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煎茶)에 대한 고전문헌 자료 ㅡ 3

2018. 3. 16. 12:23차 이야기



전다(煎茶)에 대한 고전문헌 자료 ㅡ 3






근재집 제1권 / 시(詩)     ㅡ 안축(安軸)



한송정에 제하다〔題寒松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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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이 예전에 여기에 모였을 때 / 四仙曾會此
식객들은 맹상군의 문도 같았네 / 客似孟嘗門
상객은 구름처럼 자취가 없고 / 珠履雲無迹
소나무는 불에 타서 남지 않았네 / 蒼官火不存
신선 찾으려고 푸른 솔밭 생각하고 / 尋眞思翠密
옛날을 생각하며 황혼에 서 있네 / 懷古立黃昏
오직 차 끓이던 우물만 남아 / 惟有煎茶
바위 옆에 그대로 있구나 / 依然在石根

근래에 소나무가 산불에 탔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D001] 한송정(寒松亭)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동쪽 15리에 있는데,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하였고 소나무가 울창하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4 江原道 江陵大都護府》 또한 신라 때 술랑(述郞) 등 네 명의 선인이 노닐던 곳인데, 유람객이 많이 찾아오는 것을 고을 사람들이 싫어해서 그 정자를 철거하였으며, 오직 ‘돌 아궁이〔石竈〕’와 ‘돌 못〔石池〕’과 두 개의 ‘돌 우물〔石井〕’ 등 사선(四仙)이 차를 달일 때 썼던 유적만 그 옆에 남아 있다고 한다. 《稼亭集 卷5 東遊記》
[주-D002] 사선(四仙) : 
신라 때의 술랑(述郞)ㆍ남랑(南郞)ㆍ영랑(永郞)ㆍ안상(安祥)을 가리킨다.
[주-D003] 맹상군(孟嘗君) :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공족(公族)인 전문(田文)의 군호(君號)로, 손님을 좋아하여 식객(食客)이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주-D004] 상객(上客) : 
원문의 주리(珠履)는 구슬로 장식한 신발이란 뜻인데 전하여 귀한 손님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의 문객이 3000여 명인데, 그중 상객은 다 구슬로 꾸민 신을 신었다고 한다. 《史記 卷78 春申君列傳》



  * 안-축 []
  •   고려 말기의 학자(1287~1348).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젊어서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고 충렬, 충선, 충숙 세 왕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작품에 경기체가인 <관동별곡>과 <죽계별곡>, 저서에 문집 ≪근재집≫이 있다.  / <다음 국어사전>
 





동국이상국전집 제13권 / 고율시(古律詩)

손 한장(孫翰長)이 다시 화답하기에 차운하여 기증하다 [孫翰長復和。次韻寄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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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문장가들이 / 古今作者雲紛紛
초목을 품제(品題)하여 호탕한 기개 발휘했네 / 調戲草木騁豪氣
장구(章句)를 마탁하여 스스로 기이함을 자랑했는데 / 磨章琢句自謂奇
사람들의 읊조림은 취미 각각 다르구나 / 到人牙頰甘苦異
장원의 시 홀로 대중에서 뛰어났으니 / 壯元詩獨窮芳腴
아름다운 문장 뉘라서 찬탄하지 않으리 / 美如熊掌誰不嗜
임금님이 구중궁궐(九重宮闕)에 불러들여 / 玉皇召入蓬萊宮
은대의 요직(要職)에 등용하였네 / 揮毫吮墨銀臺裏
그대는 낙락한 천길 소나무라면 / 君材落落千丈松
불초한 이 몸은 칡덩굴 같으이 / 攀附如吾類縈虆
그대와 동료(同僚)가 아니므로 언급(言及)하였다.
우연히 유다의 시를 지었는데 / 率然著出孺茶
그대에게 전해짐을 어이 뜻했으리 / 豈意流傳到吾子
시를 보자 화계 놀이 홀연히 추억되구려 / 見之忽憶花溪遊
화계(花溪)는 차의 소산지(所産地)인데, 그대가 진양(晉陽)에서 부기(簿記)를 맡아 볼 때 찾아가 보았으므로 화답한 시(詩)에 언급(言及)하였다.

