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다서(茶書) '부풍향차보' 발굴

2018. 3. 30. 15:50차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 다서(茶書) '부풍향차보' 발굴

'동다송'보다 반세기 앞서…선운사 약용차 제조법 기술

2008년 06월 03일(화) 11:15 [(주)고창신문]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인 부풍향차보에는 각종 다구의 이름을 밝혀 차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차에 대한 최초의 저술로 초의의 ‘동다송’을 꼽았다. 그러나 차(茶)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저작인 '부풍향차보(扶風香茶譜·1757년 또는 1758년)'가 발굴되어 차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되었다. ‘부풍향차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茶書)로 알려진 이덕리의 '동다기(東茶記·1785년)'나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1837년)'보다 28∼50년 앞선 것이어서 우리나라 차문화사의 편년을 한층 앞당긴 중요한 사료로 부각되었다. 정민 한양대 교수(한국 한문학 전공)와 월간 '차의 세계'에 따르면 부풍향차보는 부안현감으로 있던 이운해(1710∼?)가 고창 선운사 일원의 차를 따서 약효에 따라 7종의 향약을 가미해 만든 약용차의 제조법을 기술한 책이다. 정민 교수는 "부풍향차보는 고창 성내면 출생인 황윤석의 '이재난고'의 제1책 172쪽과 173쪽에 실려 있다"면서 "정신문화연구원이 10년 전 공개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빛을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부풍향차보는 모두 2쪽 분량으로 다본(茶本), 다명(茶名), 제법(製法), 다구(茶具) 등 네 개 항목에 걸쳐 차의 특징과 성질, 증세에 따른 향차 처방, 향차 제조법, 향차 음다법을 차례대로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당시 부안현감으로 있던 이운해가 고창 선운사에서 차를 따서 7종의 향약을 가미해 만든 약용차의 제조법을 이 책에서 밝혀냈다. 이운해는 이 책의 서문을 통해 선운사에서 좋은 차가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차에 무지, 보통 잡목처럼 여기고 땔감으로 쓰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저술 동기를 적시했다. 특히 부풍향차보는 다서 가운데 최초로 각종 다구(茶具)의 이름과 실물을 그림으로 밝힌 것은 물론 용량까지 적시하고 있어 차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책에 따르면 차 끓이는데 필요한 다구는 모두 6종류로 다로(茶爐)와 다관(茶罐), 다부(茶缶), 다종(茶鍾), 다잔(茶盞), 다반(茶盤) 등이다.
‘부풍향차보’는 차의 노래인 한재 이목의 ‘다부’와 초의의 ‘동다송’, 이덕리의 ‘동다기’에 이어 명실 공히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로 부각될 것이다. 월간 차의 세계를 통해 정민 교수가 최초로 자료 일체를 전격 공개함으로써 우리 차사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부풍향차보’는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일기인 ‘이재난고(이齋亂藁)’에 그림과 함께 인용되어 있다.) 분량은 두 쪽밖에 되지 않는다. 더 자세한 내용을 담은 별도의 책자가 있었고, 여기 실린 것은 그 핵심 내용만 간추려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부풍향차보’는 1757년 6월 26일자 일기 끝에 실려 있다.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 자료는 18세기 당시 조선의 음다풍속과 실상을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재난고’에 수록된 ‘부풍향차보’는 서문과 <다본(茶本)>, <(다명(茶名))>, <(제법(製法)>, <다구(茶具)>의 네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끝에는 이 일기를 쓴 지 19년 뒤에 황윤석이 적은 저자 이운해(李運海)에 관한 추기(追記)가 있다.
정 교수는 부풍향차보에 대해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다서’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작설차에 처방에 따라 7가지 약재를 조제해서 만든 기능성 향차를 소개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차산지로 부각된 적이 없는 고창에도 차가 있었음을 알려 우리나라 차산지와 향유공간을 확장시켰고 차 그릇의 크기와 명칭을 명확히 규정해 도량적 기준을 제시, 18세기 조선시대 음다풍의 실상을 구체화 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부풍향차보에 선운사의 작설차를 언급한바와 같이 고창 선운사의 작설차는 선운사 명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선운사의 자연녹차와 함께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너른 차밭과 함께 전통방식 그대로 차를 만들고 있는 우룡스님 또한 작설차 못지않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선운사의 진귀 식품으로도 손꼽히는 작설차. 지금 야생 녹차밭을 가보면 고랑 사이사이로 호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자연친화적으로 녹차를 재배하기 때문에 토양정화에 탁월한 호밀을 심은 것이다. 작설차는 세작이라고도 불리는데 은은한 향과 빛깔이 옥과 같고 맛이 강한 차라고 한다. 때문에 작설차를 내는 물은 수돗물 보다 석간수나 자연수가 좋다. 우룡스님은 “좋은 차 일수록 차에 담긴 오미(五味)를 느낄 수 있다”며 “선운산 작설차는 그 어떤 차보다 오미(신맛·쓴맛·단맛·짠맛·매운맛)를 완전하게 느낄 수 있다”고 극찬했다. 선운사 작설차의 재배조건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해서 수확시기도 타 지역의 녹차보다 20일이 늦고 수확을 마감하는 시기도 20일이 빠르다고 한다. 차를 만드는 기술차이에서도 그렇고 차 밭이 북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맛과 향이 찐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같은 찻잎을 가지고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차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고 한다. 선운산 작설차는 덖음차의 일종으로 우리나라 전통차 제조방법인 구증구포 제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구증구포는 아홉번을 쪄서 아홉번 말리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커다란 무쇠 솥에 찻잎을 넣고 가열하며 건조한 뒤 이를 멍석에 널어 손으로 조심스레 비비면서 건조하는 과정을 아홉번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구증구포를 거치면 찻잎이 부서지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건조돼 차 본연의 은은한 향과 깊은 맛을 그대로 간직한다.
선운산 자연속의 녹차인 ‘작설차’는 그리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차이다. 천년고찰 선운사의 역사와 함께 한 선운산 작설차는 동국여지승람이나 세종지리지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고창지역의 대표 토산품으로 임금님께 진상되었다고 한다. 불교탄압과 함께 차 문화가 크게 쇠퇴한 조선조에서도 고창을 대표하는 토산물로 임금님께 진상되었다는 것은 선운산 작설차의 빼어남을 익히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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