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국 사회경제사, 농서 정리

2018. 3. 21. 17:46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농상집요[ 農桑輯要 ]

고려 때 이암(1297~1364)이 원(元)나라로부터 수입한 농서(農書).

중국 최초의 관찬(官撰) 농서로, 원나라 조정에서 농업진흥을 위하여 설치한 사농사(司農司)의 창사문(暢師文) 등이 1273년에 집성하여, 1286년에 간행 ·공포하였다. 내용은 경간(耕墾) ·파종(播種) ·재상(栽桑) ·과실 ·약초 등 10문(門)으로 되어 있으며, 《제민요술(齊民要術)》을 비롯한 각종의 문헌을 조리있게 인용하고 있다. 특히 당시의 새로운 유용작물(有用作物)인 목화의 재배를 장려한 기사가 주목된다.

농사직설[ 農事直說 ]

조선 세종 때의 문신인 정초(鄭招)·변효문(卞孝文) 등이 왕명에 의하여 편찬한 농서이다. 1429년(세종 11)에 관찬(官撰:정부에서 편찬한 책)으로 간행하여 이듬해 각 도의 감사와 주·부·군·현 및 경중(京中)의 2품 이상에게 널리 나누어 주었다. 내용≪농사직설≫의 내용이 대부분 중요 곡식류에 국한되고 기술이 간단하나, 우리 나라 풍토에 맞는 농법으로 편찬된 책으로는 효시가 된다. 또 이것이 지방 권농관의 지침서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뒤로 속속 간행된 여러 가지 농서 출현의 계기가 되었다. 즉, 종래에는 중국의 옛 농서에 의존하여 지방의 지도자들이 권농에 종사하였으므로 실제로 풍토에 따른 농사법의 변경이 어려웠던 것이다. 이와 같이 ≪농사직설≫은 지역에 따라 적절한 농법을 수록하였으며, 우리 실정과 거리가 있는 중국 농사법에서 탈피하는 좋은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시찬요초[ 四時纂要抄 ]

저자 미상의 조선시대 농서. 1책. 필사본. 신속(申?)이 편찬한 ≪농가집성≫ 하편(下篇)에 들어 있다. 이 책은 당나라의 한악(韓鄂)이 지었다는 ≪사시찬요≫를 초록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나 실상 대부분이 한국적인 내용의 농서이다. 세조 때 강희맹에 의해서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내용을 개관하면 사시순(四時順)으로 월별과 24절기별로 각종 작물의 재배관리법을 비롯하여 양잠·양봉·양축·식품가공 등의 농가행사와 과목·수목·화목들의 식수와 꺾꽂이법에 의한 번식·육성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작물로는 수도(水稻:논벼)를 비롯하여 각종 밭곡식의 원예작물인 채소류, 특용작물인 목화·삼종류, 잇과 쪽 등 염료작물, 그리고 많은 약초류의 재배법이 기재되어 있다. 이것은 ≪농사직설≫과 ≪금양잡록≫의 두 농서가 곡식류에 중점을 둔 것과 대조적으로 원예작물과 특용작물과 이에 보태어 양잠과 나무 심는 일에도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금양잡록[ 衿陽雜綠 ]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姜希孟)이 성종 대에 네 계절의 농사와 농작물에 대한 필요사항을 기술한 농서(農書). 내용저자가 52세에 좌찬성에서 물러나 그의 빙부가 남긴 경기도 금양현(衿陽縣:지금의 경기도 시흥과 과천지역)에 있는 묘막에 은거하여 손수 농사를 지으며 그곳 노농(老農)들과의 대화와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지은 것으로, 은퇴한 1475년(성종 6)에서 몰년인 1483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이 농서는 조선 초기의 농사기술에 관한 저서인 ≪농사직설 農事直說≫과 쌍벽을 이루는 저서이며, 전자가 관찬(官撰)인 데 반해 이 책은 저자 개인의 경험과 견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경기도 일대의 농업 사정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그 중 벼의 품종 이름이 거의 3분의 1이나 되어, 벼농사[水稻作]가 주식량작물 재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벼 품종 중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도입된 듯한 것들도 있어, 당시 외국과 기술교류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농부들과의 대담에서 취한 <농담>에서는 벼 올심기의 이로움과 그 관리법, 논 경운의 횟수와 심천(深淺), 그리고 파종의 소밀(疏密) 등에 관하여 논하고, 아울러 관의 농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구황촬요[ 救荒撮要 ]