옛일 생각하니 서럽게 눈물이 나네 / 懷舊悽然爲酸鼻
운봉의 독특한 향취 맡아보니 / 品此雲峯未嗅香
남방에서 마시던 맛 완연하구나 / 宛如南國曾嘗味
따라서 화계에서 차 따던 일 논하네 / 因論花溪採茶時
관에서 감독하여 노약(老弱)까지도 징발(徵發)하였네 / 官督家丁無老稚
험준한 산중에서 간신히 따 모아 / 瘴嶺千重眩手收
머나먼 서울에 등짐 져 날랐네 / 玉京萬里頳肩致
이는 백성의 애끊는 고혈(膏血)이니 / 此是蒼生膏與肉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바야흐로 이르렀네 / 臠割萬人方得至
한 편 한 구절이 모두 뜻 있으니 / 一篇一句皆寓意
시의 육의 이에 갖추었구나 / 詩之六義於此備
농서의 거사는 참으로 미치광이라 / 隴西居士眞狂客
한평생을 이미 술 나라에 붙였다오 / 此生已向糟丘寄
술 얼근하매 낮잠이 달콤하니 / 酒酣謀睡業已甘
어이 차 달여 부질없이 물 허비할쏜가 / 安用煎茶空費水
일천 가지 망가뜨려 한 모금 차 마련했으니 / 破却千枝供一啜
이 이치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이없구려 / 細思此理眞害耳
그대 다른 날 간원에 들어가거든 / 知君異日到諫垣
내 시의 은밀한 뜻 부디 기억하게나 / 記我詩中微有旨
산림과 들판 불살라 차의 공납(貢納) 금지한다면 / 焚山燎野禁稅茶
남녘 백성들 편히 쉼이 이로부터 시작되리 / 唱作南民息肩始
[주-D001] 은대(銀臺) : 
승정원(承政院)의 별칭(別稱)으로, 왕명(王命)의 출납(出納)을 담당하였다.
[주-D002] 육의(六義) : 
풍(風)ㆍ아(雅)ㆍ송(頌)ㆍ부(賦)ㆍ비(比)ㆍ흥(興)을 가리켜 말한다.


  *이 규  보        李奎報 춘경(春卿), 백운거사(白雲居士), 문순(文順), 삼혹호선생    
   1168(의종 22)∼1241(고종 28).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문인.
   본관은 황려(黃驪). 초명은 이인저(李仁氐),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만년(晩年)에는 시·거문고·술을 좋아해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고 불렸다. 아버지는 호부시랑(戶部侍郎)을 지낸 이윤수(李允綏)이다.

   16세부터 4·5년간 자유분방하게 지내며 기성문인들인 강좌칠현(江左七賢: 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의 모임으로 죽림칠현·죽림고회·해좌칠현이라 불림)과 기맥이 상통해 그 시회(詩會)에 출입하였다. 이들 가운데서 오세재(吳世才)를 가장 존경해 그 인간성에 깊은 공감과 동정을 느꼈다고 한다.  ㅡ <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국이상국전집 제14권 / 고율시(古律詩)

안화사(安和寺)의 당 선사(幢禪師)를 찾으니, 선사가 시 한 편을 청하다 [訪安和寺幢禪師。師請賦一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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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이 참 친구라 / 靑山眞故人
내 오는 걸 즐기는 듯 / 似喜幽人至
내 올 때 맑은 경치 보여주니 / 來時貺淸景
날씨가 곱고도 아름다워라 / 風日正姸媚
더구나 산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 到山未云幾
빗소리 다시 좋기도 하네 / 蕭蕭雨聲美
머리털 풀고 난간에 누웠으니 / 散髮臥風軒
코고는 소리 우레 같구나 / 一場雷鼾鼻
다시 일어나 갠 날을 보니 / 起視復澄霽
둥그런 해가 나무 끝에 걸렸군 / 木末掛規燬
매미들은 잎 속에서 울고 / 鳴蟬翳葉嘒
새들은 나뭇가지에서 싸운다 / 鬪雀爭枝墮
중들 제 손으로 차 달여 / 衲僧手煎茶
나에게 향기와 빛을 자랑하네 / 誇我香色備
나는 말하노라 늙고 병든 몸이 / 我言老渴漢
어느 겨를에 차 품질 따지랴고 / 茶品何暇議
일곱 사발에 또 일곱 사발 / 七椀復七椀
바위 앞 물을 말리고 싶네 / 要涸巖前水
때는 마침 초가을이라 / 是時秋初交
늦더위 다하지 않았단다 / 殘暑未云弭
낮이면 비록 찌는 듯하나 / 當千雖敲蒸
서늘한 저물녘의 기운 더욱 좋구나 / 晩涼聊可喜
수정 같은 푸른 외 먹으니 / 靑瓜嚼水精
얼음같이 찬 액체에 이빨이 시리다 / 永液寒侵齒
볼처럼 붉은 복숭아 / 碧桃雙頰紅
씹어 먹으니 잠 쫓기 알맞네 / 嚼罷堪祛睡
누웠다 앉았다 하며 돌아가길 잊으니 / 偃仰自忘還
이 놀이 참으로 내 뜻에 맞구려 / 玆遊眞適意





동국이상국전집 제16권 / 고율시(古律詩)


