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토론문/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 역사

2018. 3. 10. 19:15우리 역사 바로알기

아래 글은 2014. 11. 22일 사)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 주관 (:구리청소년수련장 강단)한 국제학술대회 제2 발제자 鄭仁甲(전 칭화대 교수)선생의 발표문에 대한 본인의 토론문이다.

 

 

고구려 문제에 관하여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 역사

 

토론자 : 韓文洙(보학연구가)

 

발제자의 논고 고구려의 문제에 관하여를 펼쳐 보면서 그들과의 논쟁과정에서 고군분투하며 그 동안 분루를 삼켰을 심정에 연민을 금할 수 없다. 발제자가 서두에 고구려문제는 한중 두 나라 역사의 가장 큰 이슈의 문제이다. 그러나 중국의 고구려 문제에 관한 전반 상황에 대해 한국인들의 전면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한 발제자는 그들과의 논쟁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므로써, 정책 당국과 사학계에 일말의 자성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데 대해 경의와 감사 말씀을 드린다.

 

1. 중국 고구려문제의 유래와 발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이후 1960년대까지 중국의 모든 출판물과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는 외국역사 즉 조선·한국사로 돼 있었다. 역사학대가 곽말약郭沫若, 당란唐蘭과 전백찬翦伯贊 등이 집필한 모든 역사책에 다 이렇게 취급하였지만, 1934<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등을 집필한 역사학가 김육보金毓黼가 처음으로 고구려가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라는 견해를 내놓았으나 당시의 국제정세와 문화혁명 때문에 이 견해가 학술계와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중국내의 고구려문제 논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약술할 수 있다.

a. 건국이후 1960년대까지 고구려를 조선사·한국사로

b. 1960년경에 고구려를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보는 견해가 발생

c. 1970년대 중반 고구려를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d. 200010월 이전까지 국가공식견해가 없음. 다만, 중국 역사학자들은 다양한 견해 : 고구려를 중국사로 보는 자는 극소수 한국사로 보는 자가 절대다수

e. 200010월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국가공식견해가 됨

f. e사항을 관철하기 위하여 20022월 고구려공정을 출범시킴

 

2. 고구려공정

20022월 동북공정을 정식 가동, 동북공정의 공식명칭은 동북변방 역사와 현황 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研究工程)’이다. 구체 내용에는 동북지방사, 동북민족사,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중조관계사, 동북과 러시아 원동간의 관계, 동북지역사회안정전략 등 6가지에 대한 연구이다. 5년을 기한으로 하고 1,500만 원(약 한화2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고구려문제는 동북공정의 한 개 내용에 속한다.

 

3. 고구려문제와 발해관련 질의

---중략--- 고구려는 중원에 진출하지 못했다. 고구려는 요동으로부터 한반도에 이르는 백제, 신라 등의 인간과 언어가 같은 동일민족의 집단 및 체계에 속하지 변방으로부터 중원과 연결되는 인간의 집단 및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잡혀간 20만 명의 고구려 포로는 당시 의 변방 미개척지로 끌려가 노예가 되었으며 동화되고 말았다. 정치 문화 등 면에서 고구려는 唐王朝 판도내에서 이슬처럼 사라졌다. ---중략--- 발해문제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행위가 황당하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구려영토의 절반이 현 중국판도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키는 처사에는 거의 근거가 없다. 그러면서 중국을 욕하는 것은 똥 묻은 돼지가 겨 묻은 돼지를 더럽다고 흉보는 격이다. 앞 절에서 제기한 바 있지만 이는 영토본위의 원칙 때문이다. 한 개 나라가 자국의 국사를 서술할 때 마땅히 그 나라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판도범위 안에 제한시켜야 한다. 이는 현 국제사학계의 통념이다. 신라, 고려, 조선 등 한반도는 1897년까지 중국의 지방정부(속국)이었지만, 현 중국판도 밖에 있으므로 중국사에 편입시킬 수 없다. 한국인이 세운 단군조선, 마한, 변한, 신라, 백제, 고구려, 탐라, 가야등은 한국사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판도밖에 있는 발해만은 한국사에 귀속시킬 수 없다. 발제자는 발해는 어쨌든 한국사에 넣으면 안 된다. 발해국의 고구려유민과 말갈유민간의 비례에 관하여 한·중 두 나라의 견해가 크게 다르다. 한국인의 견해를 수긍하더라도 발해는 한국사에 넣을 수 없다.”라는 견해를 피력하였으나, 토론자는 이에 의문이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사항을 질의하니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사실 고구려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모든 나라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조선이 모두 중국의 속국 즉 지방정권이었다.”라는 발제자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고구려 대 당, 명과 조선라고 표기하여야 하며, 한국(대한민국)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속국인 적이 없음).

둘째, 조선조 일부 실학자들이 주장하고 서술(箕子朝鮮, 東方人文, 東史綱目, 我邦疆域考)한 단군시대 부정과 지리지명이 동북공정 논쟁에 영향을 준 사례는 있는가?.

 

끝으로, 발제자가 중국의 고구려 문제에 관한 전반 상황에 대해 한국인들의 전면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해주신 바, 발제자는 이후 한국 정책 당국과 사학계가 대처할 방안과 계획에 대한 바램이 있다면 어떠한 대안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지 견해를 밝혀 주시기 바라면서 토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출처 : soo709
글쓴이 : 한문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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