1554년(명종 9)에 간행된 흉년에 대비한 내용의 책. ≪구황찰요≫는 기근을 구제하기 위하여 언해본(한글)으로 진휼청의 인포(印布)로 나온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흉년을 만나면 구호 사업이 실시되었다. 이러한 구호 사업과 함께 생식벽곡(生食辟穀)과 구황요기(救荒療飢)의 방법이 세종 때부터 여러 가지 책자로 간행, 보급되었다. ≪구황벽곡방 救荒辟穀方≫이 세종의 편집으로 간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그 내용은 ≪구황촬요≫에 많이 인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구황촬요≫의 초판본은 총 17면이다. 경주에서 목판본으로 발간되었다고 한다. ≪구황촬요≫ 초판의 내용은 빈사 상태에 있는 사람을 소생시키는 법, 굶주려 종기가 난 사람을 치료하는 법, 느릅나무껍질을 벗겨 즙을 만드는 법, 솔잎죽을 만드는 법, 느릅나무껍질로 떡 만드는 법, 말린 밥 만드는 법, 천금주 빚는 법, 곡식가루를 내는 법, 장 담그는 법, 쌀가루를 만드는 법 등이 기록되어 있다. ≪구황촬요≫는 기아에 지쳐 영양실조로 중태에 빠진 사람들의 구급법에서 시작하여, 대용식물의 조제법, 그에 필요한 조미료와 중환자의 소생에 필요한 비상용 술을 담그는 법도 기술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초·중기의 식량정책의 일환을 살피는 데에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구황에 필요한 자원을 살피는 데에도 참고가 된다.

농가집성[ 農家集成 ]

조선 중기의 문신 신속(申洬)이 편술한 농서. 1655년(효종 6)에 간행되었다. ≪농사직설≫·≪금양잡록 衿陽雜錄≫·≪사시찬요초 四時纂要抄≫의 세 농서와 부록으로 ≪구황촬요 救荒撮要≫가 덧붙어 있는 합편이다. 그러나 각 부분의 내용은 시대에 따른 개수와 보충이 있어 당시로서는 내용과 체재를 갖춘 종합 농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당본(唐本) ≪사시찬요≫와 ≪농가집성≫에 들어간 ≪사시찬요초≫를 비교해 보면 후자가 상당히 한국화된 내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피도 적으며 인용도 우리 나라의 풍토에 맞추어 적절히 교정되었고, 우리 나라 고유의 기술도 많이 언급되어 있다. 이로써 조선 중기의 농민과 권농관을 위한 전형적인 농업지침서가 이루어진 셈이다. 즉, 이들은 ≪농사직설≫과 ≪금양잡록≫에 주로 실려 있어 ≪사시찬요초≫에서는 주로 원예작물과 특용작물을 다루고, 양잠·재수(栽樹) 등에도 상당히 자세한 설명을 첨가하였다. 이로써 ≪농가집성≫의 구성은 균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구황촬요≫는 1554년(명종 9)에 진휼청(賑恤廳)의 인포(印布)로 시작되어 중간을 거듭해 오던 중 ≪농가집성≫에도 ≪구황보유방≫과 아울러 수록되었다. 그 가치는 균형 있는 종합 농서로서 당시의 농업기술과 원저와 중간본들 사이의 기술 변천을 살필 수 있는 데도 있지만, 이들 책 속에 나오는 여러 가지 작물의 품종명에서 이두와 한글의 표기가 많이 나와 국어사 연구에도 참고가 된다.

색경[ 穡經 ]

1676년(숙종 2) 박세당(朴世堂)이 지은 농서. 2권 2책. 이 책은 농사에 관한 경서라는 뜻으로 색경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지방의 농경법을 연구하여 꾸민 농법기술서로서 서문과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이 책은 농림축잠 전반에 걸쳐 계통적으로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양어·양봉 및 농산제조(술담그기, 초담그기 등)까지도 언급이 되어 있고, 농사를 점치는 법도 덧붙여 있다. 따라서 종래의 농서에 비하여 내용이 광범위하고 체계화되어 있어 뒤에 나온 ≪산림경제≫와 같은 소백과서의 선구격인 저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담배의 재배 및 제조법의 기재와 다양한 접목법의 설명, 그리고 각종 농작물마다 반드시 의료품으로서의 용도를 덧붙여 설명한 점 등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농서를 많이 섭렵하여 인용하고 취사선택과 분류를 적절히 하여 요령있는 설명으로 엮어놓았으므로, 농학체계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겠다.