천마산(天磨山)에서 놀며 지음  [遊天磨山有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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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들어 길 잃고 숲 속에 빠지니 / 入山迷路墮叢薄
빈 골짜기 그윽한 꽃 절로 피고 지네 / 空谷幽花自開落
깊은 시냇물은 산 허리를 밟아 돌고 / 深溪流水山半脚
하늘의 한 줌 구름 절벽 위에 외롭구나 / 絶壁孤雲天一握
몇 백 척 암벽 위에 올라가 / 跳上巉巖幾百尺
나무 사이 뛰어다니며 원숭이와 다투네 / 身行木末爭猿玃
칼날 같은 창바위는 누구를 찌르려뇨 / 戟巖攢鍔欲誰格
흰 바위가 창과 같아서 사람들이 창바위라 한다.
딱딱한 돌북[石鼓]이 어찌 울리랴 / 鼓石無聲那得咢
북 같은 바위가 있다.
바람은 속인의 얼굴 쓸어버릴 듯 불어오고 / 風吹俗面似掃掠
골짜기는 사람 소리에 대답하듯 메아리치네 / 谷答人聲如唯諾
울퉁불퉁 돌밭길 따라가다가 / 初從石徑行犖确
되돌아서 소나무 사립 두들겼네 / 旋向松扉敲剝啄
문에 나와 웃으며 손 맞는 중 / 山僧出門笑迎客
그 모습 늙은 소나무에 천년학일세 / 貌古松頭千歲鶴
곤하여 송헌에 누우니 산 달은 훤하고 / 困臥松軒山月白
차 달이니 암천 마름을 물을 것 없네 / 煎茶不問巖泉涸
나는 즐거워 시름 잊는다 하니 스님은 껄껄 웃으며 / 我樂忘憂師大噱
본래 시름 없거늘 무어 그리 즐거우랴 하네 / 本自無憂誰是樂
내일 아침에는 완부의 나막신 밀칠하리니 / 明朝共蠟阮孚屐
무엇하러 다시 도퇴의 짚신을 사리오 / 何必更買桃椎屩
[주-D001] 완부(阮孚)의……밀칠하리니 : 
진(晉) 나라 완부가 나막신을 매우 아껴 항상 신에다 밀[蠟]을 칠하여 신고 다녔다. 《晉書 卷49 阮孚傳》
[주-D002] 도퇴(桃椎)의 짚신 : 
당 나라 주도퇴(朱桃椎)가 산 속에 오막살이를 짓고 살면서 항상 짚신을 삼아 길거리에 갔다 놓았는데, 사람들은 그 짚신을 보고 “주 거사(朱居士)의 신이다.” 하고 쌀로 바꾸어 갔다. 《新唐書 卷196 朱桃椎傳》




동국이상국전집 제17권 / 고율시(古律詩)

잠시 감불사(感佛寺)에서 놀다가 주지(住持) 노비구(老比丘)에게 줌 [暫遊感佛寺。贈堂頭老比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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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로 인해 남쪽 고을에 떨어졌다가 / 賴因飛語落蠻鄕
자비롭고 화평스러운 부처님을 보았네 / 得見慈和大法王
이끼를 헤치고 돌길을 걸어 / 細破蘚紋行石徑
굽이진 숲 속을 뚫고 절을 찾았네 / 曲穿林鏬覓蓮莊
바다 가운데 외딴 섬에는 등불이 밝았고 / 海心遙島燈抽炷
집 모퉁이 대숲은 창날같이 솟았네 / 屋角修篁槊聳鋩
누(樓) 밖에 죽원(竹園)이 있는데 대가 삼대같이 서 있었다.
도를 묻다가 이미 귀양살이 한을 잊었는데 / 問道已忘流謫恨
초신은 어찌하여 상강(湘江)에 빠져 죽었는고 / 楚臣胡奈浪沉湘

작은 나라 흥망이 꿈처럼 덧없는데 / 蟻國升沉一夢空
승방(僧房)에선 도리어 함께 담소하네 / 却因僧舍笑談同
뜬이름은 다 마음 밖에 멀어졌고 / 浮名揔落心虛外
오묘한 도는 오히려 목전에 있네 / 妙道猶存目擊中
돌 솥에 차를 끓이니 향기로운 젖이 희고 / 石鼎煎茶香乳白
벽돌 화로에 불을 붙이니 저녁놀같이 붉구나 / 塼爐撥火晩霞紅
인간의 영욕을 대략 맛보았으니 / 人間榮辱粗嘗了
이제부터 강산의 방랑객이 되리라 / 從此湖山作浪翁
[주-D001] 초신(楚臣)은……죽었는고 : 
초신은 전국 시대 초(楚) 나라 사람 굴원(屈原)을 말한다. 그는 초 회왕(楚懷王) 때 삼려대부(三閭大夫)가 되었다가 모함을 받아 귀양 간 후 이소경(離騷經) 등을 짓고 상강(湘江)에 투신 자살하였다. 《史記 卷84 屈原傳》





동국이상국전집 제17권 / 고율시(古律詩)

