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에게 外 / 조재도

2013. 8. 2. 16:41

 

너희들에게    -조재도

                             (1957, 충남 부여산. 공주사대 국어교육학과 졸)

                          

 

 

싹수 있는 놈은 아닐지라도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은 아닐지라도
나는 너희들에게 희망을 갖는다

오토바이 훔치다 들켰다는 녀석
오락실 변소에서 담배 피우다 걸렸다는 녀석
술집에서 싸움박질 하다 끌려왔다는 녀석
모두 모두가  더없는 밀알들이다.

공부 잘해 대학 가고 졸업하면 펜대 굴려
이 나라 이 강산 좀먹어가는
관료 후보생보다
농사꾼이 될지 운전수가 될지
공사판 벽돌 나르는 노동자가 될지
모르는 너희들에게 희망을 갖는다

이 시대를 지탱해가는 모든 힘들이
버려진 사람들 그 굵은 팔뚝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공무원 관리는 되지 못해도
어버이의 기대엔 미치지 못해도
동강난 강산 하나로 이을 힘이 바로 너희들
두 다리 가슴마다 들어 있기에
나는 믿는다 통일의 알갱이로 우뚝우뚝 커가는
건강하고 옹골찬 너희 어깨를.

 

 



 

 

 

 

      

   하얀 개 - 조재도

 

가라앉은 꽃봉처럼 그가 죽었다

요양원 뒤뜰 임종실에서

죽음이 조금 힘들었나 보다

반쯤 벌린 입에

얼굴이 약간 비틀어져 있다

그가 죽은 후미진 방 앞에

하얀 개가 한 마리 묶여 있다

두 귀는 쫑긋하고

앞발이 대나무처럼 굵고 곧다

가족들이 달려와

죽은 그를 구급차에 옮겨 싣는다

작은 소란이 일고

흰 천에 덮인 말 없는 그를

하얀 개가 바라본다

구급차에 시동이 걸리자

하얀 개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든다

구급차가 서서히 멀어지자

하얀 개가 주인을 떠나보내듯

끙끙거린다

그의 마지막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본

하얀 개

개의 낑낑거리는 소리를

지상의 마지막 소리로 듣고 죽은

 

 

 

        아름다운 사람

                                                   조재도



공기 같은 사람이 있다.
편안히 숨 쉴 때 알지 못하다가
숨 막혀 질식할 때 절실한 사람이 있다.

나무그늘 같은 사람이 있다.
그 그늘 아래 쉬고 있을 땐 모르다가
그가 떠난 후
그늘의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이런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매일같이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이지만
위안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은 몇 안 된다.

세상은 이들에 의해 맑아진다.
메마른 민둥산이
돌 틈에 흐르는 물에 의해 윤택해지듯
잿빛 수평선이
띠처럼 걸린 노을에 아름다워지듯

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사람들은 세상을 덜 무서워한다 .

 

 

 

 

 

 

       겨울나무

                                조재도

 

 

 

 

깡깡 언 나무를 맨손으로 만져본다

사나흘 강추위에 목이 부러진 것들이다

사람도 겨울나무처럼 얼어붙을 때가 있다

이듬해 봄 해 발끈 떠

얼음장 아래 푸른 물 어롱어롱 흐르면

갈라터진 껍질 찢고 걸어 나오는 사람 있다

 

―조재도『사랑한다면』(작은숲, 2012) 중에서

 

 

 

* 조재도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청양에서 자랐다.

   1985년 『민중교육』으로 떠들썩하게 등단.

   그동안 시집 『좋은 날에 우는 사람』,

   동화 『자전거 타는 대통령』,

   청소년소설 『이빨자국』 등 20여 권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