산림경제[ 山林經濟 ]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이 엮은 농서 겸 가정생활서. 이 책은 간행을 보지 못하고 수사본으로만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내용은 복거(卜居:주택의 선정과 건축)·섭생(攝生:건강)·치농(治農:곡식·목화·기타 특용작물의 경작법)·치포(治圃:채소류와 화초류·담배·약초류의 재배법)·종수(種樹:과수와 임목의 육성)·양화(養花:화초·화목·정원수의 가꿈)·양잠(養蠶)·목양(牧養:가축·가금·벌·물고기의 양식)·치선(治膳:식품저장·조리·가공법)·구급(救急:150가지 응급처리법)·구황(救荒:흉년에 대비하는 비상조치법)·벽온(辟瘟:전염병을 물리치는 법)·벽충법(辟蟲法:해충·쥐·뱀 등을 물리치는 처방)·치약(治藥:약의 조제·복약금기 등을 논함)·선택(選擇:길흉일과 방향의 선택)·잡방(雜方:그림과 글씨 등과 촉대·도자기·악기·장검 등을 손질하는 방법) 등 16항목에 걸쳐서 논하고 있다. 산림경제』는 농서로서 농림축잠업을 망라하였을 뿐 아니라, 농촌생활에 관련되는 주택·건강·의료·취미·흉년대비 등에 이르기까지 논술하고 있다. 따라서, 종래의 농서들에서 볼 수 없는 종합적인 농가경제서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농업과 임업에도 많이 참고가 될 과학적인 면도 있다. 비록 인쇄, 보급된 것이 아니어서 우리 나라 농업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유중림(柳重臨)에 의하여 증보되어 서유구(徐有榘)의 대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밑거름으로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산림경제』는 당시의 농업기술 수준을 살필 수 있을 뿐 아니라, 농가생활의 모습과 의료·건강관리·민속·취미 등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해동농서[ 海東農書 ]

18세기 후반 서호수(徐浩修)가 편찬한 농업기술서. 이 책은 우리 나라 농학의 전통 위에서 우리 나라의 자연 조건을 반영하고 중국의 농업 기술까지도 수용해 전제·수리·농기에 관한 문제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농학의 체계화를 기도한 것이다. 이 책은 ≪농가집성 農家集成≫ 등 기존 우리 나라의 농서를 주자료로 이용하면서, 주로 ≪산림경제≫·≪증보산림경제≫ 등의 농학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중국의 농서로서 참고된 것은 왕정(王楨)의 ≪농서≫와 서광계(徐光啓)의 ≪농정전서 農政全書≫가 있다. 이 책의 농업론은 거의 같은 시기에 쓰인 ≪북학의 北學議≫나 ≪과농소초 課農小抄≫의 농업론과 더불어 또 다른 특색을 이루고 있다. 또, 우리 나라의 농학을 기본으로 하고 중국 농학에서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선별적으로 수용, 하나의 체계를 수립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농학사상 일정한 의의를 지닌다.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 ]

조선 후기에 농업정책과 자급자족의 경제론을 편 실학적 농촌경제 정책서.

규장각도서. 16부분으로 나뉘어 있어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또는 《임원경제십육지》라고도 한다. 순조 때의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가 만년에 저술한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긴요한 일을 살펴보고 이를 알리고자하여 《산림경제(山林經濟)》를 토대로 한국과 중국의 저서 900여 종을 참고, 인용하여 엮어낸 농업 위주의 백과전서이다. 이 방대한 저술은 농업기술과 농업경제의 양면에서 종전의 농업이 크게 개량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으며, 향촌에서의 생활 전반을 시대적 조건과 관련시켜 정연하게 정리한 실학서로, 당시의 경제사정과 경제정책을 살피는 데 사료적 가치가 높은 책이다.

출처 : AKKAL의 역사이야기
글쓴이 : AKKA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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