황려(黃驪)의 정천사(井泉寺)에 있는 의사(誼師)의 야경루(野景樓)에 제(題)함 [題黃驪井泉寺誼師野景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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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님 물질에는 청렴하나 / 吾師於物取之廉
계산을 탐내기는 꺼리지 않네 / 獨向溪山不忌貪
한 누대 얽어 내어 높이 솟았고 / 幼出一樓高突兀
스님이 처음 이 누를 지었었다.
일만 경치 몰아와서 다 포함하였네 / 驅來萬景揔包含
가랑비 속에 밭갈이하매 촌정이 즐거워라 / 耕犂細雨村情樂
나무꾼 젓대소리는 저무는 날 야흥이 무르익네 / 樵笛殘陽野興酣
아침 저녁 새소리는 문 밖 나무에서 들려오고 / 朝暮鳥聲門外樹
고금의 사람 그림자는 길가 못에 잠기었네 / 古今人影路傍潭
구름 걸린 하늘에 돌아가는 기러기 앞뒤로 공교롭게 날아가고 / 貼雲歸雁工先後
흐르는 물에 뜬 해오라기 문득 두세 마리 노는구나 / 出水浮鷗忽兩三
흙에 자란 곡식 품질은 마땅히 토질의 비옥함을 볼 것이요 / 壤品須看原膴膴
절 이름은 다 샘물이 넘실거림에 있다네 / 寺名都在井涵涵
달빛 스며든 깊은 방에 중은 잠들고 / 月窺深室閑僧睡
메아리치는 텅 빈 마루에는 손이 앉아 이야기하네 / 谷答虛堂坐客談
도잠(陶潛)의 더위 씻는 양헌이 하필이면 북쪽 창일까 / 陶暑涼軒何必北
소공(召公)의 바람 쐬던 높은 정자는 가장 남쪽 나라에 밝았네 / 召風巍榭最宜南
갠 하늘에 놀은 불보다 붉고 / 霽天霞色殷於火
새벽 주점의 안개는 쪽빛처럼 푸르네 / 曉店烟光翠似藍
일찍 청유를 점유하였으니 그대는 자적하고 / 早占淸幽君自適
늦게야 좋은 경치 만났으니 나는 바야흐로 부끄럽네 / 晩逢佳勝我方慙
마음 씻고 절에 들어 같이 은거한다면 / 洗心投社如同隱
물 긷고 차 끓이는 일도 감당하리 / 汲水煎茶尙可堪
화두에 음미할 곳이 있으면 / 儻有話頭鑽味處
때로 이 늙은이 불러 참여시킴도 무방하리 / 不妨時喚老龐參
[주-D001] 도잠(陶潛)의……창일까 : 
도잠의 말에 “여름날 북쪽 창 아래 누워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였다. 《晉書 卷94 隱逸傳》
[주-D002] 소공(召公)의……남쪽 나라에 밝았네 : 
주(周) 나라 소공(召公)의 선정(善政)에 감격한 백성들이 그가 남순(南巡)할 때 일찍이 쉬고 갔던 곳의 팥배나무[甘棠]를 아끼면서 길이 사모한 나머지 마침내 노래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감당(甘棠)편이다.
[주-D003] 화두(話頭) : 
종사(宗師)가 어떤 법을 말하여 후배를 지도하는 것이 마치 훌륭한 장인(匠人)이 재료를 마음대로 다루어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선(禪)을 참구할 때에는 종사로부터 크게 의문되는 한 법을 받아 일념으로 그 의문을 참구하여 심지(心地)를 깨닫게 하는 공부의 한 방법이다.






동문선 제10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한가한 서재에서 중려와 함께 우연히 읊음[閑齋同中慮偶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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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중량(卞仲良)

눈이 다 녹으매 봄빛이 움직이고 / 雪盡春光動
산이 둘렀으매 저문 빛이 많네 / 山圍暮色多
게으르니 생계는 박한 대로 / 懶從生計薄
한가로워 친구 찾는 것 기뻐하네 / 閑愛舊知過
옛 우물에는 처음으로 얼음이 녹고 / 古井初消凍
찬 매화는 방금 꽃을 맺네 / 寒梅正結花
단란한 풍미가 이만하면 족하거니 / 團圝風味足
술을 사고 또 차를 끓이네 / 賖酒更煎茶


  *  변중량(卞仲良, 1345년 ~ 1398년)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이다. 호는 춘당(春堂),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이색정몽주의 문인이며 변계량의 친형이기도 하다. 시적 재능이 뛰어났고[1] 저서에 춘당유고(春堂遺稿) 한권이 전한다. 경상남도 거창에 병암서원(屛巖書院)에 제향되었다.
  /  <위키백과>




속동문선 제5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밤에 앉아 차를 달이며[夜座煎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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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량(鄭希良)

