인 씻김굿 등이 벌어지
는데 이 씻김굿 속에서 바리공주 서사무가가 구연된다. 즉 불교의 우란분재와
목련고사가, 무속의 백중과 바리공주 서사무가와 대응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백중의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하였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
고 있지만42) 이 백중이 무속 행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만은 사실이
41) 백중의 이명들을 살펴보면 百種, 百中, 魄縰, 百衆, 百踵, 百終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많은 이명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백종의 유래가 오래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유래가 불분명 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42) 이수자는 「백중의 기원과 성격」(?한국무속학? 제25집, 1993)에서 “세경본풀이는
현재 제주도에서 행해지고 있는 큰굿속에서 심방(무당)에 의해 불리우고 있지만,
이것은 원래 큰 굿 열두거리 중 여덟 번째로 ᅠ행해졌던 바 농경신에 대한 제의 속
에서 불렸던 신화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자청비라는 여신이 하늘로부터 오곡종
자와 열구시만국을 얻어 칠월 열나흘날 지상에 내려왔고 이 법으로 백중살이가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세경본풀이가 우리민족의 농경기원
신화이고 또 백중은 이러한 신의 일에 근거하여 형성된 우리민족이 농경기원일이
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라고 한 바가 있다. 이수자의 이와 같은 견해는 한
국에서 백중이 자생적으로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견해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것이
한국 무속에 기원을 두고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수자의
이러한 견해는 세경본풀이가 중국 ?양산백보권?을 모방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27
다. 근래에 와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는 여러 지역의 백중행사 진행
과정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들 중 많은 지역에서 그것이 무속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들어났다. 백중과 바리공주 서사무가의 공연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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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15년 7월 30일 접수되고
2015년 9월 7일 심사완료되어
2015년 9월 16일 게재가 확정되었음.
바리공주 서사무가에 나타난 한국 목련고사 유전 129
Abstract
The Transmission of the Korean Mokryeon stories
appear in the shaman song of the Princess Bari
Noh Joong-bang
This thesis is analysis of Mokryeon old story transmit the Bari princess
comparative studies. The Mokryeon old stories were saved his mother hell,
were transmitted when was held in Uranbunjae ceremony This stories were
started in ancient China, has been handed down to Korea and Japan. It has
been studied for a long time in Buddhism and folks. The Korean Mokryeon
old stories were transmitted around Bulseoldaemoklearyeankyeong in Buddhism
and folks.
Bulseoldaemoklearyeankyeong was similar to Byeonmun, and could used
with a script. But Korean Mokryeon old stories were imitated in ancient
shamanistic Princess Bari celebrations. Korea shamanism is that there are
many sects that are free courtesy Gutpan also goes to various type of
performances over the concert format.
Princess Bari was to emulate the contents of the Korean Mokryeon old
stories proceed as proposed, including the nature of performances by concert
format. This fact proves that makes the Korean Mokryeon old stories
detained beyond the term and its Buddhist traditions active in shamanism.
Chess shamanism in Korea is mainly due to lack of Hell notion borrowed
in the form of Buddhism in the Buddhist tradition transformation were in
the Korean Mokryeon old stories yourself in this situation is that imitation
130 語文硏究85(2015. 9)
was the highest priority of the target.
Taoist of China were also dilute the fact that mimics the arrest of
Buddhist Mokryeon old stories. At the time, China has been conducting
inspections at the Mokryeon old stories concert when Wooranbunjae annually
through Byeonmun.. It was conducted as fairly important event of the year.
The Moklearyean old stories of this Buddhist tradition, each year will
impart a great response Taoist tradition they made the transformation to
lend a Buddhist form of these performances with their performances and
projection activity according to a new form of fusion Mokryeon old stories
concert. Therefore, the memorial ceremony have entered into the
consciousness performances, the performances will be conducted in the
Mokryeon old stories concert. After the performances of the Taoism format
of the show the host was believed that the dead were escaped in hell.
In fact, in the west advantages Korea Princess Bari who imitate the
dead is quite similar to the Buddhist Mokryeon old stories birth of a rare
Taoism of China. Korea also Wooranbunjae of Buddhism were preval‎ent
when a large magnolia performances and Buddhist-related mortality, which
would mimic this in shamanic including the configuration or content of
Mokryeon old stories of the prototype Princess Bari. Princess Bari This
office is standing in the way Ssitgimgut playing in shamanism, the end of
the show informal process was considered to be has been nectarines.
Key Words : Mokryeongumo, Princess Bari, Uranbunjae, Mokryeonkyeng, Taoism,
Key Words : Beobsa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