밤이 얼마쯤 되었나, 눈이 오려 하는데 / 夜如何其天欲雪
청등 고옥에 추워서 잠 안 오네 / 淸燈古屋寒無眠
상머리에 이끼 돋은 낡은 병을 가져다가 / 手取床頭苔蘚腹
푸른 바다 같은 맑은 샘물을 쏟아 넣고 / 瀉下碧海冷冷泉
문무 화력을 알맞게 피우니 / 撥開文武火力均
벽 위에 달 떠오르고 연기 폴폴 생기네 / 壁月浮動生晴煙
솔바람이 우수수 빈 골짝에 울리는 듯 / 松風颼颼響空谷
폭포수가 좍좍 긴 내에서 떨어지는 듯 / 飛流激激鳴長川
뇌성ㆍ번개 한참 우루룽 땅땅 하더니 / 雷驚電走怒未已
급히 가던 수레가 덜커덕 넘어지는 듯 / 急輪轉越轘轅巓
이윽고 구름이 걷히고 바람도 자니 / 須臾雲捲風復止
물결이 일지 않고 맑고 잔잔하네 / 波濤不起淸而漣
바가지에 쏟아 놓으니 눈 같은 흰빛 / 大瓢一傾氷雪光
간담이 휑 뚫리어 신선과도 통함직 / 肝膽炯徹通神仙
천천히 마시며 혼돈 구멍을 뚫어내고 / 徐徐鑿破渾沌竅
홀로 신마를 타고 선천 세계에 노니네 / 獨馭神馬游象先
돌아보니 예전 마음속의 자갈밭 / 回看向來磎地
요마와 속념이 모두 망연해지고 / 妖魔俗念俱茫然
마음의 근원이 활짝 트이어 / 但覺心源浩自運
만물을 초월하여 하늘 밖에 노니는 듯 / 揮斥物外逍遙天
내 들으니, 상계의 진인은 깨끗함을 좋아하여 / 吾聞上界眞人好淸淨
이슬을 마시며 똥ㆍ오줌도 안 누어 / 噓吸沆瀣糞穢湔
먹고 옥을 먹고 장생을 하며 / 餐霞服玉可延齡
골수를 씻고 털을 베어 백년 동안이라지 / 洗髓伐毛童顔鮮
나도 세상에서 이러하거늘 / 我自世間有如此
어찌 고목과 오래 살기를 다투리 / 豈與枯槁爭長年
그대는 안 보았는가, 노동은 배고프면 삼백 조각을 희롱한 것을 / 君不見盧仝飢弄三百片
도덕경 오천 언은 부질없는 한만한 문자 / 文字汗漫空五千



  *  정희량(鄭希良) : 1469년(예종 1)  ~  1502년(연산군 8)  ,    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순부(淳夫), 호는 허암(虛庵). 동지중추부사 정충석(鄭忠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참의 정침(鄭忱)이고, 아버지는 철원부사 정연경(鄭延慶)이다. 어머니는 경간(慶侃)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김전(金詮)·신용개(申用漑)·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주 01)될 정도로 문명이 있었다.   ㅡ <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목은시고 제2권 / 시(詩)


눈 온 뒤에 다시 중강의 운을 사용하다. [雪後復用仲剛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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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뜻은 누가 제일임을 알거니와 / 壯志知誰最
곤궁한 시름은 나를 범하지 못하네 / 窮愁不我加
날 추우니 자주 술을 마시고 / 天寒頻飮酒
해 저무니 집 생각이 갑절 나누나 / 歲暮倍思家
홀로 연산의 눈을 마주해 앉아서 / 獨對燕山雪
멀리 대유령의 매화를 생각하네 / 遙懷庾嶺花
그윽한 삶이 더욱 맛이 있구나 / 幽居尤有味
돌솥에 차 달이기 좋기도 해라 / 石鼎好煎茶



  *  목은(牧隱) 이색(李穡)  : 1328년(충숙왕 15) ~ 1396년(태조 5) 영숙(穎叔), 목은(牧隱), 문정(文靖)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문인.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포은(圃隱)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길재(吉再)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찬성사이곡(李穀)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진사(進士)가 되고, 1348년(충목왕 4)원나라에 가서 국자감(國子監)의 생원(生員)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1351년(충정왕 3) 아버지 상을 당해 귀국하였다. 1352년(공민왕 1) 전제(田制)의 개혁, 국방계획, 교육의 진흥, 불교의 억제 등 당면한 여러 정책의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이듬해 향시(鄕試)와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해 서장관(書狀官)이 되었다. 원나라에 가서 1354년 제과(制科)의 회시(會試)에 1등, 전시(殿試)에 2등으로 합격해 원나라에서 응봉 한림문자 승사랑 동지제고 겸 국사원편수관(應奉翰林文字承事郎同知制誥兼國史院編修官)을 지냈다.

   귀국해 전리정랑 겸 사관편수관 지제교 겸 예문응교(典理正郎兼史館編修官知製敎兼藝文應敎)·중서사인(中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원나라에 가서 한림원에 등용되었으며 다음 해 귀국해 이부시랑 한림직학사 겸 사관편수관 지제교 겸병부낭중(吏部侍郎翰林直學士兼史館編修官知製敎兼兵部郎中)이 되어 인사행정을 주관하고 개혁을 건의해 정방(政房)을 폐지하게 하였다.

   1357년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어 유학에 의거한 삼년상제도를 건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어 추밀원우부승선(樞密院右副承宣)·지공부사(知工部事)·지예부사(知禮部事) 등을 지내고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남행할 때 호종해 1등공신이 되었다. 그 뒤 좌승선(左承宣)·지병부사(知兵部事)·우대언(右代言)·지군부사사(知軍簿司事)·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보문각(寶文閣)과 예관(禮官)의 대제학(大提學) 및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등을 지냈다.

   1367년 대사성(大司成)이 되어 국학의 중영(重營)과 더불어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김구용(金九容)·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을 학관으로 채용해 신유학(주자학·정주학·성리학의 이칭)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였다. 1373년한산군(韓山君)에 봉해지고, 이듬해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지춘추관사 겸 성균관대사성(知春秋館事兼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였다. 1375년(우왕 1) 왕의 요청으로 다시 벼슬에 나아가 정당문학(政堂文學)·판삼사사(判三司事)를 역임하였다. 1377년에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의 호를 받고 우왕(禑王)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1388년 철령위문제(鐵嶺衛問題)가 일어나자 화평을 주장하였다. 1389년(공양왕 1)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우왕이 강화로 쫓겨나자 조민수(曺敏修)와 함께 창왕(昌王)을 옹립, 즉위하게 하였다.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창왕의 입조와 명나라의 고려에 대한 감국(監國)을 주청해 이성계(李成桂) 일파의 세력을 억제하려 하였다.

   이해에 이성계 일파가 세력을 잡자 오사충(吳思忠)의 상소로 장단(長湍)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함창(咸昌)으로 옮겨졌다가 이초(彛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청주의 옥에 갇혔는데 수재(水災)가 발생해 함창으로 다시 옮겨 안치(安置)되었다.

   1391년에 석방되어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봉해졌으나, 1392년 정몽주가 피살되자 이에 연루되어 금주(衿州: 현재 서울시 금천구 시흥)로 추방되었다가 여흥(驪興: 현재 경기도 여주)·장흥(長興) 등지로 유배된 뒤 석방되었다. 1395년(태조 4)에 한산백(韓山伯)에 봉해지고, 이성계의 출사(出仕) 종용이 있었으나 끝내 고사하고 이듬해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에 죽었다.

학문세계와 저술활동

   원·명 교체기 때 천명(天命)이 명나라로 돌아갔다고 보고 친명정책을 지지하였다. 또 고려 말 신유학(성리학)이 수용되고 척불론(斥佛論)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유교의 입장을 견지하여 불교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즉 불교를 하나의 역사적 소산으로 보고 유·불의 융합을 통한 태조왕건 때의 중흥을 주장했으며, 불교의 폐단을 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척불론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도첩제(度牒制)를 실시해 승려의 수를 제한하는 등 억불정책에 의한 점진적 개혁으로 불교의 폐단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한편 세상이 다스려지는 것과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성인(聖人)의 출현 여부로 판단하는 인간 중심, 즉 성인·호걸 중심의 존왕주의적(尊王主義的) 유교사관을 가지고 역사서술에 임하였다. 아울러 이색의 문하에서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킨 명사(名士)와 조선 왕조 창업에 공헌한 사대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이숭인(李崇仁) 등 제자들은 고려 왕조에 충절을 다하였으며, 정도전(鄭道傳)·하륜(河崙)·윤소종(尹紹宗)·권근(權近) 등 제자들은 조선 왕조 창업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색-정몽주·길재의 학문을 계승한 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등은 조선 왕조 초기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저서에는 『목은문고(牧隱文藁)』와 『목은시고(牧隱詩藁)』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장단(長湍)의 임강서원(臨江書院), 청주의 신항서원(莘巷書院), 한산(韓山: 현재 충청남도 서천)의 문헌서원(文獻書院), 영해(寧海: 현재 경상북도 영덕)의 단산서원(丹山書院) 등에 제향(祭享)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색(李穡, 1328년 6월 17일(음력 5월 9일[1]) ~ 1396년 6월 12일(음력 5월 7일[2]), 경상북도 영해군)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며 유학자, 시인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성리학을 고려에 소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성리학을 새로운 사회의 개혁, 지향점으로 지목하였다.

   찬성사(贊成使) 이곡(李穀)의 아들이며, 이제현의 제자로서 그의 문하에서 성리학자들은 다시 역성 혁명파절의파로 나뉘게 된다. 정도전, 유창(劉敞) 등의 스승이었다. 이성계 일파의 역성혁명에 부정적으로 보고 협조하지 않다가 의문의 최후를 맞이한다. 그는 이종학(李種學)의 아버지이고 박상충(朴尙衷)의 손윗처남이며 박은(朴誾)의 외숙부이고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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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4권 / 시(詩)

행점(杏店)의 도중에 눈보라가 치다. [杏店途中風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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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구멍 부르짖어 성난 바람 몰아치니 / 萬竅呼號風怒起
털모자 여우 갖옷은 물을 뿌린 듯하고 / 毳帽狐裘如潑水
잠깐 새에 눈보라가 공중을 몽땅 휩싸니 / 須臾雪勢欲包空
바다와 산은 분주히 어둠 속으로 돌아가네 / 海岳奔走歸溟濛
흐릿해진 수레바퀴엔 긴 고드름 드리우고 / 糢糊車轂垂長氷
말굽은 옥잔 같고 갈기엔 구슬이 주렁주렁 / 玉杯馬蹄珠綴騣
구릉과 골짜기는 깎아 놓은 듯 편평하여라 / 丘陵坑坎平如削
지척에서 넘어지는 것 어이 그리 잦은고 / 咫尺倒顚何數數
평생에 가장 좋아한 건 절집에서 잠잘 때 / 平生最愛僧窓眠
송죽엔 바람 불고 하늘엔 구름 가득할 제 / 松竹蕭蕭雲滿天
화롯불에 얼굴 발갛게 비추며 차를 달이어 / 煎茶爐火照面紅
조금 마시고 모기 소리로 조용히 읊음일세 / 淺斟低唱飛蚊同
이런 낙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나뿐이니 / 已知此樂天下獨
암곡에서 소요하며 늙는 것이 합당하거늘 / 便合逍遙老巖谷
누가 멀리 달려와 벼슬하길 배우게 했나 / 誰敎遠走學爲官
요컨대 세간의 행로 어려움을 알아야겠네 / 要識世間行路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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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6권 / 시(詩)


전다 즉사(煎茶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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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계산 찾아드니 그림도 이만 못하리 / 春入溪山畫不如
가벼운 천둥이 밤새 적막을 진동시켰네 / 輕雷一夜動潛虛
꽃 자기잔의 흰빛은 조반을 먹은 이후요 / 花瓷雪色朝飡後
돌냄비의 솔 소리는 낮잠을 잔 뒤로다 / 石銚松聲午睡餘
달을 희롱해라 완연히 친면을 본 듯하고 / 弄月宛然親面見
바람을 타라 마침내 소생함을 묻고 싶네 / 乘風欲問到頭蘇
하얀 귀밑머리에 누가 기심 잊은 자인고 / 鬢絲誰是忘機者
흉중의 수많은 글을 깨끗이 씻은 이로세 / 淨洗胷中書五車

일찍이 공문에 가서 사여를 물을 적에 / 曾向空門問四如
차 향기 자리 가득코 창문은 공허했네 / 茶香滿座小窓虛
신심의 뭇 고통은 의당 다함이 없으나 / 身心衆苦知無盡
입속은 달콤하여 기쁨이 아직 남았다오 / 齒頰微甘喜尙餘
방달함은 도리어 이중을 찾아야겠지만 / 放曠却須尋二仲
문장은 하필 삼소를 배울 것이 있으랴 / 文章何必擬三蘇
문왕을 스승삼고픈데 지금 어디 있는고 / 欲師西伯今安在
곰 아닌 걸 점쳐 얻어 후거에 실었었네 / 卜得非熊載後車
[주-D001] 달을 …… 듯하고 : 
당(唐)나라 시인 노동(盧仝)이, 간의대부(諫議大夫) 맹간(孟簡)이 보내 준 월단차(月團茶)를 두고 지은 〈다가(茶歌)〉에, “봉함 열자 간의의 얼굴 완연히 보는 듯해라, 손으로 삼백 편의 월단차를 점열하네.[開緘宛見諫議面 手閱月團三百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바람을 …… 묻고 싶네 : 
역시 노동의 〈다가〉에, “첫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셔 주고……여섯째 잔은 선령을 통하게 해 주네. 일곱째 잔은 마실 것도 없이, 오직 양쪽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일어남을 깨닫겠네. 봉래산이 어디에 있느뇨. 나도 이 맑은 바람 타고 돌아가고 싶구나. 봉래산 위의 신선들은 하토를 다스리지만, 지위가 청고하여 비바람과 격해 있으니, 어떻게 알리요 억조창생이 벼랑에서 떨어지는 고통 받고 있는 줄을. 문득 간의에게 창생의 소식을 묻는다면, 마침내 창생을 소생시킬 수 있지 않겠나.[一碗喉吻潤……六碗通仙靈 七碗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 蓬萊山在何處 玉川子乘此淸風欲歸去山上群仙司下土 地位淸高隔風雨 安得知百萬億蒼生 命墮顚崖受辛苦 便從諫議問蒼生 到頭合得蘇息否]”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 사여(四如)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에, “일체유위의 법칙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나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 亦如電 應作如是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 이중(二仲) : 
한(漢)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양중(羊仲)과 구중(裘仲)을 합칭한 말이다. 은사 장후(蔣詡)가 일찍이 향리로 돌아가 은거하면서 형극(荊棘)으로 문을 막고 집안에 세 길[三徑]을 내어, 오직 양중과 구중하고만 종유(從遊)했다고 한다.
[주-D005] 삼소(三蘇) : 
송대(宋代)의 문장가인 소순(蘇洵)과 그의 두 아들인 소식(蘇軾)ㆍ소철(蘇轍)을 합칭한 말이다. 송대에 삼소의 문장이 크게 행해져서 그 문장을 숙독(熟讀)하면 과거(科擧)에 급제할 수 있었으므로, 심지어 “소씨 글에 익숙하면 양고기를 먹고, 소씨 글에 서투르면 나물국을 먹는다.[蘇文熟喫羊肉 蘇文生喫菜羹]”는 말까지 있었다.
[주-D006] 곰 …… 실었었네 : 
주 문왕(周文王)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가면서 점을 쳐보니, 점사(占辭)에, “용도 아니요, 이무기도 아니요, 곰도 아니요, 말곰도 아니요, 범도 아니요, 비휴도 아니요, 얻을 것은 패왕의 보좌로다.[非龍非彲非熊非羆非虎非貔 所獲霸王之輔]” 했는데, 과연 위수(渭水) 가에서 강태공(姜太公)을 만나 그를 후거(後車)에 싣고 돌아왔던 데서 온 말이다.




목은시고 제8권 / 시(詩)

회포를 서술하다. [述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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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몸과 세상 둘 다 아득하기만 하나 / 祇今身世兩茫然
그윽한 흥취 이끄는 건 스스로 소년이라네 / 幽興相牽自少年
낮에 서책 열람한 건 한가한 때의 일과요 / 縹秩晝翻閑裡課
소나무에 눈 날릴 땐 취하여 잠을 잔다오 / 蒼松雪落醉中眠
언덕 위의 긴 휘파람은 원량을 생각하고 / 登皐長嘯思元亮
동해 가던 높은 풍도는 중련을 상상하네 / 蹈海高風想仲連
돌솥에 차 끊인 게 삼절 중의 으뜸인데 / 石鼎煎茶三絶最
아이가 대 사이의 샘물을 막 길어오누나 / 小童新汲竹間泉
[주-D001] 언덕 …… 생각하고 : 
원량(元亮)은 도잠(陶潛)의 자인데,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한다.[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동해(東海) …… 상상하네 :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이 포악한 진(秦)나라를 증오하여 말하기를, “저들이 방자하게 황제(皇帝)가 되어 천하에 군림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가서 빠져 죽을지언정, 차마 진나라의 백성은 될 수가 없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즉사(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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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창 아래 붓 잡고 망녕되이 높은 체하니 / 把筆明窓妄自尊
다행히도 지금은 찾아오는 친구가 적네그려 / 幸今朋友少過門
난국에 말을 다한 건 역사에서 징계하였고 / 盡言亂國徵齊史
위방에 들지 않는 건 논어에서 증험하였네 / 不入危邦驗魯論
역마 달리는 요서엔 백사장 달빛이 하얗고 / 馳驛遼西沙月白
관어대 아래엔 바다 하늘이 어두워지누나 / 觀魚臺下海天昏
백발에 비로소 노고가 병이 된 걸 후회하여 / 白頭始悔勞成病
나날이 차 달여 마시며 채원에 물을 주노라 / 日日煎茶灌菜園

내 동정 반성하매 스스로 그른 줄 아는데 / 反觀行止自知非
차례 뛰어넘은 은총은 세상에 드문 바로세 / 越次恩榮世所稀
칼 패옥 차고 퇴청할 땐 꽃 아래서 헤어지고 / 劍佩朝回花底散
조서는 밤에 초하고 달빛 아래 돌아온다오 / 絲綸夜草月中歸
그늘 짙은 나무에선 꾀꼬리가 지저귀고요 / 陰陰夏木黃鸝語
아득한 연기 물결 위엔 백조가 날아다니네 / 渺渺煙波白鳥飛
한스러운 건 당시에 일찍 사직하지 못하고 / 恨不當時乞身早
사면의 풍진 속에 석양이 비끼려 함이로다 / 風塵四面欲斜暉


[주-D001] 난국(亂國)에 …… 징계하였고 : 
춘추 시대 제(齊)나라 대부(大夫) 국무자(國武子)가 어지러운 나라에서 할 말을 다하여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좋아하다가 끝내 제나라에서 죽임을 당했던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傳 成公17年》
[주-D002] 위방(危邦)에 …… 증험하였네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 것이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세상에 나가고, 도가 없으면 숨는 것이다.[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泰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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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1권 / 시(詩)


박 판서 밀양(朴判書密陽)이 찾아오다. [朴判書密陽見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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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를 지어도 게을러서 전하지 못했는데 / 吟得新詩懶不傳
놀랍게도 문밖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네 / 忽驚門外有跫然
사방이 환한 배꽃 속의 조용한 모정에서 / 梨花開遍茅亭靜
돌샘의 물 길어 와 노비가 차를 끓였다오 / 老婢煎茶汲石泉
공은 칠순이 가까운데 여전히 확삭옹이라면 / 公近七旬猶矍鑠
나는 지금 병이 많아 구련과 같다고나 할지 / 我今多病似拘攣
주고 뺏는 하늘의 마음 역시 엿보기 어려워 / 天心與奪亦難料
벼슬길 먼저 채찍 들어 부끄럽기 그지없네 / 愧殺宦途先着鞭


[주-D001] 확삭옹(矍鑠翁) : 
원기 왕성하여 씩씩한 노인을 말한다. 동한(東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6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에 뛰어올라 용맹을 보이자, 한 무제(漢武帝)가 “이 노인이 참으로 씩씩하기도 하다.[矍鑠哉是翁也]”라고 찬탄했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주-D002] 구련(拘攣) : 
신경이 마비되어 팔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병을 말한다.
[주-D003] 벼슬길 …… 그지없네 : 
목은이 먼저 조정에서 현달하여 고관이 된 것이 부끄럽다는 뜻의 겸사이다. 동진(東晉)의 유곤(劉琨)과 조적(祖逖)이 벗으로 지내면서 중원(中原)을 회복할 뜻을 지니고 있었는데, 조적이 조정에 기용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유곤이 “나는 항상 그가 나보다 먼저 채찍을 들게 될까 걱정해 왔다.[常恐祖生先吾着鞭耳]”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62 劉琨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